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팀에 특별히 남에게 많이 베풀고 자신은 이득을 적게 취하는 이타적인 직원이 있다면 그가 여러분의 팀에 계속 남아있기를 원합니까? 아마 여러분은 당연히 '그렇다'라고 답하겠지만, 과연 그가 팀원으로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원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솔직히 여러분은 남들과 다른 행동을 보이는 그가 어서 팀에서 떠나주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워싱톤 주립대의 심리학자 크레이그 파크스(Craig D. Parks)는 아사코 스톤(Asako B. Stone)과 함께 이 불편한 추정이 사실임을 실험을 통해 규명했습니다. 그는 104명의 학생들을 모집하여 각자 5명으로 구성된 팀의 일원이라고 가정하게 했습니다. 10포인트씩 지급 받은 학생들은 컴퓨터 상에서 일종의 기부 게임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학생들이 자기 포인트의 일부 혹은 전부를 기부하면 두 배의 포인트가 팀 공동계좌에 적립되는 방식이었죠. 학생들은 기부를 끝낸 후에 팀 공동계좌의 잔고 중에서 최대 4분의 1까지 포인트를 꺼내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10번의 라운드를 실행한 다음에 학생들은 자기계좌에 쌓인 포인트를 교내에서 쓸 수 있는 쿠폰으로 교환할 수 있었죠.



파크스는 게임을 끝낸 후에 실험 대상자인 학생에게 다른 팀원들(사실은 가상의 팀원들)들이 얼마나 기부하고 얼마나 인출했는지를 알려줬습니다. 3명의 팀원은 팀의 평균만큼 기부하고 인출했지만, '제4의 팀원'은 팀의 평균보다 많거나 적게 기부하고 팀의 평균보다 많거나 적게 인출했다고 실험 대상자에게 전했습니다. '제4의 팀원'이 적게 기부하고 적게 인출했거나 많이 기부하고 많이 인출했다면 '공정한 팀원', 적게 기부하고 많이 인출했다면 '이기적인 팀원', 많이 기부했지만 적게 가져갔다면 '이타적인 팀원'으로 볼 수 있겠죠. 파크스는 학생들에게 '제4의 팀원'이 이 기부 게임에 함께 할 팀원으로 계속 남아있기를 바라는지를 9점 척도로 질문했습니다.

파크스는 '제4의 팀원'이 많이 기부하고 적게 인출하는 '이타적인 팀원'일 때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을 거라고 기대했지만(즉 실험 대상자들은 '이타적인 팀원'과 계속 게임을 하고 싶어할 거라 기대했지만), 그 예상은 크게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제4의 팀원'이 적게 기부하고 적게 인출하는 '공정한 팀원'일 때 가장 높은 점수(6.31점)를 얻었지만, '이타적인 팀원'일 경우에는 고작 3.45점 밖에 얻지 못했습니다. 이 값은 적게 기부하고 많이 가져가는 '이기적인 팀원'이 얻은 2.35점과 비교해 별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타적인 팀원도 이기적인 팀원과 마찬가지의 정도로 조직에서 '축출' 대상으로 평가 받는다는 의미로 볼 수 있는 결과였죠.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제4의 팀원'이 다른 사람에게 무능하거나 행동의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었지만, 파크스는 비슷한 방식의 후속 실험을 통해 '제4의 팀원'이 보이는 무능함 여부와 행동의 일관성 여부는 별 관련이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여전히 '이타적인 팀원'은 '이기적인 팀원' 만큼 인기가 없었고 축출되어야 할 대상으로 평가 받았으니 말입니다.  

왜 '이타적인 팀원'들은 함께 할 팀원으로 인기가 없을뿐더러 축출의 대상이 된 걸까요? 파크스는 다시 한번 동일한 실험을 수행한 다음에 '제4의 팀원'에 대해 왜 그런 평가를 내렸는지 글로 설명하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 다음, 이 실험의 목적을 모르는 2명의 심사자에게 실험 대상자들이 쓴 글의 내용을 몇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작업을 맡겼습니다. 그 결과, 95%의 실험 대상자들은 '이타적인 팀원'이 다른 팀원들과 비교하여 특이한 행동 패턴을 보인다는 이유로, 그리고 팀의 암묵적인 규범을 깨뜨린다는 이유로 그를 팀에서 축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습니다. 예를 몇 개 들어보면, "아무도 그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그 팀원이 다른 팀원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 "많이 기부하고 적게 가져가는 것은 이상한 행동이다", "아주 부자가 아니라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라는 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이타적인 직원이 조직 성과에 기여하는 수준이 다른 누구보다 높기에 그들이 조직에 남아있도록 보상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맡은 업무목표만을 달성하려고 타인의 협조 요청을 묵살하는 이기적인 행동은 옳지 않다고 또한 생각합니다. 그러나 파크스의 실험은 우리의 의도와 현실이 매우 다를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개인 간의 경쟁을 통해 조직의 성과를 제고하겠다는 문화는 이타적인 행동이 좋은 평가를 받고 높은 연봉을 받는 데에 불리하다는 점을 보이지 않는 규범으로 만들어 직원들의 뇌리에 심어 놓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업무목표 달성을 희생하면서까지 조직의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이타적인 직원은 비록 고맙긴 하지만 같은 공간에 함께 하기가 왠지 꺼려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아주 이기적인 것처럼 보이잖아', '왜 저렇게 혼자서 애쓰나? 그냥 다들 하는대로 할 것이지, 뭐가 잘났다고....'라 생각하며 불편해 합니다. 이타적인 사람들이 '나'의 입지를 흔드는 위험한 인물로 여기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들에게 좋은 평가를 주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파크스의 실험은 내부 경쟁을 권장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타적인 직원들이 설 땅은 점차 좁아지고 결국은 다른 직원들에 의해 서서히 조직 바깥으로 퇴출되고 말 거라는 우울한 결론을 우리에게 시사합니다. 원래는 이타적인 직원도 이타심을 줄이거나 버리려 할 거라는 점도 일러줍니다. 이타적인 직원을 보호하는 다른 장치가 없다면 말입니다. 경쟁은 이기적인 자를 살리고 이타적인 자를 죽이는 가장 은근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방법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조직에서는 이타적인 팀원이 얼마나 남아있습니까?


(*참고논문)
The Desire to Expel Unselfish Members From the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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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디 이타적이다   

2012. 2. 6. 10:34



인간은 본디 이기적일까요, 아니면 이타적일까요? 이 질문은 사실 꽤 민감해서 성선설이니 성악설이니 하면서 오래 전부터 여러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는 양상과 비슷한 논란을 야기합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보느냐 이타적인 존재로 보느냐에 따라 인간을 대하고 다루는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생존을 위해 자기에게 유리한 것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존재로 인간을 규정한다면, 그러한 이기심이 조직과 사회의 안녕을 해치지 않도록 하고 나아가 시너지를 구축하도록 하기 위해 통제와 명령으로 인간을 다스리고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 당위성을 갖습니다. 반대로, 생래적으로 타인을 돕고 자신을 기꺼이 희생함으로써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 받고 보호 받으려는 존재로 인간을 바라본다면,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을 존중하고 타인과 사회에 기여하려는 내적 동기를 극대화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습니다.



인간이 본디 이기적인지 이타적인지에 관한 논쟁은 이 블로그에서 다루기에는 상당히 버거운 주제입니다. 하지만,   유아와 침팬지를 대상으로 실험한  펠릭스 바르네켄(Felix Warneken)과 마이클 토마셀로(Michael Tomasello)의 연구 결과를 들여다 본다면, 인간이 본디 이타적인 동물이라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연구자들은 17.5~18.5 개월 정도인 24명의 유아를 대상으로 여러 가지 간단한 과업을 진행했습니다. 실험자가 일부러 펜이나 빨개집게를 떨어 뜨리고 손에 안 닿는 척 하거나, 손에 물건을 가득 들고 있어서 캐비넷 문을 열지 못하는 척 하거나, 또는 책을 쌓다가 실수로 책을 미끄러뜨렸을 때 유아들이 어떤 행동을 보일지 관찰했습니다. 모두 10가지의 과업을 각각 몇 차례씩 수행한 결과, 유아들은 10회 시도할 때마다 5.3회 정도 실험자를 도와주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대조 조건(control condition)일 때의 1.5회에 비하면 확실하게 차이가 나는 결과였죠. 

유아 각각을 대상으로 분석해 보니 24명 중 22명의 유아들이 적어도 한 번 이상 실험자를 도왔습니다. 개인별로 차이가 있긴 했지만, 어떤 유아가 항상 남을 돕는지 또 어떤 유아가 절대로 남을 돕지 않는지 구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바르네켄과 토마셀로는 비슷한 실험을 세 마리의 침팬지를 대상으로 실시했습니다. 침팬지는 인간과 동일한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영장류이기에 이타성의 본류를 확인하는 데에 좋은 실험 대상이죠. 침팬지들에게도 모두 10가지 종류의 과업을 실시했는데, 예를 들어 실험자가 테이블을 스폰지로 닦다가 일부러 떨어뜨리고는 집어올릴 수 없는 척 하거나, 손에 물건을 잔뜩 들고 있어서 바닥에 있는 물건을 치우지 못해 바닥에 앉지 못하는 척 하거나 했죠. 그 결과, 유아를 대상으로 했을 때와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비록 유아들보다는 도와주는 회수가 적었지만(물건을 가지고 놀려는 습성을 보여서), 침팬지들은 대조 조건에 속할 때보다 실험 조건에 속할 때 도움이 필요한 실험자를 더 많이 돕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다음의 링크를 누르면, 실험의 결과를 동영상으로 간단하게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1번부터 4번은 유아들 대상의 실험이고, 나머지는 침팬지 대상의 실험입니다.

Movie S1
Clothespin Task

Movie S2
Cabinet Task

Movie S3
Book Task

Movie S4
Flap Task

Movie S5
Lid Task (Alexandra)

Movie S6
Mould Task (Alexandra)

Movie S7
Sponge Task (Alexandra)

Movie S8
Lid Task (Annet)


바르네켄과 토마셀로의 실험은 인간이 남을 도우려는 이타심을 타고났을 거라고 짐작케 합니다. 이타심이 발현되는 이유가 사회로부터 배척 당하지 않고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해도, 또는 '이기적 유전자' 관점에서 유전자가 자신의 복제 가능성을 높이려고 숙주인 인간을 이타적으로 행동하도록 조종하는 것이라 말한다 해도, 그 이유가 뭐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댓가 없이 타인을 도우려는 심성을 가지고 있음을 이 실험이 (비록 단편적이지만) 보여줍니다.

심리학자이자 경영학자인 더글러스 맥그리거(Douglas McGregor)는 조직의 구성원들을 어떤 가정을 가지고 대하느냐에 따라 'X이론'과 'Y이론'을 주창했습니다. X이론은 직원들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체크해야 하고, 동기가 사라지면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바른 길로 가도록 끊임없이 동기를 불어넣어야 한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통제와 규율, 당근과 채찍을 통한 경쟁을 강조하죠. 반면, Y이론은 직원들이 성취감과 자기실현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솔선하며 자율적인 책임 하에 목표에 헌신한다는 관점입니다. 따라서 Y이론 하에서는 자유와 창의, 협력과 상호존중을 기치로 삼습니다.

바르네켄과 토마셀로의 실험은 Y이론을 지지합니다. 인간은 본디 이타적이고 선한 존재이므로 자율을 부여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할 경우 최고의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는 길임을 시사합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여러분을 이타적인 존재로 대합니까, 아니면 이기적인 대상으로 바라봅니까? 이는 매우 근본적이고 중요한 질문입니다. 인간은 본디 이타적이고 적어도 이기적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참고논문 : Altruistic Helping in Human Infants and Young Chimpanze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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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션을 낮추거나 없애세요   

2011. 4. 12. 09:00



심리학자 헨리 타이펠(Henri Tajfel)은 한 슬로베니아 친구가 유고슬라비아의 빈민촌에서 이주해 온 보스니아인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말하는 것을 듣고 실험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그와 동료들은 자신이 소속된 집단(in-group, 내집단)과 소속되지 않은 집단(out-group, 외집단)을 대하는 태도와 행동이 다른지를 실험을 통해 규명하기로 했죠. 타이펠은 영국의 브리스톨 시에 사는 14~15살 남자 학생 64명을 상대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학생들은 수많은 점들이 찍힌 화면을 보고 정해진 시간 내에 점의 개수를 세어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점들이 많이 찍혀 있기 때문에 개수를 세는 일이 그리 녹록치는 않았습니다. 그런 다음 타이펠은 학생들을 실제의 개수보다 많이 헤아린 그룹과 실제의 개수보다 적게 헤아린 그룹, 이렇게 8명씩 두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이렇게 과대측정 그룹과 과소측정 그룹으로 구분했다고 학생들에게 알려줬죠. 하지만 타이펠은 학생들을 무작위로 두 그룹에 배정하는 트릭을 썼습니다. 점의 개수를 센 것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룹을 나눈 겁니다.



이렇게 그룹을 나누고 나서 타이펠은 학생들에게 돈을 주고 그 돈을 다른 학생들에게 배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지시 받은 학생은 그 돈의 일부를 가져서는 안 되고 모두 배분해야 했죠. 이 때 그 학생은 자신이 돈을 배분해 줄 다른 학생이 내집단인지 외집단인지 알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의사결정은 철저하게 익명성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죠. 이를 통해 타이펠은 학생들이 내집단과 외집단에 대해 차별적인 결정을 내릴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어느 정도 결과를 예상할 겁니다. 실험 결과, 내집단 학생들에게는 돈을 더 많이 분배하고 외집단 학생들에게는 적게 분배하는 패턴이 발견되었습니다. 즉 과대평가 그룹은 과대평가 그룹에게, 과소평가 그룹은 과소평가 그룹에게 우호적인 의사결정을 내린 것이죠. 자신이 돈을 가질 수가 없었기에 어떻게 결정하든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집단에게 유리하도록 외집단을 차별한 겁니다. 그저 점의 개수를 많이 헤아리거나 적게 헤아렸다는, 의미 없는 구분에 의해서도 이런 차별이 발생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죠.

타이펠은 후속 실험을 통해 내집단을 옹호하고 외집단을 차별하는 경향이 '상대성'의 특징을 가진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는 피실험자들에게 두 가지 선택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자기 집단에 11점을 주고 타집단에 7점을 준다' 였고, 다른 하나는 '두 집단 모두에게 17점을 준다'였습니다.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안다면 두 집단 모두에게 17점을 준다는 옵션을 선택할 겁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첫 번째 옵션을 선택한 사람들이 아주 많았죠. 6점이나 손해를 보면서도 자기집단을 타집단과 구분하려는 욕구가 크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 실험이었습니다.

타이펠의 실험은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지금도 만만찮은 반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분리하면 알게모르게 구성원들 사이에 불안과 긴장감이 조성되는데 이를 제거하면 내집단을 옹호하는 현상이 사라진다고 마이클 호그(Michael Hogg)라는 학자는 주장합니다.

그러나 타이펠의 실험에서 점의 개수를 단순하게 많이 세거나 적게 셌다는 최소한의 이유로 집단을 나눴는데도(이를 '최소집단'이라고 함) 내집단과 외집단 간의 차별이 명확해졌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집단을 구분할 만한 이유가 보다 그럴 듯하고 보다 논리적이라면(예를 들어 수학 문제를 잘 푼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으로 나누면), 외집단에 대한 차별과 고정관념, 그리고 내집단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이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의미 없는 '집단 구분'조차 구성원들의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 실험은 기업에서 단위조직을 나누고 합치는 '조직도 그리기'에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업무의 효율과 효과를 따져 팀이나 사업부를 구분하는데, 이렇게 정해진 팀과 사업부가 독자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이기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전사적으로 볼 때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피해를 주는 경우가 왕왕 나타납니다. 여기에 냉정한 성과주의가 결합되면 단위조직 사이에 놓은 벽은 더 높아지기 마련이죠.

하다못해 사무실에 파티션(큐비클)을 설치하는 '작은 행동'에 의해서도 내집단과 외집단 간의 긴장감이 더욱 높아질 수 있습니다. 보통 팀과 팀을 구분하기 위해서 앉은 상태에서는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파티션을 높게 설치하는데, 하루 종일 다른 팀 사람들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퇴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팀 내부의 결속과 우의를 다지는 데 좋을지는 몰라도, 고작 몇 센티미터 높은 파티션이 팀 간의 협력과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요소로 자리잡는다면 파티션 설치에 들어간 비용보다 훨씬 큰 돈이 빠져나간다는 뜻이겠죠.

그렇다고 단위조직을 나누지 않고 '통으로' 조직을 관리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쾌적한 근무환경을 위해 파티션을 설치하지 않을 수도 없겠죠. 문제는 집단 구분으로 인한 이득과 비용의 최적점을 찾는 일입니다. 지나치게 조직을 세분해서도 안 되고 지나치게 조직을 방대하게 가져가서도 안 되겠죠. 나이가 많거나 직급이 높은 사람에게 자리를 주기 위해서 기존의 팀을 쪼개 새로운 팀을 만들거나, 성과 측정을 용이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팀을 세분하는 일은 팀과 팀 사이의 의사소통 비용을 증가시켜 결과적으로 회사의 성과를 좀먹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병폐가 될 겁니다.

요즘엔 팀과 팀 사이, 개인과 개인 사이의 파티션을 없애거나 낮추고 상대방의 얼굴이 보이도록 유리로 바꾸는 회사가 늘어난다고 합니다. 업무의 필요에 의해 팀을 구분하되 팀 사이의 '물리적인 장벽'은 없앰으로써 팀 간의 협력을 도모하겠다는 뜻이겠죠. 여러분의 회사가 '팀 이기주의'로 만연해 있다면 파티션을 없애거나 낮추는 작은 조치만으로 문제를 해결할지도 모릅니다. 타이펠이 점의 개수를 많이 셌느냐 적게 셌느냐는 사소한 차이로 집단을 구분해도 집단 간 차별이 발생했다는 것의 '역(易) 적용'이 되겠죠.

단위조직 구분의 최적점을 찾는 일. 이것은 늘 조직의 숙제였고 앞으로도 그러할 겁니다. 상황에 따라 최적점이 변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죠. 집단과 집단 사이의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일. 이것이 중용의 마인드를 가져야 할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이것이 어렵다면 당장 파티션부터 낮추거나 없애보면 어떨까요?
 
(*참고논문 :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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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인 직원을 보호하세요   

2010. 12. 22. 09:00



이타적인 사람과 이기적인 사람 중 누가 조직에서 이득을 얻을까요? 이타적인 사람과 이기적인 사람이 만나면 당연히 이기적인 사람은 이득을 얻는 반면에 이타적인 사람은 손해만 입게 됩니다. 이타적인 행동은 치명적인 단점이 되어 조직 내에서의 생존을 어렵게 만듭니다.

이타적인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들로부터 '착취'를 당하게 되면서 조직에서 이탈(퇴사)하거나, 이기적인 행동이 생존을 보장 받고 이득을 극대화하는 데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전향하게 됩니다. 그래서 종국에는 조직에 이기적인 사람들만 바글거리는 상황으로 치닫고 말죠. 이것이 바로 게임이론에서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연구자들이 수행한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하지만 순전히 이기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직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조직 내에는 이타적인 사람과 이기적인 사람들이 섞여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의 조직을 들여다 봐도 모두 이타적인 사람들로 구성된 경우나 모두 이기적인 사람들로 구성된 경우는 없을 겁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골고루' 섞여 있죠.

이론 상으로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바글거릴 수밖에 없는 조직에 이타적인 사람이 함께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조직 내에서의 경쟁 뿐만 아니라, 조직 간의 경쟁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조직 내에서 개인들끼리 더 많은 연봉을 획득하거나 높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기도 하지만, 타사보다 강한 지위(시장점유율 등)를 얻기 위해 경쟁해야 합니다.

다른 조직과 경쟁하려면 구성원들의 이타적인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개인들도 조직 간의 경쟁이 치열하면, 협력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유리하지 않음을 알아차립니다. 서로 똘똘 뭉치지 못해 경쟁사에게 무릎을 꿇는다면, 이득의 원천인 회사가 어려워지거나 망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현실에서 이기적인 사람 뿐만 아니라 이타적인 사람이 조직 내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조직 간의 경쟁이 이타주의자들을 보호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타적인 사람과 이기적인 사람들이 각각 어느 정도의 비율로 섞여 있냐는 것입니다. 경제학자 허버트 긴티스와 인류학자 로버트 보이드는 컴퓨터를 활용한 시뮬레이션 실험을 통해 "조직(집단) 간의 경쟁이 충분히 크면, 이타주의자들의 인구 비율이 높게 유지된다"라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조직 간의 경쟁이 크면 → 이타주의자들이 많다    (O)

이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긴티스와 보이드의 결과가 옳다면(참이라면), 여러분을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1) 조직 간의 경쟁이 약하면 → 이타주의자들이 적다(이기주의자들이 많다)
(2) 이타주의자들이 많은 조직은 → 조직 간 경쟁이 크다
(3) 이타주의자들이 적은 조직은 → 조직 간 경쟁이 약하다

 (1)번 추론 '조직 간의 경쟁이 약하면, 이타주의자들이 적다'는 옳을까요? 이 추론은 논리적으로는 참이라 볼 수 없습니다. 'A이면 B'가 참이면, 'A가 아니면 B가 아니다'도 참이다, 이렇게 말하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긴터스와 보이드가 '조직 간 경쟁의 강도가 약할 때 이타주의자들의 인구 비율이 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죠.

그러나 조직 간의 경쟁이 약하거나 없으면, 개인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이득을 최대화하기 위한 지배적인(dominant)한 전략으로 채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기적으로 행동해도 조직이 망할 위험이 적어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1)번 추론이 옳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1)번 추론이 맞다고 가정하면 조직 간의 경쟁이 약한 상황, 즉 독점이거나 과점의 지위를 누리는 기업이나 경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공공기관이라면 평균적인 조직에 비해 이기주의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1)번 추론이 참이면, 그것의 대우명제인 (2)번 추론(이타주의자들이 많으면 조직 간 경쟁이 크다)도 참입니다. 산업의 경쟁 양상을 알지 못하더라도 조직 내에 이타주의자들이 많이 존재한다면 "아, 이 기업이 속한 산업의 경쟁이 치열하거나 치열해지는 중이구나"라고 인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3)번 추론(이타주의자들이 적은 조직은 조직 간 경쟁이 약하다)은 긴터스와 보이드가 밝힌 사실의 대우명제이기 때문에 역시 참입니다. 이타주의자들이 적고 이기주의자들이 많으면 그 산업의 경쟁 양상이 그리 치열하지 않다는 뜻이겠죠.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기업 간의 경쟁이 치열하면 조직 내에 이타주의자들이 많아서 서로 협력을 도모하는 경향이 큽니다. 반대로, 독점의 지위를 누리거나 산업 자체가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면 조직 내에  이기주의자들이 많아져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조직의 성과를 갉아 먹어나 무임승차하는 양상이 심할지 모릅니다.

또한 직원들 간의 협력 정도(즉 이타성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면, 그 회사가 속한 산업의 경쟁 양상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협력의 정도가 산업의 경쟁 양상을 나타내는 거울이라는 의미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조직에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얼마나 '포진'되어 있습니까? 만약 그들이 지나치게 많다면 경쟁사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 겁니다. 이타적인 직원들은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그가 속한 조직에는 큰 도움이 되는 존재입니다.

특히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복잡해지는 산업 환경에서는 이타적인 직원들이야말로 이기적인 직원들로부터 보호해야 할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들이 협력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그들을 얼마나 잘 보호하고 있습니까? 이타적인 직원을 잘 보호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조직관리(혹은 성과관리)가 아닐까요?


(*참고도서 : '사회적 원자', 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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