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솔로몬 애쉬의 고전적인 실험을 이제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 겁니다. 알다시피, 오른쪽에 서로 길이가 다른 3개의 직선(B, C, D)을 보여주고, 그 중에서 왼쪽의 선(A)과 길이가 가장 비슷한 것을 골라보라는 실험이죠. 분명히 B가 답인데도 불구하고 7명의 공모자들이 누가 봐도 잘못된 답인 C를 이야기하면, (다른 피실험자들이 사실 공모자라는 걸 모르는) 피실험자는 '사회적 압력'을 느껴 자신도 C를 답으로 말하는 경향이 매우 큽니다. 애쉬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오답인 C를 제시한 사람이 피실험자들 중 3분의 1에 달했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그 비율이 아주 크죠.



애쉬는 실험의 조건을 조금 바꿔 보기로 했습니다. 공모자들 중 1명에게 옳은 답(B)을 이야기하도록 하면, 피실험자가 오답(C)를 말할 확률이 크게 감소한다(반대로 정답률이 크게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여러 사람 중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옳은 답을 제시하여 피실험자의 생각을 강화해 준다면 자신감을 가지고 소신을 밝힌다는 것이죠. 헌데, 정답률은 옳은 답을 말하는 공모자 수가 1명일 때 급격히 상승하고, 그 다음부터는(옳은 답을 말하는 공모자의 수를 2명, 3명으로 늘리면) 정답률이 거의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이 결과는, 우리가 뭔가를 의사결정할 때 특정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숫자가 아니라, 저것이 아닌 이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율을 크게 참조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마케팅에서 애쉬의 실험 결과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순고객추천지수(Net Promoter Score)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NPS는 우리회사 제품을 추천하는 고객의 비율에서 비추천 고객의 비율을 뺀 값을 말합니다. 정의 자체는 아주 단순하죠. 하지만 NPS는 고객을 둘러싼 네트워크의 힘을 잘 이해하는 지표이기 때문에 마케팅에 있어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상품을 구매할 때 사람들은 종종 구매로 얻는 효용과 앞으로 지출될 비용을 명확히 가름하기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보통 준거집단(보통, 주위 사람들)의 힘을 빌리는 경향을 보이죠. 즉 자신을 둘러싼 인적 네트워크의 힘에 의존합니다. 그런데, 상품의 특성과 구매자 본인의 성향에 따라 준거집단의 의견을 얼만큼 참조할 것인지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만일 신제품인데다가 브랜드 이미지까지 열등한 회사의 제품이라면 준거집단 내에게 그 제품에 대해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의 비율이 상당히 높아야 구매를 결정합니다. 또한 구매자 본인이 위험추종자(Risk Taker) 혹은 얼리어답터(Early Adaptor)라서 새로 나온 제품을 안 써보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라면 우호적인 멤버의 비율이 낮아도 쉽게 구매를 결정하겠죠.

하지만 상품을 구매할 확률은 우호적인 멤버의 비율에 비례적으로 커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4명이 우호적일 때는 구매할 마음이 별로였는데 5명이 되면 갑자기 구매하고자 하는 욕구가 높아지죠. 즉 아래의 그래프처럼 A라는 제품을 선택한 이웃의 비율에 따라 구매 확률이 비선형적으로 움직이며 특정 비율에 이르면 구매 확률이 급격히 상승합니다. 구매 확률이 갑자기 도약할 때의 값, 즉 임계치는 상품의 특성과 구매자의 성향에 따라 0에서 1까지의 범위에서 결정됩니다.

 

NPS가 강력한 이유는 마케터들로 하여금 자사 상품에 대한 구매 임계치와 구매의 메커니즘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한다는 점입니다. 고객을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점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그물망(네트워크)으로 이해함으로써 기업의 마케팅은 창발적으로 변모할 필요가 있죠.

요즘 '나는 꼼수다'가 대안언론으로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나는 꼼수다'의 열풍을 보며, 모든 공모자들이 오답을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커다란 사회적 압력을 받아 자신도 오답을 말하는 애쉬의 실험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나는 꼼수다'는 오답을 말하던 공모자 중 한 사람이 정답을 이야기하면 사회적 압력이 순식간에 흐물흐물해져 소신있게 정답을 말하는 애쉬의 두 번째 실험을 또한 연상케 합니다.

'나는 꼼수다'의 미덕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그 방송에서 오고가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사회적 공모자'들 사이의 균열을 일으켜 무언가에 의해 강제된 사회적 압력의 사슬을 끊도록 기폭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높이 삽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비율에서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의 비율을 뺀, '순정치추천지수'을 끌어올렸다는 것이  '나는 꼼수다'가 이뤄낸 성과 중 하나입니다. 아니면 '정치'라는 상품이 가지는 높은 임계치를 끌어내림으로써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던(혹은 냉소적이던) 사람들을 '정치 얼리어답터'에 가깝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사람들은 무언가를 선택할 때 남을 먼저 쳐다 봅니다. 그 대상이 상품이건 서비스이건 정치적 지향이든 다른 사람의 선택이 자신의 선택에 영향을 미칩니다. 과거처럼 투자한 만큼 성과가 나온다는 선형적인 관점으로 시장을 바라보면 낭패를 겪습니다. 시장은 네트워크이고, 네트워크는 비선형적이고 창발적입니다. 이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고도서 : 'Six Degrees', Duncan Watts)
(*생각을 정리 중이라, 향후에 글을 보완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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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팅을 위해 직원들과 인터뷰를 하다 보면, "제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곤 합니다.  이와는 달리, 본인이 받는 연봉이 자신의 능력에 비해, 혹은 남들에 비해 많다는 이야기는 들을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과 남을 비교하는데요, '내가 남보다 무엇이 못한가'라는 능력의 비교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은 '내가 남보다 무엇을 손해보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계산합니다. 이것은 진화를 통해 우리 인간의 DNA 속에 깊게 내장된 생존의 본능 때문입니다. 진화적으로 우리의 친척이라고 할 수 있는 원숭이들은 어떨까요?

원숭이들에게 조약돌을 준 다음 오이를 보여주면, 조약돌을 돌려줘야 오이를 먹을 수 있게 된다는 걸 원숭이들이 금방 눈치챈다고 합니다. 사라 브로스넌(Sarah Brosnan)과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은 '흰목꼬리감는원숭이' 두 마리에게 이런 실험을 해봤습니다.


처음에는 두 마리 모두에게 조약돌을 건네 받은 대가로 오이를 주었는데요, 그러다가 한 원숭이에게는 포도를 주고 다른 원숭이에게는 계속 오이를 주면서 불공정한 거래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원숭이에게 있어서 당분이 많은 포도는 오이보다 '비싼' 음식이겠죠. 

오이만 받아 먹던 원숭이는 동료가 자신보다 훨씬 높은 '연봉'으로 보상 받는 것을 화가 나서 바라보다가 갑자기 게임을 중단하고 조약돌뿐만 아니라 평소 좋아하는 먹이인 오이까지 내던져 버렸다고 합니다.

과학저술가인 매트 리들리(Matt Ridley)는 "인류는 강박적이라고 할 정도로 평등주의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런 경향은 인류가 수렵채집 사회를 이루며 생활하던 시절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뿌리 깊은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 때문에 직원들의 보상 수준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공정성인데요, 내가 남보다 적게 받는지, 혹은 남이 나보다 많이 받는 것인지에 관한 직원들의 근본적인 의심을 해소해 주는 것이 연봉제 설계의 열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CEO와  인사담당자들은 객관적으로 평가지표를 만들어서 투명하게 평가하려고 많은 노력을 쏟고 있는데요, 문제는 그것이 지나치게 직원 개개인의 능력과 성과를 다른 직원들의 그것과 구별해 내기 위한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겁니다. 

개인의 역량과 성과를 제고시키면 자연히 조직의 성과가 높아진다는 생각은 바로 ‘성과주의 인사제도’의 일반적인 정서입니다. 하지만 조직 관점에서 '좋은' 성과와 개인 관점에서 좋은 성과가 동일해야 성과주의 인사제도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개인 관점에서 좋은 능력과 성과라 할지라도 조직 성과와 무관하거나 오히려 조직 성과를 깎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개인보다 조직에 중심을 두는 인사제도가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찮게 생각하는 개미가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언젠가 세일즈맨의 순회문제를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그 문제를 풀려면 수퍼컴퓨터로도 우주의 나이보다 긴 100억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개미들은 그걸 아주 근사하게 풀어낸다고 합니다.

개미들이 먹이를 발견하면 그 소식을 둥지에 있는 동료들에게 알리러 가는데, 개미들은 길을 지날 때마다 페로몬(pheromone)을 분비해서 동료 개미를이 그걸 따라오도록 합니다. 아래에는 먹이까지 이르기 위한 경로가 두 개가 있습니다. 

둥지 --> A 경로 선택 --> 먹이  (총 22만큼의 거리)
둥지 --> B 경로 선택 --> 먹이  (총 12만큼의 거리)

개미들은 초기에 A경로와 B경로를 무작위로 선택하여 먹이가 있는 곳으로 찾아 갈텐데, 그렇게 되면 둥지로 되돌아 갈 때는 B경로를 이용하는 개미의 수가 더 많아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B경로를 이용한 개미들이 먹이에 더 빨리 도착하고, 절약한 시간만큼 많은 숫자의 개미가 그 길을 왕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개미가 B경로를 이용하면 자연스레 많은 양의 페로몬이 길 위에 뿌려지게 되겠죠, 그래서, 더욱더 많은 개미들이 그 길을 이용하여 먹이를 운반하게 됩니다. 수퍼컴퓨터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는 최단경로를 개미들이 발견해 내는 겁니다.

개미 한 마리의 지능은 지능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어려울 정도로 매우 낮습니다. 개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페로몬을 길 위에 뿌리고 더 많은 페로몬이 묻은 길을 선호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단순한 몇 가지 규칙으로 집단이 더 큰 능력을 창출하는 현상을 ‘창발성(Emergence)'이라고 말합니다. 개미가 사람이나 컴퓨터보다 훌륭히 문제를 해결하는 이유는 그들의 집단 지능이 개미 한 마리의 지능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개인을 조직보다 우선시하는 제도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칫 조직전체의 창발성을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조직의 창발성 극대화를 위해서는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H. 카(Edward H. Carr)는 "개인의 천재성을 역사의 창조력으로 간주하려는 욕망은 역사의식의 원시적인 단계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말했습니다. 개인의 특성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미국식 성과주의가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는 걸 일깨우는 말입니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상호작용과 조직의 창발성에 초점을 맞춘 한국형 성과주의를 정립해야 합니다. 정신 병리학자 윌리엄 콘돈이 인간을 고립된 독립체로 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듯이, 우리는 개인이면서 조직의 일원이기 때문입니다. 

(* HiCEO 강의 '경영 속의 과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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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들의 작은 동기들이 모여서 재미있고 때로는 중대한 결과를 낳곤 합니다. 강연장에서 사람들이 좌석에 앉는 패턴을 살펴보면, 개인들이 연사와, 그리고 다른 청중들과 얼마나 '이격'돼야 하는지 의식적으로 아는 것만 같습니다.

사실은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행동들이 결합되어 나타난 현상이죠. 혼잡한 교통상황, 커피가 갑자기 희소해지는 현상, 기부액이 급증하는 현상들은 모두 개인의 미시적인 동기가 거시적인 행동 패턴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토머스 셸링은 이런 사회현상을 주의 깊게 연구한 학자로서 2005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가 '미시동기와 거시행동'이란 책에서 소개된 모의실험이 있습니다. 일명 "끼리끼리 모이는 현상"에 관한 실험입니다.

이 실험은 서로 이질적인 두 종족(혹은 인종이나 국적)이 한 지역에 인위적으로 고루 섞여서 살기 시작한다면, 개인들이 자기네 종족과 같이 살려는 작은 욕구가 모이고 모여서 나중에는 뚜렷한 군집(군락)이 구분됨을 보여줍니다. 요컨대, 인종차별의 감정이 없더라도 군집이 분리된다는 걸 보여주는 실험이죠.

그 글을 읽고나서, 그냥 눈으로만 읽을 게 아니라 직접 실험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밤늦도록 시간을 까먹고 말았지요.

제가 한 시뮬레이션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1. 다른 종족인 'O족'과 '#족'이 8X8의 바둑판에 고루 퍼져 거주할 것을 '명' 받았습니다. 즉, O족과 #족이 바둑판의 한칸씩을 번갈아 점유토록 한 것이지요.

2. 그런 다음 무작위로 몇 개의 셀을 지웁니다. 왜냐하면 이사 갈 공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죠. 그래서 아래와 같은 매트릭스를 얻었습니다. 보다시피 O족 사람과 #족 사람들이 섞여 사는 중입니다.


3. 각 셀에 사는 사람들이 이사 가야겠다는 동기를 갖도록 만드는 로직을 다음과 같이 적용했습니다. 이 조건을 만족하지 않는 셀은 '이사를 가야하는 셀'이 됩니다.

- 이웃이 3~5명이면 적어도 그 중 2명 이상이 동족이어야 살 만하다.
- 이웃이 6~8명이면 적어도 그 중 3명 이상이 동족이어야 살 만하다.
- 이웃이 2명이면, 그 중 하나는 동족이어야 한다.
- 이웃이 1명이면, 그 이웃은 반드시 동족이어야 한다.

4. '이사를 가야하는 셀'이 밝혀지면, 그놈을 바둑판의 빈곳으로 이사를 시킵니다. 이사 시키는 로직의 기본은 '자신을 둘러싼 8개의 셀 중에서 동족을 많이 만나게 될 빈곳으로 이사를 시킨다'입니다. 그 밖의 로직은 대세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여러분 마음대로 정해도 됩니다.

5. 3번부터 4번의 절차를 계속 반복합니다. '이사를 가야하는 셀'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계속하면 됩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제가 해본 시뮬레이션의 결과입니다. 고르게 퍼져 살던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끼리끼리 모이는 현상을 나타냅니다. 약간의 예외 셀이 존재하나,  좌상단은 주로 O족이, 우하단쪽은 #족이 모여 살게 됩니다.

플레이 버튼을 눌러서 셀의 분포가 변하는 모습을 살펴 보십시오. 특이한 점은 한참 후에 군락의 구분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두 번째 컷으로 넘어가자마자 어느 정도 군락이 구분된다는 것입니다. 비약일지 모르지만, 마치 '창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간단한 실험이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전달합니다. 개인들의 욕구(예를 들어, 가능한 한 많은 동족을 이웃으로 두려는)가 국가나 지역 단위로 축적되면, 의도치 않은 중대한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현상은 말콤 글래드웰이 유행시킨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와, 카오스 이론에서 감초처럼 등장하는 '나비효과',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실현적 예언'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서로에게 적응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잘 성취하느냐의 문제는 다른 사람의 행동에 크게 영향을 받지요. 우리는 보통 위대한 인물이 걸어온 발자취를 되짚어 가면 그 사람의 위대한 품성을 만나리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독불장군처럼 혼자 잘나서 잘된 사람은 없습니다. 무의미하게만 보이는 수많은 개인들의 욕구와 의사결정들이 우연하게 '좋은 방향'으로 '창발'되어 그 사람의 위대함을 조력했기 때문입니다.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강조하는 주장도 바로 이러한 것이죠.

위의 실험은 국가나 기업들이 의사결정을 내릴 때 작위적인 도구를 사용하여 개인들의 동기와 선택의 자유를 무력화시키거나 조작할 수 있을까란 의문도 함께 던져 줍니다.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한 작위적 도구의 기저엔 더 작은 미시의 동기들이 꿈틀거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배태된 '혁명'의 들끓음 위에 발을 딛고 살지요.

혹 다른 조건으로 실험을 해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Excel 파일을 공개합니다. (조악하니, 그 점은 양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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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발성으로 금융위기를 타개하자   

2008. 11. 7. 09:20

(사진 : 유정식)


프레드 호일은 우주의 시작과 끝은 없으며 항상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정상우주론’을 제시한 천문학자로 유명하다. 그 이론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생명체의 진화를 맹공격했다. 그는 생명이 지구상에 출현할 확률은 고물 야적장을 휩쓸고 지나간 태풍이 운 좋게 보잉 747을 조립해 낼 확률과 다를 것이 없다는 가설을 주장했다.

우연에 의해 일어난 자연선택이 어떻게 복잡한 생명을 발생시킨 동력이 된다는 것인지 그는 납득하지 못했다. 우연에게 진화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길 수 없다는 고집 때문이었다.

요즘처럼 금융위기의 폭풍으로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상황에 처할 때마다 경영자들은 조직을 가능한 한 자신의 통제 하에 놓으려고 한다. 불확실한 외부환경으로 인해 내부환경조차 불확실한 상태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프레드 호일처럼 기업 경영의 우연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하부로 이양된 권한을 다시 상부로 거둬들이고 각 사업부가 개별적으로 진행하던 사업을 통제하려 든다.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에 신경 쓰기보다 어떻게 하면 내부 통제를 잘 할 수 있을지에 집중한다. 통제하지 않으면 우연이 곧바로 무질서함으로 나타날 거란 강박관념에 짓눌린다.

물론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기업의 경영 구조를 재편하고 비효율적인 제도를 추스르려는 시도는 자연스러운 조치다. 그러나 조직의 ‘창발성’까지 제거하려 든다면 곤란하다. 창발성은 ‘그룹 지니어스’란 말로도 표현할 수 있는데, 개인 수준에서 보이지 않았던 특성이 집단을 이루면서 놀라운 능력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창발성은 집단생활을 하는 흰 개미에게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아프리카에 사는 버섯흰개미는 탑처럼 생긴 둥지를 4미터나 쌓아 올린다. 그리고 애벌레에게 먹이려고 버섯 농사까지 짓는다.

개미 한 마리의 지능은 굳이 지능이라고 부를 것도 없을 만큼 매우 낮음에도 이런 능력을 보이는 이유는 개체들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네트워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업 내부도 직원들 간, 직원들과 시스템 사이, 시스템과 시장 사이는 무질서한 그물망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창발성은 이처럼 무질서한 네트워크로부터 출현하는 것이지, 누구나 예상 가능하도록 ‘네모반듯한’ 바둑판의 모양으로 조직을 재편하고 통제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조직을 한눈에 조망해보자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해보자고 통제 기법을 무분별하게 적용하면 기업이 쌓아온 창발성의 유산을 일시에 날려버릴 수 있다.

식료품 체인인 세이프웨이는 철저한 통제로 위험에 빠진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가짜 고객을 매장에 풀어 직원들이 규정에서 어긋난 행동을 취하는지를 일일이 평가했다. 고객서비스 매뉴얼은 최대한 상세하게 작성해서 무조건 따르도록 강제했다. 직원들의 행동이 우연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평가가 저조한 직원들은 '스마일 학교'라고 불리는 8시간짜리 특수 교육을 받아야 했고 세 번 넘게 교육 대상이 되면 해고돼야 했다.

이러한 통제 정책은 초기에는 남들이 부러워할 성공을 거뒀지만 머지않아 화를 불러일으켰다. 여직원의 미소가 남자 고객들에게 유혹으로 받아들여지고, 웃지 못 할 상황에서도 억지웃음을 짓는 것이 직원들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었다. 결국 세이프웨이는 서비스 정책의 폐지를 요구하는 노조의 장기파업으로 매출과 이익에 큰 타격을 입었으며 2002년과 2003년에는 적자를 기록하고 말았다.

 "한 번도 비행기를 놓쳐보지 않은 사람은 그만큼 많은 시간을 공항 대합실에서 허비한 사람"이라고 경제학자 헤르베르트 기어슈는 비꼰다. 효율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오히려 비효율적이 된다는 말이다.

우연은 무질서이고, 무질서는 불확실성이며, 불확실성은 위험이라는 생각은 지극히 단선적인 사고방식이다. 우연과 자유분방함을 권장하여 조직의 창발성이 위기를 스스로 타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전무후무한 세계적 금융위기에 처한 요즘의 경영자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Let It Be!

(본 칼럼은 광주일보 2008년 11월 7일자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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