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그림 중 어떤 것이 더 마음에 드는지 선택해보기 바랍니다. 보다시피 (a)는 두 언덕 사이 정가운데에 나무가 서있고, (b)는 한쪽 언덕에 나무가 치우쳐 서있습니다.


(출처 : The Tell-Tale Brain (명령하는 뇌, 착각하는 뇌)


어떤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집니까?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 여러분들은 (a)보다는 (b)가 더 자연스럽다고 말하고, 벽에 걸 그림을 고르다면 역시 (b)를 선택하겠다고 말하리라 짐작됩니다. (a)가 부자연스러운 이유는 여러 지점이 있는데 왜 하필 골짜기 가운데에 나무가 서 있는지 모르겠다는 느낌 때문일 겁니다. (b)처럼 나무가  한쪽으로 치우쳐 자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a)와 (b)의 발생 가능성은 똑같습니다. 두 언덕의 존재와 나무의 위치는 서로 독립적인 사건입니다. 언덕의 위치를 감안하여 나무가 자신이 자랄 자리를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상하게도 (a)보다는 (b)가 더 자연스럽고 더 발생 가능하다고 말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a)나 (b)나 모두 우연일 뿐입니다. (a)라고 해서 더 우연이라고 여길 이유가 없죠.

위 사례는 어렸을 적에 미술 선생으로부터 '언덕 사이 중간에 나무를 두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라고 핀잔을 들었다는 뇌과학자 V.S. 라마찬드란의 일화입니다. 그는 (b)를 선호하는 경향이 '우연의 일치'에 대한 우리의 혐오에서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로또 번호를 택할 때 1, 2, 3, 4, 5, 6 이 나올 확률이나 2, 16, 21, 24, 33, 42 이 나올 확률이나 모두 동일한데도, 전자를 우연의 일치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왠만하면 후자의 번호를 택하려 하죠.

우연의 일치라고 보여지는 현상은 우연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경우 중 하나일 뿐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두거나 혐오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엇이 우연의 결과인지 필연의 결과인지를 분명히 가릴 수 있는 능력도 환경 변화를 올바로 읽어내야 할 전략가에게 요구되는 역량입니다. 우연의 일치는 그저 우연일 뿐입니다.


(*참고도서 : The Tell-Tale Brain (명령하는 뇌, 착각하는 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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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漢)나라가 기울자 여기 저기서 영웅호걸들이 활거하는 형국이 됐습니다. 삼국지(三國志)는 바로 이때의 이야기를 다루는 오래된 고전이죠. 거기에 원소(袁紹)라는 걸출한 영웅도 등장합니다. 그는 4대에 걸쳐 삼공(三公)의 지위에 오른 명문가의 자손이었죠.

여러 호걸들은 제휴와 반목을 그야말로 밥 먹듯이 합니다. 혼자서 천하통일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기가 험난한 혼돈의 시기였으니까요. 원소도 처음엔 조조(曹操)와 제휴하다가 나중에 서로 세력을 다투는 적으로 돌아섰습니다. 원소 입장에서는 나날이 세력이 커가는 조조를 효과적으로 견제하고 제압해야 천하통일이라는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죠.


당시에 유비(劉備)는 원소가 거들떠 볼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유비는 이사람 저사람에게 의탁하는, 변방의 장수에 불과했으니까요. 하지만 판단력이 비상한 조조는 유비가 잠재적으로 가장 큰 대항마가 되리라고 오래 전부터 간파했습니다.

별볼일 없던 유비가 한때는 조조에게 의탁한 적이 있었습니다. 삼국지에 의하면, 조조는 유비에게서 풍기는 영웅의 기품을 일찍이 깨닫고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넌지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지금 천하의 영웅은 그대와 나 둘 뿐이오.” 

이 말은 유비의 숨겨진 의도를 떠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조조의 말을 들은 유비는 깜짝 놀라서 젓가락을 떨어뜨리고 맙니다. 유비는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창피했던지 천둥 소리에 놀라서 젓가락을 떨어뜨렸다고 짐짓 태연한 척했습니다. 그리고 조조의 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마음 먹습니다. 조조가 언제 자신을 제거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죠.

원소

유비

조조


때를 기다리던 유비는 조조에게 원술을 공격하는 전투에 자원을 합니다. 전장으로 나가는 척하면서 조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나름의 술책이었습니다. 의심이 많은 조조는 결국 유비의 청을 윤허합니다. 유비는 계획했던 대로 전장으로 떠나는 도중에 탈출에 성공합니다. 이후 유비는 조조와 반목하며 삼국의 형세를 이루죠.

여기에서 역사학자들의 해석이 분분합니다. 이런 분분함이 삼국지를 읽는 맛이지만 사실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면도 있습니다. ‘조조가 전쟁 치르는 데 바빠서 실수로 유비를 놓아줬다’, 또는 ‘아니다. 조조처럼 영악한 사람이 유비가 달아날 줄 뻔히 알면서 출병 명령을 내렸을 리 없다’, ‘조조가 유비를 죽이지 못한 것은 아직 세력이 미약한 그를 죽일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혹은 ‘아니다. 조조는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대범한 자라서 영웅의 면모를 보이는 유비가 자신과 어깨를 견줄 만한 세력을 키울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등이 그렇습니다.

이야기가 좀 옆으로 샜는데요, 오늘의 주인공은 유비가 아니라 원소입니다. 조조가 서주란 곳에 주둔하고 있던 유비를 공격하러 총출동하자 허도라는 지역이 텅 빌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간파한 원소의 참모인 전풍(田豊)이 이렇게 건의했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내린 기회입니다. 조조가 유비를 잡기 위해 동쪽으로 대군을 이끌고 갔으니 허도를 공격하면 황제(당시 한나라 황제였던 현제)를 지키고 민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부디 현명한 결단을 내려 주십시오.” 

전풍의 간언을 듣고 원소는 퉁명스럽게 대꾸했습니다. 

“내 막내아들이 옴을 앓고 있어서 마음이 어지러운데, 허도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 있겠나?” 

이렇게 말하며 결정을 어물쩍거렸습니다. 허도라는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할 절호의 기회를 집안 사정을 핑계로 날려버렸던 겁니다. 전풍은 “대업은 이제 틀렸다!” 라며 크게 한탄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 일이 조조의 세력을 막강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원소는 2년 후에 조조와 전투('관도대전'이라 함)를 벌이는 와중에 병으로 죽고 맙니다. 

원소가 진정한 영웅이었다면 집안 일은 잠시 잊고 허도를 공격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재빨리 판단하는 결단력을 보였을 겁니다. 만일 그랬다면 조조 대신 원소가 천하를 제패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결단력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누구나 납득할 논리적이고 실제적인 근거를 제시하여 사물과 현상의 참/거짓 여부나 행동의 'Go/No Go' 여부를 가려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불확실한 상황에 처할수록 의사결정을 내리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옳을 수도,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어정쩡한 태도는 결단력과 거리가 멉니다. 문제를 전혀 해결할 의도가 없다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문제가 '가만히 멈춰 있으리라' 기대하는 의사결정자들이 종종 눈에 띕니다.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도 의사결정이라 믿는 모양이지만, 원소의 경우처럼 대부분 '실기(失機, 기회를 놓침)'하고 맙니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의 문제는 수학 문제처럼 문제지 위에 가만히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혹시 결단력을 가능한 한 빨리 의사결정을 내리라는 의미로 오해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단력은 어정쩡하게 가만히 있지 말고 충분한 고민해서 참/거짓(혹은 Go/No Go)을 반드시 가리라는 말이지, 직관이나 불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무조건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원소의 결단력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까닭은 그가 허도 공격을 신속하게 명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집안 사정을 핑계로 의사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흐지부지 했기 때문입니다. 간웅(奸雄)이라 폄하되는 조조는 결단력에 있어서는 원소보다 훨씬 출중한 사람이었죠(물론 그도 유비를 놓아 준 실책을 범했지만요).

결단력이 없으면 하늘이 내린 기회(진짜 로또!)를 날려 버릴지도 모릅니다. 결단력 있는 하루 되세요.


(*사례 출처 : '삼국지 강의',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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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추첨이 방송되는 토요일만 되면 '로또 확률'이란 키워드로 이 블로그를 찾는 분들이 많아진다. 예전에 올린 '로또 1등 확률에 대한 실감나는 비유'란 글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로또 밖에는 희망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서민경제가 좋지 않은 이유 때문이기도 하리라.

당첨번호를 예측해서 알려준다는 사이트가 여기저기 성황인데, 과연 어떤 로직으로 당첨번호를 찍어주는지 알길이 없다. 몇 개 찾아서 3주 정도 추적해 봤는데, 그들이 예측한 당첨번호는 숫자를 3개 맞히는 5등에도 당첨되지 못했다. 고로, 엉터리다.

어떤 사람들은 자주 출현한 번호를 위주로 6개의 번호를 찍으면 로또 1등에 당첨될 거라 기대한다. 로또번호가 적힌 고무공을 내뱉는 기계에 근원적인 편향이 존재해서 특정 번호를 더 자주 뽑는다고 믿거나, 왠지 모르지만 기분상 '그럴 것 같다'고 믿기 때문이다.
 
진짜 그럴까? 확인해 보자. 로또 사이트(http://www.645lotto.net/)를 방문하면, 1회부터 337회까지 어느 번호가 가장 많이 당첨번호로 선택됐는지 그 순위를 찾아볼 수 있다.

먼저 1회부터 168회까지 나온 당첨번호의 출현횟수를 사이트에서 얻었다. 그런 다음, 가장 많이 나온 번호부터 내림차순으로 그래프를 그려보니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1'이 가장 많이(35번) 나왔고, '24'가 가장 적게(17번) 출현했다. (크게 보려면 클릭을...)


이 결과를 보고 있으면, 1, 42, 36, 2, 3, 26.... 과 같이 상위권에 랭크된 번호가 169회 이후에도 잘 출현하리라 기대하게 된다. 숫자와 그래프의 힘이 그러한 '경향'으로 판단력을 유도한다.

그렇다면 169회부터 337회(현재)까지 그 번호들이 여전히 자주 출현했을까? 위의 그래프의 X축을 그대로 두고 169회~337회의 출현빈도 곡선을 얹어 보았더니 다음과 같았다. (크게 보려면 클릭을...)


패턴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일종의 '잡음'처럼 보인다. 1~168회때 가장 적게 나온 번호인 '24'가
169회~337회 때는 7번째로 가장 많이 나왔다. '1'은 여전히 잘 나오는 번호 중 하나지만 우연의 소산으로 보인다. 이 그래프로 초기의 패턴이 후기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비교 구간을 달리해도 마찬가지다).

항간에 떠다니는 로또 조작설이 사실이 아니라면, 45개의 숫자는 고루(비슷한 출현빈도) 나와야 한다. '평균으로의 회귀' 때문이다. 자주 나오는 번호가 있는 듯이 느껴지거나 보이는 이유는 지금까지 실시된 337번의 로또 추첨 횟수가 너무 적어서다. 

이와 같이 초기의 결과로 후기의 결과를 가늠하기 어려운 경우는 로또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펀드 매니저의 실적이다. 연구 결과, 1991년부터 1995년 까지의 실적 순위는 1996년부터 2000년까지의 실적 순위를 전혀 설명하지 못했다. 위의 그래프처럼 뒤죽박죽이었다.

로또 당첨 확률을 높이려면, 로또를 한 장 더 사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허나 그 말이 유일한 해답이다. 로또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그 어떤 유혹에도 속아넘어가지 말자. 환상을 버려야 행운이 찾아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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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기' 잡는 경영, 과연 필요한가?   

2009. 4. 13. 12:13

재작년이었던가, 잠깐 동안 호사가들의 입에 올랐던 해프닝을 기억할런지 모르겠다. 35, 36, 37, 41, 44, 45이라는 1등 로또 당첨번호 때문이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41을 제외하고는 일련번호인데다가 30대와 40대 몰려 있는 ‘맞추기 어려운’ 숫자에 무려 15명의 1등 당첨자가 배출됐다는 걸 애써 이슈화를 시켰다. 몇몇 네티즌들은 어떻게 그런 숫자에 그렇게 많은 당첨자가 나올 수 있냐며 무언가 사전에 조작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반박은 확률의 개념을 오해한 데에서 비롯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전문가들도 쉽게 속는 경향이 있다). 극단적인 일련번호인 1, 2, 3, 4, 5, 6 이 나올 확률과 무작위 숫자들이 나올 확률은 정확히 똑같다는 걸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숫자 각각이 나올 사건은 서로 독립적이고 순전히 우연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일어난 사건이 그 다음에 일어나는 사건에 영향을 미칠 거라 잘못 생각한다. ‘무작위’는 ‘고루 섞여 있음’을 의미하고, 고루 섞여 있어야 안정적이고 덜 우연적인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수용키 어려운 1, 2, 3, 4, 5, 6이란 번호도 확률의 세계에서는 충분히 무작위적이다.

사람들은 기질적으로 ‘우연’을 참지 못한다. 로또 당첨번호처럼 특이한 사건일수록 더욱 그렇다. 만일 당신이 고개를 내밀어 창문을 내다보는 데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창문에 코를 부딪쳐 코뼈가 내려앉았다고 해보자. 다음날 중요한 오디션에 나가기로 돼 있는 당신은 이로 인해 그만 소망하던 배우의 꿈을 접고 평범한 직장인이 됐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러한 불행의 모든 책임을 자신의 이름을 하필 그때 부른 그 사람에게 돌리며 한탄한다. 나아가 그 사람이 의도적으로 당신의 코가 깨질 가능성이 충분한 상황에 그 같은 행동을 취한 것이 아닐까 의심까지 들게 된다. 억지스럽더라도 우연을 필연으로 여겨야 맘이 놓인다. 자신의 재능 부족은 입도 뻥끗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복잡해지는 현대사회에서 통제할 수 없는 사건들을 수도 없이 접하면서 때로는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더욱 우연을 견디지 못하게 된다. 취업준비생들이 대기업으로만 몰리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수입, 안정성, 교육 및 복리후생 등이 중소기업보다 나을뿐더러 적어도 왔다갔다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 다시 말해 ‘덜 우연적’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대기업에 들어가서도 ‘우리 회사는 원칙이 없는 것 같다. 전혀 예상이 안 되고 엉성하다.’ 등의 불만을 쏟아내는 것을 볼 때 우연에 대한 혐오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경영자들도 우연을 싫어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의 의도가 말단조직에까지 착착 미치지 못한다고 느낄 때, 직원들이 업무를 체계적으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회의 때 내놓는 현황 분석 데이터들이 시원찮다든가 할 때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이 때 가장 많이 궁리해 내는 아이디어가 바로 ‘체계를 잡는 것’이다. 지시가 물처럼 아래로 잘 하달되도록 조직을 뜯어 고치거나, 일 못하는 직원을 가려내기 위한 의도로 평가제도를 강화시키거나, ERP 등 정보시스템 구축에 투자를 결심한다. 또는 실패 가능성을 줄이려 다른 회사의 성공사례를 전적으로 모방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게 우연성을 줄이고 효율성은 높이려는 시도인데, 요즘같이 불황일 때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이 오히려 우연에 맡길 때보다 더 큰 비용을 발생시키거나 더 큰 기회를 상실시킨다면, 본능적인 우연 혐오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안정적인 대기업만을 선호하는 바람에 쟁쟁한 인력 틈에서 제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그렇고 그런 범용인재로 인생을 허비할 수 있다. 자아실현의 기회를 노릴 수 있는 중소기업에 입사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체계 또는 군기를 잡는다고 조직을 뜯어 고쳤다가 오히려 옥상옥의 결과만 초래한다면 의사소통은 심각한 병목현상에 빠질 수 있다. 성과 위주의 평가제도를 성급히 모방했다가 일 잘하는 직원은 회사를 떠나고 일 못하는 직원들만 남아 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보고서를 근사하게 뽑으려고 구축한 정보시스템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시스템 관리 때문에 인력만 늘어나는 꼴이 빚어진다. 우연을 회피하고자 시도하는 여러 행위들은 불확실성을 확실히 줄여주기는 한다. 그러나 그만큼의 기회 역시 줄어든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우연은 불확실성이고 불확실성은 위험이라는 단선적인 사고방식에서 깨어나야 한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태도가 지나치면 기회를 잃게 된다. 조직 운영에 있어 건강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생각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제고하려면 어느 정도의 유연함, 즉 우연성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꽉 짜여진 체계에 따라 조직을 움직이고 직원들이 그 체계 하에 보호 받도록 하는 것에 마음이 가겠지만 자유로움과 규율 사이, 불확실성과 확실성 사이, 우연과 효율성 사이에 적절한 무게중심을 찾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경영자가 가져야 할 중용의 덕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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