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칼럼은 2008년 3월에 동아 비즈니스 리뷰에 실렸습니다. 그 시점에서 쓰여진 글이므로 세부 상황이 현재와 조금 맞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AIG의 구제금융 요청 등과 같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07년에 발발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전세계 경제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G7 재무장관회의에서 서브프라임으로 인한 손실이 4,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시되었고, 파이낸셜 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인 볼프강 문차우는 한술 더떠 그 피해액이 1조 달러를 훨씬 상회할 거라는 비관적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여러 경제예측기관들은 나름의 근거를 토대로 각종 전망을 내리고 있지만 의견이 서로 다르거나 상충되는 부분이 많아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일으킨 전세계적 경제 위기가 향후에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정확히 예측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은 복잡한 자산 유동화 과정을 거치면서 연쇄적인 파생금융상품들과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있어서 잠재적 리스크가 매우 큰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마치 북경에서 펄럭인 나비의 날갯짓이 멕시코만에 허리케인을 일으키듯이, 서브프라임 사태에 의해 촉발된 경제 위기의 연쇄반응은 아주 미세한 변화 하나만으로 세계의 경제를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거나 반대로 별 일 없었던 듯이 모든 문제를 깨끗이 일소할 수 있는 상태다. 다시 말해, 세계의 경제는 나빠질 수도 있고 좋아질 수 있는, 상당히 ‘불확실성’이 큰 국면에 봉착해 있다.

상황이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지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 처하면 우리는 항상 정확한 예측을 시도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예측은 항상 틀리며, 그것은 언제나 진리다. 따라서 우리는 예측하려는 만용을 버리고 전략적 의사결정을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첫째, 서브프라임이 미래의 경제의 어떤 부분을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는가? 둘째, 불확실한 요소들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셋째, 그렇다면 불확실한 여러 상황에 대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만일 이 질문들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불확실성은 고스란히 리스크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한 전략적 사고 프로세스를 ‘시나리오 플래닝’이라 한다. 다시 말해, 시나리오 플래닝은 서브프라임 사태가 야기할 세계 경제의 불확실한 요인를 찾아낸 이후(첫번째 질문)에, 각 요인들이 취하게 될 미래 사건의 조합인 시나리오를 규명하고(두번째 질문), 기업이 각 시나리오별로 전략적 대안을 마련하는(세번째 질문) 일련의 과정인 것이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다음과 같이 5가지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원래는 7단계이나, 여기서는 축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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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에서는 외국에서 원자재를 들여와 가공한 다음 미국과 유럽에 내다 파는 전형적인 수출기업 A사를 가정하여 시나리오 플래닝 과정을 전개해 보려한다. 독자들은 이 칼럼을 통해 서브프라임 사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각 기업이 취해야 할 전략 대안을 결정하고 이와 동시에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을 숙지하는 기회로 활용하기 바란다.

시나리오 플래닝의 첫 번째 단계는 ‘핵심이슈’를 정의하는 일이다. 핵심이슈 파악이란, 시나리오 플래닝에 의해서 우리 회사의 어떠한 문제를 의사결정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을 말한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세계 경제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를 막연하게 그려보는 것은 경제예측가에게는 의미가 있는 행위일는지 모르지만 기업의 경영자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해 놓은 다음에 서브프라임 사태가 우리 회사의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생각하는 것이 실용적 접근이다.

여러분의 기업이 수출기업인 A사의 상황과 같다면, 서브프라임 사태 하에서 전략적으로 의사결정 해야 할 핵심이슈들이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내수시장을 벗어나 해외시장으로 커버리지를 확산해야 하는지, 기존사업을 축소하고 신규사업으로 진출하는 전략이 옳은 것인지, 혹은 경쟁사와의 전략적 제휴를 추진해야 하는지 등이 모두 만만치 않은 핵심이슈로 떠오를 수 있다. 본 칼럼에서는 수출기업에 있어 비교적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의사결정 사안인 “신규설비를 구축하여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가?”의 문제를 핵심이슈로 선정하고자 한다.

시나리오 플래닝의 두 번째 단계는 변화동인(Change Driver)을 찾는 과정이다. 변화 동인이란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가정할 수 있는 변수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원자재 가격’이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세계 경제의 불안을 가속화하는 대표적인 변화동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을 막고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미국의 FRB는 급격하게 금리 인하를 단행하고 있는데, 이는 투자자들로 하여금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에 매력을 잃어 금, 곡물, 철강 등의 실물시장으로 이탈하도록 촉진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 때문에 원자재 사재기 등의 투기 수요가 몰려들어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달러화의 약세와 바이오원료 생산의 확대도 곡물과 같은 원자재 값 급등에 한몫을 하고 있다.

반면 금융시장에 비해 투기적 성격이 강한 실물시장의 리스크가 만만치 않고 수익률 또한 매력적이지 않다면 실물시장으로의 ‘골드 러쉬’는 단지 유행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원자재 가격의 향후 추이는 시나리오를 형성하는 중요한 변화동인이 된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민간소비가 위축될 것인지, 아니면 견고하게 유지될지의 여부도 중요한 변화 동인 중 하나다. 상식적으로 금융 위기가 확산되면 소비자들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어 소비 수준의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가능성도 만만치 않다.

FRB의 금리 인하 정책으로 인한 효과, 미국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가구당 평균 1000~1500 달러 정도의 세금 환급 효과 등이 가처분소득의 하락분을 상쇄한다면, 민간소비 수준은 견고하게 유지될 거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작년 12월 말 대비 2008년 1월의 민간부문 고용이 3만 7천명에서 13만명으로 크게 증가함으로써 서브프라임 사태가 민간기업의 경제활동에 끼치는 영향이 예상보다 크지 않아 민간소비 수준이 둔화되지 않을 거란 기대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고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확률이 정확히 반반인 상태, 즉 불확실성이 큰 변화 동인을 여러 가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래의 표는 여러 경제전망기관에서 서로 반대로 내놓은 의견을 종합한 6가지 변화동인들이다.


No.

변화 동인

변화 옵션

1

미국의 금리 인하책 성공

성공

실패

2

원자재 가격 상승

안정

급등

3

중국/인도의 경제 성장

성장

둔화 또는 하락

4

중국의 긴축정책 고수

고수

폐지

5

민간소비 수준 유지

유지

둔화 또는 하락

6

민간기업의 투자수준 유지

유지 또는 확대

둔화


어느 단계보다도 변화동인을 규명하는 과정이 시나리오 플래닝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 서브프라임 사태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위주로 내놓는 기관이 있는 반면, 오히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해소가 장기적으로 세계 경제의 건전성 제고에 긍정적일 것이라는 의견도 양립해 있다. 따라서 어느 한 곳의 전망과 예측에 경도되지 않고 가능한 한 다양한 정보원(source)으로부터 정보를 탐색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변화동인 중에서 영향도가 큰 것들을 '핵심변화동인(Key Change Driver)'이라 한다. 아래의 Cross Impact 분석을 활용하면 핵심변화동인을 가려낼 수 있다. 변화동인을 가로축과 세로축에 각각 배열한 다음, 가로축의 변화동인이 세로축에 변화동인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지, 그 영향은 강화시키는 방향인지 약화시키는 방향인지를 평가하여 숫자를 기입한다. 행과 열의 ‘절대값 합’을 구해 높은 값을 얻는 것이 핵심변화동인이다. (영향도 평가 결과는 필자의 판단에 따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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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축이 세로축을  2: 매우 강화  1:강화  0:관련없음   -1:약화   -2:매우 약화)

하나만 예를 든다면, 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민간기업의 투자를 매우 위축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그 기업이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면 재료비의 상승 부담 때문에 투자확대 전략보다는 비용 절감 전략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그 영향도는 ‘-2’가 된다.

위 표에서 가장 영향도가 큰 동인은 1번과 2번이고, 의존도가 큰 동인은 6번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를 다시 아래의 매트릭스로 나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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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의 우하단에 1번과 2번이 매핑되었는데, 이 두 개의 변화동인이 바로 핵심변화동인이며 시나리오의 주축을 이루는 재료가 된다. 좌상단의 변화동인은 핵심변화동인에 의존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고, 좌하단의 변화동인인 4번과 5번은 시나리오 플래닝 과정에서 무시해도 좋다.

시나리오 플래닝의 세 번째 단계는 시나리오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시나리오의 개수는 핵심변화동인의 개수에 의해 결정된다. 만일 핵심변화동인이 4개라면, 2의 4제곱인 16개의 시나리오가 도출된다. 우리의 예시에서 핵심변화동인이 2개가 도출되었으므로 발생가능한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이 4가지가 된다.


시나리오

미국의 금리 인하책

성공한다

실패한다

원자재 가격

안정된다

scenario 1

scenario 2

급등한다

scenario 3

scenario 4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경제 위기의 양상을 단 4가지의 시나리오로 압축하는 것에 불안한 마음을 가질지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많은 시나리오는 오히려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혼동만을 가중시킨다. 미래학자들의 경험법칙(Rule of Thumb)에 의하면 효과적인 전략 실행을 위해서는 4~8개 정도의 시나리오가 적절하다고 한다.

시나리오 플래닝의 4번째 단계는 ‘시나리오 쓰기(Scenario Writing)이다. 이 부분은 시나리오 플래닝의 과정에서 습득한 여러 재료들을 가지고 일종의 소설을 써보는 단계다. 이렇게 가상의 ’드라마‘를 써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항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좀더 정교화시킬 수 있고 내부 구성원들에게 시나리오의 이미지를 명확하게 이해시킬 수 있다. 지면 관계상 이 단계의 예시는 생략하기로 한다.

이제 시나리오 플래닝의 마지막 과정으로서 대응전략을 수립해야 할 단계다. 앞에서 수출회사 A사의 핵심이슈가 ‘신규설비를 구축하여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가?’로 정해졌기 때문에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전략 대안은 바로 신규설비를 구축하는 ‘방법’에 관련된 것들이 된다. 신규설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관련된 전략대안은 여러 관점들의 조합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관점의 숫자에 따라 이론적으로는 무수히 많을 수 있으나, 전략의 초점을 명확히 하려면 A사가 전략을 취할 때 가장 중요하게 적용하는 관점이나 앞으로 중요하게 적용해야 할 관점을 추려내어 그 숫자를 줄여야 한다.

실제로 신규설비 구축의 전략대안 도출은 매우 집중적인 노력과 시간을 요하는 과정이지만, 본 예시에서는 논의를 간단히 하기 위하여, ‘구축 시점’과 ‘구축 규모’만을 고려하기로 한다. 아래는 이 두 가지 관점에 의해 전략대안을 도출한 결과이다. 신규설비를 구축하지 않는 것도 대안이기 때문에 전략대안은 모두 5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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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나리오와 각 전략대안 간의 적합성을 판단해야 한다. 먼저 아래와 같은 표를 사용하여 적합성을 평가해 보라.(평가 점수는 필자의 의견임) 이때 적합성은 시나리오별로 예상되는 리스크와 성과의 크기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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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Scenario 4(미국 금리인하책 실패 & 원자재 가격 급등) 하에서는 세계 경제가 급격하게 위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규모로 생산설비를 즉시 확충한다는 대안은 자금조달과 운용에 있어 리스크가 큰 전략 대안이며 증산의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황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기존 생산라인을 활용해 탄력적으로 증산할 것을 검토하거나, 아니면 아예 증설을 고려하지 않는 전략 대안이 가장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각 시나리오별로 가장 적합한 전략대안이 무엇인지 밝혀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현 시점에서 A사가 채택해야 할 '오직 하나의' 전략대안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각 시나리오 중 가장 일어날 법한 시나리오가 있다면 그 시나리오에 가장 적합한 전략대안을 최적대안으로 채택하면 된다. 만일 현시점에서 어떤 시나리오가 현실화될지 판단하기 어렵다면, 모든 시나리오에서 언제나 높은 적합성(3점)을 보이는 대안을 찾는다. 이런 대안을 절대우위전략이라고 부르는데, 위의 예에서는 이 조건을 만족하는 대안은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세번째 질문을 던져본다.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적합하면서 나머지 시나리오에서 평균적으로 적합도가 높은 전략대안은 무엇인가?” 우리의 예시에서는 미국의 금리인하책이 서브프라임 부실로 인한 손실 회복에 실패하고 곡물과 같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여 일명 ‘애그플레이션(Agflation)' 상황이 전개되는 Scenario 4가 최악의 시나리오다. Scenario 4에 3점을 기록한 전략대안은 대안4와 대안5인데, 나머지 시나리오에서도 동률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경영진은 이 두 개의 대안을 놓고 최종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면 된다.

만일 A사가 위험을 감수하며 높은 성과를 추구하는 조직문화를 지녔다면 “최상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적합하면서 나머지 시나리오에서 평균적으로 적합도가 높은 전략대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우리의 예시에서는 서브프라임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는 Scenario 1이 최상의 시나리오이며 이 시나리오에서 최적의 전략대안은 바로 대안1이 된다.

지금까지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을 사용하여 서브프라임 사태로 야기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도출하고 전략대안을 각 시나리오에 대응시키는 과정과 방법을 알아보았다.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급격하게 변할수록 우리는 어떻게 하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예측은 항상 틀린다. 따라서 시나리오 플래닝을 통해 미래의 불확실성에 초점에 맞추고 여러 시나리오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것이 보다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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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앞에 각각 100개의 구슬이 담긴 두 개의 항아리가 놓여 있다. 첫 번째 항아리에는 검은 구슬과 붉은 구슬이 각각 50개씩 들어있고, 두 번째 항아리는 검은 구슬과 붉은 구슬이 몇 개씩 섞여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자. 만일 검은 구슬을 뽑으면 상금을 주겠다고 어떤 사람이 제안해 온다면, 당신은 두 개의 항아리 중 어떤 것을 택하는 것이 좋을까?

대니얼 엘스버그가 수행한 이 실험에서 참가자의 대부분은 검은 구슬이 뽑힐 확률이 50%로 정해져 있는 첫 번째 항아리를 선택했다. 두 번째 항아리가 검은 구술이 붉은 구슬보다 더 많이 들어 있을 가능성을 있음에도 확률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게임에 참여하는 것을 선호했던 것이다.

이 실험은 사람들에게 불확실성이 큰 상황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불확실성은 한 사건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검은 구슬이 몇 개 들어있을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두 번째 항아리를 배제하고 확률이 확실하게 제시된 첫 번째 항아리를 택하는 이유는 인간이 진화의 오랜 기간 동안 불확실성을 배제하고 확실성을 택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함을 체득했고 그런 학습 결과가 유전자로 각인됐기 때문이다.

요즘 유가와 환율이 급등락을 반복하고, 북한이 6자회담의 합의를 깨뜨리고 영변의 핵 봉인을 해체하는 등 기업을 둘러싼 거시환경에 일대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것들이 매순간 방향타를 바꾸는 불확실성 하에 놓여 있고, 경영의 성과를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 파괴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훌륭한 경영자라면 불확실성을 타개하기 위해 환경의 예측 불가능성을 구성원들에게 인지시키고 그것을 잘 다루지 못했을 때 온전히 리스크로 다가올 수 있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조직의 변화 대열에 구성원들을 참여시키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상황이 어려워졌으니 허리끈 졸라매고 열심히 뛰어보자’라는 캠페인은 그동안 너무나 많이 써먹은 탓에 더 이상 구성원들을 감화시키지 못한다. 더군다나 조직의 가치보다 개인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시대의 흐름 때문에 강압적인 지시는 먹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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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가득 메운 변화동인들 (시나리오 플래닝 프로젝트시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불확실성을 싫어하고 확실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활용해 보는 방법은 어떨까? 어떤 대학에서 B형 간염이 유행했을 때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검진을 실시했다. 연구자들은 검진을 받고 나온 학생들에게 B형 간염의 증상이 어떤지 설명해 주었는데, a그룹의 학생들에게는 간이 충혈되고 신경체계가 왜곡된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설명한 반면, b그룹에게는 근육통, 무기력, 악성 두통처럼 쉽게 증상을 상상할 수 있는 말로 이야기해 주었다.

3주 후에 연구자들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간염에 걸렸을 확률이 어느 정도 되는지 질문하자, 머리 속에 증상이 쉽게 그려지는 설명을 들었던 b그룹의 학생들이 간염에 걸렸을 확률을 높게 추정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실험은 위기를 확실하게 머리 속으로 그려볼 수 있을 때 행동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일깨운다. 구성원들을 변화로 이끌려면 중후장대한 목표와 전략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변화를 발화시키는 힘은 9.11 테러 같은 위기가 닥칠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이면서 생생한 이야기로부터 나온다.

불확실성이 커가는 요즘, 기업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시나리오 플래닝’ 은 전략기법이라기보다 변화에 불을 댕기고 변화 과정을 관리하는 도구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 먹구름 속에 감춰진 미래를 펼쳐 보이고 미래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줌으로써 구성원들로 하여금 변화의 필요성을 자각시키고 대응을 위해 조직의 역량을 결집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위기 대응을 위해 조직 전체의 일사불란한 대응을 주문하고 싶다면, 위에서 아래로 찍어 누르는 전통적 방식의 조직관리는 곤란하다. 미래의 위험과 기회가 확실하게 머리 속에 그려지도록 만듦으로써 변화가 아래에서 위로 번지도록 유도할 때 성장의 엔진이 활활 타오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참고 논문)
Imagining Can Heighten or Lower the Perceived Likelihood of Contracting a Disease


(본 칼럼은 광주일보 2008년 9월 12일자로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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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유정식 대표)가 '동아 비즈니스 리뷰' 5호(3월11일자)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우리나라 제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으로 분석하고 구체적인 방법론을 설명한 기사입니다.

박사급 연구원 수백 명이 환율을 예측하는 것보다 동전 던지기로 예측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 인간이 미래를 지속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얼마든지 미래에 대비할 수는 있습니다. 환경 변화를 가져오는 주 요인을 파악하고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를 점검하며 적절한 전략을 수립하면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미래에 대비하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경영 기법이 바로 ‘시나리오 플래닝(scenario planning)’입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미래 예측’이 아니라 ‘미래 준비’가 그 핵심입니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처럼 세계 경제를 뒤흔들 만한 파괴력을 가진 사안에 대해 시나리오 플래닝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최고의 경영 전문가들과 함께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문과 시나리오 플래닝 전반에 대한 현장형 솔루션과 케이스 등을 집약했습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문이 확산되면서 G7 재무장관회의는 서브프라임으로 인한 손실이 4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술 더 떠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볼프강 문차우는 피해액이 1조 달러를 넘을 것이란 비관론도 폈다.

경제 예측 기관들이 나름의 근거를 토대로 각종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의견이 서로 다르거나 상충되는 부분이 많아서 서브프라임으로 인한 경제 위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

마치 베이징에서 펄럭인 나비의 날 개짓이 멕시코만에 허리케인을 일으키듯, 서브프라임으로 촉발된 경제 위기의 연쇄반응은 아주 미세한 변화 하나만으로 세계의 경제를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 수 있다. 거꾸로 별 일 없었던 듯 모든 문제가 사라질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세계 경제는 나빠질 수도 있고 좋아질 수도 있는 매우 ‘불확실성’이 큰 국면에 처한 것이다.

이처럼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면 우리는 항상 정확한 예측을 시도한다. 그러나 예측은 틀리기 십상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려는 ‘만용’을 버리고 전략적 의사결정을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첫째, 서브프라임이 미래 경제의 어떤 부분을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는가? 둘째, 불확실한 요소들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셋째, 그렇다면 불확실한 여러 상황에 대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만일 이 질문들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불확실성은 고스란히 리스크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후략)

글 전체를 보시려면, DBR (동아비즈니스리뷰)
 
http://www.dongabiz.com/TrendnIssue/Special_Report/article_content.php?atno=1101000901&chap_no=1 )을 클릭하시면 회원가입 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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