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불씨를 살려라   

2011. 1. 3. 09:00



기업의 변화에 리더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변화의 시작과 지향점을 알리는 일은 리더들의 의무이자 권한이죠. 그렇지만 리더들이 지금까지의 관행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의지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직원들이 그것에 따라와 주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서지도 못한 채 주저 앉아 버릴 겁니다. 변화는 항상 저항을 동반하기 마련이라서 직원들을 사로잡고 있는 사고의 관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기업의 변화는 요원합니다.

그렇다면 변화는 어떻게 해야 발화(發火)되는 걸까요? 기업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인식하면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조직의 변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나는지, 아니면 갑작스럽게 발발하는지 고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성공적인 변화관리의 열쇠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생물의 진화가 긴 정체기를 거치며 끊어졌다가 갑자기 다시 이어진다는 ‘단속(斷續)평형론’을 주장합니다. 진화는 작은 변화가 꾸준히 누적되면서 점진적으로 진행되지 않고갑작스럽게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는 뇌의 크기 변화를 예로 듭니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점진적으로뇌의 크기가 커진 게 아니라, 뇌의 크기가 몇 세대 동안은 정체됐다가 어느 세대에 이르러 누적된 진화의 힘을 폭발시켜 갑자기 빠르게 성장했다는 겁니다.

단속평형론은 던컨 와츠가 밝혀낸 '좁은 세상 효과(Small world effect)'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좁은 세상 효과란 그물코처럼 매우 질서 정연한 네트워크에 몇 개의 지름길을 무작위하게 추가하면 하나의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경로의 길이가 갑작스럽게 짧아짐을 일컫는 말입니다.

생태계는 수많은 종과 개체들이 생존을 위해 경쟁하고 협력하는 복잡한 네트워크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생물들은 현 시점에서 가장 최적화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먹이가 부족해지고 기후마저 척박해지기 시작하면, 즉 환경이 개체의 생존에 위협을 가하기 시작하면 '부적응 모드'에 돌입하고 '진화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됩니다.

이런 압력을 '선택압'이라고 부르는데, 선택압은 기존의 최적화된 네트워크에 새로운 지름길을 그려나가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지름길이란 개체가 비우호적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응의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죠. 적응의 과정에서 처음에는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변화가 감지되지 않다가 지름길의 수가 일정한 수준을 넘으면 진화의 네트워트에 좁은 세상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굴드가 단속평형론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진화가 '창발(創發)'합니다.

진화가 점진적이지 않고 갑작스럽게 어느 순간에 나타나듯이(물론 굴드의 단속평형론이 옳다는 가정 하에서입니다), 기업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과정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생태계처럼 기업은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얽히고 얽힌 네트워크이고 '경쟁 환경'에 노출되기 때문에 변화는 점진적이지 않고 어느 '문턱'을 넘으면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조직의 변화를 창발적으로 일으켜야 할까요? 알다시피 수소(H2)와 산소(O2)가 결합하면 물(H2O)이 됩니다. 화학 반응식은 아주 간단하지만, 수소와 산소를 밀폐된 용기 안에 넣고 마구 뒤섞는다고 해서 물이 쉽게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물이 만들어지려면 수소 분자는 수소 원자로, 산소 분자는 산소 원자로 분리돼야 하는데, 수소와 산소는 그 자체가 안정적인 물질이라 결합을 풀려하지 않습니다. 결합을 풀려면 에너지가 반드시 가해져야 하는데 이를 ‘활성화 에너지’라고 부릅니다.

화학 반응이 잘 일어나려면 활성화 에너지라는 문턱을 넘어야만 합니다. 이를 기업에 대입하면 활성화에너지는 변화에 저항하려는 직원들의 사고, 관행, 가치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걸 넘어서야 조직의 변화가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죠.

조직의 변화라는 화학 반응이 잘 일어나려면 직원들에게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해야 합니다. 많은 기업이 비전과 전략을 요란하게 수립해 놓고서도 변화가 탄력을 받지 못하고 중단되는 이유는 바로 변화하고자 하는 지향점이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이죠. '뜬구름 잡는' 목표는 직원들에게 아무런 지침을 알려주지 못합니다.

화학 반응이 잘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촉매라는 물질을 사용하듯이 변화의 촉매 역할을 맡을 사람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을 변화주도자(change agent)라고 부릅니다. 그들이 직원들이 가진 저항감을 해제시키고 변화의 필요성과 이득을 쉬운 말로 이해시킨다면 변화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의심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권한을 이양하고 자율권을 부여한다면, 변화를 좀더 빠르게 진행시킬 수 있습니다.

원하는 대로 조직이 변화하지 않는다고 해서 위에서 아래로 압력을 가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반짝 효과'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더 많은 저항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권장할 만한 것이 못 됩니다. 직원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수시로 전달해서 어느 순간 임계점에 이르러 변화가 창발적으로 일어나도록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변화의 불씨를 살아나게 하는 경영의 '중용'입니다.

신묘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 행복이 가득한 2011년 되십시오.


inFuture 아이폰 앱 다운로드       inFuture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

경영학의 한계, 어떻게 극복할까?   

2010. 4. 21. 09:00

외국 학자들의 이력을 살펴보면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전공과 연구 분야를 특정 학문에 국한하거나 경도시키지 않고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 등으로 폭넓게 펼치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그들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제 파릇파릇한 봄이네요)


단적인 예로,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 Gould)는 진화생물학과 고생물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언어, 음악, 건축, 문학 등에 조예가 깊기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그는 야구 통계 데이터 분석 결과와 성당의 건축 구조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진화의 올바른 의미를 설명하려고 노력했죠. 그의 이론이 맞고 틀림을 떠나 르네상스적 인간형의 표본으로서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영학의 구루(Guru)라 할 수 있는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는 법학,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경영학 등 사회과학 전 분야에 걸쳐 왕성한 저술 활동을 벌였으며 소설과 수필을 쓰는 등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예외는 있겠지만, 위대한 학자들의 위대한 연구 업적의 대부분은 이처럼 폭넓은 지적 활동과 열망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에게는 여러 학문들과 왕성하면서도 의도된 만남을 통해 자신들의 독특한 지식 체계를 확립하고 사상의 외연(外延)을 확대하려 한 공통점이 있었죠.

경영학도 이러한 학자들의 ‘넘나듦’의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출현한 학문이었습니다. 피터 드러커에 따르면, 경영학은 테일러리즘(Taylorism)으로 유명한 프레드릭 테일러(Frederick W. Taylor)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비교적 젊은 학문이라 말할 수 있는 경영학이 빠른 속도로 학문적 체계를 갖춰 나간 이유는 타 학문을 전략적으로 폭넓게 수용하여 경계를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갔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을 받아들여 조직행동이론을 수립하고, 수학과 통계학을 바탕으로 회계학과 재무학의 토대를 쌓았죠. 경제학과 게임이론 등을 수용하여 경영전략이론으로 발전시키고, 정보기술(IT)을 경영에 접목하여 경영정보시스템이란 분과도 탄생시켰습니다.

경영학은 기업의 경영을 다루는 응용학문으로서 이처럼 다양한 학문들이 융합되거나 파생되면서 체계를 갖추어 나갔기 때문에 결코 타 학문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경영학이 학문적 한계점에 이르렀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경영학은 어느새 일정한 울타리 내에서 동어반복적인 컨텐츠를 계속 재생산하는 듯 보입니다. 서점에 가보거나 논문 검색 사이트에서 경영 관련 도서와 논문 리스트를 훑어보면 학문의 텍스트가 얼마나 곤궁해지고 있는지 금방 깨달을 수 있습니다. 

경영학의 발전이 기업환경의 변화를 뒤에서 겨우 따라잡고 있는 형국입니다. 새로운 화두를 던지지 못하고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만 급급한 모습이 오늘날 경영학의 현실은 아닐까요? 경영학이 길을 넓혀갈 새로운 땅은 이제 더 이상 없는 것일까요?

이제부터는 시선을 거꾸로 돌려 볼 것을 제안합니다. 경영학 중심의 시각을 버리고 타 학문의 입장에서 경영학을 바라보는 시선을 채택해 보는 건 어떨까요? 예술, 자연과학, 인류학, 사회학 등 우리가 흔히 경영학과 전혀 상관 없다고 간주해 버리는 학문의 체계와 관점 속에서 경영의 의미를 탐구하자는 제안입니다. 경영학에서 고민하는 많은 문제들이 타 학문에서 이미 고민했던 것일지 모릅니다.

쉽게 말하면, 특별한 규칙 없이 아무렇게나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경영학이 새로 디딜 땅을 확보하려면 위대한 탐험가들이 그러했듯이 미지의 신세계를 향해 중단 없이 돛을 올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리학을 연구하던 학자가 진화론에 뛰어 들고, 하늘을 바라보던 천문학자가 시선을 아래로 내려 인간의 뇌 연구로 전향하면서 새로운 지식의 발견과 깨달음을 얻었듯이(칼 세이건), 경영학이란 학문의 폭과 깊이는 타 학문에 대한 탐구로부터 경영학적 함의를 모색하는 과정 속에서 더욱 넓어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경영이론이 창발(創發)될 때 더욱 깊이를 더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여러 학문과의 통섭만이 경영학의 지평을 새로이 열 수 있는 길이 아닐까요? 한계에 다다른 경영학을 구하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유정식)'의 머리말 부분 발췌 편집


인퓨처컨설팅 & 유정식의 포스트는 아이폰 App으로도 언제든지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의 링크를 눌러서 여러분의 아이폰에 inFuture App(무료)을 설치해 보세요
       여기를 클릭!



  
,

이제 가설을 실증하는 단계로 넘어오겠습니다. 실증(proof)이란 가설의 참/거짓 여부를 밝히는 과정이고, 관찰을 행할 때 설정되는 가설은 문제의 원인에 초점을 맞춰야 좋은 가설임을 지금까지의 포스트에서 언급했습니다. 따라서 실증은 '인과관계'를 밝히는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실증이란,
1) 가설의 참/거짓 여부를 밝히는 과정
2)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과정

그렇다면 인과관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두 개 이상의 사건이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묶인다는 뜻입니다. 아주 자명해서 굳이 정의할 필요가 없다 싶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문제해결사의 자격을 취득하려면 흠결 없는 실증을 위해서 인과관계의 의미를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인과관계가 성립하려면 다음의 3가지 조건을 반드시 만족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인과관계 성립조건
1) 원인이 결과보다 시간적으로 먼저여야 한다.
2) 원인과 결과가 서로 관련이 있어야 한다.
3) 다른 인과적인 설명은 배제되어야 한다.

머리가 어지러우시죠? ^^


첫번째 조건은 너무나 당연해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원인이 되는 사건이 먼저 일어나야 결과의 사건이 벌어지지, 결과가 먼저 생겨난 다음에 원인이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문제해결사가 처음 문제를 접할 때는 결과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원인보다 앞서서 발생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 첫번째 조건을 제시하면 많은 분들이 '당연한 말을 왜 해?'라며 약간은 빈정거리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나 문제해결에 직면하여 실증을 행할 때, 이토록 자명한 인과관계의 성립조건을 망각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합니다. 시간적인 선후관계를 따져보지 않고 마음대로 인과관계란 표시를 합니다.

예를 들어, '직원들에게 충분한 양의 업무량이 주어지지 않아서 직원들이 태만하다'라는 가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충분하지 않은 업무량이 원인이고, 직원들의 태만함이 결과라고 제시된 가설이죠. 수학에서 쓰는 형식으로 이 가설을 표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충분하지 않은 업무량 → 직원들의 태만함

일할거리를 많이 주지 않으면 남아도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동료들과 잡담하거나 멍하니 자리를 지키는 것이 당연합니다. 따라서 인과관계가 성립된다고 보기 쉽죠. 허나 '당연함'에 도사린 함정을 조심해야 합니다. 과거 경험이나 타 사례를 통해 자동적으로 이러한 인과관계를 옳다고 인정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명하다는 본능적 판단을 억제하고, 충분하지 않은 업무량이 직원들의 태만함보다 시간적으로 먼저 일어났는지의 여부를 따져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직원들이 다른 이유(예:월급이 짜서)로 태만하게 일하니까 관리자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어차피 일을 많이 줘 봤자 안할 테니 이 정도의 일만 시키자'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업무량이 점차 적어졌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직원들의 태만함이 먼저 발생했다면 위의 가설을 참이라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두번째 조건인 '원인과 결과는 서로 관련이 있어야 한다'를 살펴보죠. 이 조건도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서로 관련이 있다'라는 문구에 주의해야 합니다. 이 말을 상관관계란 의미로 오해하면 곤란합니다. 상관관계란 두 개의 사건 사이에 규칙적인 관계가 존재함을 일컫는데, 인과관계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인과관계가 성립하면 상관관계도 성립합니다. 그러나 상관관계가 성립한다고 해서 항상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 일화는 실제가 아니라,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가 자신의 저서 '풀 하우스(Full House)'에서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오인하는 경향을 비꼬기 위해 쓴 글입니다.

유명한 통계학자가 데이터를 분석해 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술주정꾼 검거 건수와 침례교 목사 수 사이에 '정(+)'의 상관관계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통계학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술주정꾼이 많아져서 그들을 계도하려고 목사들이 많아졌다." 목사가 많아진 원인이 술주정꾼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한 마디로 그의 결론은 엉터리입니다. 술주정꾼이 많아진 사건이나 침례교 목사가 늘어난 현상이나 모두미국 인구의 증가가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술주정꾼과 목사 수 사이에는 강한 상관관계가 존재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바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상관관계가 있으나 인과관계도 있다고 주장한다면 "목사 수가 많아진 시대상황을 개탄(?)하느라 술주정꾼도 많아졌다"는 말도 우스꽝스럽게 성립돼 버립니다.

두번째 조건에서 '서로 관련이 있다'라는 말은 '원인이 발생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결과가 일어난다', 혹은 '결과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원인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를 의미합니다. '업무량이 충분하지 않으면 반드시 직원들이 태만해지고', '직원들이 열심히 일한다면 업무량이 적을 리 없다'는 뜻이죠. 상관관계를 의미하지 않음을 유의하기 바랍니다.

세번째 조건 '다른 인과적인 설명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무슨 말일까요? 이 말은 좀 어렵습니다. 천천히따져보겠습니다. '업무량이 충분치 않으니 직원들이 태만해지고, 동시에 월급도 줄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다뤄야 할 사건은 1) 충분치 않은 업무량, 2) 줄어든 월급, 3) 직원들의 태만함, 등 3개가 됩니다.

'충분치 않은 업무량이 반드시 직원들의 태만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우리가 실증할 가설임을 다시 상기하기 바랍니다. 이 가설을 증명하려면, '업무량은 태만함과 전혀 관련이 없다. 월급이 줄어들어서 직원들이 태만해졌다'라고 주장하는 또다른 인과적 관계를 배제해야 합니다. 

'줄어든 월급'이라는 인과적 설명을 배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업무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원인)에서 월급이 줄어들지 않았을 경우(배제할 인과관계)에 직원들이 태만(결과)해졌는가?'를 증명하면 됩니다. 쉽게 말해 월급이야 줄든 늘든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가 확고하다면 인과관계가 성립되고 가설도 실증됩니다.

그러나 '충분치 않은 업무량'만으로 '직원들의 태만함'을 설명할 수 없다면, 즉 '줄어든 월급'이라는 또다른 원인이 가미되어야 직원들이 태만해진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은 업무량 → 직원들의 태만함'이라는 가설은 기각되고 다음과 같이 새로운 가설을 설정해야 합니다.

(충분하지 않은 업무량) and (줄어든 월급)  →  직원들의 태만함

반증(Disproof)이란, 가설이 거짓임을 밝히는 과정입니다. 위에서 실증이란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과정이라고 했으므로, 반증은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음을 증명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반증의 실행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반증의 실행방법
1) 원인과 결과가 시간적으로 거꾸로임을 증명한다.
2) 원인과 결과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다는 증거를 찾는다.
3) 대체하거나 보완할 새로운 인과적 설명을 찾는다.

요약하면, 실증은 가설의 참/거짓 여부를 증명하는 과정이고, 결국은 인과관계가 성립하는지를 밝히는 절차입니다. 위에 제시한 인과관계의 성립조건을 명확히 인지해야만 참인 가설을 거짓으로, 혹은 그 반대로 증명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습니다. 문제해결사는 이를 명심해야겠습니다.


인퓨처컨설팅 & 유정식의 포스트는 아이폰 App으로도 언제든지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의 링크를 눌러서 여러분의 아이폰에 inFuture App(무료)을 설치해 보세요
           여기를 클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