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활의 중심이다"   

2010. 2. 16. 09:00

얼마 전에 "통제력을 잃으면 바보 된다"란 글을 올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읽어 주셨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통제력을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 보겠습니다. 요술방망이 같은 처방은 아니지만, 통제력 상실로 고민인 분들께 도움이 되면 좋겠군요.

통제력은 목표의식을 분명히 함으로써 유지됩니다. 어떤 일이 크건 작건 항상 목표를 두고 일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일의 결과뿐만 아니라 일을 수행하면서 받게 될 스트레스의 양도 다릅니다. 일이 정말 어렵고 많아서 힘겨운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또 외부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자신이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목표 몇 가지를 분명히 찾는 것이 자신의 건강과 지적 능력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올라갑니까, 아니면 내려갑니까?)


물론 그런 상황에서 통제력을 갖춘다는 것은 쉽지 않죠. “힘든데 어떻게 힘들지 않는 척 할 수 있는가?” 하지만 통제력을 유지하는 방법은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있습니다. 일의 ‘종’이 아니라 일의 ‘주인’이라는 다짐 하나만으로도 통제력은 유지됩니다. 일의 무게 때문에 어깨가 짓눌리더라도, 그 속에서 자신이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스위치’를 발견하기 바랍니다. 적어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하나쯤은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윗사람이 어려운 업무를 지시하면서 무조건 3일 안에 일을 마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업무의 난이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은 “너무 시간이 짧아요.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걸 아시잖아요.”라고 답하곤 합니다. 애석하게도 이런 방어적인 대답은 칼자루를 상대방에게 내주는 꼴입니다. 상대방이 노발대발할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칼자루를 자신이 쥐려면 이렇게 답하는 게 좋습니다. “그때까지 해보죠. 하지만 그 일에 집중하도록 다른 일은 주지 마십시오. 그래야 그때까지 끝낼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해서 자신의 업무 조건이 그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통제합니다.

이어서, “최종 완성되기 전에 보여 드릴 테니 검토 의견을 주시기 바랍니다” 혹은 “전체 중에 이 부분만은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완벽하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부분은 도움을 주십시오.”라고 말함으로써 자신과 상대가 업무의 공동책임자임을 분명히 합니다. 이런 적극적인 ‘역(易)제안’은 통제력을 온전히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저의 경우는 ‘시간’이 스위치 역할을 한다. 상사나 클라이언트가 3일 안에 끝내길 원할 때 어려운 경우가 아니면 2일 안에 완성합니다. 그리고 결과물을 감춰두고 휴식을 취하거나 다른 일을 하는 데에 남은 1일의 시간을 사용하지요. 기한은 타인이 정했지만 나의 시간은 나만이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만일 3일 안에 하란다고 거기에 맞추는 사람은 통제력을 잃는 겁니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만의 스위치를 찾는다는 것은 순발력과 냉정함을 필요로 합니다. 상사의 터무니없는 지시에 욱해서 통제력이고 뭐고 그만 방어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남이 먼저 승진하면 ‘내가 상사를 싫어해서 그렇다’라고 해야 통제력을 잃지 않는데도, 냉정함을 잃고 ‘상사가 나를 싫어하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하며 좌절하는 것이 보통이지요. 

그런 경우가 쌓이고 쌓이면 어느덧 직업 자체에 대한 회의에 젖게 됩니다. ‘뭐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나?’는 자괴감이 온몸을 휘감습니다.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게 되죠.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아무런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통제력의 마지막 스위치는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찾는 겁니다. 적성에 맞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직업이라면 의식하지 않아도 의미를 찾겠지만, 아마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일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자신이 직업이 소망하던 꿈과 정반대의 것이라면, 그럼에도 거기서 탈피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면, 의미를 찾는 것 자체를 사치로 여길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철학자 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바꿔 말해, 왜 일해야 하는지 의미를 아는 사람은 모든 상황을 견딜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라도 해도 일의 의미는 항상 존재합니다. 적어도 일을 통해 돈을 벌고, 돈으로 자신과 가족이 원만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만일 아무리 생각해도 의미를 찾지 못한다 해도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질문을 하는 자가 남이 아닌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 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의미 자체보다는 의미를 찾기 위한 부단한 과정이 자신의 삶을 더 잘 통제하도록 이끕니다.

건강하게 살려면,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서 통제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켤 수 있는 당신만의 스위치, 당신만의 목표와 의미를 발견하기 바랍니다. "내가 생활의 중심이 되는 법"을 찾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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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의 스위치를 발견하라   

2008. 6. 30. 12:18

제이 웨이스(Jay Weiss)라는 생물학자는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눈 후에 바닥에 깔린 전선을 통해 전기 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했다. A그룹의 쥐들이 들어 있는 우리에는 전기 충격을 차단할 수 있는 스위치가 달려 있었으나, B그룹의 우리에는 스위치가 없어서 전기 충격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여러 차례 전기 충격을 가한 결과, A그룹의 쥐들은 전기 충격을 여러 차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건강 상태가 양호했다. 반면 B그룹의 쥐들은 위궤양에 많이 걸렸다. 두 그룹 모두 일정한 시간에 똑같은 양의 전기 충격을 받았음에도 건강 상태의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 A그룹의 쥐들은 전기 충격을 차단할 수 있는 스위치, 즉 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제력을 가지고 있으면 더 많은 항체를 생산할 수 있어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통제력을 잃어버리면 건강이 상할 뿐 아니라, 지적 능력도 '흐리멍텅'해진다. 이번엔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봤다. 소음이 매우 심한 상황에서 피실험자들에게 어려운 문제(수학 문제 같은)를 풀게 했는데, A그룹이 앉은 테이블 위에는 소리를 끌 수 있는 스위치가 달려 있었고, B그룹에게는 그런 스위치가 없었다.

짐작했겠지만, 스위치를 가진 A그룹의 사람들이 문제를 훨씬 많이 풀었고 또 틀린 갯수도 얼마 안 됐다. 반면 B그룹의 사람들이 푼 문제 갯수는 A그룹의 1/5에 불과했고, 풀었다 해도 틀린 경우가 많았다. A그룹의 사람들이 소음이 들릴 때마다 스위치를 껐기 때문에 성적이 좋을 수밖에 없었을까? 아니다. 실제로 실험에서 A그룹의 사람들은 스위치를 한 번 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스위치를 사용하는 빈도보다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지적 능력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정신적인 건강이든, 육체적인 건강이든, 통제력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건강 = 통제력을 유지하는 것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보통 스트레스는 일이 너무 많거나 난해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하지만, 일의 양이나 경중 때문이 아니라 그 일의 '질' 때문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스스로 계획해서 소신껏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 위에서 마구 쏟아지는 지시를 소화하느라 허덕일 때처럼 일의 '질'이 급격하게 저하되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통제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또한 일이 없어서 '놀거나' 목표를 망각해서 시간을 어영부영 보냈다고 생각되면 자괴감과 후회에 빠진다. 일이 많을 때보다 스트레스가 오히려 쌓인다. 왜냐하면 그 시간 동안 삶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일이 크건 작건 항상 목표의식을 가지고 생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일이 정말 어렵고 많아서 허덕이는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또 외부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자신이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것이 자신의 건강과 지적 능력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길이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통제력을 갖춘다는 것은 쉽지 않다. 문제는 마음가짐이다.  일의 '종'이 아니라 일의 '주인'이라는 다짐 하나만으로도 통제력은 유지된다. 어깨를 짓누르는 일의 무게에 눌리더라도, 그 속에서 자신의 '스위치'를 발견하라. 적어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하나 쯤은 있을 것이다. 무력해질 때마다 그 스위치를 작동시킴으로써 통제력을 유지하라.

그리고 어떤 분야든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그 일이 내가 소망하던 꿈과 정반대의 것이라면, 그러나 거기서 탈피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면, 적어도 그 일을 함으로써 '돈'을 벎으로써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한다는 의미라도 있는 게 아닌가?  도스토예프스키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아무런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삶의 모든 순간에는 의미가 있음을 명심하자.

빅터 프랑클은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 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건강하게 살려면, 통제력을 유지해야 하고, 통제력을 유지하려면 당신만의 스위치(목표와 의미)를 발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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