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포드 대학교의 리 로스(Lee Ross) 교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죄수의 딜레마' 게임과 비슷한 게임을 가지고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워낙 유명해서 따로 설명이 필요 없겠지만, 로스가 실시한 게임은 대강 이러했습니다. 게임에 참가하는 두 사람이 서로 정직하고 협조적이면 둘 다 공평하게 보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만일 내가 상대방을 이기려 하는데 상대방이 나에게 협조적일 때는 내가 큰 보상을 받습니다. 반대로 내가 협조적으로 상대방을 대하는데 상대방이 나를 이기려고 달려들 때는 나는 큰 손해를 입게 되죠.

이런 딜레마 상황에서 사람들은 경쟁과 협조 중에서 어떤 전략을 취할까요? 당연히 사람들은 협조보다는 경쟁 전략을 택할 겁니다. 내가 협조적으로 나갔는데 상대방이 경쟁적으로 나오면 큰 손해를 입으니까 말입니다. 문제는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 모두 경쟁 전략을 취하기 때문에 둘다 협조했을 때보다 결과적으로 나쁜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죠. 이게 죄수의 딜레마의 요지입니다.



로스의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이 게임을 상대방과 여러 번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로스는 실험에 한 가지 트릭을 추가했습니다. 학생들을 절반으로 나눠 한 그룹에게는 이 게임의 이름이 '커뮤니티 게임'이라고 알려주고, 다른 그룹에게는 '월스트리트 게임'이라고 알려줬던 겁니다. 두 게임 모두 방식은 앞에서 말한 대로 동일했습니다.

단순하게 게임의 이름만 달리 부여했는데, 두 그룹 사이의 게임 결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커뮤니티 게임'이라는 말을 듣고 게임에 임한 학생들이 '월스트리트 게임'에 참여한 학생들보다 훨씬 협조적이고 최종적인 보상의 크기도 컸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난 걸까요? 로스는 이렇게 추론합니다. '커뮤니티 게임'이란 말을 들은 학생들은 상대방과 자신이 하나의 공동체라는 인식을 갖게 되어 무의식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습니다. 반대로 '월스트리트 게임'이란 이름을 듣는 학생들은 주가가 오르내리고 악을 질러대는 증권시장을 연상하면서 약육강식의 경쟁이란 프레임으로 게임에 임합니다.

이렇게 게임을 인식하는 최초의 상태가 상대방을 나의 친구로 보느냐 아니면 적으로 보느냐를 결정하죠. 그래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의 첫판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협력할지 경쟁할지)가 은연 중에 결정되고, 첫판에서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했느냐를 보고 다음 판에서 취할 자신의 전략을 선택합니다. 만일 첫판에서 상대방이 나를 이기려 했다면 괘씸해서라도 다음 판에서는 경쟁 전략을 취할 테고, 상대방이 나에게 협조적으로 나왔다면 다음 판에서는 자신도 협조하려고 하겠죠. 최초에 게임을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다음 판, 그리고 또 다음 판의 게임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두 그룹의 학생들이 나타낸 결과가 달랐던 겁니다.

로스는 이 실험을 이스라엘의 공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도 수행했는데 그때도 역시 비슷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협력이 강조되는 전형적인 조직이라고 할 만한 공군사관학교에서도 동일하게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게임에 대한 최초의 프레임이 얼마나 영향력이 큰지를 가늠케 합니다. 작은 언어의 차이도 이렇게 게임의 양상과 결과에 큰 파급효과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우리는 회사라는 조직이 외치는 가치, 구호(비전이나 미션), 전략, 제도들이 직원들의 행동에 매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실험은 성과주의 제도에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줍니다. 성과주의 제도는 필연적으로 직원들 간의 경쟁을 유도합니다. 간단히 말해 시험을 치르는 것과 같죠. 점수가 높은 사람에게 댓가를 주겠다는 것이 사람들의 경쟁에 불을 붙이고 그로 인해 회사의 성과는 더욱 높아진다는 발상입니다. 성과주의를 도입하겠다는 소식은 '이제부터 경쟁하라'는 강력한 신호를 직원들에게 줍니다. 그러나 문제는 '경쟁에서 이기려면 협력하면 안된다', '협력하면 손해를 본다'라는 메시지도 함께 부여한다는 것이죠. 100 미터 달리기에서 옆 트랙을 달리는 선수를 도와주다가는 이기기는커녕 꼴찌로 처질 테니까요.

성과주의라는 강력한 프레임이 이제껏 서로 도와주고 배려하던 문화를 세랭기티 초원에서 펼쳐지는 약육강식의 문화로 순식간에 변화시킵니다. 이런 변화가 긍정적일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버려지는 것들을 생각한다면 성과주의라는 단어를 함부로 내뱉지 말아야 합니다. 어제의 포스팅에서 언급한 HP의 사례를 보면 성과주의의 문제를 그저 작은 부작용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듭니다. 우리의 조직문화에, 우리 업의 특성에 꼭 필요한 가치라는 판단이 든 후에야 성과주의를 말해야 합니다. 직원들에게 한번 덮어 씌워진 프레임은 웬만해서 쉽게 벗겨지지 않으니 조심해야 하죠. 

보수적인 것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건강한 보수주의적 경영은 말 한 마디가 직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지 않는지 매번 검증하고 경계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유행하는 경영 기법을 경쟁사가 한다고 해서 또는 최첨단 기법이라고 해서 척척 받아들이는 자세는 겉으로는 꽤나 진보적으로 보이겠지만, 어쩌면 무사안일하고 직원들을 헛갈리게 만드는 나쁜 보수주의일지 모릅니다.

말 한 마디가 조직을 살리기도 하고 조직을 죽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어떻습니까?

(*참고논문 : The Name of the Game: Predictive Power of Reputations versus Situational Labels in Determining Prisoner’s Dilemma Game Mo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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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이 최고의 전략이다   

2009. 12. 21. 22:21

여러분이 얼굴 모르는 자와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죄수의 딜레마란 '게임이론'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대표적인 딜레마죠. 많은 분들이 알겠지만, 요약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와 그가 동시에 협력하면         → 나는 3,  상대방도 3의 이익을 얻음
나는 협력했는데, 그가 배반하면   → 나는 0, 상대방은 5의 이익을 얻음
나는 배반하고, 그가 협력하면     → 나는 5, 상대방은 0의 이익을 얻음
나와 그가 모두 배반하면           → 나는 1, 상대방도 1의 이익을 얻음

이때, 나와 그는 서로 협력할지 배반할지 미리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둘이 동시에 협력하면 각각 3의 이익을 얻습니다. 하지만 '내가 협력했는데 그가 배반해 버리면', 졸지에 나는 이익이 하나도 없고 그가 5의 이익을 독차지할 가능성이 아주 높겠지요. 그도 나와 똑같이 생각하겠죠. 그래서 결국 '나와 그가 모두 배반해서' 고작 1의 이익만 얻는, 좋지 않은 상황에 빠집니다.

'나도 그도 배반한다'는 것이 최종적인 선택이 되는데, 이와 같은 균형점을 게임이론에서는 '내쉬 균형'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게임이론을 발전시킨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수학자 존 내쉬의 이름을 땄습니다. 여기까지게임이론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익히 아는 내용일 겁니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한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예를 들어 200회 정도) 시행한다면, 여러분은 매번 협력할지 배반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의사결정의 목적은 200회의 게임이 끝난 후에 누적된 점수를 최대화하기 위해서죠. 문제는 언제 협력하고 언제 배반할지를 결정하는 로직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1980년에 정치학자인 로버트 엑설로드는 반복적인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최대 이익을 얻기 위한 로직을 서로 겨루어 보자고 '대회'를 제안했습니다. 모두 15개의 프로그램들이 나름의 로직을 제시했는데, 최종적으로 1등을 차지한 로직은 겨우 4줄 밖에 안 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것은 '팃포탯(Tit-for-Tat)'이라고 불리는 로직이었습니다. 그대로 되갚아 준다는 뜻을 가진 팃포탯 전략은 캐나다의 심리학자인 아나톨 라포포트가 제안했는데, 로직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맨처음 게임에서는 무조건 협력한다.
2. 그 다음 게임부터, 이전 게임에서 상대방이 협력했으면 협력하고, 배반했으면 배반한다.

아주 간단하죠? 게임에 참가한 프로그램 중에는 77줄이나 되는 로직이 있었는데, 그에 비하면 너무나 단순한 논리입니다. 이런 로직이 경쟁에서 이겼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로버트 액설로드는 1차 대회의 결과를 널리 알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참가시켜 2차 대회를 열었습니다. 2차 대회 때는 모두 63개의 프로그램이 출품됐는데, 놀랍게도 팃포탯 로직이 또다시 1등을 차지했습니다. 두 번에 걸친 대회를 통해 액설로드가 내린 결론은 '최대 이익을 창출하는 가장 효과적인 행동은 상대방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협력하지 않으면 즉각적으로 보복에 나서는 의지를 있어야 협력 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 입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은 액설로드가 쓴 '협력의 진화'라는 책에 자세히 소개됐습니다. 그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비판적으로 따져볼 겸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



'진짜로 팃포탯 전략이 우수한 전략일까?' 저는 이런 의문을 가지고 직접 실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엑셀 파일에 몇 개의 전략을 서로 대결시켜 봤지요. 대진 방식이 '풀 리그'라서 1개 로직을 추가시킬 때마다 대진표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더군요. 그래서 5개 로직만 참가시켰습니다.

아래의 표는 그 결과입니다. 각 로직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아래의 엑셀 파일을 다운로드하면 간략하게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랜덤'이라는 전략에 쓰인 함수가 randbetween() 이라서 셀을 건드릴 때마다 표의 숫자와 랭킹이 바뀌기는 하지만, 팃포탯 전략은 대개 3위 정도를 랭크합니다. 로버트 액설로드가 행한 대회에서는 팃포탯 전략이 부동의 1위였는데, 제가 시행한 대회는 참가선수들이 적기 때문에 팃포탯이 3위 정도 밖에 못한 듯 합니다. 

하지만, 저의 '작은 대회'에서도 주목할 만한 시사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 협력과 배반을 맘대로 선택하는 랜덤 전략이 거의 꼴찌라는 겁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의사결정하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두 번째, 상대방을 이용해 먹으려는 전략인 '요스 전략'의 성적이 좋지 않다는 겁니다. 상대방을 배반해서 5의 이익을 독차지하려는 심보로는 최대이익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줍니다.

세 번째는 가장 중요한 시사점인데요, 기본적으로 협력적이면서 상대방의 배반에는 철저하게 응징하는 '프리드먼' 전략과 '팃포투탯' 전략이 상위에 랭크됐다는 사실입니다. 팃포탯 전략도 3위이지만 1, 2위와의 격차가 그리 크진 않습니다.
(팃포투탯은 상대방이 두번 배반해야, 배반으로 응징하는 전략을 말함)

제가 시행한 대회는 고작 5개 팀이 참가한 거라서 팃포탯 전략의 우수성을 보이는 데엔 역부족이었지만, 좀더 많은 로직을 참여시키면 액설로드가 행했던 결과와 비슷하게 나오리라 생각됩니다. 여러분들 중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독특한 논리를 개발해서 적어도 16개 팀이 참여한 '풀 리그'를 벌여보기 바랍니다. 팃포탯이 1, 2위를 차지하지 않을까요? 혹시 팃포탯 전략보다 우수한 전략이 발견되면 저에게 알려주면 고맙겠습니다.

"성공은 상대방을 배반하고 눌러 이기는 데 있지 않고, 상대방으로부터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 평범하면서도 동시에 비범한 교훈을 팃포탯이 전합니다. 그래서 개인이나 집단이 악하거나 선하거나 협력은 자연선택된다는 것이 로버트 액설로드의 주장입니다. 기업이 경영활동을 하거나, 개인이 사회활동을 할 때 유념해야 할 교훈이겠지요. 여러분은 이에 동의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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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올해의 책, Top 10   

2009. 12. 10. 09:05

제가 2008년 12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좋은 책을 나름대로 선정해 봤습니다(2009년 12월에 읽은 책은 2010년으로 넘김). 이 기간 동안 100권 가까이 읽었는데, 10권을 골라내기가 쉽지 않더군요. 참고로 지인들(저자나 출판인)의 책은 일부러 후보에서 제외했습니다. 부디 섭섭해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


책 사는 비용이 아깝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조금 안타깝습니다. 좋은 책을 읽음으로써 얻는 효용이 어찌 1, 2만원 뿐일까요? 건실한 도서 시장은 좋은 책이 나올 수 있는 자양분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기에 영합하는 '가벼운 책' 일색이겠지요. 요즘 출판 시장이 그러합니다.

제가 뽑은 '2009년 올해의 책, Top 10'이 여러분의 즐거운 독서 생활에 조그마한 길잡이가 되면 좋겠습니다. ^^ 순위를 매겨 봤지만, 모두 등위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


1위 : 협력의 진화 : 이 책의 존재는 예전부터 알았지만 이제야 읽은 것이 한이 될 정도로 좋은 책. 리처드 도킨스는 '모든 사람들을 가둬놓고 이 책을 읽은 사람만 풀어줘야 한다'고 추천사를 썼는데, 그 말이 과장이 아님을 책을 읽으면서 공감했습니다. 이기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협력이 창발하는 이유를 간단한 '죄수의 딜레마' 게임으로 흥미롭게 풀어갑니다.

2위 : 루시퍼 이펙트 : 유명한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을 수행한 저자가 실험을 수행한지 30년 만에 쓴 역작. 이 책을 읽지 않고 권위자와 굴종자 사이의 심리적 메카니즘을 논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한 책입니다. 70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소설을 읽듯 재미있게 읽힙니다.

3위 : 거짓말의 진화 : '자기정당화'를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파헤친 책. 정치인들이 뻔한 잘못을 해놓고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거나 '사실 무근이다'란 말을 내뱉는 이유를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사실 평범한 사람들도 자기정당화의 자동적인 프로세스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자신의 내면을 되볼아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4위 :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 : '뇌를 이해해야 소비자를 끌어 당길 수 있다!' 뇌신경학과 소비자행동을 접목한 흥미진진한 책. 소위 '신경마케팅'이란 첨단분야를 쉽고 간결하게 소개한다. 두고두고 읽을 만한 책입니다.

5위 : 뉴 골든 에이지 : 인도계 미국 경제학자가 쓴 경제 예측서입니다. 그의 스승과 그가 발견한 사회순환법칙을 적용해서 미국이란 나라의 붕괴를 예견하는 책이죠. 미국은 지금 온갖 부패가 만연하고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탐획자 시대'의 말기 현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는 곧 그 시대가 마감되고 '전사의 시대'가 올 거라 예견하면서 머지 않아 미국에 황금의 시대가 열릴 거라 예언합니다. 두고봐야 알 터이지만, 역사와 정치를 꿰뚫어보는 그의 혜안이 놀랍죠. 

6위 : 블랙스완 : 상당히 심오하면서도 날카로운 책. 불확실성에 대해 나와 다른 정의를 내리지만 대개의 논리엔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검은백조가 어디서 나타날지, 항상 조심하십시오. ^^

사기 교양강의

7위 : 사기 교양 강의 : 중국 TV에 방영됐던 교양 강좌를 옮긴 책. 사기의 내용이 어렵고 따분하다고 여긴 적이 있다면 이 책이 그런 선입견을 날려줍니다. 진시황부터 한무제에 이르기까지 중원을 호령했던 영웅들의 이야기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저자의 내공이 놀랍습니다.


8위 : 생각이 직관에 묻다 : 직관(Gut Feeling)에 관한 재미있는 책. 직관은 충분한 정보가 없을 때 유용한 판단도구임을 흥미로운 사례와 더불어 설명합니다.

9위 : 논리학 실험실 : 제목을 보면 논리학에 관한 책인듯 하지만 열어보면 과학에서의 논증과 추론에 관한 책. 논증의 구조, 실증 및 논거의 의미 등을 명확하게 습득하는 데에 이만한 책은 없습니다. 과학적 논증을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됩니다.

10위 :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 칼뱅의 권위주의적 기독교 사상에 목숨을 걸고 맞섰던 카스텔리오의 이야기입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더니, 이 책의 내용에 끄덕이는 건 왜 일까요?


이승환님이 저에게 바통을 넘기셨는데, 저는 inuit님에게 넘겨 드리겠습니다. ^^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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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나는 9권의 책을 읽었다. 고맙게도 이번 달에 읽은 책들은 대부분 가치가 있었다. 죄다 추천하고 싶은 책들이다.

이렇게 해서 1월부터 지금까지 모두 79권의 책을 읽었다. 과연 100권을 달성할 수 있을까?


루시퍼 이펙트 : 유명한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을 수행한 저자가 실험을 수행한지 30년 만에 쓴 역작. 이 책을 읽지 않고 권위자와 굴종자 사이의 심리적 메카니즘을 논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한 책이다. 70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소설을 읽듯 재미있게 읽힌다. 사실 사 놓고서 '저 두꺼운 걸 언제 읽나'하며 근 6개월을 보낸 거 같다. 늦게 읽은 걸 후회한다. 꼭 읽어보라. 강추!

밴버드의 어리석음 : 실패한 2류들의 삶을 짧은 전기 형식으로 쓴 책. 2류들이었지만 열정은 1류 못지 않는 자들이었다. 책의 주인공들은 모두 그 시대를 풍미했던 자들인데 왜 이제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걸까? 사후에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생각해 본다. 출근길에 오며가며 읽으면 유익하다.

거짓말의 진화 : '자기정당화'를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파헤친 책. 정치인들이 뻔한 잘못을 해놓고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거나 '사실 무근이다'란 말을 내뱉는 이유를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사실 평범한 사람들도 자기정당화의 자동적인 프로세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의 내면을 되볼아보게 만드는 책. 강추!

문제해결의 노하우 : 이 책은 94년도에 나온 책이라 표지를 구할 수 없다. 번역도 좀 이상하고 책 제본도 엉성하다. 역자 소개는 있는데 저자 소개는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도 이상했다. 하지만, 내용만큼은 알차고 옹골지다. 문제해결의 기본기를 다지기에 좋은 책이지만, 절판된지라 구하기는 어렵다.

협력의 진화 : 이 책의 존재는 예전부터 알았지만 이제야 읽은 것이 한이 될 정도로 좋은 책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모든 사람들을 가둬놓고 이 책을 읽은 사람만 풀어줘야 한다'고 추천사를 썼는데, 그 말이 과장이 아님을 책을 읽으면서 공감했다. 이기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협력이 창발하는 이유를 간단한 '죄수의 딜레마' 게임으로 흥미롭게 풀어간다. 꼭 읽어보라! 제발!

공중그네 : 집 앞 초등학교에 공개 도서관이 있다. 가끔 들를 때마다 몇 페이지 씩 읽은 소설책이다. 장편소설이라지만, 이라부라는 의사가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편소설의 모음 같은 소설이다. 작가 특유의 위트 있는 문장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가위바위보 : 게임이론의 기초를 어렵지 않게 풀어간 대중서. 저자가 개인적으로 겪은 '게임이론적 상황'을 함께 읽으면서 실생활에서 게임이론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쏙쏙 이해가 됐다. 가위바위보 게임의 오묘함도 알 수 있다. 게임이론을 어렵다고 생각해서 포기했다면 이 책을 잡고 술술 읽어보라.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으니.

에바리스트 갈루아 : 20살에 결투를 벌였다 아깝게 죽은 천재 수학자 갈루아의 평전. 그가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군(群) 이론'의 얼개를 이 책을 통해 처음 배웠다. 군 이론은 좀 어렵긴 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이론이다! 수학자 이야기라서 어쩔 수 없이 공식과 수학적 표현이 등장하지만, 대수에 관해 약간의 배경지식이 있다면 이 책이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추천한다.(책에 오타가 좀 많아 그게 흠이긴 하다)

논리로 속이는 법, 속지 않는 법 :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이나 글에서 나타나는 논리적 오류를 종류별로 풀어 쓴 책. 논리적 오류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잘못 설득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특히 정치인들이 자주 저지르는 논리적 오류는 눈에 불을 켜고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논리의 초심자들에게 추천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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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님의 블로그에서 읽은 재미있는 글을 여기에 인용하고자 한다. 아래가 그 내용이다.


23 세의 두 아가씨가 addicted라는 이름으로 출전했습니다. 수 손(Sue Son)양과 16살 그의 고등학교 시절부터의 베스트 프렌드 재니(Jannie)입니다. 둘의 연주는 일종의 불협화음이었고 X를 세개 받습니다. 그러나 반전. 판정단은 손양에게 단독 오디션을 제의합니다.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친구의 표정은 착잡함으로 굳어져가고, 관객들은 수락하라고 예스를 연호하고..

그리고 다음날 바로 이어진 오디션입니다. 이 결과는 잘 아시겠죠.

가십성 매체 또는 영문 블로그나 유튜브 영상, 텍스트 댓글 보면, 수가 재니를 버리고 가는게 옳냐 아니냐에 대해 논란이 있습니다. 그 전에 친구를 버린 사람이라는 차가운 반응에서, 준결승 진출 이후에는 잘했다는 쪽으로 기우는 듯 합니다. 수 양은 재니의 페이스 북 친구리스트에서 잘렸다는 기사도 있네요. 

여러분이 그 자리에 섰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베스트 프렌드를 잃더라도 단독 오디션을 받을지, 우정을 택할지 선택이 서십니까? ^^

Source : inuit blogged (http://www.inuit.co.kr/1685 )

수(Sue)는 재니(Jannie)를 버리고 오디션에 응할까, 아니면 우정을 택할까? 수에게 주어진 고통스러운 딜레마다. 나는 이 글을 잃고 '게임이론'의 상황을 떠올렸다.

게임이론으로 수의 선택이 어떨지 예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게임'을 하려면 각자가 얻게 되는 가치를 정량화해야 한다. 나는 나름대로 다음과 같이 정량화해 봤다. 주관이 많이 개입된 가치 평가이기 때문에 수와 재니가 실제로 느낄 가치와 차이가 날지도 모른다는 점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수가 오디션에 응함으로써 얻는 가치 =  100
우정을 유지함으로써 얻는 가치 =  0     (현황 유지이므로)
친구를 버림으로써 얻는 가치 =   0
(자신은 친구를 택했는데) 친구로부터 버림 당함으로써 얻는 가치 =  - 100

가치의 정량화가 완료되면, 수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가치 매트릭스'가 그려진다. 여기서 '버린다'의 의미는 '친구를 버린다'의 의미다.

                   수의 선택
      오디션 본다
  (= 버린다)
오디션 안본다
(= 안버린다)
재니의
선택
    버린다              100
 0
          -100
  0
  안 버린다              100
 -100
              0
  0


내가 수라면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유리할까? 그 짧은 시간에 수가 이 표를 떠올리진 않았겠지만, 무엇이 유리한지 불리한지 머리가 복잡했을 터이다. 이 표에 의하면 '오디션을 보는 전략(즉 친구를 버리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 100 만큼의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반면, 내 재니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100이라는 부(負)의 가치를 피해야 하므로 역시 '친구를 버리는 전략'을 택하는 게 유리하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좌상단의 셀에서 균형이 형성된다. '네가 나를 버리면, 나도 널 버리겠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처럼 보인다.

                   수의 선택
      오디션 본다
  (= 버린다)
오디션 안본다
(= 안버린다)
재니의
선택
   버린다           100
  0
           -100
  0
  안 버린다              100
 -100
              0
  0


inuit님의 글에 링크된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수는 단독으로 출전하기로(즉 친구 재니를 버리기로) 했고, 그 결과 테스트를 통과하는 기쁨을 누렸다.

이 딜레마는 '죄수의 딜레마'와 완전히 같은 상황은 아니다. 수가 단독 출전을 고민할 때 그녀에게 주어진 상황은 죄수의 딜레마처럼 동시적인 선택 상황이었다. 수의 입장에서는 재니가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가 단독 출전하기로 선언하고 나면 상황은 다른 양상으로 바뀐다. 수가 먼저 카드를 내보였으니 이제 재니가 그에 대응해서 카드를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
(게임이론에서 이런 상황을 말하는 용어가 있는데 생각이 안 난다. -_-; 순차적 상황인가? )

재니는 어떤 카드를 내놓아야 할까? 자신을 배신한 수를 용서해야 할까, 아니면 절교를 선언해야 할까? 그녀가 자신의 페이스북 '친구 리스트'에서 수를 삭제했다고 하니, 재니 역시 수를 버리기로 한 걸까?

아직 속단하기에 이르다. 수의 경우처럼 급하게 결정할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재니의 머리 속에서 그려질 '대차대조표'가 어떤 모습일지 잘 모르겠다. 여기서부터는 게임이론의 영역이 아니라 심리학의 영역인 듯하다. 무엇이 이득인지 그녀(재니)가 제일 잘 알 테니까...

* 졸음을 쫓을 겸 쓴 글이라, 오류가 있을지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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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의 첫달, 1월에 나는 모두 5권을 읽었다.
작년에는 양적인 독서에 치중했는데,
금년에는 하나의 책을 꼭꼭 씹어 먹는 마음으로 읽을 생각이다.

 5권 밖에 못 읽었으면 어떠랴,
독서도 소식(少食)이 좋을 때가 있는 법이다. 



치팅컬쳐 : '승자독식사회'와 맥을 같이 하는 책. 다양한 '치팅'의 사례가 재미있게 펼쳐진다. 그러나 철학과 대안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무한의 신비 : '실무한'을 상상하다가 정신병에 걸린, 위대한 수학자 칸토어의 생애를 중심으로 무한의 의미를 수학적으로 탐구하는 책. 좀 어려운 내용이지만, 무한의 의미를 곱씹는데 도움이 된다.

죄수의 딜레마 : 게임이론의 창시자인 수학자 폰 노이만의 평전. 중간중간에 게임이론이 소개되고 있어서 게임이론도 함께 배울 수 있는 책이다. 폰 노이만의 천재성에 놀라게 되는 책!

피어라, 남자 :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다가 귀농하여 자연농법을 실천하는 농부의 에세이다. '치유'라는 주제로 잔잔하게 풀어놓은 일상의 보따리가 마음을 착하게 만든다.

클루지 : 인간의 두뇌가 정교한 설계도에 따라 만들어진 게 아니라 진화 과정에서 얼기설기 만들어졌기 때문에 행동/판단/언어 등이 실수 투성이라는 주제의 책. 진화의 '실수'를 엿볼 수 있는 참신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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