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다니는 회사가 '비즈니스 위크', '포브스', '포츈'과 같은 유명한 경영 잡지에 커버 스토리를 장식하며 성공기업으로 소개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회사에 아주 불만이 크지 않는 한, '우리 회사가 이렇게 유명해지다니!' 하며 자부심을 느낄 겁니다. 하지만, 회사 성과가 급격히 악화되었다든지 회계 부정과 같은 스캔들에 연루됐다든지 등과 같은 이유로 잡지 표지를 장식한다면 주위에서 '너네 회사 괜찮냐? 망하는 건 아니냐?'란 말을 듣겠거니 하면서 우울할 겁니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유명 잡지의 1면에 오르는 영광(혹은 불명예)을 반대로 생각하라는 속설이 있습니다. 커버 스토리에 오른다는 것이 기업의 향후 성과를 '반대로' 알려주는 지표라는 인식이 존재합니다. 즉 '성공기업으로 1면에 오르고 나면 이후의 성과는 추락한다', '불명예스럽게 1면에 오른 이후에는 성과가 올라가거나 적어도 더 이상 추락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유명 잡지의 표지에 어떤 기업이 어떤 이유로 올라가느냐를 보고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죠. 주식 투자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아마 이런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이런 속설이 과연 옳을까요? 이런 신화(myth)같은 믿음이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을까요?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몬드 대학에 근무하는 3명의 교수(톰 아놀드, 존 얼, 데이비드 노스)는 이 속설을 통계적으로 검증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1983년부터 2002년까지 비즈니스 위크, 포브스, 포츈 지의 1면에 오른 기업들(모두 549개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먼저 그 기업들을 성공과 실패의 정도에 따라 5개의 카테고리로 나눈 다음, 커버 스토리로 소개된 시점으로부터 전, 후 2년 간(총 4년 간) 주식시장에서의 성과를 따져 봤습니다.

그랬더니 2가지 현상이 발견됐습니다. 그 중 하나는 '극적인 성과를 달성하거나 반대로 최악의 성과를 기록한 이후에 경영 잡지의 표지에 등장한다'라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당연하겠죠. 경영 잡지들은 뉴스 거리가 될 만한 극적인 사례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발견한 두 번째 현상은 '경영 잡지의 표지에 등장했다는 것이 극적인 성과(반대로 최악의 성과)가 이제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이다'라는 것입니다. 톰 아놀드 등은 성공기업으로 소개된 이후의 성과는 보잘 것 없거나 추락하고, 실패기업으로 낙인 찍힌 이후에는 극적인 상승은 아니지만 서서히 성과가 나아졌음을 통계로 보여줬습니다.

이로써 증권가에서 떠돌던 속설이 어느 정도는 타당성이 있음이 실제로 밝혀졌죠. 만약 성과가 추락하는 기업의 주식을 언제 팔아치워야 하는지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그 기업이 불명예스럽게 경영 잡지의 표지에 등장했다면 이제 바닥을 쳤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게 좋다고 연구자들은 말합니다. 좀더 기다렸다가 주가가 오를 때 파는 게 낫다는 조언이겠죠.

그런데 왜 경영 잡지의 1면에 오른다는 것이 미래 성과를 '반대로' 가리키는 지표가 되는 걸까요? 왜 극적인 성공 후엔 추락이, 한없는 추락 후엔 비상(飛上)이 있는 걸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에는 기업 구성원들의 심리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성공이 자만을 불러일으킨다는 '성공의 저주', 그리고 실패하고 나서야 무엇을 어떻게 할지 알게 된다는 '실패의 쓴 약'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2004년에 '순이익 100억 달러 클럽'에 가입하고 난 직후 순이익은 다시 100억 달러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현대자동차는 미국 시장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기업으로 소개되자마자 요즘 주춤한 상태입니다. 작년과 재작년에 구글과 관련된 책들이 봇물처럼 나오더니 요즘 구글은 페이스북에 밀리는 형국입니다. 요새 주목 받는 페이스북도 언제 추락할지 아무도 모르죠.

극적인 성공은 독약과도 같습니다. 성공에 자만하지 않고 늘 새로운 기회를 찾아나서는 일. 이것이 성공의 저주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또한 실패했다고 절망하지 말고 실패를 도약의 기회로 삼는 것이 실패로부터 빨리 빠져나오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진부한 조언이지만 이 말만큼 진리인 것도 없습니다.

(*참고논문 :http://www.cfapubs.org/doi/pdf/10.2469/faj.v63.n2.4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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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더 나은 실패'를 위해   

2010. 12. 16. 09:00



어떤 학생에게 배리 매닐로가 그려져 있어 보기에 민망한 티셔츠를 입게 한 후에 다른 학생들이 모인 강의실에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이 실험을 진행한 길로비치는 적어도 50%의 학생들이 그 학생이 입은 티셔츠를 알아볼 거라고 추정했죠. 그러나 겨우 23%의 학생들만이 그 티셔츠를 알아차렸습니다. 여러 종류의 티셔츠(남루한 것, 촌스러운 것 등)를 가지고 실험해도 결과는 비슷했습니다.
 
타인은 여러분의 결점에 별 관심이 없거나, 관심을 가져도 금방 잊어 버린다는 점을 실험 결과가 말해줍니다. 타인은 여러분의 실패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통 크고 작은 실패를 겪을 때마다 '잘 할 수 있었는데 난 왜 이리 못낳을까?'라며 자신을 꾸짖습니다. 이런 자책이 더욱 괴로운 이유는 자신의 실패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입니다. 실패에 대한 반성과 자책이 자신에게서 끝나면 좋으련만,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를 상상하기 때문에 패배감에 젖고 말죠.


여러분은 실패라는 말을 떠올릴 때 어떤 이미지가 그려집니까? '실패는 곧 좌절', 이런 이미지는 아닙니까?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희곡을 쓴 사무엘 베케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또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더 세련되게 실패했다." 실패는 성공이 좌절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좀더 세련되게 만드는 방법을 깨달아가는 과정이고 기회라는 뜻입니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해럴드 크로토는 "열 번의 실험 중에 아홉 번을 실패했다면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아주 좋은 기록이다"라고 말하며 실패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라고 충고합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완벽을 고집하면, 성공에 거의 다다랐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그 언저리에서 중단하고 만다는 의미가 숨어있는 말입니다.

실패는 오로지 초라한 것이고 성공은 영광스러운 것일까요? 이탈리아의 리빙 용품 제조사인 알레시의 CEO 알베르토 알레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매년 출시하는 제품 중에 실패한 것이 1건도 없을까봐 걱정스럽다." 그는 모든 성공이 실패한 경험과 환경에서 나온다는 것을 일러줍니다. 실패는 성공은 언제나 함께 가는 쌍둥이라는 뜻입니다.

작가 매들린 랭글은 실패에 대해 말할 때 성공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시간의 주름'이라는 대표작을 출판하기까지 2년 반 동안 수많은 출판사로부터 거절 통보를 받는 수모를 겪었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실패의 의미를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실패가 허락된 유일한 창조물이다. 만일 개미가 그랬다면 죽음 뿐이다. 우리는 실수와 실패를 통해 배우도록 허락됐다. 만일 마음 놓고 실패할 수 없다면 새로운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실패는 그것으로부터 배우며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만드는 힘이지, 성공하기 위해 쓰고 버리는 1회용 젓가락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부실한 계획, 모자란 능력, 게으름과 낮은 집중력 등과 같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한계라고 인식하고 분석하면 오히려 실패의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 있습니다. 그냥 주저앉아 실패의 고통에 매몰된다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라 성공의 장애물이 됩니다.

실패에 보다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실패를 '성공을 위한 실패'가 아니라 '더 나은 실패'라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성공과 실패를 별개의 개념으로 떨어뜨려 놓는 것이죠. '이번에도 실패했군. 그렇지만 저번 실패보다는 조금 나아졌다'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2010년에 여러분은 실패를 경험했습니까? 그렇다면 2011년엔 '더 나은 실패'를 향해 달려 나가십시오. 성공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실패를 뜻하는 다른 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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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유명인들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성공 스토리'를 트위터에 올려봤습니다. 140자라는 한계 때문에 축약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단편적으로 정리된 것이지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제가 그린 그림입니다. ^^;)


01. 에드윈 번스는 에디슨과 같이 사업을 하겠다는 꿈이 있었다. 낮은 임금으로 에디슨 밑에서 일한 그는 축음기 영업을 다른 사람들이 꺼려하자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다. 결과는 대성공. 명확한 목표와 포기하지 않는 결의가 성공의 힘.

02. R.U.더비는 금광사업에 뛰어들었다. 한참 파도 금이 없자 실망하고 장비를 팔았다. 장비를 산 고물상은 시험삼아 더 파봤다. 불과 91Cm 아래 엄청난 금맥이 발견됐다. 더비는 포기하지 말자는 교훈을 얻고 보험영업인으로 성공했다. 

03. 조르주 팡반은 1차대전때 남들이 풀지못하겠다던 독일의 암호문 해독을 맡았다. 독일군이 파리 입성 직전였다. 일주일후 15kg이나 빠졌지만 결국 해독했다. 성공을 확신하고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후에 거대 화학기업의 CEO가 된다. 

04.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는 경영수완은 좋았지만, 글자를 잘 몰랐고 연설 솜씨도 최악이었다. 그는 자신의 약점을 깨닫고 "내 대신 이야기할 인재를 고용하시오"라고 했다. 강점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05. O.헨리는 공금횡령으로 감옥살이를 했다. 수감된 상태서 그는 반강제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우울한 시간 동안 자신이 위대한 작가가 될 것임을 자각했다. 궁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이용한 셈이다. 

06. 펜퍼튼은 자신이 만든 강장제를 코카콜라라는 이름으로 약국에서 판매했지만 파리만 날리자 아서 켄들러에게 사업을 팔았다. 켄들러는 약이 아니라 청량음료로 팔아서 큰 성공을 거뒀다. 상상력이 성공의 원천이었다. 

07. 제임스 힐은 대륙횡단철도를 건설하려다가 자금조달 문제로 실패했다. 하지만 그는 그 실패를 '일시적인 것'이라 여겼다. 그는 새로운 계획을 세워 다시 추진해 끝내 성공을 이뤘다. 실패는 '한 번 더 해보라'는 뜻. 

08. 패니 허스트는 작가가 되려고 뉴욕에 왔다. 그녀는 원고를 보냈지만 수십통의 거절편지를 받았다. 4년을 출판사를 왔다갔다 하며 포기하지 않았다. 출판사는 사실 그녀를 테스트중이었다. 그녀의 작품은 영화로 성공했다. 절대 포기하지 말자. 

09. 영화배우 마리 드레슬러는 대공황 때 파산했다. 그때가 60살이었다. 그녀는 꿈을 포기할 나이에도 불구하고 인내심을 발휘했다. 그녀는 62살때 'Min and Bill' 이란 영화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함을 증명했다. 

10. 나폴레온 힐은 수중에 35달러밖에 없었지만 1박에 25달러짜리 최고급 호텔에 묵기로 했다. 싼곳에서 숙박하면 출판사와의 협상에 불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그에게 최고급 대우를 해주겠다고 계약했다. 자존감이 중요하다. 

11.가게도 망하고 측량기사 직업도 잃었다. 대장까지 올랐다가 졸병으로 불명예제대했다. 유전병으로 얼굴이 이상하게 변하고 약혼녀는 병으로 죽었다. 변호사 일도 별볼일 없었다. 정치에 입문했다가 수차례 낙선했다.그는 에이브러험 링컨이다. 

12.토마스 에디슨은 어릴 적 사고로 청력장애가 있었다. 그는 "귀가 안 들리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 쓸데없는 수다를 안 들어서 좋고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약점을 장점으로 바꿔 인식할 줄 알았다. 

13.라이너스 폴링은 60회 생일 파티에서 한 학생이 좋은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을 질문했다. 그는 "많이 생각하고 그 중에 나쁜 걸 버리게"라고 조언했다. 폴링은 노벨화학상과 노벨평화상을 받은 위대한 과학자였다. 

14. 모토롤라 창업자인 폴 갤빈의 아들 로버트 갤빈은 모토롤라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킨 경영자였다. 그는 아버지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다른 지원자와 같이 3시간을 기다렸다가 면접을 했다.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자. 

15. 앤드루 와일즈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했다고 발표했지만 오류가 발견됐다. 그를 칭송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비난에 가세했다. 와일즈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결국 오류를 수정하고 증명을 완료했다. 좋은 친구가 성공의 필요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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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다   

2008. 7. 10. 12:32

우리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흔히 말한다. 또 '실패를 성공의 기회로 생각하라'고 여러 현자들은 이야기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이 말들을 각각 열 번씩 되뇌어 보라. 실패와 성공 중에 어떤 단어에 힘이 들어가는가? 아마 성공에 악센트를 두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런 말들이 은연 중에 풍기는 뉘앙스로 볼 때, 의도와는 달리 실패 자체보다는 성공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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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베케트 (출처 : 네이버)

이 격언들 때문에 저 높은 곳에 자리잡은 성공의 모습이 자동적으로 연상된다면 우리는 더 초라해지고 괴로울 수밖에 없다. '성공을 위한 실패'를 강조하는 이런 충고들은 '성공의 반대말이 실패'임을 더 각인시키고 성공과 실패 사이의 괴리를 더욱 크게 느끼도록 만든다. '그것을 달성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실패했구나. 언제쯤 그걸 이룰 수 있을까?'란 생각 때문에 절망감만 더욱 키운다.

실패에 보다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실패를 '성공을 위한 실패'가 아니라 '더 나은 실패'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를 별개의 개념으로 떨어뜨려 놓는 것이다. '이번에도 실패했군. 그렇지만 저번 실패보다는 조금 나아졌으니 괜찮아'라고 생각하며 다음에는 지금의 실패보다 '더 나은 실패'를 위해 달려나가는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희곡을 쓴 사무엘 베케트가 "또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더 세련되게 실패했다"라고 말했던가? 실패는 성공이 좌절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좀더 세련되게 만들어가는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실패 = 인생을 좀더 세련되도록 만드는 과정


성공은 온 힘을 다해 추구해야 할 숭고한 가치는 결코 아니다. 어제의 실패가 어제보다 나은 방법으로 오늘을 대하도록 하고, 오늘의 실패가 오늘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내일을 만들어 가도록 이끌면, 그 과정에서 성공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실패하는 과정 중에 성공이라는 단어가 끼어들기 시작하면 실패는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일종의 죄처럼 느껴지고 그토록 원하는 성공의 언저리에서 무너지고 만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해럴드 크로토(Harold Kroto)는 "열 번의 실험 중에 아홉 번을 실패했다면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아주 좋은 기록이다"라고 말하며 실패를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라고 충고한다. 그의 말 속에는 실패를 죄악으로 간주해서 실패하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완벽을 고집하면 성공에 거의 다다랐음에도 그 근처에서 스스로를 좌절케 만들 뿐이라는 숨겨진 의미가 담겨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하면서 성공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 실패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보다 건설적인 사고 방식이다. 이탈리아의 리빙 용품 제조사인 알레시(ALESSI)의 CEO 알베르토 알레시(Alberto Alessi)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매년 출시하는 제품 중에 실패한 것이 1건도 없을까봐 걱정스럽다." 그는 모든 성공은 실패한 경험과 환경에서 나옴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다. 실패는 초라하고 성공은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라, 실패는 성공은 얼굴과 행동이 똑같은 쌍둥이다.

작가 매들린 랭글은 실패에 대해 말할 때 성공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녀는 '시간의 주름'이라는 대표작을 출판하기까지 2년 반 동안 수많은 출판사로부터 거절 통보를 받는 수모를 겪었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았다. 그녀는 인생에서 얻은 실패의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실패가 허락된 유일한 창조물이다. 만일 개미가 그랬다면 죽음 뿐이다. 우리는 실수와 실패를 통해 배우도록 허락됐다. 만일 마음 놓고 실패할 수 없다면 새로운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실패는 우리로 하여금 배우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도록 만드는 힘이지, 성공하기 위해 쓰고 버리는 1회용 젓가락이 아니다.

당신이 만일 실패를 했다면 그것 때문에 낙담하고 괴로울지 모르겠다. '잘 할 수 있었는데 난 왜 이리 못낳을까?'라며 자신을 꾸짖는다. 이런 자책이 더욱 괴로운 이유는 자신의 실패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이다. 실패에 대한 반성과 자책이 자신에게서 끝나면 좋으련만,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더 바보인 것처럼 느껴지고 패배감에 젖고 만다. 이 또한 실패와 성공을 한묶음으로 연상하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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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매닐로


하지만 당신은 타인의 눈을 의식할 이유가 전혀 없다. 토머스 길로비치를 포함한 3명의 심리학자들은 코넬 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런 실험을 진행했다. 어떤 학생에게 배리 매닐로가 그려져 있어 보기에 민망한 티셔츠를 입게 한 후에 다른 학생들이 모인 강의실에 들어가도록 했다. 길로비치 등은 적어도 50%의 학생들이 그 학생이 입은 티셔츠를 알아볼 거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겨우 23%의 학생들만이 그 티셔츠에 주목한 것이다. 여러 종류의 티셔츠(남루한 것, 촌스러운 것 등)를 가지고 실험해도 결과는 비슷했다.
 
짐작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은 당신의 실패에는 별 관심이 없거나, 있어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고 금방 잊어 버린다는 점을 실험 결과가 말해 준다. 실수로부터 뭔가를 배우기보다 남들의 시선 때문에 자기혐오의 철창 안에 갇히는 것은 매우 슬픈 비극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초연해진다면, 실패로 인한 고통과 패배감은 쉽게 떨쳐 버릴 수 있다.

이러한 자기혐오에서 벗어나려면 타인의 시선에 뻔뻔해지고, 실패를 과거의 일로 정리해야 한다. 그냥 잊어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10년 전 일기를 들여다 보듯 그것을 관찰하고 분석하라는 의미다. 그러면 실패란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만드는 지표가 되고 자신이 좀더 세련되도록 일러주는 지침이 된다.

당신에게는 부실한 계획, 모자란 능력, 게으름과 낮은 집중력 등과 같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당신의 한계라고 인식하고 분석하는 순간 오히려 실패의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 있으며 힘을 축적할 수 있다. 그냥 주저앉아 실패의 고통에 매몰된다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라 성공의 장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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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뮤지컬 영화에서 독보적인 두각을 나타냈던 전설적인 영화배우 프레드 아스테어(Fred Astaire)가 신인 시절 1928년에 한 영화사가 실시한 카메라 테스트에서 이런 평가를 받았다. "연기도 꽝, 노래도 꽝! 살짝 대머리!" 우리에게 마릴린 먼로로 알려져 있는 노르마 진 베이커는 1944년에 모델이 되기 위해 블루 북 모델 에이전시에서 오디션을 봤는데 "비서 일을 찾아 보든지, 일찌감치 시집이나 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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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 아스테어

우리 이야기를 해보자. 당신이 멋진 아이디어를 보고서로 꾸며서 상사에게 보고를 하는데, 그가 보고서 앞부분에 있는 개요만 읽어보거나, 설명을 하는데 잘 듣지 않고 엉뚱한 페이지만 넘겨 보면서 '다 알겠다'는 표정을 진 적은 없었는가? 그가 "집어 쳐"라며 아이디어의 우수함을 칭찬하기보다는 그것이 미숙하고 불완전하다며 문제점만 잔뜩 늘어 놓은 적은 없었는가?

만일 상사가 당신을 그렇게 대했다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절망하여 몇날 며칠을 우울하게 보내면서 참담한 기분일 것이다. '진짜 내가 능력이 없는 걸까? 내가 이 회사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까?'라며 인생에 대한 회의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좌절과 절망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면접관의 환상'을 모욕의 그 순간에 기억해 낸다면 말이다. 상사나 면접관의 위치에 서면 지원자(혹은 부하직원)들이 앞으로 일을 잘 할지 못 할지를 평가하는 능력에 지나친 자신감을 가진다. 여러 차례 실시된 심리 실험에 의하면, 면접관(혹은 상사)들은 '사람 보는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들은 지원자가 면접하는 동안에 보인 행동과 말을 마치 그 사람이 나중에 보일 능력인 것처럼 확대 해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식의 자신감을 보인다. 면접관 자신의 편견이나 컨디션에 따라 상대방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혹은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평가 내리기도 하고, 지원자의 말 실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그들은 능력보다는 자신들의 편견에 따라 사람을 뽑는 오류를 종종 범한다.

신문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사람 보는 눈'을 자신하는 경영자들이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눈이 진짜 좋은 것이 아니라, 그가 위치한 '높은 자리와 경력'이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좋게 평가해도, 그들의 '눈'은 다른 사람들의 평균보다 조금 나은 수준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사람 잘 본다고 자신하는 사람도 충분히 실수를 저지른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당신은 실패자야' 혹은 '실패하고 말 거야'라는 말을 들을 때, 그사람의 지위나 전문성이 높을수록 그런 평가를 더 잘 받아들이는 실수를 또한 저지른다.

자신감이란, 다른 사람이 나에게 보낸 실패 메시지(진심 어린 조언이나 충고가 아닌)를 거부하는 것이다. 나의 성공과 실패는 내가 만드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규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 바로 자신감이다.

자신감 = 실패 메시지를 거부하는 것

나에게 '실패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누구이든, 실패 메시지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의 의견은 틀릴 가능성이 높다. 내가 꿈을 위해 처음부터 지금까지 노력한 과정을 알지 못하는 한, 그는 단편만을 보고 나의 전부를 판단한다. 불완전한 '사람 보는 능력'에 인생을 걸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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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

프레드나 마릴린이 면접관들에게 들은 것은 "당신들은 실패자들이니, 여기 얼씬도 하지 마시요"라고 말하는 실패의 메세지였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의 메시지를 무시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꿈을 성취하여 영화사(史)의 아이콘으로 당당히 빛나고 있지 않은가?

작건 크건, 모든 실패 메시지는 수신해서는 안 된다. 성공과 실패의 여부는 다른 사람이 규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니까. 당신은 다른 사람에 의해 결코 실패자가 될 수 없다. '나의 실패는 오직 나만이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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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여, 이제 그만 포기하자   

2008. 6. 26. 18:43

포기하지 않는 삶은 아름답다. 어떠한 위기와 시련이 찾아와도 반드시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마침내 성공을 일궈내는 사람들은 우리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역사를 아름답게 수놓는 많은 위업들은 포기하지 않으려는 자가 흘린 피와 땀의 결과다.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 ‘최후의 심판’을 보고 있노라면 극심한 통증을 이겨낸 미켈란젤로의 숭고한 열정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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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심판' (C)유정식


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때때로 우리를 곤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스스로를 속이고 있을 때 그렇다.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상대성 원리는 두 개로 나뉜다. 특수상대성 원리는 1905년에 완성을 했으나, 일반상대성 원리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15년에야 비밀이 풀렸다. 일반상대성 원리를 발견하려고 노력했던 10년 간의 기간은 그에게 있어 매우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물리학은 수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므로 물리학적 발견은 수학의 기반 위에서 성립한다. 그가 10년 간의 학문적 시련에 휩싸인 이유는 수학을 멀리 하고 물리학의 기본 원리에 대한 자신의 본능적인 직관을 지나치게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는 수학식이 아니라 가상의 스토리를 통해 문제를 풀던(이를 '사고실험'이라고 함), 독창적인 사람이었기에 자신의 방법을 쉽게 포기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일반상대성 원리를 향한 수년 간의 실패 끝에 자신이 붙잡고 놓지 않았던 직관을 폐기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물리학적 전략을 버리고 수학적 전략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때가 1915년 10월이었고, 그 후로 겨우 한 달 만에 일반상대성 원리는 드디어 얼굴을 드러냈다. 포기하자마자 성공에 다다른 것이다. 스스로를 기만하는 사고체계를 과감히 탈피해 ‘생각의 자유’를 회복함으로써 위대한 업적을 이뤘다.

포기 = 자기기만으로부터의 자유


인생에 있어 의미 있는 포기란, 자기기만(自己欺瞞)을 버리고 자유를 찾는 것이다. 자신이 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을 때가 분명 있다. 손에 닿을락말락 조금만 더 하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매번 좌절하고 마는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신념과 편견이 무엇인지 성찰해 본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의미 있는 포기란, 목표에 다가가려는 자신의 등에 업혀 있는 거짓신념, 고정관념, 편견을 하나씩 끌어 내리는 것이다.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자신을 짓누르는 모든 걸 다 가지고 가려 한다면 목표는 늘 안개 속에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

때론 목표 자체를 포기할 용기가 필요하다. 1854년에 고트프리트 켈러(Gottfried Keller)가 쓴 자전적 소설 ‘녹색의 하인리히’는 잘못된 길에 들어선 사람의 삶이 쓸쓸히 몰락하는 과정을 날카롭게 다룬다. 누명을 쓰고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그는 화가로 살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화가로서의 재능이 부족함을 깨닫는다. 캔버스 앞에 앉아서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는 때가 많았고 힘겹게 그린 그림은 일반인들도 충분히 그려내는 평범한 수준에 불과했다. 그는 절망하며 화가로서의 꿈을 접으려 한다.

그러나 그를 막은 것은 “처음엔 누구나 그래. 조그만 더 열심히 하면 돼” 라며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주변의 격려였다. 하인리히의 어머니는 미술상에게 아들을 맡기면서 재능을 키울 것을 독려했다. 수업료나 챙길 요량이었던 미술상은 그림의 기초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그려 온 하인리히의 그림을 보면서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했다.

그는 능력의 한계를 잘 알면서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는 남들의 조언에 보답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그는 좌절하려는 마음이 들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속이는 말로 다짐을 한다. ‘그래, 이렇게 열심히 하면 언젠가 성공할 수 있을 거야’ 그는 자신이 뛰어난 화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자기기만의 말로 인생 전체를 기만하고 말았다.

어머니가 보내 주는 돈으로 근근이 생활하며 빚더미에 허덕이던 그가 잘못을 깨닫고 화가의 길을 포기하려고 했을 때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뒤였다.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 있었다. 그는 어떤 결단도 내리지 못하고 절망하고 만다. 하인리히는 재능 없는 화가로서 많은 세월을 허송하다가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와 조그만 관리직을 수행하던 중 쓸쓸히 사망한다.

내게는 10년 가까이 사법고시에 매달려 있는 친구가 있다. 될듯될듯 하면서 낙방할 때마다 더 열심히 하면 될 거야, 라며 상투적인 조언을 하는 내가 어쩌면 그를 절벽으로 내모는 건 아닌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곤 한다. 내가 용기 있는 조언자라면, “그 정도면 충분해. 더 이상 네 자신을 속이지 말고 포기하렴. 다른 길이 있을 거야” 라고 말해 줘야 옳다. 하지만 나나 그 친구나 선뜻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매몰비용(sunk cost)의 오류’ 때문이다.

이 말은 잘못된 결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미 너무나 많은 비용이 손실돼서 포기하기 어렵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더 많은 돈을 투자하는 걸 일컫는다. 도박으로 많은 돈을 잃은 사람이 쉽게 도박판을 빠져 나오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 자기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면 말이다. 눈과 귀를 가리고 입을 막아 버리는 자기기만으로부터의 해방이 목표에 한발자국 더 다가가게 하기 때문이다. 버거운 거짓목표를 버리고 새로운 목표를 찾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도박판을 정리하고 나오려면 본전을 회복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과감히 발길을 끊어야 한다.

선택을 잘 하려면 포기를 ‘잘’ 하는 것이다. 매몰비용 따위는 잊어라. 목표가 없는 삶보다 허황된 목표에 돌진하는 사람이 더 불행하다.  포기한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하루를 살더라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떳떳한 삶이 의미 있는 건 아니겠는가? 진정한 포기는 비겁함이 아니라 삶을 개척해 나가는 용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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