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7개의 밴다이어그램이 있습니다. '현재의 나'와 10년이 지난 다음의 '미래의 나'를 가장 잘 표현한 그림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현재의 나'가 '미래의 나'와 비슷할 거라고 느낄수록 겹치는 부분이 많은 밴다이어그램을 선택하면 됩니다.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일 거라고 믿는다면 윗 줄의 맨 왼쪽에 위치한 그림을 고르면 되겠죠. 여러분도 한번 선택해 보세요.


(출처 : 아래의 논문)



할 허시필드(Hal E. Hershfield)와 동료 연구자들은 147명의 실험 참가자들을 모집하여 이렇게 7개의 밴다이어그램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이 테스트는 과거 실험에서 사람들이 '자아 연속성(Self-Continuity)'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좋은 도구로 인정 받은 바 있습니다.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가 많이 겹칠수록 자아 연속성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이 테스트 외에 재무적인 이득과 윤리적인 문제가 서로 충돌하는 6가지의 딜레마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에 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재무적으로는 매력적이지만 환경적으로는 큰 피해를 야기하는 채굴 사업을 얼마나 지지하는지, 건강 상 문제를 일으키지만 매우 이익률이 높은 식품을 얼마나 마케팅하고자 하는지 등이었죠. 





결과를 분석하니 '현재의 나'가 '미래의 나'와 거의 비슷하리라 여기는 참가자일수록(겹치는 밴다이어그램을 선택한 참가자일수록) 비윤리적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자아 연속성이 낮으면('미래의 나'가 '현재의 나'와 많이 다를 거라 느끼면) 비윤리적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죠. 후속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자아 연속성을 높게 인식하는 참가자들은 비윤리적인 협상 전술을 승인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였고 현재에 내리는 결정이 미래에 미칠 영향을 더 많이 고려하는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이런 결과에 흥미를 느낀 허시필드는 좀더 직접적으로 자아 연속성과 거짓말 간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176명의 학생들에게 앞서 사용한 밴다이어그램을 제시하여 자아 연속성을 측정한 다음, 며칠 후에 연구실에서 진행될 실험에 참여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모두 85명의 학생이 실험에 참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 연구실에 온 학생은 53명 뿐이었습니다. 자아 연속성이 높은 그룹의 학생들은 73퍼센트가 약속을 이행했지만, 자아 연속성이 낮은 그룹의 학생들의 출석률은 50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약속의 신뢰성도 자아 연속성과 관계가 있었던 겁니다.


연구실에 온 학생들은 가상의 상대방을 대상으로 두 가지 옵션 중 하나를 택하도록 하는 게임을 진행하도록 요청 받았습니다. 옵션A는 참가자 자신은 5달러를 받고 상대방이 15달러를 받는 것이었고, 옵션B는 참가자는 15달러를 받고 상대방이 5달러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옵션B가 참가자 자신에게, 옵션 A가 상대방에게 유리한 옵션이었죠. 허시필드는 상대방이 이 두 가지 옵션의 내용을 모르고 있다고 말하면서 "옵션A가 당신에게 더 유리하다" 혹은 "옵션 B가 당신에게 더 유리하다" 중에서 하나의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라고 참가자들에게 요청했습니다. 참가자들이 상대방에게 거짓 정보를 알리는지를 파악하기 위함이었죠.


자아 연속성이 낮은 그룹의 참가자들의 77퍼센트가 거짓 정보를 상대방에게 알렸지만, 자아 연속성이 높은 그룹의 참가자들은 36퍼센트만이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미래의 나'가 '현재의 나'와 비슷할 거라고 인식하는 사람일수록 돈을 더 얻을 목적으로 거짓말할 확률이 낮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래의 나'를 '현재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인식할수록 이기적이고 비윤리적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는 흥미로우면서도 다소 충격적입니다. 


허시필드의 실험은 개인을 대상으로 했지만, 윤리경영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윤리 규정 몇 개를 만들어 통제를 가하는 방식은 윤리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재무적인 이익과 윤리적인 당위성 사이에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의 자아 연속성을 어떻게 해야 높일 수 있을지('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를 일치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겠죠(물론 이것만으로 윤리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좋은 전략가'를 뽑을 때도 자아 연속성에 대한 평가가 중요합니다. 자아 연속성이 높을수록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이익을 더 많이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리는 이 결정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를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이 고민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는 얼마나 같은 사람입니까?



(*참고논문)

Hal E. Hershfield, Taya R. Cohen, Leigh Thompson(2012), Short horizons and tempting situations: Lack of continuity to our future selves leads to unethical decision making and behavior,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Vol. 1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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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여러분에게 간장과 케첩이 혼합되어 역겨운 액체를 마셔보라고 권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역겨움이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라고 말하면서 학문의 발전에 기여하는 마음으로 이 액체를 가능한 한 많은 양을 마셔줄 것을 부탁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간장과 케첩이 섞였다고?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는 맛이겠죠. 프린스턴 대학교의 에밀리 프로닌(Emily Pronin)과 동료들은 이런 역겨운 액체를 마셔야 하는 실험에 153명의 학생들을 참여시켰습니다. 


학생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첫 번째 그룹은 이 액체를 곧바로 먹어야 한다면 얼마를 마실지 결정해야 했죠('현재의 나'를 위한 결정). 반면, 두 번째 그룹은 오늘밤으로 계획된 실험이 연기되어 다음 학기에 실행될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때가 되면 얼마를 마실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미래의 나'를 위한 결정). 세 번째 그룹의 학생들은 이 액체를 자신이 아니라 다른 학생이 실험에서 마실 양을 결정하라고 요청 받았죠('타인'을 위한 결정). 학생들은 1작은큰술, 1큰술, 1/4컵, 1/2컵, 1컵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과학의 발전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양을 선택해 줄 것을 부탁 받았습니다.





학생들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학생들은 '현재의 나'보다는 '미래의 나'에게 역겨운 간장-케첩 음료를 더 많이 '먹이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당장 음료를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대략 2큰술 정도 마실 수 있다고 했지만, 다음 학기에 자신이 먹어야 할 경우에는 반 컵 분량에 가까운 음료를 마시겠다고 답했습니다. 타인을 위해 음료의 양을 결정할 경우에도 역시 반 컵 정도의 음료를 할당했습니다.


이 결과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는 사실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간장-케첩 음료는 지금도 역겹고 다음 학기에도 똑같이 역겹습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역겨움에 대한 내성이 생길 리 없습니다. 하지만 실험의 결과는 사람들이 '미래의 나'가 그런 역겨움을 더 잘 참아내리라 믿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에 비해 무엇이든 잘 참아내고 잘 극복하는 이상적인 대상으로 막연히 떠올린다는 것이죠. 또한 '미래의 나'를 위한 결정과 '타인'을 위한 결정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는 실험 결과는 우리가 '미래의 나'를 낯선 타인과 동일시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미래의 나'를 '나'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죠.


확인을 위해 프로닌은 낙제 받을 위험에 처한 동료학생 A를 위해 공부를 도와줄 수 있는지 학생들에게 묻는 후속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실험이 중간고사 기간에 수행되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이타적인 결정과 이기적인 결정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죠. 프로닌은 학생들에게 "바로 A를 도와줘야 하는데 몇 시간이나 도울 수 있는가?('현재의 나')"라고 물었고, 다른 학생들에게는 "A를 다음 중간고사 기간에 도와줘야 한다면 몇 시간이 도울 수 있는가?('미래의 나')"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현재의 나' 조건의 학생들은 27분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한 반면, '미래의 나' 조건의 학생들은 85분이나 도울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다른 학생이 A를 도와야 한다면 몇 시간이나 도와줄까?"라는 '타인' 조건의 질문을 받은 학생들은 120분이나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답했죠(하지만 '미래의 나' 조건과 비교했을 때 통계적인 차이는 없었음).


"100분의 1의 확률로 50달러에 당첨될 수 있는 복권을 지금 받을 것인가, 아니면 65달러에 당첨될 수 있는 복권을 2.5개월 후에 받을 것인가?"를 묻는 실험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현재의 나' 조건일 때는 46퍼센트만이 2.5개월 후에 복권을 받겠다고 말한 반면, '미래의 나'와 '타인' 조건일 때는 공히 74퍼센트가 복권을 나중에 받겠다고 답했습니다. '미래의 나'가 '현재의 나'에 비해 만족을 지연시키며 더 잘 참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는 뜻이었죠. '미래의 나'는 '타인'처럼 먼 존재로 여긴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람들은 '미래의 나'를 이상적인 존재로 상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재의 나'가 하지 못한 일을 '미래의 나'는 잘 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일이 된다고 해서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고 없던 능력이 생겨나며 열정이 솟아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나'는 어떻게든 해낼 것이라고 사람들은 막연하게 믿어 버리죠. '미래의 나'는 사실 '현재의 나'와 별로 다르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개인적 차원에서 '미루는 습관'의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 프로닌의 실험은 의미가 있지만, 기업이라는 조직에 시사하는 바도 큽니다. 크고 작은 프로젝트 계획을 수립할 때 혹은 중장기 전략을 세울 때 '미래의 조직'을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래가 되면 '다 이루어지겠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 어떻게든 해결되겠지.'라고 막연한 기대를 겁니다. 사실 '미래의 조직'이 '현재의 조직'보다 더 나아진 상태라고 보장하지 못하는데도 말입니다. 이는 '지금은 간장-케첩 음료를 2큰술 밖에 못 먹지만 그때가 되면 1/2컵이나 마실 수 있을 거야.'란 생각과 다를 바 없습니다. 만약 '미래의 조직'을 이상화하는 편향에 빠지면 프로젝트 계획이나 중장기 전략이 허황된 '장미빛'으로 가득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일정을 아주 빠듯하게 잡는다든지, 기대효과를 부풀린다든지 하겠죠. 돌발변수나 예상되는 리스크에 대한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저 '잘 되겠지'란 근거 없는 낙관주의만 난무할 겁니다.


'미래의 조직'은 '현재의 조직'에 비해 더 체계적이고 더 경쟁력 있으며 더 일사불란한 조직일 거라고 믿는 순간, 오늘 여러분이 수립하는 크고 작은 계획들은 태생적인 리스크를 잉태하는 꼴입니다. 그 계획들을 실행할 '미래의 조직'의 실태를 냉철하게 판단할 때 현실성 있는 계획이나 전략이 수립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미래의 조직'은 '현재의 조직'과 별다를 것이 없으니까요.



(*참고논문)

Emily Pronin, Christopher Y. Olivola, Kathleen A. Kennedy(2008), Doing Unto Future Selves As You Would Do Unto Others: Psychological Distance and Decision Making,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Vol.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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