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고독한 자리라고 우리는 흔히 말하곤 합니다. 특히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매번 중대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하는 리더들은 늘 엄청난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리더의 자리에 오르면 사방에서 쏟아지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역량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진짜로 리더의 자리에 오르면 리더가 아닐 때에 비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까요? 정말로 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할 정도로 걱정거리가 많아질까요?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르티솔(cortisol)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합니다. 그래서 코르티솔의 스트레스의 크기를 측정하는 지표로 사용되죠. 하버드 대학교의 개리 셔먼(Gary D. Sherman)과 동료 연구자들은 진짜로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non-leader)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를 코르티솔 측정을 통해 규명하고자 했습니다. 셔먼은 하버드 대학의 임원 교육 프로그램에 등록한 연방 정부의 공무원과 군인들 213명의 타액을 채취하여 코르티솔의 양을 측정하고, 각자의 불안 수준도 평가했습니다.





통계적으로 리더들이 리더가 아닌 사람들보다 코르티솔의 수치와 불안 수준이 낮게 나타났습니다.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을 거라는 통념이 옳지 않음을 시사하는 결과였죠. 이런 결과가 나온 까닭은 아마도 리더들은 리더가 아닌 사람들이 자주 경험하곤 하는 '다른 사람에 의해 통제 받는다'는 느낌보다는 '내가 상황을 통제한다'는 느낌을 갖기 때문일 겁니다.


셔먼은 리더의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서열과 권한의 차이에 따라 스트레스를 느끼는 정도가 다를 거라는 가설 하에 후속실험을 실시했습니다. 그는 휘하에 있는 부하의 규모, 직접 보고 받는 수, 권한의 크기가 코르티솔의 양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조사했습니다. 리더 중에서도 높은 위치에 있을수록(부하가 많고 직접 보고 받는 수도 많고 권한의 크기도 클수록) 코르티솔 수치가 낮게 나타났습니다. 셔먼은 리더의 서열이 높을수록 높은 통제감을 느끼고 그에 따라 불안 수준도 낮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 실험의 결과는 '리더는 고독하다'는 생각에 물음표를 짓게 만듭니다. 리더는 리더가 아닌 사람들에 비해 괴롭고 외롭기보다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덜 받고 더 행복합니다. 그런데 본디 스트레스에 대해 내성을 가진 사람들이 리더의 자리로 오르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리더가 리더가 아닌 자들에 비해 스트레스를 많이 느낀다는 말은 여전히 옳지 않습니다. 리더는 압박감을 많이 받긴 하지만 통제감이라는 버퍼가 있기에 스트레스를 컨트롤할 수 있죠.


셔먼의 실험은 비록 리더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내가 상황을 통제한다'고 느낄수록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사실, 그리고 통제감이 떨어질수록 스트레스가 가중된다는 사실은 부하직원들의 스트레스를 경감시키기 위한 조치로서 '권한 이양'이 무엇보다 효과적임을 또한 시사합니다. 똑같이 과중한 업무량이 주어져도 통제감이 높은 직원들이 그렇지 못한 직원들에게 비해 직무만족도가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죠. 예를 들어 비슷한 일을 하는 프로그래머라 해도 게임이나 솔루션 개발자들이 시스템 통합(SI) 개발자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만족도가 높은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고 오늘도 스트레스를 받을 겁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결국 통제감으로 귀결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참고논문)

Gary D. Sherman, Jooa J. Lee, Amy J. C. Cuddy, Jonathan Renshon, Christopher Oveis, James J. Gross, Jennifer S. Lerner(2012), Leadership is associated with lower levels of stress, PNAS, Sep. 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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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 뼈를 몰래 버린 사연   

2010. 12. 17. 09:00



어떤 사립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사장은 한 달 중 하루를 '잔반 없는 날'로 운영하라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그날 만큼은 급식에서 나오는 잔반을 줄여서 환경 보호에 일조하자는 좋은 의도에서 내린 지시였겠지요.

헌데, 잔반 없는 날에는 퇴식구에서 잔반 수거통을 아예 없애 버렸다고 합니다. 이사장이 그렇게 하라고 지시 내린 것인지, 아니면 밑의 사람들이 과도하게 충성하느라 그렇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말 그대로 그날은 잔반 없는 날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헌데 잔반 없는 날에 반찬으로 나온 메뉴가 하필 생선이었습니다. 한 학생이 "선생님, 생선 뼈는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답니다. 비록 잔반 없는 날이라지만 생선 뼈까지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선생님은 "그것은 못 먹으니까 그냥 모아서 버려라",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사장이 식당으로 시찰을 온다는 급보가 전해졌습니다. 잔반 없는 날이 잘 지켜지는지 직접 눈으로 감독하려는 의도였겠죠. 선생님은 아무리 생선 뼈라지만 잔반이 버려지는 광경을 이사장에게 발각되어 꾸중이라도 들을까 싶었습니다.

그는 몰래 검은 비닐봉투를 구해 와서 생선 뼈를 거기에 버리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학교 밖으로 가지고 나가 생선 뼈를 버렸습니다. 전해 들은 이야기라 세부내용은 차이가 있겠지만, 이렇게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듭니까? 알다시피 사립학교에서 이사장은 무소불위의 권위를 자랑합니다. 교원의 '임면'을 쥐락펴락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립학교도 있지만) 이사장의 말은 그대로 법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검은 비닐봉투에 생선 뼈를 모아 버리게 한 교사를 보고 "생선 뼈라서 잔반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이사장에게 이야기하면 될 것을, 그 사람 참 융통성 없다"고 핀잔을 줄지 모릅니다. 소위 '알아서 기는' 모습이 우스워 보일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 교사와 같은 입장이 된다면 "그런 기지로 위기를 모면했다니, 잘 했다"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거나 칭찬을 해줄 겁니다. 이사장의 눈 밖에 나면 좋을 일이 없으니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범접 불가능하고 반론 제기가 용납되지 않는 권위가 조직의 융통성과 창의성을 훼손하고 저하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아마 여러분은 이 이야기처럼 사실 그대로 말하면 될 것을 권위자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우스꽝스럽게 행동한 경험이 하나쯤은 있을 겁니다. 또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권위자가 있다면 그 권위가 크건 작건 밑의 사람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며 행동한다는 느낌을 한번 이상 받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제왕적인 리더십은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이끄는 강력한 동력입니다. 그리고 제왕적인 리더 한 사람이 모든 의사결정을 휘어잡는 조직에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융통성 없을 정도로 리더의 말에 순종하는 게 '진화적으로' 가장 유리한 생존전략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강력한 권위가 조직을 움직이는 유일한 동력이라는 점이고, 그 동력이 약화되거나 사라지고 나면 '순종 전략'은 가장 불리한 생존방식이 된다는 점이겠죠.

생선 뼈를 검은 비닐봉투에 모아 따로 버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사립학교 이사장은 "내 말 한 마디면 군말 없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인다"고 아마도 흡족해 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학교라는 조직의 특성(보수적이고 환경 변화에 안정적인) 때문에 제왕적 리더십이 가장 적응력 높은 리더십입니다.

그러나 기업은 어떻습니까? "오늘은 생선 뼈가 나와서 어쩔 수 없이 잔반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식의 사소한 직언조차 하지 못하는 조직은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고 별 문제 없는 조직입니다. 하지만, 조직의 발전을 위해 과감하게 의견을 개진하기보다는 그저 개인의 안위를 위해 목소리를 줄이고 행동반경을 개인의 직무 범위 내로 '적극적으로' 국한시키려는 조직은 상황이 비우호적으로 변하면 자연도태의 1순위가 될 것이 뻔합니다.

알아서 기는 조직일수록 위기가 발생하면 리더의 입만 쳐다보기 때문에 대응 타이밍을 놓쳐 버리기 일쑤입니다. 현장에서 재량껏 대응해도 될 걸 윗사람 지시를 받고 나서야 움직이니 말입니다. 제왕적 리더십은 '적응력 제로'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권한이양은 권위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조직의 적응력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생존전략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권한이양은 조직 통솔의 누수가 아니라, 변화에 창의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입니다. 그렇다고  권한이양이 조직의 구조를 뒤바꾸는 것과 같은 장대한 사업은 아닙니다.

구성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풍토만 마련해주면 됩니다. 다만 리더가 먼저 관대해져야겠죠. 잔반 없는 날에 생선 뼈가 버려져도 용인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관대함이면 충분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평온하고 아무런 불만이 없는, 가장 조용한 조직이 가장 위험한 조직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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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력을 잃으면 '바보'된다   

2010. 2. 1. 11:42
(* 이 글은 2년 전에 올린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회사의 성과 창출과 경쟁력에 직원의 역량이 핵심적인 요소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경영자들이 직원의 업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즐거운 직장생활을 위해 복지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이유도 결국은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회사의 성과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힘들여 키운 직원들이 회사에 나가겠다면서 안녕을 고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이들 스스로 통제하게 만들어야 좋은 지휘자입니다)


한 과학자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쥐를 A, B 두 그룹으로 나눈 후 전기 충격을 가했지요. A그룹의 쥐들이 모인 우리에는 전기 충격을 차단하는 스위치가 있었습니다. 쥐란 동물은 의외로 똑똑해서 스위치를 내리면 전기 충격이 차단된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반면에 B그룹에게는 스위치가 없었습니다. 

여러 날 전기 충격을 가하면 두 그룹의 쥐 모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겠지요. 헌데, A그룹은 숱한 전기 충격에도 불구하고 건강이 비교적 양호했습니다. 반면 B그룹의 쥐들은 스트레스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위궤양에 걸린 놈들이 많았고 어떤 쥐들은 체념한 채 드러누워서 전기 충격이 와도 움직일 줄 몰랐습니다.

사실 두 그룹은 일정한 시각에 똑같은 양의 전기 충격을 받았습니다. A그룹의 쥐가 전기 충격에 놀라서 스위치를 내리면 동시에 B그룹의 우리에도 전기가 통하지 않도록 실험 장치를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두 그룹의 건강 상태가 그리도 차이가 났을까요? 과학자는 외부 변화에 대해 통제력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건강을 좌우한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다른 과학자가 이와 비슷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번엔 쥐가 아니라 사람을 대상으로 했지요.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소음을 틀어 놓은 상황에서 수학 문제를 풀게 했습니다. A그룹이 앉은 테이블에는 소음 차단 스위치가 있었고, B그룹에는 없었지요.

실험 결과, A그룹이 문제를 훨씬 많이 풀었고 또 틀린 개수도 얼마 안 됐다고 합니다. 반면에 B그룹의 사람들이 푼 문제 개수는 A그룹보다 적었고, 오답도 많았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났을까요? A그룹의 사람들이 소음이 들릴 때마다 스위치를 껐기 때문에 성적이 더 좋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실험에서 A그룹은 스위치를 한 번 밖에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차단할 수 있어!’라는 생각만으로도 문제해결 능력이 유지된 겁니다. 반면 ‘소음이 발생해도 끌 도리가 없어!’라는 스트레스가 B그룹의 '머리를 나쁘게' 만든 원인이었지요. 통제력의 상실은 지적 능력도 갉아 먹습니다.
 
이 두 실험은 직원의 우수한 역량과 활기찬 직장생활의 열쇠는 교육과 복리후생과 같은 대증요법이 아니라, 업무에 대한 통제력임을 시사합니다. 역량이 뛰어난 직원도 통제력을 상실한 채 위에서 떨어진 일이나 수동적으로 수행하면, 한때 뛰어났던 지적능력은 금새 빛을 잃고 그저 윗사람의 입만 쳐다 보는 ‘똑똑한 바보’가 된다는 것이죠.

제 후배의 경우가 단적인 예입니다. 그는 명문대 석사 출신으로서 경영연구소에서 일하다 모 회사의 전략기획부서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런데 입사할 때의 약속과는 달리 콘도 예약을 관리하고, 유명강사 초청강연회를 뒤치다꺼리하는 복리후생 담당자를 맡았지요. 그의 주요업무 중 하나는 강연회 참석자들에게 우유를 데워서 나눠주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잃어버린 2년’을 보내고 회사를 박차고 나와서, 현재는 하나의 '서비스 라인'을 훌륭히 이끄는 리더로 활약 중입니다. 다행한 일입니다.

이런 웃지 못할 일이 굴지의 기업에서도 비일비재합니다. 한때 삼성의 영향을 받아 많은 기업들이 해외 우수인재 확보에 열을 올렸지요. 하지만, 힘들게 뽑아놓고서 제대로 활용을 못했습니다. 뽑아만 놓으면 다 되는 줄 착각했습니다. 결국 많은 인력이 회사를 떠났고 회사 분위기만 나빠졌지요.

‘권한 위임’은 상위자들이 독점한 권한을 밑으로 이양하는 것으로서 요즘 강조되는 경영철학 중 하나죠. 그런데 권한 위임이 잘 되는가 싶다가 원상복귀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직원들 개인의 역량과 선호에 맞게 업무를 부여하지 않았을뿐더러, 나름의 통제력을 가지고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은 채 그저 문서 상으로만 권한을 내려줬기 때문입니다.

‘넌 시키는 일이나 하라’며 모든 권한을 통제하면서 개인의 우수한 능력이 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길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직원들을 스스로 자신과 자신의 업무를 통제하도록 만들 때 기업의 경쟁력은 기초가 탄탄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똑똑한 바보’들이 우글대는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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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 또 시작이다!   

2008. 2. 21. 21:09
요새는 경영 이론이 너무나 많아서 컨설턴트인 나조차도 무슨 이론이 업계를 떠돌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너무나 많은 탓인지, 경영 이론들은 서로 모순되는 경우도 많다.

질적 성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론이 있는가 하면, 그와는 다르게 '속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론이 있다. 기업문화의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반대로 일치되고 통합된 하나의 문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을 한다.

뭐가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경영자들은 수많은 경영 이론들이 자기모순에 빠져 '떠들어 대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무척 헷갈린다. 귀가 얇은, 그래서 나름의 경영철학이 없는 경영자는 유행에 휩쓸리기 쉽다. 언제는 속도를 강조하더니만, 이제는 내실을 기하라며 소리친다.

동시에 여러 개의 경영혁신 프로그램들로 직원들을 괴롭히며 경영자가 줏대 없이 여러 경영 이론 사이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할 때, 직원들은 이렇게 외친다. "엎드려! 또 시작이다! (Bend over! Here it comes again =  BOHICA)

'권한위임(Empowerment)'이 조직성과 향상의 마술지팡이로 취급 받는 모양인데,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성과 향상의 전부가 아님에도 컨설턴트들은 녹음기처럼 이 말을 떠들고 다닌다.

권한위임은 말은 대개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직원들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하면 동기부여가 돼서 더 열심히 일하고 높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따져보면 권한위임은 직원 입장에서 볼 때 별로 환영하고 싶지 않은 말이다. 경영자(CEO)가 자신에게 권한을 위임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바로 "네가 마음껏 해보라.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각오해야 해!"라는 의미다.

권한위임은 CEO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자신이 부담해야 할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포장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직원들은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성과를 못내는 것이 아니다. 성과를 내는 방법을 몰라서 못내는 것이다.

권한위임이 조심스럽게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 권한을 위임 받을 생각이 없는 직원에게 권한만 떡 하니 안겨준다면, 그 직원은 동기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막중한 압박감에 시달릴 뿐이다. 그래서 "엎드려! 또 시작이다!"라고 외치면서 눈 가리고 아웅할 생각만 골몰할지도 모른다.

(조안 시울라의 책 '일의 발견'에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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