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플래닝'이란 책을 낸지 이제 2년이 넘었습니다. 적어도 시나리오 플래닝이란 용어는 들어본 적이 있다는 분들을 예전보다 많이 만나는 걸 보면, 제 책이 시나리오 플래닝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를 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그 분들을 만날 때마다 시나리오 플래닝을 각자 다르게 이해하는 것 같아 그 뜻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나중에 '시나리오 플래닝' 개정판이 나오면 이에 대한 설명을 추가해도 되겠지만, 블로그 공간을 빌려 시나리오 플래닝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3가지를 바로잡아 볼까 합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미래학이 아니다
여러분이 시나리오 플래닝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으면 무척 당혹스러울 겁니다. "앞으로 우리 회사나 산업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내가 OO에 집을 사려는데, 괜찮을 거 같나요? 시나리오 플래닝하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아주 당황스러운 질문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미래를 예견하기 위한 또 하나의 도구로 시나리오 플래닝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시나리오 플래닝을 미래학(未來學)과 동일시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시나리오 플래닝은 결코 미래학(Futurology)이 아닙니다. 엘빈 토플러나 존 나이스비트와 같은 미래학자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일반인들은 미래학을 친근하게 받아들였지요.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나 '권력 이동'과 같은 책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미래학에 열광했습니다.

미래학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미래학은 과거 또는 현재의 상황을 바탕으로 미래사회의 모습을 예측하고, 그 모델을 제공하는 학문이다”  이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미래학은 과거와 현재의 상황을 통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죠. 우리가 막연하게 불안하게 생각하는 미래를 확실한 모습으로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행동이나 판단에 기여하기 위한 학문이 바로 미래학입니다.

미래학이 이런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환경에서 불확실성이 작은 요인에 집중합니다. 즉 '트렌드'를 발굴하는 과정을 거치는 거죠. 문헌 연구, 전문가 인터뷰, 데이터 분석 등의 스킬을 동원해서 미래의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는, 변하지 않는 몇 가지 키워드를 찾아냅니다. 미래엔 지식노동자들이 대접 받을 거라든지,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강화될 거라든지 등이 미래학의 아웃풋들입니다.

이와는 달리, 시나리오 플래닝은 불확실성이 큰 요소가 무엇인가에 관심을 둡니다. 왜냐하면 시나리오 플래닝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나리오 플래닝 과정을 하면서 불확실성이 매우 작은 요인인 트렌드가 발견되기도 하지만, 이렇게 될 수도 저렇게 될 수도 있는 불확실성이 큰 요인이 시나리오 플래닝의 주재료입니다.

애당초 시나리오 플래닝은 확실한 모습을 전달하기 위한 기법이 아닙니다. 대신에 시나리오 플래닝은 우리의 미래가 여러 개의 시나리오로 펼쳐질 수 있음을 제시하죠. 미래학자들은 가능성이 가장 큰 미래만 제시하지만, 시나리오 플래닝은 여러 개의 시나리오가 동일한 가능성을 지닌다고 말합니다. 미래학자들은 확실하게 ‘이렇게 미래가 펼쳐지리라’ 이야기하지만, 시나리오 플래닝은 확언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여러 시나리오들에 대비하는 것이 시나리오 플래닝의 목적이고 가치입니다.

정리하면, 미래학은 트렌드에 집중하고, 반면에 시나리오 플래닝은 불확실성에 집중합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미래를 다룬다는 점에서 미래학과 통하는 면이 있지만 결코 동일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시나리오 플래닝의 대가로 소개되는 피터 슈워츠가 미래학자로 불리는 것은 잘못된 일이죠. 그의 예견이 딱 들어맞은 게 아니라, 그가 만든 여러 시나리오들 중에 하나가 적중한 것인데 사람들은 그를 미래 예측의 대가로 여기니까 말입니다. 시나리오 플래닝과 미래학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기 바랍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단기적 위기경영이 아니다
어느 날 신문을 보니 '시나리오 플래닝을 통해 경영의 방향을 수시로 점검하겠다' 라든지, '시나리오 경영으로 위기를 타개하자'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기업들이 이제 예측 관행을 버리고 드디어 미래의 불확실성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아주 반가운 마음이 들더군요.

그런데 과연 어떻게 시나리오 플래닝으로 전략을 수립했는지 알아보려고 지인들에게 연락을 취하면, 하나같이 이런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금시초문인데?” 혹은 “그냥 선언적인 이야기일 뿐이야'라는 소리들입니다. CEO 혼자만의 아이디어이거나, 조직에 위기감을 불어 넣으려고 시나리오라는 단어의 어감을 활용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소리로 들립니다. 반갑다가도 그런 말을 들으면 힘이 빠집니다.

그 중 더욱 애석한 대답은 시나리오 플래닝을 긴축경영과 동의어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시나리오에 따라 전략을 별도로 마련하여 대응하는 게 시나리오 플래닝의 의미임을 알지 못합니다. 비용을 감축하고 인력을 줄이고, 계획했던 투자안을 일단 보류부터 하고 난 다음에, 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자는 뜻으로 시나리오 플래닝이나 시나리오 경영을 언급합니다. 위기 극복보다 그저 찬바람을 피하려고 몸을 움츠리려는 것으로만 보입니다.

어떤 사람은 컨틴전시 플래닝을 시나리오 플래닝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컨틴전시 플래닝은 매우 중대하고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논하는 과정입니다. 반면에 시나리오 플래닝은 불확실성이 큰 환경변수들이 미래에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지를 '그리는' 과정입니다. 모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기법이라서 언뜻 보면 비슷한 듯 하지만, 사고의 전개는 아주 다르죠.

컨틴전시 플래닝은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고 난 후의 처리/대처방안에 무게중심을 두는 과정인데 반해, 시나리오 플래닝은 현재에서 미래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펼쳐질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그려보는 데에 초점을 맞춥니다. 예컨대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면 어떻게 후속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를 논하는 과정이 컨틴전시 플래닝이죠. 반면 시나리오 플래닝 관점에서는 공장의 화재는 불확실성을 내포한 하나의 변수로 간주될 뿐입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단기적인 롤링(Rolling) 플랜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모 회사가 3개월 혹은 6개월 단위로 경영전략을 수정하는 '시나리오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이 말하는 시나리오 경영은 시나리오 플래닝과 별로 관련이 없습니다. 그저 '단기 롤링 플랜'일 뿐이죠. 거창하게 시나리오 플래닝이란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습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5년 정도의 장기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조직의 중대한 의사결정을 다룹니다. 짧게 잡아도 2~3년 후의 미래를 상정하지요. 3~6개월의 단기적인 이슈는 시나리오 플래닝 관점에서는 매순간 변하는 주가 그래프에 불과합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을 긴축경영, 컨틴전시 플랜, 단기 롤링 플랜과 같이 위기경영의 도구로 잘못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여러분의 회사가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발등에 떨어진 불만 열심히 끄는 단기적 경영 관행이 고질병이 되고 맙니다. 불을 끄느라 발을 휘젓다가 다른 곳에 불이 옮겨 붙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보통 '위기가 곧 기회'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 문장 속에 숨은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남들이 허겁지겁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려고 할 때, 차분하게 미래를 생각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사람에게만 위기는 기회가 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단기적인 위험을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것이 근본적인 생존전략은 아닙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집단지성'이 아니다
모 증권회사에서 이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참가자들이 단말기를 통해 주어진 주제에 대해 답을 하면 즉석에서 투표결과가 나오는데, 이렇게 집단지성을 통해 미래예측을 하는 것이 시나리오 플래닝이다"라고 말입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을 다루는 논문이나 도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정의였습니다. 투표해서 많이 나오는 쪽으로 예측을 하는 게 과연 시나리오 플래닝일까요? 참가자들 대부분이 경제 회복 시기를 향후 2년으로 내다 본다고 해서 진짜 그렇게 될까요?

시나리오 플래닝은 집단지성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원래 집단 지성이란 말은 특정 문제에 대해 개인에게서 나타나지 않는 해결능력이 집단에서 창발한다는 개념입니다. 전문가들이 투표를 진행하는 것이 집단지성일까요? 그저 집단예측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을 여러 명 모아서 투표하는 일 따위로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은 전혀 신뢰성이 없습니다. 인간은 심리적으로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죠. 불황일 때는 실제보다 부정적으로, 호황일 때는 실제보다 낙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전문가들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습니다. 전문가 투표 등의 방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기법으로 잘못 인식할까 염려됩니다.



요컨대 시나리오 플래닝은 확실한 미래만을 전달하는 미래학이 아닙니다. 또한 긴축경영, 컨틴전시 플랜, 단기 롤링 플랜과 같이 위기경영의 도구도 아닙니다. 단기적인 위험을 집단지성으로 포장된 손쉬운 방법을 써서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것이 시나리오 플래닝이 추구하는 생존전략은 아닙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이 미래를 훤히 예측해 주리라,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묘책을 만들어 주리라는 기대를 갖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주면 시나리오 플래닝을 업으로 하는 컨설턴트인 저야 좋겠지만, 시나리오 플래닝이 단 하나의 해법, 단 하나의 예측 결과를 제시하는 도깨비 방망이라고 소개할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의 목적과 목표는 소박합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불확실함 그 자체로 인정하고 대비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래의 적응력을 높여주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점에서 시나리오 플래닝은 예측이 제공하지 못하는 효용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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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과 친구가 되자   

2010. 2. 19. 11:39

양자역학의 거두, 하이젠베르그는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습니다. 불확정성의 원리란, 양자의 위치를 정확히 측정하는 순간 운동량을 측정할 수가 없고, 반대로 운동량을 측정하는 순간 위치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는 것으로서 양자역학의 근간이 되는 원리입니다.

경영에서도 비슷한 법칙이 존재합니다. 바로 '불확실성의 원리'죠. 기업의 현 상황과 미래의 모습을 동시에 알아내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기업이 처해 있는 상황에 적합하도록 전략을 수립했더라도 그것이 한 달 후에 유효할지는 아무도 담보하지 못합니다. 

또한 미래의 환경을 나름대로 감안하여 전략을 세워도 현재의 상황과 역량을 고려치 않는다면, 말 그대로 ‘근사한 공상’에 지나지 않는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지요.

(집 모양이 비슷한 듯하지만, 조금씩 다르네요)



확언컨대, 현재는 과거보다 불확실하며 미래는 현재보다 더욱 불확실할 겁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반대의 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질서가 증가한다는 ‘엔트로피의 법칙’이 말하듯, 우리 주변의 무질서함은 예측 가능한 것을 예측 가능하지 않게 만들어 버리는 불확실성을 낳고 불확실성은 기업환경의 무질서 정도를 점점 증가시킵니다.

바퀴 두 개짜리 수레와 비교조차 불가능한 자동차의 복잡한 구조를 떠올려 보면, 복잡함이 불확실성과 무질서함을 나타냄을 알 수 있습니다. 자동차가 전자장치 오작동으로 급발진 사고를 일으키는 이유는 첨단 전자장치로 무장한 자동차의 내부구조 때문이죠.

기업환경의  무질서함은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이 많아지고 또 어디로 튈지 모르게 각자간의 상호작용이 점점 강해지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이제까지 별 상관 없는 산업영역에 있던 기업이 갑자기 우리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신생기업이 과거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전략으로 새롭게 부상하거나 하는 등의 현상이 나날이 발생하기 때문에 환경은 점점 무질서한 모습이 되어갑니다.

예를 들어, 이동통신업체가 제공하는 소액결제방식이 신용카드의 아성을 위협한다든지, 소위 지속가능력(Sustainability)을 내세워 기업의 환경보호와 사회공헌 등에 대해 정부와 일반대중이 압박을 가한다든지, 기업으로선 신경 쓸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환경은 시간이 갈수록 무질서해지고 기업은 할 일이 많아집니다.

누구나 불확실성을 싫어합니다. 하다못해 내일 아침에 우산을 가져갈 것이냐 말 것이냐 놓고 고민할 때, 불확실성을 해소하고자 TV를 보거나 신문을 뒤적이지요. 기업도 마찬가집니다. 어쩌면 기업이 매일매일 하는 활동의 많은 부분이 불확실성을 조금이나마 줄여보려는 의도 때문입니다. 회의를 하거나 보고를 하고 고객을 만나 이야기하고 교육을 받는 등의 일들이 모두 그렇습니다.

기획부서에서는 앞으로 1주일, 한 달 후, 1년 후 등의 미래에 우리의 실적이 과연 어떻게 될까, 경쟁사들은 어떻게 될까를 놓고 계산기를 두드리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또한 불확실한 미래에도 기업이 굳건히 살아남기 위한 체력을 기르기 위해 인사부서에서는 우수인재를 뽑고 육성하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아마 미래가 불확실하지 않다면 현재 존재하는 인력과 각종 인프라의 3분의 2 정도는 없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없어도 될 인력’을 불확실성 때문에 보유한다는 말입니다. 엔트로피를 줄이려면 반드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어지러워진 방을 청소하려면 손에 청소기를 들고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무질서함이 커진다 해서 ‘무질서를 감소시킬 사람’을 예전보다 많이 고용할 수는 없습니다. 생산성 증가의 압박도 동시에 커지기 때문이죠. 따라서 기업은 인력을 덜 고용하는 대신에 현재 근무하는 인력에게 더욱 많은 일을 시키게 되고 과거보다 양질의 성과를 요구하게 될 겁니다. 

우울하게도 이것이 미래학자들이 내다보는 미래의 모습입니다.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무질서를 감소시키기 위해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고 더 어려운 일을 시키게 될 겁니다. 또한, 인력의 규모가 노조의 교섭력 강화, 인력관리의 비용 증가 등과 같이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미래에는 전문성을 지닌 ‘프리 에이전트(Free Agent)’가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제까지는 예측을 잘 하는 기업이 성공해왔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예측기법에 기반하여 기획부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곧 쓰레기가 될 엄청난 양의 보고서를 만들지요. 그러나 미래는 예측 가능하리란 가정과 바람은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미래에는 ‘확실히’ 불확실성을 잘 다루는 기업이 산업을 호령하는 시대가 될 겁니다. 미래에 무엇을 할지를 미리 대비하고 ‘실행력’을 구축하십시오. 남이 무엇을 하는지 쳐다보지 말고 무궁무진한 기회의 보고인 미래를 연구하기 바랍니다. 불확실성과 친구가 되십시오. 이것이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유일한 전략이자 역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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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도구로서 시나리오 플래닝을 고객들에게 소개하는 컨설턴트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으면 무척 당혹스럽다

"앞으로 우리 회사나 산업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내가 OO에 집을 사려는데, 괜찮을 거 같아? 시나리오 플래닝하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당황스럽지만 자주 듣는 질문이긴 하다.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미래를 예견하기 위한 또 하나의 도구로 시나리오 플래닝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시나리오 플래닝을 미래학(未來學)과 동일시하기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나리오 플래닝은 결코 미래학(Futurology)이 아니다.

엘빈 토플러나 존 나이스비트와 같은 미래학자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일반인들은 미래학을 친근하게 받아들였다.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나 '권력 이동'과 같은 책이 나왔을 때 우리는 얼마나 열광했던가!

미래학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과거 또는 현재의 상황을 바탕으로 미래사회의 모습을 예측하고,
그 모델을 제공하는 학문 
(출처 : 두산백과사전)

이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미래학은 과거와 현재의 상황을 통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다. 우리가 막연하게 불안하게 생각하는 미래를 확실한 모습으로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행동이나 판단에 기여하기 위한 학문이다.

미래학이 이런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환경에서 불확실성이 작은 요소, 즉 '트렌드'를 발굴하는 과정을 거친다. 문헌 연구, 전문가 인터뷰, 데이터 분석 등의 스킬을 동원해서 미래의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는, 변하지 않는 몇 가지 키워드를 찾아낸다. 미래엔 지식노동자들이 대접 받을 거라든지,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강화될 거라든지 등이 미래학의 아웃풋들이다.

이와는 달리, 시나리오 플래닝은 불확실성이 큰 요소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둔다. 왜냐하면 시나리오 플래닝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시나리오 플래닝 과정을 하면서 불확실성이 매우 작은 요소(즉, 트렌드)가 발견되기도 하지만, 이렇게 될 수도 저렇게 될 수도 있는(즉, 불확실성이 큰) 요소가 관심의 대상이다. 애당초 시나리오 플래닝은 확실한 모습을 전달하기 위한 기법이 아니다.

대신에 시나리오 플래닝은 우리의 미래가 여러 개의 시나리오로 펼쳐질 수 있음을 제시한다. 미래학자들은 가능성이 가장 큰 미래만 상정하지만(실제로 현실화되는지 여부는 차치하고), 시나리오 플래닝은 여러 개의 시나리오가 동일한 가능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미래학자들의 저작에서처럼 확언하듯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여러 시나리오들에 대비하는 것이 시나리오 플래닝의 목적이고 가치다.

정리하면, 미래학은 트렌드에 집중하고, 반면에 시나리오 플래닝은 불확실성에 집중한다. 따라서 시나리오 플래닝은 미래를 다룬다는 점에서 미래학과 통하는 면이 있지만 결코 동일한 게 아니다. 이런 이유로 시나리오 플래닝의 대가로 소개되는 피터 슈워츠가 미래학자로 불리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그의 예견이 딱 들어맞은 게 아니라, 그가 만든 여러 시나리오들 중에 하나가 적중한 것인데 사람들은 그를 미래 예측의 대가로 여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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