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행동이 다른, 경영의 현장   

2012. 9. 21. 15:04


그냥 생각나서 적어봤습니다. 여러분도 말과 행동이 다른, 모순적인 면이 있으면 댓글로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 잡을 수 없는 경영의 본질?)



장기적인 미래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적어도 3~5년 먼 미래만 하루종일 생각하는 직원을 두지 않는다.

==> 그러면서 평가는 단기적으로(1년 단위로) 한다.


일하는 데에 돈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 그러나 우수인재를 데리고 오려면 돈을 많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회사가 어려워지면 1시간 더 근무하자고 제안한다.


인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이미 회사에 있는 인재는 신경 쓰지 않는다. 

==> 우수인재는 항상 외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랫 직급에서 일 잘한다고 팀장으로 승진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

==> 그러나 아랫 직급에서 일 잘해야 승진시킨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보고체계는 그대로 유지한다.

==> 보고체계를 뛰어넘는 소통은 제재를 받는다.


일의 결과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하는 것은 참지 못한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버려야 할 사업은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 늘 '결정 장애'다.


틀을 깨는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틀을 깨는 사고가 제시되면 비난할 준비를 한다.


독창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 그러나 다른 회사가 하지 않은 전략이라면 성공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한다.


권위주의를 타파하자고 말한다.

==> 그러나 사장실과 임원실은 필요 이상으로 크다.


휴가를 다 소진하라고 말한다.

==> 그러나 다 소진하기 위해 휴가를 자주 쓰면 일 안 한다고 뭐라 한다.


우수한 여성인재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 그러나 출산휴가 가면 싫어한다.


괴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 그러나 평가할 때는 괴짜에게 낮은 점수를 준다.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라고 말한다.

==> 그러나 '다음날 아침'까지 완성해서 보고하라고 말한다.


사회에 기여하자고 말한다.

==> 그러나 정작 직원들의 삶의 질은 외면한다.




  
,

0은 홀수야. 아빤 그것도 몰라?   

2010. 1. 25. 10:17

어제 아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더군요.

     "아빠, 0은 짝수야, 홀수야?"

아들이 요새 수학에 흥미를 느끼는지라 더하기, 빼기 같은 사칙연산을 곧잘 합니다. Pop Math 라는 앱은 계산식과 답을 짝지워서 풍선을 터뜨리는 게임인데, 아들이 애용하는 아이템이 되어 제 아이폰에 저장돼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런 질문을 엉겹결에 받으니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할지 순간 막막하더군요. 알다시피, 수학자들이 정해 놓은 '짝수'의 정의는 "2로 나누어 떨어지는 정수"입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0은 당연히 짝수입니다. 말은 쉬워도 이것을 이제 만 6살된 아이에게 설명한다는 건 쉽지 않더군요. 한참을 생각하다가,

     "0은 사람들이 짝수라고 정해 놓았어."

이렇게 옹색한 답변을 하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저의 형편없는 대답을 반박하는 아이의 논리를 듣고 나니 가볍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아이는 이렇게 자신의 논리를 폈습니다.

     "0 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외롭잖아. 외로운 건 혼자라서 그래.
      그러니까 0은 홀수지. 아빤 그것도 몰라?"

이 논리의 주인공


아이의 대답은 당연히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아무것도 없다며' 앞에서 언급하더니 뒤에서는 '혼자라서(혼자 있어서)'고 말한 까닭에 0 이 홀수인 이유를 증명하지 못합니다. 어떤 분이 링크해 주신 위키 자료를 보니까 0 이 짝수라는 주장이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허나, 이 글은 0 이 짝수냐, 홀수냐를 증명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니 논증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아이의 대답에 놀란 이유는 논리를 넘어서는 감수성 때문이었습니다. 저 같은 어른들은 "짝수는 2n이고, n은 정수다"라는 무미건조한 수학 정의를 통해 0을 이해하죠. 하지만, 아이는 0 이란 숫자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을 통해 0 과 '교감'했던 겁니다. 교감하지 않고서는 그런 대답이 나올 수 없겠죠.

아이의 현답(?)을 듣고 나니 어른이 되는 일은 많은 것을 얻기도 하지만 또한 많은 것을 잃는 과정이라 생각해 봅니다. 종이 위에 찍힌 동그란 얼룩을 어른들에게 보여주고 "이게 뭡니까?"라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 "점"이라고 간단명료(?)하게 답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아빠의 헝클어진 머리 모양. 내가 어제 먹다 버린 과자 부스러기..." 등 다양한 대답이 쏟아진답니다. 나이가 들수록 답변의 길이가 극적으로 짧아지죠.

세상을 살면서 논리가 앞서야 할 때도 분명 있지만, 지나치게 그쪽으로만 경도되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아이를 통해서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으로 공감하고 교감하려는 노력이면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분쟁도 종식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아빤 그것도 몰라?" 

맞습니다. 모릅니다. 그래서 어른은 아이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니까요.

***********************************

이 포스트는 이제 아이폰 App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아래의 링크를 눌러서 여러분의 아이폰에 inFuture App을 설치해 보세요. 




  
,

지난 번 포스트에서 의견이 상충되는 현상인 '모순', '반대', '소반대'에 대한 논리적 해석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중 '모순'되는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려면, 두 개의 명제(혹은 주장) 중에서 참인 것과 거짓인 것을 명확하게 가르는 분석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때 필요한 분석이 바로 '결정적 분석(Crucial Analysis)'입니다.

결정적 분석이란 말은 과학에서 말하는 '결정적 실험(Crucial Experiment)'라는 용어에서 제가 따온 것입니다. 문제해결 과정에서 행하는 실증이 분석이고 과학에서 행하는 실증은 실험이므로, 결정적 실험이 어떤 의미인지를 안다면 결정적 분석의 방법을 깨달을 수 있을 뿐더러 나아가 모순되는 상황을 일시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결정적 분석? 도대체 무슨 말인가?


결정적 실험이란 말은 17세기의 과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이 처음 사용한 용어입니다. 상당히 강력한 뉘앙스를 지닌 말인 듯 하지만 그 의미는 생각 외로 단순합니다. 결정적 실험이란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꼼짝 마!" 실험을 일컫습니다. 실험 결과가 나오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못하도록 일시에 정리해버리는 실험이죠.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세계관에 물든 당시 대중의 사고를 깨뜨리기 위해 갈릴레이가 행했던 물체낙하실험을 가지고 결정적 실험이 뭔지 개념을 잡아보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설(대중의 고정관념)과 갈릴레이의 주장(즉 가설)은 각각 다음과 같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
갈릴레이          :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는 동시에 떨어진다

        * '무거운 물체보다 가벼운 물체가 빨리 떨어진다'는 제3의 주장이 나올 수 있지만
            이 주장은 명백히 거짓임이 이미 증명됐다고 가정함

만일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참이라면, 갈릴레이의 가설은 거짓입니다. 반대로, 갈릴레이가 맞다면 아리스트텔레스는 틀립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개의 가설은 서로 모순입니다. 이 모순을 깨려면 결정적 실험이 행해져야 합니다. 그 실험이 바로 지난 포스트에서 설명했던 갈릴레이의 물체낙하실험입니다. 직접 100파운드 짜리와 1파운드 짜리 금속공을 피사의 사탑에서 떨어뜨리면 두 개의 명제 중 어느 것이 참인지(반대로 어떤 것이 거짓인지) 가려내고 논란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정적 실험은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갖습니다.

1단계 :  첫번째 가설(H1)이 맞으면 → A라는 결과가 나오리라 예상 
            두번째 가설(H2)가 맞으면 → B라는 결과가 나오리라 예상

2단계 : 측정

3단계 : 측정 결과가 A와 B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 판단

4단계 : 만일 A라면, H1이 참이고 H2는 거짓
           만일 B라면, H2가 참이고 H1은 거짓

4단계에 걸쳐 결정적 실험의 구조를 기술했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심플합니다. 이 구조에 갈릴레이의 낙하실험을 대입해 보겠습니다.

1단계 :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맞으면
                  → 무거운 물체가 땅에 부딪히는 순간에 가벼운 물체는 낙하 중이다
            갈릴레이의 주장이 맞으면
                  → 두 물체는 땅에 동시에 부딪힌다

2단계 : 측정

3단계 : 측정해보니 무게가 다른 두 물체는 땅에 동시에 부딪혔다

4단계 : 그러므로, 갈릴레이의 주장은 참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거짓

혹여 '결정적 실험은 뭐 별것 아니네'라는 반응이 나올지 모르겠군요. 사실 갈릴레이의 실험은 현대인들의 시각으로 보면 매우 간단하고 자명합니다. 그 이유는 1단계 때문입니다. 각 가설로부터 결과가 쉽게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설이 옳다고 가정하고 거기서 나올 만한 결과를 논리적으로(그리고 머리 속으로) 예상하는 일이 생각보다 녹록치 않습니다. 

가령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 중에 '중력에 의해 빛이 휘어진다'라는 가설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 가설이 맞다고 가정할 때 나올 수 있는 결과는 무엇일까요? '강력한 중력을 지나면 빛이 휘어진다'가 예상되는 결과라고 말하면 가설을 한번 더 반복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것으로 빛이 중력 때문에 휜다는 걸 실험할 수 있습니까? 

가설로부터 예상되는 결과는 '실험가능성(experimentability)'이 커야 의미가 있습니다. '강력한 중력을 지나면 빛이 휘어진다'라는 결과 예상은 실험가능성이 아주 낮습니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실험해야 하는가?'란 의문만 더 가중시킬 뿐입니다. 반면에 갈릴레이의 가설에서 '두 물체는 땅에 동시에 부딪힌다'는 결과 예상은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기 때문에 실험가능성이 아주 크죠.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가설이 맞다면 '일식일 때 태양 뒤 편에 있는 별은 실제 위치에서 잘못된 곳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라는 결과를 예상했습니다. 이 예상 결과는 실험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이란 영국의 실험물리학자는 실제로 일식이 일어난 1919년에 서아프리카의 프린시페 섬에서 일식이 일어나는 동안 별의 위치가 달라짐을 관측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의 가설이 옳음을 증명했습니다. 

(* 이 증명은 과학철학자 칼 포퍼에 의해 '반증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옳지 않다'라고 공격 받았습니다. 이 글은 과학철학을 논하는 글이 아니므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과학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문제해결을 논하는 중임을 잊지 마십시오. 모순되는 상황을 일시에 정리하기 위해 필요한 '결정적 분석'을 과학에서 말하는 '결정적 실험'의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조금은 장황하게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자, 문제해결사가 인터뷰를 해보니 다음과 같이 상충되는 두 개의 의견을 청취했다고 가정해보죠. 혼동을 피하기 위해 다른 의견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첫번째 의견 : 직원들의 업무량은 아주 많다
두번째 의견 : 직원들의 업무량은 많지 않다

예상컨데 첫번째 의견은 부하직원들이, 두번째 의견은 팀장이나 임원들이 제기한 주장인데요, 일일이 따져보지 않아도 두 의견은 서로 모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하나가 명백히 참임을 증명하면 다른 하나는 자동으로 거짓이 됩니다. 이런 "꼼짝마" 판단을 얻으려면 결정적 분석을 시행해야 합니다. 

결정적 분석의 단계도 결정적 실험과 거의 동일합니다. 1단계가 가장 중요하고 어렵다는 것도 동일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결정적 분석을 설계하겠습니까? 아마 아래와 같지 않을까요?

1단계 :  업무량이 많으면
                  → 직원들이 퇴근시간을 넘겨 일한다
            업무량이 적으면
                  → 직원들이 정상시간에 퇴근한다

2단계 : 측정

3단계 : 한달 간 측정해보니 평균적으로 밤 9시에 퇴근한다

4단계 : 그러므로, 첫번째 의견은 참이고, 두번째 의견은 거짓.

이 실험은 결정적 실험인가요, 아니면 비결정적 실험인가요? 실험 결과를 누군가에게 제시하면 아마도 "인터넷이나 하면서 빈둥거리면서 밤 9시까지 퇴근하지 않는 직원들이 많은 것 같은데 무슨 소리냐? 직원들의 업무량은 얼마 안된다구!" 라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릅니다. 분석 결과에 왈가왈부할 여지를 주었으니 결정적 분석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1단계 :  업무량이 많으면
                  → 직원들이 1시간 미만의 여유시간을 가진 채 하루 8시간 이상을 일한다
            업무량이 적으면
                  → 직원들이 1시간 이상의 여유시간을 가지며 하루  8시간 이상을 일한다

2단계 : 측정

3단계 : 한달 간 측정해보니 여유시간이 평균적으로 40분이다

4단계 : 그러므로, 첫번째 의견은 참이고, 두번째 의견은 거짓.

이것은 결정적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여유시간이 1시간 이상이냐 아니냐가 '업무량의 많음' 여부를 가리는 기준이 되느냐의 문제가 있지만, 분석하기 전에 서로 합의가 됐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분석은 결정적 분석이 됩니다. 측정된 여유시간은 1시간 이상이거나 1시간 미만, 둘 중 하나이므로 참과 거짓이 분명하게 갈립니다.

그런데, 결정적 실험에서 실험가능성이 높아야 하듯이, 결정적 분석에서는 '분석가능성(Analyzability)'이 역시 높아야 합니다. 여러분 중 누군가가 "여유시간 측정은 분석가능성이 높습니까?" 라는 의문이 제기할지 모르겠군요. 직원들의 동태를 일일이 살피면서 그들이 노는지 일하는지를 판단할 때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여유시간이 40분 나왔다해도 '직원들의 업무량이 아주 많다'는 주장이 명백히 옳다고 선언하기 어렵습니다. 이 예시 역시 분석 결과에 왈가왈부가 여지가 있으므로 결정적 분석이 아닙니다.

어딘가에서 "도대체 결정적 분석을 어떻게 설계하란 말인가요?" 라는 볼멘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과학과 달리 문제해결 과정이 목표로 하는 문제는 사회 현상이므로 '완벽한 결정적 분석'을 설계하고 실
시하는 일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항상 논란의 여지가 숨어있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최대한 결정적 분석의 조건을 갖추는 일입니다. "이런이런 행동들은 업무가 아니라 사적 용뮤라고 보겠다"고 미리 선언하고 사전에 합의를 해두면 측정의 오류를 상당 부분 줄여서 분석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분석 결과가 나왔을 때 반론을 차단함으로써 해결책 마련에 힘을 집중할 수 있지요. 반론을 막는 데에 힘을 소진하면 문제해결은 이미 실패한 것이나 진배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모순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문제해결사는 다음과 같은 행동강령에 따라 분석을 실시하기 바랍니다.

1. '결정적 분석'의 구조를 구상한다
2. 가설별로 예상되는 결과의 '분석가능성'을 살핀다
3. 분석가능성이 높은 예상 결과를 취한다
4. 완성된 '결정적 분석'의 구조를 사전적으로 혹은 사후적으로 이해관계자에게 이해시킨다

문제해결기법을 논하면서 과학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요, 수천 년 동안 축적된 과학의 방법론을 살피고 차용하면 상당한 이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과학 역시 문제해결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과학 이야기를 언급할 텐데요, 그때마다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참에 문제해결기법을 과학적인 기반으로 탄탄하게 익히자"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읽어주길 바랍니다.

오늘도 즐겁게 문제해결 하십시오.



  
,

오늘은 쉬어가는 차원에서 문제해결과 관련되지만 그렇다고 핵심은 아닌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핵심이 아니라고 말하면, 이 포스트를 건너뛰고(또는 이 블로그를 닫아 버리고) 넘어갈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전 믿습니다. 문제해결사로서 역량을 키우고자 하는 분들은 반드시 이 글을 끝까지 읽으리란 것을. 그렇지 않습니까? 

'모순(contradiction, 矛盾)'이란 말 아시죠?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입니다. "이렇게 쉬운 걸 설명하다니 진짜 쉬어가려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죠? 'contradiction'이란 말은 라틴어의 'contradicere'에서 유래했는데요, 'speak againt' 즉 '반대하다, 대항하다, 욕하다'의 뜻입니다. 글쎄요, 모순의 의미로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모순의 정확한 의미는 영어의 어원보다는 한자어의 유래에서 찾는 게 더 낫겠군요. 알다시피 모순이라는 한자어는 중국 초나라 때의 고사에서 기원합니다.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이 시장에서 이렇게 구경꾼들에게 외쳤다죠.

"이 창으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제 아무리 두껍고 튼튼한 방패라도 여지 없이 뚫어버리는 괴력을 가진 창입니다요. 에~또, 이 방패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세상의 모든 창을 능히 막을 수 있는 방패다, 이겁니다. 자, 애들은 가라. 어른들은 떠나지 말고 부디 남으시오. 무슨 방패든 다 뚫어버리고, 무슨 창이든 다 막아내는 방패를 구경들 하시오."

이를 재미나게 보고 있던 구경꾼이 이렇게 묻습니다. "그러면 이 창으로 이 방패를 뚫을 수 있소?"

상인         :  당근이지요. 헤헤
구경꾼 왈  :  이 방패는 뭐든지 다 막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소?
상인         :  이 아저씨, 당근을 못 먹어보셨나? 당근 당근 또 당근이지요. 헤헤
구경꾼      :  이보쇼, 앞뒤가 안 맞잖소! 에이, 사기꾼 같으니...

창을 뜻하는 모(矛)와 방패를 뜻하는 순(盾)이 더해진 이 단어는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할 때 사용되는 일상어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또 하나의 예


모순은 또한 논리학에 쓰이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논리학에서는 모순을 어떻게 정의할까요? 그냥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라고는 정의하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모순의 의미는 까다롭습니다. 우리가 모순이라고 말하려면 두 개 이상의 명제로 이루어진 진술(statement)이 있어야 합니다. "이 창은 무슨 방패든 다 뚫는다"라는 하나의 명제만 있을 때는 모순인지 아닌지 판단이 불가능합니다. "이 방패는 무슨 창이든 다 막아낸다"라는 또 하나의 명제가 추가되어야 모순인지 아닌지를 규명할 수 있는 거죠.

다행히 모순의 고사에는 두 개의 명제가 존재합니다. 두 개의 명제를 아래처럼 다시 기술하겠습니다.

첫번째 명제 : 이 창은 무슨 방패든 다 뚫는다
두번째 명제 : 이 방패는 그 어떤 창에도 뚫리지 않는다

첫번째 명제가 '참'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두번째 명제는 참일까요, 거짓일까요? 첫번째 명제에서 모든 방패를 다 뚫어버리는 창이 존재한다고 했으므로, 두번째 명제는 명백히 거짓입니다. 이번엔 첫번째 명제가 거짓이라고 가정해보죠. 그렇다면 두번째 명제는 명백히 참이 됩니다. 반대로, 두번째 명제가 참이면 첫번째 명제는 거짓이 되고, 두번째 명제가 거짓이면 첫번째 명제는 참이 됩니다.

자, 이제 모순의 정의가 눈에 들어오는지요? 모순이란 다음과 같이 정의됩니다.

모순 = 두 개의 명제 A와 B가 동시에 참일 수도 없고, 동시에 거짓일 수도 없다

문제해결사가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자료를 조사하다 보면 "이건 앞뒤가 안 맞는데? 모순이구나" 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때 모순이라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상에서 쓰는 '말도 안돼'의 의미가 모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두 개의 명제가 동시에 참이 될 수 없고, 동시에 거짓이 될 수도 없는지 검증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단어 하나 쓰는데도 일일이 따져야 합니까? 도대체 왜 그래야 하죠?" 또는 "에이 귀찮아서 문제해결사 안 할래"라는 강한 불만이 가슴 속에서 용솟음 친다면 다음의 예를 보며 분기(?)를 누르시기 바랍니다. 다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 명제 : 사장님이 총애하는 유일한 직원은 A이다
두번째 명제 : 사장님이 총애하는 유일한 직원은 B이다

자, 이 두 개의 명제는 서로 모순일까요, 아닐까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모순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려면 두 개의 명제가 동시에 참이 될 수도 없고, 거짓이 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첫번째 명제가 참이라면, 두번째 명제는 거짓이어야 합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우리 회사 직원은 모두 100명이라고 전제하겠습니다.

총애하는 유일한 직원이 A가 맞다고 하면 두번째 명제는 명백히 거짓이 됩니다. 그런데 첫번째 명제가 거짓이라면(총애하는 유일한 직원이 A가 아니다) 두번째 명제가 참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장님이 실은 C를 총애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두번째 명제는 거짓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두번째 명제를 참이라고 가정하면 첫번째 명제는 명백히 거짓이지만, 거짓이라 가정하면 첫번째 명제는 거짓일 수도 있지요.

인터뷰 등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건 앞뒤가 맞지 않아. 그러니 모순이야'라고 말하기 쉽지만 모순의 정의에 따르면 이같은 상황은 절대 모순이 아닙니다. 두 명제 사이의 이런 대립적인 관계를 '반대(contrary)'라고 명명합니다. 그 정의는 아래와 같습니다.

반대 = 두 개의 명제 A와 B가 동시에 참일 수 없지만, 동시에 거짓일 수 있다

위의 반대는 상대적으로 강한 반대입니다. '동시에 참일 수 없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거짓일 수도 없다'고도 말하는 반대도 있는데요, 이를 소극적인 반대라는 의미로 '소반대(subcontrary)'라 부릅니다. 그 예는 아래와 같습니다.

첫번째 명제 : 어떤 직원들은 열심히 일한다
두번째 명제 : 어떤 직원들은 게으르다

이 말도 언뜻 보면 모순처럼 느껴지는 상충되는 의견들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첫번째 명제를 참이라고 가정하면, 두번째 명제는 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떤 직원들은 열심히 일하는 반면에 다른 직원들은 동시에 게으름을 피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첫번째 명제를 거짓이라고 가정하면(즉 모든 직원들은 게으르다) 두번째 명제는 거짓이 아니라 명백히 참이 됩니다. 따라서 소반대의 정의는 아래와 같습니다.

소반대 = 두 개의 명제 A와 B가 동시에 참일 수 있지만, 동시에 거짓일 수 없다

자, 이제 모순의 의미와 모순이라고 잘못 알기 쉬운 상황을 이해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모순과 반대, 그리고 소반대의 정의를 올바르게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문제해결사가 인터뷰를 하거나 자료를 조사할 때 아주 빈번하게 직면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조직에 있으면서도 이 직원이 하는 말과 저 직원이 하는 말이 서로 다릅니다. 사장이 보는 시각과 일반직원들이 느끼는 감정이 서로 부딪히지요. 

의견이 상충되는 상황을 접할 때 각자의 목소리가 모순인지, 반대인지, 아니면 소반대인지를 가릴 줄 안다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명백한 모순이라고 판단되면, 두 개의 명제 중 참인 것 하나를 가려내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게 좋습니다. 창이 강한지 방패가 강한지 서로 부딪혀보면 모순의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 테니까요.

'반대'라는 상황이면 두 개의 목소리(명제 혹은 집단)가 동시에 거짓일 수도 있음을 밝혀서 적대적인 마음과 오해를 풀어 화해하는 방향의 해결책이 적절할 겁니다. 그리고 '소반대'의 상황이면 두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참일 수 있으므로 상충되는 현상으로부터 합의안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모순'이면     →  시시비비를 가리는 '결정적 분석'을 실시한다
'반대'이면     →  오해를 풀고 화해하는 방향의 해결책을 구상한다
'소반대'이면  →  합의안을 유도한다

모순을 해소하기 방법으로 '결정적 분석'을 언급했는데요, 간단하게 말해서 창과 방패를 서로 부딪혀 보는 실험처럼 '한방에 모순을 날려버리는' 분석을 의미합니다. 이는 중요한 개념이므로 다음 글에서 보다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편안하게 쉬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나요? 머리가 더 아팠다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허나 문제해결사는 항상 의심해야 합니다. 쉬어가는 코너라고 글쓴이가 얘기해도 "음, 과연 그럴까?"라고 회의적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교훈(?)을 잊지마시고, 다음 글에서 또 만나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