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가 좋으면 과정도 좋은가?   

2011. 8. 24. 09:20



좀 오래된 실험(1970년 대 초에 진행)이긴 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실험 결과가 있습니다. 일리노이 주립대(얼바나 샴페인)의 조직행동학자 배리 스토(Barry M. Staw)는 60명의 학생들을 무작위로 3명씩 팀을 구성하게 하여 '재무 성과 예측 게임'을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스토는 학생들에게 중간 정도되고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전자 회사의 1969년 연차보고서를 나눠 주었습니다. 그 보고서에는 최근 5년 간의 재무적인 성과 데이터가 포함되어 있었죠.

스토는 각 팀의 학생들에게 그 회사의 1970년 매출액과 주당순이익을 예측해 보라는 과제를 주었습니다. 각 팀은 30분 간 토론한 다음 자기네 팀이 예측한 매출액과 주당순이익 값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스토는 학생들에게 이 게임이 한 팀의 구성원수가 3명일 때의 성과가 4명이나 5명일 때의 성과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평가하기 위한 실험이라고 둘러댔지만, 진짜 목적은 그게 아니었습니다(피실험자들을 이렇게 속아 넘어가게 하는 것이 실험의 성공요소 중 하나인 모양입니다. 어쨌든...)



스토는 각 팀의 학생들이 제출한 결과(매출액, 주당순이익)는 학생들 모르게 캐비넷에 넣고서는 그냥 무작위로 '최고로 잘 예측한 그룹'과 '예측 능력이 저조한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룹 간의 예측 능력 차이는 없었죠. 학생들은 의심하지 않고 스토의 평가를 받아 들였습니다. 

스토는 학생들을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가서, 이번엔 아까 게임을 하는 동안 팀 내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면서 학생들에게 설문에 답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예측 게임을 수행하면서 자기네 팀의 단결력, 발언의 영향력, 의사소통, 갈등, 변화에 대한 열린 마음, 동기부여, 실력, 지시의 명확성 등을 어떻게 느꼈는지 각각을 1점부터 11점까지 평가하라는 것이 설문의 내용이었습니다.

예측 능력이 좋으냐 나쁘냐와 상관없이 설문에 대한 평가점수가 비슷하게 나와야겠지만(무작위로 학생들을 나눴기에), '최고로 잘 예측한 그룹'과 '예측 능력이 저조한 그룹'의 평가점수는 명백하게 차이를 보였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전자가 후자보다 자기네 팀을 더 훌륭하게 평가했습니다. 예를 들어 팀의 단결력에 대해서 '최고로 잘 예측한 그룹'은 7.83점이라고 평가한 반면, '예측 능력이 저조한 그룹'은 6.70이라고 평가 내렸습니다. 의사소통에 대한 평가도 이와 비슷한 패턴을 보였지요.

이 실험은 결과가 좋다고 평가 받은 사람들은 결과를 내기까지의 과정도 우수했다고 스스로를 평가함을 보여 줍니다. 또한, 결과가 어떠했든 간에 과정을 따로 떼어 평가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점도 시사하죠. 이처럼 결과에 대한 평가가 과정에 대한 평가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결과는 눈에 잘 보이지만, 결과를 내기까지의 과정(단결력, 의사소통 등)은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묘한 것들입니다. 팀이 단결을 잘 하고 서로 의견을 자유롭게 소통했어도 '당신 팀의 성과는 별로 높지 않습니다'란 평가를 받으면, '우리 팀의 단결력과 의사소통은 그다지 좋지 않구나'라고 지레 짐작하는 것이죠.

팀을 평가할 때뿐만 아니라, 개인을 평가할 때도 이런 현상이 발생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다 느끼고 있는 것이겠죠. 누군가 높은 매출을 달성하거나 중요한 계약을 여러 개 따내면 그 사람의 평소 역량을 ㄱ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상당히 큽니다. 역량(과정)을 업적(결과)과 따로 떼어 평가해야 하는데도, 업적을 보고 역량을 평가하는 우를 범하죠.

평소에 그 사람의 역량을 관찰하려면 사실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야 합니다. 행동이나 말, 다른 사람과의 관계 등을 면밀히 살펴서 중요한 포인트를 기록하고 관리해야 하죠. 하지만 그게 귀찮고 성가신 탓에 연말에 가서야 역량(과정)을 평가합니다. 그때 업적(결과)도 함께 평가하는데, 그 때문에 역량과 업적이 '짬뽕'이 되어 과정과 결과를 분리해서 평가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죠.

역량(과정)을 최대한 옳게 평가하려면 1년 내내 평가시스템을 오픈해 놓고 관리자로 하여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평가를 진행하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1년에 두 번(중간평가, 연말평가)만 평가시스템을 오픈하면 결과가 보통 수치로 결산되어 나오는 업적(결과)에 의해 희석이 되거나 왜곡될 소지가 많습니다. 역량평가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으려면, 그리고 그 평가를 통해 개인의 역량을 옳게 평가해서 계발시켜 주려면, 과정과 결과가 서로 섞이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결과에 대한 평가가 과정에 대한 평가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평가의 왜곡을 상당 부분 줄일 수는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보통 결과보다는 과정이 좋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이 힘을 얻으려면, 결과가 어떻든 간에 과정을 옳게 평가해 주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평가에 있어서도 과정 평가와 결과 평가의 중용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그저 또 하나의 클리셰에 지나지 않습니다.

(*참고논문 : Attribution of the "Causes" of Performance :A General Alternative Interpretation of Cross-Sectional Research on Organizati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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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이론(라프 코스터 저)'이라는 책에서 아래와 같은 사례를 발견했습니다.

x2 + 5 = 30

x는 얼마일까?

주위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제시해 보면 어떨까요? 어떻게 답을 이야기하는지 들어보면, 그가 문제해결(Problem Solving)의 기본기 중 하나인 '과정 중시'를 잘 하는 사람인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가 'x = 5'라고 금방 답한다면, 그는 답을 내는 것에 급급해서 과정을 무시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문제의 함정은 '엄청 쉽다'는 데에 있습니다. 쉽기 때문에 과정을 생략해도 된다고 유혹하죠.

직접 실험을 해봤습니다. 4~5명에게 물어봤으니 통계적으로 유의한 표본은 아니지만, 5라고만 답할 뿐 x = -5 를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5 도 분명 해답인데 말이죠.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더 무게를 둡니다. 예컨데 그들은 이 쉬운 문제를 풀 때에도 다음과 같이 과정을 전개합니다.

x2 + 5 = 30
x2 = 30 - 5 = 25
x =  ±√25
x ±5
 
쉬운 문제를 이렇게 일일이 풀이 과정을 써내려 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찮게 보이는 문제라도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면 올바른 답(±5)을 얻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풀이 과정을 꼼꼼하게 따지는 사람을 융통성 없다고 놀리기 전에 그들의 문제해결 역량의 기본기를 유심히 살펴볼 일입니다.

저는 요즘 시나리오 플래닝을 주제로 몇몇 기업을 대상으로 워크샵을 진행하는 중입니다. 방법론을 습득하기 위해 제 책('시나리오 플래닝')에 수록된 '길동이의 딜레마' 사례로 시나리오 플래닝을 연습하는 시간을 워크샵 초기에 진행합니다. 길동이의 딜레마는 다음과 같습니다.

길동이는 광화문 근처에 있는 OO호텔 커피숍에서 저녁 9시에 만나 애인에게 프러포즈를 할 계획이다. 여자친구는 성격이 불 같아서 단 1분이라도 늦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만일 길동이가 늦게 호텔에 도착한다면, 프러포즈는 엉망이 되고 여자친구는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날 게 확실하다. 길동이는 프러포즈를 성공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제시간에 호텔에 도착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사장님이 길동이에게 오후 늦게 중요한 일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 일을 하게 된다면 빨라 봤자 회사에서 8시에 출발할 수 있다. 다행히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7시에 퇴근이 가능하다.

강남에 위치한 회사에서 호텔로 가려면 승용차로 평균 1시간 걸리지만, 운이 좋아 길이 잘 뚫리면 30분, 반대로 길이 막히면 2시간이나 걸린다. 그렇다고 차를 놔두고 가기는 싫다. 프러포즈를 끝내고 여자친구와 함께 교외로 멋진 드라이브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 길동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제가 이 사례를 이야기하면 여기저기서 웅성웅성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약속 장소를 변경하면 되잖아.", "차를 렌트하면 될텐데", 혹은 "저런 여자와 왜 만나? 끝내 버려" 등등 다양한 해결책들이 즉각 제기됩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이 사례는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소소한 딜레마라 '쉽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즉흥적으로 제기된 해결책 중 몇몇은 길동이가 채택해도 될 만한 훌륭한 방안인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길동이가 처할 상황(시나리오)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최적의 해결책을 찾기 어렵습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해답을 즉각 토해내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라 '문제를 어떤 프로세스로 해결해야 하는가'의 방법론 중 하나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의미를 가집니다.

최적의 해결책을 원한다면 과거의 경험을 통한 추론과 직관으로 결과를 바로 내놓으려는 관성을 잠시 억눌러야 합니다. 그 대신,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방법론, 방식, 프로세스, 전제조건 등을 먼저 생각하려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경험과 직관도 문제해결에 필수적인 능력이자 조건이지만, 해답을 내는 데 적용하지 말고 과정을 짜는 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해결책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하려면 과정의 엄밀함이 반드시 전제돼야 합니다. 과정이 생략된 결과는 그 효과가 높다 하더라도 의심 받거나 거센 반대에 봉착하고 말죠. 현 정부의 '밀어붙이기' 식 정책에 국민들이 크게 반발하는 이유는 뭘까요? 과정(정책의 타당성 분석 등)을 몽땅 생략한 채 자신들의 이념, 신념, 이익 등에 근거한 답(결과)을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겐 과정을 건너 뛰어도 될 만큼 문제가 쉬운가 봅니다. 과정을 중시하지 않으면 이해와 지지를 얻지 못한다는 단적인 예가 아닐까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고 해서 항상 최고의 전략을 수립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직관적으로, 혹은 별 생각없이 제시한 해결책이 멋지게 성공하는 경우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예외적이어서 (언론이나 사람들의 인식에서)돋보일 뿐입니다.

소소한 고민에서 중차대한 딜레마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면 '답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 과정에 집중'해야 함을 기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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