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두 팀이 있습니다. A팀은 팀원들의 권한이나 지식 수준이 평등한 반면, B팀은 리더와 팔로워라는 서열이 분명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팀원들의 상호 작용을 통해 완성해야 하는 과제를 두 팀에게 동일하게 부여할 경우, 어떤 팀이 더 나은 성과를 보일까요? 권한이 평등한 A팀일까요, 아니면 서열이 명확한 B팀일까요?

팀원들이 팀 토론과 팀 의사결정에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참여할 때 팀의 성과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들이 많기에 아마도 여러분은 평등한 A팀의 성과가 더 높을 거라고 기대할 겁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라는 연구 결과가 최근에 제시되었습니다. 콜럼비아 대학교의 리차드 로내이(Richard Ronay)와 동료 연구자들은 간단한 실험을 통해 팀의 성과가 팀원들의 상호작용과 협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경우 서열이 명확한 B팀의 성과가 더 높다고 주장합니다. 



로내이는 138명의 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각기 다르게 프라이밍(priming)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에게 자신이 남에게 권력을 행사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고(하이-파워), 두 번째 그룹에게는 타인의 권력이 굴복했던 기억을 회상하도록 했으며(로우-파워), 세 번째 그룹에게는 최근에 슈퍼마켓에 갔던 때를 떠올리게 했습니다(중립). 로내이는 학생들을 3명씩 팀을 이루게 했는데, 하이-파워로만 이루어진 팀, 로우-파워로만 이루어진 팀, 세 조건의 학생들이 1명씩 고루 섞인 팀으로 편성했습니다.

각 팀에게 주어진 과제는 문장 만들기 게임이었습니다. 로내이는 팀원들 각자에게 16개의 문자를 주고 그것으로부터 여러 개의 단어를 만들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팀은 5분 동안 팀원들이 각기 만든 단어를 조합하여 가능한 한 많은 수의 문장을 완성해야 했습니다. 이 과제를 수행하려면 팀원들끼리의 상호작용이 필수적이었겠죠? 로내이는 팀 과제를 마친 팀원들에게 각기 혼자서 클립이나 벽돌 같은 물건들을 얼마나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을지 써내라는 개인 과제를 부여했습니다. 이 과제를 수행하는 데에 팀원들의 상호작용은 필요 없었습니다.

어느 팀이 가장 좋은 성과를 냈을까요? 문장 만들기 게임에서 하이-파워로만 이루어진 팀과 로우-파워로만 이루어진 팀에 비해 '고르게 섞인 팀'이 가장 높은 성과를 냈습니다. 통계적인 차이는 없었지만, 하이-파워로만 이루어진 팀은 로우-파워로만 이루어진 팀에 비해 오히려 조금 낮은 성과를 보였죠. 반면 팀원들이 상호의존할 필요가 없었던 두 번째 과제에서는 세 팀 간의 성과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절차적 상호의존도(Procedural interdependency)가 높은 과제의 성과와 생산성은 팀내의 뚜렷한 서열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로내이는 집단의 서열과 구성원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치 사이에 관련성이 매우 높다는 이전 연구에 착안하여 후속실험을 수행했습니다. 테스토스테론은 권력욕과 지배력과 연관이 있는 남성호르몬인데, 인간을 포함한 유인원 집단의 우두머리는 이 호르몬 수치가 일반적으로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로내이는 팀원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준이 모두 높을 때, 모두 낮을 때, 그리고 각기 다를 때, 팀의 성과는 어떻게 달라질지를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측정하는 일은 번거롭기 때문에 로내이는 손가락 중 검지 길이와 약지 길이의 비율을 재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약지보다 검지가 짧을수록 태아 시절에 높은 수준에 테스토스테론에 노출되었음을 뜻한다고 합니다. 로내이는 학생들의 검지 대 약지 비율을 토대로 하이-테스토스테론으로만 이루어진 팀, 로우-테스토스테론으로만 이루어진 팀, 골고루 섞인 팀으로 편성했습니다. 그런 다음, 첫 번째 실험과 동일한 문장 만들기 게임을 과제로 부여했죠. 

그랬더니 역시 팀원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준이 각기 다른 팀의 성과가 가장 좋았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학생들로부터 설문을 기초로 분석하니, 하이-테스토스테론으로만 이루어진 팀에서 팀원들 간의 갈등 수준이 가장 높았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그런 갈등과 충돌이 팀의 생산성과 성과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통계 분석 결과로 분명해졌죠. 

로내이의 연구는 구성원들의 서열 구조가 평등해야 집단의 성과가 높을 거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재고하라고 요구합니다. 물론 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권리는 매우 존중 받아야 하고 그로 인한 장점도 매우 큽니다. 하지만 모두가 리더를 자처하고 나서거나 아무도 리더로 나서려 하지 않을 때 과연 집단의 성과가 제대로 산출될 수 있을까요? 구성원의 참여와 기여가 중요하고 존중 받아야 한다고 해서 조직을 완전히 평등한 서열 구조로 만드는 극단으로 치달을 필요가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됩니다. 권력 구조가 완전히 평등한 조직은 역할의 분화를 촉진하지 못하고, 이견을 통합하지 못하며, 갈등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연구가 서열의 다단계 구조를 지지한다고 오해해서는 곤란합니다. 다단계 서열은 속도를 늦추고 정보의 왜곡을 가져오기 때문에 지양해야 합니다. 집단의 성과가 구성원의 상호의존을 통해 산출될 때 리더와 팔로워가 명확하게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는 점이 이 연구에서 취해야 할 시사점이죠. 집단의 서열 구조를 설계할 때도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미덕이 필요합니다.

알다시피 통합진보당이 끝을 모르는 내홍을 겪고 있습니다. 로내이의 논문을 읽고난 후 자연스레 그들의 사태에 투영해 보게 되더군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참고논문)
The Path to Glory Is Paved With Hierarchy: When Hierarchical Differentiation Increases Group Effectiv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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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보다 나은 2등, 3등이 있다   

2010. 2. 25. 09:00

(어제의 글에서 이어집니다.)

서열을 매길 때 평가자의 평가성향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상사들 중에서도 어떤 사람은 상당히 후하게 평가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고 어떤 사람은 반대로 냉정하게 평가하기도 합니다. 


이론적인 상황이지만, 수행하는 업무도 똑같고 역량수준도 똑같은 사람이 A, B가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1년이 지나면 그들은 똑같은 수준의 성과를 달성할 겁니다.  A의 상사는 후한 평가성향을 지니고 있어 100점을 주었으나, 지나치게 냉정한 B의 상사는 70점을 주는 것에 그쳤다면, 서열상 A는 1등이 되고 B는 꼴찌가 됩니다. 

이 때 인사담당자는 평가자별로 서로 다른 평가성향을 동일한 선에 위치시키고자 무진 애를 씁니다. 그래야 A와 B처럼 능력이 똑같고 실적도 똑같은데 서열 차이가 나는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어떻게든 그 둘을 동률로 만들 수 있는 로직(Logic)이 무엇인지를 궁리합니다. 완벽한 평가조정 방식을 찾으려고 골머리를 앓지요.

완벽한 평가서열을 만들어 내기란 어려울뿐더러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혹시 이 난제를 푼 사람이 있다면 단언컨대 노벨상을 받을 겁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평가서열을 알아내려고 하는 것일까요? 

평가점수나 서열은 참고사항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평가점수 따위는 폐지하고 피평가자의 장단점을 조언하는 형태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면 수긍은 하면서도 여전히 서열 매기기의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릴 때부터 반에서 몇 등이다, 전교 혹은 전국에서 몇 등이다, 라는 식에 너무나 익숙합니다. 예전의 학력고사나 수능시험이 끝나면 누가 수석인지가 최대의 관심사였지요. 그런 관성이 회사 내에서도 그대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제의 글에서 등장한 '어떤 사람'처럼 학력고사 점수를 들먹이는 ‘점수 신봉자’ 수준은 아닐지라도, 서열을 매겨놓고 서열로 사람을 평가하지 못하면 뭔가 불편한 것이 우리나라 사람의 성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역량을 완벽히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평가지표는 존재할 수 없으며 평가자도 완벽히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수용한다면, 인사평가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불완전한 제도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그리고 불완전한 제도로부터 나온 평가결과를 완벽히 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평가조정으로 나온 서열 역시 불완전하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불완전한 서열만을 가지고 사람을 완전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자명해지는 것이 아닌가요?

1등보다 나은 2등과 3등이 있으며, 그들은 불완전한 인사평가의 피해자라면 피해자였지 결코 1등보다 열등한 존재는 아닙니다. "네가 전교에서 25등이니까 더 열심히 하라"는 말보다, "국어와 수학과목이 약하니까 그걸 보완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식의 말을 전달해 줄 수 있도록 인사평가를 운영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주 간단한 것 같지만, 서열을 맹신하면 인사평가가 가야 할 옳은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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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에 고객 중 어떤 사람이 저에게 “학력고사에서 300점 넘으셨나요?” 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 하며 잠깐 멈칫하다가 있는 그대로 “공부를 못해서 못 넘었는데요.” 라고 대꾸했습니다. 그는 “어, 그래요? 의외네요. 전 300점은 넘으신 줄 알았어요.” 라며 보일 듯 말 듯 조소(嘲笑) 섞인 표정을 지었습니다. (학력고사 시절에 300점은 하나의 기준이었음)

그 당시엔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겼으나, 몇 번의 술자리에서 장난스레 필자의 ‘어이없는’ 점수를 들먹거릴 때마다 한대 쥐어박고 싶은 걸 애써 참았지요. “그래, 도대체 당신은 몇 점 받았는데?” 라고 받아치니 그는 인비(人秘)라며 능글능글하게 웃었습니다. 참 개운치 않은 인사(人士)였습니다.

둘 중 무엇이 더 맛있을까요? 서열을 매겨 볼까요?


저는 인사평가 제도를 수립하거나 손질해주는 컨설팅을 수행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인사평가는 무엇을 위해 실시하는지에 관해 자괴감에 가까운 의문이 들 때가 간혹 있지요. 그 이유는 바로 누가 누구보다 낫고 점수는 몇 점이다, 라는 식으로 인사평가가 잘못 활용되고 있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인사평가는 평가라는 도구를 통해 부하직원의 장점과 성과를 북돋아 주고 단점과 흠결을 보완하도록 상사가 조언해주고 이끌어주기 위한 공식적인 의사소통 채널입니다. 상사와 부하직원이 만나 지난 1년 동안의 성과를 뒤돌아보면서 잘한 점과 못한 점이 무엇인지 판단하여 앞으로 1년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논의하는 것이 인사평가가 가진 본래의 목적이죠.

거시적으로 말하면, 인사평가를 통해 직원들이 회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판단하고 조직의 목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이러한 목적을 강조하기 위해 인사평가는 반드시 ‘육성형 평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많은 기업에서 시행되는 평가제도의 관점은 누가 더 점수가 높고 누가 더 낮은지를 측정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육성형 평가가 아니라, 학력고사식 사정형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는 거죠. 평가결과가 나오면, 직원들을 조직이 원하는 방향으로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 보다는, 전 구성원을 1등부터 꼴찌까지 어떻게 서열을 매겨야 하는지에 관해 필요 이상으로 많은 역량과 시간을 집중합니다.

보통 직급 단위로 묶어서 해당 직급별로 평가서열을 매기는 작업을 하는데 그 과정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상당부분 억지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개개인이 수행하는 업무는 서로 다릅니다. 개인별 업무와 목표에 따라 평가받는 지표도 상이합니다. 또한 평가하는 상사도 다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상황에서 나온 평가결과들을 한 통에 집어넣어 서열을 매기려면 그때부터 인사담당자는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 다른 상황들을 일일이 감안하여 오직 하나의 서열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죠.

동일한 역량과 성과를 보이는 사람은 동일한 서열에 위치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인사담당자는 평가서열을 매기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평가 받은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 제각각이므로 결코 동일한 양과 질의 역량과 성과를 나타낼 수가 없습니다. 평가자의 평가성향이 관대한지 아니면 가혹한지의 여부는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개개인의 업무와 평가 받는 지표부터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역량과 성과를 측정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수학 과목에서 90점 받은 사람과 B가 영어 과목에서 90점 받은 사람을 같은 등위로 본다면 누가 동의하겠습니까? 지난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우리가 금, 은, 동메달을 각각 하나씩 획득하여 종합 6위에 랭크됐습니다. 하지만 종합순위 몇 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동계올림픽 종목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입니다.

쇼트트랙 금메달과 이름도 생소한 바이애슬론 금메달을 동일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올림픽 종합순위는 여론이 만들어 낸 것이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사담당자들은 어쩌면 올림픽 종합순위와 같이 별 의미 없는 서열을 만들려고 애쓰는 건 아닐까요?

1등보다 나은 2등과 3등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To be continued....내일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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