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를 승진시키지 마라   

2012. 9. 17. 11:37


자기 자랑이 심하고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 믿으며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토론 그룹의 일원으로 끼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의 리더십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여러분은 아마도 그를 리더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평가하겠다고 말할 겁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믿는 자, 뭔가 잘못되면 자신은 뛰어난데 주변 상황이 자신을 도와주지 못한다며 불평을 늘어 놓는 자, 즉 '나르시시스트(Narcissist)'에게는 리더의 지위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겠죠.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르시시스트들은 사람들로부터 리더의 소양을 갖춘 자로 인정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나르시시스트를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동료들이 아니라 지근거리 너머에 위치한 나르시시스트의 상사에게 리더십이 뛰어나다고 평가 받기 쉽습니다. 오하이오 주립대의 에이미 브루넬(Amy B. Brunell)과 동료 연구자들이 수행한 일련의 실험은 이를 뒷받침합니다. 





브루넬은 효용이 이미 증명된 설문지를 통해 실험 참가자들의 나르시시즘 성향, 5대 성격 특성, 자존감을 측정한 후에 무작위로 4명씩 그룹을 이루게 했습니다. 각 그룹에게는 학생회의 프로그램 디렉터에 지원한 후보자의 가상 프로필을 읽고서 후보자의 리더십과 능력 등을 평가하는 위원회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물론 멤버들은 토론을 통해서 그룹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야 했죠. 토론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의 리더십을 평가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얼마나 그룹의 리더가 되기를 희망하는지도 적어야 했죠. 분석 결과, 참가자들의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을수록 그룹의 리더가 되길 원하는 정도가 높았고 자신의 리더십도 높이 평가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은 참가자가 다른 멤버로부터 높은 리더십 평가 점수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실험은 나르시시스트가 리더로 인정 받거나 선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학생회 디렉터를 평가하는 일처럼 확실한 '정답'이 없는 문제를 토론 주제로 주었기에 나르시시즘과 리더십 점수 사이에 연관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을지 모릅니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브루넬은 난파선이 어느 섬에 가까스로 당도한 상황을 이야기해주고 난파선에서 구할 수 있는 15개의 물건을 생존에 필요한 순서에 따라 배열하는 과제를 참가자들에게 부여했습니다.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로 4명씩 구성된 그룹 멤버들은 토론을 통해 그룹의 의견을 결정해야 했고, 토론이 끝난 후에 자신과 다른 멤버의 리더십을 평가해야 했습니다. 결과는 동일했습니다.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을수록 다른 멤버로부터 리더십 평가를 높게 받았죠. 하지만 나르시시즘 성향은 개인과 그룹의 성적(15개 물건을 옳게 배열하는)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습니다. '잘났다'고 자랑하는 나르시시스트들이 실상은 그렇게 잘나지 않았다는 하나의 증거였죠.


브루넬은 MBA 과정에 다니는 153명의 관리자를 대상으로 비슷한 실험을 수행함으로써 결과를 다시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무작위로 4명씩 구성된 각 그룹은 가상의 기업이 기부한 자금을 가지고 예산을 정해야 하는 학교 이사회의 역할을 맡아 자기 그룹의 의견을 최종 결정해야 했습니다. 앞의 두 실험과 다른 점은 보다 객관적인 측정을 위해 2명의 훈련된 평가자가 멤버들의 리더십을 평가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분석 결과, 훈련 받은 전문 평가자가 측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은 자가 역시 높은 리더십 점수를 받았습니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어떻게 하여 다른 이들로부터(심지어 전문 평가자로부터) 리더로 인정 받는 걸까요? 아마도 그들은 토론이 시작되자마자 자신의 의견을 남들보다 자주 개진하고 다른 멤버들에게 강요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일 겁니다. 여기에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나르시시스트의 태도가 다른 멤버들에게는 자신감으로 인식되어 보다 쉽게 영향 받고 보다 쉽게 설득되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이유가 분명치는 않지만 어쨌든 나르시시스트들은 리더로 인정 받을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입니다.


물론 브루넬의 실험은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짧은 시간 동안 느낀 리더십을 평가토록 한 것이기에 멤버들이 오랫동안 같이 일할 경우에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나르시시스트의 실체가 무엇인지 깨달은 동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를 리더로 인정하지 않으려 않겠죠. 하지만 그렇게 동료들에 의해 빨리 탈락되는 나르시시스트들은 그저 '왕자병', '공주병' 환자에 불과합니다. 진짜로 영악한 나르시시스트들은 높은 위치에 오르기 전까지 자신의 발톱을 숨기며 남들에게 성실한 모습을 보인다고 합니다. 특히 상사에게는 더욱 그러하죠. 여기에 사람을 잘 다루며 설득력 있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사회적 스킬을 가미하면 나르시시스트가 리더로 인정 받고 선발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집니다. 리더로 선발할 권한은 대개 나르시시스트의 상사(혹은 경영자)가 쥐고 있기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관점(동료들의 관점이 아니라)에서는 나르시시스트를 비(非)나르시시스트보다 '좋은 리더'로 여길 가능성도 높습니다.


좋은 리더를 뽑기 위해 평가 센터(Assessment Center)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방법도 나르시시스트를 걸러내지 못한다는 것을 브루넬의 세 번째 실험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전문적으로 훈련 받은 평가자도 나르시시스트의 리더십을 높게 평가했으니 말입니다. 오히려 평가 센터가 나르시시스트의 승진을 돕고 있을지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나르시시스트들을 승진의 사다리에서 내려오게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발톱을 철저히 감춘 나르시시스트를 밝혀내기란 상당히 어렵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은 직원들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폭넓게 들어보는 것 뿐입니다. 


그간 이 블로그에서 나르시시스트에 관해 언급한 글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성과를 우선하기에 조직 성과를 방해하고, 창의적이지 않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강요함으로써 조직의 창의성을 저해하며, 지나치게 과감한 결정을 내려서 조직을 위험에 빠뜨리고, 급기야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비리를 저지르고도 응당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로 착각하기도 하죠. 나르시시스트가 조직의 리더로 잘못 인정 받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일 또한 건강한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방법임을 항상 기억해야겠습니다.



(*참고논문)

Amy B. Brunell, William A. Gentry, W. Keith Campbell, Brian J. Hoffman, Karl W. Kuhnert, Kenneth G. DeMarree(2008), Leader Emergence: The Case of the Narcissistic Leader,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Vol. 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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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또라이'와 화이트 칼라 범죄   

2012. 4. 12. 11:09


'화이트 칼라 범죄(White collar criminal)'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권한을 이용하여 행하는 범죄를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흔히 말하는 배임이나 횡령, 탈세, 문서 위조, 뇌물 수수, 회계 장부 조작 등이 화이트 칼라 범죄의 대표적인 예이죠. 유럽의 경우, 대기업의 거의 절반 가까이가 화이트 칼라 범죄로 피해를 본다고 합니다. 화이트 칼라 범죄는 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입히는 중대한 범죄 행위임이 분명하지만(그리고 누구나 그렇게 말은 하지만), 살인이나 강도와 같은 범죄보다 간접적이고 겉으로 보이는 폭력성의 정도가 약하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그 범죄의 심각성을 덜 느끼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는 법 적용 차원에서나 사회적 인식 차원에서나 화이트 칼라 범죄를 특히 관대하게 여깁니다.

더 큰 문제는 화이트 칼라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도 죄책감을 덜 느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권력으로 응당 누려야 할 권리라고 여기는 데에 있습니다. 엔론을 망가뜨린 제프리 스킬링이 의회 청문회에 나와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질문에 거만하게 대답하고 도도하게 굴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도산 직전까지 갔다가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으로 겨우 살아난 금융회사들이 성과급 잔치를 벌였죠. 전혀 도덕적이지 않은 기업의 총수가 사람들을 향해 정직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당당히 훈계하는 모습은 우리를 참담한 마음으로 이끕니다.



허나 높은 위치에 올라 막강한 권력을 소유했다고 해서 모두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건강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여기저기에서 손을 뻗치는 유혹의 손길을 견뎌낼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이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큰 걸까요? 물론 범죄를 일으키는 요인은 범죄자 자체의 성격적 특성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적 구조적 상황 속에서 터져나올 수 있겠죠. 하지만 기업에서 벌어지는 화이트 칼라 범죄의 환경적인 구조는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지위가 있고 그에 따른 권력이 있으며 '돈'이나 권력욕 자체가 범죄의 최종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독일 본 대학의 게르하르트 블릭클레(Gerhard Blickle) 등은 이러한 가정 하에 화이트 칼라 범죄자의 성격적 특성을 연구한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연구자들은 심각한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질러 수감 중인 76명의 죄수를 샘플로 삼았습니다. 그 죄수들이 수감 직전의 연봉 평균은 66,169 유로였고, 그들이 피해를 입힌 금액을 평균 내보니 약 190만 유로(약 24억 원)에 달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범죄자 그룹과의 비교를 위해 범죄자들과 비슷한 지위에 있는 150명의 관리자를 따로 선정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두 그룹을 대상으로 자기통제력, 쾌락주의 성향, 성실성, 나르시시즘 성향 등 4가지 특성을 측정하여 그 특성과 화이트 칼라 범죄와의 연관성을 통계적으로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리더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여성일 때보다는 남성일 때 화이트 칼라 범죄를 범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쾌락주의 성향이 높을수록,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을수록, 자기통제력이 낮을수록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았습니다.  

특이한 것은 성실성 점수가 높을수록 화이트 칼라 범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결과는 성실성이 높으면 도덕에 저촉되는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낮다는 기존의 연구와 반대되는 것이었죠. 연구자들은 화이트 칼라 범죄자들이 그 지위에 오르기 위해 평균 이상의 성실성이 필요하고,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지르는 데 필요한 기술적인 능력이 성실성을 바탕으로 갖춰지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성실성은 높을지라도 진실성(integrity)이 결여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 연구를 요약하면 욕구를 통제하지 못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나르시스트들이 권력을 잡으면 화이트 칼라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나르시스트들이 드러내 보이는 성실성은 진실함이 부족한, 어디까지나 수단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나르시스트들이 모두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지만, 배임과 횡령, 장부 조작, 탈세 등을 거리낌없이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자들은 자신이 그렇게 해도 될 만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나르시스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 번 글에서 봤듯이 나르시스트인 리더는 성과를 떨어뜨림으로써 조직에 손실을 입히기도 하지만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질러서 재무적인 차원에서 회사의 이미지 차원에서 큰 피햬를 가져올지 모릅니다. 게다가 그들의 범죄가 범죄로 인식되지 않는다면 구성원들 사이에서 '나도 그렇게 해도 되겠지', '왜 나만 가지고 그래?'란 도덕적 해이가 독버섯처럼 자라나겠죠.

회사의 윤리적 기강은 나르시스트들에 의해 허약해질 수 있습니다. 

 
(*참고 논문)
Some Personality Correlates of Business White-Collar Crime

(*추신) 이 블로그에서 언급한 '나르시스트 리더'는 그저 잘난 척 하는 리더가 아니라, 로버트 서튼 교수가 '또라이(asshole)'라고 부르는 리더와 맥을 같이 합니다. 로버트 서튼 교수의 '또라이 제로 조직'이란 책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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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스트가 우리 회사의 가장 높은 지위인 CEO에 오른다면 회사 성과는 어떤 영향을 받을까요? 시쳇말로 '자뻑'인 사람이 조직의 리더가 된다면 회사가 좋아질까요, 아니면 나빠질까요? 몇몇 연구 결과들은 나르시스트들이 공상가적인 기질이 있기 때문에 조직의 혁신가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그에 따라 회사 성과도 좋아질 거라 암시합니다. 하지만 나르시스트들이 누구보다 아이디어가 뛰어나고 능력이 출중한 인물이라 스스로를 가리켜 평가한다면, 그리고 성공적으로 조직을 이끈 소수의 나르시스트적 리더(예 : 스티브 잡스)를 보며 나르시스트적 성향이 성공의 핵심요소 중 하나라는 믿음이 든다면,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데이터를 통해 그들이 조직 내 최상의 위치인 CEO 지위에 오른 후의 재무적 성과를 실제로 따져보는 일이 의미가 있을 겁니다.


펜실베니아 대학의 애리지트 채터지(Arijit Chatterjee)와 도널드 햄브리크(Donald C. Hambrick)는 이런 의문을 가지고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업계에 종사하는 111명의 CEO(105개 업체)를 연구 대상으로 삼은 다음 그들이 이끄는 회사의 성과 데이터를 폭넓게 수집했습니다. 나르시스트적 성향의 수준을 측정하는 직접적인 방법이 있지만(통상 NPI라는 설문법이 많이 쓰임), CEO들을 일일이 만나 설문을 수행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탓에 그들은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먼저 그들은 매년 발행되는 연례 보고서(annual report)에서 CEO의 사진의 얼마나 크게 나왔는지, 해당 회사에 대한 언론 기사에서 CEO의 이름이 얼마나 많이 언급되는지를 일일이 측정하여 점수를 매겼습니다.



또한 CEO가 행하는 연설에서 '나'라는 1인칭 대명사를 '우리'라는 대명사에 비해 얼마나 많이 하는지를 헤아렸습니다. 자기자신에 몰입하는 성향이 나르시시즘의 특징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죠. 채터지와 햄브리크는 조직 내에서 금전적, 비금전적 보상을 두 번째로 많이 받는 사람에 비해 얼마나 많은 보상을 받는지도 측정하여 나르시스트적 성향을 측정하기 위한 하나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나르시스트는 스스로를 '존귀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그 결과가 2인자와의 보상 차이로 나타난다는 것이 다른 연구에 의해 증명됐기에 이 지표는 CEO의 나르시스트적 성향을 측정하기에 적당하리라 판단됐죠. 이런 간접적인 지표는 별도로 진행된 테스트를 통해 나르시스트적 성향을 측정하는 데에 적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체터지와 햄브리크는 CEO가 이끄는 회사의 광고비 비율, 연구개발비 비율, 판관비 비율, 부채 비율을 가지고 '전력적 활력'을 측정했습니다. 또한 각 회사가 얼마나 많이 다른 기업을 인수했는지, 그 인수 규모는 얼마나 컸는지에 관한 데이터를 수립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총주주수익(Total Shareholder Return)과 자산수익률(Return on Asset)를 측정하여 매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도 살펴봤죠.

CEO의 나르시스트적 성향과 회사의 성과 지표를 대비하여 분석해 보니 흥미로운 결과가 도출됐습니다. 먼저 CEO가 나르시스트일수록 겉으로 보이는 전략적 활력이 상대적으로 컸습니다. 또한 나르시스트적 CEO들은 남들보다 기업 인수에 적극적이고 그 규모도 크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나르시스트가 남들에게 과시하고 떠벌리는 성향이 크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당연한 결과죠. 하지만 여기까지는 나르시스트적 CEO가 특별히 문제가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나르시스트적 CEO가 총주주수익과 자산수익률 측면에서 매우 높은 수준을 달성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동시에 매우 낮은 값을 기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자산수익률의 연도별 변화를 살펴보면 그 변동폭이 컸습니다. 성과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들쭉날쭉한다는 의미입니다. 크게 얻기도 하지만 크게 잃기도 했단 말이죠. 나르시스트가 CEO에 오르면 경영의 부침이 심할 것이라는 예측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입니다. 몇몇 기업의 경우 언론이 앞다투어 그 회사의 특출한 성과를 칭송하자마자 곧바로 고꾸라져서 투자자들을 실망시키고 다시 언론으로부터 맹공을 받는 사례가 드물지 않습니다. 그런 회사들의 영락은 어쩌면 CEO의 나르시스트적 성향과 관련이 있을지 모릅니다.

헌데 나르시스트적 CEO가 이끄는 회사가 다른 기업에 비해 비록 부침이 심하지만 기본적으로 성과가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체터지와 햄브리크는 심화된 분석을 통해 CEO의 나르시스적 성향과 회사 성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점을 알아냈습니다. 이 결과는 CEO의 나르시스트적 성향이 성과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적어도 나르시스트를 조직의 리더로 올린다고 해서 좋을 것은 없다는 뜻이죠. 나르시스트는 스스로 자신이 리더가 되어야 회사가 좋아진다고 주장하겠지만 말입니다. 

채터지와 햄브리크는 자신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은 컴퓨터 하드웨어와 스프트웨어 산업이기에 다른 산업에 이런 결과를 다른 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마코비(M. Maccoby)가 나르시시즘이 다이나믹하게 변화하는 산업에 종사하는 경영자들에게는 가치 있는 특성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는 점을 인용하면서, 만일 안정적인 산업이라 한다면 나르시시즘이 회사 성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추론합니다. 나르시시즘이 중요한 특성으로 인정 받는 산업에서조차 나르시시즘과 회사 성과 사이에 체계적인 상관관계가 없다면, 다른 사업에서는 둘 간의 부정적인 관계가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겠죠. 물론 추후 연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문제이지만, 적어도 나르시스트 성향이 높은 리더들은 그들 스스로의 주장과는 달리 회사 성과에 '체계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경영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만은 수용해야 할 겁니다.

앞서 올린 글에서 살펴봤듯이 나르시스트적 리더는 정보 흐름을 막고 자신의 창의적일 것 없는 아이디어를 창의적이라고 강요함으로써 조직의 성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채터지와 햄브리크의 실험으로 짐작하건대, 나르시스트적 리더는 성과 창출의 체계적인 구조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기보다는 과시욕과 명예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 때문에 조직의 성과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어쩌다 특출한 성과를 기록했다고 해서 그들의 경영능력을 칭송하고 그들을 본받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겠죠. 엔론을 망가뜨린 케네스 레이와 제프리 스킬링이 한때 위대한 경영자로 칭송을 받았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말입니다.

과감한 의사결정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과감한 의사결정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과감한 결정이 나르시스트에게서 나왔다면, 그 과감한의 기저가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조직에서 나르시스트는 누구이며 그들의 결정은 지금까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한번 돌아보기 바랍니다. 


(*참고 논문)
It’s All About Me: Narcissistic CEOs and Their Effects on Company Strategy and Perfor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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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 블로그를 통해 나르시스트적인 리더는 조직의 정보 흐름을 막고 독창적이지 않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성원들에게 수용토록 함으로써 조직 성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이번엔 나르시스트들의 도덕성에 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학자들이 정의하기를, 나르시스트는 권력을 추구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자신을 과시하려 들고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나르시스트의 특징들은 부정(dishonesty)을 저지르려는 동기와 어떤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르시스트적인 성향이 강할수록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부정한 방법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을지 모른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오클라호마 대학의 라이언 브라운(Ryan P. Brown) 등은 비록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수행하긴 했지만, 이런 가설이 옳음을 밝혔습니다. 브라운은 심리학 강의를 수강하는 93명의 학생들에게 연구의 목적이 수학 방정식으로 인지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라고 둘러댔습니다. 학생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10개씩 두 세트로 이뤄진 문제를 풀어야 했는데 정답을 말할 때까지 문제 풀기를 반복해야 했죠. 브라운은 경쟁심을 유발하기 위해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한 학생들에게 30달러의 상금을 주겠노라고 알렸습니다.



헌데 이 프로그램에는 연구자들에 의해 의도된 '버그'가 있었습니다. 바로 모니터 상에 정답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었죠. 브라운은 이런 버그가 다른 연구에서 쓰던 프로그램을 가져다 쓰는 바람에 어쩔 수 없다고 학생들에게 거짓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제시된 후에 10초 안에 스페이스바를 누르면 답을 쓸 수 있는 칸이 바로 나타나기 때문에 정답이 화면에 나오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고 자세히 일러줬습니다. 브라운은 학생들이 스페이스바를 누를 수 있는 10초라는 긴 시간 동안 정답을 보고자 하는 욕구를 억누르고 정직하게 문제를 푸는지를 보려한 것이었죠.

10개의 문제를 다 풀고 나서 브라운은 학생들에게 또다른 10개의 문제를 제시하면서 이번엔 스페이스바를 1초 안에 눌러야 정답이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제가 나오자마자 순발력 있게 스페이스바를 눌러야 했던 거죠. '10초 조건'과 '1초 조건' 중 어떤 조건 하에서 학생들은 스페이스바를 누르지 않는 부정행위를 더 많이 저지를까요? 당연하게도 1초 조건에서 스페이스바를 누르는 경우가 적었습니다. 이는 부정행위를 하려고 했다기보다는 스페이스바를 누를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0초 조건에서 스페이스바를 누르지 않은 것은 고의적인 부정행위라고 간주할 수 있겠죠.

학생들은 이 실험에 참여하기 3주 전에 나르시스트적 성향이 얼마나 되는지 이미 측정 받았습니다. 나르시스트적 성향 중 대표적인 것은 '떠벌리기'와 '명예욕(entitlement)'인데, 이 중 학생들의 명예욕과 고의적인 부정행위 사이에 유의미한 관련이 있음이 나타났습니다. 나르시스트들은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정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나르시스트들은 이런 부정행위를 계획하거나 고의적으로 저지를 때 죄책감을 느끼긴 할까요? 만일 나르시스트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해서 그렇게 부정행위를 감행하는 것이라면 과연 남들이 저지르는 부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런 의문에 답을 하기 위해 이번엔 에이미 브루넬(Amy B. Brunell) 등이 연구에 나섰습니다. 브루넬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시험을 보면서 부정행위를 저지를 때 어느 정도의 죄책감을 느낄 것 같은지를 물었습니다. 어려운 시험을 치를 때, 친구가 강의노트를 빌려주기를 거부할 때, 친구가 '컨닝을 하자고' 부추길 때 등 다양한 상황을 상정하며 답하도록 했죠. 또한 학생들은 최근에 자신이 몇 번이나 부정행위를 저질렀으며, 앞으로 30일 동안  한 번 이상의 부정행위를 저지를 것 같은지도 응답해야 했습니다. 

분석 결과, 나르시시즘은 부정행위와 연관이 있었습니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니 나르시스트의 성향 중 과시욕과 권력욕이 부정행위와 관련이 있었고, 특히 과시욕이 클수록 자기 자신의 부정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덜 느끼는, 자신을 관대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또한 과시욕이 큰 나르시스트일수록 부정행위를 더 많이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과시욕이 큰 사람은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 부정행위를 고의적으로 저지르고 또한 자신을 합리화함으로써 죄책감을 덜 느낀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브루넬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동일한 질문들을 학생들에게 던졌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과시욕의 정도는 부정행위의 빈도와 관련이 없었고 죄책감과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나르시스트들은 나르시스트가 아닌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는 동일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로써 나르시스트들이 고의적으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도덕적 기준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부도덕적인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덜 느끼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나르시스트들은 부정을 저지르고도 자신이 잘못한 줄 잘 알지 못합니다. 나르시스트가 리더이든 아니면 팔로워(부하직원)이든, 권력욕과 과시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죄책감을 덜 느끼면서 부정행위를 더 많이 저지른다는 것, 그 부정이 크건 작건 조직의 성과와 건강한 문화에 나쁜 영향을 미칠 거라는 것을 위의 두 연구를 통해 헤아릴 수 있습니다. 비록 합법적이라 해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그들을 누르고 올라서려 하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비도덕적인 행위는 나르시스트를 둘러싼 사람들의 사기를 꺾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자신을 과장해 내보이는 나르시스트 특유의 능력으로 인해 내막을 잘 알지 못하는 의사결정자에 의해 나르시스트가 리더로 발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나르시스트가 장악한 조직의 의사결정 성향은 어떨까요? 나르시스트가 조직의 중요한 위치에 올랐을 때, 그가 내리는 결정은 과연 얼마나 합리적일까요? 이 주제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루겠습니다.


(*참고논문)
On the Meaning andMeasure of Narcissism
Narcissism and academic dishonesty: The exhibitionism dimension and the lack of gui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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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올린 글('스티브 잡스는 좋은 리더가 아니다')에서 나르시스트적인 관리자가 자신의 정보와 지식을 크게 강조함으로써 조직 내의 정보 공유를 억제하고 결국 조직의 성과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비록 성공한 리더 중에 나르시스트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들의 성공은 나르시스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다른 특성이나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의 조건들이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다시 말해, 나르시시즘은 개인의 성공이나 조직의 발전과는 인과관계는 갖지 못합니다.

헌데, 정보 공유의 측면에서 나르시스트적 관리자가 치명적인 단점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아이디어나 해법은 남들보다 참신하고 독창적이진 않을까요? 스스로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했던 피카소처럼, 나르시스트적인 관리자들은 나르시시즘에 젖을 만큼 똑똑하고 창의적인 것은 아닐까요? 왜냐하면 나르시스트들은 남들보다 돋보이기 위해 참신하고 획기적인 것을 창조하려 하는 동기가 강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충만한 그런 동기는 그들이 만들어낸 아이디어와 창조물의 독창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리라 추론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여러분 주위에 나르시스트가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의 창의력과 참신성을 떠올려 본다면, 이 질문에 '예'라고 답하겠습니까?



잭 곤칼로(Jack A. Goncalo) 등의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추론이 옳은지를 검증하고자 일련의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곤칼로 등은 244명의 학부생에게 'NPI 16'이라는 평가지를 돌려 나르시시즘의 정도를 측정했습니다. 그리고 2주 후에 학생들을 다시 불러서 2가지 과제를 수행하게 했는데, 첫 번째 것은 한 장의 벽돌을 얼마나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지 생각하여 10분 내에 모두 써내는 과제였습니다.  두 번째 과제는 다른 은하계의 행성을 방문했다고 가정하고 그곳에 사는 거주민의 모습을 7분 이내에 그려보라는 것이었죠. 

두 가지 과제를 모두 수행한 학생들은 자신이 작성한 것이 얼마나 창의적인지를 스스로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연구자들은 학생들의 창의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두 명의 심사자를 고용하여 학생들이 벽돌의 용도에 대해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를 쏟아냈는지(양적 측면), 그리고 아이디어들이 얼마나 유연한지(질적 측면)를 측정하도록 했습니다. 심사자들은 학생들이 그린 외계인 그림에서 남들과 다른 비전형적인 모습이 얼마나 발견되는지도 심사했습니다.


나르시스트적인 학생일수록 자신의 아이디어와 그림이 창의적이라고 스스로 자부했지만, 심사자의 심사 결과를 통해 회귀분석을 해보니 나르시시즘의 정도는 아이디어의 질적 양적 측면 모두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벽돌 과제'와 '외계인 그림 과제' 모두 동일했습니다. 다시 말해, 자기 스스로를 가리켜 '잘났다. 창의적이다. 참신하다'라 자부하는 사람이라 해도 그를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렇듯 나르시스트의 창의성이 그저 그렇다면, 나르시스트 주변의 사람들은 그의 창의성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위 실험에서 증명된 바와 마찬가지로 나르시스트적인 사람의 아이디어는 그리 뛰어나지 않다고 느끼고 있을까요? 애석하게도 그렇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주변 사람들은 나르시스트의 창의력을 좋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음이 곤칼로의 후속 실험에서 밝혀졌습니다. 곤칼로는 76명의 학생들을 두 명씩 짝을 이루게 하고 한 명에게는 '제안자'의 역할을, 다른 한 명에게는 '평가자'의 역할을 무작위로 부여했습니다. '제안자'에게는 영화 제작 아이디어를 구상한 다음 10분 동안의 설명으로 '평가자'를 설득시키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평가자'는 '제안자'의 아이디어를 묵묵히 듣고서 영화 제작 아이디어의 참신함과 '제안자'로부터 받은 인상을 각각 평가해야 했죠.

실험이 끝나고 분석을 해보니, '제안자'의 나르시시즘의 정도와 '평가자'들의 창의성 평가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발견되었습니다. 즉 제안자가 나르시스트일수록 평가자들은 제안자의 영화 제작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독창적이라 평가한 겁니다. 이 결과는 사람들이 창의적인 인간상을 머리에 떠올릴 때 그 모습을 나르시스트의 특징과 등치시킨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두 나르시스트가 아닌데도, 나르시스트이면 창의적일 것이라는 인상을 갖는다는 것이죠. 이 실험에서도 두 명의 심사자를 따로 고용해 학생들 모르게 평가한 결과, 나르시스트가 내놓은 영화 제작 아이디어는 그다지 창의적이지 않았습니다. 나르시스트가 창의적이지 않은데도 스스로를 창의적이라고 자부하고 또 남들도 그를 창의적으로 여긴다는 것이 이 실험의 결론입니다.

나르시스트가 조직의 리더가 되면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정보의 흐름을 막아 조직의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와 더불어, 자신의 창의력을 과대평가하여 직원들에게 강하게 푸시하고 또한 직원들도 그런 아이디어를 참신한 것인양 수용하는 바람에 역시 조직 성과를 저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르시스트적인 사람들이 조직에서 관리자의 위치로 승진할 가능성이 더 높음을 생각한다면, 리더의 나르시시즘은 그저 개인의 성격적 결함으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리더를 선발할 때 나르시스트의 과시 효과(showoff effect)에 영향 받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진정한 리더를 통해 조직의 성과 향상을 꾀하는 조직관리의 지혜입니다.

워싱턴 대학교의 에리카 칼슨(Erika N. Carlson)이 수행한 연구에서 나르시스트들은 본인이 나르시스트라는 점, 자신에게 부정적인 면이 있다는 점, 그래서 남들에게 첫인상을 좋게 남길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상이 나빠진다는 점을 모두 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해법이나 전략이 뛰어난 아이디어라고 자신만만하기 전에, 자신이 가진 정보와 지식이 남들보다 우수하다고 자동적으로 생각하기 전에, 겸손의 미덕을 발휘하기 위해 '부드러운 브레이크'를 걸 필요가 있습니다. 카리스마는 내면의 치열한 자기성찰을 근본으로 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말입니다.


(*참고논문)
Are Two Narcissists Better Than One? The Link Between Narcissism, Perceived Creativity, and Creative Performance 
You probably think this paper's about you: narcissists' perceptions of their personality and repu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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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팀에 외부로부터 새로운 팀장이 부임했습니다. 그가 말하고 행동하는 스타일을 보아하니 어딘가 모르게 자신감이 넘치고 남을 지배하고 이끌고자 하는 성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자신만만함이 넘치다 못해 독단적이고 자아도취적인 면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결정이나 예측이 옳다는 강한 확신을 나타내고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도 확실하게 가지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팀장이 드러내는 리더십에 마음이 끌릴 것 같습니까? 그가 여러분의 팀을 훌륭하게 이끌 뛰어난 리더라는 좋은 인상을 받을까요? 아마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하겠지만, 실제로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리더로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토론 과제를 부여하면 그렇게 '나르시스트적'인 사람이 스스로 그룹의 리더로 나서거나 자연스레 그룹의 리더로 인식됩니다. 또한 리더십에 관한 평가를 내리라고 하면 나르시스트적인 사람이 다른 이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얻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르시스트적인 리더로 전형적인 인물이 바로 얼마 전 타계한 스티브 잡스입니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평전 '스티브 잡스'를 읽어보면 애플을 처음 창업할 때부터 그가 동료들에게 드러낸 말이나 행동에서 강한 나르시시즘(narcissism)이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맨발로 회사를 돌아다니던 것, 몸에서 냄새가 진동하지만 자신은 채식만 하는 사람이라서 몸을 씻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던 것, 자신의 의견이 동료들에게 수용되지 않으면 눈물을 자주 보이던 것 등이 단적이 사례입니다.




아이작슨은 평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현실 왜곡장'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는 잡스가 거짓말 하는 성향이 있다는 사실을 수사적으로 그럴듯하게 표현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거짓말보다 훨씬 더 복잡한 유형의 조작 행위를 가리켰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이어갑니다. "세계 역사와 관련된 특정 사실이든,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누구였듯이 대한 기억이든, 그는 진실은 고려하지 않은 채 단언하듯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스티브 잡스가 전형적인 나르시스트였음은 평전에 등장하는 옛동료들의 말에서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부하직원이었던 브루스 혼은 "한번은 제가 생각하던 아이디어를 그에게 이야기했더니 미친 소리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다음 주에 찾아와서는 굉장한 아이디어가 있다면서 제가 야기한 아이디어를 들려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한 거잖아요'라고 했더니 그는 '그래, 그래, 그래.'하고는 그냥 넘어가 버리는 겁니다."이라고 증언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나르시스트적인 리더들은 조직의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까요? 아마도 스티브 잡스의 사례만 놓고 생각하면 리더의 자아도취적인 성향이 성과를 향상시키도록 구성원들을 독려하고 때로는 몰아붙임으로써 종국엔 높은 성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잡스가 이끌었던 애플은 지금 '잘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르보라 네비카(Barbora Nevicka) 등 암스테르담 대학의 심리학자들은 이를 부정하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네비카 등은 조직 성과를 높이고 '질 좋은' 성과를 얻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보의 공유와 이를 통한 시너지 창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다른 학자들의 선행 연구에서 이미 입증된 사실입니다. 네비카 등은 나르시스트적인 리더가 이끄는 조직의 정보 공유가 과연 원활하게 이루어질지를 실험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네비카는 실험 참가자들을 3명씩 무작위로 뽑아 모두 50개의 팀을 구성한 다음, 컴퓨터를 통해 무작위로 3명 중 1명을 리더로 선정했습니다. 그러고는 각 팀에게 가상의 비밀조직에서 일할 요원 1명을 3명의 지원자 중에서 선발하라는 의사결정 과제를 부여했죠. 모두 15가지 요소로 계량화하여 평가된 지원자들의 특성 정보(강약점 모두 포함)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배포되었는데, 참가자 각자는 15개 정보 중에서 9개씩만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3명의 참가자에게 똑같이 주어진 공통 정보와, 한 사람의 참가자에게만 주어진 고유 정보가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를 들어, 'F-16 비행기 조종 실력'이란 항목은 3명의 참가자에게 모두 주었고 '성급하고 다혈질적인 면'이란 항목은 3명의 참가자 중 한 사람에게만 정보를 주었습니다. 참가자 각자에게 지원자들에 대한 완전한 정보를 주지 않은 것이죠.

네비카는 의도적으로 지원자 A가 3명의 지원자 중 상대적으로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특성 정보를 구성했습니다. 만일 참가자들이 지원자 B나 지원자 C를 합격자로 선정하면 의사결정의 성과가 좋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이겠죠. 실험에 들어가기에 앞서 참가자들은 40개의 질문을 통해 각자가 얼마나 '나르시스트적'인지를 측정 받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누구를 합격시킬 것인가를 선정하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각자가 가진 정보를 과연 공유하는지, 공유를 통해 좋은 의사결정을 이끌어내는지, 리더의 나르시스트 적인 성향이 의사결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실험 결과, 리더의 나르시스트적 성향이 높을수록 다른 참가자들로부터 리더로서 권위를 인정 받고 리더의 리더십이 그룹의 성과에 긍정적일 거라는 인식을 얻었습니다. 선행된 다른 연구에서도 이런 경향이 발견된 바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정보의 공유 정도였습니다. 리더가 나르시스트적일수록 구성원 간의 정보가 덜 공유된다는 것이 정량적인 분석 결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의사결정의 질은 어땠을까요? 리더가 나르시스트적일수록 좋지 않은 의사결정(지원자 B나 C를 뽑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결국 나르시스트적인 리더가 다른 구성원들이 가진 고유 정보가 서로 공유되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형성했고 그에 따라 좋은 의사결정(지원자 A를 뽑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 밝혀졌죠. 나르시스트적 리더가 조직의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는 처음의 인식과는 반대되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자신만만하고 때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강하게 밀고 나가는 리더는 좋은 리더라는 인상을 다른 이들로부터 받겠지만, 그것이 좋은 성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것이 이 연구의 결론입니다. 바꿔 말하면, 직원들은 나르시스트적인 성향을 보이는 리더를 그렇지 못한 겸손한 리더들에 비해 자신의 의견을 포기해도 좋을 만큼 믿고 따를 만하다는 긍정적인 인상을 가지기 쉽지만, 그런 인상과 실상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나르시스트적인 리더들은 이 실험에서 봤듯이 자신이 가진 정보나 지식이 가장 우수하고 고유하다고 인식함으로써 정보 공유를 어렵게 만듭니다. 또한 공감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감수성이 요구되는 일의 성과를 저해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르시스트 리더들은 겸손한 리더들에 비해 압박 받는 상황을 즐기고 그 상황에서 일을 잘 수행하는 경향이 있기에 다른 직원들에게도 물리적이고 시간적인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 또한 조직의 성과를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겠죠. 나르시스트적인 리더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는 처음에는 굉장히 독창적이고 뛰어난 것으로 평가 받기도 합니다. 천천히 살펴보면 다른 직원들의 아이디어보다 나을 것이 별로 없는데도 말입니다. 이 점은 여러분도 종종 경험했을 겁니다. 처음엔 리더의 아이디어가 정말 그럴싸해 보여서 감동하기도 했지만 막상 실행하려고 들면 막막해지고 왜 아이디어를 처음 들었을 때 가슴이 뛰었는지 의아했던 경험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나르시스트적인 리더를 좋아하고 그가 조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하는 걸까요? 사람들은 '리더는 이러한 모습이어야 해'라는 공통적인 리더상(像)을 가지고 있습니다. 리더라는 말을 들으면 역사 속에 등장하는 제왕들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를 자동적으로 연상됩니다. 나르시스트들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지닌 리더상과 일치되는 면이 많기 때문에 좋은 리더로, 좋은 성과를 낼 리더로 인식되는 것입니다. 면접으로 직원을 채용할 때도 나르시스트적인 면모를 보이는 지원자가 합격될 확률이 높은 이유도 동일합니다.

나르시스트들이 조직에서 실제로 좋은 성과를 낼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 팀장은 유약해. 팀원들의 생각을 너무나 존중해. 강하게 주장하는 법이 없어.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이 팀장이 되면 우리 팀이 달라질 텐데 말이야'라는 생각은 조직의 성과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고 어떤 과정을 통해야 의사결정의 질이 높아지는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듯, 나르시스트적인 리더의 겉모습이 성과의 전부를 말해주지 못합니다.

스티브 잡스 같은 나르시스트는 일반적인 팀의 리더로 그리 적당한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여러분의 팀장, 여러분의 임원은 얼마나 나르시스트적인가요?


(*참고 논문)

Reality at Odds With Perceptions:Narcissistic Leaders and GroupPerformance


(*추신) 스티브 잡스 평전을 읽으며 '이런 사람이 내 상사라면 회사를 당장 그만 뒀을 거야'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더군요. 여러분은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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