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도 기업들은 조직의 '좋은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고심하고 있을 겁니다. 변화를 시도하려는 주제가 비용 절감이든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역동적인 피드백이든 구성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구상하곤 합니다. 고객사를 방문할 일이 있으면 벽에 붙은 게시판 내용을 보는 버릇이 있는데, 거기에는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유인물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변화를 촉구하고 기대하는 문구도 함께 적혀 있곤 합니다. 대개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자", "PC 전원을 꼭 끄고 퇴근합시다"와 같이 직원들에게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말자'는 말들이 주를 이룹니다.

하지만 이렇게 촉구하거나 설득하는 투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은 긍정적인 변화로 향하는 먼 길을 더욱 요원하게 만들 뿐입니다. 설령 직원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도 그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시카고의 공립 초등학교에 다니는 5학년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교실 바닥이나 복도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도록 할 수 있는지를 연구한 리차드 밀러(Richard L. Miller)와 동료들의 실험이 그러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죠. 


밀러는 첫 번째 학급의 학생들에게는 "학교에서 너희 교실이 가장 깨끗하구나", "너희들처럼 교실을 깨끗하게 사용하는 아이들이 있다니 자랑스럽구나", "워낙 깨끗해서 청소하기가 쉽구나" 라는 메시지를 8일 동안 지속적으로 전달했습니다. 자긍심이 느껴지도록 '너희는 그렇게 좋은 아이들이야'라고 인정한 것입니다. 반면 두 번째 학급의 학생들에게는 "청소하는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 "모두 정리정돈을 잘해야 한다", "바닥에 사탕 껍질을 버리지 말고 꼭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는 식으로 '의무'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주입시켰습니다. 대조군으로 선정된 세 번째 학급에는 아무런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10일째 되는 날, 제과회사에서 나왔다고 가장한 홍보 사원이 학생들에게 껍질에 쌓인 사탕을 나눠준 후에 학생들의 행동을 살폈습니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사탕 껍질의 수도 세어 보았죠. 그랬더니 '자긍심 조건'의 학생들이 '의무 조건'의 학생들보다 교실 바닥이나 책상 아래에 사탕 껍질을 덜 버리는 것은 물론이었고 실험 진행자가 바닥에 몰래 버린 사탕 껍질도 더 많이 줍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의무를 강조하기보다는 자긍심을 자극하는 방법이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데 효과적이었던 겁니다.

2주일이 흐른 후에 포장지에 쌓인 퍼즐을 학생들에게 나눠주고서 마음껏 즐기라고 한 후에 역시 쓰레기통에 잘 버려진 포장지 수를 세었습니다. 2주일이나 지났으니 메시지 주입 효과가 미약해졌으리라 예상했지만, '자긍심 조건'의 학생들은 여전히 쓰레기를 올바르게 처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반면 '의무 조건'의 학생들은 바닥에 마구 쓰레기를 버리던, 실험을 시작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렸죠. "나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사람이다"란 메시지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 유효했던 겁니다.

쓰레기를 올바로 처리하는 행동뿐만 아니라 학과 성적도 '자긍심 조건'의 학생들과 '의무 조건'의 학생들 사이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는 사실이 후속실험에서 밝혀졌습니다. 밀러는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둘로 나눠 첫 번째 그룹에게는 "너는 수학을 참 잘하는구나", "넌 수학을 잘 하기 위해 노력하는구나"는 식으로 자긍심을 북돋우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넌 수학을 잘 해야 해", "너는 수학을 잘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해"라며 의무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주입했습니다.

이렇게 8일 동안 메시지를 여러 방식으로 전달한 후에 수학 시험을 치러 보니 두 그룹 모두 성적이 향상되긴 했지만 자긍심을 인정 받은 학생들의 성적이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2주일 후에 다시 한 번 치른 시험에서 자긍심 조건의 학생들 점수는 상승한 반면, 의무 조건의 학생들은 실험을 진행하기 전의 점수로 뚝 떨어져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대조군의 점수와 같아져 버렸죠. 한번 인정 받은 자긍심은 시간이 흘러도 수학 점수를 높게 받으려는 동기를 지속적으로 강화했다는 의미입니다.

밀러의 실험이 비록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그 변화가 꾸준히 유지될 것을 희망하는 기업들에게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힌트를 줍니다. 무언가를 '하자', '해야 한다', '안 하면 안 된다'는 투의 전달 방식은 '반짝 효과'를 내겠지만 그 변화의 크기는 자긍심을 자극하는 방식에 비해 작을지 모릅니다. 변화의 크기뿐만 아니라 변화의 지속시간을 따져봐도 의무보다는 자긍심을 자극하는 메시지 전달이 효과적일 겁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라 미덥지 않다면, 의무보다는 자긍심을 자극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실제 사례가 있습니다. 텍사스 주는 고속도로에 버려지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이 시민의 의무임을 강조하는 갖가지 방법의 캠페인에 막대한 돈을 들였습니다. 하지만 쓰레기 투기는 줄어들 줄 몰랐죠. 그러다가 방향을 전환하여 "진정한 텍사스인이라면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지 않는다"라는 식의 메시지를 광고 캠페인에 담아 전달하자 곧바로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1년 후 쓰레기 투기율은 29퍼센트나 감소했고, 5년 후에는 도로변의 쓰레기가 72퍼센트 감소했던 겁니다. 다른 주와 비교해도 도로변의 쓰레기 양은 절반에 불과했죠.

지금 사내 게시판 이곳저곳에 붙은 문구들을 한번 살펴보면 어떨까요? 그 문구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의무를 강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왜 수많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기를 바랍니다.


(*참고논문)
Richard L. Miller, Philip Brickman, Diana Bolen(1975), Attribution Versus Persuasion as a Means for Modifying Behavior,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Vol. 31(3)

(*참고도서)
칩 히스 외, <스틱!>, 안진환, 박슬라 역, 웅진윙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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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누군가가 잘못을 저지르면 그 잘못이 기질, 성격, 기능처럼 그 사람의 '고정된' 특성으로부터 야기됐다고 봅니까, 아니면 그 사람이 처한 당시의 상황이나 조건이 그런 잘못을 저지르도록 유도한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만일 그 사람이 다른 상황에 처하거나 다른 조건에 주어진다면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까? 다시 말해 사물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그 사람의 특성과 행동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내외부적 동기에 의해 탄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까?

이 질문들을 특정 인물이 아니라 우리와 반목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집단에게 던져 본다면 그때는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쟤네들은 원래 그래.", "걔네들은 절대로 바뀌지 않아"라며 그 집단의 특성이 고정되어 있다고 봅니까, "그들은 바뀔 수 있을 거야", "상황이 걔네들을 그렇게 만든 거지"라며 그 집단의 변화 유연성(malleability)을 기대하겠습니까? 



에란 할페린(Eran Halperin)과 동료 연구자들은 일련의 실험을 통해 갈등 상황에 처한 둘 이상의 집단들이 서로의 집단적 특성이 고착돼 있다고 믿을 경우 갈등 해소의 길은 요원하다고 지적합니다. 집단의 특성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는 것이 믿을 때 만남과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고 화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할페린이 연구 대상으로 삼은 집단은 국제 뉴스의 단골로 오르내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집단이었습니다. 할페린은 먼저 500명의 이스라엘 유태인들과 인터뷰를 벌여 "집단은 자신들의 기본적 특성을 변화시킬 수 없다"란 문장에 얼마나 동의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런 다음, 팔레스타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팔레스타인과 타협할 의지가 얼마나 되는지도 평가했죠. 분석해 보니 집단의 변화 유연성을 믿는 유태인일수록 팔레스타인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타협 의지도 더 컸습니다.

이번엔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76명의 유태인을 실험실에 모아 놓고 호전적인 집단(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무관한 집단)에 관한 기사를 읽도록 했습니다. 참가자 중 절반은 그 호전적 집단의 특성이 고정적이라고 묘사된 기사를, 나머지 절반은 유연하게 변화 가능하다고 표현된 기사를 읽었습니다. 기사를 읽은 후에 팔레스타인 집단에 관해 질문을 던져보니, 후자의 참가자들이 팔레스타인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팔레스타인과의 타협에도 더 큰 지지를 보냈습니다. 집단의 변화 유연성을 인식하는 것이 집단 간의 갈등 해소에 첫걸음임을 시사하는 결과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시민이지만 팔레스타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감시를 받는 사람들은 할페린의 실험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그들 역시 집단의 변화 유연성이 표현된 글을 읽은 후에 유태인과의 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할페린은 이스라엘과 대립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 53명을 대상으로도 동일한 실험을 실시했는데, 역시 같은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이스라엘인들을 기꺼이 만나보겠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알다시피 만남은 갈등 해소의 시작입니다. 이는 집단의 특성이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유연한 것이라는 인식이 갈등 완화와 해소에 매우 중요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결과죠.

기업이라는 집단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 여러 소집단들이 존재합니다. 경영자와 노동자, '팀장'으로 대표되는 관리자 집단과 '팀원'으로 통칭되는 직원 집단, 사무직 집단과 생산직 집단, 사업부로 각각 나뉜 집단들이 대표적이죠. 애석하게도 소집단끼리 서로 반목하고 경원시하는 경우가 꽤 많을뿐더러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충돌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할페린의 연구는 이런 갈등을 해결하고 타협하기 위한 출발점은 바로 상대 집단의 특성이 고정적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임을 시사합니다. 

"걔네들은 항상 그래."라며 특성의 고정성(fixation)을 믿고 그 믿음을 강화해 나간다면 대화와 타협보다는 통제와 징벌이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채택되고, 그로 인해 갈등은 해소되기는커녕 더 큰 물리적인 충돌로 악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갈등 상황이 아니더라도 조직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싶을 때도 상대 집단의 변화 유연성을 자극하고 유도하려는 조치보다 "너희들은 우리가 하자는 대로 따라오면 돼."라며 상대 집단을 고정화된 시각으로 대한다면, 그 변화의 나침반은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하게 될 겁니다.

갈등 해소든 변화관리든, 집단이든 개인이든, 상대방에 대한 고정화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상황, 다른 조건에 의해 다른 동기를 가지게 되고 그로 인해 다른 행동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갈등 해소와 긍정적 변화가 시작됨을 유념해야겠습니다. 특히 노조와 반목 중인 기업에서는 더욱 그러하겠죠.

여러분 조직의 경영자는 직원들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직원들을 딱딱한 고체처럼 인식합니까, 아니면 그릇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는 액체로 바라봅니까? 부디 후자이길 바랍니다.


(*참고논문)
Promoting the Middle East Peace Process by Changing Beliefs About Group Mallea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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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적이고 불건전한 행위를 억제하거나 사람들에게 바람직한 행동을 이끌어낼 목적으로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 정도 수준으로 이렇게 행동한다'는 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캠페인이 종종 눈에 띱니다. 이런 캠페인들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동이 올바르고 바람직한 것인지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함으로써 행동을 수정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실시되곤 하죠.

하지만 사회적 기준을 강조하는 방식의 캠페인은 오히려 억제하고 줄이려고 했던 파괴적이고 불건전하며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대학 당국이 학생들의 폭음을 줄이기 위해서 캠페인 메시지 속에 일반적인 학생들이 평균 음주량 정보를 알려준다면 원래 평균보다 술을 덜 마셔왔던 학생들은 자신의 음주량을 늘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학 당국의 본래 의도는 '이 정도를 마시는 게 학생으로서 적당하다'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지만, 학생들은 '내 음주량이 별로 많지 않으니까 더 마셔도 되겠네'라고 생각합니다.



이웃사람들의 평균 전력 소비량 정보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전력 소비량 변화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본 P. 웨슬리 슐츠(P. Wesley Schultz)와 동료들의 연구에서도 동일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슐츠는 캘리포니아 샌마르코스에 거주하는 여러 가구들의 전력 소비량을 측정한 다음, 각 집의 현관에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그 자료에는 해당 가정의 전력 소비량과 이웃들의 평균 전력 소비량 정보가 적혀 있었고 어떻게 하면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는지에 관한 방법도 쓰여 있었습니다.

3주 후에 각 가구의 전력 소비량을 측정해 보니 평균보다 전력 소비가 높았던 가구들은 상당한 수준으로 전력을 절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하루에 1.22kWh를 덜 소비). 이웃들의 평균보다 높다는 정보를 접하고서 전력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뜻이었죠. 사회적 기준을 제시하는 방법이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해내는 데 효과적임을 증명하는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원래부터 평균보다 전력을 적게 소비하던 가구들은 반대의 소비 패턴을 보였습니다. 자신들이 평균보다 적게 소비한다는 것을 알고나서는 하루에 0.89kWh의 전력을 더 썼으니 말입니다. "우리집이 다른 집보다 적게 쓰고 있었네? 이제 더 써도 되겠어."라고 생각했다는 의미였습니다. 더 소비해도 괜찮다는 핑계거리를 준 셈이었죠.

조직 내에서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하려는 목적으로 '이 정도 수준을 지켜야 한다'는 식으로 기준을 제시하면, 원래부터 바람직하게 행동하던 사람들이 그 기준에 가까워지려는(기준에 가깝게 행동해도 괜찮다는) 동기를 자극할 우려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용을 절감하려고 비용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따라야 한다고 구성원들을 독려하면 비용을 많이 쓰던 사람(혹은 부서)들을 통제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원래 비용을 덜 쓰던 사람들이 '이 기준까지는 써도 뭐라고 하지 않겠네'라고 생각하며 비용 지출을 늘릴지 모릅니다. 그래서 조직 전체적으로 비용 절감의 효과가 반감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비용 지출액이 늘어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죠. 어떻게 해야 이런 '부메랑 효과'를 줄일 수 있을까요?

슐츠는 실험 조건을 바꿔서 이웃들의 평균 전력 소비량보다 많이 소비하는 집에는 '울상 이모티콘'을, 그것보다 적게 소비하는 집에는 '스마일 이모티콘(☺)'을 각 가구에 배포해 보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전력 소비량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고 용인되는 수준인지를 넌지시 알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랬더니 평균보다 많이 소비해서 '울상 이모티콘'을 건네 받은 가정은 전략 소비량을 줄였는데, 그 감소량은 이모티콘이 없을 때와 크게 차이 나지 않았습니다. 

반면, 평균보다 적게 소비하던 가정(스마일 이모티콘)은 원래의 적은 소비량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이모티콘 하나를 추가하니 평균 전력 소비량 정보만 전달할 때 생겼던 '부메랑 효과'가 사라진 것입니다. 보다 장기적으로 살펴봐도 이모티콘으로 인해 변화된 전력 소비량의 패턴이 꾸준히 유지됐다고 합니다.

조직 내에서 불건전하거나 파괴적인 행동을 줄이려고 할 때,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하려 할 때, 사회적 기준을 제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 슐츠의 실험이 주는 시사점입니다. 억제하거나 줄이려는 행동이 사회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 용인되고 수용될 수 있는 것인지를 은근하면서도 간단한 방법으로 '넛지(nudge)'하는 방법이 효과적임을 또한 알려 줍니다. 

크고 작은 변화를 시도할 때마다 "남들은 이런 상황에서 다 이렇게 한다"라는 기준(이를 '기술적 규범'이라고 말함)만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그렇게 하는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답을 줄 수 있도록 무엇을 인정되고 무엇이 인정되지 않는지(이를 '당위적 규범'이라고 말함)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슐츠가 제시한 이모티콘은 전력 소비에 있어 무엇이 용인되고 무엇이 용인되지 않음을 알려주는 '당위적 규범'의 장치였습니다.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를 유도할 때 기술적 규범과 당위적 규범이 적절하게 제시되고 이해될 수 있도록 유념할 필요가 있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비용 규정이 비용 지출을 늘리는 꼴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참고논문)
The Constructive, Destructive, and Reconstructive Power of Social No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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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통째로 먹지 마라   

2011. 11. 28. 09:20



1970년대에 이름을 밝히지 않는 미국의 어느 여성 과학자는 분자생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나서 여성 의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의료계에서 여성이 당하는 성차별 관행에 대해 깊은 유감을 가지고 있었죠.

가장 단적인 예는 심장 발작 증세의 성적 차이를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성들은 심장 발작을 일으킬 때 구역질과 구토, 소화불량을 호소하곤 합니다. 하지만 의사들은 흉통, 턱과 팔의 통증, 호흡 곤란, 현기증이 심장 발작 증세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여성들이 고통을 호소해도 그것이 심장 발작 증세인지 몰라서 즉각적인 검사와 처치를 하지 못했죠. 그래서 여성 환자들이 사망에 이르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의료계에서 여성의 심장병 증상에 대해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연구도 되지 않는 사실을 고치기로 한 것이죠.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고 두꺼웠습니다. 대부분의 연구는 남성을 대상으로 할 뿐 여성에게 특별히 관심을 둔 연구는 적어도 심장병 분야에서는 거의 없었습니다. 심지어 심장병 실험에 쓰이는 쥐 중에는 암컷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1985년에 국립 보건 연구원(NIH)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러한 관행을 본격적으로 개선하기로 합니다. NIH는 정부 의료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죠. 그녀의 친구는 "코끼리를 통째로 먹으려 하지 말라"는 충고를 합니다. 연방 정부의 일처리 방식상 상황을 한꺼번에 개혁하려고 하면 큰 저항에 직면하게 되어 흐지부지되거나 실패하기 십상이라는 조언이었죠. 

그녀는 그 충고를 받아들여 목표를 멀리 보고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NIH에서조차 수천 명의 소속 의사 중에서 부인과 전문의는 겨우 세 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하원 의회를 설득하여 NIH의 부인과 전문의 수를 대폭 늘리기로 합니다. 전체 중에 부인과 전문의가 1%도 안 된다는 사실을 부각하면 이러한 제안은 완고한 정치인들도 쉽게 받아들일 만 했기 때문이죠.

그녀의 제안 덕에 3명이었던 부인과 의사들이 15~20명 수준으로 늘어나게 됐습니다. 수천 억 달러의 예산으로 움직이던 미국의 보건 예산에서 보면 이 정도의 인원 보강으로 인해 늘어나는 인건비와 제반 비용은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정치인들이 쉽게 허용을 했던 것이죠. 더군다나 정치인들은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일단 변화의 물꼬를 튼 그녀는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NIH를 압박하여 여성을 의료 연구 대상에 포함시키는 정책을 채택하도록 했습니다. 이를 통해 여성 의학 연구, 여성의 의료 접근성 향상, 여성 질병 예방 서비스 등 20개의 법령이 하원을 통과하게 됐죠. 또한 NIH 내에 여성 보건 연구소가 설립됨으로써 여성을 대상으로 의학 실험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녀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의료계의 성평등을 추구하는 여성 보건 연구회의 창립을 도움으로써 질병의 남녀 차이를 밝혀내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여성 환자에 대한 진단과 치료 수준이 향상되었습니다.

그녀의 현명함은 앞서 언급했듯이 '코끼리를 통째로 먹지 않고' 서서히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는 데에 있습니다. 보건 분야의 터줏대감들이 장악하고 있는 의료계가 보수적이고 변화를 싫어한다는 점을 간파하고 영리하게도 '코끼리를 잘게 잘라 먹기로' 다짐한 데에 있죠. 그녀는 정치인들이 위험부담을 적게 느낄 만한 아이디어(부인과 전문의 수를 늘리는 일)로 시작해서 점차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는 '위장 전략'을 씀으로써 자신의 최종적인 목표인 '여성 의료 수준의 향상'을 도모했던 겁니다.

우리는 혁신을 추진할 때 근본적이면서도 급진적이고 단칼에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초기에 저항이 있더라도 '한번에 크게' 변화를 추구해야 결과적으로 '상처'가 적다고 여깁니다. 물론 조직의 구성원 모두가 변화에 합의가 잘 된 상태라면 시간을 질질 끌지 말고 한번에 변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조직 내에서 권력을 가진 자가 그 변화의 가장 큰 보틀넥이 될 경우라면 급진적이고 개혁적인 변화는 실패로 막을 내릴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그 변화가 기득권을 가진 보수적 계층에게 위험 부담을 주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변화는 위험 부담이 낮은 '작은 목표'를 수시로 던져줘야 결과적으로 빠르게 일어납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걸어 다니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듯, 기업의 변화도 경우에 따라서 조바심을 억누르고 장기적으로 보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거대한 목표를 잘게 나누어 위험 부담이 적은(혹은 위험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도 못하는) 작은 목표를 순차적으로 던져 줌으로써 변화의 활성화 에너지를 확보하는 과정이 현명한 변화관리 전략입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하여 조직의 변화도 그 속도에 맞춰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조바심에 빠질 때, '코끼리를 통째로 먹으려는' 오류에 빠지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것이 변화 과정에서 빛을 발할 중용의 미덕일 것입니다.

현 정부가 정책 추진 과정에서 자주 국민의 정서를 거스르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코끼리를 통째로 먹으려는 시도 때문은 아닐까요?

(*참고도서 : '생각의 빅뱅', 갈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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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 재상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를 아십니까? 독일의 통일에 기여한 인물로 추앙 받는 그가 한때 러시아 대사로 근무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러시아 황제인 알렉산더 2세를 예방하는 자리에서 이상한 모습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궁전 정원의 한적한 곳에 군인들 몇 명이 경비를 서고 있었던 겁니다. 특별히 중요한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를 경호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으니 비스마르크의 날카로운 눈에는 그 모습이 이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황제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더 2세는 자신도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자신의 신하에게 물었습니다. 신하 역시 알지 못해서 경호 장교에게 물었지만 그도 왜 경비병들이 궁전 정원에서 근무하는지 몰랐죠. 그러다가 어떤 사령관이 나와서 황제에게 아뢰었죠. "그것은 예전부터 내려온 관습에 의한 것입니다."라고 말입니다. 황제가 "그 관습은 어떻게 시작된 거지?" 라고 물었지만 사령관은 "죄송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황제는 사령관에게 조사해서 보고하라는 명령을 내렸죠.

비스마르크



조사를 하는 데에 꼬박 3일이나 걸렸습니다. 고작 정원에 경비병들이 근무를 서는 이유를 캐내는 데 말입니다. 알고보니 그 유래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단순했습니다. 80년 전에 캐더린 대제(에카테리나 2세)가 집정하던 시기였습니다. 알다시피 러시아의 겨울은 아주 길고 매우 혹독합니다. 긴 겨울이 끝나고 드디어 봄기운이 감돌면 사람들은 꽃 한 송이에도 마음이 설레이기 마련입니다.

대제가 창문 밖을 내다 보다가 언 땅을 뚫고 나온 '갈란투스' 꽃을 발견했습니다.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대제는 경비병을 시켜서 누구도 그 꽃을 꺾지 못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경비병들은 정원에 서서 근무하게 된 겁니다. 꽃이 지고 나서도 80년 동안 경비를 선 병사들은 왜 자신이 여기에서 근무를 서는지 물어볼 엄두도 내지 않은 채 그저 관습이라는 이유로 묵묵히 따랐던 겁니다.

이렇게 유래를 모르는 관행들이 기업에도 존재합니다. 보고서 양식과 같은 작은 것에서 인력을 운용하는 방식이나 업무 프로세스와 같은 중요한 부분에서 '왜 우리가 이 일을 하지?'라며 의문을 가지는, 아니 의문조차 가지지 않고 관성에 젖어 수행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찾아보면 어느 기업이든 그런 것은 적어도 한 두 개는 나오기 마련입니다. 유래를 따져보면 창업자의 습관 때문일지도 모르고, 타사에서 근무하다가 입사한 사람이 "이게 좋다"라면서 들여왔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관행으로 굳어진 것들이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되면 문제가 없겠지만, 대개는 도로 한복판에 누워 길을 비켜줄 생각이 없는 '신성한 암소'가 되어 버립니다(지난 번에 올린 글 '신성한 암소를 쫓아내라' 참조). 누구도 그 소를 쫓아낼 생각은 하지 않고 우회하는 수고를 감수하죠. 여러분의 팀이 몇 년 동안 어떤 과정이나 절차를 그대로 지속해 왔다면 그게 바로 신성한 암소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문화이고 방식이다" 라고 말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신성한 암소가 존재한다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변화라는 말을 꺼내면 거창하고 대단한 '변화 모델'이나 로드맵을 머리 속에 떠올립니다. 뭔가 정교하면서도 방대한 작업이 수반되어야 변화가 가능하다고 여기는 듯 합니다. 이론화하기를 좋아하는 경영학자나 그 이론을 상품화하는 컨설턴트들이 잘못된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준 탓입니다. 조직의 변화가 어렵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누워 있는 신성한 암소를 찾아내어 한놈씩 쫓아내는 일부터 시작하면 어떨까요?

변화라는 것은 어렵지만 어떤 면에서는 쉽기도 합니다. 조직에서 이유를 모른 채 반복하는 절차나 방식이 무엇에서 유래했는지를 따져본 후에 당시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없애면 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것이 창업 때부터 내려온, 그래서 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것이라 해도 말입니다. 신성한 암소의 DNA는 아주 질긴 성질을 가지지만, 그녀석이 통행을 막는 방해꾼임을 인식하고 공감할 수 있으면 도로 밖으로 쫓아낼 수 있죠.

덩치가 커서 힘들다면 신성한 암소가 낳은 송아지라도 찾아내어 쫓아 버리세요. 변화의 동기에 불을 당기는 방법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참고도서 : '최고의 햄버거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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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포드 비즈니스 스쿨의 마이클 해넌(Michael Hannan)과 제임스 베이런(James Baron)은 1995년부터 2001년에 걸쳐 실리콘밸리에 있는 181개의 신생 기업(start-ups)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그들은 신생 기업 설립자들이 회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경영자원과 인적자원에 대한 기초를 다졌는지를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신생 기업들이 취한 제도와 시스템이 조직의 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면밀하게 살폈죠.



해넌과 베이런은 설립자들이 인적자원관리의 방향을 설정함에 있어 다섯 가지 요소를 염두에 둔다고 가정했습니다. 그것은 스타(핵심인재) 확보, 엔지니어링, 몰입, 관리체계 구축, 직접적인 통제였죠. 그들은 신생 기업 설립자가 회사를 일으켜가는 과정에서 이 다섯 가지 요소를 어떤 방향으로 채택하느냐가 회사의 성과와 지속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관리비용, 이직률, 매출과 이익, 도산 가능성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죠.

문제는 설립자가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인적자원관리의 방향을 원래의 것으로부터 변화시키면 관리비용이 높아지고, 이직률이 증가하며, 매출과 이익이 떨어지고, 도산 가능성이 두 배나 증가된다는 연구 결과였습니다. 인적자원관리 상의 변화가 좋은 효과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조직을 불안정하게 만들기 때문에 치러야 할 댓가도 그만큼 크다고 해넌과 베이런은 결론지었습니다. 실리콘밸리처럼 수만큼 기업들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격변의 장소에서조차 그러한 변화로 인한 불안정은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죠.

이 연구 결과로 우리는 변화가 항상 좋은 것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변화는 오히려 기업을 도산 문턱에까지 이르게 만들지도 모르는, 그 자체가 리스크라고 봐야 합니다. 특히 신생 기업처럼 '맷집'이 약한 조직이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도약을 위한 발판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회사의 운명을 위태로운 룰렛 위에 맡기는 도박이 되기도 합니다.

신생 기업들은 매출과 인력이 증가하면 조직에 새로운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더 이상 설립자와 몇몇 관리자들에 의해 조직이 통제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직평가나 개인평가와 같은 제도를 도입해서 일사불란한 관리를 추구하려고 합니다.

주먹구구식 경영에서 '시스템적 경영'으로 나가야 한다는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도 그런 욕구를 부추깁니다. 컨설턴트인 저도 그런 기업에게 조직이 제2의 도약을 하려면 반드시 '새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새옷으로 갈아입는 과정이 기업의 성장통이고 통과의례라고 믿었죠.

하지만 이제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변화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따라야 할 당위는 아닙니다. 여러분의 조직이 신생 기업 혹은 중소기업이라면 새로운 변화를 추진하기 전에 반드시 그러한 변화가 꼭 필요한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변화를 통해 얻고자 하는 효과가 과연 나중에 손에 쥘 수 있는지, 오히려 회사의 역량과 관계를 훼손하는 암적 요소가 될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득보다 실이 더 크다는 결론에 이른다면 다른 회사에서 성공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 해도 과감하게 폐기하고 '마이 웨이'를 고수하는 것이 옳은 결정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하기로 결정했다면 뜨뜨미지근하게 해서는 죽도 밥도 되지 않습니다. 위에서 봤듯이 회사 설립자가 아무리 좋은 제도를 들여온다 해도 어차피 필연적으로 리스크가 따르는데, 변화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그런 리스크야 말로 '변화통'이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밀고 가려는 강단이 필요합니다.

이제 회사를 만들어 날개를 펴려는 신생 기업의 경영자들은 조직을 발전시키는 과정 속에서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힐 겁니다. 그러한 어려움을 단 한 번의 변화로 헤쳐 나가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점진적인 개선과 수정으로 이기겠다는 생각이 '대체로' 현명합니다. 거친 환경의 파고를 견디기에는 아직 맷집이 약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주는 충격과 부담을 줄여야 하지 않을까요? 변화는 어렵게 결정하되, 하기로 했으면 죽기 살기로 변화하고자 하는 마인드셋이 신생 기업 경영자에게 필요한 진정한 보수의 가치입니다.

(*참고논문 : Organizational Blueprints for Success in High-Tech Start-Ups: Lessons from the Stanford Project on Emerging Compani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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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 군기 잡기, 왜 하십니까?   

2011. 3. 3. 09:00



기업을 둘러싼 산업 환경이 비우호적으로 변하고 동시에 회사의 성과가 큰 폭으로 하락하거나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을 때 위기의식은 조직 전체에 빠르게 퍼집니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난국을 타개해 나갈 묘책을 이끄는 동력으로 작용하면 좋으련만, 대개의 위기의식은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의 분위기를 몰고갑니다.

'허리띠 졸라매자', '마른 수건도 다시 짜자'라는 구호와 함께 비용 절감 방안이 위기를 극복할 방책으로 제일 먼저 등장합니다. 이면지를 재활용하라는 '부드러운' 지침부터 시작해서 출장비 지출 등에 통제를 가하기 시작합니다. 예정됐던 직원 교육은 취소되고 본사와 공장을 오갈 때 사용하던 공용 자동차 사용도 대중교통 이용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이런 식의 각종 비용 절감 아이디어들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단골손님처럼 등장하기 때문에 그리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 사실 매우 진부하고 따분하죠.



하지만 위기가 좀더 심각해지거나 불확실성이 쉽게 사라지지 않으면, 비용 절감책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소위 '군기 잡기' 방안들이 삽시간에 조직 전체를 장악해 버립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죠. "전 직원이 앞으로 밤 9시까지 이유를 막론하고 연장근무에 들어간다", "공장에서 딴청 피우는 근로자들이 없는지 매 시간 순찰을 돌겠다", "근무시간에 사적인 용무로 자리를 비우면 즉각 시말서를 쓰게 하겠다" , "드레스 코드를 비즈니스 캐주얼에서 정장으로 통일한다" 등등이 그렇습니다.

이런 군기 잡기 방안들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한눈 팔지 못하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 직원들이 오로지 업무에만 집중하게 될 테니 성과가 오르지 않겠냐는 논리가 군기 잡기 방안들에 깔려 있습니다. 비용 절감책은 조직문화 측면에서 그다지 파괴적이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비용 효율성을 제고할 기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군기 잡기 방안들은 애써 구축한 긍정적인 조직문화를 빠르게 파괴할 뿐만 아니라 조직의 창의력을 말살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위기를 진정으로 극복하고 싶다면 비즈니스 모델 전반을 재검토하는 총력적인 변화가 우선되어야 하지만,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 지금 하던 것마져 나쁘게 되리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런 용기를 가지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나서서 획기적인 전략을 실행해야 한다고 외쳐도 '되는' 이유보다는 '안 되는' 이유만이 득세를 합니다. 찬성보다는 반대가 더 쉽기 때문이죠. 이러한 인식의 '정체' 속에서는 근본적인 위기 타개책보다는 직원들에게 눈을 부라리는 방법이 최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군기 잡기를 내세운다는 것은 위기를 타개할 아무런 대책이 없음을 자인하는 꼴이죠.

그렇다면 이러한 '군기 잡기 경영'이 살아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이유는 그런 방법이 과거에 효과적이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업력이 제법 오래되면 크고 작은 위기의 순간들을 잘 넘어왔을 겁니다. 위기를 넘길 수 이유들은 아마도 다양했겠죠. 경쟁사에 대항할 제품을 발빠르게 출시했다든지, 거시경제가 우호적으로 변화했다든지, 정부가 산업을 살리기 위해 각종 지원책을 발동했다든지 등 그때마다 여러 가지였을 겁니다. 아니면 시간이 흘러서 별다른 이유 없이 위기가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군기 잡기 경영이 위기를 타개해 나갈 때마다 몇 번 실행된 적이 있다면, 회사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들은 생각이 잘 안 나고 조직에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는 방법들만이 기억에 남습니다. 급기야 '직원들의 군기를 잡으면 위기를 견딜 수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한다'는 식으로 논리가 변질됩니다. 하늘에서 일식(日蝕)이 벌어질 때 북을 치니 일식이 사라진다고 해서 북을 치는 행위가 태양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군기 잡기 경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이처럼 원인이 아닌 것을 원인으로 착각하는 '잘못된 원인의 오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군기 잡기 경영이 살아남은 두 번째 이유는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경향 때문입니다. 조직이 위기에 빠졌다면 그것은 환경과 적합성이 떨어지는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한 조직 전체의 책임입니다. 조직 전체의 책임이 아니라면 유가, 환율, 금리 등 국내외 경제시스템의 책임이겠죠. 하지만 우리는 뭔가 문제가 발생하면 시스템 전체의 오류나 부적합성을 따지기보다는 책임을 떠넘길 희생양을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경영자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장 쉽게 다룰 수 있는 직원들에게 성과 저조의 책임을 묻습니다. 개인들의 성과 책임을 강조하는 성과주의 문화가 일반화된 탓도 있습니다. 여기에 일제 강점기 때 잘못 뿌리를 내린 군대식 문화가 더해져 상승효과를 일으킵니다. 직접적으로 "너희들 책임이다"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무조건 밤 9시까지 근무하라"는 말 속에는 개인들의 나태함이 위기를 불러일으킨 주범임을 직원들의 무의식 속에 강하게 심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모 교과서에 IMF 환란 위기가 닥친 이유가 국민들의 과소비 풍조 때문이었다는 문구가 실려 있다고 해서 한 때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시스템의 실패를 개인들의 책임으로 얼마나 전가하는지를,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이 얼마나 과장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이고 충격적인 사례입니다. 실패한 경제 정책, 투기 자본의 공격에 대한 미온적 방어 등 시스템의 실패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기보다 '국민들 잘못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손쉽고 명료한(?) 말이 어디 있을까요?

위기가 닥치면 의례껏 시행되는 비용 절감책과 군기 잡기 방안들은 그저 완화책에 불과합니다. 완화책은 그저 위기의 강도를 약화시킬 수는 있어도 위기를 타개할 근본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완화책들이 실시되면 그것이 위기 극복책인 것마냥 착각을 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위기를 타개하려는 절박감이 사라지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리라 기대심이 높아집니다. "전 직원들에게 연장 근무를 의무적으로 시켜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모든 사람들이 친환경 제품을 구입하면 지구온난화 현상이 금세 없어지리라 막연하게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용 절감책과 군기 잡기 방안들은 위기를 직시하지 않고 모래 속에 얼굴을 파묻는, 일종의 자기최면에 불과합니다.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하고 아무것도 진화시키지 못하죠. 급기야 레베카 코스타가 문명 몰락의 2가지 징후라고 지적한 '정체 상태'와 '믿음이 지식과 사실을 대체하는 상태'에 여러분의 조직이 매몰될지 모릅니다.

만일 그렇다면, 모래 속에 파묻은 머리를 이제 들어 올리고 현실을 직시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조직 내부에서 옹색하게 머무는 눈을 조직 외부의 거대한 변화의 흐름으로 돌려 놓는 중용의 시각입니다.


(*참고도서 : '지금, 경계선에서', 레베카 코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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