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공짜가 아니다   

2011. 6. 17. 09:40



'피플 익스프레스'라는 항공사를 아십니까? 이 항공사는 1981년에 사업을 시작한 회사인데, 사우스웨스트 항공과 비슷하게 '저가 항공'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었죠. 헌데 피플 익스프레스는 엄청난 성장가도를 달리다가 1987년에 허망하게 무너져 텍사스 항공에 합병되고 말았습니다. 반면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거의 모든 경영서에서 성공기업으로 일컬을 만큼 우량한 항공사로 아직까지 건재하죠. 피플 익스프레스는 사우스웨스트 항공과 마찬가지로 허브 공항이 아니라 지방에 거점을 두면서 항공기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전략, 즉 항공기가 땅에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기내식도 돈을 내야만 제공했죠.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허브 캘러허를 모방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 회사의 CEO였던 도널드 버(Donald Burr)는  인간 중심의 경영 철학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회사 이름에도 '피플'이란 말을 넣었죠. 고위 임원들이라고 해서 특전을 누리지 못하게 했고, 직원들에게 고용의 안정성과 개인 생활, 그리고 타사보다 높은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이렇게 피플 익스프레스는 사업 초기에는 철저하게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모방(좋게 말해서 벤치마킹)했는데, 그래서인지 한때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능가하는 성과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과 거의 같은 경영철학을 취했기 때문에 두 회사의 성과 역시 비슷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한가지 중요한 차이가 두 회사 사이에 존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중함'의 차이였습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신규 노선에 취항할 것인지를 결정할 때 매우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내렸습니다. 신중함이 지나쳐 매우 보수적으로 보였죠.

신규 노선이 돈이 된다는 판단이 들어도 신규 노선의 추가 운항이 기존 노선 운항의 '질'에 미칠 영향을 꼼꼼하게 따졌습니다. 또한 신규 노선을 위해 비행기를 추가로 구입해야 하고 그만큼 인력을 충원해야 하는데, 나중에 항공 수요가 하락한다면 '놀게 될 인력'이 부담으로 다가오리라고 생각했죠.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정리해고에 매우 신중한 기업이었기에 투자에 있어서 보수적인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반면에 피플 익스프레스는 잘 나가기 시작하면서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피플 익스프레스는 설립된 지 3년 만에 1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는 굉장한 성장이었습니다. 성장에 고무된 경영진은 항공기의 종류를 다양화하기로 했습니다. 원래 피플 익스프레스는 정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본따 보잉 737 기종만 운영했지만, 고객의 여러 니즈를 만족시킨다는 미명 하에 보잉 747(대형)과 보잉 727(소형)을 도입했습니다. 또한 지방 공항에만 취항한다는 초기의 원칙을 깨고 주류 항공사가 취항하는 주요 도시로 노선을 확대했죠. 잘 나가다 보니 대형 항공사와 맞짱을 뜨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돈이 많이 들어오면 의례 그렇듯이 피플 익스프레스의 경영진은 사세를 확장하고픈 유혹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지역에 기반하고 있던 소형 항공사들을 마구 인수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서로 문화가 다르고 시스템이 다른 항공사를 인수했으니 통합이 잘 이루어질 리가 없습니다. 
인력도 모자라서 되는 대로 사람들을 뽑았습니다. 그러니 여기저기서 서비스에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었죠. 수화물 분실률도 높고 정시 출발률은 최악이었습니다. 낮은 항공요금 밖에는 고객을 유인할 요소가 없었지만, 자금사정이 악화되어 항공요금을 인상하고 나서는 고객으로부터 철저히 외면 당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회사가 설립된지 근 7년 만에 다른 항공사로 흡수되어 사라졌죠.

피플 익스프레스의 사례로부터 우리는 3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첫 번째는 성공한 회사로부터 시스템이나 제도를 벤치마킹할 수는 있지만 그 회사의 문화까지 닮는 것은 아주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도널드 버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모든 시스템을 카피했지만 그 항공사 저변에 깔린 인간 존중의 문화, 평등한 의사소통의 문화, 신중한 의사결정의 문화 등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독선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인물이라고 평가 받는 그는 입으로만 직원 우선주의를 외쳤을 뿐 실제로는 직원들이 과중안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당연하고 그로 인해 문제가 생기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왜 똑같이 했는데도 그 회사는 잘 되고 우리 회사는 이 모양일까?"  당연한 일입니다. 전략은 카피할 수 있지만 전략을 실행하는 문화는 카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교훈은 신중하고 보수적인 의사결정이 공격적이고 과감한 의사결정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뜸을 들이는 경영자나 기업을 우리는 용기가 없는 기업이라고 조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업이 성장가도를 달릴 때 신중한 의사결정의 가치는 빛을 발합니다. 들떠있을 때 실수하기 딱 좋은 법입니다.

이때 신중한 의사결정의 문화는 실수하지 않으려면 진중하게 다시 생각하라며 사람들을 자리에 앉히죠. 우리가 조롱해야 할 기업은 입으로는 의사결정을 재고하자고 말해놓고서 그 사안을 안 보이는 곳에 밀쳐두고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기업입니다. 진짜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회사는 보수적이고 겁쟁이라고 욕을 먹을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경영진들은 그런 소리를 듣는다고 조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세 번째 교훈은 이미 언급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성공은 곧이어 다가올 추락을 경고한다는 것입니다. 
잘 나갈 때 마구 사들이고 채용한 물적, 인적 자원들은 나중에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이른바 '성장의 저주'입니다. 지난 번에 올린 포스팅('성공은 독약이고 실패는 도약이다')에서 말했듯이, 유명 잡지에 표지에 오른 회사들이 몇 년 안에 하락의 길을 걷는다는 통계만 봐도 잘 나갈 때 신중하고 조심해야 함을 알게 됩니다.       

피플 익스프레스는 정말로 '익스프레스'하게 떴다가 '익스프레스'하게 사라졌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있는데, 성공 역시 공짜는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성공은 갑작스러운 몰락으로 갚게 되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신중하고 중심을 지키려는 경영의 마인드를 굳게 견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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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저주'를 조심하세요   

2011. 4. 13. 09:00



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 실험에서 약방의 감초 격으로 자주 등장하는 실험 중 하나가 바로 '최후통첩게임'입니다. 워낙 유명한 게임이라서 많은 분들이 알고 있겠지만 짧게 설명하면 게임 방식은 이렇습니다. 이 게임에는 두 사람의 참가자가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제안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수락자의 역할을 맡습니다. 실험진행자는 제안자에서 10 달러(금액은 달라질 수 있음)를 주고 그것을 수락자와 나누라고 합니다. 이때 나누는 비율은 제안자가 알아서 정하게 됩니다. 자기가 7달러를 갖고 나머지 3달러를 수락자에게 줄 수 있죠. 극단적으로는 자기가 9.9달러를 갖고 0.1달러만 수락자에게 제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기적으로 결정하면 문제가 있습니다. 수락자는 제안자의 제안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이죠. 만일 수락자가 거부하면 제안자와 수락자 모두 돈을 한푼도 받아가지 못하죠. 그래서 제안자는 수락자가 거부하지 않을 정도로 돈을 제안해야 합니다.



최후통첩게임은 원래 인간이 비이성적인 측면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실험으로 유명합니다. 수락자는 제안자가 10달러 중에서 0.1달러만 주겠다고 하면 대개 제안을 거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주류 경제학에서 가정했듯이 인간이 합리적이라면 1달러라도 받아가는 게 옳겠지만 ,자신에게 부당한 제안을 했다는 이유로 제안자까지 돈을 받아가지 못하도록 응징을 합니다. 자신의 돈을 포기하면서 말입니다. 제안자도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최후통첩게임에서는 돈의 배분 비율이 제안자 3, 수락자 2 정도로 수렴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헌데 댄 애리얼리와 에듀아르도 안드라데는 최후통첩게임을 변형하여 인간의 다른 측면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충동적인 의사결정이 나중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가 그들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들은 수락자들을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눈 다음, 첫 번째 그룹에게는 '라이프 애즈 어 하우스'란 영화를 보여줬습니다.  저도 이 영화를 본 적이 있지요. 그 영화는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영화 초기에는 평생을 일한 건축설계회사에서 부당하게 쫓겨난 주인공이 자신이 애써 만든 모형을 부수워 버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수락자들에게는 바로 이 부분을 보여줬습니다. 수락자의 가슴 속엔 분노의 감정이 일어났겠죠? 두 번째 그룹의 수락자들에게는 시트콤 '프렌즈'의 한 에피소드를 보여줬습니다. 알다시피 이 시트콤은 코믹하기 때문에 수락자들은 시청하는 내내 웃으면서 즐거워 했습니다.

이렇게 수락자의 감정 조건을 달리한 다음, 애리얼리와 안드라데는 자신들이 제안자가 되어 수락자들에게 10달러를 7.5 대 2.5로 나누자고 각각 제안했습니다. 그랬더니, '라이프 애즈 어 하우스'를 본 수락자들이 '프렌즈'를 본 수락자보다 제안을 더 많이 거부하는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영화 때문에 생겨난 불쾌한 감정이 제안자의 불공평한 제안에 대한 응징으로 이어진 것이죠. 영화와 최후통첩게임 사이에는 전혀 연관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이것 역시 인간의 비이성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대목이죠.

그렇다면 영화 때문에 덩달아 생겨난 불쾌한 감정이나 유쾌한 감정이 사라지고 나서 최후통첩게임을 해보면 어떨까요? 애리얼리와 안드라데는 수락자들(위의 첫번째 게임을 한 사람들)의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역시 7.5 대 2.5 라는 불공평한 제안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결과는 동일하게 나왔습니다. '라이프 애즈 어 하우스'를 본 수락자들이 더 많이 거부했던 겁니다. 영화로 인해 발생한 감정이 사라졌지만, 첫번째 게임에서 자신이 내린 결정을 거의 그대로 따르는 패턴이 발견되었죠.

이번엔 제안자와 수락자의 역할을 바꾼 다음에 최후통첩게임을 진행했습니다. 역시 영화로 인한 감정이 사라진 후에 게임을 실시했는데, '라이프 애즈 어 하우스'를 봤던 사람들은 자신이 제안자 역할을 맡을 때는 비교적 공평한 제안을 한 반면, '프렌즈'를 봤던 사람들은 불공평한 제안을 더 많이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라이프 애즈 어 하우스'를 봤던 사람들은 처음에 불공평한 제안을 거부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제안할 때는 좀더 공평하게 제안해야 상대방이 거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을 겁니다. 반면에 '프렌즈'를 봤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불공평한 제안을 수용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도 불공평한 제안을 수용하리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지금까지의 실험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첫 번째 시사점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감정 상태가 의사결정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을 때는 냉정하고 단호하면서도 리스크를 거부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기분이 좋은 상태일 땐 낙관적이면서 리스크를 수용하는 쪽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기가 쉽죠. 상식적이긴 하지만, 의사결정을 내릴 때는 본인의 감정 상태가 어떤지를 먼저 살피는 것이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는 시사점을 이 실험을 통해 배웁니다.

헌데 이 실험에는 이런 상식적인 시사점 이외에 더 큰 함의가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과거에 내렸던 의사결정의 패턴을 계속 유지하려는 심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수락자들은 영화로 촉발된 감정이 사라진 후에도 과거에 했던 의사결정을 거의 그대로 유지했고, 그들이 제안자 역할을 맡았을 때도 역시 자신이 수락자 역할이었을 때의 의사결정을 염두에 두고 돈의 배분율을 결정했으니 말입니다. 즉 감정에 휘둘려 내린 단기적인 의사결정이 장기적인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이 실험에서 가장 중요한 시사점입니다.

'성공의 저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어떤 일에 성공을 거두면 그 일을 수행했던 방법이나 절차를 마치 성공을 이끄는 비법으로 여기고 그것을 다음 번 일에도 그대로 적용하려는 사고의 관성을 말합니다. 그 방법이나 절차가 우연에 의해 혹은 순간적인 감정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 버리고 단지 일의 결과가 성공했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적용하는 경향이 많은 기업에서 나타납니다.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이유가 다른 곳에 있을지 모른다는 점은 배제해 버리고 초기에 내렸던 의사결정이 사업을 성공하게 만들었다는 '잘못된 인과관계'를 설정하고 굳게 믿습니다. 특히 사업을 크게 일구어낸 창업자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종종 발견됩니다.

이것을 '저주'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음 번 일, 다음 번 사업에는 인과관계가 들어맞지 않아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M&A나 차입을 통해 회사의 덩치를 계속 불려나감으로써 시장점유율을 1등으로 끌어올리거나 시장 지배력을 확보했다면, 계속해서 그런 방법으로 회사를 성장시키려는 유혹에 빠집니다. 상황에 맞게 비즈니스 모델을 계속 혁신해 나가는 일은 제쳐두고 과거의 성공을 가져온 예전의 확장전략에 매몰되기가 아주 쉽죠.

또한 핵심역량을 벗어난 사업에 눈을 돌리는 두번째 저주가 시작됩니다. 투자라는 명목으로 혹은 신수종사업이라는 미명 하에 고도의 성장을 통해 확보한 현금으로 비관련 다각화에 나섭니다. 이때도 역시 확장 일변도의 전략을 구사하겠죠. 운이 좋으면 또 성공하겠지만, 대개의 경우 비핵심역량 사업들은 예전 사업만큼의 성과를 내기가 어려워지고 가격을 낮춰 근근히 버티다가 매각되거나 청산되는 길을 걷습니다. 그리고 외형적인 성장을 추구하다가 조직을 방만하게 경영하는 세 번째 저주도 무시할 수 없죠. 성장을 위해 마구 늘려나간 인력이나 장비, 시설들은 상황이 조금만 힘들어지면 기업가치를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하니 말입니다.

사업은 의사결정자의 감정에 의해 크게 좌우됩니다.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판단이라 해도 의사결정자가 어떤 감정인지에 따라, 당시의 경제상황이나 산업환경의 분위기에 따라 의사결정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때 성공은 행운이 아니라 의사결정의 패턴을 과거의 것에 종속시켜 버리는 악(惡)으로 작용할지 모릅니다.

감정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감정이 의사결정에 지렛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감정으로 내려진 의사결정이 향후에도 그대로 '먹힐 것'이라는 확고하지만 막연한 믿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겁니다. 감정으로부터 의사결정을 가능한 한 유리시키는 일, 과거 혹은 현재에 내린 의사결정이 미래의 의사결정 패턴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경계하는 일, 그럼으로써 성공의 저주에 스스로 예방주사를 놓는 일, 이것이 전략의 중용입니다.

(*참고도서 : '경제심리학', '수익지대')
(*참고논문 : The enduring impact of transient emotions on decision mak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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