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에 나는 ‘경영유감’이라는 책을 냈다. 경영기법의 본질을 망각하여 혁신을 위한 혁신에만 몰두하지 말고, 경영의 기본을 다시금 되돌아 보자라는 취지로 썼다. 책 제목을 다소 도발적으로 지은 탓인지 몇몇 방송사에서 책 소개를 부탁한다며 출연을 요청받았다.

작가들이 사전에 건네주는 질문들은 거의 비슷했다. 책을 쓴 동기와 무엇에 유감이 있기에 제목이 ‘경영유감’이냐는 질문은 항상 들어 있었다. 그리고 ‘경영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라는 카피문 때문이었는지 도대체 경영의 기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도 매번 받았다. 경영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취지는 알겠는데, 경영의 기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떻게 말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나는 이 질문에 곤혹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책 소개글에 경영의 기본으로 돌아갈 것을 호기롭게 주장했던, 명색이 저자라는 사람이 경영의 기본을 한마디로 표현해 달라는 질문에 말문이 막혀 버렸으니, 스스로가 민망했다.

책의 각 장을 보면 경쟁, 미래, 조직, 사람이라는 주요 경영요소별로 경영자가 지켜야 할 기본사항들을 요약해 놓았다. 그러나 그것들을 아울러서 한마디의 문장으로 나타내지 못한 것이 실책이었다. 방송 진행자나 독자들이 머리를 갸웃거릴 만하다. 경영의 기본이란 무엇일까, 나는 한동안 꼼짝없이 고민에 빠져 버렸다.

숱한 명제들이 머리 속을 어지럽히고 있을 때, 서가에 꽂혀있는 최인호의 소설 ‘상도(商道)’가 눈에 들어왔다. 알다시피 ‘상도’는 거상(巨商) 임상옥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서 드라마로도 방영된 적이 있다.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자주 나오던 대사가 무엇인지 알 것이다. 바로 ‘돈을 남기는 게 장사가 아니다. 사람을 남기는 게 장사다.’ 란 말이다. 어찌 보면 굉장히 순진하면서도 뜬구름 잡는 말인 것 같지만, 순간 나는 그 말이야 말로 경영의 기본을 한마디로 정의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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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연합뉴스


‘사람을 남긴다’는 말을 곱씹어 보면 시대를 앞서 간 자의 혜안이 느껴진다. 첫째 눈앞에 보이는 이윤에 급급하지 않고 장기적인 비전에 집중하는 것이 경영의 기본임을 알려준다. 매일 매일의 주가 등락에 돈을 거는 데이트레이더가 워렌 버핏 같은 투자의 귀재는커녕 결국 ‘개미’로 남을 수밖에 없듯이, 비전조차 없이 되는대로 눈앞의 이득을 좇는 유행을 경계하란 뜻이다.

소위 ‘먹튀’ 작전을 구사하고자 하는 기업이 아니라면, 단기적 영리에 온갖 역량을 쏟는 것은 기업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다. 가끔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어디 좋은 사업 아이템 하나 없냐? 한탕 크게 해서 회사 매각하면 정말이지 대박일 텐데 말이야.’ 그만 꿈 깨시라. 운이 좋아 한탕 크게 벌지도 모른다. 그러나 곧 망할 것이다. 한탕의 유혹에 쉽게 빠지기 때문이다. 고객이 바보가 아닌 이상, 철저히 외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적어도 남을 속여 돈을 벌지 말라는 윤리경영의 핵심을 ‘상도’는 이야기한다. ‘경영유감’에서 나는 동의도 없이 부가서비스 요금을 부과한 모 통신사를 비판했다. 겉으로는 윤리경영을 내세우면서도, 고객이 속아 넘어가 줄 것을 기대하는 마케팅 전술과 ‘싫으면 사지 말라’며 당당하기까지 한 오만불손한 태도는 이미 여러 기업들의 비뚤어진 표상이다.

나는 거대한 독과점 기업들이 점점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부(富)의 양극화 현상처럼 기업의 양극화도 ‘경쟁의 효율화’라는 탈을 쓰고 심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자동차, 가전, 건설, 방송 등 여러 산업영역에서 독과점이 완성되었거나 진행 중이다. 알다시피 독과점의 가장 큰 폐해는 기업의 전횡이다. 모 자동차업체의 경우, 노사분규로 인한 영업손실을 자동차 가격의 5% 인상과 협력업체로부터 공급 받는 부품가격의 4% 인하로 충당하려는 방침을 버젓이 드러내놓고 있으니 말이다. 정말이지 소비자를 봉으로 아는 처사다.

셋째, 좋은 인재들이 경영의 핵심이라는 뜻을 '상도'는 시사한다. 이는 위대한 경영자 잭 웰치의 ‘인재에 집중하라’는 경영철학과 기저를 같이 한다. CEO 인터뷰 기사에 큰따옴표로 인용돼 매번 나오는 문구는 인재관리가 핵심이라는 말이다. 인재관리에 힘을 쏟는 CEO만 인터뷰에 모시는 것일까? 그러나 진정으로 인재관리를 최대 관심사로 여겨 실천에 옮기는 CEO는 미안한 말이지만 극히 적다.

생산 및 판매실적이 어떤지 월단위, 주단위로 회의를 열어 점검하는 CEO는 많아도, 인재를 직접 관리하겠다고 그 깨끗한 손에 땀을 내는 CEO는 별로 찾아볼 수가 없다. 인재관리는 인사팀의 몫이라며 인사팀장을 닦달한다. 닦달하는 것을 가지고 대외적으로는 인재관리가 최대관심사라며 목을 세우는 것이다.

방송진행자의 질문 때문에 경영의 기본이란 무엇인지 한참 고민했다. 그 결과로 ‘사람을 남기는 게 장사다.’ 라는 정의(定義), 영원히 가치가 변하지 않을 경영의 정의(正意)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말을 벽에 붙여 놓고 경영의 기본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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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큰 공원 앞에 있다. 녹음이 우거진 그 공원의 광장에서는 크고 작은 행사가 많이 개최되곤 한다. 특히 여름이나 가을이면 가수들을 초청해서 흥을 돋우는 이벤트가 종종 열려서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좋아하는 가수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린다. 그것도 무료로 말이다.

집이 바로 공원 맞은 편에 있는 까닭에 창문을 열어 놓으면 가수들의 열창을 가깝게 들을 수 있어서 내 방이 바로 콘서트장으로 변하기도 한다. 가끔 소음에 가까운 노래가 꽝꽝거리면 조용히 쉬고 싶은 마음을 방해 받아서 고역이긴 하지만, 이 집으로 이사 와서 얻게 된 새로운 즐거움이라 생각하면 이런 혜택이 고맙게 느껴진다.

작년 가을에 구청에서는 백제문화제라는 행사를 공원에서 대대적으로 벌였다. 한성 백제의 역사와 풍습,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을 비롯한 역대 왕들의 치적 등에 관한 다채로운 이벤트가 공원 곳곳에서 펼쳐졌다. 새로 구민(區民)의 자격을 얻은 나는 가족들과 함께 축제를 함께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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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네이버


2박 3일 동안 열린 백제문화제에 초대된 가수는 요즘 '기부하는 가수'로 인기를 얻고 있는 김장훈이었다. 그가 왔다는 사회자의 방송을 듣자마자 평소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 나는 가족들을 떼어 놓은 채 무대로 달려갔다. 비록 먼 발치였지만 나는 그를 향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대며 그의 공연을 즐겼다.

그는 흥을 돋우기 위해 무대와 객석을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니며 전매 특허인 발차기의 묘기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 행사에 나온 가수들이 으레 그렇듯이 김장훈 역시 노래 한 두 곡 정도 부르면 가겠지 싶었는데, 놀랍게도 앵콜을 포함해서 1시간 반 동안 9곡이나 열창을 했다. 그 정도면 거의 콘서트 수준이었다.

공연 중간에 그는 "출연료도 별로 못 받았는데 이렇게 오래 놀아주고 가는 가수는 나 밖에 없을 거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도 저를 보려고 모이신 여러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을 보니 얼굴만 예쁘고 젠체하는 여느 가수들과는 달리 자기철학이 확고하고 생각이 순수한 가수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좀 불만스러웠던 점이 있었다. 내가 CD에서 듣던 대로 부르는 게 아니라 즉석에서 '편곡'해 부르는 것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도레미' 해야 할 부분이라면 '도파미'로 바꿔 부르는 식이었다. 특히 고음 영역일 때 그런 경우가 많았다. 무대에서 객석까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노래를 부르다 보니 숨이 차고 고음이 안 나와서 그렇다고 이해해 줄 만도 했지만, 너무 자주 편곡된 멜로디를 듣고 있자니 처음에 가졌던 반가움이 반쯤 가시는 느낌이었다.

문화제의 마지막 날 밤은 유명가수인 김건모가 장식했다. 갑작스레 내린 비 때문에 공원에는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창문을 좀 열어 놓고서 그의 노래를 들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높은 도'를 내야 할 부분을 '낮은 도'로 대체하고 가사도 코맹맹이 소리처럼 대충 부르고 넘어가곤 했다. 특히 그는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마이크를 청중으로 향하는 동작을 여러 번 반복했는데, 노래가 중간중간 끊기니 짜증스러웠다. 한 두 번이라면 관객과 함께 노래를 즐기기 위해서 그렇겠거니 이해해 줄 수도 있겠지만, 지나치게 반복되는 '마이크 넘기기' 때문에 흥이 깨진 나는 창문을 닫아 버리고 어서 빨리 그의 노래가 끝나기를 빌고 말았다.

김장훈과 김건모는 많은 히트곡을 가진 인기가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노래를 알고 있으며 공연을 볼 때 따라 부르며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기가수일수록 정확히 악보대로 부르는 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고 관객들에게 최대의 예의를 지키는 길이 아닐까? 만일 가수가 청중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멜로디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면 청중들은 순간 당황하게 된다. 열심히 '도레미'로 따라 부르는데 가수는 '도파미'로 부르거나 클라이막스가 나와야 할 부분에서 마이크를 객석으로 돌린다면 관객들은 따라 부르던 자신이 무안해진다.

최선 = 기본 / 기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 경력이 쌓일수록 기교가 늘어가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절대로 기교가 기본을 능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교가 기본을 뛰어 넘는다면 그가 아무리 열정적으로 노래를 하고 관객들을 즐겁게 해 준다고 해도 최선을 다했다 말하기 어렵다. 발차기와 오버액션의 기교 때문에 자신의 멜로디가 함몰되어서는 안된다. 기교가 늘수록 자신이 기본에서 멀어졌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자주 한다. 초심은 기본을 지킴으로써 회복된다. 열심히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늘 제자리에서 맴돈다는 느낌이 든다면 당신은 기본을 멀리하고 기교라는 달콤함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일이 영 풀리지 않는다면 당신은 진정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기본보다는 기교에만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끊임없이 들붙는 기교라는 거머리를 떼어내고 매 순간 기본을 일깨움으로써 최선에 이르는 자만이 자기 완성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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