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으면 보수적이 된다   

2012. 4. 2. 10:08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보죠. 고객의 취향이 빠르게 변화하는 데다가 우리가 가진 제품으로는 그 취향을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갑니다. 게다가 기존 경쟁사는 미리 그런 변화를 감지했는지 적절한 시기에 신제품을 출시해서 앞서 나가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지금까지 누리던 경쟁력이 한순간에 사라질 위험에 처했습니다.

회사는 긴급회의를 열어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합니다. 헌데 임원들이 오랜 시간 머리를 싸매고 만들어낸 전략은 왠지 어디서 많이 본 듯 느껴집니다. 매년 의례적으로 수립하는 사업계획서의 내용에 긴급함과 위기감을 강조하는 형용사와 부사가 여기저기 경고를 나타내는 빨간 딱지처럼 덧붙여진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듭니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전략은 찾아보기 힘들고 기존의 사업을 기존의 방식대로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말 밖에는 없습니다. 다들 CEO의 입만 쳐다 보며 말입니다. 사실 이 상황은 가상의 사례가 아니라 모 회사에서 직접 목격한 것입니다.

많은 기업들은 이렇게 갑작스러운 변화를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이루도록 요구 받으면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하지만 결국 기존의 것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기존의 제품, 기존의 방식, 그리고 기존의 구조 속에서 용인되던 기득권을 밑바닥에서부터 파괴하고 혁신하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임에도 긴급 대책 전략은 현상(status quo)을 '열심히 유지'할 것임을 강하게 드러낼 뿐입니다. '더 열심히 영업 활동을 하겠다', '아침에 한 시간 일찍 출근하겠다', '시장 조사를 지금보다 더 자주 하겠다', 'KPI 타겟을 더 높이겠다' 등 열심히 하겠다는 말처럼 보수적인 것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위급하고 시간이 별로 없을 때 이렇게 보수적인 전략에 머물고 마는 걸까요? 그 근본적인 이유는 스콧 아이델만(Scott Eidelman) 등이 수행한 실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컴퓨터 모니터 상에 사회적인 이슈와 관련된 50개의 용어를 떠오르게 하고 실험 참가자들에게 그것을 지지하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도록 했습니다. 이때 참가자들 중 절반에게 시간적인 압박을 가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550밀리초) 용어를 보여주고 빠른 시간 내(1550밀리초)에 답하도록 한 것이죠. 반면 다른 절반의 참가자들에게는 용어를 스크린 상에 오래 보여 주고 충분히 생각한 후에 답하게 했습니다. 이 과제를 수행한 후 연구자들은 보수주의를 뜻하는 단어 25개와 자유주의를 나타내는 25개 단어를 참가자들에게 제시하고 지지 여부를 7점 척도로 응답하도록 요청했습니다.

분석 결과, 시간의 압박을 받은 참가자들의 '보수주의적 성향'이 시간을 충분히 활용한 참가자들에 비해 높게 나타났습니다. 즉 시간에 쫓기면서 버튼을 눌러야 했던 참가자들이 보수주의적인 단어를 더욱 지지했습니다. 반면 '자유주의적 성향'은 시간의 압박 여부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시간적인 여유 없이 중요한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기업들이 혁신적으로 사고하기가 심리적으로 매우 어려움을 단적으로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아이델만 등은 시간적인 압박 조건 뿐만 아니라 '인지적인 부담'이 가중되는 조건 하에서도 사람들이 보수적인 성향이 높아짐을 또 다른 실험으로 증명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15분 동안 사회적 인식에 관한 자료를 완성해야 했는데, 참가자 중 절반은 자료를 완성하는 동안 테이프에서 재생되는 소리의 톤(tone) 변화가 몇 번 있었는지를 동시에 세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인지적인 압박을 받아야 했던 참가자들은 그렇지 않은 참가자들에 비해 보수주의적인 성향이 높아지고 자유주의적인 성향은 낮아지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여기 저기에서 대처해야 할 과제들이 한꺼번에 다가오는 상황에서 조직의 전략이 혁신적인 것과 거리가 멀어지고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쪽으로 경도된다는 경험적인 사실이 실험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아이델만의 실험을 요약하면 시간적 압박과 인지적 부담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덜 하도록 만들고 생각을 덜 하게 되면  보수주의적 성향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없으면 보수주의자가 된다는 말로 간단히 정리가 됩니다. 하지만 아이델만은 이 실험의 결과가 정치적으로 해석되면 곤란하다고 말합니다. 즉 '보수주의자들은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라고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이죠. 아이델만은 이 실험이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짧은 생각이 사람들을 현상에 머무르도록 만든다는 것으로 실험의 의미를 제한합니다. 자유주의자들도 자신들의 이데올로기가 시간적 압박과 인지적 부담에 의해 쉽게 손상된다는 의미로 이 실험을 해석하면 곤란하겠죠. 아이델만의 말처럼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경험, 역사, 가치 등을 통해 이루워진 다차원적인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에 쫓기고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터질 때 조직의 브레인들은 생각을 깊게 하지 못하고, 그런 조급함은 보수적인 성향을 자극하여 그저 더 많이 더 열심히 하겠다는 전략에 머물게 만듭니다. 혁신에 힘을 쏟을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그저 발등에 떨어진 불만 끄려 합니다. 하지만 끄려고 할 때마다 발등의 불은 몸 전체로 번지고 맙니다. 위급하고 대처해야 할 과제가 많을 때 오히려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려고 혁신의 기회를 탐색해야 합니다. 시장의 구조가 변하고 고객의 취향이 예전과 판이하게 다른 마당에, 경쟁자와 고객이 모두 떠난 빈 터에서 더 많이 더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는 아무 소용 없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이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직의 경영자와 직원들이 아무 생각 없으면 보수주의자가 되어 스스로 현상에 머무르려는 보수주의적 경영의 피해자가 됩니다. 여러분의 회사가 내놓는 전략이 풀빵 찍어내듯 매번 비슷하다면 아무 생각없는 사람들에 의해 아무 생각없이 조직이 흘러간다는 의미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회사는 지금 어떻습니까? 



(*참고논문)
Low-Effort Thought Promotes Political Conserva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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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포드 비즈니스 스쿨의 마이클 해넌(Michael Hannan)과 제임스 베이런(James Baron)은 1995년부터 2001년에 걸쳐 실리콘밸리에 있는 181개의 신생 기업(start-ups)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그들은 신생 기업 설립자들이 회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경영자원과 인적자원에 대한 기초를 다졌는지를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신생 기업들이 취한 제도와 시스템이 조직의 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면밀하게 살폈죠.



해넌과 베이런은 설립자들이 인적자원관리의 방향을 설정함에 있어 다섯 가지 요소를 염두에 둔다고 가정했습니다. 그것은 스타(핵심인재) 확보, 엔지니어링, 몰입, 관리체계 구축, 직접적인 통제였죠. 그들은 신생 기업 설립자가 회사를 일으켜가는 과정에서 이 다섯 가지 요소를 어떤 방향으로 채택하느냐가 회사의 성과와 지속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관리비용, 이직률, 매출과 이익, 도산 가능성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죠.

문제는 설립자가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인적자원관리의 방향을 원래의 것으로부터 변화시키면 관리비용이 높아지고, 이직률이 증가하며, 매출과 이익이 떨어지고, 도산 가능성이 두 배나 증가된다는 연구 결과였습니다. 인적자원관리 상의 변화가 좋은 효과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조직을 불안정하게 만들기 때문에 치러야 할 댓가도 그만큼 크다고 해넌과 베이런은 결론지었습니다. 실리콘밸리처럼 수만큼 기업들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격변의 장소에서조차 그러한 변화로 인한 불안정은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죠.

이 연구 결과로 우리는 변화가 항상 좋은 것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변화는 오히려 기업을 도산 문턱에까지 이르게 만들지도 모르는, 그 자체가 리스크라고 봐야 합니다. 특히 신생 기업처럼 '맷집'이 약한 조직이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도약을 위한 발판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회사의 운명을 위태로운 룰렛 위에 맡기는 도박이 되기도 합니다.

신생 기업들은 매출과 인력이 증가하면 조직에 새로운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더 이상 설립자와 몇몇 관리자들에 의해 조직이 통제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직평가나 개인평가와 같은 제도를 도입해서 일사불란한 관리를 추구하려고 합니다.

주먹구구식 경영에서 '시스템적 경영'으로 나가야 한다는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도 그런 욕구를 부추깁니다. 컨설턴트인 저도 그런 기업에게 조직이 제2의 도약을 하려면 반드시 '새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새옷으로 갈아입는 과정이 기업의 성장통이고 통과의례라고 믿었죠.

하지만 이제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변화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따라야 할 당위는 아닙니다. 여러분의 조직이 신생 기업 혹은 중소기업이라면 새로운 변화를 추진하기 전에 반드시 그러한 변화가 꼭 필요한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변화를 통해 얻고자 하는 효과가 과연 나중에 손에 쥘 수 있는지, 오히려 회사의 역량과 관계를 훼손하는 암적 요소가 될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득보다 실이 더 크다는 결론에 이른다면 다른 회사에서 성공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 해도 과감하게 폐기하고 '마이 웨이'를 고수하는 것이 옳은 결정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하기로 결정했다면 뜨뜨미지근하게 해서는 죽도 밥도 되지 않습니다. 위에서 봤듯이 회사 설립자가 아무리 좋은 제도를 들여온다 해도 어차피 필연적으로 리스크가 따르는데, 변화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그런 리스크야 말로 '변화통'이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밀고 가려는 강단이 필요합니다.

이제 회사를 만들어 날개를 펴려는 신생 기업의 경영자들은 조직을 발전시키는 과정 속에서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힐 겁니다. 그러한 어려움을 단 한 번의 변화로 헤쳐 나가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점진적인 개선과 수정으로 이기겠다는 생각이 '대체로' 현명합니다. 거친 환경의 파고를 견디기에는 아직 맷집이 약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주는 충격과 부담을 줄여야 하지 않을까요? 변화는 어렵게 결정하되, 하기로 했으면 죽기 살기로 변화하고자 하는 마인드셋이 신생 기업 경영자에게 필요한 진정한 보수의 가치입니다.

(*참고논문 : Organizational Blueprints for Success in High-Tech Start-Ups: Lessons from the Stanford Project on Emerging Compani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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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흔했다가 요즘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질병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소아마비'입니다. 소아마비는 폴리오라고 불리는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입니다. 초기에는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면서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경우도 있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 중 1% 정도는 팔다리나 척추에 마비 증상을 일으키는 심각한 질병이기도 했습니다. 주로 면역력이 취약한 어린이들에게서 발병되기 때문에 소아마비란 이름을 갖게 됐지만 어른도 잘 걸리는 병이었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39세에 소아마비에 걸려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사회문제로까지 인식되던 소아마비는 이제 완전히 박멸됐습니다. WHO(세계보건기구)는 1994년에 서유럽에서, 2000년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서태평양 지역에서 소아마비가 박멸됐음을 선언했죠. 이런 성과를 달성하게 된 공은 당시 피츠버그 대학의 전염병학 교수였던 조너스 소크(Jonas Salk)에게 돌려야 마땅합니다. 그는 소아마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다뤄지던 1952년에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 성공하고 그 다음해에 백신 개발에 성공했음을 매스컴을 통해 알렸습니다.



그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논문이나 학회가 아니라 언론을 통해 발표하자 학계가 말 그대로 뒤집어졌습니다. 정식 루트를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소크의 백신이 지금까지의 방식과 다르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예방접종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에드워드 제너가 살아있는 우두 바이러스를 사용해서 천연두를 예방하는 백신을 개발한 이후로, 학자들에게 널리 퍼진 믿음은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사용해야 예방효과가 있는 백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소크의 백신은 죽은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가지고 만든 것이었죠. 그는 많은 양의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시험관에 배양한 후에 거기에 포르말린을 넣어서 바이러스를 죽였습니다. 그런 다음 그것을 희석하여 몸에 주사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이것이 학자들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소크와 동시대에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 몰두하던 앨버트 세이빈이란 사람은 소크를 민간요법자에 불과하다며 독설을 날리기도 했죠. 소크의 백신이 전혀 참신하지 못하다며 여기저기서 학자들이 비난 대열에 가세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소아마비 백신은 어쨌든 효과가 있었습니다. 소아마비 공포에 떨던 대중들은 소크의 백신을 기꺼이 수용했죠. 대중은 소아마비 백신이 죽은 바이러스로 만들어졌는지엔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겐 소아마비라는 공포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했죠. 44개 주에서 180만 명의 어린이들이 임상시험에 동참했고 195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백신 접종이 시작됐습니다. 후에 그의 백신과 함께 그의 경쟁자인 앨버트 세이빈이 따로 개발한 백신이 접종되면서 1952년에 5만 8천명에 달하던 소아마비 환자수는 10년 후에는 1천 300명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만일 소크가 대중에게 직접 다가가서 백신 개발에 성공했음을 알리지 않고, 논문을 학회에 발표해서 동료들의 검증을 받는 일반적인 루트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그 기간이 무척 길었을 것이고 소크에게도 피곤한 일이었겠죠. 무엇보다 학자들의 검증을 받는 동안 계속해서 소아마비가 발병된다는 것이 문제였을 겁니다. 학자들의 형식주의적이고 교조주의적인 마인드가 자칫하면 소아마비의 조기 박멸을 어렵게 만들어서 대중은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감수해야 했겠죠.

보수주의는 말 그대로 기존의 틀 안에서의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방식이라서 필연적으로 형식주의를 낳습니다. 정해진 규칙, 믿음이나 관행과 같은 형식은 조직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지켜주는 초병이라고 말할 수 있죠. 보수주의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보수주의가 자신의 아들인 형식주의에게 권좌를 빼앗길 때, 또는 형식주의를 보수주의로 오인할 때가 조직의 발전을 저해하는 문제가 야기됩니다. 형식주의는 보수주의의 또다른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실용주의를 압박하고 말죠.

소크를 대하던 학자들의 태도가 딱 그러했습니다. 소크는 학자들이 그렇게 반발할 것(그리고 비난을 가할 것)을 미리 간파하고서 공식적인 인정 루트를 버리고 곧바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꾀를 냈죠. 어찌보면 소크를 기회주의자라고 폄하할 수 있겠지만, 형식주의에 압도 당해버린 학계의 블로킹을 뚫으려는 최선의 방법을 택했다고 봐야 옳습니다.

어떤 사람은 소크가 다른 학자보다 먼저 백신을 발명했음을 대중에게 알림으로써 엄청난 부를 쌓으려 한다고 그를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소크는 "태양에 특허를 낼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백신에 대해 특허 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덕에 소아마비 백신이 싸게 만들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본 겁니다. 역시 위대한 사람은 다릅니다. 형식에 압도 당하지 않은 건전한 실용주의자의 표본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건전한 형식과 건전한 실용을 갖추고 둘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잡아가야 건전한 보수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얼마나 보수적입니까? 아니, 얼마나 형식적입니까? 형식이라는 큰 아들이 실용이라는 작은 아들을 괴롭히는 기이한 가족은 아닙니까? 형식이 실용을 압박할 때 조직은 퇴보합니다.

(*참고도서 : '아이코노클라스트')
(*위의 보수주의, 실용주의를 정치 이데올로기로 해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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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이 보수적인 진짜 이유   

2010. 12. 3. 09:00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외부집단에 대해 배타적인 성향을 보입니다. 외부인이 자신이 속한 집단 안에 들어오면 공격을 하거나 텃세를 부리거나 해서 외부인을 못살게 굴곤 하죠.

그런데 이렇게 외부인에 대한 배타성이 바로 '감염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됐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지금처럼 의술이 발달하지 않은 옛 시절에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 했던 것은 세균, 기생충 등 전염에 의한 질병이었습니다. 인간의 면역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몸에 침입한 병원균이 질병을 일으키죠.


면역체계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흔히 존재하는 기생충(넓은 의미로 병원균을 포함함)을 처치하도록 학습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면역체계가 '지역성'을 띤다는 말이죠. 하지만 이런 지역성으로 인해 다른 지역에서 온 병원균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기생충이라도 지역이 다르면 그 지역에 거주하는 숙주(즉 인간)를 감염시키기 위해 조금씩 다르게 진화되기 때문입니다(기생충의 진화 속도는 매우 빠릅니다). 

외부인은 외부의 기생충을 함께 달고 올 가능성이 매우 커서 자신이 사는 지역에 적합하게 구축된 면역체계를 와해시킬지 모릅니다. 그래서 감염이 위험이 커지죠. 이것이 바로 외부인에게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 근거이고, 이러한 무의식적인 생물학적 행동이 외부인을 적대시하는 문화로 굳어졌다고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더 발견시켜서 코리 핀처(C. Fincher)와 랜디 손힐(Randy Thornhill)은 "기생충의 총량이 큰 지역의 사람들은 외부인에 대해 적대적이다"라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 기생충이 많은 지역일수록 외부인에 배타적이고 덜 개방적이라는 말이죠.

그들은 98개 지역의 기생충 총량을 구한 다음에 사람들의 성격 요인과 대비시켜 봤습니다. 그 결과, 기생충 총량과 개방성의 상관관계가 -0.6이 나왔고 기생충 총량과 외향성의 상관관계도 비슷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기생충 총량이 높을수록 사람들이 덜 개방적(더 배타적)이고 덜 외향적(더 내향적)이라는 의미죠. 연평균 기온, 수명, 1인당 국내총생산 등의 변수를 제어해도 이러한 상관관계는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또한 98개 지역 모두 '집단주의'를 나타내는 지표들은 기생충 총량과 강한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 기생충이 많을수록 사람들의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작다는 말이 되겠죠. 역시 수명, 인구밀도, 1인당 국내총생산, 지니계수를 제어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위의 연구는 집단의 차이를 이야기하는데, 진화심리학자들은 개인들의 차이에까지 동일한 주장을 폅니다. 어떤 사람이 개방적이냐 배타적이냐는 그 사람이 전염에 대한 무의식적인 인식이 어떻냐에 달려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갖는 사람들은 보수적이지 않은 사람에 비해 전염병에 취약하다는 무의식적인 지각이 더 크다고 말합니다. 댄 페슬러, 데이비드 나바렛 등이 이런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연구 결과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무엇일까요? 대담한 가설이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어떤 조직이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성향이 강하다면 그것은 그만큼 외부의 충격에 취약하다는 점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문화적 '혐오'은 아닐까요? 

인간의 면역체계로 비유되는 '내부의 조직역량'이 취약하거나 불합리적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외부의 것이 유입되면 기존의 질서가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잠재적인 불안 심리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 회사는 보수적이고 배타적이다"라는 말을 뒤집어 보면 "우리 회사는 외부의 충격에 매우 취약하다"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꼴일지 모릅니다. 개방성이 낮으면(외부에 배타적이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끼리끼리 뭉치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방어 시스템이 약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조직문화를 혁파하기 위해서 필요한 최우선 과제는 소위 '이벤트'에 의한 바람몰이가 아닙니다. 비전 선포식, 해병대 입소훈련, OO경진대회 등의 조직문화 활성화 대책은 일시적인 대증요법에 불과합니다. 

조직을 개방적이고 혁신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조직의 면역체계, 즉 내부역량과 프로세스를 다지는 일이 가장 먼저입니다. 어떤 외부적인 충격에도 끄떡없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튼튼한 방어 시스템을 갖춰야 외부의 좋은 것들을 수용하여 내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이 보수적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 아닙니다. 보수주의는 공포나 혐오의 다른 말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어떻습니까?


(*참고도서 : '스펜트, Spent', 동녘 사이언스)
(*참고논문) What is the relevance of attachment and life history to political va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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