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중간에 '북한'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언급되었습니다.


KBS 제1 라디오 (FM 97.3 MHz) '성공예감, 김방희 입니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주제로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2009년 2월 2일 08:40). 다음은 인터뷰의 주요 내용입니다.


사회자 멘트 : 오바마 대통령 취임으로 인한 구제금융과 경기 부양에 대한 기대감으로 좀 안정되나 싶었던 세계 금융시장과 경제가 다시 불안정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요.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이런 불확실한 금융과 경제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좀 안정됐다 싶으면 다시 불안정해지는 걸 반복하는 건데요. 여기에 일희일비하다가는 오히려 큰 흐름을 놓질 가능성도 높습니다. 경영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더 큰 그림을 보고, 각각의 경우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놓아야 한다고 제언하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고 할까요? 최근과 같은 금융과 경제 상황에서 개인과 기업, 그리고 정부의 대응 방안은 어때야 하는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인퓨처컨설팅의 유정식 대표를 전화로 연결하겠습니다.


1. 요즘 경제와 관련해서는 불확실하다는 얘기밖에 안 하게 되는데요. 경영에서는 불확실성이나 위험, 확실성 같은 것을 구분한다고 하던데요. 어떻게 구분이 됩니까?

제가 볼 때 불확실성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가령 “우리 회사가 언제 위태해질지 불확실하다’라는 말처럼 불확실성이란 말을 보통 불안하다, 위험하다, 이런 의미로 쓰는데요, 사실 불확실성이란 말은 그런 뜻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올 확률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똑같이 2분의 1 이죠? 이처럼 확실하게 어떤 면이 나올지 모르는 상태, 이런 것이 불확실성의 의미거든요.

따라서 불확실성은 좋게 될 수 있고 나쁘게 될 수도 있는 확률이 정확히 반반일 때가 가장 큰 것이죠. 불확실성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을 수도 있는 것이죠. 따라서 위험이나 리스크는 불확실성 그 자체가 아니라 불확실성이 큰 요소를 지나쳐버렸을 때 받게 되는 잠재적인 손실로 봐야 합니다.

신문을 보면 불확실성이 증폭된다라는 말을 자주 언급하는데요, 그것은 불안감의 표현이지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한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불확실해서 불안한 게 아니라, 불확실하기 때문에 잘 대비하지 않으면 위험이 커진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맞습니다.



2. 현재의 금융과 경제 상황의 경우는 얼마나 불확실하고, 또 위험한 상황입니까? 우리나라의 경우를 좀 분석해보자면요. 어떤 분들은 바닥을 쳤다는 분들도 계시고, 아니다. 바닥이 온다는 분도 계신데.

저는 현재가 바닥일 수도 있고, 바닥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불확실하기 때문인데요, 2007년과 2008년에 하락을 했으니 2009년에 바닥을 찍고 올라갈 거란 의견이 힘을 얻는 것 같구요, 반대로 지금의 경제 위기가 전무후무하게 전 세계적이라서 과거와 패턴 자체가 다를 거란 전망도 만만치 않습니다.

저는 지금이 위험한 상황이라기보다는요,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봅니다. 미국 중심의 경제가 다극화되는 현상을 보일 거구요, 지구온난화와 자원 고갈에 따라 지속가능 경제가 중요하게 대두될 겁니다. 기존의 패러다임과 기존의 경제지표로 보면 바닥이냐 아니냐가 중요할지 모르지만요,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경제의 지속가능성, 환경의 질, 소득의 평등,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할 겁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경제 상황이 불확실하긴 하지만 반드시 위험하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개인이나 기업들이 투자를 생각한다면, 새로운 정치 경제 질서의 변화를 주시하는 게 중요합니다. 바닥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너무나 단기적인 마인드죠.



3. 우리 금융시장과 경제 상황의 불확실성이나 위험과 관련해, 유 대표가 가장 중시하는 변수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저는 두 가지라고 보는데요, 첫 번째는, 좀 거시적이긴 하지만, 북한의 기류 변화가 가장 큰 변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난 30일에 북한이 일방적으로 남북한 합의를 파기한다는 통보를 해왔는데요, 향후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상태, 권력 세습 과정 상의 여러 가지 불안 요소들 때문에 한반도 정세에 불확실성이 커질 겁니다.

만약 남북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으면, 특히 중국이 깊숙하게 관여할 가능성이 있구요, 그에 따라 우리나라 경제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게 될 겁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변수는, 경제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국제적인 공조가 얼마나 확고하게 유지될 건가 하는 점이 되겠습니다. 많은 국가가 공조를 여러 차례 다짐하고 있긴 하지만, 보호주의 무역의 필요성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빅3 자동차 회사에 대해서 미국 정부가 지원에 나서는 사례가 그런 것이거든요. 경제가 어려워지면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세계화를 반대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만약 그 때문에 공조가 약화되면 경제 위기의 회복이 상당히 지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4. 금융시장이 출렁거리거나 경제 지표가 악화될 때마다 불안해졌다가 다시 안도하는 상황이 거듭되고 있는데요. 이렇게 불확실성과 위험이 높은 상황에서 개인이나 기업, 정부가 대응하는 자세는 어때야 합니까?

무엇보다 미래를 예측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봅니다. 개인이나 기업, 정부도 앞으로 경제 상황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려고 무진 애를 쓰는데요, 사람들이 점집에 몰려드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해서 하나의 정확한 수치를 얻어내려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는 거죠.

여러 기관들이 경제성장률과 같은 예측치를 쏟아내는 데요, 저는 그런 예측치를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작년에 한국은행이 2008년 경제성장률을 4.7%로 예측했고, KDI도 5%로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2.5% 였거든요. 만일 그런 예측을 믿고 대비했다면, 낭패를 당할 수밖에 없었겠죠. 예를 들어 KIKO(키코) 사태도, 정부의 환율 예측을 믿어서 생긴 결과 아닙니까?

따라서 저는 예측을 통해 불확실성을 없애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불확실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그것에 대비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5%니 6%니 하는 숫자 놀음보다, 차분하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생각해보고 대응전략을 수립하는 게 먼접니다.



5. 큰 그림을 보면서 전반적인 시나리오를 갖고 있어야 된다. 유 대표께서는 그런 주장을 하고 계시고, 최근에 <시나리오 플래닝>이라는 책도 내셨는데요. 시나리오를 갖고 있으면 뭐가 도움이 됩니까?

많은 분들이 시나리오를 미래 예측 기법의 하나로 생각하시는데요, 시나리오는 예측과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예측은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2%다, 3%다, 라고 말할 때처럼 한 가지 숫자로 미래를 표현하는 것이지만요, 시나리오는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경제 상황의 여러 가지 경우를 이야기로 그려보는 것입니다.

시나리오가 도움이 되는 이유는요, 발생 가능한 여러 가지 케이스를 두루 살펴보게 해서 전략의 실패를 줄여주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예측에 기반해서 전략을 수립했다면 오직 한 가지 케이스만 가정을 했기 때문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불확실성에 대처하기가 불가능합니다.

또 하나의 장점은, 각각의 시나리오 하에서 개인의 투자계획 하고, 기업의 전략, 그리고 정부의 정책이 과연 적합한지 검토할 수 있구요, 특정 시나리오가 현실화됐을 때 당황하지 않고 미리 준비한 전략을 곧바로 실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미래는 속도가 중요한데,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면 남들보다 순발력 있게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거죠.



6. 시나리오를 통해 크게 성공을 거둔 예들이 있습니까? 기업들이나 혹은 개인, 나라 차원에서요.

가장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석유회사인 쉘을 들 수 있습니다. 이 회사는요, 원래 5위권 정도 밖에 안 되는 회사였는데, 시나리오를 잘 세워서, 단숨에 업계 2위로 뛰어 올랐습니다. OPEC가 설립되기 이전에는 산유국이 아니라, 석유회사들이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OPEC가 설립되면서 힘의 균형이 산유국 쪽으로 넘어가고, 시장 판도가 변할 거라는 시나리오를 미리 생각해 냈습니다.

70년대 초에는 석유 소비가 증가하는 추세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석유회사들은, 유전개발 투자를 무조건 늘려 갔죠. 그런데 산유국이 힘을 갖게 되면서, 유가가 급등하고 오일쇼크가 발생하는 바람에, 그 회사들은 엄청난 손실을 보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쉘은 미리 대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업계의 강자로 떠오르게 된 거죠.

우리나라 기업인 SK에너지도 좋은 사례인데요, 최근에 환율 변화 시나리오에 따라 전략적으로 잘 대응을 해서요, 경쟁사는 손해를 봤지만 이익을 더 많이 냈다고 합니다. 예측에 기반해서 전략을 실행한 게 아니라, 시나리오를 세워 놓고 그에 따라 대비했기 때문이죠.



7. 현재와 같은 불확실한 경제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는 장기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요? 개인과 기업, 정부 차원에서 구분해서 설명해주시면 어떨까요?

먼저 개인들은요, 정보를 수집하고 이해할 때 자신이 기대하는 정보만 보려는 습성에 주의해야 합니다. 어떤 회사의 주식을 갖고 있다면 그 회사가 잘 나갈 거라는 예측기사만 눈에 들어오고 그것 하고 반대되는 정보를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거든요.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서 투자 전략이나 인생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요즘 기업들이 상황이 어렵다 보니까, 시나리오 경영을 도입한다고 하는데요, 3개월이나 6개월 단위로 전략을 갱신하는 것을, 시나리오 경영이라고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나리오 경영은 장기적인 미래의 불확실성에 따라,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지, 전략을 자주 바꾸는 게 아니거든요. 시나리오 경영의 의미를 올바르게 인식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정부가 상황이 급박하다 보니까 경기를 부양시키려고 토목과 건설과 같이 단기적인 해결책에 몰두하는 것 같은데요, 토목과 건설은 결코 성장동력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볼 때 미래의 성장동력은, 바이오, 환경, 에너지가 근간이 될 겁니다. 정부는 당장 어렵더라도, 미래를 위해 그런 분야를 육성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제시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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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는 다 짜 놓았다. 그리고 시나리오별로 최적의 전략대안도 마련해 놓았다.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할 것인가? 아니면 어떤 시나리오가 펼쳐질 것인지를 미리 파악하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답은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미래가 어떠한 모습으로 진행되어갈 것인지를 남들보다 하루라도 먼저 알면 경쟁에서 항상 이기기 마련이다. 마치 어느 지역에 태풍이 강하게 몰아칠 것이니 각별한 주의를 당부한다는 태풍예보처럼, 최악의 경우라 할지라도 미리 위험을 간파하여 행동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지속적으로 환경의 변화를 주시하면서 현실화될 미래에 관한 실마리를 미리 간파하여 조직 전체가 짜인 전략대안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행동케 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 논의해 보자.

시나리오플래닝 이후는 모니터링
다시 한번의 그 의미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시나리오플래닝이란 미래의 모습과 다가올 위험을 식별하여 미리 대응책을 수립하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전쟁으로 비유하자면, 시나리오플래닝은 적이 침투해올 경로, 무기 및 병력의 운용방법 등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대안을 놓고 그에 맞게 아군 병력을 배치하고 훈련시키며 각종 보급을 원활히 확보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여러분의 회사가 미래를 대비하여 가능한 한 최선의 대책을 마련해 놓고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여러분의 회사는 여타 기업보다 훨씬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뭔가 2% 부족하다.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전쟁에서는 시간과 정보를 누가 먼저 지배하는가가 승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레이더를 켜 놓고 모니터의 어느 쪽에서 적의 비행기가 나타날지를 주시하는 것과 같이, 지금의 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모니터링하여 특정 시나리오의 발생 징후를 파악해야 시나리오플래닝 작업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원하는 대학에 붙기 위해 밤을 낮 삼아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해당 대학의 입시전형방식이 어떻게 바뀌든지 상관하지 않거나 수능시험의 출제경향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모른다면, 애써 공부한 노력이 물거품이 돼 버릴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모니터링 지표 도출방법
그렇다면 모니터링은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시나리오플래닝 과정을 통해 도출된 시나리오들을 다시 살펴보라. 거기에 답이 있다. 특히 시나리오플래닝의 Step 5에서, 시나리오의 뼈대에 풍부한 상상력의 살을 붙여 만들어 낸 시나리오별 ‘소설’을 다시 펼쳐 곰곰이 읽어 보면, 거기에서 지표들을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샴푸와 같은 두발용품을 제조하는 B사는 주로 자사제품을 대형할인점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이 회사의 첫번째 고민은 고객이 자사제품을 대형할인점에서 사길 원하는지, 아니면 전문판매점에서 구입하길 선호하는지 여부였다. 두번째 고민은 경쟁사가 자사의 텃밭인 대형할인점 마케팅을 강화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불확실성이 높은 요소가 2개이므로, 그림 3과 같이 4개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진다.

B사가 어떤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날지를 모니터링하려면 무슨 지표가 필요할까? 상상력을 발휘해보라. 우선 가장 쉽게 생각해낼 수 있는 지표는 대형할인점 또는 전문판매점에서 판매된 두발용품의 총매출액, 경쟁사의 대형할인점 마케팅 비용 증가율 등과 같은 성과지표일 것이다.

이런 성과지표는 모니터링할 가치가 있긴 하나 시나리오의 징후를 파악하는 ‘선행지표’로서는 함량 미달이라 말할 수 있다. 보다 근본적인 지표가 필요하다. 전문판매점에서 두발용품을 구입하는 유명인사의 인터뷰, 개인이 자신의 블로그 따위에 두발용품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는 양, 마케팅 요원을 선발한다는 경쟁사의 모집공고 등 시각을 좀더 넓게 펼쳐야 답이 보인다.

조기경보를 위한 모니터링
모니터링 지표를 도출했다면, 각 지표와 시나리오간의 연관성을 파악해야 한다. 즉 어떤 지표가 어떤 시나리오의 발생 여부를 강화 혹은 약화시킬 것인지를 사전에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조기경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림 4와 같이, 모두 5개의 모니터링 지표와 4개의 시나리오가 있다고 가정하자. 각 지표와 각 시나리오를 짝을 맺어 지표와 시나리오의 연관성을 -3부터 3까지의 척도로 판단하면 된다.

먼저 각 지표들이 모두 양의 방향으로 커진다고 간주하자. 예를 들어, ‘애플 매장 방문고객수 증가’ 라는 모니터링 지표가 “애플과의 전쟁’ 시나리오의 발생가능성을 매우 높이는 것이라 판단되면 3, 반대로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을 매우 높인다고 판단되면 -3을 기입하면 된다.

 

이렇게 해서 그림 4와 같은 표를 만들어 놓으면, 지표의 변화 방향에 따라 어떤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날지를 어느 정도 계량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래야 조직 구성원들에게 “ ‘애플과의 전쟁’ 시나리오니까 빨리 대책을 실행해!” 라는 식의 경보를 날릴 수가 있을 것이다.

조기경보를 날리려면, 모니터링 지표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으로 환경을 감시하는 인력, 즉 ‘모니터링팀’이 운영되어야 한다. 이는 시나리오를 도출하는 시나리오팀과는 별개의 조직이다. 선정된 모니터링 지표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매순간 탐지하여 시나리오팀과 경영진에게 ‘행동개시’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모니터링팀은 내부직원들로 구성할 수도 있으나, 대개의 경우 내외부인이 밀접히 협력하는 인적 네트워크의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무엇보다도 행동!
시나리오를 세워 대응전략을 마련한 뒤 면밀한 모니터링을 통해 기회 혹은 위험의 순간을 무엇인지 알아차렸다고 해보자. 여기까지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다. 하지만 여전히 1%가 부족하다. 아니, 1%가 아니라 100%가 부족한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때’가 언제인지 알아도 행동에 옮기지 않아서 결국 위험을 자초하는 경우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앞서 연재한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폴라로이드사는 디지털카메라 시대의 도래를 예견했으면서도 애써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자기네들이 지금껏 쌓아온 즉석카메라 기술이 너무 아까워서 버리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새로운 즉석카메라 개발에 애먼 돈을 쏟아 부었다. 경영자들의 잘못된 신념은 위기를 애써 무시하고 ‘대책 없는’ 낙관주의에 취하게 만들며 결국은 회사를 망하게 한다.

만약 여러분이 조기경보라는 제목을 보고 뭔가 복잡한 수식들이 얽혀 있는 시스템이나 프로세스맵 따위를 상상했다면 미안하다. 위기를 먼저 알아 남들보다 한발 빨리 조치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모든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다면, 굳이 복잡하고 비싼 시스템은 필요 없다. 조기경보체계는 조직문화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조기경보의 핵심키워드는 ‘먼저 알고 먼저 행동하는 것’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참고도서]


(곧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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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평등이 능사는 아니다   

2008. 12. 5. 09:21

캐롤 쉬블리는 짧은꼬리원숭이의 여러 집단에서 서열이 높은 원숭이들만을 따로 모아 집단을 구성해 인위적으로 서열을 조작한 실험을 수행했다. 의례 원숭이들끼리 치열한 서열 쟁탈전이 벌어졌는데, 예전에 높은 서열을 점하던 원숭이들은 서열 추락의 수모를 당해야 했다. 새로운 권력자가 출현하면서 서열 다툼은 일단락되었는데, 쉬블리가 관찰하고자 한 것은 서열의 재편 과정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원숭이들이 생리적으로 어떻게 변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서열이 낮아진 원숭이들을 검진했는데, 그들에게서 동맥경화증, 복부비만, 고혈압 등의 이상 증세가 퍼져 있음을 발견했다. 실험 조건을 동일하게 유지하려고 모든 원숭이에게 똑같은 먹이를 주었기 때문에 이러한 질병은 사회적 지위의 하락 때문에 발생한 것이 명백했다.

서열이 낮은 원숭이는 서열이 높은 원숭이로부터 언제 공격당할지 불안에 떨기 때문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더 많이 분비한다. 코르티솔은 일시적인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작용을 하나 과다 분비 상태가 장시간 계속되면 신경이 예민해지고 우울증에 빠지며 질병인자를 활성화시키는 부작용을 발생시킨다. 따라서 서열이 낮아진 원숭이들에게서 질병이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실험이 최고의사결정자로부터 말단 사원에 이르는 위계 체계를 보유한 기업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서열이 낮은 말단 사원일수록 스트레스가 많아서 덜 건강하다는 뜻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기업의 서열 체계는 구성원들의 공식적이거나 암묵적인 합의 하에 형성되고 누구에게나 당연시되므로 말단 사원이라고 해서 특별히 스트레스를 더 받을 일은 아니다. 게다가 자신과 처지가 같은 동기들이 있으니 위안이 된다. 쉽게 말해 ‘그러려니’한다.

이 실험의 핵심 메시지는 원래부터 서열이 낮을 때가 아니라 갑작스럽게 서열이 변동될 때 문제가 야기된다는 사실이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권력을 가진 경영자가 하루아침에 임원을 말단 사원으로 내리고, 대리를 부장으로 올리는 조치를 취하면 아마 서열이 낮아진 원숭이들의 고통을 인간들도 겪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기업의 위계 체계가 이처럼 마구 뒤섞이는 일은 없다. 그래서 기업 조직은 원숭이 사회와 다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갑작스레 서열이 뒤바뀌는 현상과 동일한 효과를 발휘하면서 기업 혁신의 도구로 찬양 받는 무언가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성과주의 제도들이다. 성과주의의 핵심논리는 동일한 직급과 연차라 할지라도 역량과 업적에 따라 연봉을 차별적으로 지급해야 성과를 창출하려는 직원들의 동기를 고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 잘하면 그만큼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기회의 평등’ 논리는 기업들로 하여금 성과주의를 무조건 수용하도록 강권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저기서 자주 발견된다. 남들보다 덜 받는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괴롭고, 더 받는 사람은 보상이 보잘것없다며 투덜댄다. 업무를 소홀히 하며 목표 달성에만 매달리고, 협조 요청을 무시하는 이기주의가 만연하는 등의 문제가 성과주의의 효과를 압도해 버린다. 그 이유는 성과주의 제도가 기존 서열 체계를 흔들어대면서 동일 직급에 동일 연차면 동일한 보상을 받았던 평등한 조직을 불평등한 상태로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이치로 가와치는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구성원 간의 신뢰가 미약하며 적대감이 강화된다고 말한다. 소득의 절대적 수준이 아무리 높아도 그 상대적인 차이가 크면 사망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성과를 높이려면 신뢰와 건강이 생명인데, 성과주의가 오히려 그것들을 파괴해 성과를 저하시킬 수도 있으니 아이러니다.

기회의 평등을 외친다고 해서 많이 받는 사람과 덜 받는 사람 사이의 불평등 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 결과의 평등을 강조하는 것만큼 기회의 평등을 무조건 추구하는 것도 큰 부작용과 해악을 야기한다. 보상의 차등폭 확대를 작금의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도깨비방망이로 여기는 기업을 종종 목격한다. 이럴 때일수록 불평등을 완화하여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위기 탈출의 진정한 해법이다.

(본 칼럼은 광주일보 2008년 12월 5일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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