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과학이라고 말을 하면 '어렵고 따분하다'란 반응이 즉각(?) 나옵니다. 요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큰데, 과학은 그만큼 주목을 못 받아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인문학과 마찬가지로 과학은 새로운 시각과 지평을 탐구하는 데 무엇보다 유용한 학문입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위해서 제가 쓴 책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에 대해 문화일보와 인터뷰와 인터뷰한 기사를 올립니다. 혹 책을 읽어보고 싶은 분이라면, 이 기사가 책을 쓴 계기와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얼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라는 제목의 의미를 경영학과 자연과학의 <통섭>이라고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통섭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두 학문을 ‘통섭적’인 관점으로 바라 본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통섭이란 말은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이 주장하고 있는 개념으로서, 모든 학문이 인간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생물학을 근간으로 통합하고 연결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저는 그의 극단적인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서로 다른 학문끼리의 넘나듦을 통해 새로운 지식이 창발(創發)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경영과 자연과학을 의도적으로 만나도록 주선했습니다

이 책은 통섭의 결과물이 아니라 통섭적인 관점을 통해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과 같은 자연과학과의 교류로부터 ‘경영학적 함의’를 캐내려한 시도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어떠한 계기로 자연과학을 경영에 접목하실 생각을 갖게 됐습니까?

경영학이 지금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젊은 학문이라 말할 수 있는 경영학은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등 타 학문으로부터 필요한 지식과 방법론을 폭넓게 수용하면서 학문적 체계를 갖춰 나간 학문입니다. 즉 경영학은 초기부터 여러 학문 간의 통섭으로 이루어진 종합 학문이었습니다. 경제학과 게임이론을 수용하여 경영전략이론을, 심리학을 받아들여 조직행동이론을, 정보기술을 경영에 접목하여 경영정보시스템 분과를 탄생시켜 왔지요. 그래서 경영학은 결코 타 학문과 분리하여 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서점에 가보거나 논문을 검색해 보면 경영학의 콘텐츠가 얼마나 곤궁해지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학문의 주류를 형성할 새로운 콘텐츠는 별로 눈에 띄지 않고 특정 기업의 성공 스토리를 근사하게 포장한 개별적인 케이스 스터디만 양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문학의 위기라고 말들을 하는데, 경영학 역시 똑같은 입장입니다.

경영학 위기의 원인은 바로 통섭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독자적인 정체성을 갖추고 학계에서 독립적인 위상을 갖춰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벽을 높이 쌓고 타 학문을 배제해 버렸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학문적 고립에 처하게 된 거죠. 그래서 저는 경영학이 통섭의 학문으로서의 위치를 다시 수복해야 하고 위기 탈출의 훌륭한 동반자가 바로 자연과학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은 그동안 경영학 입장에서는 미지의 땅이거든요. 역사와 심리학 등에서 경영학적 함의를 찾으려는 노력은 종종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과학을 통섭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시도는 없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자연과학에 평소 관심이 많았던 저는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귀중한 보물이 과학이란 대륙에 묻혀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죠. 


#책에서 기업의 조직관리와 인재관리를 실행함에 있어 생태학, 유전학, 내분비학 등으로 지식으로부터 이 시대 리더들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설명해 주십시오.

이 책 전반에는 기업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인식하는 관점이 녹아 있습니다. 구성원을 기업의 DNA로 본다든지, 모 그룹 회장의 폭력 사건을 조직의 호르몬 변화로 이해한다든지, 생명의 진화를 기업의 진화에 빗대어 본다든지 등이 그러한 예입니다.

헌데 많은 리더들은 기업을 생명체가 아닌 하나의 기계로 여기는 ‘기계론적 인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들은 조직이 위기에 빠졌을 때 강력하고 엄격한 지침을 하달하고 철저하게 관리 감독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마치 기계에 정확하게 프로그램을 입력하듯이 조직을 다루고 만일 구성원들이 저항하면 더욱더 정밀하고 완벽한 통제를 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업은 살아있는 시스템이고 하나의 생명체처럼 생식하는 초유기체입니다. 기계는 부품 하나만 없으면 고장 나 버리지만 조직은 결점이 있더라도 항상성을 유지합니다. 기계는 에너지를 소비할 뿐이지만 기업은 성장하면서 지식과 문화를 축적해 나갑니다. 기계는 조작자의 지시를 무조건 따르지만 구성원들은 인위적인 상명하달에 저항하곤 합니다.

리더들이 기업을 하나의 생명체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기업 경영의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제가 책 말미에서 경영자가 되고 경영학을 전공하려면 반드시 생태학에 대한 소양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입니다.


#개별학문간의 가로지르기를 대표하는 `네트워크 과학'이 창발적인 경영에 활용될 수 있다고 하면서, 조직의 `갈등을 조장하라'`비효율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라'는 등의 파격적인 얘기들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1988년에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 발생했는데요, 과학자들이 그 원인을 분석한 결과는 우리의 상식과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자연보호라는 미명 하에 산림관리 당국은 단 한 건의 산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목표로 숲을 관리했습니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조그만 산불도 필사적으로 막아냈지요. 그래서 불쏘시개가 될 잡목과 나뭇잎들이 쌓이고 나무들 사이의 간격도 조밀해졌습니다.

이런 상태는 조그만 불씨만 튀어도 걷잡을 수 없이 산불이 번지는 ‘임계 상태’입니다. 과학자들은 대형 산불을 막으려면 일부러 작은 산불을 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명했던 OO호텔의 노사분규는 작은 갈등조차 용납하지 않으려는 사측의 태도 때문에 그처럼 크게 일어난 것이죠. 조직의 갈등을 조장하라는 말은 임계 상태에 치닫지 않도록 숲을 관리하는 것처럼 구성원들의 불만과 갈등을 수시로 수면 위로 끌어 올려 해결해야 나중에 커다란 갈등 상황을 미연에 막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기업이란 조직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네트워크입니다. 언뜻 보면 체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죠. 이것에 효율을 강조하는 조치를 인위적으로 취하려 하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네모반듯한 잔디밭에 지름길이 생기는 것이 자연스럽듯, 다소의 비효율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창발적인 경영을 정착시키려면 네트워크과학이 발견해 놓은 네트워크의 성질과 특성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님은 환원주의적 사고를 경영에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건지요.

환원주의라는 말은 전체를 잘게 쪼개어 각 부분의 메커니즘을 밝혀내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패러다임입니다. 우주를 몇 개의 수학 공식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유전자가 생명 현상의 모두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환원주의적 사고입니다. 이런 사고는 사물 사이의 관계를 무시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죠. 이에 대한 반성으로 하나의 통합된 전체로 이해해야 한다는 전일주의(全一主義) 과학이 대두되었지만, 일반인들은 아직 환원주의적 사고에 많이 젖어 있으며 경영학도 예외는 아닙니다.

대표적인 예가 많은 기업들이 선호하는 직무 중심의 인사제도입니다. 기업이란 조직을 잘게 나누면 최소 업무 단위가 직무인데, 그것을 잘 관리하면 조직 전체의 성과를 높일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장점이 있긴 하지만, 환원주의적 관점이 지나치게 강해서 문제점 또한 많습니다.

전체적인 시각이 아닌 직무라는 미시적 관점으로만 인력을 운용하도록 만들기 때문이죠. 환원주의적 경영의 예는 전략 수립이나 성과관리 과정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CEO이 관심을 많이 두는 ‘핵심인재 경영’도 조직보다는 개인에게서 희망을 구하려는, 환원주의적 경영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끝으로 직장인들의 자기계발을 하는데 있어 과학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요즘 직장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재테크인 것 같습니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모두 부자가 되려고 혈안이 돼 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관심이 나쁜 건 아니지만 돈을 쫓지 말고 돈이 자신을 따라오게 만들려면 본인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키우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과학은 사물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숨겨진 이치를 파헤치는 학문입니다. 지식의 퓨전 시대인 요즘, 과학의 지식은 물론이고 과학자들이 이치를 발굴해 나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면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경쟁력 있는 무기를 가지는 셈입니다. 뛰어난 학문적 성과나 발명은 대부분 폭넓은 지적 활동과 열망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남들과 다르게 사고하고 싶다면 과학이 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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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도 배울 점이 있다   

2010. 6. 30. 09:00

경쟁자는 나의 친구?
경쟁자를 떠올려 보십시오. 어떤 생각이 듭니까? 적어도 경쟁자가 친구라는 느낌은 갖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동물의 왕국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자와 얼룩말은 먹고 먹히는 처절한 관계인데, 얼룩말 입장에서 사자는 자신들을 도륙하는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고마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무리의 크기가 커지면 서식지의 혼잡과 먹이의 부족 등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자는 사냥할 때 건강한 얼룩말보다 병들고 약한 얼룩말을 잡아 먹어서 얼룩말 무리의 크기를 균형 있게 조절하고 약한 개체를 솎아내는 역할을 합니다. 사자가 의도를 가지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피식자에게서 고기를 얻은 것에 '평형 유지'라는 서비스로 값을 치르는 셈이죠.


포식자의 존재 여부에 따라 피식자의 진화 속도가 느려지거나 빨라진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캐나다 오타와 대학 연구진은 토양 미생물들을 관찰함으로써 이 같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포식자가 피식자를 많이 잡아 먹어 무리의 크기가 줄어들면 '솎아내기' 효과로 인해 피식자들끼리의 먹이 경쟁이 줄어 들죠. 

그래서 경쟁이 줄어들면 피식자는 새로운 먹이를 취하거나 새로운 영역으로 진출하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렇게 되면 종의 분화는 일어나지 않고 정체되어 버립니다. 이런 의미에서 경쟁자는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변화의 귀재
수면병의 원인인 파동편모충이란 기생충은 개체 수를 늘렸다가 줄이기를 반복하면서 환자를 괴롭힙니다.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은 파동편모충의 겉껍질을 인식하는 방법으로 공격을 하는데, 파동편모충은 세포분열을 1만 번 할 때마다 1번 꼴로 껍질을 만드는 새로운 유전자를 조합해 냅니다.

숙주가 면역세포를 동원해 자기들을 압살하려고 하면 돌연변이 시스템을 빠르게 작동시켜 다른 종으로 진화해 버리는 것이죠. 이처럼 기생충은 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빠르게 대응할 줄 압니다.

기생충은 때를 기다릴 줄도 압니다. 독일의 의사인 퀴켄마이스터는 사형수에게 낭미충란 기생충이 들어간 돼지고기로 만든 수프와 소시지를 먹였는데, 사흘 후에 사형수가 처형되고 나서 창자를 살펴보니까 0.5센티미터 정도의 갈고리촌충이 발견됐습니다. 갈고리촌충은 낭미충의 성충인데, 적합한 환경이 아니면 낭미충으로 있다가 적당한 숙주가 나타나면 성충이 되는 겁니다.

다양성이 생존의 기본조건
툭소포자충이란 기생충은 원래 고양이와 피식자 사이를 순환하는 기생충입니다. 애완 고양이가 늘면서 유럽 대부분의 사람들은 툭소포자충에 감염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툭소포자충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몸 속에서 은둔하며 때를 기다립니다. 사람은 중간숙주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기생충의 생태는 유행에 휩쓸리기 쉬운 기업들에게 시사점을 던져 줍니다.

기생충을 방어하는 숙주의 노력에서도 배울 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생충은 흔한 숙주보다 드물게 존재하는 숙주를 감염시키는 것을 더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흡충에 감염된 달팽이는 이듬해 군체 규모를 줄여서 기생충의 감염을 막는 전략을 취합니다. 혁신은 항상 성장을 향한 것이라 아니라 때로는 '자기부정'과 '전략적 퇴화'일지도 모름을 우리에게 일깨우죠.

남성과 여성이 생긴 것도 기생충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달팽이는 암수한몸이라서 자기복제하듯이 새끼를 낳습니다. 하지만 기생충에 감염되면 음경을 지닌 수컷 달팽이가 더 많아집니다. 유성생식을 통해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해서 기생충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죠. 다양성이란 무기는 기업 환경 내에서도 경쟁력 확보를 위해 유용한 전략임을 알려줍니다.

빠른 변화가 생존의 힘
생물학자들은 동물들이 아래의 '생존방정식'을 철저히 따른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R = E  / (Ts + Th)

R은 수입률, E는 습득한 에너지 양, Ts는 먹이를 찾는 데 걸린 시간, Th는 먹이를 발견하고 잡아먹기까지 걸린 시간을 의미합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사는 그리즐리 곰은 이 생존방정식을 충실히 따릅니다.

공원관리 당국이 곰에게 음식물을 주지 못하도록 하자 사람들은 곰들이 굶어 죽을 것이라 예상했죠. 하지만 곰들은 주어진 시간 내에 최소의 지출로 최대의 수익을 낼 수 있는 먹이를 끊임없이 찾아냄으로써 훌륭히 적응했습니다.

봄에는 수풀을 뒤집어엎어 지렁이를 먹었고 송어 산란기에는 송어를, 엘크가 새끼를 낳는 시기에는 새끼 엘크를 잡아먹었습니다. 만일 먹을 것이 전혀 없으면 산 정상에 올라가 나방같이 하찮은 먹이로 식사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그리즐리 곰의 생존전략은 빠르게 변화하라는 시사점을 던져 줍니다.

지구상에서 인간과 함께 생존한다는 사실 자체가 동물의 생존전략의 위대함을 증명하니다. 하찮고 혐오스러운 기생충, 인간보다 지능이 낮은 동물이라 치부하기 전에 동물의 삶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새로운 시각은 바깥의 것을 안으로 끌어들일 때 얻어지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한경 HiCEO 강의 '경영 속의 과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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