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에 대한 책임과 관리를 강조하고 그에 따라 보상이 결정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주지시키면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력을 직간접적으로 가하면, 성과를 달성하고자 하는 직원들의 동기가 높아질까요? 그에 따라 성과도 역시 향상될까요? 많은 조직에서 이러한 가정 하에 직원들을 코칭하거나 평가하곤 하는데, 하버드 대의 경영학 교수인 하이디 가드너(Heidi K. Gardner)는 회계법인의 감사(audit) 부서와 컨설팅 부서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기초로 이러한 성과 압력(Performance Pressure)이 '양날의 칼'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가드너는 어느 대형 회계법인에 속한 회계감사팀 50개와 컨설팅팀 22개로부터 두 번에 걸쳐 웹을 통해 설문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설문은 프로젝트에 투입된 후 3일 내에 실시되었는데, 팀원들의 '일반적 전문성'과 '영역 특수적 전문성'을 평가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프로젝트가 종료되기 1주일 전에 실시된 두 번째 설문은 실제로 프로젝트에서 '일반적 전문성'과 '영역 특수적 전문성'을 얼마나 발휘했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었죠. 여기서 '일반적 전문성'이란 학위, 자격, 근속년수 등을 통해 얻은 지식을 뜻하는 것이고, '영역 특수적 전문성'은 말 그대로 업무 수행을 통해 습득한 전문적이고 복합적인 지식을 일컫는 말입니다. 





두 번의 설문과 더불어 가드너는 성과 압력의 정도와 팀 성과를 측정하는 등 다소 복잡한 데이터 수집 과정과 분석을 거쳐 몇 가지 새로운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먼저, 성과 압력이 높을수록 팀 성과가 향상되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잘 수행하겠다는 동기와 몰입에 성과 압력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죠. 이것은 일반적인 생각과 다르지 않은 결과였지만 그 후의 심층분석으로 나온 결과는 성과 압력이 말 그대로 양날의 칼임을 보여줬습니다. 


성과 압력이 높을 경우 팀원들은 '일반적 전문성'의 기반이 되는 지식을 더 많이 사용하는 반면 '영역 특수적 전문성'과 관련된 지식은 적게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가드너는 후속 분석을 통해 성과 창출에 연관된 지식은 일반적 지식이 아니라 영역 특수적인 지식이라는 결론을 얻었죠. 두 결과를 종합해 보면, 성과 압력이 팀 성과를 겉으로 향상시키는 듯 보여도 결과적으로는 더 높은 성과를 달성할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가드너는 뒤이어 6개의 컨설팅팀을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를 통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지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성과 압력이 높은 상황에 처하면 팀원들은 합의를 이루려는 동기가 커지고, 상식적인 지식만을 취하려고 하며, '잘하는 것'보다 '완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위계에 순응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규명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성과 압력이 커지면 해당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적이고 복합적이며 참신한 아이디어를 동원하기보다는 어디서나 빨리 쉽게 구할 수 있고 이미 검증된 일반적인 지식에 의존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해야 합의가 수월하게 이루어지고 일도 빨리 완수된다는 점을 팀원들이 암묵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창의적이지만 검증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가 실패할 경우 지게 될 책임도 한몫하죠.


KPI 설정, 목표 수립 면담, 성과 모니터링 등 성과 창출 과정에 압박 장치들을 지속적으로 작동시키면 직원들의 성과가 높아질 거라는 기대가 순진한 생각임을 가드너의 연구가 바로 보여줍니다. 기존의 룰을 깨뜨리는 창의적 발상을 요구하는 지금, 성과 압력이 과연 그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요? 절차만 따르면 되고 고효율이 무엇보다 우선인 분야에서는 성과 압력이 효과를 발휘하겠지만, 창조적 사고, 융합적 사고, 디자인적 사고를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조직에게 성과 압력은 뒷다리를 잡는 악성 문화일 뿐입니다.


성과 압력은 그저 그런 성과에 만족하도록 만들 뿐입니다. 결코 최고의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합니다. 아직도 성과주의가 해답이라고 믿습니까? 



(*참고논문)

Heidi K. Gardner(2012), Performance Pressure as a Double-Edged Sword: Enhancing Team Motivation While Undermining the Use of Team Knowledge,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Vol. 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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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에 관한 철학적 단상   

2011. 11. 1. 09:20



무언가를 '안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우리가 무언가에 관한 '지식'을 '알고 있다'고 주장할 때 그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오늘은 좀 철학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안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고찰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주장할 때 생길 수 있는 오류를 짚어보겠습니다.

플라톤 시절부터 철학자들은 '세 갈래 이론'이라고 불리는 세 개의 기준을 통해 '안다는 것', 즉 지식을 정의해 왔습니다. 세 가지 기준을 만족하면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고, '그것을 안다'면 세 가지 기준을 만족한다는 뜻이죠. 그 세 가지 기준은 바로 '믿음', '정당화', '진리'입니다.



첫 번째 기준인 '믿음'에 의하면, 우리가 1+1=2를 안다고 주장하려면 그것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다면 그것을 안다고 주장할 수 없겠죠. 당연한 말이지만, '믿음'이라는 기준을 적용하면 절대적인 지식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동일한 사실에 대해 누구는 믿고 누구는 믿지 않는다면, 믿는 사람에게는 지식이 되지만 믿지 않는 이에게는 지식이 되지 않기 때문이죠. 지식도 상대성 원리를 갖는 걸까요?

믿음을 '안다는 것'을 정의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본다면 위대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여러 발견이 사실임을 인정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그걸 믿을 없다고 말했습니다. 양자역학을 태동시킨 위대한 과학자가  그랬을까요?

왜냐하면 '안다' 말은 정당화의 책임을 동반하기 때문이죠. 1 + 1 = 2임을 안다면, 믿어야 하고 증명해야 하는 의무감도 함께 생기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믿지 못하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책임을 거부했습니다. 따라서 양자역학에 있어 그의 '' 수준은 양자역학을 들어본 적도 없는 일반 사람과 다르지 않다고 말해도 '안다는 것'을 정의하는 철학적 기준으로 본다면 과언이 아닙니다.

두 번째 기준인 '정당화'는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말하려면 자신의 믿음에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수학적 증명이든, 과학적 실험이든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제시되어야만 우리는 그것을 지식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를 같은 높이에서 떨어뜨리면 땅에 동시에 닿는다'라는 갈릴레이의 믿음도 피사의 사탑(여기서 실험했다는 것이 허구라는 지적도 있지만)에서 사람들에게 시현하지 않았더라면 어디까지나 가설에 지나지 않을 테지요.

옥스포드 소사전(Shorter Oxford Dictionary)에서 믿음을 뜻하는 ‘Belief’제안, 진술, 사실을권위나 증거를 기반으로진실로 인정하는 정신적 동의나 수용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정의에서 보듯이 믿음을 믿음답게 만드는 것은 믿음에 대한 증거가 얼마나 타당하냐는 것이죠.
 

세 번째 기준인 '진리'는 결과론적인 기준입니다. 자신의 믿음을 정당화할 수 있더라도 지식이 되려면 진짜로 옳아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당연한 말이죠.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믿고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더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면 지식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충분히 믿고 충분히 정당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리가 아니었던 사례를 무수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천동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것을 믿고 천문학자들은 여러 가지 증거와 수학적 계산을 통해 천동설을 정당화했지만 결국 진리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어떤 지식이 진리이냐 아니냐의 여부는 현재 시점에서 파악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것을 믿고 정당화하여 진리로 인식한다 해도 미래의 어느 시점에 가서 진리가 아니라는 결론을 얻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단지 새의 이름만 뿐인데도 모든 안다고 자부하곤 합니다. 누군가 개똥지빠귀 이야기를 하면, 새에 대해 알아라고 참견하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사물의 이름을 아는 것과 사물의 본질을 아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새가 어떤 색의 깃털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소리로 우는지, 어떻게 새끼를 키우는지 등을 체험과 증명을 통해 아는 것이 중요하죠.

안다는 것은 적극적이고 동적인 과정입니다. 끊임없이 믿고 증명할 있어야 여러분은 비로소 '아는 '입니다. 안다는 것의 세 가지 기준을 들여다 보면서 주위를 둘러싼 지식을 고찰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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