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직원이 자신의 인사평가 점수를 높일 목적으로 받지도 않은 교육을 받았다고 하고 완료하지 않은 과제를 훌륭하게 완성했다며 평가 근거 자료를 조작했다면, 그리고 상사가 그 직원에게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 좋은 평가 점수를 주었다면, 여러분은 어떤 감정이 들까요? 당연히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려 한 직원을 비난하고 벌을 줘야 마땅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이 직원의 조작 행위가 과거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미래에 그 직원이 저지를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상상할 경우에는 어떨까요? 여러분은 과거의 잘못에 제제를 가하는 정도로 그 직원이 미래에 저지를 잘못을 벌 주고자 할까요? 쉽게 말해, 과거의 조작 행위에 1개월 감봉 조치를 내렸다면, 미래에 저지를 잘못에는 그보다 더 무거운 벌(예컨대 감봉 3개월)을 가하고자 할까요, 그보다 가벼운 벌을 주려 할까요? 아니면, 과거에 일어났든 미래에 일어날 것이든 동일한 수준으로 벌을 줄까요?



시카고 대학의 자카리 번스(Zachary C. Burns)와 동료들은 어떤 일이 과거에 일어났다고 아는 경우와 미래에 일어날 것이라고 들은 경우, 사람들이 각 경우에 대해 행위자의 '고의성'을 어떻게 평가할지 알아보기 위해 일련의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먼저 번스는 472명의 학생들을 모집하여 가상의 상대방과 주사위 게임을 벌여 돈을 따는 상황을 상상하라고 주문했습니다. 학생들은 상대방이 주사위를 던진 결과에 따라 상금을 받을 수도 돈을 잃을 수도 있었죠. 게임의 규칙은 이랬습니다. 상대방이 주사위를 던져 1, 2, 3, 4가 나오면, 학생과 상대방은 똑같이 5달러를 나눠 갖기로 했죠. 상대방의 던진 주사위 수가 5이면 상대방이 10달러를 가지고 학생은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반면, 6이면 학생만 10달러를 딸 수 있었죠.

번스는 학생들 중 절반에게는 이 게임이 어제 벌어진 일이라고 상상하게 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내일 이 게임을 할 거라고 상상하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상대방이 던진 주사위가 학생들에게 불리한 숫자인 5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상황을 머리 속에 담도록 한 후에 번스는 학생들에게 주사위를 던질(혹은 던졌던) 상대방의 고의성을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게임이 내일 벌어질 거라 상상한 학생들이 과거의 게임을 상상했던 학생들보다 상대방의 고의성이 더 짙다고 판단했습니다. 주사위 게임은 상대방과 학생이 돈을 딸 확률이 공평한데도 미래에 벌어질 일이라고 상상하면 상대방이 모종의 조작을 취할 거라 의심한다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번스는 이 사실을 더 확인하기 위해 세무 당국에서 소득세 환급을 잘못 정산한 이유들이 나열된 글을 학생들에게 읽도록 하고 세무 담당자의 고의성에 대해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번스는 학생들 중 절반은 세금 환급 마감일인 4월 15일 전에, 나머지 절반은 그 이후에 실험에 참가시켰습니다. 세무 당국의 잘못된 정산을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한 학생들(4월 15일 이전에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과거에 저질러진 잘못이라고 안 학생들에 비해 세무 담당자의 고의성이 짙다고 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부정한 일이라고 봤습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중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남편에게 약을 잘못 준 바람에 심장 발작을 일으키도록 한 여인의 이야기를 예로 든 후속실험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래의 일이라고 상상한 학생들이 과거에 있었던 일이라고 들은 학생들에 비해 보험금을 받기 위해 남편을 살해하려 한 고의성이 크다고 답했고, 여인에게 더 중형을 내려야 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역시 미래에 저지를 부정적인 행위의 고의성을 높게 보고 그에 따라 중한 벌을 내리려 하는 경향이 발견된 것입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은 불확실하고 아직 고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행위자의 고의성이 깊게 관여할 여지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 겁니다.

제도를 설계할 때마다 염두에 두는 것 중 하나가 제도의 내용을 어기거나 제도의 헛점을 악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어떤 제재를 내려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도의 특성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제도의 내용보다는 제제 방안의 비중이 더 큰,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상하게도 강제성이 강한 제도를 폐기하고 자율성을 강조하는 제도로 변경할 때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비용 지출 규정이 지나치게 시시콜콜하고 복잡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일정 금액 내에서 비용 승인자와 집행자의 재량에 맡기는 제도로 변경할 때, '만약 ~할 경우 이렇게 제재한다'는 식의 규정들이 덕지덕지 붙곤 합니다. 자율성을 인정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할 정도가 되기도 하죠. 또한 자율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논리에 따라 그 제제의 수준도 과거 제도보다 더 강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제도를 어겨 벌을 가하려고 할 때는 제도에서 정한 수준보다 관대한 조치를 내리려 한다는 점을 번스가 수행한 일련의 실험이 보여줍니다. 동일한 잘못도 과거에 저지른 것이라고 들으면 행위자의 고의성을 적게 평가하고 '그에게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겠지. 그가 잘못한 게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을 거야'라고 '정상 참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의 조직에서 가끔 열리는 상벌위원회의 의결이나 여러분이 속한 팀이 다른 팀에게 가하는 제제를 살펴보면 애초에 문서로 정한 수준보다 낮게 적용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시각을 넓혀 사법부가 화이트 칼라 범죄자에게 내리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이라는 일관된(?) 형량을 봐도 그렇죠. 물론 제도로 정한 벌칙은 상한값이기 때문에 적용할 때는 그보다 낮은 수준으로 행위자에게 벌칙을 가하는 것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미래에 저질러질지 모를 잘못에 대해 벌칙을 정할 때와 정해 놓은 벌칙을 행위자에게 적용할 때, 그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미 조직 내 구성원이 알게 모르게 인식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이런 경향은 제도가 의도한 대로 진행되거나 지켜지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일지 모릅니다. 번스의 실험은 우리에게 제도를 설계할 때 제제의 방법과 내용을 정하는 데 힘을 쓸 필요가 없다는 점을 알려주는 걸까요, 아니면 정해진 벌칙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걸까요? 둘 중 무엇을 시사점으로 채택할지는 여러분의 운영 철학이 자율과 통제 사이의 스펙트럼 상 어디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어느 지점에 방점을 찍든지 간에 오늘은 여러분이 설계한 제도의 '벌칙 부분'을 세심히 살펴보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Predicting Premeditation:Future Behavior Is Seen as More Intentional Than Past Behav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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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시인이자 과학자인 미로슬라프 홀룹(Miroslav Holub)이 쓴 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젊은 헝가리 군 소대장이 자신의 소대원과 함께 알프스 산맥 어딘가에서 작전을 수행 중이었습니다. 소대장은 소대원 중 몇 명을 뽑아 온통 눈으로 뒤덮힌 곳으로 정찰을 내보냅니다. 헌데 정찰을 떠나자마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이틀 동안 지독하게 퍼부어댔습니다. 이미 복귀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지났지만 정찰대원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소대장은 정찰대원들이 필시 눈에 갇혀 죽음을 맞았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자신을 책망했습니다. 

헌데 정찰을 나간지 3일째 되는 날, 정찰대원들은 소대로 복귀했습니다. 그들의 복귀가 반갑고도 놀라웠던 소대장은 어찌된 영문인지 물었습니다. 정찰대원들은 정찰을 떠나자마자 내린 엄청난 눈 때문에 길을 잃고 말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죠. 헌데 어떤 병사가 자신의 호주머니에 지도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 지도가 우리를 안심시켰습니다. 우리는 캠프를 설치하고 눈이 그치기를 기다렸죠. 지도가 있으니 눈이 그치면 그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서 말입니다. 바로 이 지도가 우리를 살린 거죠."

소대장은 정찰대원이 건넨 지도를 살펴봤습니다. 놀랍고도 엉뚱하게도 그것은 알프스 지도가 아니라 피레네 산맥의 지도였습니다. 피레네는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 있는 산악지대라 알프스와는 한참 떨어진 곳이죠. 그런데도 정찰대원은 그 잘못된 지도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겁니다.



이 일화는 희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에서 종종 인용되는데, 경영학자 칼 웨익(Karl Weick)은 미래를 대비하고 미래를 향해 전략을 실행하는 조직에 이 일화를 인용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잘못된 지도라고 있는 게 낫다. 왜냐하면 그 지도가 있으면 알지 못하는 곳으로 나아가는 데 참조할 만한 기준을 제시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하려고 애쓰기보다 다소 엉성한 예측이라 할지라도 미래를 가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엉뚱한 방향이라생각될지라도 일단 전진할 필요가 있음을 웨익은 역설합니다.

토마스 쳐맥(Thomas J. Chermack)이 쓴 책에는 이와는 반대되는 입장의 일화가 실려 있습니다. 1539년에 스페인 탐험가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서쪽 해안을 조사하다가 남쪽에 반도가 존재한다고 보고했습니다. 그곳은 오늘날 바자 반도(Baja Peninsula)라고 불리는 곳였습니다. 지도 제작자들은 이 정보를 기초로 미 대륙의 지도를 제작했습니다. 헌데 1635년에 스페인 탐험가들이 그 지도를 가지고 북쪽 해안을 조사하다가 지금의 푸젓 사운드(Puget Sound)라 불리는 만(캐나다 빅토리아와 미국 시애틀 사이의 만)을 발견했습니다. 탐험가들은 이 새로운 정보를 가지고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캘리포니아는 섬이다"라고 말입니다.

이 정보에 기초하여 지도가 다시 그려졌고 그때부터 지도에는 캘리포니아가 미 대륙과는 분리된 거대한 섬으로 표현됩니다. 아래의 지도가 바로 그것입니다(Jan Jasson, 1636).



그 후로 거의 100년 동안 발행된 지도들은 캘리포니아를 섬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중간에 캘리포니아가 섬이 아니라 반도라고 주장하는 지도가 몇 개 나타나긴 했지만, 1747년에 가서야 캘리포니아가 미 본토와 연결된 반도라는 옳은 정보가 지도에 최종적으로 반영됐다고 합니다.

캘리포니아가 섬이라는 지도를 가지고 선교 활동에 파견된 선교사들은 골탕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캘리포니아 섬' 서쪽 해안에 내린 그들은 다시 나타날(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바다를 건너기 위해 배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배를 분해한 다음 노새에 싣은 채 행군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가도 가도 바다는 나타나지 않았고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까지 이릅니다. 그 산맥의 건너편에 바다가 있으리라 생각하고서 행군을 이어갔지만 선교사들은 어느덧 네바다 사막의 한가운데에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고 말죠.

화가 난 선교사들은 스페인에 있는 지도 제작자에게 "지도가 잘못됐다. 캘리포니아는 섬이 아니다"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지도 제작자들은 그럴 리 없다며 "당신들이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다. 지도는 맞다"라는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이 사례는 헝가리 소대원들의 일화와는 다른 입장의 시사점을 줍니다. 잘못된 지도라도 있는 게 낫다는 것과 달리, 잘못된 지도는 잘못된 길로 인도할 뿐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지도 제작자들처럼) 그 잘못된 지도를 믿고 나면 마음을 바꾸기가 아주 어렵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미래를 확실하게 예측하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면 엉뚱한 길로 들어서서 오도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정보에 기초하여 형성된 믿음을 굳게 믿고서 융통성 없이 전략을 밀고 나가다가 엄청난 실패를 겪게 됨을 경고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잘못된 지도라도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잘못된 지도는 잘못된 결과만을 낳는다고 생각합니까? 잘못된 지도라도 있어야 어딘가로 전진하기 위한 출발점을 정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전자를, 완벽하지 못한 지도에 근거하여 종착점을 찾아나섰다가 바라지 않았던 곳에 갇힐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후자를 선택할 겁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느 것이 옳으냐를 따지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논쟁에 불과합니다. 이 두 가지 입장은 상반되거나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둘을 합쳐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라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을 정하지 못해 시간만 허비합니다. 전략의 속도가 중요한 요즘 같은 상황에서 이러한 완벽주의적 관점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지름길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알프스 산맥이 아닌 피레네 산맥의 지도를 가지고라도 출발점을 정한 후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결단이 전략 실행의 중요한 모멘텀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지도는 잘못된 곳으로 이끈다는 교훈을 잊지 않는다면, 지금 내가 가진 이 지도는 어디까지나 불완전한 정보를 기초로 만든 지도라는 점을 계속 상기하면서 새로운 정보가 나타날 때마다 지도를 지우고 새로 그리려는 전략적 융통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출발할 때 정했던 전략을 폐기해야만 하는 정보가 숱하게 들어올지라도 많은 경영자들은 처음의 전략을 고수하려는 관성을 보입니다. '이 산이 아닌가벼'라고 말하는 것이 자신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용기 없는 행위라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 산이 아닌가벼'라고 말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용기입니다. 선교사들이 전달한 정보를 접하고서도 지도가 맞다고 우긴 지도 제작자들의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미래는 예측 불가능한 대상입니다. 이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해 완벽한 예측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완벽함에 힘을 낭비하지 말고 일단 전진하자는 입장의 대립 관계를 해소하고 하나로 융화시키는 방법이 시나리오 플래닝입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미래에 펼쳐질 여러 시나리오를 가지고 출발점을 정해 전략을 실행하다가 지속적으로 내외부 환경의 정보를 수집하면서 기존의 시나리오를 변경하고 대응 전략을 수정하는 과정입니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미지의 땅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면 시나리오라는, 불완전하지만 희망을 북돋우는 지도를 가지고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예상치 못했던 강과 산이 나타나면 정찰대를 내보내 정보를 수집하고 시나리오를 다시 그려가는 것이 미래를 향해 항해하는 우리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마인드입니다. 무엇보다 '이 산이 아닌가벼'라고 말할 용기를 가지기 바랍니다.

(*참고도서 : Scenario Planning in Organizations)
(*참고 사이트 : http://www.philaprintshop.com/cali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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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를 때 배고픔을 상상하라   

2011. 5. 1. 08:55



여러분은 지금 엄청나게 배가 고픈 상태입니다. 그래서 만일 뷔페 식당에라도 가면 배가 가득해서 고통스러울 때까지 음식을 먹어댈 겁니다. 입가심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여러분은 생각합니다. '이렇게 배가 아플 정도로 많이 먹다니, 앞으로는 과식하지 말아야지'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내일이 되어 다시 배가 고파지면 오늘 했던 다짐이 흔적없이 사라지고 또다시 음식을 탐하는 상태가 되고 말죠.

실험실과 슈퍼마켓 현장에서 이뤄진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음식을 배불리 먹은 상태에서 다음 주에 먹을 음식을 구매하도록 했더니 미래의 식욕에 대해 과소평가하면서 조금 밖에 사지 않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지금 배가 부르다고 해서 미래에도 배가 부를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나중에 '내가 왜 이것 밖에 안 사왔지?'하며 자신을 책망하기도 하죠. 연구자들은 사람들은 배가 부를 때는 배고픈 상태를 상상하기 어려워 한다고 해석했습니다.



또 이런 실험이 있었습니다. 실험자가 참가자에게 5개의 지리(地理) 문제를 내기로 하고 두 개의 '보상;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즉, 각 문제의 답을 참가자가 말하면 그들에게 정답을 알려주는 보상과, 정답 대신 초콜릿 바 하나를 주는 보상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 하나를 고르라는 말이었죠. 실험자는 참가자를 두 그룹으로 나눈 후에 첫 번째 그룹에게는 문제를 풀기 전에 보상 방법을 선택하라고 했고, 두 번째 그룹에게는 문제를 풀고 난 후에 보상 방법을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문제를 내기 전에 실험자는 두 그룹의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어떤 보상을 선택하게 될지 예상해 보라고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재미없는 지리 문제의 정답을 아는 것 대신에 모두 초콜릿 바를 보상으로 받고 싶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로 내고 나니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문제를 풀고 난 후에 보상 방법을 선택하라고 했던 두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은 초콜릿 바를 받기보다는 정답을 알려달라는 보상을 더 많이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풀기 전에는 초콜릿 바만 눈에 들어와서 미래(문제를 풀고 난 후)에 자신이 강렬한 호기심을 갖게 되리란 점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겁니다.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등산을 하다가 음식과 물도 없이 길을 잃고 하룻밤을 꼬박 헤맨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질문을 해본 실험도 있습니다. 실험자는 러닝머신에서 막 운동을 끝내고 내려와서 목이 마른 사람들에게 그런 조난 상황에 처하면 갈증과 배고픔 중 어느 것이 더 고통스러울 것 같냐고 물었습니다. 또한 러닝머신에 오르기 전의 사람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죠. 그랬더니 목이 마른 사람들 중 92%가 갈증이 훨씬 참기 힘들 것이라고 답했고, 아직 운동을 하기 전이라 목이 마르지 않은 사람들은 61%만이 갈증이라고 답했습니다.

사람들은 미래의 감정이나 상황을 상상할 때 현재의 상태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지금 무언가에 만족한 상태면 미래에는 그것이 부족할지 모른다는 상상을 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지금 무언가가 절실하면 미래에도 그것이 절실하리라 예상하죠. 이처럼 현재의 상태를 기준으로 미래를 상상하거나 판단하는 경향을 '현재주의(presentism)'이라고 말합니다. 미래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현재에서 출발해서 현재로 끝난다는 것을 꼬집는 말이죠.

기업의 '현재주의'적 행동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매출이 뚝뚝 떨어지고 이익은 적자에다가 고객들의 불만은 가중되는 등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면 뭐든 해야 한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긴급전략을 수립하고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는 등 한동안 부산스럽게 움직입니다. 그러다가 시장 환경이 조금만 우호적으로 변한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존의 전략, 기존의 조직운영 관행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설마 더 나빠지겠어?' 혹은 '거봐, 좀 지나니까 괜찮아지잖아'라고 말하면서 현재의 행동방식을 합리화합니다.

매년 사업계획을 세울 때도 현재주의는 여지없이 나타납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매출이나 시장점유율이 좋으면 앞으로도 계속 좋으리라 예상(혹은 기대)하고, 그렇지 않으면 비관적인 전망들이 사업계획서에 가득합니다. 오늘 배가 고프면 뭐든지 먹어버리겠다고 만용을 부리고, 오늘 배가 부르면 내일의 배고픔을 느끼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죠.

개인이나 조직이 '현재주의'라는 오류에 빠지는 이유는 우리 뇌의 한계 때문입니다. 뇌는 현재의 상황에 먼저 반응하도록 설계되었지 미래를 올바르게 상상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인간을 먹이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수많은 맹수들에 둘러쌓여 있던 옛 시절에는 현재 상황에 즉각 반응하는 뇌는 인간의 생존에 유리했을 겁니다. 미래를 상상하는 일 따위는 중요치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1만 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뇌의 진화는 현재주의의 오류를 떨쳐내기에는 속도가 아주 더딥니다.

어떻게 하면 현재주의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답하면 불행히도 현재주의의 늪에서 완전히 빠져나오는 방법은 없습니다. 미래는 베일 속에 가려져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현재의 눈을 가지고 미래를 그려내야 하는 한계에 부닥칩니다. 아마 여러분 중 나이가 30대 후반 이상이라면 어렸을 적에 '소년 중앙'과 같은 어린이 잡지에서 2000년 대의 생활상을 그린 만화를 본 기억이 있을 겁니다. 그 만화 속에서 은박의 우주복을 입은 사람들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타고, 달나라로 수학여행을 갑니다. 현실의 2000년 대와는 아주 딴판이죠. 그런 우스꽝스러운 상상은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희망사항들이 뒤섞이고 버무려져서 나온 산물이죠.

현재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여러 가지의 다른 모습으로 상상하고 미리 그런 상황을 '느껴보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배가 부르면 미래에 배가 계속해서 부른 상황과 그와 반대로 배가 고픈 상황을 각각 설정한 후에 어떤 느낌일지 미리 그려보는 방법이죠. 그렇게 하면 현재의 감정이나 상태에 따라 미래에 대한 의사결정이 좌지우지되는 위험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습니다. 물론 한계는 있습니다. 미래에 나타날 여러 가지 다른 상황을 골라내는 것 자체가 현재주의로 인해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나타날 여러 가지 상황을 A, B, C, 이렇게 세 가지라고 다르게 상상했을지라도 실제로 미래에 D라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래를 최대한 대비하고 미리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이 방법이 최선입니다.

그래도 '미래에 대한 상상이나 예측이 현재에서 시작되고 현재에서 끝난다'는 현재주의의 위험을 알고 대처하는 것과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의사결정에 큰 차이를 가져올 겁니다. 현재의 상태와 미래의 상태, 각각을 상상할 때 현재주의의 끈질긴 구애와 유혹을 견뎌내는 것, 이것이 또 하나의 중용은 아닐까요? 배부를 때 배고픔을 상상하기 바랍니다.

(*참고도서 :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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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몇몇 기업에서 미래의 불확실성을 대비하기 위한 전략적 행동으로 시나리오 플래닝을 활용합니다. 미래에 벌어질 여러 가지 상황(시나리오)들을 두루 그려보고, 각 상황에 맞는 대응전략을 미리 수립해 두는 것이 최선임을 기업들이 깨달아 가기 때문입니다. 예측으로 미래를 하나의 숫자나 상황으로 규명해 내려는 노력이 소용 없고 부질 없음을 서서히 알아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나리오 플래닝에서 가장 예술적인 단계이면서 필수적인 단계가 바로 '시나리오 라이팅'입니다. 시나리오 라이팅이란 말 그대로 미래의 각본을 쓰는 과정으로서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가 되어 미래의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연말이 되면 미래의 트렌드를 전망하는 책들이 서점에 쏟아져 나오는데, 그런 책들 중에서 아무거나 펼쳐 보면 마치 미래의 일이 현실로 일어난 듯 이야기로 풀어가는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시나리오입니다.



시나리오는 머리 속에 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소설 형식으로 쓸 수 있고, 신문이나 방송의 기사처럼 공식적인 톤으로 서술할 수도 있습니다. 시나리오의 형식은 핵심이슈가 가지는 긴급함과 중요성, 조직 구성원들에게 미칠 효과 등을 고려해서 적절하게 설정하면 됩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왜 써야 할까요? 바로 2가지 이득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미래의 시나리오가 우리의 사업과 미래의 사업방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구성원들에게 명확한 이미지로 인지시킬 수 있습니다. 구성원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그들이 회사의 비전과 전략에 몰입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무미건조하고 막연한 예측 데이터가 아니라, 피부로 느끼는 이야기를 통해서 ‘아, 그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는 맥락을 인식시키고 구성원들의 역량을 하나로 집결시킬 수가 있죠. 숫자나 그래프로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둘째,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생각하지 못한 환경요인을 자연스럽게 고려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치냉장고를 판매하는 회사가 ‘소비자들이 얼마나 많은 김치냉장고를 사게 될 것인가’에 관련해서 시나리오를 수립했다고 가정해 보죠. 시나리오를 쓰다보면 김치냉장고의 판매와 관련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자연스럽게 사고의 폭이 넓어집니다.

그래서 김치냉장고가 김치 저장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될 거라든지, 기능적인 우수함보다 인테리어적인 디자인을 더 선호하게 될 거라는 힌트를 얻을 수 있죠. 이렇게 되면 보다 효과적인 대응전략 수립이 가능해집니다.

시나리오를 잘 쓰려면 줄거리를 잘 잡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환경요인들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는지를 면밀히 살피는 사전 작업이 필요합니다. 보통 이런 과정을 '인과분석'이라고 하죠(시스템 다이나믹스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시나리오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운 소설 형식으로 쓰거나, 신문 기자가 기사를 작성하듯이 쓸 수도 있습니다. 또는 위대한 예언가를 등장시켜서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경고하는 방식도 취할 수 있죠. 아니면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 연극이나 영화처럼 역할극의 형태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가장 좋은 형식인지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형식과 문체라면 상관없습니다. 가장 무난하게 사용되는 시나리오 형식은 신문이나 방송의 기사체입니다. 기사체의 글은 시나리오의 내용과 시사점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이해시키는 장점이 크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권장합니다. 소설 형식으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자칫 잘못하면 글이 유치해지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읽는 독자들의 몰입을 방해하고 맙니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무엇을 주의해야 할까요? 첫째, 시나리오 제목을 짓는 데 힘을 써야 합니다. 제목만 들어도 어떤 시나리오인지 머리 속에 그려질 정도로 시나리오의 의미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제목이어야 합니다.

둘째, 시나리오 제목의 길이는 짧을수록 좋습니다. 가능한 한 10자 이내가 적절합니다. 셋째, 드라마틱한 요소를 적절하게 배합해서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무미건조하게 미래를 서술하는 것보다 ‘내일의 뉴스’를 미리 접하는 것처럼, 또는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미래의 광경을 직접 목격하는 것처럼 시나리오를 그리기 바랍니다.

넷째, 문장은 일반적으로 현재형 시제로 쓰는 것이 좋습니다. 시나리오는 분명히 미래의 이야기지만, 바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현재의 일로 인식시키려면 생생한 현재의 언어로 시나리오를 기술해야 합니다. 다섯째,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적절하게 배합하기 바랍니다. 최선의 시나리오라고 해서 절대적으로 ‘좋은’ 미래는 아닙니다. 긍정적인 사건과 부정적인 사건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기 바랍니다.

시나리오는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스토리를 좋아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시나리오에 쉽게 몰입됩니다. 몰입된다는 말은 미래를 예행연습한다는 뜻이고, 예행연습은 실수를 줄이고 성공의 확률을 높여줍니다. 사실 시나리오 플래닝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서로 배치되는 주요 상황들을 이야기로 그려봄으로써 무엇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힌트를 얻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나리오 플래닝은 복잡한 시스템이나 방대한 데이터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스스로 재미난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야기꾼이 되어 사람들을 이야기 속에 '푹 빠지게' 만들 수만 있다면 첨단기업도 못 따라올 '미래 대비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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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은 미래를 대비하는 데 사용되는 기법들 중에 가장 유명하고 막강합니다. 사실 예측은 별도의 정의가 필요치 않을 정도로 인간의 삶에 깊게 뿌리 내린 제 2의 본성이죠. 여러분은 자신도 모르게 매일 수차례 예측을 하고 있을 겁니다.

내가 갈 도로에 교통체증이 발생할지, 어제 산 주식이 오를지, 나의 제안을 상대방이 수용할지 등등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예측을 자동적으로 수행합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경쟁자의 전략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고객의 니즈는 또 어떻게 바뀔 건지 매번 예측을 해서 전략을 수립하죠.


기업에서 흔히 사용하는 예측 기법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회귀분석법일 겁니다. 회귀분석은 매출액이나 영업이익을 종속변수 Y로 놓고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개의 독립변수 X들을 찾아서 방정식을 도출하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해서 미래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예측하는 데 사용합니다.

회귀분석은 반박의 여지가 없을 만큼 수학적으로 완벽한 논리를 가집니다. 대부분의 예측 기법들은 회귀분석처럼 과거의 패턴을 미래에 투영하는 논리를 가졌지만, 그 속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숨어 있음을 많은 경우에 간과하고 맙니다.

바로 과거의 환경구조가 미래의 환경구조가 동일하다고 전제하는 것이 오류입니다. 미래로 갈수록 상호작용이 증폭되고 환경의 구조가 복잡하게 바뀝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환경구조는 절대로 과거의 환경구조와 같을 수가 없죠. 따라서 예측은 대개의 경우 실패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예측은 미래의 여러 가지 가능성을 오로지 하나의 수치로 압축시키고 그에 따라 전략을 수립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수치와 다른 미래가 펼쳐지면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겠죠. 예측이 실패를 해서 어려움을 겪은 회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IBM이었습니다. 이 회사는 요즘에는 잘 나가고 있지만 90년대엔 그렇지 못했습니다. IBM은 1980년대 초에 향후 미래의 PC시장의 규모가 어느 정도나 될까 예측을 해 봤다고 합니다. 그 결과 1990년이 되면 전 세계 PC보급 대수가 잘해야 27만대 정도라고 예측했죠.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만 해도 1993년에 1억 7천만 대가 보급됐고, 한국만 해도 170만 대의 PC가 보급됐습니다.

IBM의 예측이 이처럼 상당히 크게 빗나간 이유는 1980년대까지 완만하게 성장한 PC시장의 패턴이 미래에도 그대로 이어질 거라 생각한 탓입니다. 결국 IBM은 PC시장이라는 거대한 기회를 놓쳤고, 1992년에 파산 직전까지 갔습니다. 예측이 그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기 때문입니다.

예측으로 인해 기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전략적 사고를 차단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측의 결과로 내년도 매출액이 금년보다 10% 성장할 거라고 나왔다고 가정해 보죠. 누군가가 나서서 ‘10% 성장이 아니라 마이너스 2% 성장이다’라고 반박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사람이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해도 10% 성장 예측이 마이너스 2% 성장으로 바뀌기는 힘들 겁니다. 기껏해야 10%를 7% 정도로 끌어내는 것에 만족하죠. 예측 결과가 강력한 신념으로 바뀌어서 그것에 반대되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 결과입니다. 전략적 사고를 아예 막아버리고 맙니다.

예측은 기회를 잃게 만들고 잘못된 판단을 이끕니다. 예측을 통해서 미래의 다양한 가능성을 오직 하나의 숫자 속에 우겨 넣으려고 하기 때문이죠. 많은 기관과 기업들이 갖가지 예측을 쏟아내는데, 경제 위기가 심각해질수록 그런 경향이 큽니다.

하지만 예측 시스템이 제아무리 정교하다 해도 ‘예측은 항상 틀린다’라는 진리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여러 가지 가능성, 즉 시나리오로 미래를 바라봐야 합니다.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그 불확실성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습니다. 불확실성을 없애겠다면서 '덮어놓고 예측하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할지'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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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이단자가 되자   

2010. 6. 21. 09:00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어느 날 대중 강연을 하면서 코페르니쿠스를 맹비난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천문학자입니다. 루터는 “어떤 초보 천문학자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해와 별이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는 군요. 아마도 그 바보는 천문학의 모든 성과를 뒤엎고 싶은가 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틴 루터가 코페르니쿠스를 얼치기 바보라고 비난하는 까닭은 천동설이 지배하던 세상에서 지동설은 아주 낯설고 불경스러운 주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장하는 사람은 이렇게 바보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누군가가 아직 다가오지 않는 미래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면 “그럴 듯하긴 하지만,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기야 하겠나?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현실적이지 않아.”라는 조롱 섞인 말을 듣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자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말은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해서 모든 구성원의 전략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맙니다. 그리고 그런 조직에는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끼어들 자리가 한 뼘도 되지 않을 겁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자신감을 갖는 자세는 나쁘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건강한 사고방식이죠.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를 알고 있는 듯이 확신하는 태도는 버려야 합니다.

철학자 존 모티머(John Mortimer)는 “민주주의를 시험하는 것은 다수의 의견이 항상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 아니라, 소수가 어디까지 존중되냐는 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민주적인 사람임을 자인한다면 미래를 이야기하는 ‘이단자’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며, 여러분 스스로가 그러한 이단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정립해서 기존의 우주관과 세계관을 뒤엎었습니다. 이렇듯 과학의 진보는 이단적 발상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기업의 성장동력 역시 새롭고 이단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사람과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 사이의 조화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이탈리아는 르네상스가 화려하게 꽃피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곧 세계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몰락하고 맙니다. 영국의 시인 존 밀턴(John Milton)은 그 결정적 원인이 갈릴레이를 영원히 침묵하게 만든 것이라고 한탄했습니다.

불확실성을 정복하려 하는 자, 현실의 쳇바퀴에 머물려는 자,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이 신념을 강조하는 자들을 여러분은 물리쳐야 합니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이단자'를 포용해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도 이단자적 시각으로 미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지속경영을 가능케 하는 경영의 덕이자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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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요즘 들어 불확실성이란 말을 유난히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신문 지상이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데요, 제가 볼 때 불확실성의 의미를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미래를 탐구하고 대비하려면 무엇보다도 불확실성의 의미를 잘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불확실성에 갇혀 있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불확실성의 올바른 의미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다음의 퀴즈를 풀어보기 바랍니다.


다음 중 불확실성이 가장 큰 것은 무엇입니까?

1) 그 버스를 타면 대부분 1시간 안에 회사에 도착한다
2) 이번에 출시하는 서비스는 이익률이 50%일 거라 누구나 전망한다
3) 경쟁사들이 향후 3년간 우리보다 시장점유율이 높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4) 내가 아파트 분양에 당첨될 확률은 50 대 50이다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확률이 모두 동일할 때 불확실성은 가장 큽니다. 동전 던지기를 예로 들어볼까요? 여러분이 동전을 던질 때마다 어떤 면이 나올지 확신해서 말하기 어려울 겁니다. 왜냐하면 앞면이 나올 확률과 뒷면이 나올 확률이 2분의 1로 똑같기 때문이죠. 

이렇듯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확률이 똑같을 때가 가장 불확실한 겁니다. 만약 동전의 무게중심이 이상해서 앞면이 나올 확률이 51%만 되도 50%일 때보다 불확실성은 작아지는 거죠. 

위의 문제 중 1번은 거의 모든 사람이 1시간 안에 도착할 것이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2번은 50%라는 말이 나오지만 단순하게 이익률을 뜻하므로 불확실성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3번은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뜻이므로 확률이 0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확실성이 큼을 나타내는 문장입니다. 정답은 4번인데요, 당첨될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의 확률이 50%로 같으므로 불확실성이 가장 큰 문장입니다.

이번엔 다른 문제를 풀어보겠습니다.

다음의 문장들 중 ‘불확실하다’란 말의 의미를 옳게 사용한 것은 무엇입니까?

1) “무조건 밀어붙이는 게 내 스타일이야. 난 불확실성을 좋아하기 때문이야”
2) “난 실직한 상태라 미래가 상당히 불확실해”
3) “자넨 왜 매사가 그리 흐릿한가? 행동이 너무 불확실하잖은가?”
4) “그게 불확실하다고? 그렇다면 낙심할 필요가 없어. 좋을 수도 있으니까”

1번처럼 위험감수(Risk Taking)를 하겠다는 말은 불확실성과 관련이 없습니다. 리스크를 잘 수용한다고 해서 불확실성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위험 감수를 즐기는 도박사들도 불확실성보다는 확실성을 좋아합니다. 도박사들도 확실한 승률을 보장하는 게임, 다시 말해서 불확실성이 작은 게임을 더 선호하는 게 당연하니까요. 

2번은 불안함을 불확실성과 동일한 의미로 썼으므로 부적절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야기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 각각의 확률이 같다는 의미니까 항상 나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불안한 것 하고는 거리가 멀죠.

3번은 하는 일마다 똑부러지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므로 ‘행동이 너무 확실하다’고 말하는 게 옳습니다. 정답은 4번인데요, 불확실성은 좋은 경우와 나쁜 경우의 확률이 같을 때 가장 크기 때문입니다. 불확실성이 항상 나쁜 결과를 몰고 오는 것은 아닙니다.

확실성은 불안한 것도, 위험한 것도, 짜릿한 것도 아닙니다. 단순히 말해서 불확실성은 출근하는 남편이 집에서 지하철 승강장까지 걸어갈 때 오른발을 왼발보다 더 많이 디딜지, 아니면 그 반대일지를 짐작할 때 느끼는 아내의 심정과 같은 겁니다. 어떻게 보면 불확실성은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무게감에 비해 좀 싱거운 의미를 가지고 있죠.

그러나 불확실성을 잘 다루지 못하면 그게 곧바로 리스크로 직결됩니다. 여러분이 미래의 불확실성에 잘 대처한다는 것은 산꼭대기에 어떤 바위들이 올라서 무엇인지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향후에 어떤 방향으로 굴러 떨어질지를 잘 가늠해서 피하거나 맞서야 하겠죠. 시나리오 플래닝은 바로 그러기 위한 최선의 방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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