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시나리오 플래닝을 주제로 모 경영대학원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2시간의 강의를 끝내고 질문을 받는 시간이 되자 수강생 중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했다.

"미네르바의 말을 믿어야 할까요?"

그분이 이렇게 질문을 던진 이유는, 내가 강의 내내 시나리오 플래닝이 성공하려면 미래를 예측하려는 '생각의 관성'에서 탈피해야 하며, 예측을 주업으로 하는 전문가들의 말을 믿지 말아야 함을 거의 주입식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예측은 항상 틀린다'는 말은 진리이며, '그럼에도 예측전문가들은 영원히 밥벌이를 한다'는 사실이 더 진리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나는 그분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동전을 수십 번 던지면 앞면과 뒷면이 고루 나오리라 짐작하겠지만, 이상하게도 동일한 면이 계속해서 나오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저는 미네르바의 그동안 내놓은 예측이 대략 잘 들어맞은 이유도 동전 던지기와 같다고 봅니다."

미네르바의 예측이 잘 맞은 이유가 동전을 계속 던져 동일만 면이 줄기차게 나오는 현상처럼 우연의 소산에 불과하다 뜻으로 나는 이처럼 대답했다. 에두른 대답이지만, 예측전문가들에게 향한 내 시선(좀 삐딱한)을 정확히 표현하는 비유였다.

나는 예측전문가(경제학자, 애널리스트 등 예측을 주업으로 하는 모든 사람)의 예측능력을 신뢰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의 예측은 동전을 던져 미래를 예측하는 경우보다 낫지 않음이 여러 연구로 이미 밝혀졌고, 어쩌다 잘 맞히는 전문가들은 다음의 실험처럼 앞면이나 뒷면이 수차례 연달아 나오는 현상과 같은 '행운'의 덕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강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동전을 1000 번 던지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사실 이 실험은 최초가 아니라 모 수학자의 연구를 조악하나마 재현한 것이다.

직접 동전을 1000 번 던지려면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되므로(그리고 팔도 꽤 아프므로), Excel의 'Randbetween()함수'를 써서 동전 던지기를 시뮬레이션 했다. 아래의 그림이 50개씩 묶어서 표현한 결과다.


위의 그림에서 은 앞면을, 는 뒷면을 나타낸다. 이 실험을 하기 전에 머리 속으로 '사고실험'을 해본다면 아마 이 결과보다는 앞면과 뒷면이 고루 나오는 패턴을 떠올렸으리라. 그러나 실제의 결과 패턴을 살펴보면 예상보다 앞면과 뒷면이 많이 무리져(덩어리져) 나타난다.

특히 위의 그림에서 노랗게 칠해진 부분은 무려 14번 연속으로 뒷면이 나왔음을 보여준다. 실험을 다시 해본다면 위의 데이터와 일치하지 않겠지만 대략 비슷한 패턴을 나타내리라 생각된다.

연속으로 같은 면이 얼마나 나왔는지 일일이 세어보니 다음과 같다(손으로 세느라 약간의 오류가 있을지 모르니 양해 바란다).


같은 면으로 된 덩어리의 크기가 4 이상인 경우가 59번이나 출현했다. 또한 크기가 7 이상인 경우도 10번이나 되었다. 동전을 모두 1000 번 던졌으니 7번 연속으로 줄기차게 한 면이 나오는 경우가 1%나 된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예측전문가 그룹에서 1%의 상위집단을 '스타'라 칭한다면 그들의 명성은 같은 면이 7번 계속해서 나오는 우연으로 포장된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급진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믿는다. 예컨데 어떤 전문가가 특정 주식의 등락 예측을 7번 연속 맞히면 족집게로 소문이 나고 부와 명예가 따른다. 비록 그 다음에 이어지는 예측이 틀렸다고 해도 묻혀버리거나 '작은 실수'로 이내 잊혀지기 때문에 족집게라는 명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7번 연속으로 맞힌 최초의 행운 덕택으로 말이다.

생각해 보라. 특정 전문가의 예측이 틀렸는지 맞았는지 일일이 사후에 검증해 본 일이 있는가?  경제학자 장 필립 부쇼가 수행한 연구에서 애널리스트 2000명의 경기 예측이 모두 빗나갔다고 한다(source :'블랙 스완).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나가려고 전문가들의 예측을 고대하는 우리를 무안하게 만드는 결과다. 그들의 '면책특권'은 여느 국회의원보다도 훨씬 낫다. 여전히 예측전문가로 활동하며 돈을 끌어 모으는 중이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미네르바의 구속에 무척 분개했고, 그의 석방을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따라서 나는 이 글로 미네르바 개인을 폄하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나는 이 실험 결과로 미네르바라고 해서 범인(凡人)의 능력을 뛰어 넘는 특별한 예측력과 천리안을 지니지 않았음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석방된 미네르바가 블로그를 운영하겠다고 하니 경제를 예측하는 글이 조만간 올라오리라. 그가 쏟아낼 예측과 전망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쏠려있다. 하지만 두고 볼 일이다. 그가 과거에 잘 맞혔다고 해서 앞으로도 잘 맞히리란 보장이 없다. 그의 예측력은 연달아 같은 면이 여러 번 출현한 동전의 경우처럼 행운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점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네르바 스스로 자신의 안목과 예측력을 과신하지 말 일이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만큼 실망도 크고 비난 받기 쉬운 법이니까.


* Excel 파일을 공개하니, 참고하십시오(분석 sheet가 좀 조악해도 양해를... ^^)


  
,

2008년의 마지막 달, 12월에는 8권의 책을 읽었다.
그 결과 2008년에 읽은 책은 모두 94권이다.
100권을 목표로 했는데, 6권이 미달이다.
미달은 했지만, 개의치는 않는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읽으면 되지, 스트레스 받을 것까지 없으니 말이다.

2009년에도 좋은 책과 함께 했으면 한다.
출판계가 어려워서 양서를 꾸준히 낼 수 있을지 조금 걱정되지만 말이다.

1~2만원의 적은(?) 돈으로 저자들의 몇 년간(혹은 수십년간)
고민하고 다듬은 사유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독서의 매력이다.
부디 독서하는데 돈을 아끼지 마시라.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 : 내가 좋아하는 동물 행동학자인 프란스 드 발의 책이다. 동물의 세계에도 문화가 있고, 그 문화가 인간의 그것과 동일한 근원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인간중심의 사고에 경종을 울리는 책이다. 읽어보길 권한다.

카페를 사랑한 그들 : 프랑스 전역에 흩어져 있는 카페들을 여행하면서 쓴 수필이다. 프랑스인들의 생활에 카페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보여준다. 이 책을 읽고 프랑스에 다시 가고 싶다는 욕망이 간절해졌다.

파리에서 달까지 : 캐나다 출신 작가가 파리에서 5년간 살면서 느낀 이야기를 위트 있게 쓴 책이다. 겉으로 볼 때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파리의 이미지와 상반된 모습을 책을 통해 발견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파리는 충분히 꿈같은 도시다.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 : 뉴턴의 시대 이래로 물리학의 법칙을 사회 현상에 투영시킨 학자(사회학자와 과학자)들의 발자취를 개괄할 수 있는 책이다. 글이 좀 어려워서('까치' 책이 좀 그런 경향이...) 잘 읽히지 않지만, 찬찬히 뜯어보며 읽으면 위대한 학자들의 통찰력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스트레스 : 스트레스의 정의, 원인, 해악, 그리고 그것을 이기는 방법까지 75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꽉 채운 책이다. 3만원이란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아깝진 않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책이 나와줬으면 한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 '미네르바'가 추천했다고 하여 호기심에 읽어 봤다. 과연 추천 받을 만한 책이다.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가 어떤 근원에서 출발했는지 훑어보는 데 이 책 만큼 좋은 책은 없는 듯하다. 1930년대에 쓰인 책이지만, 여전히 유효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읽어보길 권한다.

보헤미안의 샌프란시스코 : 문학과 예술의 도시라 불리는 샌프란시스코의 '풍경'을 담담한 필체로 전하는 책이다. 예술혼을 일깨우고 싶다면 샌프란시스코로 오라고 저자는 권한다. 머지 않아 한번 가볼까 한다.

동물원의 탄생 : 유럽에서 동물원이 어떤 기원으로 생겨났는지 서술하는 책이다. 동물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을 책 곳곳에서 만난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