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문제를 풀어 보기 바랍니다.

- 마틴 루터 킹의 사망 당시 나이는             세에서           세 사이라고 90% 이상 확신한다.
- 나일강의 길이는                                    Km에서          Km 사이라고 90% 이상 확신한다.
- OPEC 가입국의 수는                             개국에서        개국 사이라고 90% 이상 확신한다.
- 달의 지름은                                          Km에서          Km 사이라고 90% 이상 확신한다.
- 보잉 747의 자체 무게는                         Kg에서           Kg 사이라고 90% 이상 확신한다.
- 아시아 코끼리의 임신기간은                   일에서           일 사이라고 90% 이상 확신한다.

혹시 이 문제의 모든 정답을 아시는지요? 아마 극소수를 제외하고 정답을 정확히 아는 분은 없으리라 짐작됩니다. 저도 잘 모릅니다.

바닥에 뿌려진 꽃잎의 수를 예측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여러분은 이 문제를 풀어보라는 말을 듣고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아마도 많은 분들이 정답이 무엇일까 궁리하기 시작했을 겁니다. 예를 들어 OPEC 가입국의 개수를 묻는 질문에 "주로 중동 쪽에 회원국들이 많을 거야. 내가 볼 때 그쪽 지역의 국가 수는 대략 OO개국이니까..."라는 식으로 생각을 전개했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위의 문제엔 작은 함정이 있습니다. 딱 떨어지는 정답을 말하라는 게 아니라 90% 확신할 수 있는 구간을 말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문제의 정답을 '0 에서 1억 사이'라고 답하면 그게 바로 정답입니다.

실제로 위의 문제를 심리학자들이 여러 사람들에게 실험한 결과, 많은 피실험자들이 답(예를 들어 0 에서 1억 사이)을 말하지 못하고 딱 떨어지는 정답이 뭘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런 결과는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문제를 대할 때에도 머리를 쓰기 시작함을 뜻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머리를 '굴리면'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거죠. 다시 말해, 인간은 자신의 예측력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예측력은 동물들보다 뛰어납니다. 수천 년 동안 쌓아온 지식과 기술의 힘으로 기상(날씨)과 같은 복잡한 현상을 (비록 완벽하지 않지만) 예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지요.

하지만 예측력은 '예측할 수 있는 것'에만 유효합니다. 위에서 제시한 문제처럼 (짧은 시간 내에) '예측할 수 없는 것'에는 인간이 가진 예측력은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런 문제에 예측력을 발휘해서 힘을 낭비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은 대개 그 안에 내포된 불확실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럭비공처럼 불확실한 '모양'은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주가나 환율 등도 불확실성에 지배를 받는 변수라서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죠. 

예측력이 필요한 상황에 처하면 그런 상황이 예측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야 합니다. 예측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설 때에만 예측력을 발휘해야 하죠.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고 믿을 때  개인이나 기업의 불행이 시작됩니다. 손 쓰지 못할 위험에 봉착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것과 예측할 수 있는 것을 잘 구분하는 능력이 전략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지혜입니다.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요즘 세상에서는 말입니다. ^^



인퓨처컨설팅 & 유정식의 포스트는 아이폰 App으로도 언제든지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의 링크를 눌러서 여러분의 아이폰에 inFuture App(무료)을 설치해 보세요
                  여기를 클릭!


  
,

창발성으로 금융위기를 타개하자   

2008. 11. 7. 09:20

(사진 : 유정식)


프레드 호일은 우주의 시작과 끝은 없으며 항상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정상우주론’을 제시한 천문학자로 유명하다. 그 이론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생명체의 진화를 맹공격했다. 그는 생명이 지구상에 출현할 확률은 고물 야적장을 휩쓸고 지나간 태풍이 운 좋게 보잉 747을 조립해 낼 확률과 다를 것이 없다는 가설을 주장했다.

우연에 의해 일어난 자연선택이 어떻게 복잡한 생명을 발생시킨 동력이 된다는 것인지 그는 납득하지 못했다. 우연에게 진화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길 수 없다는 고집 때문이었다.

요즘처럼 금융위기의 폭풍으로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상황에 처할 때마다 경영자들은 조직을 가능한 한 자신의 통제 하에 놓으려고 한다. 불확실한 외부환경으로 인해 내부환경조차 불확실한 상태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프레드 호일처럼 기업 경영의 우연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하부로 이양된 권한을 다시 상부로 거둬들이고 각 사업부가 개별적으로 진행하던 사업을 통제하려 든다.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에 신경 쓰기보다 어떻게 하면 내부 통제를 잘 할 수 있을지에 집중한다. 통제하지 않으면 우연이 곧바로 무질서함으로 나타날 거란 강박관념에 짓눌린다.

물론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기업의 경영 구조를 재편하고 비효율적인 제도를 추스르려는 시도는 자연스러운 조치다. 그러나 조직의 ‘창발성’까지 제거하려 든다면 곤란하다. 창발성은 ‘그룹 지니어스’란 말로도 표현할 수 있는데, 개인 수준에서 보이지 않았던 특성이 집단을 이루면서 놀라운 능력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창발성은 집단생활을 하는 흰 개미에게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아프리카에 사는 버섯흰개미는 탑처럼 생긴 둥지를 4미터나 쌓아 올린다. 그리고 애벌레에게 먹이려고 버섯 농사까지 짓는다.

개미 한 마리의 지능은 굳이 지능이라고 부를 것도 없을 만큼 매우 낮음에도 이런 능력을 보이는 이유는 개체들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네트워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업 내부도 직원들 간, 직원들과 시스템 사이, 시스템과 시장 사이는 무질서한 그물망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창발성은 이처럼 무질서한 네트워크로부터 출현하는 것이지, 누구나 예상 가능하도록 ‘네모반듯한’ 바둑판의 모양으로 조직을 재편하고 통제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조직을 한눈에 조망해보자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해보자고 통제 기법을 무분별하게 적용하면 기업이 쌓아온 창발성의 유산을 일시에 날려버릴 수 있다.

식료품 체인인 세이프웨이는 철저한 통제로 위험에 빠진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가짜 고객을 매장에 풀어 직원들이 규정에서 어긋난 행동을 취하는지를 일일이 평가했다. 고객서비스 매뉴얼은 최대한 상세하게 작성해서 무조건 따르도록 강제했다. 직원들의 행동이 우연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평가가 저조한 직원들은 '스마일 학교'라고 불리는 8시간짜리 특수 교육을 받아야 했고 세 번 넘게 교육 대상이 되면 해고돼야 했다.

이러한 통제 정책은 초기에는 남들이 부러워할 성공을 거뒀지만 머지않아 화를 불러일으켰다. 여직원의 미소가 남자 고객들에게 유혹으로 받아들여지고, 웃지 못 할 상황에서도 억지웃음을 짓는 것이 직원들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었다. 결국 세이프웨이는 서비스 정책의 폐지를 요구하는 노조의 장기파업으로 매출과 이익에 큰 타격을 입었으며 2002년과 2003년에는 적자를 기록하고 말았다.

 "한 번도 비행기를 놓쳐보지 않은 사람은 그만큼 많은 시간을 공항 대합실에서 허비한 사람"이라고 경제학자 헤르베르트 기어슈는 비꼰다. 효율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오히려 비효율적이 된다는 말이다.

우연은 무질서이고, 무질서는 불확실성이며, 불확실성은 위험이라는 생각은 지극히 단선적인 사고방식이다. 우연과 자유분방함을 권장하여 조직의 창발성이 위기를 스스로 타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전무후무한 세계적 금융위기에 처한 요즘의 경영자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Let It Be!

(본 칼럼은 광주일보 2008년 11월 7일자에 게재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