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할 때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사항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지원자가 과연 해당 직무에서 요구되는 역량을 갖춘 사람인지의 여부일 겁니다. 그렇게 하려면 역량을 파악하기 위한 질문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던져야 하고 객관적으로 지원자의 답변을 평가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는 것 역시 당연한 과제겠죠. 그러나 실제로 기업에서 행하는 채용 관행을 살펴본 노스웨스턴 대학의 로렌 리베라(Lauren A. Rivera)는 지원자의 역량이나 경력 등과 같은 자질보다는 '문화적 동질성'이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합니다. 


리베라는 법률 자문, 투자은행, 컨설팅사와 같이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서 채용 프로세스를 진행했던 임원, 인사 담당자, 중간관리자 등을 대상으로 모두 120번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40~90분 동안 이뤄진 인터뷰에서 리베라는 가상의 지원자들이 쓴 이력서를 보여주고 구두로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이 지원자의 어떤 요소를 중요시하며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죠. 또한 리베라는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 중 한 곳에서 채용 과정을 직접 관찰하고 모니터링하면서 채용 담당자들의 판단 기준을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이 두 가지 연구 방법을 통해 수집된 정보를 분석한 결과, 경영자들은 지원자의 역량 뿐만 아니라 그 지원자가 '조직의 문화와 얼마나 잘 맞는가', '동료들과 문화적으로 잘 융화될 수 있는가'를 매우 중요시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리베라의 연구에서 문화적 동질성이 채용에 중요한 요소라고 말하는 사람은 40~70퍼센트에 달할 만큼 문화적 동질성 여부는 면접관들이 지원자들을 평가하기 위한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었죠. 더욱이 리베라는 '이 지원자는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가?'와 같이 채용 결정자와 지원자 간의 개인적인 동질성 여부도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여가 활동이나 취미가 얼마나 비슷한가와 관련된 질문도 자주 등장했고 지원자의 말하는 스타일 역시 중요한 변수였죠. 


논문에서 리베라는 채용 기준을 충분히 갖춘 지원자를 라크로스나 스쿼시와 같은 운동에 관심이 적다는 이유로 탈락시킨 어느 법률회사의 관리자 이야기를 사례로 듭니다. 또한 18세기 문학에 관심이 많다는 지원자를 지나치게 '지성적'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떨어뜨린 사례도 있었죠. 리베라는 "여러 측면에서 채용을 결정하는 일이 마치 친구나 연애 상대를 선택하는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고 한마디로 정리합니다. 능력 있는 동료보다는 '같이 놀기에 좋은 친구'를 뽑으려 한다는 것이죠.


이렇게 채용 결정자들이 문화적 동질성을 지원자의 역량만큼(혹은 그보다 더) 중요시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지원자가 조직의 일원이 될 때 다른 직원들과 불필요하게 경쟁하지 않고 원활하게 의사소통하며 융화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은 아닐까요? 조금 부족한 역량은 코칭이나 교육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지만 문화적 동질성은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믿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문화적 동질성을 가진 직원일수록 자신의 업무를 즐기고 동료들과 잘 지내며 회사에 오래 근속할 거라는 믿기 때문이죠.


이유야 어떻든 간에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의 역량보다는 문화적 동질성을 중요시할 때의 장점과 단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 회사 혹은 '나'와 문화적으로 잘맞는 사람을 뽑으면 신뢰와 의사소통을 지속적으로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비슷한 문화적 성향의 사람들이 모인 조직일수록 업무 자체에 몰두하기 어려울뿐더러 집단사고의 위험도 크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채용 결정자들이 자신과 얼마나 잘 어울릴 수 있는 지원자인가를 중요시하는 탓에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를 외면한다는 것도 치명적인 단점이죠.


여러분의 채용 관행이 명시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문화적 동질성을 필요 이상으로 중요시한다면 그게 과연 어떤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필요에 따라 문화적 동질성이 더 중요한 직무가 있겠지만, 지원자의 취미가 나와 같지 않다고 해서, 내가 싫어하는 분야를 지원자가 좋아한다고 해서 충분한 능력을 갖춘 지원자를 평가절하하지 않는지 경계하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Lauren A. Rivera(2012), Hiring as Cultural Matching: The Case of Elite Professional Service Firms,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Vol. 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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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볼 때 빨간 넥타이는 매지 마라   

2012. 10. 24. 11:15


여러분은 오늘 어떤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갑니다. 뭘 입을까 고민하며 옷장을 살펴보니 새로 산 빨간 넥타이가 눈에 띕니다. 여러분은 빨간 넥타이를 목에 대보며 생각합니다. '이걸 매고 면접장에 들어서면 면접관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할 때도 주눅들 것 같지도 않고 말야.'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틀렸을 뿐만 아니라 면접에서 떨어질 확률을 오히려 높입니다. 


뮌헨 대학의 마르쿠스 마이어(Markus A. Maier) 등의 연구자들은 108명의 참가자를 모집하여 대형 컴퓨터 회사의 채용 담당자의 역할을 부여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첫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은 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총괄할 팀장을 선발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신규 팀장이 수행할 임무를 간단하게 전달 받았습니다. 반면 두 번째 그룹은 단순하게 사진 속 인물로부터 받은 인상을 평가하도록 요청 받았죠. 세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에게는 남녀 소개 사이트에 올려진 사진을 보고 데이트 상대로 적합한 사람인지를 평가하는 역할이 맡겨졌습니다.





마이어는 참가자들에게 빨간색 혹은 녹색 셔츠를 입은 동일한 남자 사진을 5초 동안 보여주고 그가 얼마나 똑똑해 보이는지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전체적으로 빨간색 셔츠를 입었을 때가 녹색 셔츠를 입었을 때보다 덜 똑똑해 보인다고 답했습니다. 이러한 효과는 신규 팀장을 뽑아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 첫 번째 그룹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그저 얼굴을 보고 평가하도록 한 두 번째 그룹과 데이트 상대로서 평가하도록 한 세 번째 그룹에서는 빨간색 셔츠와 '덜 똑똑하다'는 인상과의 연결이 미약했죠. 이는 역량을 평가해야 하는 상황에서 빨간색이 피평가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후속실험에서 마이어는 동일한 남자가 빨간색 넥타이를 맨 사진과 파란색 넥타이를 맨 사진을 참가자들에게 각각 보여주고 그 남자의 수입과 리더십 자질에 대해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예상대로 참가자들은 사진 속 인물이 빨간색 넥타이를 맸을 때의 수입과 리더십 자질을 파란색 넥타이를 맸을 때보다 낮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채용하고 싶은 마음과 전반적인 호감도에서도 빨간색 넥타이를 맸을 때의 점수가 상대적으로 저조했죠. 


빨간색 옷이나 넥타이가 면접관에게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역량을 평가하고 평가 받는 상황에서 빨간색은 지원자 자신의 진짜 역량을 평가절하하는 역효과를 발생시킵니다. 물론 마이어의 실험은 사진만을 보고 인상을 평가하도록 한 것이기에 실제로 말을 나눠보면 지원자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빨간색 옷을 입었다 해도 면접관의 질문에 '똑부러지게' 답함으로써 처음에 받았던 인상을 역전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일부러 빨간색 옷을 입거나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가서 얼굴에서 느껴지는 인상을 평가절하시킬 필요는 없겠죠.


오늘 면접을 보러 갑니까? 그렇다면 빨간색을 피하세요. 이력서에 붙일 사진을 택할 때도 빨간색 옷이나 넥타이를 착용하고 찍은 사진은 피해야 합니다. 요즘 같은 구직난에 지원자들이 알아둬야 할 작은 팁입니다.



(*참고논문)

Markus A. Maier, Andrew J. Elliot, Borah Lee, Stephanie Lichtenfeld, Petra Barchfeld, Reinhard Pekrun(2012), The influence of red on impression formation in a job application context, Motivation and Emotion, DOI: 10.1007/s11031-012-93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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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사업을 제대로 해나가려면 전반적으로 고른 역량을 갖춘 제너럴리스트와 특정 분야에 전문적인 수준의 역량을 지닌 스페셜리스트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전문 역량이 필요한 직무에 제너럴리스트를 배치하거나, 제너럴리스트가 담당해야 할 업무를 스페셜리스트에게 요구하는 식으로 인력을 활용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하죠. 


그러나 실제로는 스페셜리스트보다 제너럴리스트를 채용하려는, 편향적인 채용 결정이 매우 자주 일어납니다. 이를 '제너럴리스트 편향(Generalist Bias)'이라고 부릅니다. 심지어 스페셜리스트가 배치되어야 할 직무에도 여러 영역에 고르게(하지만 깊지는 않은) 역량을 지닌 제너럴리스트가 더 선호되는 경향이 빈번하게 나타납니다.  언뜻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라고 생각하겠지만, 홍콩대학교의 롱 왕(Long Wang)은 이러한 편향이 매우 일반적이라는 점을 일련의 실험을 통해 규명했습니다.





왕은 학생들에게 '공 맞히기 게임(ball-hitting game)'에서 자신과 같은 팀을 이룰 선수를 2명의 후보자 중에서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게임에서 녹색공을 맞히면 30점, 청색공을 맞히면 20점, 황색공을 맞히면 10점, 적색공을 맞히면 0점을 딸 수 있었는데, 학생들에게 소개된 2명의 후보자가 각 공을 맞힐 확률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후보자 A

녹색공 : 10%

청색공 : 40%

황색공 : 20%

적색공 : 30%


후보자 B

녹색공 : 45%

청색공 : 0%

황색공 : 0%

적색공 : 55%


여러분은 두 사람 중에서 누구를 팀 동료로 선택하고 싶습니까? 왕의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 중 72퍼센트가 녹색공만을 특별히 잘 맞히는 후보자 B보다는 여러 색깔의 공을 비교적 고르게 맞히는 후보자 A를 선택했습니다.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너럴리스트를 선호한 것이죠. 학생들이 기댓값(expected value)를 몰라서 이런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도 있기에 왕은 각 후보자의 기댓값을 계산한 후에 결정을 내리도록 했습니다. 후보자 A의 기댓값은 13점, 후보자 B의 기댓값은 13.5점이므로 당연히 후보자 B를 더 선호할 거라고 기대했지만, 여전히 학생들 중 70퍼센트는 제너럴리스트인 후보자 A를 선택했습니다. '제너럴리스트 편향'이 아주 강력하게 나타났던 것이죠. 좀더 조사해보니 경제학이나 통계학을 수강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도 43퍼센트나 후보자 A를 선택했습니다. 사실 적색공을 맞혀봤자 점수는 0점인데도, 후보자 A(제너럴리스트)를 선택한 학생들 중 66퍼센트가 적색공을 맞힐 확률에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NBA(미국 프로농구)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제너럴리스트 편향이 나타났습니다. 왕은 농구 통계 자료를 분석하여 3점슛 전문 선수가 3점슛을 성공시킬 때보다 2점슛으로 득점할 때 보상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이는 스페셜리스트가 스페셜리스트의 역할을 할 때보다 제너럴리스트적인 행동을 할 때 조직에 더 많이 기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왕은 이와 더불어 전반적으로 2점 슈터들이 3점슛 전문 선수보다 더 보상 받는다는 사실도 밝혔습니다.


후속실험에서 왕은 농구팬 287명에게 3점슛 전문 선수를 필요로 하는 농구팀 단장의 입장이라면 2명의 선수 중 누구를 뽑고 싶은지, 누구에게 더 많은 연봉을 주고 싶은지를 물었습니다. 후보자 A는 모든 영역에서 고른 성적을 보였고, 후보자 B는 3점슛 영역에서 매우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NBA 평균보다 낮았습니다. 왕은 참가자들 중 절반에게는 후보자 A와 B의 성적을 모두 보여주고 1명을 선택하라고 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두 후보자 중 한 사람의 정보만 보여주고 선발 여부를 결정하라고 했습니다.


후보자 B(스페셜리스트)의 정보만을 접한 참가자들은 그를 선수로 선발하려는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하지만 후보자 A와 B의 성적 데이터를 비교해서 볼 수 있었던 참가자들은 분명히 3점슛 전문 선수가 팀에 필요한 상황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보자 A(제너럴리스트)를 더 선호했죠. 스페셜리스트가 제너럴리스트와 서로 비교되는 조건에서 제너럴리스트 편향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결과였습니다. 


NBA 선수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라 와닿지 않는다면, 왕이 또다른 실험에서 HR(인사) 담당직원을 선발하는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제너럴리스트 편향이 강하게 나타났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5년 이상 보상(Compensation) 분야의 경력을 가진 사람을 뽑아야 하는 채용조건인데도, 실험 참가자들은 보상 분야에서 6년 이상 일한 지원자보다는 인사의 여러 영역에서 고르게 경력을 쌓았지만 보상 분야에서는 4년 밖에 일하지 않은 지원자와 인터뷰하기를 더 원했습니다. 채용조건인 '보상 분야 5년 이상'에 미달하는데도 말입니다.


왕은 몬스터(Monster)와 캐어러빌더(CarerBuilder)라는 채용 사이트에 접수된 HR제너럴리스트와 HR스페셜리스트 구인광고를 분석했는데, 기업의 규모와 상관없이 제너럴리스트 편향에 빠져 있지만 큰 기업이 작업 기업보다 편향의 정도가 더 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큰 기업일수록 HR스페셜리스트를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구인광고를 보면 지원자에게 여러 분야의 인사 업무를 수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즉 대기업은 '여러 업무를 다룰 수 있는 스페셜리스트', 결국 제너럴리스트를 더 선호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스페셜리스트는 제너럴리스트보다 덜 선택될까요? 제너럴리스트에 쏠리는 현상은 극단적인 것을 싫어하는 인간의 심리에서 기인합니다. 특히 스페셜리스트가 제너럴리스트와 비교될 때는 스페셜리스트의 강점보다는 약점이 의사결정자에게 더 큰 인상을 주기 마련이라서 아무리 특정 역량이 뛰어나다 해도 그 강점은 평가절하되고 맙니다. 스페셜리스트의 강점이 다른 직원들의 지원을 받아야만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도 제너럴리스트 편향에 한몫 합니다.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적어도 제너럴리스트 지원자들과 비교함으로써 스페셜리스트 지원자를 배제하려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한 직무에 어찌된 일인지 제너럴리스트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채용과 이동배치 과정에서 제너럴리스트 편향이 깊숙이 관여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회사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왠일인지 제너럴리스트가 너무 많다 싶지 않습니까?



(*참고논문)

Long Wang, J. Keith Murnighan(2012), The generalist bias,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Vol.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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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와 B, 이렇게 2명의 지원자 중에 한 명을 채용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A는 누가 봐도 스펙과 경력이 뛰어난 반면, B는 그보다 못하다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둘 중 누구를 뽑아야 할까요? 상식적으로 볼 때 당연히 A를 뽑는 게 유리하겠죠? 하지만 이런 상식적 결정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막스 플랑크 경제연구소의 나탈리아 몬티나리(Matalia Montinari)와 동료들은 학력, 경력, 자격 등이 썩 좋지는 않은 평범한 지원자(less qualified)를 뽑아야 유리하다는,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실험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몬티나리가 어떤 실험으로 이와 같이 직관에 반하는 결론을 내렸는지 살펴볼까요? 몬티나리는 총 630명의 실험 참가자를 모집하여 3명씩 그룹을 이루도록 하고 각자 격리된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도록 했습니다. 그런 다음 각자에게 고용주, 지원자 A, 지원자 B의 역할을 무작위로 부여했죠. 이때 지원자 B는 능력이나 스펙이 평범한 사람으로 인식시켰습니다. 참가자들이 수행한 과제는 고정 임금 조건으로 채용된 이후 지원자가 회사의 생산성을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쏟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종의 게임이었습니다.




몬티나리는 크게 2가지의 실험 조건을 설정했는데, 하나는 고용주가 A와 B 중에 한 사람을 채용하기로 결정한 후에 자유로운 형식으로 합격자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조건('소통 조건')이었습니다. 메시지의 내용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조건은 합격자에게 합격됐다는 알림 이외에 아무런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게 하는 조건('불통 조건')이었죠. 각 그룹은 무작위로 이 2가지 조건으로 배정됐습니다(사실 다른 조건 2가지가 더 있는데 여기서는 생략).


실험으로 얻은 첫 번째 결과는 제법 많은 고용주들이 평범한 지원자인 B를 합격시켰다는 것입니다. '소통 조건'에서 29.3%, '불통 조건'에서 36.2%의 고용주가 지원자 B를 선택했습니다. 거의 모든 고용주들이 스펙이 우수한(high qualified) 지원자를 선택할 거라는 예상이 빗나간 것입니다. 두 번째 결과는 고용주가 누구를 선택했든 상관없이 '소통 조건'에서 선발된 지원자들이 '불통 조건'에서 선발된 지원자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더 많은 노력을 쏟기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지원자 본인이 '왜 선발됐는지'를 분명히 인식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우리의 상식을 확인시켜 주는 결과입니다. 


세 번째 결과는 가장 충격적이었고 이 연구의 핵심이었습니다. '소통 조건'에서 선발된 평범한 지원자들은 스펙이 뛰어난 지원자들에 비해 50퍼센트나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게다가 이 조건에서 고용주가 얻는 이익은 평범한 지원자를 뽑을 경우가 뛰어난 지원자를 뽑을 경우보다 40퍼센트나 많았습니다. 반면, '불통 조건'에서는 지원자들이 내놓는 노력의 차이와 고용주가 얻는 이득의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몬티나리는 이런 결과를 '유도된 상호성(Induced Reciprocity)'란 말로 정리합니다. 선발되기에 조금 모자란 능력과 스펙을 지닌 자들이 스스로 능력과 스펙이 뛰어나다고 느끼는 자들보다 더 열심히 일함으로써 고용주의 채용에 보답한다는 뜻입니다. '불통 조건'에서는 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는 평범한 지원자에게 '능력과 스펙이 그리 뛰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뽑았다.'란 메시지를 어떤 식으로든 전달할 때 지원자가 그에 대한 보답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그에 따라 고용주가 얻는 이득도 높아짐을 뜻합니다. 일종의 부채감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드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죠.


몬티나리도 밝혔듯이 이 연구는 몇 가지 약점이 있습니다. 장기적인 효과는 다루지 않았다는 점, 2명의 지원자 중 한 명을 뽑는 가장 단순한 상황을 가정했다는 점, 임금을 고정으로 설정했다는 점, 평범한 지원자의 보답이 더 열심히 일하는 모습으로 나타날지 의심스럽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적어도 스펙이 떨어지는 직원을 뽑는다고 해서 손해는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시사합니다. 고용주가 적절하게 의사소통하면 스펙이 떨어지는 직원들을 통해 더 높은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난 자격이 충분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고(高) 스펙의 직원들은 그런 스펙을 얻기까지 소요된 비용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자신의 노력을 덜 기여하려는 동기를 갖습니다. 그래서 잘난 직원들로 조직을 채워도 드림팀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예전 글 '잘난 직원들을 모으면 드림팀이 될까' 참조). 몬티나리 실험에서 평범한 지원자를 선택한 고용주들은 이런 점을 알았던 모양입니다.


스펙은 회사에서의 노력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높은 성과는 더더욱 담보하지 못합니다. 지금 이순간도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수많은 예비지원자들, 그리고 이왕이면 스펙이 뛰어난 자를 뽑으면 회사에 좋지 않겠냐며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영자와 인사 담당자들에게 몬티나리의 연구가 따끔한 일침이길 바랍니다.



(*참고논문)

Natalia Montinari, Antonio Nicolò, Regine Oexl(2012), Mediocrity and Induced Reciprocity, Jena Economic Research Papers 201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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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지원자가 합격 여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해당 분야에 2년 동안 근무하면서 리더십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이제 막 이 분야에 발을 들여 놓은 자인데 리더십의 잠재력에서 앞의 사람과 동일한 수준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 외에 다른 조건(나이, 성별, 학력, 전공 등)들은 동일하고 회사가 원하는 조건에 두 사람 모두 부합할 경우, 여러분은 둘 중 누구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채용하겠다는 악수를 청하고 싶을까요?


자카리 토르말라(Zakary Tormala)와 동료들은 84명의 참가자들에게 위와 같은 상황을 제시하고는 향후 5년 동안 누가 더 일을 잘 해낼 것인지를 질문했습니다. 참가자들 대부분은 높은 성과를 이미 나타낸 지원자보다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된 지원자를 더 선호했습니다. 리더십에서 이미 검증된 사람보다는 리더십을 잘 발휘할 것으로 보이는 사람을 높게 평가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여러 번의 후속실험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지원자에게 얼마나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지, 어떤 지원자를 뽑을 때 리스크가 덜 할지 등을 물었더니, 참가자들은 과거에 높은 성과를 달성한 지원자보다 높은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 받은 지원자를 뽑으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또한 잠재력이 높은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리스크가 낮다고 여겼죠. 이미 높은 성과를 보인 지원자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왜 이런 경향이 나타나는 걸까요? 잠재력이 어떻게 이미 객관적으로 증명된 실력을 능가하는 걸까요? 잠재력이 있다고 해서 향후에 실력을 발휘할 거라 확신할 수 없는데 말입니다. 물론 과거에 높은 성과를 보였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러할 거라는 보장이 없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사람의 기질이나 역량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이미 최근까지 실력으로 입증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토르말라가 수행한 일련의 실험은 잠재력을 실력보다 우선하는 경향은 우리가 직원을 채용할 때 범하는 여러 가지 오류 중 하나입니다. 왜 이런 경향이 나타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잠재력이 미래의 불확실함을 줄여 줄 보험적 요소로 인식하는 듯 합니다. 좋은 지원자를 뽑고자 하는 면접관들은 잠재력을 실력보다 과도하게 높이 평가할 위험을 꼭 유념해야 합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토르말라의 실험은 다른 사람에게 선택 받으려면 자신이 과거에 어떤 성취를 했다고 단순하게 이야기하기보다는 그러한 과거의 성취가 앞으로 더 뛰어난 성과를 달성할 잠재력이 있음을 증명하는 근거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설득력을 높이는 방법임을 보여줍니다. 이야기의 프레임을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두어야 합니다. 직업을 구하는 구직자 뿐만 아니라, 고객사로부터 수주를 받으려는 영업 담당자들, 협상 테이블에 앉은 협상가들도 알아두어야 할 설득의 팁입니다. 



(*참고논문)

Tormala ZL, Jia JS, & Norton MI (2012), The Preference for Potential,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PM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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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과 같이 일할 한 명의 팀원을 새로 뽑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죠. 이력서를 들여다 봐도 직접 이야기를 나누며 테스트를 해 봐도 그 지원자의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점이 금방 눈에 들어옵니다. 헌데 프레젠테이션 능력은 여러분의 팀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량이고 여러분은 지금까지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가장 뛰어난 직원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일 때 여러분은 조직의 발전을 위해 함께 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지원자에게 악수를 청할까요? 여러 사람의 중지를 모아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라면 그 지원자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스스로에게 솔직하다면,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할 겁니다.

여러분이 특별히 이기적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노벨상 수상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새로 채용할 교수가 자신의 전공 영역에서 뛰어난 업적을 거둔 사람이라면, 신규 채용된 사람과 협업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새로 들어올 교수가 자신이 이미 거둔 업적을 초라하게 만들고 앞으로 이룰 업적을 갉아 먹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향을 '사회적 비교 편향'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자신의 강점 영역에서 자신을 능가하는 사람을 배제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와 자존감을 보호 받으려는 자연스러운 동기에 의해 발생하는 편향입니다. 특히 그 영역에서 자신이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을 때(혹은 그렇게 느낄 때) 이런 편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죠. 우리는 흔히 "예쁜 사람은 자신보다 외모가 덜한 사람과 함께 다닌다"고 말하곤 하는데, 이는 우리가 사회적 비교 편향을 실생활에서 경험하고 있다는 의미겠죠.



스테판 가르시아(Stephen M. Garcia) 등의 심리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사회적 비교 편향이 같이 일할 사람을 선택할 때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규명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하버드 법대 교수가 되어 두 명의 지원자 중 한 명을 교수로 채용하는 상황을 가정하게 했습니다. 참가자 중 절반에게는 법학 분야의 최고 저널에 25편의 논문을 게재한 교수로, 나머지 절반에겐 지금까지 발표한 논문이 총 95편인 교수라고 상상케 했죠. 다시 말해, 첫 번째 그룹은 논문의 질이 법대 내에서 가장 우수한 교수의 입장이, 두 번째 그룹은 논문의 양이 다른 어떤 교수들보다 많은 교수의 입장이 된 것입니다.

참가자들은 두 명의 가장 지원자 중 한 명을 신규 임용하는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존스라고 불린 교수는 총 75편의 논문을 썼고 최고 저널에 30편을 게재한 경력이 있고, 스미스 교수는 총 100편의 논문 중 20편을 최고 저널에 실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존스와 스미스 중에 누구를 추천했을까요? 논문의 질이 우수하다고 '프라이밍'된 참가자들 중 69%가 논문의 양이 많은 스미스를 선택했습니다. 반면, 논문의 양이 많다고 가정된 참가자들 중 31%만이 스미스를 선택했죠. 즉, 논문이 질이 우수한 사람은 논문의 양이 많은 사람을 선호하고, 반대로 논문의 양이 우수한 사람은 논문의 질이 우수한 사람을 선호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강점을 능가하는 사람을 은연 중 배제하려는 사회적 비교 편향이 뚜렷하게 나타난 결과죠.

가르시아는 이런 현상이 가상의 상황이 아니라 실제에서도 발생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후속실험을 수행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어휘와 수학 실력을 평가하는 시험을 본 후에 그 결과를 피드백 받았습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실제 점수와 상관없이 무조건 어휘와 수학 실력이 각각 상위 18%-상위 32%, 상위 32%-상위 18%인 두 가지 결과만을 피드백했습니다. 첫 번째 경우는 어휘 실력이 뛰어나다는 피드백이었고, 두 번째 경우는 상대적으로 수학 실력이 뛰어나다는 피드백이었죠.

그런 다음, 연구자들은 학생들에게 자신과 같이 과제를 수행할 팀원을 직접 골라보라며 두 명의 정보를 제시했습니다. 존 하디라 불린 학생은 어휘와 수학 실력이 상위 5%-36%였고, 스콧 워커란 학생은 각각 상위 35%-상위 6% 였죠. 실험 결과, 자신의 어휘 실력이 뛰어나다는 피드백을 받은 참가자들 중 74%가 스콧 워커를 선택했고, 수학 실력이 뛰어나다는 피드백을 받은 참가자들 중 62%가 존 하디를 선호했습니다. 이 결과 역시 자신의 강점 영역에서 자신을 뛰어넘는 사람을 덜 선호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사회적 비교 편향의 근원은 자존감을 보호하려는 본능에 있다는 점은 대학교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또다른 실험에서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높은 연봉을 받는 위치에 있다고 프라이밍된 참가자들은 자신보다 높은 연봉을 받게 될 지원자를 덜 선호했고, 조직 내에서 의사결정 권한이 가장 강하다고 프라이밍된 참가자들은 자신을 능가하는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지원자를 역시 덜 선호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자존감에 있어 높은 연봉과 강력한 의사결정이 각자에게 중요하다고 여긴 까닭이었습니다.

가르시아의 연구는 기업에서 이루어지는 채용 관행에 매우 의미있는 시사점을 던져 줍니다. 흔히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뽑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실제로 그러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위 실험에서 봤듯이, 특정 영역에서 실력이 보통인 사람들보다는 높은 실력을 지닌 사람들이 사회적 비교 편향을 나타낸다는 사실은 뛰어난 인재를 보유한 조직이 바로 그 뛰어난 직원의 존재로 인해 더 뛰어난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고 결국 더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잃을지 모른다고 추론케 합니다. 

일반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뛰어난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뛰어난 사람이 뛰어난 사람을 알아볼 능력이 있기에 오히려 뛰어난 사람을 배제하는 역효과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사회적 비교 편향에 의해 우수한 지원자를 배제할 위험을 줄이려면, 지원자에게 요구되는 영역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이는 기존 직원을 채용 심사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조치가 필요할지 모릅니다. 조직이 새로운 우수인력을 수혈하여 보다 높은 위치로 도약하길 원한다면 말입니다.


(*참고논문)
Tainted recommendations: The social comparison b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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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머리가 좋은 사람과 지능이 그저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에게 동일한 과제를 부여하면 평균적으로 누가 더 과제를 잘 수행할까요? 여러 과제를 던져보면 당연히 머리가 좋은 사람이 지능이 그저 그런 사람에 비해 과제 수행의 속도도 빠르고 완성도도 높습니다. 그런데, 과제를 부여할 때 압박감을 느끼도록 상황을 조성한다면 그래도 머리 좋은 사람이 과제를 훌륭히 수행할까요?

우리는 상식적으로 머리 좋은 사람이 중압감이 높은 상황에서도 주어진 과제를 빠르고 완성도 있게 완료하리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 즉 인지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압박 강도가 센 조건에서 초킹(choking) 현상을 보이며 무너질 확률이 크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사이언 베일락(Sian L. Beilock)과 토마스 카(Thomas H. Carr)는 미시건 주립 대학교 학생 93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지능 테스트와 비슷한 '작업기억(working memory)' 테스트를 보게 하여 높은 인지능력을 지닌 자(46명)와 낮은 인지능력(47명)을 가진 자로 분류했습니다. 베일락과 카가 학생들에게 부여한 과제는 '모듈러 연산'이라고 불리는 수학 문제였습니다. 이 연산을 수행하려면 중간 과정을 머리 속으로 기억해야 하기 때문에 작업기억을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각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화면에 나타나는 문제를 재빨리 본 다음에 'True' 혹은 'False'라고 답해야 했습니다.

베일락과 카는 학생들에게 중압감이 적은 상황과 큰 상황에서 문제 풀이의 정확도와 속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측정했습니다. 그들은 압박감을 주기 위해 학생들에게 문제를 푸는 속도가 컴퓨터에 의해 측정되고 각자가 문제를 푼 결과가 자기 자신의 보상금액(실험참가자에게 주기로 한 수고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보상금액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일러줬습니다. 과거에 다른 사람들이 받았던 테스트 결과보다 20% 높은 성적을 올릴 때 5달러를 지급하겠다고 말하고, 다른 학생들은 이미 20% 높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거짓으로 알렸습니다.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중압감을 주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이렇게 실험 조건을 두 가지(압박감이 적은 상황과 큰 상황)로 조성하고 학생들에게 쉬운 문제 24개와 어려운 문제 24개를 풀도록 했더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인지능력이 높거나 낮거나 관계 없이 쉬운 문제를 풀 때는 압박감이 높은 상황이 되어도 문제 풀이의 정확도와 속도가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압감이 큰 상황에서 어려운 문제를 풀 때는 달랐습니다. 인지능력이 높은 학생들의 정확도가 인지능력이 낮은 학생들에 비해 크게 떨어졌던 겁니다. 특이한 점은 인지능력이 낮은 학생들의 정확도는 어려운 문제를 풀 때 오히려 올라갔다는 사실이었죠. 그래서 어려운 문제를 풀 때는 지능이 높은 학생과 지능이 낮은 학생의 정확도가 거의 비슷하게 나타났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요? 베일락과 카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려운 문제를 푸는 과제는 작업기억을 상당히 많이 사용하는 과정인데 압박감이 커지게 되면 '내가 이걸 못 풀면 어떻게 하지?' '나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수고료를 못 받게 되면 어떻게 하지?'란 근심이 작업기억을 장악하고 맙니다. 그래서 문제를 풀기 위한 작업기억의 자원이 부족한 상태가 되고 말죠. 그래서 작업기억이 발달된(즉 인지능력이 뛰어난) 학생일수록 성과의 하락폭이 훨씬 크게 나타납니다. 우수한 학생들은 자신의 낮은 성과를 외부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상황을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는 특성이 있기에 인지능력이 그저그런 학생들에 비해 걱정거리로 인해 작업기억이 장악되기 쉽다는 것이죠. 초킹 현상은 작업기억이 뛰어난 자들에게 더욱 빈번하게 나타납니다.

요즘 인력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압박 면접' 기법을 사용하는 회사가 많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피면접자가 어려운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그 사람이 발휘할 능력을 파악하겠다는 의도죠. 압박감이 크고 (면접관들에 의해)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드러내는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능력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서점에 가보면 '케이스 인터뷰'라고 이름 붙여진 책들이 종종 눈에 띄는 것만 봐도 압박 면접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신뢰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일락과 카의 실험은 역량이 뛰어난 자일수록 압박 면접에서 인상적이지 못한 대답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뛰어난 인재를 오히려 놓칠 수 있다는 점, 실력보다는 순간적인 기지를 잘 발휘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압박 면접이 우수인재를 걸러서 '버리는' 역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험에서의 성과가 조직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자질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인지능력이 우수한 학생들이 압박감이 적은 상황에서 좋은 성과를 나타냈다는 베일락과 카의 실험에서 보듯이, 중압감을 조성하는 상황을 연출하기보다 피면접자가 압박을 덜 느끼도록 배려한다면 우수한 인재 아니 적어도 인지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떨어뜨리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겁니다. 압박 면접을 하더라도 그것을 피면접자의 능력 대부분을 평가하는 수단으로 보지 말고 다른 방식의 평가로 보완하는 조치도 필요합니다. 

압박이 아니라 배려와 안정감이 더 큰 성과를 더 꾸준하게 유도하는 법입니다. 압박 면접이 우수인재를 쫓아내는 방법일지 모름을 경계해야겠습니다.

(*참고논문 : When High-Powered People Fa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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