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없는 자동차 회사   

2011. 7. 5. 09:00



만일 여러분이 어느 자동차 회사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그 회사에 들어서자마자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자동차 회사라면 으레 있을 법한 거대한 공장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일하는 직원들도 고작 12명에 불과하다. 그 회사 직원으로부터 설명을 들으니 더욱 혼란스럽다. 자동차 회사가 가장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디자인 파트가 이 회사엔 없으니 말이다. 엔진이나 차체를 연구하는 R&D 부서도 없다. 디자인, 연구개발, 생산 기능이 없는 회사를 자동차 회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책 ‘매크로 위키노믹스’에서 소개하는 로컬모터스의 사장인 제이 로저스는 여러분에게 한껏 웃어 보이며 “우리는 새로운 개념의 자동차 회사다”라고 분명하게 대답할 것이다.



집단지성의 잠재력에 눈뜨다
로컬모터스에 디자인 기능이 없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들에겐 상근 직원으로 이뤄진 디자인 부서가 없을 뿐이다. 대신에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5000명의 디자이너로 구성된 커뮤니티를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취한다. 자신의 디자인이 채택되면 그 디자이너에게 상금을 지급하는 방법으로 디자이너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로컬모터스는 디자이너들이 자발적으로 제시하는 수많은 시안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해서 단 14개월 만에 불과 200만 달러의 자금으로 오프로드 경기용 자동차인 랠리 파이터를 생산해냈다. 일반적인 자동차 회사가 수 억 달러를 들여 2년 만에 신차를 개발하는 것과 매우 대비되는 성과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독특한 협업체계와 그들의 집단지성을 활용하여 혁신과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기업들이 속속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이 책 ‘매크로 위키노믹스’의 저자들은 말한다. 이런 현상은 그들의 전작인 ‘위키노믹스’에서 이미 예견한 바 있는데, 이번에 낸 신작에는 ‘매크로’라는 이름을 덧붙여서 위키노믹스가 국지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으로부터 전세계로 확산되고 더욱 촘촘하게 얽혀 가는 거대한 트렌드임을 역설한다. 미시경제가 아니라 거시경제 차원에서 위키노믹스를 조망하고 그것으로부터 뭔가를 배우고 실천해야 함을 주장한다.
 
로컬모터스와 같은 신생기업 뿐만 아니라 P&G와 같이 역사가 오래되고 거대한 다국적 기업 역시 매크로 위키노믹스적인 ‘오픈 비즈니스’로 새로운 성공을 구가하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P&G는 연구 개발 분야에 외부 인력의 전문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으로 이름이 높다. 그들은 풀리지 않는 연구 난제를 내부에서 풀기 위해 끙끙거리는 여느 기업과는 달리 이노센티브닷컴과 같은 사이트에 공개하거나 광범위한 여러 네트워크를 동원해서 세계 어딘가에 있는 전문가의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방식을 2000년부터 이어오고 있다. 연구센터와 같은 물리적인 시설 없이도 200만 명이나 되는 가상의 연구부서를 가지는 셈이다. 기업 내외부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 P&G는 이처럼 글로벌 인재 풀(pool)이 가진 막강한 잠재력을 활용함으로써 150개 분야에서 300개 브랜드를 아우를 수 있게 되었다.

기회는 열려있다
매크로 위키노믹스는 로컬모터스와 P&G와 같이 명민한 기업들에게는 기회로 작용하지만 여전히 과거의 방식에 젖어 있는 기업들에게는 엄청난 불행을 야기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업종이 바로 신문이다. 새로운 웹의 등장으로 인터넷은 수동적으로 읽고 듣고 보는 행위 이상으로 발전했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공유하고 교제하며 협업하고 창조한다. 이런 현상 속에서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여 가판과 배달 판매, 지면 광고로 돈을 버는 전통적인 신문은 설 자리를 빠르게 잃어가는 중이다. 저자들은 신문의 몰락은 우연이 아닐뿐더러 갑작스레 발생한 일도 아니며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라고 단언한다. 이미 신문의 몰락은 정해진 일이라는 소리다.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서는 얻는 정보보다 신문 기사를 덜 신뢰한다는 사실은 신문업계에게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다.
 
그렇다면 신문업계엔 희망은 없는 것일까? 저자들은 ‘허핑턴 포스트’와 ‘가디언’에서 해답을 찾는다. 허핑턴포스트는 매달 2000만 명이 구독하는 온라인 신문으로 구독자 수가 매년 50%씩 급성장 중이다. 하지만 급여를 받고 일하는 직원은 고작 150명에 불과하다. 이런 소규모 인력으로도 대형 언론사를 뛰어넘는 이유는 역시 각지에 퍼져있는 3000명의 기고자들과 1만 2000명의 ‘시민 언론인’이 있기 때문이다. 로컬모터스와 P&G와 마찬가지로 회사 외부의 전문인력과 함께 대규모 협업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기사의 소비자와 생산자가 공동 참여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새로운 목소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기사를 전달하자는 철학을 실현하고 있다. 
 
허핑턴 포스트가 태생부터 매크로 위키노믹스를 실현했다면, 오래된 영국 신문인 ‘가디언’은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이제는 절대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은 기업이다. 자체 인력으로는 전세계에 퍼져 있는 ‘인간 센서’를 이길 방법이 없다고 그들은 느꼈다. 가디언은 가능한 한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혁신을 극대화하기 위해 콘텐츠에 대한 통제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기사, 동영상, 사진 등 방대한 자료를 공개함으로써 사람들이 그것들을 재사용할 기회를 주었다. 자기네 기사들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게 하여 새로운 서비스와 수입원을 발굴할 기회를 찾고자 한 것이다. 사람들이 가디언의 기사를 더 많이 재사용하고 변경할수록 가디언의 광고 네트워크가 더욱 발전할 것임을 그들은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시대로!
저자들은 기업들이 먼저 투자하고 나중에 질문하는 방식을 더 이상 고수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고객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 다음에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글로벌 시장을 샅샅이 탐색할 줄 아는 기업이 매크로 위키노믹스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구시대적인 ‘피아의 구분’ 따위는 휴지통에 던져 버리고 외부에 있는 최고의 인재들과 함께 공동 창조할 것을 기업들에게 주문한다. 매크로 위키노믹스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환경을 조성하는 큐레이터가 되고, 공유의 문화를 활성화하며, 자기조직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한 협업의 문화를 확대하고 심화하는 것이 중요하고, 젊은이들에게 주목하면서 그들에게 변화를 주도할 권한을 주어야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이렇게 혁신과 새로운 가치를 이끌어내는 매크로 위키노믹스에는 오직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일까?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이다. 많은 이들이 광범위한 협업과 공유체계 때문에 일자리가 줄고 임금이 깎질 지 우려한다. 무엇보다 개인정보가 유용되고 프라이버시가 존중 받지 못하는 문제가 심화되리라 걱정한다.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클라우드(cloud) 서비스를 보면서 ‘내가 그곳에 올린 자료가 나의 성향에 대한 분석 정보로 활용되는 것은 아닌지’부터 시작하여 ‘그들이 내 자료를 다른 곳에 팔거나 유용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저자들은 이런 걱정들이 기우이며 피해도 적으리라 단정한다. 그들은 매크로 위키노믹스는 개방적이고 광범위한 참여를 추구하기 때문에 오히려 일자리가 창출되고 돈을 벌 기회가 공평하게 돌아간다고 주장한다. 단적인 예로 애플의 앱스토어가 생겨나 개발자들에게 수익의 70%를 주는 구조가 안착되면서 개발자나 애플이나 모두 윈-윈하게 됐으니 말이다. 허나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에 대해서 저자들은 한발 물러선 입장을 취한다.  좋은 프라이버시 정책을 가질수록 사람들에게 좋은 기업이라고 평가 받게 됨을 기업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데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리고 개인들도 스스로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 ‘온라인 행동’을 수정하는 데에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뾰족한 해법이 없기에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교육, 방송과 영화, 과학과 의료, 정부와 글로벌 문제 등 여러 분야에서 매크로 위키노믹스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또 앞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를 폭넓게 조망한다는 차원에서 이 책은 일독의 가치가 매우 충분하다. 협업을 단순하게 같이 모여서 회의 몇 번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독자라면  매크로 위키노믹스에 담긴 의미를 우리 회사에, 그리고 나 자신에 어떻게 대입하면 좋을지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어보라.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오히려 짧게 느껴질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균형을 잃지 않으려면 이 책과 함께 변화하는 세상의 리더십을 탐색해 보라.

(* 이 글은 교보문고 북모닝CEO에 오늘 실린 저의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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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과 채찍, 뭐가 좋을까?   

2011. 2. 7. 09:00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야심찬 계획을 세운다. 금연하기, 다이어트하기, 책 읽기, 공부하기 등이 새해 계획표에 오르는 단골메뉴들이다. 나도 지난 연말에 2011년에 달성해야 할 몇 가지 목표를 써보았다. 그 중 하나는 체중을 감량하겠다는 것이다. 짐작은 했지만 모 사이트에서 비만지수를 입력해보고 과체중이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 조금 충격을 받았다.

이래선 안 되겠단 마음이 들었다. 마침 새해가 됐으니 다이어트 계획을 세우기에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처음 며칠 동안에는 식사량을 줄이고 주전부리를 멀리했다. 하루에 1시간 정도 꼭 걸었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합리화의 귀재라고 했던가? 금년에 유난히 거센 동장군의 기세에 눌려 하루 이틀 걷기를 빼먹기 시작하더니, 식사량을 줄이면 군것질에 대한 유혹이 커진다는 핑계 때문이었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 식사량이 줄기는커녕 많아짐을 발견했다. 불행히도 저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내 몸무게는 연말보다 오히려 1.5kg이나 늘고 말았으니까.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왜 야심찬 계획은 3일을 넘기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어 버릴까? 이 책 ‘당근과 채찍’은 이와 같은 ‘오래된’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하는 책이다. 저자 이언 에어즈는 작심삼일의 오류에 빠지는 이유가 현재의 가치를 과대평가하고 미래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탈러의 사과’라는 예를 들어 이를 설명한다. 사람들에게 “1년 후에 사과 1개 받을래, 아니면 1년이 지난 바로 다음날에 사과 2개를 받을래?“라고 물으면 대부분 후자를 택한다고 한다. 사과를 받기 위해 1년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하루를 더 기다리는 것쯤이야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서 “오늘 사과 1개를 받을래, 아니면 내일 사과 2개를 받을래?”라고 물으면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전자를 선택한다고 한다. 하루를 더 기다리면 사과 2개를 받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루라는 기간에 대한 평가가 일관적이지 못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1년 후에 기다려야 하는 하루보다 오늘 기다려야 할 하루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한다는 의미다. 인간을 합리적인 주체라고 여기는 주류 경제학자의 눈에는 이것이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인간의 심리가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행동경제학’의 관점에서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결과다.

현재와 가까울수록 하루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이 작심삼일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다이어트를 하느라 배불리 먹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운동하는 데에 오늘이란 시간을 소요하기가 왠지 아깝다. 계획을 세울 때는 먼 일처럼 느껴져 하루의 가치가 별것 아니게 보이지만 막상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날이 되면 하루의 가치가 크게 느껴져서 “지금은 다른 일이 바쁘니, 내일 하자”라는 합리화 프로세스가 작동되고 만다. ‘과도한 가치 폄하 효과’라고 부르는 이런 현상은 당장의 보상에는 특별한 가치를 부여(또는 당장의 부담을 연기)하지만, 미래에 다가올 보상(또는 부담)에는 무감각해지게 만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작심삼일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약속 실천 계약’이란 해법을 제시한다. ‘오디세이’에 나오는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노래가 배를 난파시킨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는 사이렌의 노래가 이끄는 곳으로 배를 몰지 않기 위해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을 돛대에 묶으라고 명령한다. 사이렌의 노래도 듣고 배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게 하는 현명한 방법이었다. 이처럼 계획이나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도록 스스로를 ‘결박’하는 해법이야말로 약한 의지력을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약속 실천 계약을 대행하는 ‘스틱K닷컴’이란 회사를 설립할 정도로 이 방법에 열성적이다. 약속 실천 계약은 ‘7kg 감량’과 같은 목표를 설정하고서 그것을 정해진 기간 내에 달성하지 못하면 사전에 지정한 사람이나 단체에 돈을 지급한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이 계약의 내용을 타인에게 공개함으로써 돛대에 자신을 결박하는 효과를 극대화하자는 게 약속 실천 계약의 논리다.

저자가 약속 실천 계약이 효과적이라고 말하는 근거는 보상보다 손실을 더 크게 느끼는 ‘손실회피 경향’이 사람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A 치료법을 채택하면 400명이 죽는다’는 말과 ‘A 치료법을 채택하면 아무도 죽지 않을 확률이 3분의 1, 모두가 죽을 확률은 3분의 2이다’란 말은 따지고 보면 같은 의미인데도,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사람들은 후자를 선택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손실을 싫어하는지 알 수 있다. 약속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일정 금액을 자신이 싫어하는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하는 등의 방법으로 계약을 맺으면 손실회피 경향을 역으로 이용해 약속을 지키도록 사람들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 약속 실천 계약의 묘미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에 당근(이득)보다는 채찍(손실)이 더 낫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손실을 피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약속을 지키려 할 테니 말이다. 과연 당근보다 채찍보다 나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약속, 계획, 목표의 종류가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사람들에게 피부암 예방을 위해 자외선 차단제 사용을 권고한다고 하자. 자외선 차단제의 유익함(당근)을 홍보할 경우와, 피부암의 끔찍함(채찍)을 강조할 경우, 어떨 때에 사람들이 자외선 차단제를 더 많이 사용할까? 답은 당근을 강조할 때다. 왜냐하면 자외선 차단제는 피부암을 예방하는 활동이므로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반대로 피부암 진단과 같이 개인들에게 부담이 큰 활동을 홍보할 때는 피부암의 끔찍함(채찍)을 강조할 때가 더 효과적이다. 약속이나 계획이 개인들에게 느껴지는 부담감의 크기에 따라 당근과 채찍의 효과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이 점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역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미국 애리조나 주에 있는 석화림 국립공원 관리인들은 “우리의 소중한 자연유산이 조금씩 빼돌려져 연간 14톤의 석화목이 도벌되고 있습니다”란 표지판을 세워뒀다. 채찍을 강조함으로써 사람들이 무단으로 석화목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표지판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도벌을 권장하는 역효과를 발생시켰다.

왜냐하면 표지판은 모든 사람들이 석화목을 훔쳐간다는 것을 알려서 “나도 훔쳐가도 되겠네”란 생각을 자극하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표지판을 세우고 나서 석화목 도벌이 3배나 늘었다고 한다. 석화목을 훔치는 일을 그다지 위험 부담이 크지 않은 일로 느끼게 함으로써 채찍이 먹히지 않게 만든 셈이다. 정책이나 제도를 설계할 때 당근과 채찍의 효과를 잘 따져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대목이다.

저자는 약속 실천 계약을 이행하는 것보다 계약 종료 후의 유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령 체중을 줄이겠다는 약속 실천 계약을 맺으면 대다수가 성공을 거두지만, 계약이 끝나고 난 후에 다시 원래의 몸무게로 회귀하는 요요현상을 자주 목격된다. 이런 실패는 목표를 과도하게 잡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과도한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그동안 억눌렀던 욕구를 보상 받기 위해서 “이제 즐겨도 되잖아”라는 생각이 더욱 극대화된다.

이를 예방하려면 현실적으로 목표를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목표를 잘게 쪼갬으로써 목표에 달성하기까지 투입될 노력의 수준을 적절히 조절할 줄 하는 것도 약속을 유지하는 방법임을 일깨운다. 작심삼일의 오류도 따지고 보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린 탓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목표 설정은 약속을 이행하는 데에도 꼭 필요하다.

그동안 행동경제학을 다루는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 책은 행동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약속 실천 계약의 유용함을 소개하고 사람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다양한 방법과 사례를 다룬다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자신의 계획표에 매번 똑같은 계획이 올라가거나 의지가 박약하여 삼일도 못가 결심이 흐지부지한다면 이 책이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결정적 기회를 줄 것이다.

(* 이 글은 교보문고 북모닝 CEO에 오늘 올라 온 제 서평을 옮긴 것입니다. 원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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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는 망상일까?   

2010. 11. 10. 09:00


“에스키모에겐 눈[雪]을 나타내는 단어가 50개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의 평생을 눈에 둘러싸여 생활하는 터라 누구보다 눈의 미묘한 특성들을 잘 잡아내기 때문이다.”


만일 이 문장을 보고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다거나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면 여러분의 뇌 속에는 ‘에스키모 어휘 허풍’이라는 밈(meme) 하나가 깊게 침투한 것이 틀림없다. 적어도 눈에 대한 에스키모의 어휘 능력은 사실이 아니다.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가 에스키모에게는 눈을 지칭하는 단어가 4개라고 한 말이 와전되고 과장됐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도 에스키모만큼이나 눈을 다양하게 부를 줄 안다. 진눈깨비, 함박눈, 진창눈, 싸락눈, 소낙눈, 가루눈 등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에스키모 어휘 허풍은 왜 그렇게 널리 퍼진 걸까? 그것은 바로 밈이라는 제2의 복제자 때문이라고 이 책 '밈'의 저자인 수전 블랙모어는 주장한다.

(서평 책, '밈')


그녀는 더 나아가 인간의 뇌는 다른 영장류에 비해 왜 이렇게 큰지, 인간은 왜 언어라는 고도의 의사소통 도구를 갖게 됐는지, 왜 어떤 종교는 세계적으로 퍼져나간 반면 특정 종교는 국지적인 한계를 갖게 됐는지, 왜 우리는 한 순간도 생각을 멈출 수 없는지 등과 같은 난제들을 밈의 개념으로 설명을 시도한다.

헌데 밈이 도대체 무엇일까?
밈(Meme), 이 용어를 처음 만든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베스트셀러 책인 ‘이기적 유전자에서 밈을 이렇게 정의한다.

“노랫가락, 발상, 캐치 프레이즈, 복식의 유행, 항아리를 만드는 방법이나 아치를 건설하는 방법처럼 모방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문화의 요소가 밈이다.”

친구들과의 생일 파티에서 부르는 생일축하송이나 우리나라 축구경기가 열리는 운동장에서 메아리 치는 ‘대~한민국’이란 구호, 지하철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 김치를 맛있게 담그는 비법 등이 바로 밈의 예이다. 간단히 말해서 문화유전자가 밈이다. 밈을 제2의 복제자로 부르며 유전자와 동격이라 말하는 이유는 그러한 노래, 구호, 관념, 노하우들이 부모와 자식에게 유전자가 전달되는 것처럼 사람들 간에도 복제되어 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밈은 왜 복제되어 퍼지는 걸까? 그 까닭은 인간만이 가진 유일한 모방능력에 있다. 남의 행동과 생각의 ‘패턴’을 따라할 수 있는 생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물론 침팬지가 흰개미집에 작대기를 집어넣어 개미를 낚고, 원숭이들이 흙 묻는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 먹는 동료의 행동을 따라 한다는 사례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자극 증강’에 의한 사회적 학습이지 모방은 아니다. 사회적 학습은 남을 관찰함으로써 환경에 대해 뭔가를 배우는 것(고구마를 씻어 먹는 하나의 행동)인 반면, 모방은 남을 관찰함으로써 어떤 행동에 관해 뭔가를 배우는 것(음식을 씻어 먹는 게 미각과 건강에 좋다는 깨달음)이다. 이 둘은 매우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또 하나의 진화론, 밈 선택설
인간의 모방능력 덕택에 밈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복제될뿐더러 인간을 ‘선택’하기도 한다. 유전자의 자연선택을 통해 생물체의 진화가 일어나듯이 ‘밈 선택’을 통해서도 인간의 진화가 일어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인간의 뇌 크기가 바로 밈 선택의 결과라는 주장이다.

모방에는 세 가지 기술이 필요하다. 무엇을 모방할지 결정하는 기술, 한 관점에서 다른 관점으로 변환하는 기술, 적절한 육체적 행동을 해내는 기술이다. 이런 기술이 얼마나 정교하냐에 따라 모방의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데, 모방을 잘 해낼수록 생존력(환경적응력)이 커지고 짝짓기의 대상으로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모방능력을 발휘하고 밈 확산에 알맞도록 큰 뇌를 가지게 됐다고 블랙모어는 주장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밈이 무엇인가 의도(예를 들어, ‘인간이 뇌를 크게 만들자’)를 가지고 행동한다고 오해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밈에게는 목적이란 게 없다. 자신을 뇌 속에 담으며 숙주 노릇을 하는 인간에게 관용을 베풀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을 더 많이 퍼뜨리는 것에만 관심을 둘 뿐이다. 도킨스가 유전자는 이기적이라고 했듯이 밈도 이기적이다.

인간이 언어를 갖게 된 이유 역시 밈의 이기적인 측면에서 비롯된다. 언어는 밈을 겉으로 드러내어 전승(복제)시킬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디지털’ 도구이다. 밈의 입장에서 보면 과묵한 사람보다 수다스러운 사람을 더 좋아한다. 수다스러워야 밈이 더 잘 퍼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하도록 인간을 재촉했고, 언어를 말하기 위해 음식을 먹으면서 숨쉬기를 동시에 할 수 없는 해부학적인 위험을 감수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힘의 중심에는 밈이 있다.

인간의 뇌가 커진 이유, 언어를 갖게 된 까닭 등에 대한 블랙모어의 설명은 인간의 진화에 밈 선택이 유전자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때로는 유전자를 구속한다는 개념에 기반한다. 그래서 개인의 관점에 따라 매우 불편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특히 저자의 ‘밈학(學)’은 유전자에 가해지는 자연선택의 힘이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사회생물학이나 진화심리학에 반(反)한다.

하지만 블랙모어는 인간의 뇌가 생물학적 이득으로만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빠르게, 지나치게 크게 자랐다면서 출산의 위험(머리가 크면 출산 시 산모와 아기 모두에게 위험)과 같은 대가를 치르면서 그렇게 된 이유를 유전자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밈을 유전자와 동격의 복제자로 인정해야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인 진화 모두에 대한 설명력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북모닝CEO와의 인터뷰 모습)


밈을 둘러싼 공방, 밈으로 맞선다
밈이 우리의 뇌 속을 지배하고 우리가 밈에 조종당하는 ‘밈 머신(meme machine)’이라는 저자의 생각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거나 종교적인 사람에게는 수용되기 어렵다. ‘자아’는 밈들의 복제를 돕기 위해서 생겼다는 말은 책을 읽는 내내 의문부호를 불러일으키는 주장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행동, 이념을 위해 목숨을 불사르는 결의와 같이 내 의지로 결정한 일들이 사실은 밈이 자신을 퍼뜨리려는 노력의 부산물일 뿐인가? 그렇다면 과연 인간의 자아란 무엇인가? 자아나 자유의지란 개념은 과연 허구일까? 우리는 그저 밈을 실어 나르는 숙주에 불과한가?

저자는 이러한 독자들의 예상되는 반발에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녀는 ‘자아는 망상’이라고 오히려 강하게 말한다. 거짓된 자아에 속지 말라는 뜻이다. 게다가 ‘진실한 방식으로 살아가려면 ‘나’는 손을 뗀 채 결정이 스스로 내려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아를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개념에 기초한 희망과 욕망이라는 개념은 그것이 충족되지 못하면 괴로움을 낳기 때문에 우리의 뇌가 괴로움의 주범인 자아에 복무하도록 하지 말고, 수많은 밈들이 현명하게 의사결정 내리도록 “그저 맡기는 것”이 올바른 삶의 태도라고 말한다. 이 주장 역시 큰 논쟁거리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이 우리의 신념이나 종교관과 배치된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저자의 주장을 매도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며 자아라는 개념이 수많은 밈들이 복잡하게 얽힌 ‘밈플렉스(memeflex)’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저자에 맞서려면 역시 과학적 증거를 통해 반박해야 옳다. 그러려면 저자의 ‘밈학’이 어떠한 과학적, 논리적 토대 위에 세워졌는지 살펴봐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리처드 도킨스의 초기 개념을 폭넓게 확대 적용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과, 밈은 그저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허구일 뿐이라며 밈학을 백안시하는 사람 모두 읽어야 할 책으로서 매우 가치가 크다. 밈에는 밈으로 맞서야 한다. 1999년에 쓰인 책이 이제야 번역된 점이 아쉽다.

이 책은 ‘밈을 지지하는’ 일종의 밈이다. 이 밈이 훌륭하게 자신을 복제해 갈지, 아니면 도태될지 두고 볼 일이다. 내기를 한다면, 지금으로선 전자에 돈을 걸고 싶다.

(* 이 글은 교보문고 북모닝 CEO에 오늘 자로 발행된 서평입니다. 원제 '문화를 전달하는 유전자, 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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