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목표 달성에 힘겨워하는 누군가를 격려하기 위해 "목표에 집중하라"는 조언을 간혹 합니다. 목표 달성을 방해하고 자신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여러 요소에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목표를 향해 달려 가라고 충고합니다. 힘겨운 과정을 끝내고 마침내 도달할 그 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모든 방해요소와 유혹을 떨쳐내는 것이 목표를 이루어내는 왕도라고 믿습니다. 여러 자기계발서에서 이런 논지의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죠.


그러나 목표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오히려 목표 달성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직관에 반하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시카고 대학교의 에일렛 피시바흐(Ayelet Fishbach)와 고려 대학교의 최진희(Jinhee Choi)는 어떤 일의 목표가 처음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일을 시도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성취하게 될 목표에 집중하면서 과정을 수행하려는 마인드가 목표 달성을 방해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피시바흐와 최진희는 대학 내 체육관에 다니는 103명의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그 중 한 그룹의 학생들에게 운동을 통해 이루어낼 목표를 제출(예 : 나는 살을 빼기 위해 운동한다)하도록 하고 운동하는 동안에도 그 목표에 집중하도록 요청했습니다. 반면 다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그들이 행하는 운동의 과정을 묘사(예 : 나는 스트레칭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러닝머신을 뛴다)하도록 했죠. 역시 운동하는 동안 자신의 운동 과정에 몰두하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런 조치 후에 피시바흐와 최진희는 각 그룹의 학생들을 두 개씩 소그룹으로 나눠서 첫 번째 소그룹에게는 운동하기 시작하기 전에 얼마나 오랫동안 운동할 생각인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소그룹에 대해서는 그들이 실제로 운동하는 시간을 측정해 보았습니다. 정리하면, 목표에 집중하거나 과정에 집중할 때 각각의 경우 운동을 얼마나 오래 할 생각인지 그리고 실제로 얼마나 운동할지를 살펴보고자 한 것입니다.


결과는 흥미로웠습니다. '목표 집중 조건'의 학생들은 '과정 집중 조건'의 학생들보다 8분 정도 더 오래 운동할 생각이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운동한 시간을 살펴보니 '목표 집중 조건'의 학생들은 '과정 집중 조건'의 학생들보다 대략 10분 정도 적게 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목표에 집중하면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의욕이 커지지만 목표에 의해 자극 받은 의욕은 오래가지 못하여 결국 목표 달성을 더디게 만든다는 점을 시사하는 결과였습니다. 과정(경험)에 집중하는 것이 그 일을 착수하도록 유도하는 힘은 약하지만 일단 일을 시작한 후에는 목표 달성 과정을 지속하도록 동력을 제공한다는 의미죠.


하지만 이 실험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실제로 운동한 시간이 목표 달성에 들인 노력의 양으로 볼 수 있느냐가 문제죠. '목표 집중 조건'의 학생들이 비록 적은 시간 운동했더라도 목표 달성의 투지가 솟아올라 힘을 더 많이 들여 운동한 나머지 쉽게 지쳐서 운동을 중단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과정 집중 조건'의 학생들이 목표 달성의 의지가 약해 러닝머신의 난이도를 쉽게 조정하여 더 오래 운동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죠.


피시바흐와 최진희는 이런 오해를 없애기 위해 후속실험에서는 '종이접기'와 같이 신체적인 노력이 별로 요구되지 않는 과제를 선택했습니다. '목표 집중 조건'의 학생들은 색종이로 개구리를 접는 활동이 교육적인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물리치료 목적으로 효과가 있다는 설명을 들은 후 종이접기를 하는 동안에 그 목표를 상기하라고 요청 받았습니다. 반면 '과정 집중 조건'의 학생들은 종이접기 그 자체는 취미 활동일 뿐 별다른 효과는 없다는 말을 들었고 개구리를 만들어 가는 경험에 집중하도록 요청 받았죠.


종이접기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참가자들은 종이접기의 목표에 집중할 때 종이접기에 더 많은 흥미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종이접기를 직접 해본 참가자들은 목표에 집중할 때보다 과정(경험)에 집중할 때 종이접기가 더 재미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앞의 실험과 마찬가지로 목표를 떠올리는 것이 최초의 흥미를 유발할 수는 있지만 그 흥미를 지속시키지는 못했던 겁니다. 종이접기 활동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흥미와 재미를 지속시키고 그로 인해 목표 달성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 만든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피시바흐와 최진희는 '치실 사용하기', '요가하기'와 같은 과제를 가지고도 후속실험을 진행했지만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 목표 달성에 해가 된다는, 동일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누군가가 목표 달성 과정에서 힘겨워 하거나 애를 먹을 때 상투적으로 던지곤 하는 '목표에 집중하라', '목표를 생생하게 그려라', '그 날에 얻게 될 열매를 상상하라'는 조언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목표 달성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 이 실험의 시사점입니다. 왜 그럴까요? 피시바흐와 최진희는 어떤 일의 목표가 사람들에게 돈과 같은 외적 보상(External Incentive)처럼 인식된다고 말합니다. 외적 보상이 내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을 저하시키는 것처럼 목표도 그렇다는 것이죠. 살 빼기라는 목표는 운동을 하는 과정의 일부가 아니라 운동을 완료한 후에 얻어지는 보상으로 인식되는 까닭입니다. 


어떤 이유이든 간에, 이 실험으로 내적 동기를 지속시키고 강화하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과 경험에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처음에 '이 일을 한번 해보라'고 할 때는 그 일을 달성한 후에 얻게 될 목표로 자극해야 하지만, 그런 자극을 일을 진행하는 과정 내내 강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날을 위해 참고 견뎌라'라고 말하기보다는 일의 경험과 경험을 통해 얻는 소소한 재미를 강조하는 것이 내적 동기라는 목표 달성의 엔진을 유지시킵니다. 100킬로미터를 걸어야 하는 사람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조언은 사실 '완주했을 때의 너의 모습을 그려봐'가 아니라 '네가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에만 집중하라'인 것처럼 말입니다. 



(*참고논문)

Ayelet Fishbach, Jinhee Choi(2012), When thinking about goals undermines goal pursuit,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Vol. 1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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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업무에서 자아실현의 감동을 얻기는커녕 염증을 느끼고 매너리즘에 휩싸여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새로운 일이 발생하거나 기존의 업무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면 자신을 성장시키는 계기로 삼기보다 습관과도 같은 피로감에 먼저 사로잡힙니다. 아무런 변화 없이 그저 정해진 대로만 진행되기를 바랄 뿐 개선이나 혁신의 의지는 에너지 넘치는 다른 사람들의 일로 치부하고 맙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자신의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직원들이 수명이 다 되어가는 건전지처럼 에너지가 소진된 듯한 느낌을 갖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단순하게 업무량이 많고 업무의 난이도가 높기 때문일까요? 사람들 사이의 관계, 특히 상사와의 관계에 치유가 어려운 문제가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직원 자신의 의지력이 박약한 탓일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업무에서 활력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활력을 빼앗긴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직원들이 업무로부터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스스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업무나 활동으로부터 배제되고 위에서 떨어지는 일, 맡은 직무나 조직의 생리상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처럼 내적 동기를 갖기 힘든 업무 환경 속에 놓여져 있는 까닭입니다.




사람들은 돈보다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가치를 느끼는 업무나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개인적으로 직원들은 활기 넘치는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조직의 생산성 향상과 혁신을 추진할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요 클리닉(Mayo Clinic)이란 의료기관에서 실시한 조사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연구팀은 마요 클리닉의 모든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각자 환자 진료 및 치료, 연구, 교육, 행정업무 등에 어느 정도의 시간을 소요하고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또한 의사들이 각각의 영역 중에서 무엇을 가장 '가치 있는' 일로 느끼는지도 조사했습니다. 예상대로 68%의 의사들이 환자 진료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지만, 연구, 교육, 행정업무에도 각각 19%, 9%, 3%의 의사들이 가치를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각 업무 영역에 실제로 소요하는 시간과 가치를 느끼는 정도를 비교하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예를 들어 교육 활동에서 가치를 느끼는 의사들은 환자 관리에 64%의 시간을 썼지만 교육 업무에는 15.1%의 시간 밖에 쓰지 못하고 있었죠.

연구자들은 바로 이 불일치가 업무 피로감의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검증할 목적으로 Maslash Burnout Inventory라는 측정도구를 써서 의사들의 업무 피로도를 측정했습니다. 그랬더니 가치를 느끼는 업무 영역에 20% 미만의 시간(일주일에 하루 미만)을 사용하는 의사들이 더 많이 '번-아웃(burn out)'되었다는 결과가 확연하게 드러났습니다. 이렇게 번-아웃된 의사들은 36개월 내에 현재의 직무를 떠나고 싶다는 의지를 크게 나타냈고, 24개월 내에 상근직에서 파트타임직으로 이동하기를 희망하는 경향이 더 컸습니다. 

이 연구는 설문을 통해 상관관계의 존재 여부를 따져본 것이기에 완전한 인과관계를 증명한 것은 아니지만 직원들의 내적 동기와 실제 업무 사이의 괴리가 클수록 직원 개인의 건강한 삶과 조직의 활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짐작케 합니다. 외부적인 이유로 직원들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일에 충분한 시간을 쏟지 못할 경우 쉽게 번-아웃될 가능성이 높을지 모른다는 것, 번-아웃된 직원일수록 현재의 직무에서 기대하는 만큼의 생산성을 내지 못한다는 것, 향후에 직무를 이탈함으로써 무형의 업무 노하우도 함께 사라져 버릴 확률도 높다는 것 등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조직 혁신의 에너지와 성과는 개인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조직을 운영하는 시스템에서 나옵니다. 이 말은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개인의 역량을 조직의 성과로 연결시키는 데 있어 책임을 지는 주체는 직원이 아니라는 뜻이죠. 책임은 시스템에게 있습니다. 개인의 역량, 내적 동기의 근원, 경력개발의 요구 등에 적합하게 운영되는 시스템(제도, 인프라, 조직문화 등)을 갖추지 못한 채 직원 개인의 부단한 노력과 기여를 당근으로 유도하고 채찍으로 강요하는 조직은 직원들을 쉽게 번-아웃시키고 방치할지 모릅니다. 

물론 인력 운용상, 조직의 생리상 직원들이 의미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업무 프로세스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일주일에 적어도 10%의 시간(대략 4시간) 정도는 기존의 담당 업무를 떠나 마음대로 의미 있는 업무를 하도록 권장하면 어떨까요? 뭘 하든 상관없이 자신의 내적 동기를 발화시킬 탈출구를 만들어 두자는 뜻입니다. 구글이 일주일에 20%의 시간을 직원들에게 마음대로 쓰게 하면서도 그런 자유시간을 통해 지메일(Gmail), 구글 어쓰(Earth) 등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얻어냈다는 사례를 떠올려 보면, 그 시간이 생산성을 해치고 직원들을 나태하게 만들 거라고 우려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직원들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조직 내에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보이려는 동기를 가진 성인입니다. 방종에 쉬이 빠질 사춘기 청소년이 아니죠.

애니메이션 제작업체 픽사(Pixar)는 만화영화 제작자와 회계담당자부터 보안 요원에 이르는 모든 직원들이 1주일에 4시간까지 교육 받도록 권장 받습니다. ‘픽사 대학’은 110개 과목의 교육 프로그램을 직원들에게 제공하는데,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미술 및 영화제작 과정과 동일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학장인 랜디 넬슨(Randy Nelson)은 “왜 회계담당자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줄 아세요? 그림 수업은 사람들에게 그리는 방법만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관찰력을 향상시켜서 혜택을 얻는 회사는 픽사 말고 지구 상에는 없지요.”라고 말합니다. 직원들에게 본업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분야를 접하도록 기회를 줌으로써 업무 만족도 향상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흥행작을 연달아 내놓을 수 있는 힘을 확보하는 픽사를 그저 부러워하거나 그들이니까 가능한 일로 치부해야 할까요?

직원들은 성과를 만들어내도록 임금을 주고 구입한 '성과 기계'가 아니라, 성과 그 자체입니다. 직원들이 가치를 상실하고 번-아웃됐다면 성과도 번-아웃되는 것이죠. 이때는 직원들에게 엄격한 평가와 높은 성과급이라는 당근과 채찍을 흔들어대기보다는 그들이 조직 내에서 살아가는 환경, 즉 시스템을 혁신해야 합니다. 구성원들이 시스템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구성원에게 적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번-아웃된 상태입니까? 무엇때문입니까? 여러분 자신 때문입니까, 아니면 조직의 시스템 때문입니까?


(*참고 논문 : Career Fit and Burnout Among Academic Faculty )
(*참고 도서 : Demand: Creating What People Love Before They Know They Want 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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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을에 한 노인이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집 안에서만 은거하며 지낸 노인은 행색이 남루했고 어딘가 모르게 기이한 면모를 풍겼습니다. 그래서인지 동네에 사는 10살 짜리 철 모르는 꼬마들은 그런 노인을 놀려대기 일쑤였습니다. 아이들은 방과후 집으로 가는 길에 노인의 집 앞에서 노인의 이상한 면모에 대해 비웃곤 했습니다. 어느 날 오후, 노인은 밖에서 아이들이 자신을 가리키며 못생기고 바보 같은 대머리라고 크게 조롱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노인은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습니다. 그는 여느 날처럼 자신을 놀려대는 아이들을 앞마당에서 만났습니다. 노인은 "내일 너희들 중 누구나 여기에 와서 지금처럼 무례한 소리를 질러대면 각자에게 1달러씩 주겠다"라고 말합니다. 이 제안을 들은 아이들은 다음날에 노인의 집 앞을 찾아와 흥에 겨워 욕설을 마구 질러댔습니다.



노인은 그 소리가 듣기 싫었지만 꾹 참고 아이들 모두에게 1달러씩 나눠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내일도 오늘처럼 똑같이 와서 욕설을 퍼부으면 각자에게 25센트씩을 주겠다"라고 말합니다. 25센트라는 돈이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생각한 아이들은 그 다음날에도 노인의 집 앞에 와서 욕지거리를 해댔습니다. 노인은 군말하지 않고 약속대로 25센트를 아이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너희들에게 1센트 줄 테니 내일도 와서 이렇게 해라."라고 말했습니다. "1센트라고?" 아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더니 노인에게 "됐어요!"라고 말하고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아이들은 노인의 집앞에 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노인을 욕하는 소리도 들을 수 없었죠.

이 짧은 이야기는 알피 콘(Alfie Kohn)이 쓴 "Punished by Rewards"에 소개된 일화를 약간 각색한 것입니다. 노인은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즐거워서(?) 하던 행위에 돈으로 보상함으로써 아이들이 자신을 놀려대는 '내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를 사라지게 만들고 '외적 동기(extrinsic motivation)'로 대체했습니다. 돈에 의해 유지되던 외적 동기는 노인이 1센트라는 푼돈을 주겠다고 말하자 이내 사라져 버렸고 아이들은 더 이상 노인을 욕하는 행위에서 재미를 찾을 수 없었던 겁니다. 노인의 이야기는 어떤 일에 대한 보상이 사람들의 내적 동기를 갉아먹을 뿐만 아니라, 보상이 줄거나 없어지면 흥미가 떨어져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을 꼬집고 있습니다.

우리 말에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말이 안 되는 속담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이제 살펴보니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미운 아이의 미운 짓에 보상을 하면 그 미운 짓을 할 내적 동기를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니 말입니다.

많은 조직에서 어떤 행위와 성과를 권장하기 위해서 보상을 강화하고 구성원들의 보상 차이를 확대하는 방법을 쓰곤 합니다. 구성원들이 맡은 업무로부터 즐거움을 느끼도록 만들어 생산성을 높이기보다는 돈이라는 당근으로 유혹하면 더 열심히 일하리라 가정하고 기대합니다. 물론 이런 당근이 제시되면 구성원들은 전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려고 노력할 겁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회사가 어려워져 높은 보상을 유지할 수 없게 되거나, 평가 결과에 따라 상대적으로 차등이 돼 남보다 못한 보상을 받는 경우가 지속되면 아이들이 노인을 향해 느꼈듯이 회사에 대한 불만이 쌓이게 됩니다. 그러면서 맡은 업무에 대한 흥미와 열정을 잃어버리고 말죠. 생산성은 답보상태이거나 추락하는 지경까지 이릅니다.

알피 콘은 "A를 하면 B를 주겠다"라고 말하는 방식의 보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A보다는 B에 집중해 버리는 역효과가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일 잘 하면 돈을 주겠다"라는 보상 방식은 직원들에게 일보다는 돈이 더 중요하다는 엉뚱한 신호를 주는 꼴입니다. 또한 오로지 돈이라는 외적 동기에 의해 일의 즐거움을 확인 받도록 직원들을 조건화합니다. 그러니 직원들이 보상에 불만을 강하게 표하면 평가지표를 객관적으로 바꾸고(과연 객관적을 바꿀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차등 보상을 강화하려는 식으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해법을 내놓으려고 하죠.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조성하려는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외면한 채 외적 동기를 강화하는 쉽고 빠른 대증요법을 가함으로써 직원들을 내적 동기가 사라진 '외적 동기의 노예'로 만들지 않았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도 보상이 직원들의 동기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보상은 돈을 벌려는 직원들이 동기를 높일 뿐입니다. 미운 아이에게 떡 하나를 더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상기하기 바랍니다.

(*참고도서 : Punished by Reward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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