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에 브래드 바버(Brad M. Barber)와 테런스 오딘(Terrance Odean)은 증권 중개인들과 전화를 통해 주식을 사고 팔다가 온라인 주식 거래 방식으로 전환한 1,607명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그들의 투자 수익률과 투자 습관 등을 조사했습니다.1)  다소 복잡한 데이터 분석 방법을 썼기에 여기에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려우니 그 결과만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연구 샘플에 포함된 투자자들은 전화로 거래하던 방식에서 시장 수익률보다 2%포인트 이상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헌데 온라인 거래 방식으로 전환하고 나니 그들의 평균 수익률은 시장 수익률보다 연간 3%포인트 이상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전화를 통해 투자할 때보다 더 많이 더 적극적으로 거래했고 투기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주식 턴오버(turnover)율이 73.7%에서 95.5%로 증가했고, 투기성 턴오버율이 16.4%에서 30.2%로 상승한 것이 바로 증거였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더 많은 리스크를 감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 수익률에도 미치지 못한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바버와 오딘은 '지식의 환상(Illusion of Knowledge)'으로 이 결과를 설명합니다. 지식의 환상이란 무언가에 관한 데이터와 정보를 많이 알면 알수록 그것을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입니다. 투자자들은 온라인 거래 시스템을 통해 투자와 관련된 각종 수치와 그래프, 리서치 자료 등을 전화로 거래할 때보다 훨씬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 넘쳐나는 정보들은 투자자들로 하여금 시장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과신을 주기에 충분하죠. 지식의 환상에 사로잡혀 자신이 내리는 투자 의사결정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여기며 투기성 투자의 실제 리스크를 낮게 평가합니다. 


우리는 좀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좀더 많은 정보를 찾아내면 미래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허나 이 또한 지식의 환상은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밀하게 보이는 수치들과 정량적 모델이 특정한 미래를 확신하도록 만들지 않는지 경계해야 합니다.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가 쓴 <승자의 편견>에서 언급된 AT&T가 단적인 사례입니다.2)  1980년에 AT&T는 세계적인 컨설팅사인 맥킨지앤컴퍼니(Mckinsey & Co.)에게 2000년이 되면 전세계 휴대전화 사용자수가 얼마나 될지를 예측해 달라고 의뢰했습니다. 알다시피 맥킨지는 미국의 Top 5 MBA 출신이 아니면 들어가기 어려운, 소위 '두뇌 집단'이죠. 


맥킨지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광범위하고 복잡한 조사와 정밀한 정량 모델을 써서 2000년의 휴대전화 사용자는 전세계 통틀어 100만 명 밖에 안 될 거라 예측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AT&T는 휴대전화 사업 진출에 필요한 인프라 투자를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2000년 당시 휴대전화 사용자는 7억 5천만 명에 달했습니다. 예측치보다 무려 750배나 컸죠. AT&T는 휴대전화 시장을 선점할 기회를 잘못된 맥킨지의 예측 때문에 잃어버렸고 그 근본원인은 지식의 환상에 있었습니다.


많이 알수록 미래를 더 잘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적게 알아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많이 알면 알수록 미래의 다양한 가능성을 대비하지 못한다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수치와 각종 정보는 이미 지나온 과거에 대해서만 정확한 결과를 알려줄 뿐입니다. 그것들이 정확한 미래를 약속한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오늘 내리는 의사결정이 지식의 환상으로 비롯된 '과도한 믿음'은 아닌지 숙고하기 바랍니다.



(*참고문헌)

1) Brad M. Barber, Terrance Odean(2002), Online Investors: Do the Slow Die First?, The Review of Financial Studies, Vol. 15(2)


2)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 <승자의 편견>, 박여진 역, 생각연구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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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15년 전쯤 방영되었던 역사 대하 드라마를 케이블 TV에서 잠깐 본 적이 있습니다. 조선시대를 다룬 역사물인데도 15년이라는 세월이 화면에서 여실히 느껴지더군요. 등장인물들의 대화 내용은 고어체라서 지금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시청하는 동안 내내 화면 전환 속도와 대화의 흐름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한 사람이 대화를 마쳐도 바로 다른 사람에게 화면이 넘어가지 않았고 대화 사이의 공백도 길었습니다. 배우들이 말하는 속도도 왠지 느리기만 해서 어색하고 지루하기까지 하더군요.

그 이유는 진행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요즘 TV 프로그램에 익숙해졌기 때문이겠죠. 상황의 분위기와 배우의 표정을 찬찬히 살펴보고 싶어도 그럴 겨를이 없습니다. 프로그램의 낮은 질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화면을 빠르게 전환시키는 경우도 있어 보입니다. 심지어 시사 교양 프로그램들도 맹렬한 속도로 달리는 열차에 동승한 듯 합니다. 가뜩이나 TV가 시청자로 하여금 충분히 숙고할 기회를 빼앗아 바보로 만든다는 비난을 받아왔는데, 지금처럼 1~2초에 한번 이상 바뀌는 화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특히 뮤직 비디오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심함) 진짜로 바보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환경이 사람들을 아무 생각 없는 상태로 이끌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천천히 흘러가는 환경에 놓일 때보다 리스크가 큰 결정을 내린다는 점입니다. 프린스턴 대학의 제시 챈들러(Jesse J. Chandler)와 에밀리 프로닌(Emily Pronin)는 사람들이 생각의 속도를 빠르게 하도록 요구 받는 상황에 처하면 리스크 수용도가 높아진다는 점을 실험을 통해 규명했습니다.

그들은 컴퓨터 스크린 상에 "가스 스토브 위에 불씨가 계속 타오르고 있다."와 같은 문장이 빠르게 흘러가도록 하고 참가자들에 크게 소리를 내어 따라 읽으라고 요청했습니다.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문장을 느리게 보여주면서 따라 읽으라고 지시했죠. 여러 문장을 읽은 다음, 참가자들은 '풍선에 바람 넣기'라는 컴퓨터 게임에 임했습니다. 화면의 풍선을 여러 번 클릭하여 부풀어 오르도록 만드는 게임이었는데 과도하게 클릭하면 풍선이 터져 버려서 풍선 하나에 5센트씩 설정된 상금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게임 결과, 문장을 빠르게 읽은 참가자들이 느리게 읽은 참가자들보다 풍선을 더 많이 터뜨렸고 평균 클릭수도 더 많았습니다(26.6회 대 20.6회). 빠르게 문장을 읽다보니 생각의 속도가 빨라졌고 그 때문에 좀더 리스크가 큰 행동을 보였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런 효과를 재차 검증하기 위해 챈들러와 프로닌은 세 그룹의 학생들에게 화면 전환 속도가 다른 세 개의 동영상을 각각 보여준 후에 향후 6개월 이내에 리스크가 큰 여러 가지 행동들을 얼마나 할 것 같냐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화면 지속 시간이 0.75초에 불과하여 화면 전환 속도가 매우 빠른 동영상을 본 참가자들은 마리화나 흡연, 술 마시기 게임, 콘돔을 쓰지 않은 성관계 등과 같이 리스크가 큰 행동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이 참가자들은 느린 동영상을 본 참가자들에 비해 리스크가 큰 행동이 야기할 결과를 덜 부정적이라고 인식했습니다. 이 또한 환경의 변화 속도가 생각의 속도에 영향을 미치고, 생각의 빠른 속도는 리스크가 큰 행동을 유도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길들여질수록 리스크가 큰 행동을 쉽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음을 규명한 이 연구는 조직 구성원들의 행동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금융시장의 변화, 정부 정책의 변화, 경쟁사의 공격적인 마케팅 등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급박하게 변할수록 직원들은 좀더 빠른 사고와 빠른 행동을 요구 받습니다. 이런 상황일수록 구성원들이 찬찬히 앉아 상황을 숙고하거나 자료를 충분히 살필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이 실험의 결과로 새길 수 있습니다. 직원들의 경쟁 마인드를 고양하고 일하는 속도를 높여 빠르게 변하는 환경을 대처하겠다는 의도가 지나치면,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고 실패할 경우 손실이 큰 프로젝트를 선택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경계해야 하겠죠. 

상황 변화에 부화뇌동하려는 심리를 누르고 차분한 시선으로 환경을 조망하고 불확실성을 찾아내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복잡하고 돈 많이 드는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보다 효과적일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여러분의 생각 속도가 빨라지고 급박해진다고 느껴진다면, 자리에서 일어나 10분 정도 산책이라도 해야 합니다. 불필요하게 발생시킨 리스크가 언젠가 우리의 목을 죄어오지 못하도록 만들려면 말입니다.

생각의 속도를 늦추세요.


(*참고논문)
Fast Thought Speed Induces Risk Ta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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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변수에 따른 시나리오 경영   

2011. 12. 22. 09:00



어제 KBS 제1 라디오 (FM 97.3 MHz) '성공예감, 김방희 입니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북한 리스크와 시나리오 경영'이라는 주제로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2011년 12월 21일 08:40). 다음은 인터뷰의 주요 내용입니다.

 

사회자 멘트 : 한 일간지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과 관련해 20대 그룹에 긴급설문을 했는데, 절반 가까이가 ‘2012 경영계획’에 북한리스크를 반영하겠다고 답했다죠. 그 만큼 ‘북풍’이 가져올 경영변수가 예사롭지 않다는 얘기일텐데요. 이런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선, 닥칠 수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비책을 찾는 것이 현명할 수 있겠죠. 이것이 바로, 어제, 3분 mba 시간에도 잠시 말씀드린 시나리오 경영인데요. 이 시간 좀 더 구체적으로, 북한발 변수에 따른 시나리오 경영을 계획하고 운영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죠. 인퓨처컨설팅 유정식 대표와 말씀 나누죠.

유 대표님, 안녕하세요.


1. 우선, 시나리오 경영의 개념부터 정확하게 설명해주시죠.

개인이나 조직이 뭔가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바로 불확실성 때문이죠.
불확실성은 말 그대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을 말합니다. 시나리오 경영은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즉 몇 개의 시나리오로 펼쳐질지를 따져 본 다음에, 각 시나리오 별로 별도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전략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시나리오 경영은 다리를 여러 개 걸쳐 놓는 ‘양다리 전략’이라고 볼 수 있죠. 그렇게 해야만, 특정 시나리오가 터졌을 때 당황하지 않고 바로 실행에 옮길 수가 있습니다. 불확실성을 줄일 수 없기 때문에 시나리오 경영이 불확실성을 대비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입니다.



2. 미래에 닥칠 가능성을 다 열어 놓고 거기에 맞는 대비책을 세운다는 건데, 시나리오 경영이 어떻게 경영기법이 됐습니까?


시나리오 경영은 시나리오 플래닝, 이라고도 말하는데요, 원래 제2차 세계대전 때 군사물자를 보급하고 수송할 때 적용하던 방법이었습니다. 허먼 칸이라는 사람이 고안한 방법인데요, 이 방법을 1960년대에 로열 더치 셸이라는 정유회사가 들여와서 전략을 수립할 때 사용했습니다.

당시에 산유국보다는 정유회사가 더 힘이 셌는데요, 셸은 그런 시나리오가 유지될 수도 있고, 거꾸로 OPEC와 같은 카르텔이 형성되어 산유국의 힘이 강해질 거라는 시나리오를 또 하나 생각해 냈습니다. 그래서 투자전략이나 원유개발전략을 그에 따라 보수적으로 조정할 수 있었죠. 그 덕에 업계 7위였다가 2위로 급격하게 도약했습니다. 남들보다 시나리오 하나를 더 생각해서 말이죠.



3. 1996년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신년사 때, "여러 상황을 가정해, 각각에 맞는 대비책을 세워라“고 해서 화제를 모았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럼 이후로, 현재, 삼성이나 국내 기업들이 시나리오 경영을 도입해서 갖추고 있나요?
 

삼성이나 SK와 같은 대기업들은 시나리오 경영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삼성은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세워서 그에 따라 신수종사업이나 제품개발전략을 조정해 나가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블루레이 전략’입니다. DVD 이후에 과연 어떤 것이 차세대 저장매체가 될지 모르던 상황이었는데요, HD DVD가 있었고 블루레이가 있었습니다. 삼성은 일단 두 개의 기술에 모두 투자했습니다. 쉽게 말해 양다리를 걸친 거죠. 그렇게 하다가 블루레이 쪽으로 힘의 균형이 몰리고 난 다음에, 그쪽으로 투자를 집중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SK그룹은 전 계열사에 시나리오 플래닝을 담당하는 임원을 두면서 시나리오 경영을 2008년부터 추진했는데요, 2008년에 유가 급등기 때 SK에너지가 좋은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밖의 기업에서는 아직까지 시나리오 경영을 본격적으로 실시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알고 보면 , 그냥 긴축경영이나 비상경영인 것을 말로만 시나리오 경영이다, 그런 경우가 많죠.



4. 적어도, 많은 기업들이 당장 북한변수를 내년 경영계획에 포함시킨다는 입장이긴 한데요. 북한과 사업을 하든, 안하든, 글로벌 지정학적 정세에 영향을 받지 않을 기업은 없을테니까요. 과거, 북핵 실험, 금강산관광객 피살, 연평도 도발도,  재계엔 작지 않은 북한 변수가 됐습니다만, 이번 변수는 급이 달라서요. 이 상황은 어떻게 해석해야겠습니까?
 

결론적으로 말해,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큰 상황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신문 방송을 보니까 북한 전문가들이나 경제 전문가들이 하나 같이, ‘상황을 예의 주시하자’,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만큼 불확실성이 커서 아무런 예측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북한 정권의 안정이 걸린 문제라서 그 파급효과도 대단히 크죠. 예전에 있었던 북한의 도발 사태는 한반도의 위기를 가중시키는 상황이라서 그것은 ‘확실하게 안 좋아지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때는 불확실성이 오히려 작았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안개 속에 둘러쌓여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될 거야’, 이렇게 예측하기보다는 가만히 앉아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시나리오로 그려야 할 때죠. 기업에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할 생각이라면, 길면 안 되겠지만 이 시점에서 재고하고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할 겁니다.



5.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에선, 불완전한 예측보다는 닥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비책을 강구하는 것이 안전하겠지요. 그것이 바로 말씀하신 시나리오 경영일텐데. 일단, 북한변수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가 중요할 것 같은데요?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면, 어떤 변수들이 불확실성을 크게 만드는지를 찾아야 합니다. 그걸 위해서는 북한 내부의 정치적인 상황과 주변국의 이해관계 등을 면밀히 따지면서, 여러 전문가들이 모호해 하는 변수가 뭔지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바와 같이, 불확실성을 일으키는 가장 큰 변수는 김정은과 친위세력 간의 결속이 얼마나 강한가, 아니면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될 것인가입니다. 그에 따라 북한이 조기에 안정을 취할지가 결정되겠죠.

주변국에서 북한의 조기 안정화를 원한다는 메시지가 나오고 있는데요, 어쩌면 김정은의 취약한 권력 기반을 우려해서 사전에 문제를 봉합하려는 의도일지도 모릅니다. 주변국들의 움직임, 특히 중국과 미국이 북한과 언제, 어떻게, 얼마나 자주, 접촉하는지 분석하면 1년 내에 현실로 나타날 시나리오가 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6. 지금 상황에서, 현실 가능한 대표 시나리오는 어떤 것이고, 그에 대한 대응책은 무엇입니까?
 

아까 말씀드렸듯이, 북한 리스크와 관련해서 불확실성이 가장 큰 변수는 김정은과 친위세력, 즉 이너 서클 내의 조화 여부입니다. 순조롭게 과도기를 넘길 수도 있고, 반대로 중간에 뭔가 사단이 날 수도 있는 거죠. 그리고 또 하나 불확실성이 큰 변수는 유럽의 재정 위기가 조기에 안정될 것인가, 아니면 유로존 붕괴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연출되느냐의 여부입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조기 안정화 여부와 유럽 재정 위기의 해결 여부, 이 두 가지 변수 때문에 모두 4개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집니다. 

현재로서는 실현 가능한 대표 시나리오가 뭔지 감히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되죠. 당분간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자세입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북한 체제의 불안이 가중되고 유럽 재정 위기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치닫는, 그런 상황일 겁니다. 이 최악의 시나리오에 먼저 대비한 다음에, 상황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7. 그런데, 기업의 많은 CEO들은 이런 위기 상황을 해결할 하나의 정답을 원하지만 시나리오가 모든 것을 보여 주는 정답은 아니잖습니까. 시나리오 경영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점도 짚어주시죠.

시나리오는 정답을 보여주기보다는 그 시나리오 하에서 최적의 정답을 찾아가도록 개인과 조직에게 기회를 준다고 봐야 합니다. 실패를 하더라도 더 큰 실패를 하지 않도록 어느 선에서 막아주는 역할도 하죠. 시나리오 경영을 하려면, 기업 경영자들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어떤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날 것 같냐’, 이렇게 조바심을 내면 안 되겠습니다.

그런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미래는 객관식 문제가 아닙니다. 정답이 수시로 바뀔 뿐만 아니라, 정답의 내용도 모호합니다. ‘나에게 정답을 달라’ 이렇게 말하지 말고, 벌어질 수 있는 시나리오를 일단 조망하고 차분하게 기다리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봅니다.


인퓨처컨설팅 유정식 대표였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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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 관리의 리스크   

2011. 3. 29. 09:00



은행, 증권회사, 보험회사와 같은 금융기관들은 금리, 환율, 유가 등에 시시각각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리스크 관리 시스템(RMS)를 갖추고 있습니다(물론 없는 곳도 찾아보면 있겠지만). 요즘에는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제조업이나 일반 서비스업에서도 환경을 둘러싼 여러 가지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리스크 관리 기법을 채용하는 회사들이 제법 많아졌습니다.

회사마다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리스크 관리 체계의 기본적인 얼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조직 내외부에 존재하는 리스크를 파악합니다. 재무적인 리스크도 있고, 운영적인 리스크도 있습니다. 천재지변과 같은 자연 리스크가 있고, 사람들의 행동과 의사결정에 따른 리스크도 있지요. 이렇게 가능한 한 빠짐없이 기업의 성과에 영향을 미칠 만한 리스크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리스크 관리가 시작됩니다.



그 다음엔 각 리스크의 발생 가능성, 즉 발생확률을 추정합니다. 동시에 리스크가 현실로 나타났을 때 그 영향의 크기가 어떨지를 예측해 봅니다. 그러고는 발생확률과 영향의 크기를 곱해서 위험의 크기를 계산합니다. 예를 들어 공장에 화재가 발생한다는 '재해 리스크'의 확률을 1%이고 공장이 전소됐을 때의 예상 손실액이 100억 원이라고 하면, 이 리스크의 위험은 1억 원이 됩니다.

모든 리스크에 대해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어떤 리스크가 가장 큰 위협이 되는지가 파악이 되겠죠? 이제 해야 할 일은 리스크를 헷지(hedge)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환 리스크를 헷지하려면, 결제 통화의 비율을 조정한다든지 다른 회사에 환 리스크를 전가한다든지 등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운영리스크(직원의 비리, 운영상의 실수 등)에 대해서도 헷지 계획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이젠 수립된 헷지 계획을 실행합니다. 그러면서 제대로 실행에 옮겨지는지 점검하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기존의 헷지 계획을 수정 보완합니다. 만일 새로운 리스크가 발견된다든지, 발생확률과 영향의 크기가 달라져서 '가장 큰 위협이 되는 리스크'가 바뀐다면 그에 대한 헷지 계획도 수립해야 하겠죠. 리스크 관리는 이와 같이 전형적인 Plan-Do-See의 절차로 이루어집니다. 만일 여러분의 회사가 이와 같은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다면, 어떤 리스크가 현실로 나타나도 튼튼하게 대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 겁니다.

하지만, 리스크 관리 체계에 대한 지나친 믿음은 오히려 매우 위험합니다. RMS 내에 리스크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 리스크는 바로 '블랙 스완(Black swan)'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리스크 관리의 첫 단계가 조직을 둘러싼 내외부의 리스크를 파악하는 일이라고 했는데, 이 단계에서 '발생확률은 아주 낮지만, 한번 발생하면 그 영향이 상상을 초월하는' 블랙 스완을 찾아내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설령 인지를 했더라도 '설마 그런 일이 발생하겠냐'며 쉽게 무시 당하기 때문이죠. 또한 광범위하게 리스크를 규명하면 할수록 '자신감 착각'이 강화되기 때문에 블랙 스완을 놓치는 역설에 빠집니다.

이번 일본 원전 사고가 블랙 스완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지진에 철저히 대비해왔던 일본조차 높이 10m 이상의 쯔나미가 몰려올지,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원전을 위태롭게 만들지를 예측하지 못했죠. 리스크 관리가 다른 산업에 비해 체계적으로 잘 구축된 미국 금융기관들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를 대비하지 못해(혹은 알고도 무시해서)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몰고 온 것도 역시 블랙 스완의 대표적인 사례죠. 2001년에 발생한 9.11 테러, 최근에 중동을 휩쓰는 '쟈스민 혁명' 등도 역시 블랙 스완입니다.

이상하게도 사고는 예상했던 리스크가 아니라, 전혀 예상하지 않은 리스크게서 발생하고, 그 영향도 매우 큽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리스크 관리 시스템은 관리가 가능한 리스크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정되고 질서정연한 산업에서 유용합니다. 관리할 수 없는 리스크(블랙 스완)이 뛰쳐나오는 복잡한 환경에서는 가치가 적죠.

리스크 관리 체계의 두 번째 약점은 발생확률과 영향의 크기를 사전적으로 결정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발생확률이 1%인지, 80%인지는 매우 자의적입니다. 게다가 미래의 일이라서 아무리 객관적인 정보를 수집한다 해도 발생확률의 정확성을 기하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특정 정보 하나가 발생확률을 1%에서 90%로 갑자기 끌어올리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왕왕 발생하니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위협이 되는 리스크'가 무엇인지를 잘못 결정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수립된 리스크 헷지 계획도 무용지물이 되는 일이 허다합니다.

리스크 관리 체계의 세 번째 약점은 리스크 헷지 계획이 '자신감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 착각은 리스크를 파악할 때도 발생하지만, 가장 위협이 되는 리스크를 헷지하기 위해 정교한 기법과 절차를 수립함과 동시에 출현합니다. "자, 이렇게 만반의 대책을 세웠으니 문제 없겠지?" 라며 긴장의 끈을 놓는 것입니다. 또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을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으로 혼동하는 '실행 착각'도 발생합니다. 근사한 비전 문구를 액자로 만들어 벽에 걸어두면 그게 저절로 이뤄질 것처럼 믿는 것처럼 말입니다.

블랙 스완이 갑자기 출몰하는 복잡한 상황 하에서는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리스크를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는 목표는 매번 좌절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리스크 관리 체계라도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 고 생각합니까?

환경이 복잡해지고 매번 급변한다면 철저한 리스크 관리보다는 '적응'이 생존의 키워드입니다. 미래의 변화를 미리 그려보고 그에 따라 조직의 적응력을 길러가도록 체질을 개선해야 합니다. 일본이 대지진이라는 재앙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했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빠르게 회복하고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느냐가 그들의 저력을 말해줄 잣대입니다.

사전 대비와 사후 적응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중용적 시각이 필요합니다. 철저히 대비하는 조직도 좋지만, 빠르게 회복 가능한 적응력을 갖춘 조직으로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참고도서 : '블랙 스완', '이기는 결정의 제1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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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시나리오 플래닝에 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저에게 시나리오 플래닝에 대해 문의하는 분들이 예전보다 많이 늘어난 것으로 보아 2010년의 기업환경에 대해 많이들 불안하게 느끼나 봅니다.

그런데 고객 분들이 문의를 할 때마다 "시나리오 플래닝이 좋은 기법이란 것은 알겠는데, 우리 회사가 시나리오 플래닝을 할 만한 상황인가요?", "우리 회사에게 시나리오 플래닝이 꼭 필요할까요?"란 질문을 항상 곁들입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의 필요성과 유용함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간단하게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 봤습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때, 다음의 각 항목이 여러분의 회사에 해당하는지 체크해 보기 바랍니다.


"우리 회사에 시나리오 플래닝이 필요한가"  체크 리스트

1. 지금까지 해 왔던 예측이 자주 빗나가서 타격이 컸다.

2. 조직이 관료적이고 부서 간 벽이 높다.

3. 기능 통합적인(Cross Functional) 조직이 잘 운영된 적이 없다. 

4. 산업이나 회사 내부에 중대한 변화가 예고되어 있다.

5. 그런 변화가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감잡을 수 없다.

6. 미래 환경의 변화를 탐색하는 씽크탱크 조직이 없거나 미약하다.

7. 환경과 경쟁사가 변하고 난 후에야 뒤따라가는 경영 관행이 존재한다.

8. 의사결정이 임박한 중대한 사안이 있다.

9. 전략 방향에 대한 의견들이 분분하고 그 차이가 크다.

10. 경쟁사가 시나리오를 통해 의사결정하는 중이다.

11. 매년 사업계획이 요식적으로 이루어지고, 돌발변수를 대응하지 못한다.

12. 미래에 대한 '집중적인'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다.

13. 외부의 힘(정부, 경쟁자, 고객, 공급자 등)들이 가하는 위협이 크다.

14. 산업의 특성상 매출이나 이익의 등락이 심한 편이다.


이 14개의 항목에 대해 '그렇다'라고 답한 개수가 8개 이상이면, 시나리오 플래닝을 도입하여 조직의 '미래 대비 역량' 강화하고, 전략의 환경 불일치로 인한 '전략 리스크'를 대비할 것을 권합니다.

전략 리스크 대비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기업들은 오래 전부터 간단한 의사결정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전략 수립에 시나리오 플래닝을 활용합니다. 로열 더치 셸, 아스트라제네카와 같은 다국적 기업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들 기업의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 되어 시나리오 플래닝을 할 만한 역량이 된다고 흔히들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회사는 뭐, 작은 회사인 걸요?"라고 말하면서 뒤로 물러납니다. 하지만, 그들의 오늘을 만든 성공요인 중 하나는 바로 전략 리스크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 즉 시나리오 플래닝이었습니다. 

"회사가 역량이 되어야만 시나리오 플래닝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시나리오 플래닝을 함으로써 미래의 적응 역량을 키우고 경쟁력을 강화하자"라는 방향으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적극적으로 불확실성을 끌어 안고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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