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올린 글 '성공의 착각에 빠져 있습니까'에서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 글에서 전문가들이 커리큘럼 설계를 최대 30개월 안에 끝내겠다고 했지만 결국 8년이나 지나고 나서야 겨우 끝나버렸다는 사례를 들며 풍부한 지식과 경험이 전략이나 프로젝트의 앞날을 예측하는 데에 별로 도움이 안 될뿐더러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미래를 전망할 위험이 있음을 지적했지요. 계획 오류란 프로젝트나 전략의 성공 가능성과 성공으로 인한 이득을 과장하는 반면 실패 가능성과 실패에 따른 비용을 실제보다 낮게 책정하려는 경향을 말합니다. 실제보다 좋은 쪽으로 예상하려는 편향인 '낙관적 편향(optimistic bias)'과 통하는 말이죠.


그렇다면 이런 계획 오류(혹은 낙관적 편향)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뉴올리언스 대학의 민경삼(Kyeong Sam Min)은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일련의 실험을 통해 방법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어떤 일의 완료일을 예상할 때 일부러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 계획 오류가 줄어들 거란 가설을 세우고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실험 참가자로 모집했습니다. 민경삼은 결혼 계획에 관해 어떻게 의사결정하는지 알아보기 위함이 연구의 목적이라고 참가자들에게 설명하고서는 피로연 장소 선택, 손님 목록 작성, 음악 선택 등 결혼하기 전에 결정해야 할 활동 한 가지를 고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첫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에겐 자신이 정한 활동을 두 단계의 세부 활동으로 구체화시키라고 하고, 두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에겐 다섯 단계로 좀더 세분하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을 '쉽게' 혹은 '어렵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죠.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은 자신이 정한 활동을 언제 끝마칠지를 구체적인 날짜로 적어냈습니다. 민경삼은 참가자 각자가 적어낸 예상 완료일이 지난 후에 그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실제로 그 활동을 시작한 날과 완료한 날을 알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실제 완료일에서 예상 완료일을 빼본 결과, 참가자들은 전반적으로 계획 오류를 범했습니다. 105명의 참가자 중 27.6퍼센트만이 예상일보다 먼저에 각자가 정한 활동을 완료했죠. 이보다 흥미로운 결과는 두 단계로 계획을 세분하라는 지시를 받은 참가자들이 다섯 단계로 계획을 세분하라고 지시 받은 참가자들보다 낙관적 편향이 심했다는 것입니다. 전자가 후자보다 거의 다섯 배나 심한 편향을 보였죠. 이는 계획을 좀더 '어렵게' 수립한 참가자들이 계획 오류를 덜 범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상의 정확도를 따져봐도 다섯 단계로 계획을 세분한(계획을 어렵게 수립한) 참가자들이 더 좋았습니다. 이 결과는 계획 오류나 낙관적 편향을 최소화하려면 계획을 수립할 때 가능한 한 신중하게 생각하고 까다롭게 검토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일러줍니다.


이 실험은 사람들이 낙관적인 미래를 그리기 쉬운 '결혼'이라는 이벤트를 대상으로 했기에 계획이 실행되는 과정을 비관적으로 인식하는 활동에 대해서는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에 민경삼은 미래를 낙관적으로 볼 때와 비관적으로 볼 때, 각각의 상황에서 계획을 쉽게 수립하거나 어렵게 수립하는 것이 계획 오류를 줄이는 데 있어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를 알아보려고 후속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앞으로 제출해야 할 숙제를 떠올리게 하고는 두 그룹으로 나눠 각각 두 단계 혹은 여덟 단계로 숙제 수행 계획을 수립하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학생들을 다시 둘로 나눠 한 쪽 그룹에게는 숙제를 마감일보다 며칠 일찍 끝낼 수 있을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갖게 만들고 ,다른 쪽 그룹에게는 마감일이 되어서야 숙제를 끝마칠 수 있을 거라는 비관적인 감정을 갖도록 했습니다.


이후에 이메일을 통해 실제로 숙제를 완료한 날짜를 확인해 보니, 흥미롭게도 숙제 완수에 대해 낙관적인 생각을 가졌던 학생들의 경우는 계획 수립을 여덟 단계로 '어렵게' 세분할 때 계획 오류가 적었고, 숙제 완수를 비관적으로 느끼던 학생들의 경우에는 두 단계로 계획을 '쉽게' 구체화할 때 계획 오류가 적게 나타났습니다. 이 결과는 어떤 활동이나 프로젝트를 낙관적으로 기대할 경우에만 계획 수립을 신중하고 꼼꼼하게 진행하는 것이 도움이 되고, 그 활동이나 프로젝트를 비관적으로 여길 때는 신중하고 꼼꼼한 계획 수립이 오히려 계획 오류를 낳는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신중한 계획 수립이 항상 좋은 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므로 기질상 미래를 항상 낙천적으로 보는 전략가는 계획을 좀더 세분함으로써 '어렵게'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낙관적 편향을 줄이는 데 좋고, 미래를 신중하게 접근하고 대비하려는 전략가는 계획을 꼼꼼하게 세우려는 욕구를 억제하는 게 계획 오류를 덜 범하는 방법입니다. 신중한 사람은 계획을 본인이 생각하기에 엉성하게 세우는 게 더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이 지금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낙관적으로 보입니까, 아니면 비관적으로 느껴집니까? 여러분은 성격상 낙천적입니까, 아니면 신중하고 대체적으로 비관적인 편입니까? 계획 오류와 낙관적 편향을 줄여야겠다면 이 두 질문에 먼저 대답하고 난 후에 계획의 깊이를 정하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Kyeong Sam Min, Hal R. Arkes(2010), When is Difficult Planning Good Planning? The Effects of Scenario-Based Planning on Optimistic Prediction Bias, Journal of Applied Social Psychology, Forthco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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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를 계획할 때 중요한 일들이 많겠지만 그 중 하나가 프로젝트의 완료 기간을 예상하는 것입니다. 특히 인력의 효율적인 운용이 중요시되는 조직일수록 프로젝트 일정을 지나치게 짧게 잡아도 안 되고 또 지나치게 길게 잡아도 안 되죠. 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지난 번 글('성공의 착각에 빠져 있습니까?')에서 이야기했듯이 프로젝트 일정을 실제로 필요한 기간보다 짧게 잡는 경향이 있습니다. 1년이 필요한 데도 6개월이면 충분하다는 식으로 일정을 정하죠. 과거에 유사한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프로젝트의 진행을 낙관적으로 예상하고 실패 가능성을 낮게 점치는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를 범하곤 합니다.

이런 경향이 있기 때문인지 주로 프로젝트 방식으로 일하는 조직(예 : 시스템 개발, 컨설팅, 건축 및 토목 등)에서는 프로젝트 일정 수립의 정확성을 중요한 성과지표(KPI)로 관리하곤 합니다. 계획과 실제가 얼마나 일치하느냐에 따라 개인과 조직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보상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계획 오류의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억제하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는 프로젝트 매니저들은 십중팔구 이러한 KPI를 부여 받았을 거라 짐작되는군요.



하지만 계획의 정확성을 강조하고 그에 따라 평가하겠다는 조치가 계획 오류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확대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잉 쯔앙(Ying Zhang)과 에일렛 피시바흐(Ayelet Fishbach)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정확성의 중요함을 강조할수록 보수적이고 '안전한' 일정을 정하는 경향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정확성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규명했습니다. 

쯔앙과 피시바흐는 학생들에게 GRE 스타일의 객관식 문제 100문항을 제시하고서 문제를 다 풀면 즉시 이메일로 보내라고 요청했습니다. 문제를 제시하기 전에 학생들 중 절반은 이 문제들이 어렵다는 말("다른 학생들이 어려워 했다")을 들었고 나머지 절반의 학생들은 문제가 쉽다는 말("다른 학생들도 쉽게 풀었다")을 전달 받았습니다. 또한 학생들은 문제를 다 푸는 데 걸리는 시간을 예상하여 연구자에게 이야기해야 했죠. 쯔앙과 피시바흐는 학생들 중 절반에게는 예상 완료 시간이 그저 참고용이라고 말한 반면, 나머지 절반에게는 채점 담당자들의 스케쥴을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예상 완료 시간의 정확성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정확성의 중요함을 서로 다르게 인식하도록 만든 것이죠.

문제가 어렵다란 말을 들은 학생들은 높은 정확성을 요구 받을 때 예상 완료 시간을 더 크게 잡는 경향을 보였습니다(29시간 대 86시간). 반대로, 문제가 쉽다는 말을 들은 학생들은 낮은 정확성을 요구 받을 때 예상 완료 시간을 더 높게 잡았죠(60시간 대 53시간). 조직에서 수행되는 대개의 프로젝트가 '어렵다'라고 간주하면, 프로젝트 매니저나 조직의 장에서 계획의 정확성을 강조하고 그것에 높은 비중을 부여할 경우 프로젝트 예상 완료 기간을 실제로 필요한 기간보다 더 길게 잡을 것이라 해석되는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학생들은 몇 시간만에 문제 풀이를 완료했을까요? 결과는 학생들 자신들의 예상과 비슷하게 나타났습니다. 문제가 어렵다고 인식한 학생들은 높은 정확성을 요구 받을 때 실제 완료 시간이 더 길었습니다(35시간 대 86시간). 반면, 문제가 쉽다고 인식한 학생들은 낮은 정확성을 요구 받을 때 실제 완료 시간이 더 길었죠(62시간 대 52시간). 

학생들이 사전에 문제의 난이도를 어떻게 인식했건 간에 모두 동일한 문제를 풀었다는 점에서 이 결과는 상당히 의미심장합니다. 어렵고 중대한 프로젝트를 앞에 둔 사람이 계획의 정확성이 중요하다고 인식할수록 필요한 시간보다 더 길게 일정을 잡으려 할뿐더러 더 오랫동안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이 실험의 결과로 우리는 일정의 정확성을 높이려는 조치가 프로젝트가 필요 이상으로 오래 끌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과, 오히려 계획의 정확성을 별로 강조하지 않는 것이 프로젝트를 빨리 끝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정확성 때문에 프로젝트가 길어지는 것은 정확성이 지불해야 할 비용인 셈입니다.

정확성이 지불해야 할 비용이 프로젝트 기간의 증가만은 아닙니다. 쯔앙과 피시바흐는 정확성을 강조하면 어떤 일을 끈질기게 수행하고자 하는 의지도 저하된다는 점도 실험을 통해 규명했습니다. 그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8개의 문자로부터 의미 있는 영어 단어를 찾아내는 애너그램 과제를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참가자들의 절반은 배경음악이 애너그램 같은 창의적인 과제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된다('비장애 조건')는 말을 들은 반면, 나머지 참가자들은 배경음악이 오히려 해가 된다('장애 조건')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쯔앙과 피시바흐는 각 그룹의 참가자들을 다시 둘로 나눠 첫 번째 서브 그룹에게는 남들보다 좋은 성적을 거둘수록 많은 수고료를 주겠다고 하고, 두 번째 서브 그룹에게는 자신이 거둘 실제 성적을 사전에 정확히 예상할수록 높은 수고료를 지불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모니터 상에 나타나는 8개의 애너그램 문제를 풀도록 하니 '장애 조건'에서 정확성에 따라 보상 받기로 한 참가자들은 성적에 따라 수고료를 받기로 한 참가자들에 비해 과제를 오랫동안 지속하려는 경향이 적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수행하는 일이 어려울뿐더러 예상의 정확성이 중요한 요소라고 인식할 때 사람들은 그 일에 힘을 쏟으려는 동기가 약화된다는 것입니다.

계획의 정확성을 강조하면 실제보다 짧게 기간을 정하려는 계획의 낙관적 경향('계획 오류')이 줄어들긴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공짜가 아닙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빨리 끝낼 수도 있는 프로젝트를 오래 수행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고 어려운 일을 끈질기게 지속하려는 동기를 저하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늘어난 시간과 비용을 감안하지 않고 '계획 대비 실제'를 측정하는 KPI가 양호하다고 해서 높은 평가를 내리고 보상하는 것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아이러니입니다. 

위 실험을 짧게 정리하면, 쉬운 프로젝트는 정확성을 강조하고 어려운 프로젝트는 정확성을 그리 강조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어떤 프로젝트가 쉽고 어려운지, 또 어느 정도의 정확성이 좋을지 판단하고 결정하는 문제는 여전히 여러분 손에 달렸습니다. 프로젝트 매니저나 조직의 책임자는 계획의 부정확성으로 인한 비용과 계획의 정확성을 강조함으로써 발생할 비용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잡는 지혜를 갖춰야 합니다. 한쪽으로 쏠리는 관리법은 프로젝트의 실패 확률을 높인다는 점을 늘 경계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프로젝트는 얼마나 정확한 일정으로 진행되고 있습니까? 일정을 딱딱 맞춘다고 좋아할 일은 아닐지 모릅니다.


(*참고논문)
Counteracting Obstacles With Optimistic Predi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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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올린 글 '성공의 착각에 빠져 있습니까'에서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전문가들이 커리큘럼 설계를 최대 30개월 안에 끝내겠다고 했지만 결국 8년이나 지나서 겨우 끝나버렸다는 사례를 들며 풍부한 지식과 경험이 전략이나 프로젝트의 앞날을 예측하는 데에 별로 도움이 안 될뿐더러 헛된 망상을 키울 위험이 있음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번엔 이러한 계획 오류와 '권한(혹은 권력)' 사이의 관계를 실험을 통해 규명한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서 그 의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권한을 가진 자와 권한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 프로젝트의 완료 시점을 예측할 때 누가 더 큰 계획 오류에 빠질까요? 마리오 웨이크(Mario Weick)와 애나 귀노트(Ana Guinote)는 여러 개의 실험을 통해 이 질문에 답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20명의 학생들을 권한을 위임 받은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에 무작위로 배정한 다음, 대학 당국이 새로 들어올 학생들을 위해 학점 체계를 새로 정비할 계획이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권한을 위임 받은 학생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대학의 최종 결정에 50%의 비중으로 반영될 거라고 들은 반면, 권한을 갖지 못한 학생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열람되겠지만 학점 체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웨이크와 귀노트는 두 그룹의 학생들에게 각자 학기 중에 제출할 과제의 마감일을 정하고 언제까지 그 과제를 제출할 수 있을지 예상하라고 요청했습니다.

학생들이 과제를 제출한 날짜와 예상한 날짜를 비교해 보니 계획 오류가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룹과 상관없이 학생들은 마감일이 되기 1.88일 전에 과제를 제출했지만 그보다 2일 먼저 제출할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계획 오류는 권한을 가진 그룹에서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마감일이 되기 2.47일 전에 제출을 완료했으나 당초 예상할 때에는 마감일보다 4.93일 전에 제출할 수 있다고 장담한 바 있었죠. 대략 2.5일 정도를 낙관적으로 본 겁니다. 반면, 마감일 2.7일 전에 과제 제출을 예상했던 '비권한 그룹'의 학생들은 마감일 1.3일 전에 제출을 완료함으로써 1.4일의 오차를 보였습니다. 권한을 가질수록 예측이 상대적으로 덜 정교하고 소요시간을 더 적게 산정한다는 점이 드러난 결과입니다.

이 결과는 권한을 가진 학생들이 자신도 모르게 더 어려운 과제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웨이크와 귀노트는 후속실험을 수행했습니다. 그들은 40명의 학생들에게 과거에 남들에게 권력을 발휘한 기억과 타인의 힘에 의해 억압 받았던 기억을 각각 떠올리게 하는 '프라이밍' 기법을 써서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그런 다음, 거칠게 작성된 파일을 문서 편집 프로그램을 써서 깔끔한 포맷으로 만들라는 과제를 학생들에게 부여했죠. 학생들은 과제를 수행하기 전에 각자 완료 시간을 예상해야 했습니다.

분석 결과, '지배자' 학생들이 '피지배자'로 프라이밍된 학생들에 비해 완료 예상 시간을 훨씬 적게 예측한다는 경향이 도출되었습니다. 지배자 학생들은 8.91분이나 걸릴 일을 3.95분만에 끝낼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피지배자 학생들은 실제로 9.13분 걸리는 일을 6.32분 정도에 끝낼 수 있으리라 예측했던 겁니다. 추가로 분석해 보니 전체적으로 지배자 학생들이 피지배자 학생들에 비해 77% 정도 더 계획 오류를 범한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걸까요? 권한 혹은 권력이 '자기 효능감(Self Efficacy, 무언가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높이기 때문일까요? 학생들이 작성한 설문을 기초로 자기효능감과 계획 오류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니 유의미한 연관성이 드러나지 못했습니다. 웨이크와 귀노트는 또 다른 실험을 통해 권력을 가진 사람이 예상되는 결과물에 너무나 집중한 나머지 그 예상을 벗어나게 만들 잠재 요소에 관한 정보를 미처 감안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즉 '주의 초점(Attentional Focus)'이라는 현상이 계획 오류와 연관이 있다고 밝힌 겁니다.

두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각각 프라이밍된 학생들은 2천자 분량의 에세이 쓰기, 저녁 외출 준비하기, 슈퍼마켓에서 쇼핑하기, 세 가지 요리 준비하기 등 4가지 상황을 전달 받았습니다. 웨이크와 귀노트는 절반의 학생들에게 과거에 이 4가지 과제를 수행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회상하게 한 다음, 과거의 경험에 감안하여 어떻게 이 과제들을 수행할지 짧게 글을 쓰도록 했습니다. 글을 다 쓴 후에 학생들은 4가지 과제를 모두 완료하는 데 걸릴 시간을 예측했습니다. 

그 결과, 과거의 경험을 회상한 지배자 그룹의 학생들이 낸 예측값은 피지배자 학생들의 것과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들이 과거의 일을 떠올림으로써 덜 낙관적이 됐다는 뜻입니다. 반면 피지배자 학생들의 예측값은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것에 의해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는 권력과 낙관적인 예측 사이에는 목표 외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주의 초점이 연관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완료 시간을 과소평가하는 계획 오류를 범하곤 하지만 권력이 가진 자들이 주의 초점에 빠져 나타내는 오류의 정도가 더 크다는 게 이 연구의 결론입니다. 이 실험은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줄까요? 조직 내에서 힘을 가진 사람이 프로젝트의 완료 시점을 제시하고 주도하려 할 때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이 연구는 일깨웁니다. 권한을 가진 자는 프로젝트를 통해 이루어야 할 목표 자체에 매몰되어 생각하는 경향이 큰 탓에 과거의 경험이나 앞으로 생길지 모를 돌발변수를 별로 감안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프로젝트나 전략의 실행계획을 수립할 때 권력을 가진 사람은 욕구를 자제하고 다른 구성원들의 생각을 충분히 받아들이려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상대적으로 의사결정권을 가지지 못한 구성원들에게 실행계획 수립을 일임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프로젝트를 무조건 일찍 끝내는 게 능사가 아니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이 의사결정권을 가진 위치에 있다면 구성원들에게 요구하는 완료 시점이 지나치게 빡빡하지 않은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했을지 모르니까요. 그런 예측은 의사결정권 없는 '힘 없는 자'들에게 위임하는 게 나을지 모릅니다.

(*참고논문)
How Long Will It Take? Power Biases Time Predi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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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획서란 무엇인가?   

2010. 12. 27. 09:00



아마 여러분은 한번 이상 크고 작은 기획서(혹은 기안)나 제안서를 써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획력이야말로 개인의 능력을 가늠하는 역량 중 하나로 인식돼 있습니다. 그래서 기획력이나 기획서 작성에 관한 교육이 유행을 타지 않고 꾸준히 계속되는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기획이란 무엇일까요? 이와 비슷하게 쓰이는 말로 '계획'이나 '제안'이란 낱말이 있는데, 그것들과 기획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사람에 따라서 기획의 의미를 다양하게(또한 심오하게) 정의 내리겠지만, 기획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리고 기획서는 정리된 아이디어를 문서 형태로 '예쁘게' 표현한 것을 말합니다. 시장조사를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가, 신입사원 교육을 어떻게 실시해야 하는가, 신문광고를 어떻게 진행할까, 등이 대표적인 기획의 주제죠.

'계획'도 사실 기획과 같은 말입니다. 좀더 실행을 강조하거나 곧바로 실행에 옮겨야 할 때 기획이란 말 대신 계획이란 용어를 쓰는 것뿐이죠. 또한, 기획된 내용을 누군가에게 청하거나 승인 받으려 할 때 제안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특히 기획하는 사람과 기획의 결과를 받아보는 사람이 서로 다른 조직에 있을 경우에 제안이란 말이 자주 쓰입니다. 따라서 기획, 계획, 제안은 강조하는 부분만 조금씩 다를 뿐 결국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기획은 왜 하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기획의 결과로 정리되는 아이디어는 모두 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이란 말이죠. '시장조사를 어떻게 진행할까?'와 같은 기획의 주제가 문제 해결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의아할지 모르겠군요. 우리는 보통 현재의 곤란이나 위험을 문제라고 정의하지만, 현재보다 더 잘하기 위해서 스스로 만들어낸 것도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문제란 기대상태와 현재상태의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문제 = 기대상태 - 현재상태

문제가 없다는 말은 기대상태와 현재상태가 동일하다는 말과 같죠. 곤란이나 위험에 처했을 때는 현재상태가 추락함으로써 기대상태와 차이가 발생해 문제가 되는 것이고, 더 잘하려고 할 때는 기대상태가 상승함으로써 현재상태와 차이가 발생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곤란이나 위험에 처했을 때의 문제 = 기대상태 - 현재상태(↓)

더 잘하려고 할 때의 문제 = 기대상태(↑) - 현재상태

정리하면, 기획은 위와 같은 2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예전에 실시했던 시장조사가 형편없었다면 전자의 문제로 기획을 하는 것이고, 지금까지 별다른 과오는 없었지만 시장조사의 '예측률'를 획기적으로 높이고자 한다면 후자의 문제로 기획을 수행하는 것이죠.

여러분에겐 스스로 기획서를 작성해 본 경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의 기획서를 살펴보고 평가해 본 적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기획서 중에는 좋은 기획서도 있고 그저 그렇거나 '나쁜' 기획서도 있음을 알 겁니다. 그래서 '좋은 기획서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요?'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알고 있겠죠.

여러분이 좋은 기획서가 갖춰야 할 조건들을 모두 나열해보고 그것들을 그룹핑한다면,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요약될 겁니다.

좋은 기획서의 조건

(1) 잘 구성된 기획서
(2) 깔끔한 기획서
(3) 가슴에 꽂히는 기획서

그러나 위의 3가지 요건들은 좋은 기획서가 되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그저 필요조건들이죠. 왜냐하면 좋은 기획서란 '채택된 기획서'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즉 실행하기로 결정된(제안이 받아들여진) 기획서가 좋은 기획서란 말이죠. 아무리 멋지고 가슴에 팍 꽂히는 기획서라 해도 채택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기획은 실행되지 않으면 무의미하죠.

그렇다면 여러분의 기획서가 채택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모른다'입니다. '기획서를 채택하는 사람 마음'이기 때문이죠(만약에 그 비법을 안다면 이 블로그에 공개하지도 않겠지만요. ^^)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뛰어난 야구 선수도 타석에 10번 나와 3~4번 밖에 안타를 치지 못하듯이, 아무리 기획서에 통달한 사람이라 해도 기획서를 제출하는 족족 채택되지는 못합니다. 10번 중 2~3번만 채택돼도 뛰어난 기획자죠. 기획서를 끝내주게 잘 써도 비용 문제에서 걸리거나, 정치적인 이유로 '발로 쓴' 다른 기획서가 채택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좋은 기획서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라고 격하하긴 했지만, 잘 구성된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가슴에 꽂히도록 강렬한 포인트를 제시하는 것이 여러분의 기획서가 채택되기 위한 최소 조건입니다.

기획서가 채택되기 위한 최소 조건

(1) 잘 구성하라
(2) 깔끔하게 작성하라
(3) 가슴에 꽂히게 하라

그렇다면, '잘 구성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깔끔하게 작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슴에 꽂히게 쓰려면 무엇이 중요한지가 궁금할 겁니다. 이에 관한 내용은 앞으로 올릴 포스트에서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한꺼번에 다 올리면 제 밑천이 빨리 드러날 뿐더러 지나치게 긴 글이 여러분을 질리게 만들지 모르니까 말입니다. ^^

2010년의 마지막 월요일, 힘차게 시작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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