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3 플레이어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디지털의 총아였습니다. 적은 용량으로 괜찮은 음질의 음악을 거의 공짜로 즐길 수 있었기 때문에 CD Player를 비롯한 여타 오디오 기기들의 무릎을 꿇게 만들었지요. 

게다가 깜찍한 디자인과 사이즈, 휴대의 간편성으로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디지털 기기 중 휴대폰 다음으로 많은 보유율을 자랑하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황금알을 낳는
MP3
MP3 플레이어 시장의 폭발적 확대의 중심에는 국내의 벤처기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애플의 iPod Nano(아이팟 나노)가 전격 출시되면서 국내 MP3 플레이어 제조업체는 경쟁력을 급격히 잃었습니다. 전 세계 MP3 플레이어 시장을 선도해 오던 레인콤, 코원 등 국내업체는 2002년의 세계 시장점유율 40%를 정점으로 계속 하락하여 20% 미만(2006년)으로 떨어졌고 지금은 다 합해 10%도 안 되는 처지입니다. 중국 등 후발업체들의 위협과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갖춘 애플 때문이죠.

당초 애플과 국내업체는 별도의 MP3 플레이어 시장을 차지하며 서로 공존했습니다. 동일한 기능을 하는 MP3 플레이어였지만애플이 HDD(하드디스크)형MP3 플레이어를, 국내업체는 플래시메모리형 MP3 플레이어에 집중해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플이 플래시 메모리형인 아이팟 셔플과 아이팟 나노를 내놓으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애플은 자사의 브랜드력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로부터 싼 가격에 플래시메모리를 공급받는 이점을 활용하여 기존업체보다 낮은 가격으로 총공세를 펼쳤지요.

그러나 단순히 가격이 낮기 때문에 아이팟이 세계 MP3 플레이어 시장을 석권했던 것일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아이팟이 지향하는 가치와 여타 MP3업체들이 지향하는 가치는 매우 달랐습니다.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 애플이 경쟁력을 갖는 이유는 아이팟이 제공하는 가치의 차별성에 있습니다.

이를 전략 캔버스로 그려보면 확인할 수 있지요.

MP3 플레이어의 전략캔버스


타 업체들은 고가정책을 취하든 저가정책을 취하든 비슷한 패턴의 가치곡선을 나타냈습니다. 수준의 차이만 있을 뿐 차별화된 가치는 나타나지 않았지요. 이와는 달리 아이팟은 다른 패턴의 가치를 가졌습니다.

타업체들은 뛰어난 부가기능을 부각시켰습니다. 음악재생 이외에 보이스 레코딩, 동영상 재생, 게임, 인터넷 접속 등의 부가기능을 결합한 제품에 초점을 맞추었지요. 그래서 MP3 플레이어라기 보다는 PMP(Portable Multimedia Player)나 PDA에 가까운 제품에 집중했습니다.

반면 애플의 아이팟은 기본기능인 음악재생만 충실히 하고 몇 개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가기능을 과감히 삭제했지요. 아이팟 셔플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또한 조작의 단순성을 업계의 표준 이상으로 증가시켰습니다. Click Wheel을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아이팟을 조작하는 것이 얼마나 이해하기 쉽고 단순한지 깨달았죠.

애플은 전략적으로 아이팟을 ‘문화 아이콘’으로 포지셔닝했습니다. 그래서 여타 업체들이 '음악을 듣는 행위의 즐거움‘에 주력하는 동안, 소유 그 자체가 즐거움이 되는 제품으로 MP3 플레이어를 재탄생시켰지요. 비싼 가격 탓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애플 제품을 단돈 199달러에 소유할 수 있는 기쁨, 즉 명품을 소유하게 될 때 느끼는 감동을 고객에게 선사했던 겁니다.

아이팟이 하드웨어 자체로만 존재했다면 수명이 오래 가지 못했을 겁니다. 영리하게도 애플은 아이튠즈(iTunes)라는 폐쇄적이면서 동시에 개방적인 사이트를 통해 사용자들을 결집시켰습니다. 컨텐츠가 생명임을 깨달았던 겁니다. 반면, 레인콤을 비롯한 국내기업들이 온라인 컨텐츠를 확보하고자 노력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타 MP3 플레이어와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아이팟이 과연 앞으로도 강자로 남아있을까요?
앞으로 누가 승자가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이팟도 언젠가 다른 무언가에 의해 몰락의 길을 걸을지도 모른죠. 강자는 패자가 되고, 패자가 다시 강자로 떠오르는 게 기업 생태계입니다. 끊임없는 가치혁신과 발전적 파괴가 없이는, 한때의 성공은 다가올 실패의 쓴잔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 이 글은 과거에 쓴 글을 현재의 시각으로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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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멕시코와 과테말라를 중심으로 찬란한 꽃을 피웠던 마야 문명이 몰락한 직접적인 원인은 스페인 정복자인 코르테스의 침략 때문이 아니다. 문명의 몰락은 이미 서기 800년 경에 시작되었다. 한때 적게는 300만, 많게는 14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인구로 북적거렸지만 코르테스가 1524년 즈음에 마야 문명의 중심지인 '페텐'에 도착했을 때 인구는 고작 3만 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코르테스


마야 문명이 몰락한 원인은 바로 '풍요' 때문이었다. 풍요는 자연스럽게 인구의 증가를 낳았다. 인구가 증가하자 더 많은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사람들은 숲을 파괴해 농지를 개간하기 시작했다. 고고학자 데이비드 웹스터의 말처럼 "지나치게 많은 농부가 지나치게 많은 땅에서 지나치게 많은 곡물을 재배했다."

풍요는 또한 사치를 낳았다. 마야에는 건물 벽에 석고를 바르는 풍습이 있었다. 마야의 왕들은 사원과 궁전을 치장하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석고를 두껍게 바르기 시작했다. 석고를 만들려면 용광로에서 석회석을 녹여야 하는데, 이것때문에 막대한 양의 소나무가 땔감으로 쓰였다.

농지와 땔감 확보를 위해 삼림은 무차별적으로 파괴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마야 문명을 파국으로 이끌었다. 숲이 사라지자 침식 작용이 심해져서 토양 속의 양분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고, 그 때문에 공들여 개간한 농지가 얼마 가지 않아 척박해지고 말았다. 또한 숲의 척박한 토양이 밑으로 흘러내려간 탓에 원래 비옥했던 골짜기와 평지의 토양까지 못쓰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삼림 파괴 때문에 강수량이 줄어들어 오랜 기간 가뭄에 시달렸다.

결국 곡식 수확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식량을 쟁탈하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내란이 시작되었다. 전쟁은 식량의 급감을 부채질하고 말았고, 배고픔과 전쟁 때문에 수많은 주민들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이것이 마야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마야 뿐만이 아니다. 로마 제국의 몰락은 세계 정복의 위업을 달성하자마자 시작되었고, 해가 지지 않을 거라 여겨진 영국은 빅토리아 전성기가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몰락했다. 풍요해질수록 변화를 추구해야 할 이유가 적어진다. 변화하지 않으면 외부적인 요인에 대처할 힘을 잃기 때문이다. 대처하지 못하면 풍요는 곧 스러지고 몰락의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많은 역사가 증명하듯, 풍요는 곧 몰락의 시작이다.

풍요 = 몰락의 시작


역사상 가장 빨리  포브스의 500대 기업에 랭크된 회사는 애플 컴퓨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악하기 짝이 없으나 당시로서는 꽤 괜찮은 성능을 자랑하던 PC인 '애플 II'가 갑작스러운 성공의 견인차였다. 1976년에 9만 5천 달러에 불과했던 매출액은 1982년에 10억 달러를 초과했다. 고작 6년 만에 10,000 배가 넘는 성장을 한 애플 컴퓨터는 1983년에 포브스 500대 기업 41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젊은 갑부가 된다. 이때가 애플의 가장 풍요로웠던 전성기였다.

그러나 풍요는 몰락의 시작이라는 공식이 애플에게도 여지없이 들어 맞았다. 1982년에 '타임'지의 표지 인물로 오른 스티브 잡스는 3년 뒤에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날 거라 예상했었을까? 1982년에 정점을 찍은 애플의 시장점유율은 그때까지 숨죽이고 있던 코끼리 IBM에 의해 서서히 잠식 당하고 그 뒤에 무수히 쏟아진 IBM호환 PC 때문에 애플은 도산 위기에까지 몰리고 만다.

10억 달러 이상의 적자로 허덕이던 애플이 1997년에 쫓아 낸 스티브 잡스를 다시 받아 들임으로써 그 해 1억 달러 흑자라는 반전에 성공하며 화려하게 부활했지만, 풍요가 몰락의 시작임을 회사의 역사가 증명하는 대표적인 회사임에는 틀림없다(지금 잘 나가고 있으니 뭐가 문제냐는 말은 하지 말자). 

"쇠퇴가 임박했음을 조기에 가장 잘 표시해 주는 것은 우량 경영에 대한 표창장들이다.한 기업이 랭킹 순위 1위에 오르면 이것은 문제가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다. 오늘의 수퍼스타는 내일 깊이 추락할 수 있는가장 좋은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헤르만 지몬은 경고한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우습게 넘길 말이 아니다.


풍요는 마약과도 같아서 중독될수록 더 많은 '양'을 원한다. 국민들을 장기적으로 어떻게 다스릴지 고민하지 않고 석고를 얼마나 두껍게 바를 수 있는지와 같이 사소한 경쟁에 마야의 왕들이 집착했듯이 풍요는 마약처럼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작년(2007년)에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폭행 사건 역시 풍요가 그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 것이다.

아마 이와 비슷한 상상을 할지 모르겠다. "멋드러지게 꾸민 개인 전용 사무실에서 일한다면 아이디어가 더 많이 생기고 일도 열심히 할 수 있을 텐데...장서가 가득한 나만의 서재가 있다면 까짓 멋진 작품 수십 편은 쓸 수 있을 텐데..." 나도 가끔 이런 공상에 젖곤 한다. 그러나 좋은 환경이라는 풍요는 좋은 아이디어와 높은 성과를 담보하지 않기 때문에 끝도 없이 흘러가는 공상에 브레이크를 건다.

풍요할수록 변해야 할 이유를 상실하고, 상실된 목표의식은 자신을 게으름으로 몰고 간다. 게으름은 '내가 아무것도 못하고 있구나'라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드는데, 풍요로운 생활은 자신을 추스르도록 만들기보다는 술이나 오락처럼 방탕한 방식으로 죄책감을 해소하도록 한다. 그러므로 풍요로움에 대한 상상은 부질없는 '환상'이다. 풍요는 몰락의 시작을 알리는 슬픈 서곡이다.

스스로 풍요롭다고 생각하는가? 갑작스러운 행운과 성공이 찾아 왔는가? 만일 당신이 행운아라면 축하의 악수를 건네기 전에 이 말을 해주고 싶다. 풍요를 경계하고 보다 건설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것에 매진하길 바란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인간은 더 많은 걸 항상 추구하는 동물이라 웬만해서 만족하는 법이 없고 또 행운아들은 매우 적은 법이기 때문이다.

풍요로움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는가? 떵떵거리는 부자가 되고 싶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가? 이런 사람은 매우 많을 것이다. 만일 당신 그 중 한 사람이라면, '내가 풍요롭지 않아서 나는 잘 하기가 힘들어'란 패배감에 당신은 아마 젖어 있을지 모른다. 혹은 '풍요로워진다면 그때 잘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자신의 처지와 무능의 이유를 애써 합리화하며 '노력을 유보'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성공과 성공이 가져다 주는 풍요를 기대하지 말라. 지금 바로 하지 않으면 당신은 매번 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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