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은 인사의 기초   

2011. 3. 11. 09:00



여러분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회사에 근무한다면 업적평가와 함께 역량평가를 받을 겁니다. 역량평가를 실시하려면 먼저 '역량모델'이 설계가 되어야 합니다. 역량모델은 조직에서 하나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 기술, 특성의 조합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선발, 교육, 평가, 승계계획(Succession Plan) 등을 위한 관리도구로 활용됩니다.

역량모델을 구축하는 방법, 즉 역량모델링은 많은 기업들이 이미 실행 중이라 자세한 내용은 잘 알고 있으리라(여러분이 인사 담당자라면) 판단됩니다. 헌데 제법 많은 사람들이 역량모델에 대해 몇 가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자주 제기되는 오해 3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역량모델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 즉, 무엇이 역량인지 이미 다 알고 있다’ 라는 오해
2) ‘환경이 계속해서 변하는데 어차피 바뀔 역량모델에 왜 힘을 쓰는가’ 라는 오해
3) ‘역할과 직무가 다양한데 하나의 모델로 표현할 수 있는가’ 라는 오해



첫 번째 '역량모델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란 오해는 일반적으로 회사에 오래 근무한 관리자들이 자주 제기하는 것인데, 직원들이 우수한 성과를 올리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이미 다 안다는 직감에서 나오는 오해입니다. 그들은 정리되지는 않을 뿐이지 다 아는 것을 돈을 들이고 직원들의 시간을 뺏어가면서까지 ‘멋있게’ 정리하고 증명할 필요가 있냐는 반대 의사를 보입니다.

이러한 오해는 어떻게 해서 발생하는 것일까요? 여러 회사의 인사 담당자와 인터뷰를 해보면, 몇몇 인사 담당자는 역량모델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 합니다. 그들은 직무기술서를 뭔가 있어 보이게 만들는 것에 불과하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의 근본원인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째는 몇몇 소수(일반적으로 경영자나 인사부서)의 직감으로 역량모델을 ‘대충’ 만들어 낸 탓에 담당자 스스로 신뢰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역량모델을 구축해 놓고도 그것을 선발, 평가, 교육 등 인사제도에 적절하게 반영하거나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시용으로 만들어 낸 역량모델이니 인사 운영에 활용될 리 만무할 겁니다. 바로 이런 관행 때문에 역량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하면, ‘우리 조직의 역량모델이 무엇인지 잘 안다. 다만 활용하지 않을 뿐이다’ 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오해와 저항에 대하여 인사부서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역량모델링은 무엇이 우리 조직의 성과 향상을 위해 필요한 역량인지 밝히는 과정입니다. 다시 말해 수 차례의 인터뷰와 서베이와 관찰을 통해 직원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생각을 명확히 도출하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도출된 역량모델을 선발, 교육, 평가 등에 적용하여 성과의 지속적인 향상이 가능하게 됐다면 역량모델에 투자할 만한 가치는 충분합니다.
 
오래 근무한 구성원일수록 과거의 사고방식, 기업환경 등에 기초하여 역량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상명하복’과 같은 구닥다리 신념에 근거한 역량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과거의 신념들을 깨뜨리고 새로운 조직문화 구축을 가속하기 위해서라도 역량모델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두 번째  ‘환경이 계속해서 변하는데 어차피 바뀔 역량모델에 왜 힘을 쓰는가'란 오해는 수시로 변화하는 기업 환경 때문에 어차피 다시 뜯어 고쳐야 할 것이라면 뭐하러 비용과 시간을 소요해 역량모델을 설계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기업이 시장의 요구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처하여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체질을 갖추는 일은 단시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역량모델은 특정한 상황에 일회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처방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이 갖추어야 할 ‘역량’이 무엇인지 밝혀내어 구체화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기업이 고객관계관리시스템(CRM)을 구축했거나 구축 중인데 앞으로 몇 년 후에 다른 종류의 시스템이 도입되거나 변경될 수는 있겠지만, 역량모델은 ‘고객관리’를 일관된 기준을 가지고 실행하도록 기업 고유의 ‘철학’을 제시합니다. 따라서, 역량모델이 환경에 따라 쉽게 변한다면 이것은 기업의 경영철학이 매번 환경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뀐다는 것과 다를 바 없겠죠.

세 번째 ‘역할과 직무가 다양한데 하나의 모델로 표현할 수 있는가’ 란 오해는, 조직 내에 운영관리자, 영업관리자, 생산관리자, 연구원 등 서로 다른 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역할과 직무가 다양한데 이를 역량모델이라는 하나의 공통모델로 묶으려는 시도는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에서 비롯됐습니다. 이는 역량모델의 구성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역량모델은 일단 전사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역량을 먼저 고려하여 설계됩니다. 즉, 인사팀장이든 영업사원이든 우리 회사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갖추어야 할 행동의 특성을 명확하게 해 주는 것이 역량모델입니다. GE의 경우 ‘1등 아니면 2등’ 철학은 일부의 역할 및 직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사고와 행동의 특성을 규정하는 '지시봉'입니다.

앞서나가는 기업이라면 경영자에서 말단 사원을 꿰뚫는 서너개의 역량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하며 역할 또는 직무별로 그런 역량을 갖추기 위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세번째 오해에서 말하는 역할 및 직무별 다양성은 ‘역량의 개별적 구성’이 아니라 ‘역량개발방안의 차별성’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또한 역량모델은 전사적으로 공통적으로 갖추어야 할 역량(이를 공통역량이라 함) 뿐만 아니라, 각 역할과 직무에 따라 특수하게 요구되는 개별역량(이를 직무역량이라 함)도 함께 고려하기 때문에 세 번째 오해는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역량모델을 갖춘다고 조직의 성과가 향상되는 것은 아닙니다. 역량모델을 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여러 필요조건 중 하나이지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나 역량모델은 인사제도의 기초공사에 해당합니다. 기초공사 없이 그 위에 인사제도를 쌓아올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회사의 비전에 직원들의 행동과 사고를 정렬시키는 도구인 역량모델을 다시 점검해 보기 바랍니다. 회사는 이 산으로 가려고 하는데 직원들은 저 산으로 가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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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을 보면 여기저기서 '시나리오 플래닝을 통해 경영의 방향을 수시로 점검하겠다' 라든지, '시나리오 경영으로 위기를 타개하자'라는 글을 종종 접한다. 시나리오 플래닝을 전문으로 하는 나로서는 그와 같은 기사가 무척 반가울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이제 예측 관행을 버리고 드디어 미래의 불확실성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구나'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 회사들이 과연 어떻게 시나리오 플래닝으로 전략을 수립했는지 알아보려고 지인들에게 연락을 취해보면, 하나같이 이런 대답이 들려온다. '금시초문인데' 라든가, '그냥 선언적인 이야기일 뿐이야'고 말이다. CEO 혼자만의 아이디어이거나, 조직에 위기감을 불어 넣으려고 시나리오라는 단어가 주는 묵직함을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소리도 들린다. 애석한 일이다.

그 중 더욱 애석한 대답은 시나리오 플래닝을 긴축경영과 동의어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시나리오에 따라 전략을 별도로 마련하여 대응하는 게 시나리오 플래닝의 본래 의미다. 헌데, 비용을 감축하고 인력을 줄이며 계획했던 투자안을 일단 보류부터 하고 난 다음에 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자는 뜻으로 시나리오 플래닝이나 시나리오 경영을 언급한다.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기보다 그저 찬바람을 피하려고 몸을 움추리는 것과 마찬가지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컨틴전시 플래닝을 시나리오 플래닝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컨틴전시 플래닝은 매우 중대하고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논하는 과정이다. 반면에 시나리오 플래닝은 불확실성이 큰 환경변수들이 미래에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지를 '그리는' 과정이다. 모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기법이라서 언뜻 보면 비슷한 듯 하지만, 사고의 전개가 매우 다르다.

컨틴전시 플래닝은 위급한 상황(이를 와일드 카드라고 한다)이 발생하고 난 후의 처리/대처방안에 무게중심을 두는 과정인데 반해, 시나리오 플래닝은 현재에서 미래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펼쳐질 여러가지 상황(이를 시나리오라고 한다)을 그려보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예컨데,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면 어떻게 후속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를 논하는 과정이 컨틴전시 플래닝이다. 시나리오 플래닝 관점에서는 공장의 화재도 불확실성을 내포한 하나의 변수로 간주될 뿐이다.

삼성전자가 3개월 혹은 6개월 단위로 경영전략을 수정하는 '시나리오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기사가 종종 나오지만, 이 또한 시나리오 플래닝이나 시나리오 경영과는 무관하다. 그런 것은 그냥 '단기 롤링 플랜'이라고 이름 지어도 된다. 거창하게 시나리오 플래닝이란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5년 정도의 장기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조직의 중대한 의사결정을 다른다. 짧게 잡아도 2~3년 후의 미래를 상정한다. 3~6개월의 단기적인 이슈는 시나리오 플래닝 관점에서는 매순간 변하는 주가 그래프에 불과하다.

그처럼 단기적인 이슈에 매몰되면 미국식 성과주의의 폐해인 단기적 마인드의 경영 관행이 해소되지 못하고 고질병으로 고착됨을 주의해야 한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발을 휘젓다가 불똥이 초가 삼간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위기가 곧 기회'라고 말하는데, 문장 속에 숨은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남들이 허겁지겁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려고 할 때, 차분하게 미래를 생각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사람에게만 위기는 기회가 된다. 단기적인 위험을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정리해 보자.

시나리오 플래닝 ≠ 긴축경영
시나리오 플래닝 ≠ 컨틴전시 플래닝
시나리오 플래닝 ≠ 단기 롤링 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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