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없는 삶, 야근이 축복인 삶   

2012. 12. 18. 09:00


저녁이 없는 삶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는 당내 경선에서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노동자들의 삶의 질과 복지를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제시한 바 있다. 비록 그가 경선의 승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저녁이 있는 삶’은 우리의 노동자들이 극심한 생존 경쟁(Rat Race)이라는, 빠져 나오기 힘든 쳇바퀴에 갇혔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경쟁자인 문재인 후보가 자존심을 꺾으며 ‘저녁이 있는 삶’을 자기에게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는 것 역시 저녁이 ‘없는’ 삶 때문에 직장인들이 얼마나 큰 고통 받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반영한다.


저녁 6시는 더 이상 퇴근 시간이 아니다. 야근을 준비하기 위해 뱃속에 먹을 것을 채우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된 지 꽤 오래된 듯하다. 과도한 업무량을 처리하고 빡빡하게 짜인 일정을 맞춰야 하기에 정시 퇴근은 꿈도 꾸지 못한 채 밤 10시가 넘도록 책상을 지켜야 하는 날이 비일비재하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35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일주일에 평균 2.8일을 야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 야근한다는 대답도 23퍼센트나 나왔다.


이렇게 자의 반 타의 반 매일 야근을 지속하는 직원들은 당연히 수면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2011년에 모 취업 포탈 사이트에서 직장인 5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평균 수면 시간은 권장 수면 시간보다 2시간 정도 적은 6시간 10분 밖에 되지 않으며, 그 이유가 과도한 업무로 퇴근을 늦게 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42.9퍼센트로 가장 많았다.67 또한 2011년에 실시된 OECD조사는 2010년에 우리나라 전체 고용인구의 연간 노동시간이 2,193시간으로서 OECD 평균인 1,749시간보다 444시간이나 길다고 말한다.



야근하면 생산성이 올라갈까?


그래도 야근을 하면 그만큼 오래 일하니까 생산성이 높아지고 성과도 향상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최근에 나온 연구 결과는 야근과 생산성 사이에 긍정적이기는커녕 강한 부정적 연관성이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데이비드 와그너(David T. Wagner)와 동료들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수면 시간이 줄어들면 낮에 회사에서 인터넷 서핑을 하는 데에 쓸데없이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잠을 덜 잔 사람일수록 연예인을 소재로 한 가십 기사나 스포츠 기사처럼 업무와 상관없는 내용을 읽느라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와그너는 96명의 학생에게 실험 전 날 수면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팔찌를 잔 채 잠을 자도록 했다. 와그너는 다음 날 아침 실험실에 모인 학생들에게 대학 교수직에 지원한 사람의 42분짜리 시범 강의 동영상을 보여주고 컴퓨터 상에서 그 사람의 강의 능력을 평가하도록 했다. 평가에 사용된 컴퓨터는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었기에 학생들은 동영상을 보며 언제든지 인터넷에 곁눈질을 할 수 있었다. 전날 밤에 잠을 많이 못 잤거나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학생일수록 강의 동영상을 보지 않은 채 인터넷을 하며 딴짓을 많이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와그너의 연구는 야근으로 인해 수면의 질과 양이 떨어지면 다음날 낮의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잦은 야근이 비록 피곤할지언정 결과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성과를 향상시킬 것이다’란 세간의 통념은 옳지 않다. 오히려 잦은 야근은 생산성을 갉아먹는 벌레인 셈이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수면의학 교수인 찰스 짜이슬러Charles A. Czeisler는 “24시간 한숨도 자지 않거나 1주일 동안 하루에 4~5시간 밖에 자지 않으면, 혈중 알코올 농도 0.1퍼센트에 해당하는 신체 장애가 나타난다.”라고 말하며 수면 부족의 위험을 경고한다. 0.1퍼센트면 법적으로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수치다. 과중한 업무로 인해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직원이 있다면 그는 일주일 내내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야근하면 나쁜 행동을 더 많이 한다


야근을 줄여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야근이 생산성 저하뿐만 아니라 비윤리적인 행동을 유발하고 강화하는 강력한 인자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반스(Christopher M. Barnes)와 동료들은 수면이 개인의 비윤리적인 행동과 깊은 연관성을 가짐을 실험을 통해 규명했다. 반스의 실험에서 절대적으로 수면시간이 부족하고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직원들은 상사와 동료로부터 비윤리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그런 직원들은 동료가 자신의 일을 대신 처리해 주는 선행에 고마워 하지 않거나 미안해 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후속실험에서는 수면이 부족한 학생일수록 돈이 걸린 게임에 참여할 때 다른 참가자들을 속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른 참가자를 속인 학생들이 정직하게 게임에 임한 학생들에 비하여 전날 밤에 평균 22.39분을 덜 잤을 뿐인데도 비윤리적으로 행동했던 것이다. 수면 부족이 사고력과 자기절제력을 약화시켜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그렇다면 적정 수면시간보다 2시간 정도 적은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몸 상태가 조직의 윤리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반스의 실험은 적은 인력으로 많은 업무량을 소화하도록 함으로써 얻는 생산성의 일시적인 증가가 장기적으로 볼 때 비윤리적인 ‘나쁜 성과’에 의해 상쇄된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은 아닐까?


마이클 크리스천(Michael Christian)와 동료들이 수행한 또 다른 연구에서도 수면 부족이 일탈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유발한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크리스천은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는데, 교대 순번이 바뀌어(예컨대 낮 근무에서 밤 근무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간호사들이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자주 드러내는 모습을 관찰했다.

 


야근을 많이 해야 승진이 잘 될까?


관리자들에게 어떤 직원에게 높은 점수를 주는지 물으면,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일한다고 해서 결과물이 좋은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며 업무의 질이 훌륭한 직원을 높이 평가한다고 답한다. 그러나 경영학자인 킴벌리 엘스바흐(Kimberly D. Elsbach)와 동료 연구자들은 간단한 연구를 통해 직원들이 밤늦게까지 남아 일하는 모습을 얼마나 자주 보이느냐가 평가와 승진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근무시간이나 근무시간 외의 ‘얼굴 보이는 시간’이 평가를 왜곡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르네 랜더스(Renée M. Landers)의 연구로 더욱 분명해진다. 그는 변호사들로 이루어진 로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변호사들의 야근이 파트너로 승진하는 데에 중요한 변수임을 밝혔다. 랜더스는 업무 환경이 비슷한 경우, 평가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경우, 업무가 복잡하여 질적 요소를 올바로 측정하기가 어려운 경우, 구성원 간의 능력 차가 크지 않은 경우, 회사에 남아 오래 일하는 직원이 그렇지 않은 직원보다 승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랜더스는 이러한 심리가 ‘극심한 생존경쟁(Rat Race)’을 야기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경쟁이 극심할수록 작은 차이가 큰 결과로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때 야근은 다른 사람에게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얼마나 높은지를 어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수단이 된다. 잦은 야근은 직원 개인의 건강 차원, 조직의 생산성 차원, 윤리적인 조직문화 차원 등에서 모두 바람직하지 않지만, 승진할 자리가 부족하고 차등 보상이 존재하는 경쟁 상황에서는 애석하게도 이러한 ‘역선택’은 더욱 강화되어 나타난다.


당신의 조직에서는 야근의 회수와 시간이 승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 만일 그 영향이 크다는다면, 당신은 ‘쥐들의 달리기 경주’에 이미 참가 중이고 그 때문에 직원들은 차차 소진(burn-out)되어 갈지 모른다.

 


야근은 축복이 아니라 사회악이다


한국은행의 김중수 총재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젊었을 때 일을 안 하면 아주 나쁜 습관이 들어서 그 다음에 일을 하나도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야근은 축복인 것이다.”라고 말하여 수많은 직장인들의 공분을 산 적 있다. 그의 생각은 야근을 개인의 경쟁력과 동일시하는 경영자들의 마인드를 대표하고 있다. 야근이 조직의 지속가능한 역량과 성과를 갉아먹는 진짜 주범이라는 점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짜이슬러는 음주, 흡연, 성희롱 등에 관한 기준만 마련할 것이 아니라 수면에 관한 행동기준도 명확히 설정하고 이를 준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에 따르면, 적어도 하루에 12시간 이상 근무하지 않도록 하고 절대로 16시간 이상 연속으로 근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루에 11시간 이상은 필히 휴식을 취해야 하며 일주일에 60시간 근무도 지양해야 한다.


요즘 스마트smart라는 말이 유행하다보니 직원들에게도 스마트하게 일하라고 주문하는 모양이다. 첨단기기와 시스템을 제공한다고 해서 직원들이 스마트 워커(smart worker)가 되지는 않는다. 직원들이 누구나 가진 두뇌를 스마트하게 사용하도록 독려하는 데 있어 ‘충분한 수면 보장하기’만큼 스마트한 전략도 없다.


‘저녁이 있는 삶’이 가치 있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직원들에게 ‘야근은 축복’이라고 말하는, 전혀 스마트하지 않은 발상은 이제 그만두어야 할 때다. 이제 야근은 축복이 아니라 음주운전이나 성희롱 같은 사회악이라고 인식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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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를 승진시키지 마라   

2012. 9. 17. 11:37


자기 자랑이 심하고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 믿으며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토론 그룹의 일원으로 끼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의 리더십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여러분은 아마도 그를 리더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평가하겠다고 말할 겁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믿는 자, 뭔가 잘못되면 자신은 뛰어난데 주변 상황이 자신을 도와주지 못한다며 불평을 늘어 놓는 자, 즉 '나르시시스트(Narcissist)'에게는 리더의 지위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겠죠.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르시시스트들은 사람들로부터 리더의 소양을 갖춘 자로 인정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나르시시스트를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동료들이 아니라 지근거리 너머에 위치한 나르시시스트의 상사에게 리더십이 뛰어나다고 평가 받기 쉽습니다. 오하이오 주립대의 에이미 브루넬(Amy B. Brunell)과 동료 연구자들이 수행한 일련의 실험은 이를 뒷받침합니다. 





브루넬은 효용이 이미 증명된 설문지를 통해 실험 참가자들의 나르시시즘 성향, 5대 성격 특성, 자존감을 측정한 후에 무작위로 4명씩 그룹을 이루게 했습니다. 각 그룹에게는 학생회의 프로그램 디렉터에 지원한 후보자의 가상 프로필을 읽고서 후보자의 리더십과 능력 등을 평가하는 위원회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물론 멤버들은 토론을 통해서 그룹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야 했죠. 토론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의 리더십을 평가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얼마나 그룹의 리더가 되기를 희망하는지도 적어야 했죠. 분석 결과, 참가자들의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을수록 그룹의 리더가 되길 원하는 정도가 높았고 자신의 리더십도 높이 평가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은 참가자가 다른 멤버로부터 높은 리더십 평가 점수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실험은 나르시시스트가 리더로 인정 받거나 선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학생회 디렉터를 평가하는 일처럼 확실한 '정답'이 없는 문제를 토론 주제로 주었기에 나르시시즘과 리더십 점수 사이에 연관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을지 모릅니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브루넬은 난파선이 어느 섬에 가까스로 당도한 상황을 이야기해주고 난파선에서 구할 수 있는 15개의 물건을 생존에 필요한 순서에 따라 배열하는 과제를 참가자들에게 부여했습니다.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로 4명씩 구성된 그룹 멤버들은 토론을 통해 그룹의 의견을 결정해야 했고, 토론이 끝난 후에 자신과 다른 멤버의 리더십을 평가해야 했습니다. 결과는 동일했습니다.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을수록 다른 멤버로부터 리더십 평가를 높게 받았죠. 하지만 나르시시즘 성향은 개인과 그룹의 성적(15개 물건을 옳게 배열하는)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습니다. '잘났다'고 자랑하는 나르시시스트들이 실상은 그렇게 잘나지 않았다는 하나의 증거였죠.


브루넬은 MBA 과정에 다니는 153명의 관리자를 대상으로 비슷한 실험을 수행함으로써 결과를 다시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무작위로 4명씩 구성된 각 그룹은 가상의 기업이 기부한 자금을 가지고 예산을 정해야 하는 학교 이사회의 역할을 맡아 자기 그룹의 의견을 최종 결정해야 했습니다. 앞의 두 실험과 다른 점은 보다 객관적인 측정을 위해 2명의 훈련된 평가자가 멤버들의 리더십을 평가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분석 결과, 훈련 받은 전문 평가자가 측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은 자가 역시 높은 리더십 점수를 받았습니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어떻게 하여 다른 이들로부터(심지어 전문 평가자로부터) 리더로 인정 받는 걸까요? 아마도 그들은 토론이 시작되자마자 자신의 의견을 남들보다 자주 개진하고 다른 멤버들에게 강요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일 겁니다. 여기에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나르시시스트의 태도가 다른 멤버들에게는 자신감으로 인식되어 보다 쉽게 영향 받고 보다 쉽게 설득되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이유가 분명치는 않지만 어쨌든 나르시시스트들은 리더로 인정 받을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입니다.


물론 브루넬의 실험은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짧은 시간 동안 느낀 리더십을 평가토록 한 것이기에 멤버들이 오랫동안 같이 일할 경우에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나르시시스트의 실체가 무엇인지 깨달은 동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를 리더로 인정하지 않으려 않겠죠. 하지만 그렇게 동료들에 의해 빨리 탈락되는 나르시시스트들은 그저 '왕자병', '공주병' 환자에 불과합니다. 진짜로 영악한 나르시시스트들은 높은 위치에 오르기 전까지 자신의 발톱을 숨기며 남들에게 성실한 모습을 보인다고 합니다. 특히 상사에게는 더욱 그러하죠. 여기에 사람을 잘 다루며 설득력 있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사회적 스킬을 가미하면 나르시시스트가 리더로 인정 받고 선발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집니다. 리더로 선발할 권한은 대개 나르시시스트의 상사(혹은 경영자)가 쥐고 있기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관점(동료들의 관점이 아니라)에서는 나르시시스트를 비(非)나르시시스트보다 '좋은 리더'로 여길 가능성도 높습니다.


좋은 리더를 뽑기 위해 평가 센터(Assessment Center)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방법도 나르시시스트를 걸러내지 못한다는 것을 브루넬의 세 번째 실험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전문적으로 훈련 받은 평가자도 나르시시스트의 리더십을 높게 평가했으니 말입니다. 오히려 평가 센터가 나르시시스트의 승진을 돕고 있을지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나르시시스트들을 승진의 사다리에서 내려오게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발톱을 철저히 감춘 나르시시스트를 밝혀내기란 상당히 어렵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은 직원들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폭넓게 들어보는 것 뿐입니다. 


그간 이 블로그에서 나르시시스트에 관해 언급한 글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성과를 우선하기에 조직 성과를 방해하고, 창의적이지 않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강요함으로써 조직의 창의성을 저해하며, 지나치게 과감한 결정을 내려서 조직을 위험에 빠뜨리고, 급기야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비리를 저지르고도 응당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로 착각하기도 하죠. 나르시시스트가 조직의 리더로 잘못 인정 받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일 또한 건강한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방법임을 항상 기억해야겠습니다.



(*참고논문)

Amy B. Brunell, William A. Gentry, W. Keith Campbell, Brian J. Hoffman, Karl W. Kuhnert, Kenneth G. DeMarree(2008), Leader Emergence: The Case of the Narcissistic Leader,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Vol. 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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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직원이 아침에 일찍 출근하여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고 또 늦게까지 남아 일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인다면 여러분은 그를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성실하고 책임감 있으며 회사에 헌신적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여러분이 그 직원의 상사라면 평가 점수를 다른 이들보다 높게 주고 싶은 마음도 들겠죠. 직원들이 회사에 일찍 출근하여 밤늦도록 근무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상사에게 얼굴을 '오랫동안 보여주면' 상사로부터 좋은 인상을 얻어 평가나 보상 혹은 승진에 유리할 거라 믿는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경영학자인 킴벌리 엘스바흐(Kimberly D. Elsbach)와 동료들은 간단한 연구를 통해 이렇게 암묵적으로만 짐작하고 있던 현상이 사실임을 드러냈습니다. '단순히 얼굴을 보여주는 시간(passive face time)'이 부하직원에 대한 상사의 인식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밝혀낸 것이죠. 부하직원의 성과를 관찰하는 상사는 손에 잡히는 성과를 중요시한다고 말은 하겠지만, 애석하게도 평가 요소의 상당 부분(특히 역량평가)은 '얼굴 보여주는 시간'에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엘스바흐는 얼굴을 보여주는 시간이 긴 직원일수록 독창적이고 헌신적이며 리더십이 있고 팀워크에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여러 경험적 사실을 정량적으로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엘스바흐는 먼저 MBA를 졸업한 39명의 관리자와 심도 있는 인터뷰를 통해 각자의 직장에서 자신이나 다른 직원의 '얼굴 보여주는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물었고 구체적인 사례를 가능한 한 자세히 묘사해 달라고도 요청했습니다. 또한 멀리 떨어져 일하거나 집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얼굴 보여주는 시간이 제한된 직원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하는지도 물었죠. 

인터뷰에서 나온 말을 종합하고 분류해 본 결과, 근무시간 동안 항상 자리를 지키고 늘 얼굴을 보이는 직원들은 '책임감 있고 믿음직하다'는 인상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근무시간 이외에 매우 자주 얼굴을 보이는 직원들은 관리자로부터 '열성적이고 헌신적인' 사람으로 인식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얼굴을 오래 보여주는 직원들이 비효율적으로 일하기 때문이고 잘 보이기 위해서 일부러 그러는 것이라고 말하는 관리자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인터뷰에서 나온 결과를 정량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엘스바흐는 경영대학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60명의 고참 직장인(평균연령 40.4세)들을 실험 참가자로 모집했습니다. 처음에 본 정보를 나중에 얼마나 기억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에 참여하는 줄 알았던 참가자들은 어떤 사람에 대해서 세 문장으로 짧게 기술한 글을 받아 보았습니다. 참가자 중 절반은 '나는 근무시간 내내 항상 그가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라는 문장을 읽었고, 나머지 절반은 '나는 밤 늦게 혹은 주말에도 항상 그가 일하는 모습을 본다'라는 봤습니다. 이 문장 이외에 글의 나머지 내용은 두 그룹 모두 동일했습니다.

30초 동안 글을 읽게 한 후 엘스바흐는 참가자들에게 3분 동안 낱말 맞히기 게임을 하도록 해서 신경을 분산시켰습니다. 그런 다음, 15개의 단어를 주고서 참가자 자신들이 읽었던 글에서 나온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라고 요청했죠. 15개의 단어 중 5개는 글에서 나왔지만 나머지 10개는 나오지 않은 단어였습니다. 나오지 않은 10개의 단어 중에는 앞서 관리자들과 했던 인터뷰에서 종합되었던 '책임감 있다', '믿음직하다', '열성적이다', '헌신적이다'란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죠. 엘스바흐는 원래의 글에 나오지 않았는데도 나왔다고 잘못 지적하는 경우가 얼마나 다른지를 보고자 했던 겁니다.

결과를 분석해보니, '근무시간 내내 항상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는 글을 읽은 참가자들은 (원래의 글에는 나오지 않았는데도) '책임감 있다'와 '믿음직하다'란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는 경우가 많았고, '밤 늦게 혹은 주말에 항상 일하는 모습을 본다'는 글을 읽은 참가자들은 상대적으로 '열성적이다'와 '헌신적이다'란 단어를 골랐습니다. 

이 실험 결과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근무시간 동안 얼굴을 항상 보이는 직원일수록 상사로부터 책임감 있고 믿음직하다란 인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업무 특성상 자리를 자주 비워야 하거나 다른 장소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고 신뢰감이 떨어진다는 불리한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존재함을 나타내죠. 둘째, 야근하는 직원일수록 소위 '칼퇴근'하는 직원들에 비해 상사로부터 열성적이고 헌신적이라고 평가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에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는 직원들은 좋은 성과물을 산출한다고 해도 열성과 헌신의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죠.

얼굴 보여주는 시간에 의해 편향적인 평가가 이루어짐으로써 야기되는 문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실재하는 역량과 성과가 아니라 얼굴 보여주는 시간이 보상이나 승진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 글('야근을 많이 해야 승진이 잘 된다')에서 봤듯이, 부하직원들의 역량과 성과 차이를 뚜렷하게 평가하기 어려울 때 야근의 강도와 지속성이 승진에 유리하도록 만들죠. 부하직원의 역량과 성과를 올바르게 평가하고자 하는 상사들은 이런 편향이 존재함을 항상 유념해야 합니다. 또한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는 직원들을 불리하게 평가할지도 모른다는 점도 항상 유의해야겠죠.

어떤 직원이 상사 자신에게 얼굴 보여주는 시간이 길다면 그 시간과 성과가 비례하는지 면밀하게 살펴봐야 하겠죠. 쉽지 않겠지만 그런 관점으로 직원들을 평가하고 독려해야 쓸데없이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으려는 직원들의 동기가 줄어듭니다. 물론 일이 절대적으로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야근하고 휴일에도 출근해야 하는 경우라면 그건 직원의 잘못이 아니라 그렇게 많은 일을 부과한 상사나 조직의 과실이므로 즉시 시정되어야 할 겁니다.

어쩔 수 없이 오래 근무해야 하는 분위기도 문제지만, 얼굴 보여주는 시간이 길어야 평가와 보상에 유리하다고 인식하는 문화도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어떻습니까?


(*참고논문)
How passive ‘face time’ affects perceptions of employees: Evidence of spontaneous trait in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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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직원은 승진하기 어렵다   

2012. 6. 15. 11:23


기업들은 리더에게 여러 가지 역량을 기대합니다. 특히 외부환경이 급변하고 고객들의 취향이 다양해지면서 리더의 창의력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창의적인 리더가 그렇지 못한 리더에 비해 구성원들의 창의력을 자극하고 조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직원들보다 창의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곧잘 제시하는 직원을 조직의 리더로 선발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죠.

하지만 어떤 직원이 창의적일수록 잠재적인 리더십 역량을 낮게 평가 받는다는, 그래서 승진에 불리하다는 다소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제니퍼 뮬러(Jennifer S. Mueller)와 동료들은 실험실에서의 연구와 실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규명했습니다. 



뮬러는 194명의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아이디어 제시자와 평가자로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디어 제시자를 다시 둘로 나눠 한 그룹은 '참신하고 유용한' 아이디어를 구상하도록 하고 다른 그룹에게는 '유용하지만 참신하지 않은' 아이디어를 생각하도록 했습니다. 아이디어 제시자들에게 주어진 질문은 "항공사가 승객으로부터 더 많은 매출을 끌어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였죠. 아이디어 제시자들이 평가자들에게 10분 동안 자신의 아이디어를 프레젠테이션하면, 평가자들은 아이디어의 창의성, 참신성, 유용성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 제시자의 잠재적 리더십을 3가지 차원으로 평가했습니다.

통계 분석 결과, '참신하면서 유용한' 아이디어를 제시한 참가자들은 '유용하기만 한' 아이디어를 내놓은 참가자들에 비해 평가자들로부터 더 창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잠재적 리더십 점수는 훨씬 낮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두 그룹의 아이디어 제시자 모두 역량과 인간적인 따뜻함에서는 동일한 평가를 받았죠. 이는 리더로 선발될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곧잘 제시하는 사람이 불리한 상황에 처한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기 때문은 아닐까 의심한 뮬러는 인도 중부에 위치한 다국적 정유 회사에 근무하는 346명의 직원을 연구 대상으로 설정했습니다. 뮬러는 346명 중 55명을 평가자로, 나머지 291명을 피평가자로 구분했습니다. 그런 다음, 평가자들에게 피평가자의 잠재적 리더십 역량과 창의력을 평가하도록 했죠. 

결과는 실험실에서의 결과와 동일했습니다. 성별, 근속년수, 교육, 내적동기 수준 등을 통제한 상태에서 분석해 보니 창의적인 성과를 낸다고 인식되는 직원일수록 잠재적 리더십 역량은 부정적으로 여겨졌던 겁니다. 창의적인 리더를 요구하는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창의적인 직원들은 리더로서의 잠재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아직까지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죠. 창의적인 사람은 현상 유지의 관성을 깨뜨리고 아직 증명되지 않은 아이디어들을 제시하는 경향이 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임의적이고 불확실하며 불편하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뮬러는 이런 고정관념 때문에 창의적인 사람들이 리더로서의 잠재력을 부정적으로 평가 받는다고 추측합니다. 뮬러의 연구는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현상을 추구하고 참신하기보다는 상투적인 아이디어를 고수하는 사람이 리더로 선발될 가능성이 높음을 경고합니다. 창의적인 리더를 원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덜 창의적인 사람이 리더로 선호된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기업이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기민한 속도로 변화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부정하고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는 사람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그들을 리더의 위치에서 알게모르게 제외시키려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일 겁니다. 또한 직원들도 리더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튀지 말고' 기존의 규율과 조직 논리를 따라야 한다는 점을 은연 중 깨닫고 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회사는 창의적인 리더를 원한다면서 창의적이지 않은 사람을 리더로 선호하는 모순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참고논문)
Recognizing Creative Leadership: Can Creative Idea Expression Negatively Relate to Perceptions of Leadership Potent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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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글에서 랭킹이 높은 사람들끼리 팀을 이루게 하면 랭킹이 높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팀보다 협력하려는 경향이 덜하고 더 경쟁적이며 사회적인 비교에 민감하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높은 랭킹은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잠재적 요소인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높은 랭킹을 차지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비협조적이고 경쟁적인 표정이 느껴지지 않을까요? 얼굴에서 나타나는 표정을 가지고 미국 의회 선거의 당선자를 70%의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Todorov et al. 2005)가 있듯이 얼굴 표정만 보고도  그 사람의 서열이 어디쯤인지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가설을 검증하고자 패트리샤 첸(Patricia Chen)과 동료들은 일련의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첸은 35명의 학생들에게 17개 경영대학원에 재직하는 학장들의 사진을 익명으로 보여주고 사진의 인물이 얼마나 협조적일지를 7점 척도로 평가하게 했습니다. 경영대학원의 순위는 U.S. News와 월드리포트(World Report)의 것을 이용했습니다. 그랬더니 학생들은 높은 순위의 경영대학원 학장일수록 비협조적일 거라고 평가했습니다. 순위가 높을수록 얼굴에 비협조적인 인상이 나타난 셈이죠. 표정만 보고도 그 사람이 어느 경영대학원에 근무하는지 대략 예측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실험만 가지고는 비협조적인 표정이 느껴지는 이유가 경영대학원의 높은 랭킹 때문인지, 아니면 덜 협조적인 사람이 학장으로 선발되는 경향 때문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이슈를 점검하기 위한 후속실험에서 첸은 미시건 대학교 학생들에게 다른 대학교 학생을 상대로 게임을 하겠냐고 제안했습니다. 학생들 중 절반은 예일 대학교(미시건 대학교보다 랭킹이 높은) 학생과, 나머지 절반은 워시트노 커뮤니티 칼리지(미시건 대학교보다 랭킹이 낮은) 학생과 게임을 하게 될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첸은 학생들에게 실험 도우미가 바로 게임을 벌일 상대라고 소개한 뒤 도우미와 나란히 세우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첸은 이렇게 하여 26장의 사진을 확보한 후에 이 상황을 모르는 또다른 학생들에게 사진 속 인물이 얼마나 협조적일지를 7점 척도로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예일 대학생을 상대하기로 한 학생들이 워시노트 대학생을 상대하기로 한 학생들보다 더 협조적일 거라는 평가를 얻었습니다(4.38점 대 3.91점). 이것은 자신의 랭킹이 상대방보다 높다고 생각할 경우 사람들은 덜 협조적이 된다(적어도 덜 협조적인 표정이 얼굴에 나타난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결과였죠.

얼굴에서 느껴지는 협조의 정도가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첸은 다시 한번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첸은 학생들에게 학생단체 대표의 역할을 부여한 후에 앞의 실험에서 사용했던 경영대학원 학장들의 사진 중 상위 5위 내에서 1장을, 하위 5위 내에서 1장을 무작위로 뽑아서 두 그룹의 학생들에게 둘 중 한 장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사진 속 인물이 학생단체들 활동 예산을 할당하는 '로버트 스미스' 부학장이라 소개하고서 스미스 부학장이 얼마나 협조적으로 보이는지, 스미스 부학장이 승인할 거라고 예상되는 1년 예산 금액을 3천 달러와 5천 달러 사이에서 추측해 보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또한 스미스 부학장에게 1년 예산으로 얼마를 요구할지도 물었죠.

그 결과, 확실한 차이가 발견되었습니다.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은 상위 5위 내의 학장을 하위 5위 내의 학장보다 덜 협조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또 학장이 얼마나 협조적으로 보이는지가 예산 승인 금액과 요구 금액과 관련이 있었죠. 학장이 비협조적으로 보일수록 두 금액의 크기가 작아졌으니 말입니다.

첸이 수행한 일련의 실험은 서열상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덜 협조적이고 자기 중심적으로 사고한다는 점을 얼굴 표정으로 나타낸다는 점을, 그리고 다른 이들이 그 표정의 의미를 무의식적으로 느낀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는 다른 조직에 속한 사람들과 협상을 벌일 때 유념해야 할 중요한 시사점입니다. 상대방으로부터 우호적인 협상안을 끌어내야 하는데, 자기 조직의 높은 랭킹이 만들어내는 얼굴 표정 때문에 원치 않는 방향으로 협상이 진행될 수 있겠죠. 반대로 상대방의 조직의 높은 랭킹에 주눅 든다면 100이 필요한데 자신도 모르게 80~90만 요구하는 오류를 범할지도 모릅니다.

조직 간의 협상 뿐만 아니라, 같은 조직 내 서열이 다른 사람들끼리의 의사소통과 대인관계에 대해서도 이 연구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줍니다. 리더(상사)는 부하직원들과 대화할 때 자신의 얼굴에 비협조적이고 오만한 인상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점을 늘 경계해야 합니다. 부하직원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에게 협조하도록 만들려면 얼굴 표정을 단속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겠죠. 상사의 표정에 '나는 비협조적이다'라는 인상이 그려지면 부하직원들 역시 비협조적이 되고 맙니다.

높은 서열은 얼굴 표정에 '비협조'라는 떼기 힘든 탈을 씌웁니다. 높은 위치에 오를수록 겸허함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직급이 오를수록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비협조적되는 건 아닌지 조심할 일입니다.


(*참고논문)
The Hierarchical Face: Higher Rankings Lead to Less Cooperative Looks.
Inferences of competence from faces predict election outc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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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을 많이 해야 승진이 잘 된다?   

2012. 5. 16. 11:18


직원들에게 야근을 하는 이유를 질문하면 완료해야 할 일이 밀려있기 때문이라는 답이 많습니다. 개인이 담당해야 할 업무의 양이 많은 이유는 기업들이 잉여인력을 떠안지 않기 위해 웬만하면 인력을 충원하지 않거나 사람이 할 일을 정보시스템으로 대체하려고 하기 때문일 겁니다. 정보시스템이 확산되고 일반화되면서 오히려 일이 많아졌다는 사실은 모든 이들이 공감하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야근을 하지 않고 칼퇴근하면 평가를 낮게 받을 뿐만 아니라 승진도 잘 안 된다'라는 솔직한 대답도 제법 자주 나옵니다. 집에 일찍 가면 열심히 일하지 않거나 회사와 팀에 대한 충성도가 낮은 직원으로 낙인 찍혀서 평가 때나 승진 심사 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반면 직원들에게 평가 점수를 부여하고 승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리자들에게 어떤 직원에게 높은 점수를 주거나 지지하냐고 물으면, 야근보다는 업무의 질이 훌륭한 직원이라고 답합니다. 늦게까지 남아서 일한다고 해서 결과물이 좋은 것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일의 양보다는 일의 질이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관리자들이 직원을 평가하거나 승진을 결정할 때 밤늦게까지 남아서 일하는 모습을 얼마나 자주 보느냐가 중요한 요소라는 르네 랜더스(Renee M. Landers)의 연구 결과는 관리자들의 이런 말들이 위선일 수 있음을 아프게 꼬집고 있습니다. 



랜더스는 변호사들로 이루어진 로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변호사가 윗사람에게 늦게까지 남아 일하는 모습을 얼마나 자주 보여주냐가 '파트너'로 승진하는 데에 중요한 변수임을 밝혔습니다. 연구 대상으로 로펌을 선택한 이유는 직급 구조가 간단하고(어소시에이트-파트너), 파트너로 승진하면 이익 배분금으로 거액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기에 변호사들의 승진욕이 상당히 내재됐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랜더스는 먼저 복잡한 수학 방정식을 통해 야근이 승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였습니다(이 수학 모델은 복잡하고 또 어렵기에 이 글에서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 어소시에이트들이 승진을 위해 가능한 한 오래 일하려는 상황으로 '평형'을 이룬다는 것이 이 수학 모델의 결론이었죠. 이후 그는 실제로 존재하는 로펌 두곳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여 수학 모델이 제시한 의미가 옳은지 검증하기로 했습니다. 

변호사(어소시에이트)와 파트너에게 '업무의 질'이 승진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지를 묻자 거의 모두 강한 동의를 표했습니다. 헌데 '야근이 업무의 질을 평가하는 지표라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예상대로 두 그룹 모두 별로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야근이 업무의 질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데 두 그룹 모두 같은 생각이었던 거죠. 또한 두 그룹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승진에 상당히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는 동의했지만, 야근이 충성심을 가리키는 지표라고 그다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파트너 그룹은 변호사 그룹보다 야근과 충성심의 관계가 낮다고 봤습니다. 

이런 설문 결과는 해석하기가 약간 모호합니다. 하지만, 두 그룹 모두 '필요할 때 기꺼이 야근하는 것'이라는 또 다른 요소를 승진에 매우 중요하다고 여겼다는 점에서 볼 때, 어소시에이트가 보이는 업무의 질을 올바로 측정하기 어렵다면(업무의 질적 요소는 항상 평가하기 어렵기 마련이죠) 야근이야말로 승진에 결정적인 요소로 떠오른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랜더스는 가상의 인물에 대한 글을 파트너들에게 보여주고 그 사람의 승진에 얼마나 지지할지를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야기 속 인물은 야근은 물론이고 필요하면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와 열심히 일하는 변호사로 그려져 있었죠. 하지만 새로운 의뢰인을 끌고 오는 능력은 약했습니다. 파트너 중 33퍼센트가 이 인물의 승진을 강하게 지지한다는 의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인물이 육아로 인해 정시 퇴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덧붙인 다음에 물어보니 강하게 지지한다는 의견은 17.5퍼센트로 줄어들었습니다. 이번엔 의뢰인을 끌고 오는 능력이 어느 정도 있다고 이야기를 바꾼 후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인물이 야근을 많이 하는 인물로 그려질 때 파트너들은 59퍼센트의 강한 지지를 보였지만, 칼퇴근하는 사람으로 소개될 때는 그 지지율이 37퍼센트로 뚝 떨어졌습니다. 이는 동일한 조건이라면 어소시에이트의 야근의 여부나 정도가 파트너 승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비록 로펌을 대상으로 한 연구지만, 랜더스의 연구는 일반기업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 연구는 다른 업무 조건이 동일할 경우, 그리고 평가를 신뢰할 수 없다든지 업무가 복잡하여 질적 요소를 올바로 측정하기가 어려운 경우, 회사에 남아 오래 일하는 직원이 그렇지 않은 직원보다 승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윗사람에게 자신의 승진을 어필하기 위한 도구로 업무의 질보다는 업무의 양, 즉 야근을 선택하려는 동기가 매우 크다는 점을 또한 시사합니다. 저녁 6시가 넘어도 퇴근하지 않는 까닭은 일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야근이 평가와 승진에 유리하다는 점을 은연 중에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랜더스는 이러한 심리가 극심한 생존경쟁(Rat Race)을 야기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쥐들의 경주'는 로펌과 같은 전문가 집단 뿐만 아니라, 일반기업 내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도 역시 나타납니다. 경쟁이 극심할수록 작은 차이가 큰 결과로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때 야근은 다른 사람에게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얼마나 높은지를 어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도구가 됩니다. 야근은 직원 개인의 건강 측면과 조직의 생산성 측면에서 모두 바람직하지 않지만, 승진할 자리가 부족하고 차등 보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애석하게도 이러한 역선택(Adverse Selection)은 더욱 강화됩니다.

여러분의 조직에서는 야근의 회수와 시간이 승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칩니까? 만일 그 영향이 크다면, 여러분은 '쥐들의 달리기'에 이미 참가 중이고 그 때문에 차차 burn-out될지 모릅니다.


(*참고논문)
Rat race redux- Adverse selection in the determination of work hours in law fi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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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의 법칙'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캐나다의 심리학자인 로렌스 피터(Laurence J. Peter)는 자신의 경험적 관찰을 통해 "조직의 서열 구조 속에서 모든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무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위치까지 승진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을 좀더 쉽게 서술하면 "구성원들은 자신의 무능이 완전히 드러날 때까지 승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결국 조직 전체의 역량 수준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런 결론을 내린 까닭은 어떤 직급에서 요구되는 역량과 한 단계 위의 직급에서 필요한 역량이 서로 독립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피터의 관점이 맞는다면, 어떤 사람이 현재의 직급에서 아무리 높은 수준의 역량을 보이더라도 그가 상위 직급에 오른 후에도 높은 역량 수준을 나타내리라 장담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구성원들이 상위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무능함이 드러난다고 생각한 겁니다. 



물론 하위 직급의 역량과 상위 직급의 역량이 독립적이라는 피터의 가정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조직의 특성상 피터의 가정처럼 직급의 역할이 설정된 곳도 있고, 하위 직급과 상위 직급 간의 요구역량이 서로 의존적인 조직도 있을 테니까요. 이탈리아의 알레산드로 플루치노(Alessandro Pluchino)와 동료들은 컴퓨터를 통해 피터의 가정 하에서 어떤 식으로 구성원을 승진시키는 것이 좋은지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직관과 반하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들은 이 공로(?)로 2010년에 '이그 노벨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플루치노는 컴퓨터 상에 6단계 직급을 가진 피라미드형 조직을 만들어 놓고 160명의 가상직원을 배치했습니다. 가장 높은 레벨에 1명(사장을 의미), 두 번째로 높은 레벨에는 5명... 이런 식으로 가장 낮은 레벨에는 81명을 배치했죠. 플루치는 각 구성원에게 역량 수준과 연령이라는 두 개의 속성을 부여하고, 정규분포를 따르도록 무작위로 1에서 10까지의 역량 값을, 18세에서 60세까지의 연령을 지정했습니다. 윗 직급으로 승진시킬 포지션을 만들기 위해 구성원의 역량이 4보다 낮거나 60세를 넘어서면 퇴직시켰습니다. 또한 공석이 발생하면 바로 아랫직급에 있는 구성원들 중에 한 명을 승진시켜서 채우고, 제일 낮은 직급에 공석이 발생하면 새로운 구성원을 채용하기로 정했죠. 

플루치노는 아랫직급의 직원을 윗직급의 공석으로 승진시키는 방식을 세 가지 로직으로 다르게 설정했습니다. '베스트 승진'은 아랫직급에서 가장 높은 역량을 보이는 구성원을 승진시킨다는 것이고, 반대로 '워스트 승진'은 가장 역량 수준이 낮은 구성원을 승진시킨다는 것이었죠. '무작위 승진'은 아랫직급에서의 역량과 관계없이 무작위로 한 사람을 뽑아 올리는 로직이었습니다.

플루치노는 아랫직급의 역량과 윗직급의 역량이 서로 의존적('윗직급의 역량은 아랫직급 역량에서 10% 이내의 변동을 가진다')이라는 '상식적인 가정' 하에서 세 가지 승진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초기의 조직 전체의 역량 수준은 69.68%이었는데,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베스트 승진'은 9%가 높은 79%로 수렴된 반면, '워스트 승진'은 5%가 떨어져 65%로 수렴되었습니다. 아랫직급에서 일 잘하면 윗직급에서도 일 잘할 거라는 가정 하에서 출발한 시뮬레이션이었기에 이는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헌데 아무나 뽑아 올리는 '무작위 승진' 방식도 초기 역량 수준을 2%P 끌어올렸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결과였습니다.

이번엔 피터의 가정 하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기로 했습니다. 즉, 아랫직급의 역량과 윗직급의 역량은 서로 독립적('아랫직급에서 일 잘한다는 것이 윗직급에서의 성공적 수행을 담보하지 못한다')이라는 조건 하에서 세 가지 승진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베스트 승진'보다 '워스트 승진'이 조직 전체의 역량 수준을 높이는 데에 훨씬 좋았으니 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베스트 승진'은 조직의 역량을 10%P 까먹는 반면, '워스트 승진'은 12%P 향상시켰습니다. 피터의 가정 하에서는 아랫직급에서 제일 역량이 떨어지는 직원을 승진시킬 때 조직 전체의 역량 수준이 높아졌던 겁니다. 아랫직급에서 역량 수준이 가장 높은 직원을 뽑아 올리면 종국에 조직 전체의 역량이 떨어진다는 결과는 참으로 당혹스러웠습니다. 한편  '무작위 승진'은 1%P의 역량 향상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직급의 역할과 요구역량이 '상식적인 가정'에 들어맞을지 '피터의 가정'에 들어맞을지 모르는 상태라면, 아랫직급에서 일 잘하는 사람을 윗직급으로 뽑아올리는 승진 방식('베스트 승진')이 항상 좋은 전략은 아니라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피터의 가정이 들어맞을 경우 '베스트 승진'은 오히려 독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차라리 무작위로 뽑아올리는 것이 조직 전체의 역량 수준을 보호하는 안전한 전략임을 플루치노의 시뮬레이션은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승진심사 없이 공석이 생기면 아무나 뽑아올려서는 안 되겠죠. 절차와 형식도 중요하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아랫직급에서 기록한 역량평가 결과에 높은 비중을 주어서는 안 되겠죠. 평가센터(Assessment Center) 운영 등을 통해 윗직급에서 얼마나 일을 잘할지 평가하여 승진을 결정하기도 하나, 여전히 아랫직급에서의 역량에 높은 비중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역량평가에서 '죽을 쑨' 직원에게는 승진심사 자격 자체가 박탈되거나 기회가 늦게 주어지니까 말입니다. 허나 아랫직급에서 죽을 쒀도 윗직급에서는 일을 훌륭히 수행할지 모릅니다. 반대로 아랫직급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도 윗직급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일지 모르는 일이죠. 

물론 플루치노의 시뮬레이션은 현실을 단순화한 모델에 근거합니다. 그러나 윗직급에서 요구되는 역량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에 맞는 사람을 제로 베이스에서 뽑아올려야 하지, 아랫직급에서 일 잘한다고 그에게 높은 점수를 주거나 우선순위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우리에게 일깨운다는 측면에서 충분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것은 피터의 법칙이 강조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피터의 법칙에서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만약 자유롭지 못하다면, 아랫직급에서 일 잘하는 사람을 뽑아올리는 일이 결국 조직의 역량을 떨어뜨리는 지름길일 수 있습니다. 그냥 무작위로 승진시키는 게 나을지 모릅니다. 직관에 반하는 일이지만, (현 직급에서) 일 잘하는 직원을 승진시키면 안 됩니다.


(*참고논문)
The Peter Principle Revisited- A Computational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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