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Trust) 방정식   

2011. 3. 8. 09:00



비즈니스를 할 때 '신뢰'는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 상당히 중요한 고리입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거래 자체가 성사되기 어렵고 설령 거래가 성립됐다 해도 서로에 대한 의심 때문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거나 이것저것 여러 가지 '보험 장치'를 덧붙이는 바람에 눈에 보이지 않는 '거래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죠. 비단 사회생활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친목을 다지는 일에도 신뢰가 밑바탕을 이루지 않으면 '그저 아는 사이' 이상으로 발전되기 어렵습니다. 신뢰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끈끈한 접착제입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이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평가해야 상대방의 나에게 줄지도 모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사람들을 접하면서 거의 자동적으로 '저 사람은 믿을 만한 사람인가?'란 질문을 통해 상대방을 평가하곤 합니다. 하다못해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가더라도 '이 의사는 신뢰할 만한 사람인가?' 처방은 잘 내리는 걸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여러분 자신을 발견할 겁니다. 상대방의 신뢰 여부를 묻는 자문(自問)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아주 답하기 어려운 질문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을 신뢰할 수 있는 정도, 즉 '신뢰도'를 막연하게 평가하지 말고 신뢰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따져보면 어떨까요? 요소로 세분해 보면 신뢰도를 더 잘 측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누군가의 신뢰도를 측정할 때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요소는 바로 '의도'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도와주거나 내 말을 따를 '의도'가 있느냐 없느냐, 혹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나를 속일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장 중요시하죠. 여러분이 '의도'라는 말로 정의내리지 못했더라도 이 정도는 누구나 다 아는 신뢰의 요소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상대방의 '의도'를 신뢰도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평소 선한 의도를 꾸준히 보이는 사람이라면 그를 100% 신뢰하겠죠. 하지만 선한 의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신뢰도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속일 의도가 없다 해도, 상대방이 내 말이라면 다 들어줄 자세가 되어 있다 해도 나의 지시나 부탁을 실행에 옮길 능력이 없다면 신뢰할 수 없겠죠. 부하직원에게 보고서 작성을 맡겼는데, 열심히 작업하는 그의 모습(의도)이 좋아 보여도 가져온 보고서가 엉망(능력)이라면 그를 신뢰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 부하직원의 보고서 작성 능력을 더 훈련시켜서 자신이 원하는 신뢰 수준으로 끌어올리든지, 아니면 웬만하면 일 잘하는 다른 직원에게 맡기든지 해야겠죠. 돌팔이라고 소문난 의사에게 여러분의 몸을 맡기고 싶진 않을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도'와 '능력'을 서로 반비례 관계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능력이 좋은 사람은 왠지 나를 속일 것 같고(나쁜 의도를 가질 것 같고), 나에게 좋은 의도로 접근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능력이 모자라니까 이러는 것 아니야?'라며 그의 능력을 폄하하죠. 보통 무료 진료라는 좋은 의도를 가진 의사보다는 비싼 진료비를 요구하는 의사의 능력을 '무의식적으로' 더 높게 평가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의도'와 '능력' 사이에는 연관관계가 아주 적습니다. 독립적인 개념이죠.

그렇다면 능력과 함께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라면 신뢰해도 좋을까요? 이 두 개의 요소만 가지고는 아직 부족합니다. '우연'이라는 요소도 신뢰를 형성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유능하고 성실한 사람이라 해도 외부적인 상황 때문에 자신의 의도를 계속 유지할지 확신할 수 없죠. 중요한 일을 같이 처리하려고 모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상대방이 중간에 교통사고를 내서 약속을 펑크낸다면 약하지만 신뢰에 금이 갑니다.

물론 불가항력이고 나와 상대방이 오랫동안 만날 사이라면 한두 번의 실수는 신뢰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우연히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신뢰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쪽으로 판단이 쏠리게 됩니다. 우연이란 요소는 비즈니스에서 자주 벌어지는 '1회성 거래'에는 치명적인 영향이 끼치기도 하죠.

예를 들어 능력이 있고 고객을 위하는 마음(의도)도 충만한 어느 컨설턴트가 클라이언트 앞에서 제안서 발표를 하는데 가져온 노트북 컴퓨터가 고장나서 PT가 잠시 공전된다면 비록 그 컨설턴트의 직접적인 잘못이 아니더라도 신뢰도가 떨어지는 게 인간의 마음입니다. 우연이란 개념을 통계에서 말하는 '편차'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가지고 신뢰도를 측정하는 방정식을 만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뢰도(%) = 의도 * 능력 * (100 - 우연)

각각 0부터 100까지의 퍼센테이지로 판단한 후 곱하면 상대방의 신뢰도가 산출되겠죠.  예컨대 의도가  90%, 능력이 50%, 우연이 10%라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뢰도(%) = 90% * 50% * (100 - 10)%  = 약 40%

상대방의 신뢰도를 평가하는 데 꼭 이렇게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지도 모릅니다. 순간적으로 상대방의 신뢰도를 평가해야 할 급박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각 요소를 퍼센테이지로 계량화하는 일도 사실은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정성적으로 판단해서 대략의 수치를 정해야 하죠. 하지만 적어도 시간을 두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는 무턱대고 누군가의 신뢰도를 막연히 평가하는 것보다는 종이 한 장을 꺼내 놓고 차분하게 신뢰의 방정식의 해(解)를 구하는 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신뢰도를 측정하는 것 말고, 상대방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 내가 무언가를 함으로써 신뢰도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중 하나 이상을 변화시켜서 상대방의 신뢰도를 끌어올릴 수는 없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의도', '능력', '우연' 중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연'은 상대방도 나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변수입니다(아주 제한적인 범위에서 '우연'을 컨트롤할 수 있기는 합니다). 신뢰도의 요소 중 '의도', '능력'은 상대방이 전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지만, 나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선한 의도를 가지게 만들려면 그에게 돈(급여나 계약금 등)이라는 금전적 인센티브를, 평소 칭찬과 인정이라는 비금전적 인센티브를 활용하면 됩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능력 제고'에 내가 관여하는 상사나 동료의 입장이라면 그에게 교육을 시킴으로써 신뢰도를 올릴 수 있습니다. 결국 이렇게 해서 향상된 상대방의 신뢰도는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신뢰감 형성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겠죠.

신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어떤 것보다 인간관계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여러분이 익히 아는 사실입니다. 신뢰를 하위요소로 나눠 생각하는 것이 왠지 '환원적'인 듯해서 마뜩치 않을지 모르지만, 이를 통해 서로 상대방의 신뢰도를 올바르게 측정함으로써 쌍방이 기존에 쌓아둔 신뢰라는 자산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고, 상대방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해 보는 단초를 제공하기에 유용한 개념입니다. 신뢰의 방정식을 가슴에 담아 두세요. '신뢰 자산'이 복리 이자처럼 불어나지 않을까요?

(* 참고도서 : '머니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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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루피니(Paolo Ruffini)라는 이탈리아의 수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5차방정식을 풀 수 있는 공식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고등학교 때 달달 외웠던 2차방정식의 '근의 공식'과 같은 공식이 5차방정식(x의 차수가 5인)에서는 없음을 증명했던 거죠. 하지만 그의 증명은 오류가 있음이 그가 죽은 후에야 밝혀지게 됐습니다. 

루피니는 2권 분량이나 되는 자신의 증명을 책으로 출판하여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습니다. 당시의 위대한 수학자 중 한 사람이었던 라그랑주에게도 세 차례에 걸쳐 자신의 책을 보내어 '검증하거나 인정해주기를' 바랐지만 라그랑주는 아무런 답장도 보내지 않았죠. 웬일인지 사람들은 그의 증명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그의 증명이 너무나 복잡하고 길었기 때문입니다. 책으로 2권이나 되는 그의 증명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따져보기에는 너무나 방대하고 어려웠습니다. 5차방정식 문제가 수학자들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이긴 했지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같이 수세기 동안 수학자들을 괴롭혔던 문제가 아니고서는 관심을 쏟을 이유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부정적인 결과('5차방정식엔 근의 공식이 없다')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심리 때문입니다. 수학자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3차방정식과 4차방정식에서 근의 공식을 규명해냈기 때문에 5차방정식에서도 근의 공식이 존재하리라고 추정했습니다. 그 공식이 복잡하고 난해하더라도 언젠가는 밝혀지리라는 믿음을 가졌지요. 

우리는 두 번째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에 반하는 증명을 누군가가 제시했을 때 자동적으로 그것을 반대하려는 심리가 있습니다. 자신의 가설을 '반증'하는 근거를 수용하기 어려워 합니다.

그러니 루피니가 나타나서 오랜 시간 동안 잠정적으로 믿어왔고 '입증'하려고 애써온 가설이 틀렸다는 증명을 자신들에게 던져주니 살펴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겁니다. 2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 때문에 더더욱 그랬죠. 그래서인지 루피니의 증명에 존재하는 오류는 그가 살아있을 땐 규명되지 못했습니다(나중에 노르웨이의 수학자 닐스 아벨이 5차방정식에는 근의 공식이 없음을 '옳게' 증명해 냅니다).

가설은 한번 설정되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해서 마치 그 가설이 옳은 것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그래서 가설을 입증할 근거만 눈에 보이고 반증할 근거는 자신도 모르게 외면하고 맙니다. 누군가가 가설의 틀림을 이야기하면 그가 제시한 근거에 먼저 눈을 돌리기보다는 가설의 보호자를 자처해 그 사람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루피니는 죽기 1년 전인 1821년에야 위대한 수학자인 코시(Cauchy)로부터 5차방정식 연구에 대해 찬사를 받았지만 코시도 루피니의 증명을 검증해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루피니는 수학자가 아니라 발진티푸스를 연구하고 치료하는 의사로 살다가 1822년에 삶을 마감합니다.

자신이 만들었거나 자신이 지지하는 가설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을 가지기가 어려움을 루피니의 '불행한 삶'이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가설은 그냥 가설일 뿐입니다.

(*참고도서 :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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