3월에는 모두 9권의 책을 읽었다. 몸이 안 좋아 좀 쉬면서 일을 하는데, 그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더 많아졌다. 세상엔 좋은 책이 너무 많은데, 읽을 시간이 없다고 푸념하는 내 자신을 반성해 본다.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  : 그는 파인만이 노벨물리학상을 받을 수 있게 파인만의 이론을 증명했지만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물리학자보다는 사상가로서의 그의 독특하고 약간은 반골적인 시각이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 전쟁을 없애기 위해 핵무기 개발에 참여했고, 또한 핵무기 군축을 지지했던 그의 인생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한 세계사를 반영한다.

미러링 피플 :  우리가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공감하는 이유는 뇌 속에 미러링 뉴런(거울 뉴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러링 뉴런은 인간 사회를 강력하게 묶는 매개체이고, 인간의 지능과 지혜가 발현되는 근원처이다. 과학서지만 꼭 읽을 필요가 있다.

톨스토이 단편선 :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홀짝 거리면서 2시간 내에 다 읽은 책이다. 톨스토이의 기독교주의적인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따뜻한 글로 채워져 있다. 마음이 착해지는 책이다.

책 읽어주는 남자 :  이 책을 99년에 읽은 적이 있는데, 요즘 영화화됐다고 해서 다시 읽었다. 불과 10년 전 책인데, 오래된 책 특유의 냄새가 정겨웠다. 독일문학 책이라서 그런지 철학적이고 서사적인 문장이 처음에는 껄끄러웠으나 읽다보면 그 흐름에 동화된다. 사족이지만, 한나 역으로 케이트 윈슬렛은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적확한 캐스팅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대학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탐독하며 여러 날을 허무하고 염세적인 기분에 젖었었다. 난 그가 달리기를 그렇게 사랑했는지 이번에 알게 됐는데, 나도 그처럼 달리기를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할 정도로 맛있는 문체로 잔잔하게 자신의 달리기 역사를 펼쳐간다.

발칙한 유럽산책 : 서점에서 한 두페이지 읽어 보고 너무 재미있어서 사게 된 책이다. 유머와 음담패설을 적절하게 섞어가면서 자신이 여행했던 유럽의 도시를 이야기한다. 내가 가본 유럽 도시에 대해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유쾌해지고 싶을 때, 유럽의 도시가 그리울 때 이 책을 읽는 건 어떨까?

뉴 골든 에이지 : 인도계 미국 경제학자가 쓴 경제 예측서다. 그의 스승과 그가 발견한 사회순환법칙을 적용해서 미국이란 나라의 붕괴를 예견하는 책이다. 미국은 지금 온갖 부패가 만연하고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탐획자 시대'의 말기 현상을 보인다고 한다. 그는 곧 그 시대가 마감되고 '전사의 시대'가 올 거라 예견하면서 머지 않아 미국에 황금의 시대가 열릴 거라 예언한다. 두고봐야 알 터이지만, 역사와 정치를 꿰뚫어보는 그의 혜안이 놀랍다. 읽어보기 바란다. 

서늘한 광채 : 1부는 소설 형식으로, 2부는 과학서 형식으로 구성된 책이다. 뇌과학과 현상학을 통해 의식의 근원을 해석한 책인데, 배경지식이 없으면 쉽게 읽히지 않는다. 의식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어떻게 발현되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된다.  

자유의지, 그 환상의 진화 : 인간의 자유의지는 뇌 속에 존재하는 환상이라고 주장하는 생물학자의 책이다.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선물로 내려줬다는 기독교적인 입장에서는 이 책의 서술이 마땅찮을지도 모르겠다. 자유의지라는 환상은 진화를 통해 획득한 형질이라는 진화생물학의 관점을 읽어보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독일어권(오스트리아) 책이라 관념적으로 서술된 문장이 쉽게 읽히지는 않으니 천천히 읽을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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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에서 중고등학생들이 학교에서 얼마나 욕설을 입에 달고 다니는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다. 부모들은 그 모습을 보고 충격에 휩싸였다. 다들 자신들의 자식만큼은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들의 희망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흥미로운 것은 학생들도 자신들이 단어의 본뜻도 모른 채 욕을 생활화(?)한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자유에 의해 이와 같이 명랑발랄한(?) 욕설 문화를 부흥 발전시킨 걸까?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이 유명한 언명은 인간이 지구상에서 자유의지를 가진 유일한 생명체임을 선포하는 문장이다. 자유롭게 선택하고 자유롭게 판단하며 자유롭게 결정할 줄 아는 능력이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는 가장 강력하며 유일한 기준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경험하는 자유의지가 진짜 지유의지가 맞는 걸까? 그것은 그저 환상에 불과한 건 아닐까? 나는 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인간은 경험하지 못한다. 오늘 점심에 뭘 먹을까 메뉴판을 들여다 볼 때, 우리는 각자의 자유의지에 따라 음식을 선택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나의 선택을 하나씩 따져보면 외부의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과 감정을 모방하는 뇌 속의 '거울 뉴런(Mirror Neuron)', 다수의 힘에 따르는 논리, 어딘가에서 무심코 들은 말 한마디의 위력, 은근하고 치밀한 광고 메시지,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유전자들의 음모 등이 우리의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진짜 주인들이기 때문이다. (블로그라는 한계로 자세한 근거를 제시하기 곤란한 점 양해를....)

"난 쌀국수를 먹겠어" 라고 내린 결정이 과연 내 자아의 자유로운 선택일까? 난 아니라고 믿는다. 인간에겐 자유의지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을 뿐이다. 자유의지는 인간의 뇌가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복잡해지고 고도의 기능을 갖추게 되면서 부산물로 얻어진 것이다. 뇌 속에서 이뤄지는 모든 의사결정은 사회문화적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스스로 내린 결정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사실 곤란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어떤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자.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으니, 그를 처벌하기가 어렵다. 여러 가지 외부적인 요인이 작용해서 그로 하여금 범죄를 행하도록 만들었으니 처벌해야 할 사람은 그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혹은 제도, 문화 등등)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벌이 아니라 상을 줄 때도 마찬가지다.

범죄자들을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자유의지의 존재를 믿어야 하며, 더 나아가 자유의지는 반드시 존재한다고 비판을 가할지 모르겠지만, 이는 주객의 전도된 논리이다. 마치 코가 안경을 걸치기 위해서 진화돼 왔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혹자는 또,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인간으로서 우리는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는 수많은 경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단 말인가, 라고 말할 것 같다. 솔직히 나는 그점에 대해 아직 모르겠다. 나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는 반면에,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옳은 방향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행동하려는 의지, 즉 '정향(定向)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향의지란 판단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주변 상황을 관찰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욕구를 말한다. 다시 말해, 외부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회문화적 요소 중에서 무엇에 높은 비중과 가치를 주느냐에 관한 판단을 말한다. 비록 의사결정의 자유의지는 인간에게 없지만, 자신의 의사결정을 좌우할 외부요소를 어느 정도 필터링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존재한다고 본다.

물론 정향의지가 잘못 작동되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결정을 내릴 수도 있지만, 그것은 벨 커브(bell curve)의 양극단의 사건들이다. 일반적으로 인간들은 사회문화적 규약을 대개 준수하려는 건전한 정향의지를 가지고 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부재하지만 정향의지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옳은 것만 보고 느끼고 경험하려는 의도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그래야 본인의 의사결정을 사회문화적 규약에 부합시킬 수 있으며, 개인의 삶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정향의지를 갈고 닦을 필요가 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을 경계하라고 했듯이, 인간의 사고는 결코 자유롭지 않으며, 인간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들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만들어 간다"라고 자신만만하게 내뱉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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