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시인이자 과학자인 미로슬라프 홀룹(Miroslav Holub)이 쓴 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젊은 헝가리 군 소대장이 자신의 소대원과 함께 알프스 산맥 어딘가에서 작전을 수행 중이었습니다. 소대장은 소대원 중 몇 명을 뽑아 온통 눈으로 뒤덮힌 곳으로 정찰을 내보냅니다. 헌데 정찰을 떠나자마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이틀 동안 지독하게 퍼부어댔습니다. 이미 복귀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지났지만 정찰대원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소대장은 정찰대원들이 필시 눈에 갇혀 죽음을 맞았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자신을 책망했습니다. 

헌데 정찰을 나간지 3일째 되는 날, 정찰대원들은 소대로 복귀했습니다. 그들의 복귀가 반갑고도 놀라웠던 소대장은 어찌된 영문인지 물었습니다. 정찰대원들은 정찰을 떠나자마자 내린 엄청난 눈 때문에 길을 잃고 말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죠. 헌데 어떤 병사가 자신의 호주머니에 지도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 지도가 우리를 안심시켰습니다. 우리는 캠프를 설치하고 눈이 그치기를 기다렸죠. 지도가 있으니 눈이 그치면 그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서 말입니다. 바로 이 지도가 우리를 살린 거죠."

소대장은 정찰대원이 건넨 지도를 살펴봤습니다. 놀랍고도 엉뚱하게도 그것은 알프스 지도가 아니라 피레네 산맥의 지도였습니다. 피레네는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 있는 산악지대라 알프스와는 한참 떨어진 곳이죠. 그런데도 정찰대원은 그 잘못된 지도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겁니다.



이 일화는 희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에서 종종 인용되는데, 경영학자 칼 웨익(Karl Weick)은 미래를 대비하고 미래를 향해 전략을 실행하는 조직에 이 일화를 인용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잘못된 지도라고 있는 게 낫다. 왜냐하면 그 지도가 있으면 알지 못하는 곳으로 나아가는 데 참조할 만한 기준을 제시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하려고 애쓰기보다 다소 엉성한 예측이라 할지라도 미래를 가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엉뚱한 방향이라생각될지라도 일단 전진할 필요가 있음을 웨익은 역설합니다.

토마스 쳐맥(Thomas J. Chermack)이 쓴 책에는 이와는 반대되는 입장의 일화가 실려 있습니다. 1539년에 스페인 탐험가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서쪽 해안을 조사하다가 남쪽에 반도가 존재한다고 보고했습니다. 그곳은 오늘날 바자 반도(Baja Peninsula)라고 불리는 곳였습니다. 지도 제작자들은 이 정보를 기초로 미 대륙의 지도를 제작했습니다. 헌데 1635년에 스페인 탐험가들이 그 지도를 가지고 북쪽 해안을 조사하다가 지금의 푸젓 사운드(Puget Sound)라 불리는 만(캐나다 빅토리아와 미국 시애틀 사이의 만)을 발견했습니다. 탐험가들은 이 새로운 정보를 가지고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캘리포니아는 섬이다"라고 말입니다.

이 정보에 기초하여 지도가 다시 그려졌고 그때부터 지도에는 캘리포니아가 미 대륙과는 분리된 거대한 섬으로 표현됩니다. 아래의 지도가 바로 그것입니다(Jan Jasson, 1636).



그 후로 거의 100년 동안 발행된 지도들은 캘리포니아를 섬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중간에 캘리포니아가 섬이 아니라 반도라고 주장하는 지도가 몇 개 나타나긴 했지만, 1747년에 가서야 캘리포니아가 미 본토와 연결된 반도라는 옳은 정보가 지도에 최종적으로 반영됐다고 합니다.

캘리포니아가 섬이라는 지도를 가지고 선교 활동에 파견된 선교사들은 골탕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캘리포니아 섬' 서쪽 해안에 내린 그들은 다시 나타날(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바다를 건너기 위해 배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배를 분해한 다음 노새에 싣은 채 행군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가도 가도 바다는 나타나지 않았고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까지 이릅니다. 그 산맥의 건너편에 바다가 있으리라 생각하고서 행군을 이어갔지만 선교사들은 어느덧 네바다 사막의 한가운데에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고 말죠.

화가 난 선교사들은 스페인에 있는 지도 제작자에게 "지도가 잘못됐다. 캘리포니아는 섬이 아니다"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지도 제작자들은 그럴 리 없다며 "당신들이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다. 지도는 맞다"라는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이 사례는 헝가리 소대원들의 일화와는 다른 입장의 시사점을 줍니다. 잘못된 지도라도 있는 게 낫다는 것과 달리, 잘못된 지도는 잘못된 길로 인도할 뿐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지도 제작자들처럼) 그 잘못된 지도를 믿고 나면 마음을 바꾸기가 아주 어렵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미래를 확실하게 예측하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면 엉뚱한 길로 들어서서 오도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정보에 기초하여 형성된 믿음을 굳게 믿고서 융통성 없이 전략을 밀고 나가다가 엄청난 실패를 겪게 됨을 경고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잘못된 지도라도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잘못된 지도는 잘못된 결과만을 낳는다고 생각합니까? 잘못된 지도라도 있어야 어딘가로 전진하기 위한 출발점을 정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전자를, 완벽하지 못한 지도에 근거하여 종착점을 찾아나섰다가 바라지 않았던 곳에 갇힐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후자를 선택할 겁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느 것이 옳으냐를 따지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논쟁에 불과합니다. 이 두 가지 입장은 상반되거나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둘을 합쳐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라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을 정하지 못해 시간만 허비합니다. 전략의 속도가 중요한 요즘 같은 상황에서 이러한 완벽주의적 관점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지름길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알프스 산맥이 아닌 피레네 산맥의 지도를 가지고라도 출발점을 정한 후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결단이 전략 실행의 중요한 모멘텀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지도는 잘못된 곳으로 이끈다는 교훈을 잊지 않는다면, 지금 내가 가진 이 지도는 어디까지나 불완전한 정보를 기초로 만든 지도라는 점을 계속 상기하면서 새로운 정보가 나타날 때마다 지도를 지우고 새로 그리려는 전략적 융통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출발할 때 정했던 전략을 폐기해야만 하는 정보가 숱하게 들어올지라도 많은 경영자들은 처음의 전략을 고수하려는 관성을 보입니다. '이 산이 아닌가벼'라고 말하는 것이 자신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용기 없는 행위라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 산이 아닌가벼'라고 말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용기입니다. 선교사들이 전달한 정보를 접하고서도 지도가 맞다고 우긴 지도 제작자들의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미래는 예측 불가능한 대상입니다. 이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해 완벽한 예측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완벽함에 힘을 낭비하지 말고 일단 전진하자는 입장의 대립 관계를 해소하고 하나로 융화시키는 방법이 시나리오 플래닝입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미래에 펼쳐질 여러 시나리오를 가지고 출발점을 정해 전략을 실행하다가 지속적으로 내외부 환경의 정보를 수집하면서 기존의 시나리오를 변경하고 대응 전략을 수정하는 과정입니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미지의 땅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면 시나리오라는, 불완전하지만 희망을 북돋우는 지도를 가지고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예상치 못했던 강과 산이 나타나면 정찰대를 내보내 정보를 수집하고 시나리오를 다시 그려가는 것이 미래를 향해 항해하는 우리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마인드입니다. 무엇보다 '이 산이 아닌가벼'라고 말할 용기를 가지기 바랍니다.

(*참고도서 : Scenario Planning in Organizations)
(*참고 사이트 : http://www.philaprintshop.com/cali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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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제대한 후 복학하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 나는 자동차 운전 면허나 따볼까 해서 강남 삼성동에 있던 어느 운전면허학원에 등록을 했다. 그때만 해도 삼성동은 개발이 덜 이루어져서 운전학원은 지금의 포스코 사거리 근처에 있었다. 그래도 강남이라서 그런지 다른 곳보다 학원비가 좀 비쌌던 걸로 기억되는데 친구와 같이 수강하느라 비싼 수강료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지도해 주던 사람은 짤막한 키에 머리가 조금 벗겨지고 배가 나온 남자였다. 기껏해야 30대 초반처럼 보였다. 난생 처음 운전대를 잡아 본 나는 기어를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 브레이크와 엑셀레이터를 각각 어떤 강도로 밟아야 하는지 몰라서 처음부터 그 사람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언덕 위로 올라가서 잠시 정차 후 다시 출발할 때는 클러치를 너무 빨리 해제하는 바람에 시동이 꺼지고 뒤따라오던 다른 차와 부딪힐 뻔만 적도 몇번 있었다. 또 후진할 때 엑셀레이터를 깊게 밟아서 차가 휙 돌아가는 사태도 발생했었다. 왕초보로서 사고칠 껀 다 해 본 셈이다.

내가 그렇게 버벅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덤벙거리는 나의 성격 탓이기도 했지만, 날 가르쳐주는 사람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차에 올라타자 마자 '왜 그것도 못하냐, 제대로 못할 거라면 그만 두라'며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가뜩이나 온 몸이 긴장 상태에 있는 내게 소리까지 벅벅 질러대니 잘 될 리가 만무했다. 반항심이 생겨서 옆에서 떠들거나 말거나 일부러 그사람이 가르친 것과 거꾸로 하는 오기도 부렸다.

처음에는 그사람의 독특한 지도법이려니 하고 꾹 참고 넘어 갔다. 내 돈 내고 그런 수모를 당하는 게 억울하지만 며칠만 참자고 수없이 다짐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그의 말이 발단이었다. 어디서 낮술을 한잔 걸쳤는지 그의 입에서는 시큼한 술냄새와 김치 냄새가 났다. 그는 나를 보더니 다짜고짜 "나이도 어리면서 어른이 이야기하면 잘 들어야지, 왜 못 알아 듣냐? 당신, 대학생인거 맞아?" 라며 연신 콧방귀를 뀌더니 빨리 차나 몰라며 턱짓을 했다.

'이젠 대놓고 반말을 하면서 인신공격까지?' 참아보려고 했지만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나는 도저히 그와 같이 있을 수가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 얼굴을 향해 그동안의 한을 담아서 한 대 갈기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상의 보복은 여러 차들이 꼬리를 물고 돌아다니는 트랙 한 가운데에 차를 그냥 세워두고 키를 뽑아서 멀리 던져버리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참 멋진 보복이었다. 힐끗 뒤를 돌아보니 그사람은 차 지붕을 손으로 쾅쾅 내리치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제 당신 같은 사람이 볼 일 없다며 학원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며칠 후, 필기시험은 무난하게 합격했지만 실기시험은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말았다. 역시나 언덕이 문제였다. 당황한 탓에 클러치도 떼지 않은 채 엑셀레이터만 연신 밟아댔다. '유정식 씨, 불합격입니다. 사이드 채우고 내리세요!" 목소리가 매우 단호했다. 쿠션과 면장갑을 단단히 챙기며 대기하던 아줌마들은 수고했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는 그 후로 꽤 오랫동안 내 불합격의 모든 책임을 학원강사에게 돌리며 분한 마음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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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회적이든 개인적이든 매일 누군가를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를 한다. 꼭 교사나 강사라야 가르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다못해 거리에서 길을 묻는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일도 '지도'라 말할 수 있다. 만일 "100미터 가다가 우회전한 다음에 샛길로 50미터를 더 가세요."라고 말하면 듣는 사람은 아리송해 한다. "가다가 OO병원이 있는 사거리에서 우회전한 다음 XX마트가 나오는데, 그 맞은 편에 있어요"라고 말해야 금방 이해가 된다는 것쯤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생각처럼 쉽지 않은 것이 다른 사람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일이다.

이제 지나간 옛일이지만, 나는 가끔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다른 사람을 어떻게 가르치고 지도해야 하는지 생각한다. 그 학원강사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노하우를 누군가에게 가르칠 때 상대방을 하대하고 비웃고 무시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또는, 나만의 지적 유희에 취해서 상대방이 알아 듣건 말건 난해하고 현학적인 태도를 보이진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은 나를 낮추는 '겸손'에서 시작하며, 자신을 낮추어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출 때 제대된 지도가 이루어진다. 지식과 스킬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르침의 9할은 겸손이다. 겸손해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자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청자(聽者)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일이다. 그래야 어떤 수준으로 자신을 낮춰야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가르침 = (1*지식) + (9*겸손)

부모가 아이를 가르칠 때 '이것도 모르냐'며 매를 든다면 우리는 아이를 탓하기보다 아이의 눈높이를 무시한 부모를 탓한다. 그렇듯이 지도를 받는 사람이 배운 바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1차적으로 지도를 한 사람이 져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아이디어나 지식도 상대방을 이해시킬 수 없다면 그저 책 속에나 존재하는 이론에 불구하다.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이 학문적 도취에 빠져 뭇사람의 이해능력을 비웃으며 더욱 난해한 이론의 벽을 쌓아가곤 하는데, 아인슈타인은 달랐다. 그가 발견한 '상대성 원리'는 우리가 우주를 바라보는 직관과 배치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관찰자의 시각에 따라 측정 결과가 달라지고 시공간이 휘어졌다는 아인슈타인의 통찰을 오늘날의 사람들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일반인들이 상대성 원리를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책을 썼는데 '상대성 : 특수이론과 일반이론'이란 책은 지금까지 상대성 원리의 입문서로 많이 읽히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의붓딸인 마르코트에게 이론을 가르쳐주면서 그녀가 정말 이해하는지 일일이 확인하는 방식으로 책을 썼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의 위대성이 더욱 빛나는 이유이다.

나는 가끔 운전학원의 그를 떠올리며 가르치는 자로서 내가 겸손하지 않았는지 돌아본다. 공자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 중에 선한 자를 가려서 따르고, 그 선하지 못한 자를 가려서 자신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 (子曰, 三人行必有我師, 焉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라고 했던가? 이제는 그를 '겸손이 가르침'의 시작임을 일깨워 준 악한 스승으로 여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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