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은 독(毒)이다   

2012. 4. 26. 09:00


샐리라는 아이가 사탕을 상자 안에 넣은 다음 방에서 나갑니다. 샐리가 없는 동안 누군가가 들어와 상자에서 사탕을 꺼내 바구니로 옮겨 놓은 후 사라집니다. 샐리가 돌아오면 상자와 바구니 중 어디에서 사탕을 찾으려 할까요? 당연히 상자를 먼저 들여다 볼 겁니다. 하지만 4살 미만의 아이들에게 이런 광경을 보여주면 샐리가 바구니에서 사탕을 찾으려 할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자기가 아는 것(누군가가 사탕을 옮겨 놓았다는 것)을 샐리도 알고 있으리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할 줄 모른다는 것이죠.

헌데 이런 현상이 비단 미성숙한 아이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라고 우습게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성인들도 자기가 아는 정보로 인해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지식의 저주'에 빠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입니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의 수잔 비르히(Susan A.J. Birch)와 예일 대학의 폴 블룸(Paul Bloom)은 155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지식의 저주를 경고합니다.



비르히와 블룸은 참가자들에게 짧은 상황을 전달했습니다. "방 안에는 파란색, 빨간색, 보라색, 녹색의 상자가 있다. 바이올린 연습을 끝낸 '비키'라는 여자아이가 바이올린을 파란색 상자에 넣은 후에 밖으로 놀러 나갔다. 비키가 없는 사이에 동생인 데니스가 들어와서 바이올린을 다른 상자로 옮겼다. 그런 다음, 모든 상자의 위치를 바꿔 놓았다. 비키가 방으로 돌아와 어느 상자에서 바이올린을 찾을 것 같은지 각 확률을 써보라." 데니스가 상자의 위치를 바꾸기 전의 모습과 바꾼 후의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 아래 링크의 논문)



(출처 : 아래 링크의 논문)



참가자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1그룹은 위와 동일한 설명을 들었고, 2그룹은 '데니스가 바이올린을 '빨간색' 상자로 옮겼다는 설명을, 3그룹은 '데니스가 바이올린을 '보라색' 상자에 옮겼다는 설명을 전달 받았습니다. 1그룹에겐 데니스가 바이올린을 어느 상자로 옮겼는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2그룹과 3그룹에게 비키가 모르는 정보를 알려준 것입니다. 참가자들은 모두 데니스가 네 상자의 위치를 뒤섞을 때 원래 파란색 상자가 있던 자리에 빨간색 상자를 놓았다는 점을 알았지만, 그 의미는 2그룹에게 특별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왜냐하면 2그룹은 데니스가 빨간색 상자로 바이올린을 옮겼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반면, 3그룹은 파란색 상자의 원래 위치와 보라색 상자의 새 위치 사이에 전혀 관련이 없었기에 2그룹과 같은 의미를 느낄 수 없었을 겁니다.

참가자들이 적어낸 확률을 평균해 보니, 데니스가 바이올린을 어디로 옮겼는지 듣지 못한 1그룹(일종의 대조군)은 비키가 파란색 상자를 제일 먼저 확인할 확률을 71%, 빨간색 상자를 가장 먼저 확인할 확률을 23%로 보았습니다. 3그룹의 학생들도 이와 비슷한 확률을 제시했습니다(파란색 상자 73%, 빨간색 상자 19%). 하지만 2그룹의 학생들은 다른 그룹과 확연한 차이를 나타냈습니다. 그들은 비키가 파란색 상자를 먼저 확인할 확률을 59%, 빨간색 상자를 먼저 꺼내볼 확률을 34%로 보았습니다.

1그룹과 비교하면 2그룹의 판단이 편향되었음이 금세 드러납니다. 비키는 분명 파란색 상자에 바이올린을 넣고 밖에 나갔기에 그 상자의 색깔을 기억할 겁니다. 물론 기억 못할 수도 있어서 파란색 상자가 원래 있던 위치에 놓여진 빨간색 상자를 제일 먼저 확인할지도 모릅니다. 1그룹은 비키가 이렇게 상자 색깔을 기억 못할 확률을 23%으로 본 반면, 2그룹은 34%으로 판단했습니다. 이는 바이올린이 실제로 들어있는 상자가 빨간색 상자임을 안다는 것이 2그룹 학생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2그룹의 학생들은 상황을 알지 못하는 비키의 입장이 되어 1그룹과 비슷한 확률을 추정해야 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 영향을 받아 확률을 부풀려 생각한 것이죠. 그야말로 '지식의 저주'가 단적으로 나타나 버렸습니다.

우리는 조직 내외부적으로 상황이 매우 모호하게 흘러갈 때 상황을 설명해주는 지식이 주어지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곤 하지만, 그 지식으로 인해 실제 수준보다 가능성을 더 크게 혹은 더 작게 판단할 위험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위의 간단한 실험이 이를 일깨워 줍니다. 여기에 본인이 보고싶어 하는 것만 근거로 채택하려는 확증편향까지 더해지면 지식의 저주는 우리의 눈에 안대를 씌우고 판단 실패라는 절벽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길잡이가 됩니다.

판단은 항상 어떤 요인에 의해 편향될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의사결정자의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기 이전에 '아는 것이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항상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참고논문)
The Curse of Knowledge in Reasoning About False Belie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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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한 분야에서 지식과 경험을 많이 쌓은 사람을 전문가라고 부릅니다. 전문가라고 하면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직장 상사들도 전문가로 부를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한 분야에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온갖 어려움을 몸으로 부딪히며 업무를 익힌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그들의 배경지식과 노하우는 아주 풍부해서 어떤 사안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해도 무슨 말인지 금세 알아차리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부 전문가인 상사들이 부하직원들의 업무 능력을 올바르게 예측하여 일은 배분할 거라고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오랜 경험과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부하직원들이 어떤 업무를 얼마나 빨리 끝낼 것인지 혹은 얼마나 빨리 끝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예측함으로써, 업무 흐름의 단절 없이 원하는 시간에 업무가 완료되도록 관리할 거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부하직원들이 일을 할 때 어떤 어려움에 봉착할지, 그런 어려움을 해결하며 일을 배우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한 분야의 전문가라 볼 수 있는 상사들은 부하직원들이 어떤 업무를 완료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정확하게 예측할까요?



스탠포드 대학교의 파멜라 힌즈(Pamela J. Hinds) 교수는 이 가설이 옳은지 실험을 통해 규명하고자 했습니다. 힌즈는 실험의 도구로 휴대폰을 사용했는데, 그녀가 실험을 수행했던 1990년대 중반은 휴대폰이 아직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중에는 휴대폰을 한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었죠. 힌즈는 휴대폰 기능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휴대폰 영업사원들(18명), 어느 정도 휴대폰을 써본 사용자들(44명), 그리고 휴대폰 이용 경험이 전혀 없는 초심자들(34명), 이렇게 세 그룹의 실험대상자들을 모았습니다.

그녀는 먼저 실험대상자들 모두에게 최신형 휴대폰을 보여주면서, 초심자가 휴대폰에 딸려오는 설명서만 보고 음성메시지함에 인사말을 저장하고, 음성메시지를 발송하고, 도착한 음성메시지를 확인하는 등의 일을 얼마의 시간 내에 완료할지 예측하라고 했습니다. 학습에 걸리는 시간을 예측해보라는 질문을 던진 겁니다. 그런 다음, 힌즈는 초심자들에게 휴대폰을 설명서와 함께 나눠 주고 실제로 과제를 수행하게 했습니다.

세 그룹 중에 누가 초심자의 학습 능력을 올바르게 예측했을까요? 휴대폰 사용 경험이 많은 영업사원들이 가장 근접한 답을 내놨을까요? 아니면, 초심자들이 스스로 자기들의 학습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했을까요? 두 그룹의 실험대상자들은 실제값과 크게 빗나가는 예측을 하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초심자들은 평균 31.5분 내에 과제를 수행했지만, 영업사원들은 초심자들이 휴대폰 음성메시지함 사용법을 익히는 데 13분도 채 걸리지 않을 거라 예측했습니다. 에측의 오차가 약 20분이나 됐죠. 흥미로운 점은 초심자들도 자신들이 과제를 완료하는 데에 13~15분 밖에 걸리지 않을 거라 예측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던 셈이죠.

초심자의 학습 능력을 가장 근사하게 예측한 그룹은 휴대폰을 사용한 경험이 어느 정도 있는 사용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19~22분 정도로 초심자의 완료 시간을 예측했습니다. 오차가 있긴 하지만, 전문가들과 초심자들보다는 양호했죠.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왜 휴대폰을 한번도 써보지 않은 초심자와 오랫동안 '전문적으로' 써 온 영업사원의 예측력이 별반 차이가 없을까요?

우리가 어떤 기술이나 방식을 처음 배울 때는 그것을 의식적인 기억 속에 저장하지만, 익숙해지고 능력이 발달할수록 그 기술은 무의식의 영역으로 자연스레 자리를 옮깁니다. 운전을 처음 배울 때는 운전강사로부터 배운 운전법을 외우고 기억해내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무의식에 의해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힌즈는 이렇게 어떤 기술이나 능력이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자리를 옮기면 한 가지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바로 어떤 과정을 거쳐 그 기술을 배웠는지, 그 기술을 배울 때 어떤 어려움에 봉착했는지, 그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소요되는지 등을 망각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은 그 기술에 이미 무의식적으로 능숙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배울 때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지를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소위 '지식의 저주'에 빠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상사가 1주일 안에 완료하라고 지시한 업무를 데드라인이 지나도록 끝내지 못해서 상사에게 야단을 맞은 경험이 한번 이상은 있을 겁니다. 상사는 여러분의 게으름과 낮은 열정을 꾸짖으며 '왜 그렇게 간단한 일을 아직까지 못하느냐?'라고 질책했겠죠. 혹은 '나는 예전에 이런 일을 금방 끝냈다고!'라며 여러분의 무능을 질타했을지도 모릅니다.

절대로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꾸중을 듣는다는 것은 참으로 열받는 일입니다. 따지고 보면 상사가 준 기한이 일을 완료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짧았을지 모르는데 말이죠. 위에서 설명한 힌즈의 실험이 여러분의 불만에 정당성을 부여해 줍니다. 상사들이 부하직원들의 업무 능력을 예측하는 일에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점, 상사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경험과 노하우가 풍부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점을 힌즈의 실험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습니다.

힌즈의 실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상사가 부하직원들의 업무 능력을 옳게 판단하여 업무 프로세스와 프로젝트를 원활하게 관리하려면 자신보다 경험과 지식이 조금 떨어지는 부하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힌즈에 실험에서 초심자의 학습 능력을 근사하게 예측한 사람들은 영업사원만큼 전문적이진 않지만 휴대폰을 사용해본 사람들이었습니다. 팀 내에 그런 부류의 직원들이 '지식의 저주'로부터 상사를 구해냄으로써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의 불필요한 반목을 줄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요컨대, 상사들은 지시를 내리거나 업무를 할당할 때 자신의 판단에 기초해 정하지 말고 부하직원들과 상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는 관리자의 필수요건입니다. 오랜 경험과 높은 수준의 지식이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는 관리자라면 말입니다.

(*참고논문 : The Curse of Expertise: The Effects of Expertise andDebiasing Methods on Predictions of Novice Performa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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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비곤 호수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라디오 진행자인 개리슨 케일러(Garrison Keiler)가 "워비곤 호수가에 사는 남자들은 모두 잘 생겼고 모든 여자들은 강하며, 모든 아이들의 지능은 평균 이상이다" 라고 언급하면서 생긴 심리학 용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평균 이상으로 여긴다는 점을 지적하는 말이죠. 대략 90퍼센트의 사람들은 지능과 능력에 있어 상위 10%에 속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엄밀히 따지면, 50퍼센트의 사람들이 상위 50%에 속한다고 생각해야 옳은데도 말입니다.

바로 이런 '워비곤 호수 효과' 때문에 다면평가(360도 피드백) 결과에 많은 사람들이 기분 나빠하고 심하면 크게 충격을 받고 좌절하는 현상을 보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과 타인이 생각하는 자신 사이의 괴리가 왜 그렇게 큰지를 수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심리학자 쉬나 아이엔가는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의 MBA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다면평가를 정례화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신입생(대개 직장을 다니다가 들어온)들의 예전 동료, 고객, 그리고 현재의 급우들이 다면평가자가 되었죠.



다면평가를 실시하자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평가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90퍼센트 이상의 학생들이 왜 자신이 느끼는 자신과 타인이 느끼는 자신이 다른지 이해하지 못했죠. 자신을 리더라고 생각한 어느 학생은 남들이 자신을 똑똑하게 평가하지만 경영자가 될 재목은 아니라는 평가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격이 다혈질은 어느 학생은 남들로부터 정서가 불안하다는 평가를 받고서 매우 기분 나빠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이엔가는 이런 '부조화' 현상이 매년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죠.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과 타인이 생각하는 자신 사이에 왜 이런 갭이 생기는 걸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은 나의 행동이나 사고에 대해 합리화할 기회를 가지지만, 타인은 나의 행동이나 사고를 그들의 경험에 근거하여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합리화'라는 색안경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고, 타인은 '그들 자신의 경험'이라는 색안경으로 나를 바라보기 때문이죠.

'워비곤 호수 효과'는 '지식의 저주'라는 말과도 연관이 됩니다. 1990년에 엘리자베스 뉴턴은 스탠퍼드 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녀는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후, 한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생일 축하송'과 같은 간단한 노래의 멜로디를 입으로 소리내지 말고 오직 박자에 맞춰 테이블을 손가락으로만 두드리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무슨 노래인지 알아맞히라는 임무를 부여했죠.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노래의 제목을 맞혔을까요? 실험에 사용된 노래는 모두 120곡이었는데, 그 중 3곡 밖에 맞히지 못했답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테이블을 두드리는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테이블을 두드리면, '듣는 그룹'의 학생들 중 50%는 곡명을 알아맞히리라 추측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못미치게 결과가 나오자 상당히 의아해 했습니다. "이렇게 쉬운 곡도 못 맞히다니, 바보 아냐?" 라는 반응도 나왔죠.

이것이 바로 '지식의 저주'입니다. 테이블을 두드리는 사람은 자신이 이미 노래를 알고 있기 때문에 박자를 듣는 사람들이 왜 곡명을 모르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아는 것을 다른 사람이 모른다는 것이 '용서'가 안 되는 것이죠. 칩 히스와 댄 히스는 그들의 책 '스틱'에서 "무언가를 알게 되면 알지 못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상상할 수 없게 된다" 고 지적합니다. 즉 자신의 행동과 사고에는 분명한 이유와 근거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는 알지만, 남들이 그것을 모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이죠.

미국에서는 '포춘 지' 선정 500대 기업 중 90%가 다면평가를 채택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2000년대 초반부터 많은 기업들과 공공기관들이 다면평가를 도입했는데, 운영하다가 비중을 줄이거나 아예 폐지해 버리는 조직이 많습니다. 제도를 운영해서 구성원의 불만만 야기하느니 차라리 폐지하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모양입니다. '워비곤 호수 효과'와 '지식의 저주 효과'로 인한 구성원들의 불만과 갈등을 다면평가 자체의 문제라고 인식하기 때문인 듯 합니다.

하지만 다면평가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점검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입니다. '좋은 게 좋다'란 생각으로 다면평가를 '인기투표'로 변질시키지 않는 한(대개 다면평가를 보상으로 연결시킬 때 인기투표의 경향이 나타남), 다면평가는 남들이 생각하는 '나'를 통해 좀더 나은 '나'를 만들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비록 평가 결과를 받는 순간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과 타인이 생각하는 자신 간의 괴리 때문에 기분이 나쁘고 충격을 받겠지만, 그런 자극을 통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 하죠. 1년에 한번 정도 그런 자극은 직원 개인에게 꼭 필요한 '입에 쓴 약'입니다.

다면평가에 문제가 많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남들의 평가을 통해 스스로를 계발할 동기를 찾지 못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에게는 타인의 평가가 그저 기분 나쁜 것에 그칠 뿐입니다. '목소리 큰' 그들의 불만을 잠재우려고 다면평가를 폐지한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일입니다.

다면평가에 대한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다면평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채택해야 합니다. 하지만 '보상'에는 반영하지 않아야 합니다. 연봉이나 승진 점수에 반영하기 시작하면 인기투표로 흐르거나 건강한 긴장감을 소모적인 갈등으로 변질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직원 각자에게 피드백하여 역량 계발의 동기를 가지도록 유도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평가로만 끝나고 개인들에게 피드백하지 않는 기업들이 종종 있는데, 그렇게 하면 직원들은 자신의 다면평가 결과가 이상한 용도로 쓰인다고 오해를 키울 뿐입니다.

다면평가를 통해 직원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워비곤 호수 효과'와 '지식의 저주'를 깨뜨림으로써 다른 직원과 조화롭게 어울리고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자신과 타인 사이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협력을 촉진하는 장치로 다면평가를 유도하는 일이 인사부서와 경영자의 몫이 아닐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왜 남들은 나를 이상하게 평가할까?" 라고 말하면서 다면평가로부터 아무것도 배우려하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인내심'도 필요합니다.

(*참고도서 : '쉬나의 선택실험실', '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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