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없는 삶, 야근이 축복인 삶   

2012. 12. 18. 09:00


저녁이 없는 삶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는 당내 경선에서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노동자들의 삶의 질과 복지를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제시한 바 있다. 비록 그가 경선의 승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저녁이 있는 삶’은 우리의 노동자들이 극심한 생존 경쟁(Rat Race)이라는, 빠져 나오기 힘든 쳇바퀴에 갇혔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경쟁자인 문재인 후보가 자존심을 꺾으며 ‘저녁이 있는 삶’을 자기에게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는 것 역시 저녁이 ‘없는’ 삶 때문에 직장인들이 얼마나 큰 고통 받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반영한다.


저녁 6시는 더 이상 퇴근 시간이 아니다. 야근을 준비하기 위해 뱃속에 먹을 것을 채우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된 지 꽤 오래된 듯하다. 과도한 업무량을 처리하고 빡빡하게 짜인 일정을 맞춰야 하기에 정시 퇴근은 꿈도 꾸지 못한 채 밤 10시가 넘도록 책상을 지켜야 하는 날이 비일비재하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35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일주일에 평균 2.8일을 야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 야근한다는 대답도 23퍼센트나 나왔다.


이렇게 자의 반 타의 반 매일 야근을 지속하는 직원들은 당연히 수면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2011년에 모 취업 포탈 사이트에서 직장인 5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평균 수면 시간은 권장 수면 시간보다 2시간 정도 적은 6시간 10분 밖에 되지 않으며, 그 이유가 과도한 업무로 퇴근을 늦게 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42.9퍼센트로 가장 많았다.67 또한 2011년에 실시된 OECD조사는 2010년에 우리나라 전체 고용인구의 연간 노동시간이 2,193시간으로서 OECD 평균인 1,749시간보다 444시간이나 길다고 말한다.



야근하면 생산성이 올라갈까?


그래도 야근을 하면 그만큼 오래 일하니까 생산성이 높아지고 성과도 향상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최근에 나온 연구 결과는 야근과 생산성 사이에 긍정적이기는커녕 강한 부정적 연관성이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데이비드 와그너(David T. Wagner)와 동료들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수면 시간이 줄어들면 낮에 회사에서 인터넷 서핑을 하는 데에 쓸데없이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잠을 덜 잔 사람일수록 연예인을 소재로 한 가십 기사나 스포츠 기사처럼 업무와 상관없는 내용을 읽느라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와그너는 96명의 학생에게 실험 전 날 수면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팔찌를 잔 채 잠을 자도록 했다. 와그너는 다음 날 아침 실험실에 모인 학생들에게 대학 교수직에 지원한 사람의 42분짜리 시범 강의 동영상을 보여주고 컴퓨터 상에서 그 사람의 강의 능력을 평가하도록 했다. 평가에 사용된 컴퓨터는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었기에 학생들은 동영상을 보며 언제든지 인터넷에 곁눈질을 할 수 있었다. 전날 밤에 잠을 많이 못 잤거나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학생일수록 강의 동영상을 보지 않은 채 인터넷을 하며 딴짓을 많이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와그너의 연구는 야근으로 인해 수면의 질과 양이 떨어지면 다음날 낮의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잦은 야근이 비록 피곤할지언정 결과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성과를 향상시킬 것이다’란 세간의 통념은 옳지 않다. 오히려 잦은 야근은 생산성을 갉아먹는 벌레인 셈이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수면의학 교수인 찰스 짜이슬러Charles A. Czeisler는 “24시간 한숨도 자지 않거나 1주일 동안 하루에 4~5시간 밖에 자지 않으면, 혈중 알코올 농도 0.1퍼센트에 해당하는 신체 장애가 나타난다.”라고 말하며 수면 부족의 위험을 경고한다. 0.1퍼센트면 법적으로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수치다. 과중한 업무로 인해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직원이 있다면 그는 일주일 내내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야근하면 나쁜 행동을 더 많이 한다


야근을 줄여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야근이 생산성 저하뿐만 아니라 비윤리적인 행동을 유발하고 강화하는 강력한 인자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반스(Christopher M. Barnes)와 동료들은 수면이 개인의 비윤리적인 행동과 깊은 연관성을 가짐을 실험을 통해 규명했다. 반스의 실험에서 절대적으로 수면시간이 부족하고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직원들은 상사와 동료로부터 비윤리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그런 직원들은 동료가 자신의 일을 대신 처리해 주는 선행에 고마워 하지 않거나 미안해 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후속실험에서는 수면이 부족한 학생일수록 돈이 걸린 게임에 참여할 때 다른 참가자들을 속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른 참가자를 속인 학생들이 정직하게 게임에 임한 학생들에 비하여 전날 밤에 평균 22.39분을 덜 잤을 뿐인데도 비윤리적으로 행동했던 것이다. 수면 부족이 사고력과 자기절제력을 약화시켜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그렇다면 적정 수면시간보다 2시간 정도 적은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몸 상태가 조직의 윤리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반스의 실험은 적은 인력으로 많은 업무량을 소화하도록 함으로써 얻는 생산성의 일시적인 증가가 장기적으로 볼 때 비윤리적인 ‘나쁜 성과’에 의해 상쇄된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은 아닐까?


마이클 크리스천(Michael Christian)와 동료들이 수행한 또 다른 연구에서도 수면 부족이 일탈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유발한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크리스천은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는데, 교대 순번이 바뀌어(예컨대 낮 근무에서 밤 근무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간호사들이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자주 드러내는 모습을 관찰했다.

 


야근을 많이 해야 승진이 잘 될까?


관리자들에게 어떤 직원에게 높은 점수를 주는지 물으면,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일한다고 해서 결과물이 좋은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며 업무의 질이 훌륭한 직원을 높이 평가한다고 답한다. 그러나 경영학자인 킴벌리 엘스바흐(Kimberly D. Elsbach)와 동료 연구자들은 간단한 연구를 통해 직원들이 밤늦게까지 남아 일하는 모습을 얼마나 자주 보이느냐가 평가와 승진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근무시간이나 근무시간 외의 ‘얼굴 보이는 시간’이 평가를 왜곡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르네 랜더스(Renée M. Landers)의 연구로 더욱 분명해진다. 그는 변호사들로 이루어진 로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변호사들의 야근이 파트너로 승진하는 데에 중요한 변수임을 밝혔다. 랜더스는 업무 환경이 비슷한 경우, 평가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경우, 업무가 복잡하여 질적 요소를 올바로 측정하기가 어려운 경우, 구성원 간의 능력 차가 크지 않은 경우, 회사에 남아 오래 일하는 직원이 그렇지 않은 직원보다 승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랜더스는 이러한 심리가 ‘극심한 생존경쟁(Rat Race)’을 야기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경쟁이 극심할수록 작은 차이가 큰 결과로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때 야근은 다른 사람에게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얼마나 높은지를 어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수단이 된다. 잦은 야근은 직원 개인의 건강 차원, 조직의 생산성 차원, 윤리적인 조직문화 차원 등에서 모두 바람직하지 않지만, 승진할 자리가 부족하고 차등 보상이 존재하는 경쟁 상황에서는 애석하게도 이러한 ‘역선택’은 더욱 강화되어 나타난다.


당신의 조직에서는 야근의 회수와 시간이 승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 만일 그 영향이 크다는다면, 당신은 ‘쥐들의 달리기 경주’에 이미 참가 중이고 그 때문에 직원들은 차차 소진(burn-out)되어 갈지 모른다.

 


야근은 축복이 아니라 사회악이다


한국은행의 김중수 총재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젊었을 때 일을 안 하면 아주 나쁜 습관이 들어서 그 다음에 일을 하나도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야근은 축복인 것이다.”라고 말하여 수많은 직장인들의 공분을 산 적 있다. 그의 생각은 야근을 개인의 경쟁력과 동일시하는 경영자들의 마인드를 대표하고 있다. 야근이 조직의 지속가능한 역량과 성과를 갉아먹는 진짜 주범이라는 점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짜이슬러는 음주, 흡연, 성희롱 등에 관한 기준만 마련할 것이 아니라 수면에 관한 행동기준도 명확히 설정하고 이를 준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에 따르면, 적어도 하루에 12시간 이상 근무하지 않도록 하고 절대로 16시간 이상 연속으로 근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루에 11시간 이상은 필히 휴식을 취해야 하며 일주일에 60시간 근무도 지양해야 한다.


요즘 스마트smart라는 말이 유행하다보니 직원들에게도 스마트하게 일하라고 주문하는 모양이다. 첨단기기와 시스템을 제공한다고 해서 직원들이 스마트 워커(smart worker)가 되지는 않는다. 직원들이 누구나 가진 두뇌를 스마트하게 사용하도록 독려하는 데 있어 ‘충분한 수면 보장하기’만큼 스마트한 전략도 없다.


‘저녁이 있는 삶’이 가치 있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직원들에게 ‘야근은 축복’이라고 말하는, 전혀 스마트하지 않은 발상은 이제 그만두어야 할 때다. 이제 야근은 축복이 아니라 음주운전이나 성희롱 같은 사회악이라고 인식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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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올해의 책, Top 10   

2012. 12. 13. 09:04


한 해를 뒤돌아보면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는구나'를 새삼 느낍니다. 어느덧 2012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모두에게 뜻깊은 한 해였기를 바랍니다. 제가 금년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유익하고 감동적이었던 10권의 책을 뽑아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전자책(eBook)으로 읽은 것이 3권이나 포함됐네요.


대상이 된 책은 2011년 12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제가 읽은 책들입니다. 2012년에 출판된 책이 아니라는 점을 양지해 주십시오. 지난 번과 같이 지인들(저자, 출판사 등)과 관련한 책들은 Top 10에서 제외했습니다. 이 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1위 : 혁신은 천개의 가닥으로 이어져 있다

제품 자체에 집중하는 혁신에서 생태계를 혁신으로 관점을 확장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는 매력적이고 실용적인 책입니다. 가치 청사진, 리더십 프리즘 등 전략적 통찰력을 주는 프레임워크도 신선합니다. 



2위 : Carrots and Sticks Don't Work

당근과 채찍 방식의 인사제도가 얼마나 허구인지 고발하고, 직원들을 engaged 시키는 것이 진정한 성과관리임을 강조합니다. RESPECT Model로 그 방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죠. 기업의 경영자와 관리자들은 꼭 읽어보길 권합니다. 애석하게도 아직 번역본은 없네요.



3위 : Abolishing Performance Appraisals

이 책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 없습니다. 평가제도의 해악과 그 대안을 탐색하려는 분들께 강추합니다. 읽어 보면 왜 평가를 버려야 하는지 바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게 안타깝습니다.



4위 : 관계의 본심

조직에서의 인간관계의 현실과 그 해법을 컴퓨터를 활용한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소개합니다. 특히 칭찬과 비판을 주제로 한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5위 : Thinking, fast and slow(생각에 관한 생각)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니엘 카네만의 책으로 행동경제학 전반을 총괄하는 역작입니다. 다소 양이 많아 오래 걸렸네요. 우리말로도 번역된 책입니다.



6위 : 경쟁에 반대한다

학교와 직장에서 강요되는 경쟁의 폐해를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협력과 협업을 통한 성과 창출의 이점을 강조합니다. 좀 오래된 책이긴 하지만 읽어 볼 가치가 매우 충분합니다. 이 책을 읽지 않는 것에 반대합니다. 



7위 : 언리더십

기존의 테일러식 경영, 계몽적 시각, 기능과 계급적 위계질서를 타파하여 기업에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라고 조언합니다. 경영 철학과 관련한 책이라 읽는 재미가 약간 덜할 수 있으나, 밑줄 치고 생각해 볼 주제가 많습니다. 경영자와 중간관리자 분들께 꼭 추천합니다.



8위 : 어댑트

적응과 실패를 통해 성공의 가능성을 탐색하라는 진화론적인 입장에서 미래의 불확실성을 이겨나가라고 말합니다. 



9위 : 이모션

뇌과학적 관점에서 마케팅의 방법을 흥미롭게 서술합니다. 소비자의 감정적 디테일을 파악하는 것에서 마케팅이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10위 : 앨빈 토플러와 작별하라

전문가들의 예측 실패가 얼마나 심한지, 숱한 예측 실패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의 예측에 휘둘리는 현상을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이 밖에도 좋은 책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안타깝게(?) 순위에 오르지 못한 다음의 책들도 읽어 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 <무엇이 우리의 성과를 방해하는가>

- <승자의 편견>

- <비합리성의 심리학>

- <부동의 심리학>

- <창조의 조건>

- <긍정적 이탈>

- <Drive>

- <대중의 직관>

- <죽은 경제학자의 망할 아이디어>

- <리틀벳>

- <스토리>


좋은 책이라는 마음의 '밥'으로 생각의 배를 꽉꽉 채우는 연말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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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할 때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사항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지원자가 과연 해당 직무에서 요구되는 역량을 갖춘 사람인지의 여부일 겁니다. 그렇게 하려면 역량을 파악하기 위한 질문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던져야 하고 객관적으로 지원자의 답변을 평가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는 것 역시 당연한 과제겠죠. 그러나 실제로 기업에서 행하는 채용 관행을 살펴본 노스웨스턴 대학의 로렌 리베라(Lauren A. Rivera)는 지원자의 역량이나 경력 등과 같은 자질보다는 '문화적 동질성'이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합니다. 


리베라는 법률 자문, 투자은행, 컨설팅사와 같이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서 채용 프로세스를 진행했던 임원, 인사 담당자, 중간관리자 등을 대상으로 모두 120번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40~90분 동안 이뤄진 인터뷰에서 리베라는 가상의 지원자들이 쓴 이력서를 보여주고 구두로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이 지원자의 어떤 요소를 중요시하며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죠. 또한 리베라는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 중 한 곳에서 채용 과정을 직접 관찰하고 모니터링하면서 채용 담당자들의 판단 기준을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이 두 가지 연구 방법을 통해 수집된 정보를 분석한 결과, 경영자들은 지원자의 역량 뿐만 아니라 그 지원자가 '조직의 문화와 얼마나 잘 맞는가', '동료들과 문화적으로 잘 융화될 수 있는가'를 매우 중요시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리베라의 연구에서 문화적 동질성이 채용에 중요한 요소라고 말하는 사람은 40~70퍼센트에 달할 만큼 문화적 동질성 여부는 면접관들이 지원자들을 평가하기 위한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었죠. 더욱이 리베라는 '이 지원자는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가?'와 같이 채용 결정자와 지원자 간의 개인적인 동질성 여부도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여가 활동이나 취미가 얼마나 비슷한가와 관련된 질문도 자주 등장했고 지원자의 말하는 스타일 역시 중요한 변수였죠. 


논문에서 리베라는 채용 기준을 충분히 갖춘 지원자를 라크로스나 스쿼시와 같은 운동에 관심이 적다는 이유로 탈락시킨 어느 법률회사의 관리자 이야기를 사례로 듭니다. 또한 18세기 문학에 관심이 많다는 지원자를 지나치게 '지성적'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떨어뜨린 사례도 있었죠. 리베라는 "여러 측면에서 채용을 결정하는 일이 마치 친구나 연애 상대를 선택하는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고 한마디로 정리합니다. 능력 있는 동료보다는 '같이 놀기에 좋은 친구'를 뽑으려 한다는 것이죠.


이렇게 채용 결정자들이 문화적 동질성을 지원자의 역량만큼(혹은 그보다 더) 중요시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지원자가 조직의 일원이 될 때 다른 직원들과 불필요하게 경쟁하지 않고 원활하게 의사소통하며 융화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은 아닐까요? 조금 부족한 역량은 코칭이나 교육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지만 문화적 동질성은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믿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문화적 동질성을 가진 직원일수록 자신의 업무를 즐기고 동료들과 잘 지내며 회사에 오래 근속할 거라는 믿기 때문이죠.


이유야 어떻든 간에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의 역량보다는 문화적 동질성을 중요시할 때의 장점과 단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 회사 혹은 '나'와 문화적으로 잘맞는 사람을 뽑으면 신뢰와 의사소통을 지속적으로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비슷한 문화적 성향의 사람들이 모인 조직일수록 업무 자체에 몰두하기 어려울뿐더러 집단사고의 위험도 크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채용 결정자들이 자신과 얼마나 잘 어울릴 수 있는 지원자인가를 중요시하는 탓에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를 외면한다는 것도 치명적인 단점이죠.


여러분의 채용 관행이 명시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문화적 동질성을 필요 이상으로 중요시한다면 그게 과연 어떤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필요에 따라 문화적 동질성이 더 중요한 직무가 있겠지만, 지원자의 취미가 나와 같지 않다고 해서, 내가 싫어하는 분야를 지원자가 좋아한다고 해서 충분한 능력을 갖춘 지원자를 평가절하하지 않는지 경계하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Lauren A. Rivera(2012), Hiring as Cultural Matching: The Case of Elite Professional Service Firms,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Vol. 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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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일부터 12월 6일까지 페이스북에 남긴 짧은 생각들 모음


[혁신에 대하여]


- 문제가 발견됐다는 것은 나쁜 소식이 아니라 좋은 소식이다. 새로운 비즈니스가 가능하다는 소리니까.


- 혁신적인 제품을 연구하고 사업화하는 조직은 별도의 회사로 분리하는 게 좋다. 그렇지 않으면 타부서의 압력, 악의적 견제, 질시 때문에 혁신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 고객의 니즈를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혁신은 멈춘다.


- 제품 자체에 대한 혁신은 혁신이 아니다. 제품을 둘러싼 생태계의 구조를 바꿔야 진정한 혁신이다.





[리더십에 대하여]


- 상사가 직원에게 성과에 관해 피드백해야 한다는 발상은 어쩌면 '종속관계'와 상하 위계를 당연시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 사람들의 성격이 제각기 다르듯 직원들에 대한 코칭 스타일도 다르다. 한 가지 코칭 방식을 권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 Work & Life Balance라는 말. 이 말은 어쩌면 직원들을 더 많이 일하게 하려고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산업사회적인 생각.


- 직원들은 의사소통이 안된다는 말을 많이 한다. 맞는 말일지 모르지만 스스로 얼마나 소통하려 했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의사소통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 나쁜 리더를 바로 알아보는 2가지 판별법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

  (1) 자신의 권한을 과시하며 권한을 남용한다.

  (2) 남의 탓을 많이 한다. 실패의 원인을 늘 자신의 바깥에서 찾는다.


- 직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다 알고 있는 상사는 좋은 관리자가 아니다. 그만큼 직원들에게 자율권을 주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얼마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추측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가? 추측하지 말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달라고 말하자.


- 믿음(BELIEF)에는 거짓(LIE)이 숨어 있다. BE + LIE + F.  직원들을 믿는다고 말했다면 그 믿음에 거짓이 없어야 한다. 


- 건설적인 비판이란 사실 없다. 건설적인 비판은 그 비판을 듣는 자에게는 위협적인 비판으로 느껴진다. 거의 그렇다.


- 때론 내부의 적이 외부의 적보다 무섭고 강력하다. 리더 자신이 내부의 적은 아닌지 늘 경계해야 한다.



[흥미로운 링크]


- 경영자들은 채용할 때 지원자의 실력보다는 자기와 같이 어울려 놀기에 좋은 사람을 뽑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문화적인 동질성에 끌린다는. 

http://www.forbes.com/sites/susanadams/2012/12/03/employers-hire-potential-drinking-buddies-ahead-of-top-candidates/


- 검지(두번째 손가락)가 약지(네번째 손가락)에 비해 짧을수록 공격적이고 다혈질적이며 성취욕이 강하다는. 

http://www.psychologytoday.com/blog/caveman-politics/201212/what-your-fingers-may-say-about-your-politics


- 말 한 마디의 힘. 눈물이 찔끔 나올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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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작성한 보고서에 본문의 내용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수학 공식 하나를 집어 넣으면 그 보고서를 읽는 독자에게 어떤 인상을 줄 수 있을까요? 꼭 수학 공식이 아니어도 보고서 내용을 요약하여 사칙연산이 포함된 방정식의 형태로 표현한다면 보고서의 신뢰도가 어떻게 달라질까요? 예를 들어, 제품의 매력은 제품 자체의 기능성과 제품이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감성으로 결정된다고 말로 표현하면 될 것을 '매력 = 기능성 X 감성적 어필'이라는 방정식으로 나타낸다면 독자가 어떻게 느낄 것 같습니까?





순수수학과 사회과학의 학제간 연구에 참여한 경험을 가지고 있던 스웨덴 멜라르라덴 대학의 킴모 에릭손(Kimmo Eriksson)은 이와 같은 의문을 가지고 수학 공식이 사람들의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그는 수학 공식이 들어갈 법 하지 않은 인문학이나 교육학 등의 논문에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수학 공식이 집어 넣을 경우에 사람들의 인식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에릭손은 다양한 분야의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200명의 참가자를 모집하여 권위 있는 학술지에서 뽑은 2개의 논문 초록을 읽게 한 다음에 논문의 질을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나의 논문 초록은 수렵 채집 부족 내에서 음식을 나눠 먹는 행위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지에 관한 내용이었고, 두 번째 논문 초록은 교도소 수감이 백인 구직자와 흑인 구직자의 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두 논문 모두 수학과는 거리가 멀었죠. 참가자 중 절반은 마지막 부분에 'TPP=T0fT0df2fTPdf' 라는 수학 공식이 포함된 초록을 읽었고, 나머지 절반은 수학 공식이 없는 (원래의) 초록을 읽었습니다. 사실 이 공식은 논문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참가자들은 아무 의미 없는 수학공식이 포함된 논문을 더 우수하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수학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인문학 분야의 전공자들의 편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수학 공식이 있는 논문을 수학 공식이 없는 논문보다 70퍼센트 이상 높게 평가했죠(수학 관련 전공자들고 45퍼센트 이상 높게 평가함). 이는 수학에 관한 스킬이 부족할수록 의미 없는 수학 공식이 추가된 논문의 질을 올바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소위 '수학 알러지'가 있는 사람에게 수학 공식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일종의 경외감을 선사하는 모양입니다.


에릭손의 실험은 여러분의 보고서가 독자(보통 상사)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기 위한 트릭 한 가지를 알려 줍니다. 물론 보고서의 내용과 아무 상관없는 수식을 가미하면 안 되겠지만, 가능하다면 보고서의 내용을 수학 공식으로 요약하는 것이 보고서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일러주죠. 오늘 결재를 맡거나 발표해야 할 여러분의 보고서를 한번 들여다 보고 수학 공식이 가미될 여지가 있는지 살펴보면 어떨까요? 밑져야 본전 아닐까요? ^^



(*참고논문)

Kimmo Eriksson(2012), The nonsense math effect, Judgment and Decision Making, Vol.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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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행복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돈이 많으면 행복하고 돈이 적으면 불행할까요? 여러분은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느끼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더 오래 일하고 더 많은 에너지를 일에 투여합니다. 가족과 함께 레져 활동에 쓰는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 결과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도 정작 돈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의 라라 애크닌(Lara B. Aknin)과 동료 연구자들이 수행한 실험에서 사람들이 수입과 행복과의 관계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애크닌은 참가자들에게 현재 1년간 버는 수입에 해당되는 구간에 표시하게 한 후에 "현재 당신의 삶을 전체적으로 평가한다면 어떻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런 다음, 애크닌은 10개의 수입 금액을 각각 제시하고서 "이 정도의 금액을 1년에 버는 사람은 얼마나 삶에 만족할 것 같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자신이 느끼는 행복과, 수입이 같은 조건에서 타인이 느낄 것이라고 짐작되는 행복을 서로 비교하기 위해서였죠.


전반적으로 참가자들은 자신의 수입이 많을수록 행복하다고 답했지만 상관관계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짐작해보라고 하니 수입이 낮을 때의 행복을 실제보다 낮다고 짐작하는 경향이 발견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1년에 1만 달러 밖에 벌지 못할 때의 행복 수준은 5~6점이라고 평가한 반면, 타인이 그 정도를 번다면 행복 수준이 2~3점 밖에 안 된다고 짐작했던 것이죠. 반면 높은 수입 구간에서는 자신의 행복을 측정할 때와 타인의 행복을 짐작할 때의 차이가 아주 작았습니다. 


후속실험에서 애크닌은 "당신이 그 금액을 1년에 벌게 된다면 얼마나 삶에 만족할 것 같습니까?"란 질문을 추가로 던졌습니다. 이때도 타인의 행복을 추측하라고 할 때와 동일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수입이 낮을 때의 행복을 실제로 느끼는 행복보다 훨씬 낮게 평가했으니 말입니다.


돈이 적을 때 실제보다 더 불행할 거라고 믿는 이유 때문에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과 레져 활동을 즐길 시간을 희생함으로써 더 많은 돈을 벌려는 동기가 강화됩니다. 여기에 장기적인 경기 불황과 일자리 불안까지 겹치고, 돈이면 다 된다는 배금주의가 판을 치는 요즘, 돈과 행복과의 관계는 더욱 과대평가되고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수입이 낮으면 불행해질 거라는 잘못된 믿음이 강화되는 현실입니다.


알다시피 돈은 행복에 필요한 여러 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현재 수입이 낮다고 해서, 향후에 낮은 수입이 예상된다고 해서 자신의 삶이 불행으로 치닫게 될 거라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그런 걱정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며 더 많은 양의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자신도 잘 느끼지 못하는 막연한 압박감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더 열심히 더 많이 더 빠르게'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여러분 자신의 손이 과연 무엇으로부터 기인했는지 곰곰히 따져볼 일입니다. 조직에서 직원들에게 가하는 여러 가지 '성과 채찍질' 또한 두려움에 기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일입니다. 그런 채찍질 자체가 오히려 불행의 원인일지 모릅니다.



(*참고논문)

Lara B. Aknin, Michael I. Norton, Elizabeth W. Dunn(2009), From wealth to well-being? Money matters, but less than people think, The Journal of Positive Psychology, Vol.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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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2일부터 11월 30일까지 페이스북에 적어 본 짧은 생각들


[위기에 대응하는 기업들의 습관에 관하여]


- 최근 성과가 좋고 자원이 풍부할 때 스트레치 골(Stretch Goal)을 추구해야 효과가 있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최근 성과가 나쁘고 자원도 부족할 때 스트레치 골을 설정하는 바람에 구성원들의 사기가 오히려 저하되고 실패를 경험한다.  

(*참고논문 : Sim B. Sitkin, Kelly E. See, C. Chet Miller, Michael Lawless, Andrew Carton(2011), The Paradox of Stretch Goals: Organizations in Pursuit of the Seemingly Impossible,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Vol. 36(3) )


- 위기의 해법으로 직원들에게 절박함을 강조하는 것이 과연 변화의 파고를 넘을 수 있을까? 


- 조직 구성원들에게 위기의식을 강조할수록 기존의 규칙과 오래된 전략에 집착하는 경향이 커진다. 당연한 인간의 심리다. 그래서 위기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라는 혁신적인 해법이 나올 기회를 차단해 버린다.






[혁신에 관하여]


- 기술이나 제품 개발이 아니라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지 고민할 때 혁신의 기회가 움트기 시작한다.


- 제품의 뒷면을 보거나 내부를 뜯어서 보면 그 회사가 얼마나 철저한지 알 수 있다. 보이지 않을 거라 여기는 곳까지 깔끔하게 마감하려는 회사는 충분히 100점을 받을 만하다. 정비소에서 어떤 자동차의 밑바닥을 보고 그 회사의 정신이 의심스러웠다.


- 독특한 사회구조를 가진 복잡하고 정교했던 과거 문명들은 스스로 붕괴했다. 기업도 복잡하고 정교함이 극에 달할수록 스스로 붕괴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소니와 파나소닉의 사례를 보며....



[사람관리에 관하여]


- 회사를 창업할 때 제품이나 서비스에 관한 전략은 많이 고민하지만, '사람 관리'의 철학에는 많은 고민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직원이 적더라도 인사철학을 처음부터 잡아가는 게 좋다.


- 80~90퍼센트의 기업이 평가제도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도 '평가제도가 문제다'라는 말이 성급한 일반화라고 반박한다.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성급하지 않을 수' 있나?


- 존경하는 상사에 대해 생각하라면 다들 긍정적인 형용사로 그 사람을 표현한다. 그런데도 많은 상사들은 직원들에게 공포나 위협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앞세워야 '말을 듣는다'고 착각한다.


- 얼마나 오래 일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집중해서 일하느냐가 중요하다. 많은 회사들이 얼마나 오래 일하게 만들까에만 신경을 쓴다.


- 경주용 자동차들은 경주에서 이기기 위해 반드시 핏스탑(Pit Stop)을 한다. 하지만 직원들은 경쟁에 내몰리며 휴식을 차단 당한다.


- 컴퓨터는 인간의 노동력을 감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컴퓨터의 등장은 인간들도 컴퓨터처럼 많은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주었을 뿐이다.



[기타]


- "OO푸어"는 OO가 있어서 혹은 OO가 있어도 가난하다는 뜻.


- 컨설팅 분야와 상관없이 재무제표 읽는 법은 모든 컨설턴트의 기본 스킬. 그 중 손익계산서는 가장 필수. 이런 기본스킬이 없는 컨설턴트가 제법 있다.


-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인간들은 결코 대처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바로 그 문제를 목도하고 있는 엔터티들이 많다는 이유 때문에. 범죄 현장의 목격자가 많을수록 피해자를 구조하지 않는 이유와 같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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