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캐롤 드웩(Carol Dweck)은 지능이나 능력과 같은 특성이 변하지 않는다는 고정적 사고(Fixed mindset)를 지닌 사람들과, 그런 특성이 학습을 통해 발달할 수 있다는 성장적 사고(Growth mindset)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지난 글에서 밝혔듯이('머리좋은 직원이 조직을 망친다?'), 고정적 사고를 가진 자는 지능이 좋다는 평가를 받으면 계속해서 그런 칭찬을 받기 위해 어려운 과제보다는 쉬운 과제에만 집중하려는 위험회피적 경향을 보이지만, 성장적 사고를 지닌 사람은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더 새롭고 더 어려운 과제를 추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고정적 사고를 가진 자의 실력은 계속 제자리를 맴돌지만 성장적 사고를 지닌 사람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드웩은 과제를 수행하는 자의 관점에서 두 가지 사고방식의 차이를 논했는데, 피터 헤슬린(Peter A. Heslin)과 동료 연구자들은 관점을 달리 하여 수행 결과를 평가하는 사람의 사고방식에 따라 평가 결과가 달라질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 똑같은 수행 과정을 관찰하면서도 고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평가자와 성장적 사고방식을 지닌 평가자의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가설을 수립했죠.


헤슬린은 MBA를 전공하는 83명의 학생들에게 "모든 사람들은 각자 고유의 인간형을 지녔기에 변화할 만한 여지가 많지 않다.",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인간형으로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 등 의 문항을 제시하여 고정적 사고와 성장적 사고의 정도를 측정했습니다. 2주 후에 실험실에 모인 학생들 중 절반은 콜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현재 주니어 매니저인 콜린은 승진 심사에서 이미 두 번이나 떨어졌고 그의 상사도 콜린의 향후 승진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죠. 나머지 절반의 학생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헤슬린은 학생들 모두에게 콜린이 동료와의 협상을 제법 잘 진행하는 비디오를 보여준 후에 콜린의 협상력 수준을 5점 척도로 평가하게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학생들은 고정적 사고가 강할수록 협상력 점수를 낮게 주고 성장적 사고가 강할수록 협상력을 더 높게 주었습니다. 이런 경향은 콜린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의 경우에 더욱 강하게 나타났죠. 이 결과는 성장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사전에 콜린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받았더라도 그것에 그리 연연하지 않고 콜린이 보이는 훌륭한 협상력을 충분히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반면, 고정적인 사고가 강한 사람은 사전에 들었던 콜린의 승진 탈락 이야기에 여전히 고정되어 있어서 콜린의 협상력을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한다는 의미죠.


헤슬린의 실험은 고정적 사고를 지닌 평가자(상사)가 평가를 진행한다면 직원이 과거에 보였던 성과나 행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반면 성장적 사고가 강한 평가자는 과거의 인상이나 실적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직원의 현재 성과를 충분히 인정할 줄 압니다. 평가자의 사고방식 차이에 따라 직원에 대한 평가 결과가 달라진다는 사실은 객관적 평가가가 매우 어렵다는 또 하나의 증거라고 볼 수 있죠. 이러한 평가 오류를 줄이려면 평가자들이 성장적 사고방식을 갖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헤슬린은 후속실험을 통해 고정적 사고가 강한 사람(즉 성장적 사고가 약한 사람)이라고 해도 성장적 사고 방식을 갖도록 점차 유도하면 직원이 보이는 성과 향상을 충분히 인정하게 된다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과거 행적에 연연하여 현재의 성과 향상을 평가절하하는 고정적 사고를 지녔는지, 평가자는 스스로 자신을 반성하면서 어떻게 하면 성장적 사고방식을 취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인사부서에서도 평가자 교육 시에 이런 요소를 충분히 담아내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평가를 객관적으로 하라."는 말은 구호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상사는 고정적 사고를 지녔습니까, 아니면 성장적 사고를 지녔습니까? 여러분의 성과 향상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상사는 아마도 고정적 사고가 강한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참고논문)

Peter A. Heslin, Gary P. Latham, Don VandeWalle(2005), The Effect of Implicit Person Theory on Performance Appraisals,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Vol. 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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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만한 CEO의 결정을 의심하라   

2012. 11. 28. 09:17


알다시피 미국에서는 기업 간의 인수합병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1981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에서는 총 1만 2천 건의 인수합병 건이 성사되었고 금액으로 따지면 3조 4천억 달러 규모에 이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인수합병으로 이득을 챙기기는커녕 같은 기간에 2천 2백억 달러의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울리크 말멘디어(Ulrike Malmendier)와 펜실베니아 주립대의 제프리 테이트(Geoffrey Tate)는 인수합병이 손실로 끝나는 이유가 경영자의 '과신(overconfidence)'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지나치게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며 자신의 결정을 과신하는 경영자는 인수합병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과대평가하여 피인수 기업을 지나치게 비싸게 사들인다는 것입니다.





말멘디어와 테이트는 1980년부터 1994년까지 이루어진 394건의 인수합병 건을 정량적으로 분석하여 이와 같은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분석을 통해 CEO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스톡옵션을 언제 행사하는지 살펴보면 과신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주가가 벤치마크보다 높을 때조차도 CEO들이 스톡옵션의 만기일까지 옵션 행사를 미루거나 적어도 5년 이상 스톡옵션을 행사하지 않은 채 들고 있다면 그것은 그만큼 회사의 미래 성과를 훨씬 긍정적으로 전망한다는 뜻이었죠. 말멘디어와 테이트는 이런 CEO들이 어떤 시점에 기업 인수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입증했습니다. 또한 <뉴욕 타임즈>, <비즈니스 위크>, <파이낸셜 타임즈> 등의 비즈니스 관련 기사에서 '자신감 넘친다', '낙관적이다'라고 묘사되는 CEO들을 대상으로 한 분석에서도 역시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렇게 과신에 빠진 CEO가 인수합병을 발표하면 투자자들은 3일 동안 평균적으로 100 베이스 포인트의 손실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과신하지 않는 성향의 CEO의 인수합병 건은 투자자들에게 27 베이스 포인트의 손실만을 끼쳤습니다. 그들이 시도한 인수합병이 기업가치의 제고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신하는 CEO들은 자신들이 주주의 이익에 따라 민감하게 행동한다고 믿었죠.


연구의 결과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과신하는 경영자라고 해서 특별히 인수합병을 많이 시도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피인수 기업을 비싸게 사들이고, 기업가치를 깎아먹는(즉 주주의 가치를 해치는) 인수를 결정하며, 충분한 내부 자원이 있는데도 맹목적으로 인수를 결정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투자를 결정할 때는 그 회사의 CEO(혹은 오너)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도 중요한 의사결정 포인트임을 이 연구가 말해 줍니다.


평소 자신감에 찬 CEO들이 피인수 기업을 비싸게 사들이는 경향이 있고 기업가치를 훼손시켜 모(母)기업까지 위태롭게 만든다는 말멘디어와 테이트의 연구 결과를 보니, 얼마 전 법정관리를 신청한 어떤 그룹사가 곧바로 떠오릅니다. 자신만만한 CEO의 결정은 항상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신은 개인에게도 기업에게도 경계해야 할 감정 상태입니다.



(*참고논문)

Ulrike Malmendier, Geoffrey Tate(2006), Who Makes Acquisitions? CEO Overconfidence and the Market’s Reaction, 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 Vol. 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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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올린 글 '성공의 착각에 빠져 있습니까'에서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 글에서 전문가들이 커리큘럼 설계를 최대 30개월 안에 끝내겠다고 했지만 결국 8년이나 지나고 나서야 겨우 끝나버렸다는 사례를 들며 풍부한 지식과 경험이 전략이나 프로젝트의 앞날을 예측하는 데에 별로 도움이 안 될뿐더러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미래를 전망할 위험이 있음을 지적했지요. 계획 오류란 프로젝트나 전략의 성공 가능성과 성공으로 인한 이득을 과장하는 반면 실패 가능성과 실패에 따른 비용을 실제보다 낮게 책정하려는 경향을 말합니다. 실제보다 좋은 쪽으로 예상하려는 편향인 '낙관적 편향(optimistic bias)'과 통하는 말이죠.


그렇다면 이런 계획 오류(혹은 낙관적 편향)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뉴올리언스 대학의 민경삼(Kyeong Sam Min)은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일련의 실험을 통해 방법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어떤 일의 완료일을 예상할 때 일부러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 계획 오류가 줄어들 거란 가설을 세우고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실험 참가자로 모집했습니다. 민경삼은 결혼 계획에 관해 어떻게 의사결정하는지 알아보기 위함이 연구의 목적이라고 참가자들에게 설명하고서는 피로연 장소 선택, 손님 목록 작성, 음악 선택 등 결혼하기 전에 결정해야 할 활동 한 가지를 고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첫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에겐 자신이 정한 활동을 두 단계의 세부 활동으로 구체화시키라고 하고, 두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에겐 다섯 단계로 좀더 세분하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을 '쉽게' 혹은 '어렵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죠.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은 자신이 정한 활동을 언제 끝마칠지를 구체적인 날짜로 적어냈습니다. 민경삼은 참가자 각자가 적어낸 예상 완료일이 지난 후에 그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실제로 그 활동을 시작한 날과 완료한 날을 알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실제 완료일에서 예상 완료일을 빼본 결과, 참가자들은 전반적으로 계획 오류를 범했습니다. 105명의 참가자 중 27.6퍼센트만이 예상일보다 먼저에 각자가 정한 활동을 완료했죠. 이보다 흥미로운 결과는 두 단계로 계획을 세분하라는 지시를 받은 참가자들이 다섯 단계로 계획을 세분하라고 지시 받은 참가자들보다 낙관적 편향이 심했다는 것입니다. 전자가 후자보다 거의 다섯 배나 심한 편향을 보였죠. 이는 계획을 좀더 '어렵게' 수립한 참가자들이 계획 오류를 덜 범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상의 정확도를 따져봐도 다섯 단계로 계획을 세분한(계획을 어렵게 수립한) 참가자들이 더 좋았습니다. 이 결과는 계획 오류나 낙관적 편향을 최소화하려면 계획을 수립할 때 가능한 한 신중하게 생각하고 까다롭게 검토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일러줍니다.


이 실험은 사람들이 낙관적인 미래를 그리기 쉬운 '결혼'이라는 이벤트를 대상으로 했기에 계획이 실행되는 과정을 비관적으로 인식하는 활동에 대해서는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에 민경삼은 미래를 낙관적으로 볼 때와 비관적으로 볼 때, 각각의 상황에서 계획을 쉽게 수립하거나 어렵게 수립하는 것이 계획 오류를 줄이는 데 있어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를 알아보려고 후속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앞으로 제출해야 할 숙제를 떠올리게 하고는 두 그룹으로 나눠 각각 두 단계 혹은 여덟 단계로 숙제 수행 계획을 수립하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학생들을 다시 둘로 나눠 한 쪽 그룹에게는 숙제를 마감일보다 며칠 일찍 끝낼 수 있을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갖게 만들고 ,다른 쪽 그룹에게는 마감일이 되어서야 숙제를 끝마칠 수 있을 거라는 비관적인 감정을 갖도록 했습니다.


이후에 이메일을 통해 실제로 숙제를 완료한 날짜를 확인해 보니, 흥미롭게도 숙제 완수에 대해 낙관적인 생각을 가졌던 학생들의 경우는 계획 수립을 여덟 단계로 '어렵게' 세분할 때 계획 오류가 적었고, 숙제 완수를 비관적으로 느끼던 학생들의 경우에는 두 단계로 계획을 '쉽게' 구체화할 때 계획 오류가 적게 나타났습니다. 이 결과는 어떤 활동이나 프로젝트를 낙관적으로 기대할 경우에만 계획 수립을 신중하고 꼼꼼하게 진행하는 것이 도움이 되고, 그 활동이나 프로젝트를 비관적으로 여길 때는 신중하고 꼼꼼한 계획 수립이 오히려 계획 오류를 낳는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신중한 계획 수립이 항상 좋은 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므로 기질상 미래를 항상 낙천적으로 보는 전략가는 계획을 좀더 세분함으로써 '어렵게'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낙관적 편향을 줄이는 데 좋고, 미래를 신중하게 접근하고 대비하려는 전략가는 계획을 꼼꼼하게 세우려는 욕구를 억제하는 게 계획 오류를 덜 범하는 방법입니다. 신중한 사람은 계획을 본인이 생각하기에 엉성하게 세우는 게 더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이 지금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낙관적으로 보입니까, 아니면 비관적으로 느껴집니까? 여러분은 성격상 낙천적입니까, 아니면 신중하고 대체적으로 비관적인 편입니까? 계획 오류와 낙관적 편향을 줄여야겠다면 이 두 질문에 먼저 대답하고 난 후에 계획의 깊이를 정하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Kyeong Sam Min, Hal R. Arkes(2010), When is Difficult Planning Good Planning? The Effects of Scenario-Based Planning on Optimistic Prediction Bias, Journal of Applied Social Psychology, Forthco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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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면접 보지 마라   

2012. 8. 31. 10:19


'빨간 펜'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듭니까? 아마도 대부분은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빨간 동그라미(혹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그려진 사선)로 채점한 시험지의 이미지가 떠오를 겁니다. 우리에게 빨간 색은 무언가를 수정하거나 바로잡고 측정하거나 처벌을 가하는 느낌이 강합니다. 반면 파란색이나 녹색은 시험 채점이나 측정이라는 이미지와 바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이 작성한 글이나 보고서를 평가하고자 할 때 그가 빨간 펜을 쥐고 있다면 여러분은 바짝 긴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다른 색깔의 펜을 사용할 때보다 더 가혹하게 평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에이브러험 러트치크(Abraham M. Rutchick)와 동료들은 간단한 몇몇 실험을 통해 빨간 펜에 노출되면 오류를 더 많이 찾아내고 평가가 박해진다는 증거를 제시했습니다.1)


러트치크는 참가자들에게 철자 몇 개를 지우고서 원래의 단어가 무엇인지 유추하라는 과제를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FAI__' 라는 단어를 주고 빈칸에 어떤 철자가 들어갈지를 맞히라고 한 것이죠. 참가자들은 FAIR라고 쓸 수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느낌의 단어인 FAIL이라고 답할 수 있었겠죠. 또 '__RRO__'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ARROW 혹은 ERROR고 답할 수 있었습니다. 러트치크는 참가자들을 반으로 나눠 빨간 펜과 검은 펜을 각각 나눠준 후에 이런 문제를 풀게 함으로써 부정적인 느낌이 드는 단어를 얼마나 많이 답으로 적어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예상대로 빨간 펜을 쥐고 과제를 수행한 참가자들은 검은 색을 사용한 참가자들에게 비해 '오류'나 '저조함'과 관련된 단어를 더 많이 써냈습니다.




두 번째 실험에서 러트치크는 참가자들에게 영어를 배우는 학생이 쓴 두 문단 짜리 글을 읽게 하고는 시제, 스펠링, 문법, 단어 선택 상의 오류를 찾아내라는 과제를 부여했습니다.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로 빨간 펜과 검은 펜을 각각 사용하게 했더니 빨간 펜을 사용한 참가자들이 평균 24.3개의 오류를 찾아낸 반면, 검은 펜을 쓴 참가자들은 19.1개의 실수를 잡아냈습니다. 빨간 펜이라는 장치가 참가자들로 하여금 오류를 잡아내겠다는 집중력을 더 키운다는 점을 시사하는 결과였죠. 빨간 펜을 쓰면 문법적 오류가 없어도 평가가 박해진다는 것이 세 번째 실험에서 규명되었습니다. 문법적으로 오류가 없는, 8학년 학생이 작성한 에세이를 읽고서 0점부터 100점까지 점수를 매기도록 하니 빨간 펜을 쓴 참가자들은 파란 펜을 사용한 참가자들에 비해 낮은 점수를 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저 색깔만 다를 뿐인데 그 결과가 유의미한 차이를 일으킨다는 사실은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평가하는 일이 과연 객관적일까'란 의문이 들게 만듭니다. 색깔 뿐만 아니라 날씨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캐나다의 모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6년 간 입학 면접시험 결과를 분석한 연구에서 비가 내리는 날에 면접을 본 학생들은 날씨가 맑은 날에 면접을 치른 학생들에 비해 1퍼센트 정도 낮은 면접 점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1퍼센트의 차이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의과대학 입학시험의 총점으로 환산하니 10퍼센트의 차이에 해당했다고 합니다.2)


혹시나 이 글을 학교 선생님들이 보신다면 객관식 문제야 상관 없겠지만 학생들의 작문을 빨간 색연필을 들고 평가하는 일은 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또 면접 보러 가는 지원자들은 일기예보에 좀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평가나 판단은 아주 사소한 것에도 쉽사리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평가의 객관성은 신기루입니다.


태풍 덴빈이 지나간 후, 오늘은 하늘이 푸르고 빛이 가득합니다. 오늘 면접을 보러 가는 지원자들은 어제 면접 본 지원자들에 비해 자신감을 가져도 될 날씨입니다. ^^



(*참고논문)

1) Rutchick, A., Slepian, M., & Ferris, B. (2010).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word: Object priming of evaluative standards, 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Vol. 40(5)


2) Redelmeier, D., & Baxter, S. (2009). Rainy weather and medical school admission interviews, Canadian Medical Association Journal, Vol. 1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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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지원자가 합격 여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해당 분야에 2년 동안 근무하면서 리더십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이제 막 이 분야에 발을 들여 놓은 자인데 리더십의 잠재력에서 앞의 사람과 동일한 수준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 외에 다른 조건(나이, 성별, 학력, 전공 등)들은 동일하고 회사가 원하는 조건에 두 사람 모두 부합할 경우, 여러분은 둘 중 누구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채용하겠다는 악수를 청하고 싶을까요?


자카리 토르말라(Zakary Tormala)와 동료들은 84명의 참가자들에게 위와 같은 상황을 제시하고는 향후 5년 동안 누가 더 일을 잘 해낼 것인지를 질문했습니다. 참가자들 대부분은 높은 성과를 이미 나타낸 지원자보다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된 지원자를 더 선호했습니다. 리더십에서 이미 검증된 사람보다는 리더십을 잘 발휘할 것으로 보이는 사람을 높게 평가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여러 번의 후속실험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지원자에게 얼마나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지, 어떤 지원자를 뽑을 때 리스크가 덜 할지 등을 물었더니, 참가자들은 과거에 높은 성과를 달성한 지원자보다 높은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 받은 지원자를 뽑으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또한 잠재력이 높은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리스크가 낮다고 여겼죠. 이미 높은 성과를 보인 지원자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왜 이런 경향이 나타나는 걸까요? 잠재력이 어떻게 이미 객관적으로 증명된 실력을 능가하는 걸까요? 잠재력이 있다고 해서 향후에 실력을 발휘할 거라 확신할 수 없는데 말입니다. 물론 과거에 높은 성과를 보였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러할 거라는 보장이 없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사람의 기질이나 역량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이미 최근까지 실력으로 입증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토르말라가 수행한 일련의 실험은 잠재력을 실력보다 우선하는 경향은 우리가 직원을 채용할 때 범하는 여러 가지 오류 중 하나입니다. 왜 이런 경향이 나타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잠재력이 미래의 불확실함을 줄여 줄 보험적 요소로 인식하는 듯 합니다. 좋은 지원자를 뽑고자 하는 면접관들은 잠재력을 실력보다 과도하게 높이 평가할 위험을 꼭 유념해야 합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토르말라의 실험은 다른 사람에게 선택 받으려면 자신이 과거에 어떤 성취를 했다고 단순하게 이야기하기보다는 그러한 과거의 성취가 앞으로 더 뛰어난 성과를 달성할 잠재력이 있음을 증명하는 근거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설득력을 높이는 방법임을 보여줍니다. 이야기의 프레임을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두어야 합니다. 직업을 구하는 구직자 뿐만 아니라, 고객사로부터 수주를 받으려는 영업 담당자들, 협상 테이블에 앉은 협상가들도 알아두어야 할 설득의 팁입니다. 



(*참고논문)

Tormala ZL, Jia JS, & Norton MI (2012), The Preference for Potential,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PM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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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회사를 다니다가 컨설턴트 일을 한 지 이제 14년 가량이 됐습니다(아니 벌써!). 그 동안 여러 기업을 보면서 '이건 좀 이상하다'고 느낀 경영상의 오류들이 많습니다. 제가 발견한 오류가 경영의 모든 오류를 포괄하지는 못하겠지만, 아래의 내용들은 직장을 다니는 분들이라면 피부로 느끼고 있을 겁니다. 간혹 아프게 꼬집는 오류가 있더라도 '잘해보자'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좋겠네요.

여러분도 추가하고 싶은 오류가 있으면 댓글로 남겨 주세요. 나중에 혹시 이 글을 책에 싣게 되면 출처를 밝히고 여러분이 제시한 오류를 넣겠습니다. 저도 더 생각나면 계속 추가하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인력의 오류' : 사장님 눈에는 인력이 남고, 직원들 눈에는 인력이 모자르다. 항상.


'경쟁의 오류' : 경쟁사와 경쟁할 생각은 하지 않고 직원들을 서로 경쟁시킨다. 내부경쟁이 외부경쟁력을 높인다고 착각한다.


'운영전략의 오류' : 그저 운영인데 거창하게 '전략'이란 말을 갖다 붙인다. 누구와 운영을 놓고 싸우는데?


'가격 협상의 오류' : 한번 거래를 트면 계속 이어지니 가격을 깎아 달라고 말한다. 물론 그 다음 거래는 없다.


'업무공유의 오류' : 공유할 마음이나 필요도 없으면서, 문제만 생기면 업무공유가 안 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회식의 오류' : 윗사람만 좋아한다.


'등산의 오류' : (특히 사장님) 자신이 등산 좋아하면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는 줄 안다.


'핵심인재의 오류' : 우리 회사에서 핵심인재라고 뽑힌 자들은 업계 최고가 아니다. 우리 회사에서도 최고가 아니다.


'예산의 오류' :예산을 아끼면 욕 먹는다. 그리고 다음엔 깎인다.


'위기 관리의 오류' :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한 사람은 보상 받지 못한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보상은 나쁜 일이 일어난 후에 수습한 사람이 받는다.


'확판의 오류' : 고객이 아니라 직원들에게 판다. 직원들에게 팔아오라고 할당한다.


'비전의 오류' : 어느 날 갑자기 선포된다. 액자로 걸리고 홈페이지에 오른다. 직원들은 바로 잊는다.


'사장님 비서의 오류' : 많이 논다. 하지만 자를 수 없다. 그들은 '신성한 소'이므로.


'회의록의 오류' : 문제가 생길 때만 찾아본다. 회의록을 항상 말단이 쓰는 이유가 있다.


'신년사의 오류' : '금년'이 위기가 아닌 때가 없다.


'보고서의 오류' : 보고서의 생존기간은 보고서가 처음 만들어진 후부터 보고가 완료되기까지이다.


'이면지의 오류' : 회사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이면지를 찾는다. 그러면서 왜 꼭 종이로 봐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리모콘의 오류' : 빈 자리가 있으면 버튼을 추가하려 한다. 1년에 한 번 쓸까말까한 기능으로.


'혁신의 오류' : 그저 개선을 혁신이라 부른다. 아니, 개선이든 개악이든 새로 만들었다 해서 혁신이라 부른다.


'칭찬의 오류' : "잘했어. 하지만....", "훌륭한 보고서야.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야. 하지만..." 칭찬 듣는 사람의 마음엔 '하지만'만 남는다.


'윤리경영의 오류' : 오직 직원들만 지켜야 한다. 회장님과 사장님은 예외다.


'근태관리의 오류' : 지각 출근만 뭐라한다. 야근은 뭐라하지 않는다.


'사업타당성 분석의 오류' : 그 사업을 '하는 방향'으로 분석한다. 사장님이 알아보라고 했기에.


'대안의 오류' : 2안은 항상 1안보다 못하다.


'IT의 오류' : IT시스템이 많아질수록 업무량이 많아진다. 기대와 반대다.


'임원회의의 오류' : 임원회의 준비를 위한 회의를 한다. 정기 임원회의는 이메일로 대체해도 별 문제 없다.


'교육의 오류 1' : 교육을 안 시켜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육 갔다 와도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


'교육의 오류 2 : 일 잘해서 바쁜 사람보다 한가한 사람이 교육을 더 많이 받는다.


'팀장 선임의 오류' : 한번 팀장이면 계속 팀장이다. 팀장이 팀원이 되는 법이 없다.


'컨설팅의 오류' : 종종 컨설턴트를 교육시켜 준다. 비싼 돈을 주면서까지.


'동기부여의 오류' : 팀장이 팀원에게 동기부여하라고 한다. 팀장은 누가 동기부여해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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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펜 끝을 입에 무는 방법은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빨로 무는 것이고, 다른 방법은 이빨이 닿지 않게 조심한 상태에서 입술로만 무는 것입니다.  여러분 옆에 연필이나 볼펜이 있다면 두 가지 방법을 따라해보기 바랍니다.  이빨만을 사용해 볼펜 끝을 물 때는 어쩔 수 없이 입이 옆으로 벌어지고, 입술로만 물 때는 입이 앞으로 나오면서 볼이 홀쭉해질 겁니다.

이때 실험 진행자가 나타나서 볼펜을 입에 문 채 종이 위에 찍힌 두 점을 직선으로 연결하라는 요청을 여러분에게 합니다. 또 종이 위에 무작위하게 찍힌 점들을 1번부터 10번까지 순서대로 연결하라고도 합니다. 작업을 마치고 나니 진행자는 여러분에게 그 작업들이 얼마나 어렵게 느껴졌는지를 10점 척도(0점부터 9점까지)로 평가하라고 말합니다. 아마 손이 아닌 입으로 점을 연결하는 작업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겁니다.



어렵게 작업을 끝내고 나니 진행자는 추가로 두 가지 작업이 더 있다는 말을 전합니다.  8개의 자음과 9개의 모음이 무작위로 인쇄된 종이를 주며 그가 요청한 세 번째 과제는 입에 볼펜을 문 채(입술로만 혹은 이빨로만) 모음에 밑줄을 치라는 것입니다. 작업을 끝내고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역시 10점 척도로 평가해야 합니다.

네 번째 과제는 지금까지의 과제와는 다릅니다. 진행자는 여러분에게 잡지에 나올 법한 만화 4편을 건네면서 각 만화가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10점 척도(0점은 재미없다, 9점은 매우 재미있다)로 평가해 달라고 말합니다.  4편의 만화들은 게리 라르손(Gary Larson)의 'The Fair Side'라는 시리즈에서 발췌한 것들로서 사전 평가에 의해 평균 6.61이란 점수를 얻은 것들입니다. 여러분이 주의할 점은 만화를 보며 재미의 수준을 평가할 때도 항상 입에 볼펜을 물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눈치가 빠른 분들은 심리학자 프리츠 스트랙(Fritz Strack), 레오나르드 마틴(Leonard  L. Martin), 새빈 스테퍼(Sabine Stepper)가 수행했던 이 실험의 목적이 무엇인지 간파했을 겁니다. 이 실험은 얼굴 표정이 판단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볼펜 끝을 입술로만 물 때의 얼굴은 찡그린 표정( '뚱한' 표정과 같음)과 유사하고, 이빨로 물 때는 입이 옆으로 벌어지기 때문에(즉 웃을 때 움직이는 근육을 동일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웃는 표정과 비슷합니다. 볼펜을 입에 무는 방법으로 얼굴 표정에 조작을 가하면 실제로 기분이 언짢거나 좋을 리 없더라도 그런 감정을 유발되고, 그렇게 변화된 감정 상태가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연구자들이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모두 4가지 과제를 수행했지만 연구자들의 관심은 만화의 재미 수준을 평가하게 한 네 번째 과제에 있었습니다. 앞의 3가지 과제는 실험 참가자들이 볼펜을 입에 문 상태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죠. 실험 결과, 참가자들은 전체적으로 만화의 재미를 사전 평가 점수보다 전체적으로 낮게 평가했습니다. 아마도 입에 볼펜을 물고 있는 불편함이 만화를 실제보다 재미 없게 평가한 이유라고 추측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빨만으로 볼펜을 문 사람들(웃는 표정)이 입술로만 볼펜을 문 사람들(뚱한 표정)보다 상대적으로 만화를 더 재미있게 여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자의 참가자들은 만화의 재미를 평균 5.14로 평가한 반면, 후자의 참가자들은 평균 4.32라고 평가했던 겁니다. 볼펜을 입술로 물든 이빨로 물든 참가자들이 느낀 불편함은 거의 비슷했기에 만화의 재미에 영향을 미친 조건은 바로 볼펜으로 조작된 얼굴 표정에 있었습니다. 장애인의 고충을 측정하려 한다는 엉뚱한 실험 목적을 사전에 듣고 과제를 수행한 참가자들은 이런 영향을 감지할 수 없었겠죠.

얼굴 표정의 인위적인 변화가 감정의 변화로 이어지고 그 감정이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이 실험의 결과는 이성적 판단의 어려움을 보여줍니다. 이성적 판단은 감정에 크게 좌우되고 그 감정은 별것 아닌 조작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볼펜을 무는 것 같은 행위로 조작된 얼굴 표정(얼굴 근육)이 감정에 피드백되고 그 감정은 다시 판단 매커니즘에 피드백되면서 판단 오류의 가능성을 키우는 것이죠.

무언가를 판단하거나 평가할 때 객관적 평가 능력을 과신하지 말고 자신의 감정이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 실험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판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 자신의 감정 상태가 어떤지를 자문하고 그 감정으로 판단 결과가 왜곡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인식하더라도 판단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감정이 고조되거나 저하되어 있을 때는 판단을 미루는 것도 좋은 해법이겠죠. 지난 번에 올린 '밥 먹고 합시다라고 말해야 하는 이유?'란 글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이성적이기 이전에 감정과 본능의 동물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언가를 판단하거나 의사결정자에게 판단을 요청하려 합니까? 판단을 위한 근거와 자료도 중요하지만 여러분 자신과 의사결정자의 감정 상태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결재 받을 때 상사의 표정을 잘 살피세요.


(*참고 논문)
Inhibiting and facilitationg conditions of the human 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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