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관리의 리스크   

2011. 3. 29. 09:00



은행, 증권회사, 보험회사와 같은 금융기관들은 금리, 환율, 유가 등에 시시각각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리스크 관리 시스템(RMS)를 갖추고 있습니다(물론 없는 곳도 찾아보면 있겠지만). 요즘에는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제조업이나 일반 서비스업에서도 환경을 둘러싼 여러 가지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리스크 관리 기법을 채용하는 회사들이 제법 많아졌습니다.

회사마다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리스크 관리 체계의 기본적인 얼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조직 내외부에 존재하는 리스크를 파악합니다. 재무적인 리스크도 있고, 운영적인 리스크도 있습니다. 천재지변과 같은 자연 리스크가 있고, 사람들의 행동과 의사결정에 따른 리스크도 있지요. 이렇게 가능한 한 빠짐없이 기업의 성과에 영향을 미칠 만한 리스크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리스크 관리가 시작됩니다.



그 다음엔 각 리스크의 발생 가능성, 즉 발생확률을 추정합니다. 동시에 리스크가 현실로 나타났을 때 그 영향의 크기가 어떨지를 예측해 봅니다. 그러고는 발생확률과 영향의 크기를 곱해서 위험의 크기를 계산합니다. 예를 들어 공장에 화재가 발생한다는 '재해 리스크'의 확률을 1%이고 공장이 전소됐을 때의 예상 손실액이 100억 원이라고 하면, 이 리스크의 위험은 1억 원이 됩니다.

모든 리스크에 대해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어떤 리스크가 가장 큰 위협이 되는지가 파악이 되겠죠? 이제 해야 할 일은 리스크를 헷지(hedge)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환 리스크를 헷지하려면, 결제 통화의 비율을 조정한다든지 다른 회사에 환 리스크를 전가한다든지 등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운영리스크(직원의 비리, 운영상의 실수 등)에 대해서도 헷지 계획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이젠 수립된 헷지 계획을 실행합니다. 그러면서 제대로 실행에 옮겨지는지 점검하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기존의 헷지 계획을 수정 보완합니다. 만일 새로운 리스크가 발견된다든지, 발생확률과 영향의 크기가 달라져서 '가장 큰 위협이 되는 리스크'가 바뀐다면 그에 대한 헷지 계획도 수립해야 하겠죠. 리스크 관리는 이와 같이 전형적인 Plan-Do-See의 절차로 이루어집니다. 만일 여러분의 회사가 이와 같은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다면, 어떤 리스크가 현실로 나타나도 튼튼하게 대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 겁니다.

하지만, 리스크 관리 체계에 대한 지나친 믿음은 오히려 매우 위험합니다. RMS 내에 리스크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 리스크는 바로 '블랙 스완(Black swan)'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리스크 관리의 첫 단계가 조직을 둘러싼 내외부의 리스크를 파악하는 일이라고 했는데, 이 단계에서 '발생확률은 아주 낮지만, 한번 발생하면 그 영향이 상상을 초월하는' 블랙 스완을 찾아내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설령 인지를 했더라도 '설마 그런 일이 발생하겠냐'며 쉽게 무시 당하기 때문이죠. 또한 광범위하게 리스크를 규명하면 할수록 '자신감 착각'이 강화되기 때문에 블랙 스완을 놓치는 역설에 빠집니다.

이번 일본 원전 사고가 블랙 스완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지진에 철저히 대비해왔던 일본조차 높이 10m 이상의 쯔나미가 몰려올지,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원전을 위태롭게 만들지를 예측하지 못했죠. 리스크 관리가 다른 산업에 비해 체계적으로 잘 구축된 미국 금융기관들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를 대비하지 못해(혹은 알고도 무시해서)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몰고 온 것도 역시 블랙 스완의 대표적인 사례죠. 2001년에 발생한 9.11 테러, 최근에 중동을 휩쓰는 '쟈스민 혁명' 등도 역시 블랙 스완입니다.

이상하게도 사고는 예상했던 리스크가 아니라, 전혀 예상하지 않은 리스크게서 발생하고, 그 영향도 매우 큽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리스크 관리 시스템은 관리가 가능한 리스크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정되고 질서정연한 산업에서 유용합니다. 관리할 수 없는 리스크(블랙 스완)이 뛰쳐나오는 복잡한 환경에서는 가치가 적죠.

리스크 관리 체계의 두 번째 약점은 발생확률과 영향의 크기를 사전적으로 결정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발생확률이 1%인지, 80%인지는 매우 자의적입니다. 게다가 미래의 일이라서 아무리 객관적인 정보를 수집한다 해도 발생확률의 정확성을 기하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특정 정보 하나가 발생확률을 1%에서 90%로 갑자기 끌어올리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왕왕 발생하니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위협이 되는 리스크'가 무엇인지를 잘못 결정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수립된 리스크 헷지 계획도 무용지물이 되는 일이 허다합니다.

리스크 관리 체계의 세 번째 약점은 리스크 헷지 계획이 '자신감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 착각은 리스크를 파악할 때도 발생하지만, 가장 위협이 되는 리스크를 헷지하기 위해 정교한 기법과 절차를 수립함과 동시에 출현합니다. "자, 이렇게 만반의 대책을 세웠으니 문제 없겠지?" 라며 긴장의 끈을 놓는 것입니다. 또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을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으로 혼동하는 '실행 착각'도 발생합니다. 근사한 비전 문구를 액자로 만들어 벽에 걸어두면 그게 저절로 이뤄질 것처럼 믿는 것처럼 말입니다.

블랙 스완이 갑자기 출몰하는 복잡한 상황 하에서는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리스크를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는 목표는 매번 좌절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리스크 관리 체계라도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 고 생각합니까?

환경이 복잡해지고 매번 급변한다면 철저한 리스크 관리보다는 '적응'이 생존의 키워드입니다. 미래의 변화를 미리 그려보고 그에 따라 조직의 적응력을 길러가도록 체질을 개선해야 합니다. 일본이 대지진이라는 재앙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했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빠르게 회복하고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느냐가 그들의 저력을 말해줄 잣대입니다.

사전 대비와 사후 적응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중용적 시각이 필요합니다. 철저히 대비하는 조직도 좋지만, 빠르게 회복 가능한 적응력을 갖춘 조직으로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참고도서 : '블랙 스완', '이기는 결정의 제1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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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올해의 책, Top 10   

2009. 12. 10. 09:05

제가 2008년 12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좋은 책을 나름대로 선정해 봤습니다(2009년 12월에 읽은 책은 2010년으로 넘김). 이 기간 동안 100권 가까이 읽었는데, 10권을 골라내기가 쉽지 않더군요. 참고로 지인들(저자나 출판인)의 책은 일부러 후보에서 제외했습니다. 부디 섭섭해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


책 사는 비용이 아깝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조금 안타깝습니다. 좋은 책을 읽음으로써 얻는 효용이 어찌 1, 2만원 뿐일까요? 건실한 도서 시장은 좋은 책이 나올 수 있는 자양분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기에 영합하는 '가벼운 책' 일색이겠지요. 요즘 출판 시장이 그러합니다.

제가 뽑은 '2009년 올해의 책, Top 10'이 여러분의 즐거운 독서 생활에 조그마한 길잡이가 되면 좋겠습니다. ^^ 순위를 매겨 봤지만, 모두 등위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


1위 : 협력의 진화 : 이 책의 존재는 예전부터 알았지만 이제야 읽은 것이 한이 될 정도로 좋은 책. 리처드 도킨스는 '모든 사람들을 가둬놓고 이 책을 읽은 사람만 풀어줘야 한다'고 추천사를 썼는데, 그 말이 과장이 아님을 책을 읽으면서 공감했습니다. 이기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협력이 창발하는 이유를 간단한 '죄수의 딜레마' 게임으로 흥미롭게 풀어갑니다.

2위 : 루시퍼 이펙트 : 유명한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을 수행한 저자가 실험을 수행한지 30년 만에 쓴 역작. 이 책을 읽지 않고 권위자와 굴종자 사이의 심리적 메카니즘을 논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한 책입니다. 70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소설을 읽듯 재미있게 읽힙니다.

3위 : 거짓말의 진화 : '자기정당화'를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파헤친 책. 정치인들이 뻔한 잘못을 해놓고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거나 '사실 무근이다'란 말을 내뱉는 이유를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사실 평범한 사람들도 자기정당화의 자동적인 프로세스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자신의 내면을 되볼아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4위 :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 : '뇌를 이해해야 소비자를 끌어 당길 수 있다!' 뇌신경학과 소비자행동을 접목한 흥미진진한 책. 소위 '신경마케팅'이란 첨단분야를 쉽고 간결하게 소개한다. 두고두고 읽을 만한 책입니다.

5위 : 뉴 골든 에이지 : 인도계 미국 경제학자가 쓴 경제 예측서입니다. 그의 스승과 그가 발견한 사회순환법칙을 적용해서 미국이란 나라의 붕괴를 예견하는 책이죠. 미국은 지금 온갖 부패가 만연하고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탐획자 시대'의 말기 현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는 곧 그 시대가 마감되고 '전사의 시대'가 올 거라 예견하면서 머지 않아 미국에 황금의 시대가 열릴 거라 예언합니다. 두고봐야 알 터이지만, 역사와 정치를 꿰뚫어보는 그의 혜안이 놀랍죠. 

6위 : 블랙스완 : 상당히 심오하면서도 날카로운 책. 불확실성에 대해 나와 다른 정의를 내리지만 대개의 논리엔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검은백조가 어디서 나타날지, 항상 조심하십시오. ^^

사기 교양강의

7위 : 사기 교양 강의 : 중국 TV에 방영됐던 교양 강좌를 옮긴 책. 사기의 내용이 어렵고 따분하다고 여긴 적이 있다면 이 책이 그런 선입견을 날려줍니다. 진시황부터 한무제에 이르기까지 중원을 호령했던 영웅들의 이야기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저자의 내공이 놀랍습니다.


8위 : 생각이 직관에 묻다 : 직관(Gut Feeling)에 관한 재미있는 책. 직관은 충분한 정보가 없을 때 유용한 판단도구임을 흥미로운 사례와 더불어 설명합니다.

9위 : 논리학 실험실 : 제목을 보면 논리학에 관한 책인듯 하지만 열어보면 과학에서의 논증과 추론에 관한 책. 논증의 구조, 실증 및 논거의 의미 등을 명확하게 습득하는 데에 이만한 책은 없습니다. 과학적 논증을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됩니다.

10위 :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 칼뱅의 권위주의적 기독교 사상에 목숨을 걸고 맞섰던 카스텔리오의 이야기입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더니, 이 책의 내용에 끄덕이는 건 왜 일까요?


이승환님이 저에게 바통을 넘기셨는데, 저는 inuit님에게 넘겨 드리겠습니다. ^^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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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는 모두 6권의 책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4월은 '잔인한 달'이었기에, 생각보다 많은 책을 읽지 못했다.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지만, 싱숭생숭했다고나 할까?
그래도 이번 달에는 좋은 책을 많이 만나서 다행이다.

 1월부터 4월까지 모두 25권의 책을 읽었다.
다독가가 되긴 글렀나 보다. ^^

블랙스완 : 상당히 심오하면서도 날카로운 책이다. 불확실성에 대해 나와 다른 정의를 내리지만 대개의 논리엔 공감하면서 읽었다. 검은백조가 어디서 나타날지, 항상 조심하라! 이 책을 강추한다.

슈퍼크런처 : 광범위하고 광대한 데이터 분석으로 정책의 효과, 와인의 품질 등을 미리 예측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믿을 만한 건 숫자 뿐인가? 좋은 지식과 시사점을 얻은 책이다. 내가 시나리오 플래닝에서 주장하는 논리와 배치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일독을 권한다.

발칙한 미국학 : 지난 달에 읽은 '발칙한 유럽산책'을 재미있게 읽어서 이 책도 냉큼 읽었다. 신문 칼럼을 모은 책이라 술술 쉽게 읽히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오랫만에 고국에 돌아와서 느낀 '준 이방인'의 시각과 위트가 책 곳곳에서 빛난다. 심심할 때 읽으면 좋다.

슈퍼자본주의 : 승자독식사회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의 폐해와,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서술하는 책.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정부의 강력하고 일관적인 정책만이 자본주의의 부조리와 환경 파괴로부터 구원 받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한다. 작은 정부가 아니라 큰 정부가 나와야 할까? 일독을 권한다.

고민하는 힘 :  스타벅스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다가 책꽂이에 꽂혀 있길래 앉은 자리에서 읽어버린 책. 재일교포 2세인 동경대 교수의 책. 동어반복을 밥먹듯 하는 자기계발서 중 하나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자못 철학적이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를 끊임없이 고민하라고 충고한다. 실용적(?)인 자기계발서를 기대했다면 오산인 책.

아이코노클라스트 : 생각의 틀을 깬 사람들은 어떤 뇌를 가졌을까? 신경과학자가 뇌과학의 지식으로 선구자들의 뇌 구조를 이야기한다. 성공한 자들은 남들과 다르게 보고, 공포를 이겨내고, 타인을 효과적으로 설득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든다. 뇌가 다르다면, 그들을 따라할 수 있을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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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시나리오 플래닝을 주제로 모 경영대학원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2시간의 강의를 끝내고 질문을 받는 시간이 되자 수강생 중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했다.

"미네르바의 말을 믿어야 할까요?"

그분이 이렇게 질문을 던진 이유는, 내가 강의 내내 시나리오 플래닝이 성공하려면 미래를 예측하려는 '생각의 관성'에서 탈피해야 하며, 예측을 주업으로 하는 전문가들의 말을 믿지 말아야 함을 거의 주입식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예측은 항상 틀린다'는 말은 진리이며, '그럼에도 예측전문가들은 영원히 밥벌이를 한다'는 사실이 더 진리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나는 그분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동전을 수십 번 던지면 앞면과 뒷면이 고루 나오리라 짐작하겠지만, 이상하게도 동일한 면이 계속해서 나오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저는 미네르바의 그동안 내놓은 예측이 대략 잘 들어맞은 이유도 동전 던지기와 같다고 봅니다."

미네르바의 예측이 잘 맞은 이유가 동전을 계속 던져 동일만 면이 줄기차게 나오는 현상처럼 우연의 소산에 불과하다 뜻으로 나는 이처럼 대답했다. 에두른 대답이지만, 예측전문가들에게 향한 내 시선(좀 삐딱한)을 정확히 표현하는 비유였다.

나는 예측전문가(경제학자, 애널리스트 등 예측을 주업으로 하는 모든 사람)의 예측능력을 신뢰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의 예측은 동전을 던져 미래를 예측하는 경우보다 낫지 않음이 여러 연구로 이미 밝혀졌고, 어쩌다 잘 맞히는 전문가들은 다음의 실험처럼 앞면이나 뒷면이 수차례 연달아 나오는 현상과 같은 '행운'의 덕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강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동전을 1000 번 던지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사실 이 실험은 최초가 아니라 모 수학자의 연구를 조악하나마 재현한 것이다.

직접 동전을 1000 번 던지려면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되므로(그리고 팔도 꽤 아프므로), Excel의 'Randbetween()함수'를 써서 동전 던지기를 시뮬레이션 했다. 아래의 그림이 50개씩 묶어서 표현한 결과다.


위의 그림에서 은 앞면을, 는 뒷면을 나타낸다. 이 실험을 하기 전에 머리 속으로 '사고실험'을 해본다면 아마 이 결과보다는 앞면과 뒷면이 고루 나오는 패턴을 떠올렸으리라. 그러나 실제의 결과 패턴을 살펴보면 예상보다 앞면과 뒷면이 많이 무리져(덩어리져) 나타난다.

특히 위의 그림에서 노랗게 칠해진 부분은 무려 14번 연속으로 뒷면이 나왔음을 보여준다. 실험을 다시 해본다면 위의 데이터와 일치하지 않겠지만 대략 비슷한 패턴을 나타내리라 생각된다.

연속으로 같은 면이 얼마나 나왔는지 일일이 세어보니 다음과 같다(손으로 세느라 약간의 오류가 있을지 모르니 양해 바란다).


같은 면으로 된 덩어리의 크기가 4 이상인 경우가 59번이나 출현했다. 또한 크기가 7 이상인 경우도 10번이나 되었다. 동전을 모두 1000 번 던졌으니 7번 연속으로 줄기차게 한 면이 나오는 경우가 1%나 된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예측전문가 그룹에서 1%의 상위집단을 '스타'라 칭한다면 그들의 명성은 같은 면이 7번 계속해서 나오는 우연으로 포장된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급진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믿는다. 예컨데 어떤 전문가가 특정 주식의 등락 예측을 7번 연속 맞히면 족집게로 소문이 나고 부와 명예가 따른다. 비록 그 다음에 이어지는 예측이 틀렸다고 해도 묻혀버리거나 '작은 실수'로 이내 잊혀지기 때문에 족집게라는 명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7번 연속으로 맞힌 최초의 행운 덕택으로 말이다.

생각해 보라. 특정 전문가의 예측이 틀렸는지 맞았는지 일일이 사후에 검증해 본 일이 있는가?  경제학자 장 필립 부쇼가 수행한 연구에서 애널리스트 2000명의 경기 예측이 모두 빗나갔다고 한다(source :'블랙 스완).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나가려고 전문가들의 예측을 고대하는 우리를 무안하게 만드는 결과다. 그들의 '면책특권'은 여느 국회의원보다도 훨씬 낫다. 여전히 예측전문가로 활동하며 돈을 끌어 모으는 중이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미네르바의 구속에 무척 분개했고, 그의 석방을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따라서 나는 이 글로 미네르바 개인을 폄하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나는 이 실험 결과로 미네르바라고 해서 범인(凡人)의 능력을 뛰어 넘는 특별한 예측력과 천리안을 지니지 않았음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석방된 미네르바가 블로그를 운영하겠다고 하니 경제를 예측하는 글이 조만간 올라오리라. 그가 쏟아낼 예측과 전망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쏠려있다. 하지만 두고 볼 일이다. 그가 과거에 잘 맞혔다고 해서 앞으로도 잘 맞히리란 보장이 없다. 그의 예측력은 연달아 같은 면이 여러 번 출현한 동전의 경우처럼 행운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점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네르바 스스로 자신의 안목과 예측력을 과신하지 말 일이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만큼 실망도 크고 비난 받기 쉬운 법이니까.


* Excel 파일을 공개하니, 참고하십시오(분석 sheet가 좀 조악해도 양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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