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중간에 '북한'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언급되었습니다.


KBS 제1 라디오 (FM 97.3 MHz) '성공예감, 김방희 입니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주제로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2009년 2월 2일 08:40). 다음은 인터뷰의 주요 내용입니다.


사회자 멘트 : 오바마 대통령 취임으로 인한 구제금융과 경기 부양에 대한 기대감으로 좀 안정되나 싶었던 세계 금융시장과 경제가 다시 불안정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요.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이런 불확실한 금융과 경제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좀 안정됐다 싶으면 다시 불안정해지는 걸 반복하는 건데요. 여기에 일희일비하다가는 오히려 큰 흐름을 놓질 가능성도 높습니다. 경영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더 큰 그림을 보고, 각각의 경우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놓아야 한다고 제언하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고 할까요? 최근과 같은 금융과 경제 상황에서 개인과 기업, 그리고 정부의 대응 방안은 어때야 하는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인퓨처컨설팅의 유정식 대표를 전화로 연결하겠습니다.


1. 요즘 경제와 관련해서는 불확실하다는 얘기밖에 안 하게 되는데요. 경영에서는 불확실성이나 위험, 확실성 같은 것을 구분한다고 하던데요. 어떻게 구분이 됩니까?

제가 볼 때 불확실성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가령 “우리 회사가 언제 위태해질지 불확실하다’라는 말처럼 불확실성이란 말을 보통 불안하다, 위험하다, 이런 의미로 쓰는데요, 사실 불확실성이란 말은 그런 뜻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올 확률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똑같이 2분의 1 이죠? 이처럼 확실하게 어떤 면이 나올지 모르는 상태, 이런 것이 불확실성의 의미거든요.

따라서 불확실성은 좋게 될 수 있고 나쁘게 될 수도 있는 확률이 정확히 반반일 때가 가장 큰 것이죠. 불확실성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을 수도 있는 것이죠. 따라서 위험이나 리스크는 불확실성 그 자체가 아니라 불확실성이 큰 요소를 지나쳐버렸을 때 받게 되는 잠재적인 손실로 봐야 합니다.

신문을 보면 불확실성이 증폭된다라는 말을 자주 언급하는데요, 그것은 불안감의 표현이지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한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불확실해서 불안한 게 아니라, 불확실하기 때문에 잘 대비하지 않으면 위험이 커진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맞습니다.



2. 현재의 금융과 경제 상황의 경우는 얼마나 불확실하고, 또 위험한 상황입니까? 우리나라의 경우를 좀 분석해보자면요. 어떤 분들은 바닥을 쳤다는 분들도 계시고, 아니다. 바닥이 온다는 분도 계신데.

저는 현재가 바닥일 수도 있고, 바닥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불확실하기 때문인데요, 2007년과 2008년에 하락을 했으니 2009년에 바닥을 찍고 올라갈 거란 의견이 힘을 얻는 것 같구요, 반대로 지금의 경제 위기가 전무후무하게 전 세계적이라서 과거와 패턴 자체가 다를 거란 전망도 만만치 않습니다.

저는 지금이 위험한 상황이라기보다는요,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봅니다. 미국 중심의 경제가 다극화되는 현상을 보일 거구요, 지구온난화와 자원 고갈에 따라 지속가능 경제가 중요하게 대두될 겁니다. 기존의 패러다임과 기존의 경제지표로 보면 바닥이냐 아니냐가 중요할지 모르지만요,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경제의 지속가능성, 환경의 질, 소득의 평등,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할 겁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경제 상황이 불확실하긴 하지만 반드시 위험하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개인이나 기업들이 투자를 생각한다면, 새로운 정치 경제 질서의 변화를 주시하는 게 중요합니다. 바닥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너무나 단기적인 마인드죠.



3. 우리 금융시장과 경제 상황의 불확실성이나 위험과 관련해, 유 대표가 가장 중시하는 변수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저는 두 가지라고 보는데요, 첫 번째는, 좀 거시적이긴 하지만, 북한의 기류 변화가 가장 큰 변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난 30일에 북한이 일방적으로 남북한 합의를 파기한다는 통보를 해왔는데요, 향후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상태, 권력 세습 과정 상의 여러 가지 불안 요소들 때문에 한반도 정세에 불확실성이 커질 겁니다.

만약 남북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으면, 특히 중국이 깊숙하게 관여할 가능성이 있구요, 그에 따라 우리나라 경제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게 될 겁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변수는, 경제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국제적인 공조가 얼마나 확고하게 유지될 건가 하는 점이 되겠습니다. 많은 국가가 공조를 여러 차례 다짐하고 있긴 하지만, 보호주의 무역의 필요성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빅3 자동차 회사에 대해서 미국 정부가 지원에 나서는 사례가 그런 것이거든요. 경제가 어려워지면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세계화를 반대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만약 그 때문에 공조가 약화되면 경제 위기의 회복이 상당히 지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4. 금융시장이 출렁거리거나 경제 지표가 악화될 때마다 불안해졌다가 다시 안도하는 상황이 거듭되고 있는데요. 이렇게 불확실성과 위험이 높은 상황에서 개인이나 기업, 정부가 대응하는 자세는 어때야 합니까?

무엇보다 미래를 예측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봅니다. 개인이나 기업, 정부도 앞으로 경제 상황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려고 무진 애를 쓰는데요, 사람들이 점집에 몰려드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해서 하나의 정확한 수치를 얻어내려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는 거죠.

여러 기관들이 경제성장률과 같은 예측치를 쏟아내는 데요, 저는 그런 예측치를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작년에 한국은행이 2008년 경제성장률을 4.7%로 예측했고, KDI도 5%로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2.5% 였거든요. 만일 그런 예측을 믿고 대비했다면, 낭패를 당할 수밖에 없었겠죠. 예를 들어 KIKO(키코) 사태도, 정부의 환율 예측을 믿어서 생긴 결과 아닙니까?

따라서 저는 예측을 통해 불확실성을 없애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불확실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그것에 대비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5%니 6%니 하는 숫자 놀음보다, 차분하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생각해보고 대응전략을 수립하는 게 먼접니다.



5. 큰 그림을 보면서 전반적인 시나리오를 갖고 있어야 된다. 유 대표께서는 그런 주장을 하고 계시고, 최근에 <시나리오 플래닝>이라는 책도 내셨는데요. 시나리오를 갖고 있으면 뭐가 도움이 됩니까?

많은 분들이 시나리오를 미래 예측 기법의 하나로 생각하시는데요, 시나리오는 예측과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예측은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2%다, 3%다, 라고 말할 때처럼 한 가지 숫자로 미래를 표현하는 것이지만요, 시나리오는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경제 상황의 여러 가지 경우를 이야기로 그려보는 것입니다.

시나리오가 도움이 되는 이유는요, 발생 가능한 여러 가지 케이스를 두루 살펴보게 해서 전략의 실패를 줄여주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예측에 기반해서 전략을 수립했다면 오직 한 가지 케이스만 가정을 했기 때문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불확실성에 대처하기가 불가능합니다.

또 하나의 장점은, 각각의 시나리오 하에서 개인의 투자계획 하고, 기업의 전략, 그리고 정부의 정책이 과연 적합한지 검토할 수 있구요, 특정 시나리오가 현실화됐을 때 당황하지 않고 미리 준비한 전략을 곧바로 실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미래는 속도가 중요한데,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면 남들보다 순발력 있게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거죠.



6. 시나리오를 통해 크게 성공을 거둔 예들이 있습니까? 기업들이나 혹은 개인, 나라 차원에서요.

가장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석유회사인 쉘을 들 수 있습니다. 이 회사는요, 원래 5위권 정도 밖에 안 되는 회사였는데, 시나리오를 잘 세워서, 단숨에 업계 2위로 뛰어 올랐습니다. OPEC가 설립되기 이전에는 산유국이 아니라, 석유회사들이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OPEC가 설립되면서 힘의 균형이 산유국 쪽으로 넘어가고, 시장 판도가 변할 거라는 시나리오를 미리 생각해 냈습니다.

70년대 초에는 석유 소비가 증가하는 추세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석유회사들은, 유전개발 투자를 무조건 늘려 갔죠. 그런데 산유국이 힘을 갖게 되면서, 유가가 급등하고 오일쇼크가 발생하는 바람에, 그 회사들은 엄청난 손실을 보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쉘은 미리 대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업계의 강자로 떠오르게 된 거죠.

우리나라 기업인 SK에너지도 좋은 사례인데요, 최근에 환율 변화 시나리오에 따라 전략적으로 잘 대응을 해서요, 경쟁사는 손해를 봤지만 이익을 더 많이 냈다고 합니다. 예측에 기반해서 전략을 실행한 게 아니라, 시나리오를 세워 놓고 그에 따라 대비했기 때문이죠.



7. 현재와 같은 불확실한 경제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는 장기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요? 개인과 기업, 정부 차원에서 구분해서 설명해주시면 어떨까요?

먼저 개인들은요, 정보를 수집하고 이해할 때 자신이 기대하는 정보만 보려는 습성에 주의해야 합니다. 어떤 회사의 주식을 갖고 있다면 그 회사가 잘 나갈 거라는 예측기사만 눈에 들어오고 그것 하고 반대되는 정보를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거든요.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서 투자 전략이나 인생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요즘 기업들이 상황이 어렵다 보니까, 시나리오 경영을 도입한다고 하는데요, 3개월이나 6개월 단위로 전략을 갱신하는 것을, 시나리오 경영이라고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나리오 경영은 장기적인 미래의 불확실성에 따라,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지, 전략을 자주 바꾸는 게 아니거든요. 시나리오 경영의 의미를 올바르게 인식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정부가 상황이 급박하다 보니까 경기를 부양시키려고 토목과 건설과 같이 단기적인 해결책에 몰두하는 것 같은데요, 토목과 건설은 결코 성장동력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볼 때 미래의 성장동력은, 바이오, 환경, 에너지가 근간이 될 겁니다. 정부는 당장 어렵더라도, 미래를 위해 그런 분야를 육성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제시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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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평등이 능사는 아니다   

2008. 12. 5. 09:21

캐롤 쉬블리는 짧은꼬리원숭이의 여러 집단에서 서열이 높은 원숭이들만을 따로 모아 집단을 구성해 인위적으로 서열을 조작한 실험을 수행했다. 의례 원숭이들끼리 치열한 서열 쟁탈전이 벌어졌는데, 예전에 높은 서열을 점하던 원숭이들은 서열 추락의 수모를 당해야 했다. 새로운 권력자가 출현하면서 서열 다툼은 일단락되었는데, 쉬블리가 관찰하고자 한 것은 서열의 재편 과정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원숭이들이 생리적으로 어떻게 변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서열이 낮아진 원숭이들을 검진했는데, 그들에게서 동맥경화증, 복부비만, 고혈압 등의 이상 증세가 퍼져 있음을 발견했다. 실험 조건을 동일하게 유지하려고 모든 원숭이에게 똑같은 먹이를 주었기 때문에 이러한 질병은 사회적 지위의 하락 때문에 발생한 것이 명백했다.

서열이 낮은 원숭이는 서열이 높은 원숭이로부터 언제 공격당할지 불안에 떨기 때문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더 많이 분비한다. 코르티솔은 일시적인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작용을 하나 과다 분비 상태가 장시간 계속되면 신경이 예민해지고 우울증에 빠지며 질병인자를 활성화시키는 부작용을 발생시킨다. 따라서 서열이 낮아진 원숭이들에게서 질병이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실험이 최고의사결정자로부터 말단 사원에 이르는 위계 체계를 보유한 기업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서열이 낮은 말단 사원일수록 스트레스가 많아서 덜 건강하다는 뜻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기업의 서열 체계는 구성원들의 공식적이거나 암묵적인 합의 하에 형성되고 누구에게나 당연시되므로 말단 사원이라고 해서 특별히 스트레스를 더 받을 일은 아니다. 게다가 자신과 처지가 같은 동기들이 있으니 위안이 된다. 쉽게 말해 ‘그러려니’한다.

이 실험의 핵심 메시지는 원래부터 서열이 낮을 때가 아니라 갑작스럽게 서열이 변동될 때 문제가 야기된다는 사실이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권력을 가진 경영자가 하루아침에 임원을 말단 사원으로 내리고, 대리를 부장으로 올리는 조치를 취하면 아마 서열이 낮아진 원숭이들의 고통을 인간들도 겪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기업의 위계 체계가 이처럼 마구 뒤섞이는 일은 없다. 그래서 기업 조직은 원숭이 사회와 다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갑작스레 서열이 뒤바뀌는 현상과 동일한 효과를 발휘하면서 기업 혁신의 도구로 찬양 받는 무언가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성과주의 제도들이다. 성과주의의 핵심논리는 동일한 직급과 연차라 할지라도 역량과 업적에 따라 연봉을 차별적으로 지급해야 성과를 창출하려는 직원들의 동기를 고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 잘하면 그만큼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기회의 평등’ 논리는 기업들로 하여금 성과주의를 무조건 수용하도록 강권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저기서 자주 발견된다. 남들보다 덜 받는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괴롭고, 더 받는 사람은 보상이 보잘것없다며 투덜댄다. 업무를 소홀히 하며 목표 달성에만 매달리고, 협조 요청을 무시하는 이기주의가 만연하는 등의 문제가 성과주의의 효과를 압도해 버린다. 그 이유는 성과주의 제도가 기존 서열 체계를 흔들어대면서 동일 직급에 동일 연차면 동일한 보상을 받았던 평등한 조직을 불평등한 상태로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이치로 가와치는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구성원 간의 신뢰가 미약하며 적대감이 강화된다고 말한다. 소득의 절대적 수준이 아무리 높아도 그 상대적인 차이가 크면 사망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성과를 높이려면 신뢰와 건강이 생명인데, 성과주의가 오히려 그것들을 파괴해 성과를 저하시킬 수도 있으니 아이러니다.

기회의 평등을 외친다고 해서 많이 받는 사람과 덜 받는 사람 사이의 불평등 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 결과의 평등을 강조하는 것만큼 기회의 평등을 무조건 추구하는 것도 큰 부작용과 해악을 야기한다. 보상의 차등폭 확대를 작금의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도깨비방망이로 여기는 기업을 종종 목격한다. 이럴 때일수록 불평등을 완화하여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위기 탈출의 진정한 해법이다.

(본 칼럼은 광주일보 2008년 12월 5일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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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2008년 3월에 동아 비즈니스 리뷰에 실렸습니다. 그 시점에서 쓰여진 글이므로 세부 상황이 현재와 조금 맞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AIG의 구제금융 요청 등과 같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07년에 발발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전세계 경제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G7 재무장관회의에서 서브프라임으로 인한 손실이 4,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시되었고, 파이낸셜 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인 볼프강 문차우는 한술 더떠 그 피해액이 1조 달러를 훨씬 상회할 거라는 비관적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여러 경제예측기관들은 나름의 근거를 토대로 각종 전망을 내리고 있지만 의견이 서로 다르거나 상충되는 부분이 많아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일으킨 전세계적 경제 위기가 향후에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정확히 예측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은 복잡한 자산 유동화 과정을 거치면서 연쇄적인 파생금융상품들과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있어서 잠재적 리스크가 매우 큰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마치 북경에서 펄럭인 나비의 날갯짓이 멕시코만에 허리케인을 일으키듯이, 서브프라임 사태에 의해 촉발된 경제 위기의 연쇄반응은 아주 미세한 변화 하나만으로 세계의 경제를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거나 반대로 별 일 없었던 듯이 모든 문제를 깨끗이 일소할 수 있는 상태다. 다시 말해, 세계의 경제는 나빠질 수도 있고 좋아질 수 있는, 상당히 ‘불확실성’이 큰 국면에 봉착해 있다.

상황이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지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 처하면 우리는 항상 정확한 예측을 시도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예측은 항상 틀리며, 그것은 언제나 진리다. 따라서 우리는 예측하려는 만용을 버리고 전략적 의사결정을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첫째, 서브프라임이 미래의 경제의 어떤 부분을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는가? 둘째, 불확실한 요소들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셋째, 그렇다면 불확실한 여러 상황에 대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만일 이 질문들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불확실성은 고스란히 리스크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한 전략적 사고 프로세스를 ‘시나리오 플래닝’이라 한다. 다시 말해, 시나리오 플래닝은 서브프라임 사태가 야기할 세계 경제의 불확실한 요인를 찾아낸 이후(첫번째 질문)에, 각 요인들이 취하게 될 미래 사건의 조합인 시나리오를 규명하고(두번째 질문), 기업이 각 시나리오별로 전략적 대안을 마련하는(세번째 질문) 일련의 과정인 것이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다음과 같이 5가지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원래는 7단계이나, 여기서는 축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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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에서는 외국에서 원자재를 들여와 가공한 다음 미국과 유럽에 내다 파는 전형적인 수출기업 A사를 가정하여 시나리오 플래닝 과정을 전개해 보려한다. 독자들은 이 칼럼을 통해 서브프라임 사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각 기업이 취해야 할 전략 대안을 결정하고 이와 동시에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을 숙지하는 기회로 활용하기 바란다.

시나리오 플래닝의 첫 번째 단계는 ‘핵심이슈’를 정의하는 일이다. 핵심이슈 파악이란, 시나리오 플래닝에 의해서 우리 회사의 어떠한 문제를 의사결정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을 말한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세계 경제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를 막연하게 그려보는 것은 경제예측가에게는 의미가 있는 행위일는지 모르지만 기업의 경영자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해 놓은 다음에 서브프라임 사태가 우리 회사의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생각하는 것이 실용적 접근이다.

여러분의 기업이 수출기업인 A사의 상황과 같다면, 서브프라임 사태 하에서 전략적으로 의사결정 해야 할 핵심이슈들이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내수시장을 벗어나 해외시장으로 커버리지를 확산해야 하는지, 기존사업을 축소하고 신규사업으로 진출하는 전략이 옳은 것인지, 혹은 경쟁사와의 전략적 제휴를 추진해야 하는지 등이 모두 만만치 않은 핵심이슈로 떠오를 수 있다. 본 칼럼에서는 수출기업에 있어 비교적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의사결정 사안인 “신규설비를 구축하여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가?”의 문제를 핵심이슈로 선정하고자 한다.

시나리오 플래닝의 두 번째 단계는 변화동인(Change Driver)을 찾는 과정이다. 변화 동인이란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가정할 수 있는 변수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원자재 가격’이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세계 경제의 불안을 가속화하는 대표적인 변화동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을 막고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미국의 FRB는 급격하게 금리 인하를 단행하고 있는데, 이는 투자자들로 하여금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에 매력을 잃어 금, 곡물, 철강 등의 실물시장으로 이탈하도록 촉진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 때문에 원자재 사재기 등의 투기 수요가 몰려들어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달러화의 약세와 바이오원료 생산의 확대도 곡물과 같은 원자재 값 급등에 한몫을 하고 있다.

반면 금융시장에 비해 투기적 성격이 강한 실물시장의 리스크가 만만치 않고 수익률 또한 매력적이지 않다면 실물시장으로의 ‘골드 러쉬’는 단지 유행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원자재 가격의 향후 추이는 시나리오를 형성하는 중요한 변화동인이 된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민간소비가 위축될 것인지, 아니면 견고하게 유지될지의 여부도 중요한 변화 동인 중 하나다. 상식적으로 금융 위기가 확산되면 소비자들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어 소비 수준의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가능성도 만만치 않다.

FRB의 금리 인하 정책으로 인한 효과, 미국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가구당 평균 1000~1500 달러 정도의 세금 환급 효과 등이 가처분소득의 하락분을 상쇄한다면, 민간소비 수준은 견고하게 유지될 거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작년 12월 말 대비 2008년 1월의 민간부문 고용이 3만 7천명에서 13만명으로 크게 증가함으로써 서브프라임 사태가 민간기업의 경제활동에 끼치는 영향이 예상보다 크지 않아 민간소비 수준이 둔화되지 않을 거란 기대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고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확률이 정확히 반반인 상태, 즉 불확실성이 큰 변화 동인을 여러 가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래의 표는 여러 경제전망기관에서 서로 반대로 내놓은 의견을 종합한 6가지 변화동인들이다.


No.

변화 동인

변화 옵션

1

미국의 금리 인하책 성공

성공

실패

2

원자재 가격 상승

안정

급등

3

중국/인도의 경제 성장

성장

둔화 또는 하락

4

중국의 긴축정책 고수

고수

폐지

5

민간소비 수준 유지

유지

둔화 또는 하락

6

민간기업의 투자수준 유지

유지 또는 확대

둔화


어느 단계보다도 변화동인을 규명하는 과정이 시나리오 플래닝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 서브프라임 사태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위주로 내놓는 기관이 있는 반면, 오히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해소가 장기적으로 세계 경제의 건전성 제고에 긍정적일 것이라는 의견도 양립해 있다. 따라서 어느 한 곳의 전망과 예측에 경도되지 않고 가능한 한 다양한 정보원(source)으로부터 정보를 탐색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변화동인 중에서 영향도가 큰 것들을 '핵심변화동인(Key Change Driver)'이라 한다. 아래의 Cross Impact 분석을 활용하면 핵심변화동인을 가려낼 수 있다. 변화동인을 가로축과 세로축에 각각 배열한 다음, 가로축의 변화동인이 세로축에 변화동인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지, 그 영향은 강화시키는 방향인지 약화시키는 방향인지를 평가하여 숫자를 기입한다. 행과 열의 ‘절대값 합’을 구해 높은 값을 얻는 것이 핵심변화동인이다. (영향도 평가 결과는 필자의 판단에 따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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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축이 세로축을  2: 매우 강화  1:강화  0:관련없음   -1:약화   -2:매우 약화)

하나만 예를 든다면, 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민간기업의 투자를 매우 위축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그 기업이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면 재료비의 상승 부담 때문에 투자확대 전략보다는 비용 절감 전략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그 영향도는 ‘-2’가 된다.

위 표에서 가장 영향도가 큰 동인은 1번과 2번이고, 의존도가 큰 동인은 6번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를 다시 아래의 매트릭스로 나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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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의 우하단에 1번과 2번이 매핑되었는데, 이 두 개의 변화동인이 바로 핵심변화동인이며 시나리오의 주축을 이루는 재료가 된다. 좌상단의 변화동인은 핵심변화동인에 의존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고, 좌하단의 변화동인인 4번과 5번은 시나리오 플래닝 과정에서 무시해도 좋다.

시나리오 플래닝의 세 번째 단계는 시나리오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시나리오의 개수는 핵심변화동인의 개수에 의해 결정된다. 만일 핵심변화동인이 4개라면, 2의 4제곱인 16개의 시나리오가 도출된다. 우리의 예시에서 핵심변화동인이 2개가 도출되었으므로 발생가능한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이 4가지가 된다.


시나리오

미국의 금리 인하책

성공한다

실패한다

원자재 가격

안정된다

scenario 1

scenario 2

급등한다

scenario 3

scenario 4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경제 위기의 양상을 단 4가지의 시나리오로 압축하는 것에 불안한 마음을 가질지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많은 시나리오는 오히려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혼동만을 가중시킨다. 미래학자들의 경험법칙(Rule of Thumb)에 의하면 효과적인 전략 실행을 위해서는 4~8개 정도의 시나리오가 적절하다고 한다.

시나리오 플래닝의 4번째 단계는 ‘시나리오 쓰기(Scenario Writing)이다. 이 부분은 시나리오 플래닝의 과정에서 습득한 여러 재료들을 가지고 일종의 소설을 써보는 단계다. 이렇게 가상의 ’드라마‘를 써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항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좀더 정교화시킬 수 있고 내부 구성원들에게 시나리오의 이미지를 명확하게 이해시킬 수 있다. 지면 관계상 이 단계의 예시는 생략하기로 한다.

이제 시나리오 플래닝의 마지막 과정으로서 대응전략을 수립해야 할 단계다. 앞에서 수출회사 A사의 핵심이슈가 ‘신규설비를 구축하여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가?’로 정해졌기 때문에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전략 대안은 바로 신규설비를 구축하는 ‘방법’에 관련된 것들이 된다. 신규설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관련된 전략대안은 여러 관점들의 조합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관점의 숫자에 따라 이론적으로는 무수히 많을 수 있으나, 전략의 초점을 명확히 하려면 A사가 전략을 취할 때 가장 중요하게 적용하는 관점이나 앞으로 중요하게 적용해야 할 관점을 추려내어 그 숫자를 줄여야 한다.

실제로 신규설비 구축의 전략대안 도출은 매우 집중적인 노력과 시간을 요하는 과정이지만, 본 예시에서는 논의를 간단히 하기 위하여, ‘구축 시점’과 ‘구축 규모’만을 고려하기로 한다. 아래는 이 두 가지 관점에 의해 전략대안을 도출한 결과이다. 신규설비를 구축하지 않는 것도 대안이기 때문에 전략대안은 모두 5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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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나리오와 각 전략대안 간의 적합성을 판단해야 한다. 먼저 아래와 같은 표를 사용하여 적합성을 평가해 보라.(평가 점수는 필자의 의견임) 이때 적합성은 시나리오별로 예상되는 리스크와 성과의 크기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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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Scenario 4(미국 금리인하책 실패 & 원자재 가격 급등) 하에서는 세계 경제가 급격하게 위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규모로 생산설비를 즉시 확충한다는 대안은 자금조달과 운용에 있어 리스크가 큰 전략 대안이며 증산의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황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기존 생산라인을 활용해 탄력적으로 증산할 것을 검토하거나, 아니면 아예 증설을 고려하지 않는 전략 대안이 가장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각 시나리오별로 가장 적합한 전략대안이 무엇인지 밝혀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현 시점에서 A사가 채택해야 할 '오직 하나의' 전략대안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각 시나리오 중 가장 일어날 법한 시나리오가 있다면 그 시나리오에 가장 적합한 전략대안을 최적대안으로 채택하면 된다. 만일 현시점에서 어떤 시나리오가 현실화될지 판단하기 어렵다면, 모든 시나리오에서 언제나 높은 적합성(3점)을 보이는 대안을 찾는다. 이런 대안을 절대우위전략이라고 부르는데, 위의 예에서는 이 조건을 만족하는 대안은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세번째 질문을 던져본다.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적합하면서 나머지 시나리오에서 평균적으로 적합도가 높은 전략대안은 무엇인가?” 우리의 예시에서는 미국의 금리인하책이 서브프라임 부실로 인한 손실 회복에 실패하고 곡물과 같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여 일명 ‘애그플레이션(Agflation)' 상황이 전개되는 Scenario 4가 최악의 시나리오다. Scenario 4에 3점을 기록한 전략대안은 대안4와 대안5인데, 나머지 시나리오에서도 동률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경영진은 이 두 개의 대안을 놓고 최종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면 된다.

만일 A사가 위험을 감수하며 높은 성과를 추구하는 조직문화를 지녔다면 “최상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적합하면서 나머지 시나리오에서 평균적으로 적합도가 높은 전략대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우리의 예시에서는 서브프라임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는 Scenario 1이 최상의 시나리오이며 이 시나리오에서 최적의 전략대안은 바로 대안1이 된다.

지금까지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을 사용하여 서브프라임 사태로 야기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도출하고 전략대안을 각 시나리오에 대응시키는 과정과 방법을 알아보았다.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급격하게 변할수록 우리는 어떻게 하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예측은 항상 틀린다. 따라서 시나리오 플래닝을 통해 미래의 불확실성에 초점에 맞추고 여러 시나리오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것이 보다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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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앞에 각각 100개의 구슬이 담긴 두 개의 항아리가 놓여 있다. 첫 번째 항아리에는 검은 구슬과 붉은 구슬이 각각 50개씩 들어있고, 두 번째 항아리는 검은 구슬과 붉은 구슬이 몇 개씩 섞여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자. 만일 검은 구슬을 뽑으면 상금을 주겠다고 어떤 사람이 제안해 온다면, 당신은 두 개의 항아리 중 어떤 것을 택하는 것이 좋을까?

대니얼 엘스버그가 수행한 이 실험에서 참가자의 대부분은 검은 구슬이 뽑힐 확률이 50%로 정해져 있는 첫 번째 항아리를 선택했다. 두 번째 항아리가 검은 구술이 붉은 구슬보다 더 많이 들어 있을 가능성을 있음에도 확률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게임에 참여하는 것을 선호했던 것이다.

이 실험은 사람들에게 불확실성이 큰 상황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불확실성은 한 사건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검은 구슬이 몇 개 들어있을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두 번째 항아리를 배제하고 확률이 확실하게 제시된 첫 번째 항아리를 택하는 이유는 인간이 진화의 오랜 기간 동안 불확실성을 배제하고 확실성을 택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함을 체득했고 그런 학습 결과가 유전자로 각인됐기 때문이다.

요즘 유가와 환율이 급등락을 반복하고, 북한이 6자회담의 합의를 깨뜨리고 영변의 핵 봉인을 해체하는 등 기업을 둘러싼 거시환경에 일대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것들이 매순간 방향타를 바꾸는 불확실성 하에 놓여 있고, 경영의 성과를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 파괴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훌륭한 경영자라면 불확실성을 타개하기 위해 환경의 예측 불가능성을 구성원들에게 인지시키고 그것을 잘 다루지 못했을 때 온전히 리스크로 다가올 수 있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조직의 변화 대열에 구성원들을 참여시키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상황이 어려워졌으니 허리끈 졸라매고 열심히 뛰어보자’라는 캠페인은 그동안 너무나 많이 써먹은 탓에 더 이상 구성원들을 감화시키지 못한다. 더군다나 조직의 가치보다 개인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시대의 흐름 때문에 강압적인 지시는 먹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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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가득 메운 변화동인들 (시나리오 플래닝 프로젝트시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불확실성을 싫어하고 확실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활용해 보는 방법은 어떨까? 어떤 대학에서 B형 간염이 유행했을 때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검진을 실시했다. 연구자들은 검진을 받고 나온 학생들에게 B형 간염의 증상이 어떤지 설명해 주었는데, a그룹의 학생들에게는 간이 충혈되고 신경체계가 왜곡된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설명한 반면, b그룹에게는 근육통, 무기력, 악성 두통처럼 쉽게 증상을 상상할 수 있는 말로 이야기해 주었다.

3주 후에 연구자들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간염에 걸렸을 확률이 어느 정도 되는지 질문하자, 머리 속에 증상이 쉽게 그려지는 설명을 들었던 b그룹의 학생들이 간염에 걸렸을 확률을 높게 추정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실험은 위기를 확실하게 머리 속으로 그려볼 수 있을 때 행동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일깨운다. 구성원들을 변화로 이끌려면 중후장대한 목표와 전략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변화를 발화시키는 힘은 9.11 테러 같은 위기가 닥칠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이면서 생생한 이야기로부터 나온다.

불확실성이 커가는 요즘, 기업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시나리오 플래닝’ 은 전략기법이라기보다 변화에 불을 댕기고 변화 과정을 관리하는 도구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 먹구름 속에 감춰진 미래를 펼쳐 보이고 미래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줌으로써 구성원들로 하여금 변화의 필요성을 자각시키고 대응을 위해 조직의 역량을 결집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위기 대응을 위해 조직 전체의 일사불란한 대응을 주문하고 싶다면, 위에서 아래로 찍어 누르는 전통적 방식의 조직관리는 곤란하다. 미래의 위험과 기회가 확실하게 머리 속에 그려지도록 만듦으로써 변화가 아래에서 위로 번지도록 유도할 때 성장의 엔진이 활활 타오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참고 논문)
Imagining Can Heighten or Lower the Perceived Likelihood of Contracting a Disease


(본 칼럼은 광주일보 2008년 9월 12일자로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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