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속에서 개인들은 각자 최대한 낼 수 있는 노력을 경감한다는 링겔만 효과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100의 능력이 있는데도 집단에 속하면 50이나 60 정도 밖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개인의 기여가 구분되어 측정되지 않기에 설령 집단의 성과에 무임승차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비난 받지 않을 거라는 심리 때문에 링겔만 효과가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집단 속에서 개인의 기여가 구분되어 평가되거나 각 개인의 성과가 비교되는 조건이라면 링겔만 효과가 약화되리란 가설을 세울 수 있겠죠. 각자 무엇을 달성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일러주고 그 결과를 각자 구분해 평가한다면 집단에 '묻어가려는' 사회적 태만을 줄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아마 여러분도 지난 번 글('집단에 속한 당신은 분명 게으르다')에서 이 가설을 떠올렸을 것 같네요.



스테판 하킨스(Stephen G. Harkins)와 제프리 잭슨(Jeffrey M. Jackson)은 이런 가설 하에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그들은 160명의 학생들을 모집하여 어떤 물건의 이름을 제시하고 그것을 어떤 용도로 쓸 수 있을지 가능한 한 많이 생각해 보라는 과제를 부여했습니다. 예를 들어 벽돌이라면 담을 쌓는 데 쓰는 일반적인 용도 이외에 못을 박는다든지, 변기 물통 속에 집어넣어 물을 절약한다든지 등의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겠죠. 

하킨스와 잭슨은 두 가지 실험 조건을 설정했습니다. 하나는 용도의 개수를 개인별로 구분하느냐, 아니면 4명으로 이뤄진 팀 단위로 합산하느냐의 여부였습니다. 즉 개인의 기여가 구분되어 측정되느냐, 집단의 성과로 희석되느냐였죠. 나머지 하나의 조건은 팀 멤버들이 모두 동일한 물건의 용도를 생각하느냐, 아니면 각자 다른 물건의 용도를 생각하느냐의 여부였죠. 멤버들이 동일한 과제를 수행하면 서로 누가 더 많은 용도를 생각해냈는지 비교 가능한 반면, 사로 다른 물건의 용도를 고민하면 비교하기가 곤란할 겁니다. 하킨스와 잭슨은 학생들을 4개의 그룹으로 나눠 이 두 가지 실험 조건에 따라 과제를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어떤 조건의 학생들이 가장 성과가 좋았을까요? 여러분도 예상했겠지만, '개인별 측정 - 비교 가능' 팀이 평균 24.9개의 용도를 생각해냄으로써 가장 높은 성과를 보였습니다. 즉 개인별 기여가 측정되고 팀원들이 동일한 과제를 수행할 때 가장 성과가 높았다는 뜻이죠. '개인별 측정 - 비교 불가능' 팀은 19.7개, '집단 측정 - 비교 가능' 팀은 19.8개, '집단 측정 - 비교 불가능' 팀은 19.3개로 성과가 서로 고만고만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성과가 비록 개인별로 측정된다 하더라도 각자 다른 과제를 부여 받을 때(즉 서로 비교하기 어려울 때)는 개인의 노력이 집단 속으로 뭉뚱그려질 때와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집단에 속한 개인의 기여가 정확하게 구분되어 평가되고 동시에 집단의 멤버들이 모두 동일한 과제를 수행할 때 링겔만 효과가 약화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 실험의 결과를 기업에 반영할 때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이 실험에서 설정된 상황과 기업 내의 팀이라는 단위조직의 상황이 그다지 비슷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팀으로 묶여 있다 해도 팀원들은 각자 서로 다른 내용의 업무를 담당하기에 성과를 비교하기 어렵고 비교해서도 안 됩니다. 위 실험의 결과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서로 다른 내용의 성과들을 비교하여 줄을 세우는 상대평가 방식이 직원들의 사회적 태만을 줄인다고 믿어서는 곤란하다는 말입니다. 설령 링겔만 효과가 줄어든다고 해도 상대평가 방식은 직원들이 협력하려는 동기를 소멸시키고 마니까요. 이에 대해선 그동안 다른 포스팅에서 여러 번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 실험의 결과를 유의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일반 조직에서 팀원들의 성과를 개인 단위로 구분하여 측정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점입니다. 비록 팀원들이 각자 다른 업무를 수행한다고 해도 어느 한 팀원의 업무가 다른 팀원의 인풋이나 아웃풋이 되고 하나의 업무를 둘 이상의 직원이 협업하여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A의 성과이고 나머지가 B의 성과인지 구분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 실험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개인별 성과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지표를 만들어서 링겔만 효과를 없애겠다고 생각한다면 실패가 자명합니다. 개인별 지표의 강화 역시 직원들의 협력 동기를 크게 약화시키고 맙니다. 

더욱이 이 실험은 '누가 얼마나 많은 개수의 용도를 생각해냈느냐?'와 같이 누구나 인정하는 정량지표로 평가했다는 것에 또한 유의해야 할 점입니다. 직원들의 업무 내용이 정성적이며 그 성과 또한 정성적으로 평가 받을 수밖에 없는 조직에서는 이 실험의 의미를 제한적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업무가 분명 정성적인데 정량적으로 평가해야겠다며 우스꽝스러운 정량지표(예 : 전략 보고서 제출 건수)를 만들어내면 곤란하겠죠.

따라서 이 실험은 콜센터나 영업조직과 같이 구성원들이 모두 동일한 과제를 수행하고 그 결과가 동일한 지표로 정량적으로 측정되어 서로 비교 가능한 조직에서나 의미를 갖습니다. 물론 이런 조직은 이미 사회적 태만을 줄이기 위한 나름의 장치를 가동 중이기에 이 실험이 추가적인 방법을 시사하지는 못할 겁니다. 사실 지난 번의 글('집단에 속한 당신은 분명 게으르다')에서 설명한 실험의 조건도 조직 내의 상황과 다르기 때문에 한번은 걸러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오늘 글에서 소개한 실험은 태만과 무임승차를 없애는 데에 개인별 성과 측정이라는 단도직입적인 방법이 과연 통할까, 라는 질문에 '그렇다'라는 대답을 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시사합니다. One-size-fits-all 솔루션은 없습니다. 어쨌든 집단이 어떤 특성을 가지느냐와 상관없이 일정 정도의 사회적 태만과 무임승차자가 존재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애석하지만, 어느 정도는 떠안고 가야 할 필요악일지 모릅니다.


(*참고논문)
The role of evaluation in eliminating social loaf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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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겔만 효과(Ringelmann Effect)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이 말은 1913년에 독일의 심리학자 맥시밀리엔 링겔만(Maximilien)이 수행한 유명한 실험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링겡말은 참가자들에게 줄다리기를 하도록 지시했는데, 그 줄에는 참가자들 각자 얼마나 세게 줄을 당기는지 측정할 수 있는 장치가 달려있어서 집단 전체가 줄을 당길 때의 힘과 개인이 혼자 줄을 당길 때의 힘을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여럿이 줄을 당기면 당연히 혼자 당길 때보다 힘이 커지지만, 놀랍게도 집단에 한 명의 참가자가 추가된다고 해서 비례적으로 집단의 힘이 커지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집단이 3명이면 2.5명분의 힘이, 8명이면 고작 4명분의 힘이 측정되었으니까 말입니다. 이렇게 집단의 산출하는 결과는 개인들의 노력을 모두 합한 것보다 작다는 것이 링겔만 효과입니다. 다시 말해, 개인이 집단에 속해 있을 때는 자신의 힘을 최대로 내지 않는다는 것이죠.



오하이오 주립대의 빕 라테인(Bibb Latane), 키플링 윌리엄스(Kipling Williamns), 스테판 하킨스(Stephen Harkins)는 링겔만 효과를 다시 한번 검증하는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그들은 참가자들에게 혼자서 '손뼉 치기'나 '소리 지르기'를 하도록 하고, 그룹을 이루어 같이 하도록 요청한 다음 소리의 크기를 각각 측정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가능한 한 큰 소리를 내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역시 링겔만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참가자들은 혼자서 소리를 낼 때는 평균 3.7(dynes/sq cm)의 값을 기록했으나, 4명이 한 그룹이 되면 1인당 평균 1.8 밖에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혼자일 때에 비해 50% 밖에 힘을 쓰지 않은 셈이었죠. 그룹이 6명일 때는 1인당 평균 1.5로 떨어졌습니다.

연구자들은 여럿이서 함께 소리를 내면 소리의 간섭과 상쇄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룹의 결과가 개인의 결과보다 저조하게 나타난 것은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라테인 등은 참가자들에게 헤드폰을 쓰게 하고 동일한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참가자들은 각자 격리되었지만 같이 소리를 내는 것이라 확신한 상태로 실험에 임했죠. 참가자들은 그룹을 이룰 때 첫 번째 실험 때보다 소리를 더 크게 내긴 했지만 링겔만 효과는 여지없이 나타났습니다. 둘을 짝 지을 때는 혼자일 때의 82% 정도의 크기로 소리를 질렀고, 6명이 한 그룹일 때는 74% 정도로 소리를 냈습니다.

두 실험의 결과가 검증해낸 링겔만 효과는 혼자서 일할 때보다는 동료가 옆에 있음을 느낄 때 책임감을 느끼고 성과가 더 향상된다는, 심리학자 로버트 자종크(Robert B. Zajonc)의 '사회적 촉진 효과(Social Facilitation Effect)와 배치됩니다. 혼자 골방에 앉아 공부를 할 때보다는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 더 잘 되는 것(물론 반대인 사람도 있지만)이 대표적인 사회적 촉진 효과의 예입니다. 지난 번에 올린 바 있는 '백지장도 맞들면 나은 진짜 이유'도 일종의 사회적 촉진 효과에 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촉진 효과는 개인의 성과가 집단 속으로 희석되지 않을 때 발생합니다. 위의 실험처럼 개인이 집단 속에 묻혀 자신의 노력을 정확하게 측정 받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거나 자신의 게으름이 들키지 않을 거라는 안전감이 들면 혼자일 때 발휘하던 노력을 감(減)하려는 무의식적인 심리가 작동합니다. 연구자들은 이런 현상에 '사회적 태만(Social Loafing)'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붙였습니다. 사회적 태만 현상은 개인들을 모아 집단을 이루게 할 때 필연적으로 무임승차자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개인들도 일정한 양의 노력을 덜어내려고 하여 오히려 성과가 예전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일깨웁니다. 

어떤 일을 개인이 혼자서 수행할 수 없다면 사회적 촉진 효과를 최대화하고 사회적 태만 효과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집단의 크기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 이 실험이 조직 운영에 주는 시사점입니다. 집단이 커도 곤란하고 작아도 곤란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집단이 어떤 종류의 일을 수행하느냐, 기업이 어떤 산업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집단의 적정 규모는 달라지기 때문입니다(그렇다고 아무런 가이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없이 팀을 설계하지 마세요'란 글을 참조하세요). 무엇보다 사회적 태만 효과와 무임승차자의 발생은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완전히 '박멸'하자는 시도는 조직이 달성해야 할 목표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무임승차자를 없애려 하지 말라' 참조).

여러분은 모두 조직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혼자서 100을 할 수 있는데 70 밖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게으르거나 약삭빠르거나 비윤리적이라기보다는 '집단은 개인보다 게으르다'는 인간의 심리 때문입니다. 개인과 조직 모두 70의 성과를 80이나 90정도로 끌어 올리려는 의식적인 노력(제도 개선, 구조 개편, 프로세스 변경 등)이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개인들 모두 100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과욕은 금물입니다.


(*참고논문)
Many hands make light the work: The causes and consequences of social loaf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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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임승차자를 없애려 하지 말라   

2012. 4. 24. 10:35


인간은 누구나 몸 속에 기생충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쾌하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흔히 회충, 편충, 십이지장충 등과 같은 선형동물이나 편형동물만을 기생충이라고 생각하지만, 개그 소재로 가끔 입에 오르내리는 모낭충은 진드기류에 속하는 기생충이고 음식점의 위생을 점검할 때 기준으로 삼는 대장균 역시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의 장 속에 우글대는 기생충의 일종입니다. 이런 크고 작은 기생충들은 숙주가 흡수해야 할 영양분을 중간에서 가로챌 뿐만 아니라 심하면 숙주의 기관을 물리적으로 손상시키거나 질병을 유발하기 때문에 면역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숙주의 생명 유지와 재생산(reproduction, 번식)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그런데 왜 숙주는 어느 정도의 기생충을 몸 속에 품고 사는 걸까요? 숙주가 면역시스템을 총동원해서 기생충을 완전히 박멸하면 생명 유지와 자손 번식에 유리할 텐데 말입니다. 그 이유는 기생충 몇 마리를 제거할 때는 에너지가 별로 소모되지 않지만 가면 갈수록 기생충 한 마리를 없애기 위해 소요되는 에너지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데에 있습니다. 반면, 기생충을 한 마리 없앰으로써 숙주가 얻는 이득(생명 유지와 자손 번식 상의 유리함)은 갈수록 체감합니다. 제르지 벤케(Jerzy M. Behnke), 크리스토퍼 버나드(Christopher J. Barnard), 데렉 워켈린(Derek Wakelin)은 기생충의 감소에 따라 숙주의 비용은 체증하고 숙주가 얻는 이득은 체감하기 때문에 숙주가 어느 지점에서 균형점을 찾는다고 말합니다. 즉 최적의 기생충 보유량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이죠.



만일 숙주가 균형점 이상으로 기생충을 없애려 한다면, 기생충 한 마리가 박멸됨으로써 얻는 이득 증가분보다 한 마리를 제거하기 위해 쓰이는 비용 증가분이 더 큽니다. 그러면 기생충을 없앰으로써 생명 유지와 자손 번식의 가능성을 높이려 했던 시도가 오히려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고 번식력을 떨어뜨리게 되겠죠. 따라서 숙주는 균형점 수준에서 기생충을 몸 속에 지니는 것을 최적의 생존전략으로 채택하는 겁니다.

이 균형점이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숙주가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균형점이 낮아지기도(최적 기생충 보유량이 상승) 하고 높아지기도(최적 기생충 보유량 하락) 합니다.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큰뿔양(bighorn)의 암컷은 새끼가 없는 암컷에 비해 폐선충에 더 많이 감염되어 있습니다. 이는 젖을 먹이기 위해 에너지를 이미 많이 소요하는 까닭에 기생충 박멸에 배당할 에너지가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많은 기생충을 감내하는 것이죠. 동일하게 젖을 먹이더라도 수컷 새끼를 가진 어미양이 암컷 새끼를 키우는 어미양에 비해 더 많은 폐선충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컷 새끼를 키우는 게 암컷 새끼를 기르는 것보다 비용이 더 들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숙주의 면역시스템은 자손 번식과 기생충 보유 사이에 적절하게 에너지를 배분할 줄 압니다. 절대 기생충 박멸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을 만큼 어리석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회사에서는 제도를 설계할 때(특히 인사 관련 제도를 설계할 때) 누군가가 아무런 노력 없이 이득을 취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면밀히 따질 겁니다. 제도를 애써 만들어 실행해도 제도의 빈틈을 악용하거나 남들이 거둔 성과에 편승하는 무임승차자가 발생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임승차자의 발생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고 이것저것 제한조건을 갖다 붙입니다(이럴 때 이렇게, 저럴 때 저렇게...). 이렇게 되면 제도는 너무나 복잡해져서 제도의 본질과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이 제도를 실행하고 관리하기 위해 들여야 할 노력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맙니다. 다시 말해, 무임승차자 한 명을 줄임으로써 증가하는 이득보다 무임승차자 한 명을 줄이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이 훨씬 커지는 상황으로 악화됩니다.

예를 들어 팀원들 사이의 협력을 훼손하는 개인성과급의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개인성과급을 모두 조직성과급제로 바꾸려고 할 때 항상 무임승차자 문제가 거론되곤 합니다. 팀원들이 모두 조직성과를 달성하려고 합심할 때 나중에 성과급만 받아 챙기려고 건성으로 참여하는 무임승차자가 존재하면 팀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말 것이고 기대했던 조직성과도 달성하지 못할 거라 우려를 표합니다. 그래서 결국 개인의 기여도를 평가해야 한다는 논리가 받아들여져서 조직성과급과 개인성과급이 '짬뽕'되고 맙니다. 또한 애초에 조직성과급의 도입이 팀원 간, 부서 간 협력 증진이라는 이유를 들며 협력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개인이나 단위조직에 할당하는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개인적으로 협력을 측정하려는 KPI가 가장 우스꽝스러운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무임승차자를 줄이고 방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부칙'이 필요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숙주가 번식이라는 '대의'를 지키기 위해 어느 정도의 기생충을 몸 속에 보유하는 생존전략을 취하듯이 말입니다. 제도에 편승하고 조직에 기생하는 무임승차자가 눈엣가시처럼 보기 싫더라도 그들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것이 조직의 장기적인 건강과 발전에 도움이 됩니다. 숙주가 몸 속에 사는 기생충에 눈 감아 줌으로써 자신의 생존력과 번식력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볼 때, 오히려 무임승차자는 조직의 발전에 긍정적인 존재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조직이 무임승차자를 없애려고 지나치게 안간힘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보기 바랍니다. 조직의 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무임승차자는 그냥 놔두는 게 좋을지 모르니까요.


(*참고논문)
Understanding chronic nematode infections-evolutionary considerations
Ecological immunology: costly parasite defences and trade-offs in evolutionary ec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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