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과 메신져에서 벗어나라   

2011. 5. 20. 10:00



요즘 사람들은 이메일, 메신저, 그룹웨어 등과 같은 정보기술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에 상당히 익숙합니다. 기업이 커지다보면 자연스레 본사 근무나 공장 근무와 같이 여러 장소에 직원들이 흩어져서 일합니다. 그럴수록 대면 커뮤니케이션보다는 전화나 정보기술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케이션이 많이 활용되겠죠. 정확하게 측정해보지는 않았지만 직장 내에서 이뤄지는 의사소통 중에서 정보기술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대면(face-to-face) 커뮤니케이션보다 적지 않은 듯 합니다.

특히 바로 옆에 있는 직원들과 말로 이야기를 나누면 될 것을 굳이 메신저로 대화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봅니다. 메신저를 통한 '묵음'의 대화를 처음엔 재미로 시작하지만, 하다보면 그게 익숙해져서 둘 사이의 친밀감을 고양시키는 느낌을 줍니다. 또 제3자가 둘 사이의 대화를 듣지 않는다는 편리함(?) 때문에 메신저를 애용하기도 합니다. 비밀스러운 사항이 아니라면 제3자가 둘 간의 대화를 지나가다가 들음으로써 문제를 같이 해결하거나 조언을 줄지도 모르는데, 그런 '바람직한 간섭'이 메신저를 통한 대화에서는 일어나지 못하죠. 



정보기술을 매개로 한 커뮤니케이션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친밀감을 높인다는 의견도 있지만, 실상은 그와 다릅니다. 파멜라 힌즈와 다이앤 베일리는 정보기술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직원들 간의 신뢰와 협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습니다. 서로 멀리 떨어져서 일하는 팀원들은 어쩔수없이 대면 커뮤니케이션보다 정보기술을 기반의 커뮤니케이션에 의존해야 하겠죠. 그들은 지역적으로 분산되어 일하는 직원들이 같은 장소에서 일하는 직원들에 비해 상호신뢰가 떨어진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서로 분노와 적대감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밝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 떨어져서 일하다 보면 업무의 맥락(context)을 공유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에 정보기술을 통한 의사소통 방식은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붓는 듯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음을 힌즈와 베일리는 지적합니다. 전화, 이메일, 메신져를 통한 의사소통은 미묘한 수준의 정보까지 전달하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문자를 통할 때와 얼굴을 보며 들을 때가 다르죠? 그래서 쌍방 간에 오해가 싹트고 '저 녀석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합니다. 전화를 하면 갈등이 생길 때 목소리가 격앙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런 불편함을 피하려고 이메일과 같은 '더 차가운' 의사소통 도구를 자주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정보가 있을 때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옳게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보기술을 통하면 최초의 정보량이 직원들에게 전달되면서 중간에 손실되기도 합니다. 사실 정보가 실제로 손실된다기보다는 정보를 받는 쪽에서 적극적이지 않아서 혹은 마음대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자주 정보를 공유해도 "왜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냐?"는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가 이메일이나 게시판 내용을 꼼꼼히 보지 않았으면서 말입니다.

또 정보기술을 가지고는 의견 충돌이 있을 때 효과적으로 중재하거나 타협안을 이끌어 내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어떤 회사의 직원들은 서로의 의견을 문서로 남겨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말로 대화하지 않고 무조건 이메일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 항상 과거 이메일의 내용을 밑부분에 계속 첨부시키죠. 그들에게 'Re:Re:Re....'가 길게 이어지는 이메일이 많다는 말은 그만큼 이메일이 의견을 조율하는 데에 부적합한 도구라는 단적인 증거입니다.

만나서 이야기하면 10분 안에 끝날 사안이 이메일을 통하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이메일을 보내고 열어보기까지 소요되는 시간과 열어본 후에 답변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 등을 모두 더하면 의사결정에 낭비되는 시간이 한없이 늘어납니다. 메신져라고 해서 시간을 줄여주지는 못합니다. 메신져에 메시지가 떠도 무시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다가 '메시지를 나중에 봤다'라고 간단히 핑계를 대면 되기 때문이죠. 

이렇게 정보기술을 통한 의사소통을 권장(?)하면 업무 상의 갈등, 의견 불일치, 직원들 사이의 정서적인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조직에서 상하 간, 직원 간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을 때 정보기술로 이를 해결하려고 하면 오히려 의사소통의 간극을 넓히고 불신을 심화시킬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한번 엇나간 상호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다시 정보기술이라는 편리한(?) 도구를 사용하려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이 정보기술을 통한 의사소통에 익숙해지려면 아주 적게 잡아도 앞으로 수 백, 수 천년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인간의 진화 속도가 더디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첨단 정보통신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정보기술을 통한 의사사소통에 익숙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인간이 선호하는 의사소통 방식은 아직 원시성을 벗지 못했습니다. 원시성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말은 할 수 있지만 정보기술 기반의 의사소통 방식을 강요하는 일은 인간의 본성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아직은 얼굴을 맞대고 표정을 읽어가며 의사소통하는 전통적인 방식이 '먹히는' 시대입니다.

의사소통의 문제는 직접 만나서 해결해야 합니다. 꼭 필요하지 않으면 이메일과 메신져를 제쳐둬야 합니다.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 이것이 여전히 유효한 해법입니다.

(*참고문헌 : Out of Sight, Out of Sync: Understanding Conflict in Distributed Team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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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다.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화면에 메시지가 톡 떠올랐다. 뭔가 하고 들여다보니,  "식사하러 가시지요."라고 바로 옆에 있는 컨설턴트가 메신저로 보내온 것이었다. 갑자기 실소(失笑)가 터졌다. 왜냐하면, "5분 후에 나가자." 라고 답신을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데 말로 하면 될 것을 굳이 메신저로 의사를 전달할 필요가 있었을까? 한참동안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 웃지 못 할 촌극이었다.

나 말고도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을 것 같다. 불과 몇 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직원들이 말로 하면 될 것을 이메일을 통해 업무보고를 한다고 씁쓸한 표정을 짓던 관리자들을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어떤 관리자는 나에게, "이메일로 보고하는 걸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대일 대화가 가능한데도 그런 걸 사용하는 이유는 '당신과 대화하며 괜히 나쁜 소리 듣기 싫으니 결과만 알고 있어라' 라는 편의적인 마음 때문 아니냐." 며 푸념을 한 적이 있다.

100% 공감이 간다. 이메일, 메신저, 그룹웨어, 지식경영시스템 등 의사소통을 도와주는 매체는 날로 정교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매체들이 커뮤니케이션의 접근편리성을 증대시켰는지는 몰라도, 과연 조직 내 쌍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키는 데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어느 회사든 진단을 해 보면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는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이 최소 50% 정도는 된다. 그 때마다 나는 '다 비슷하니까 다른 회사 보고서 슬쩍 베끼면 되겠네.' 라는 얄팍한 유혹에 솔직히 사로잡히곤 하지만, 첨단의 커뮤니케이션 도구 구축에 크게는 수십억 원을 들이고도 의사소통에 여전히 문제가 있다고 하소연하는 까닭이 도대체 뭔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문제의 핵심은 얼마나 멋진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갖췄느냐가 아니다. 매체는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지, 메시지를 조직 내에 잘 통하게 만들어 주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그런 도구들은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도 진솔하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만든다. 오히려 일방적 통보와 지시로 오용될 수 있어 커뮤니케이션을 더욱 경직되게 만들어 버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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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자결재를 꽤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데, 결재요청을 올리고 나서 상사가 시스템에서 결재해주길 놀면서 기다리다가 제때 안 해주면 의사소통이 잘 안된다며 불평해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관리자는 관리자대로 시스템에서 결재하기 바쁘다. 대면 결재하면 금방 끝날 것을 말이다. 엄청난 낭비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의사소통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저쪽 부서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 직원들이 경영진 생각을 잘 몰라준다며 불평을 쏟아내기 전에, 지속적으로 다른 부서의 업무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지, 직원들의 진짜 생각을 알기 위해 노력했는지 자문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도 노력이 있어야 잘 된다.

즉, 조직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에도 마케팅하듯 해야 한다. 정보 홍수의 시대다. 그래서 자기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메시지이지만 받는 사람은 수많은 정보 중의 하나로밖에 여기지 않거나, 정보에 치여 미처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를 피드백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따라서 고객 대상으로 PR, 캠페인 등 갖가지 마케팅 전략을 실행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내 생각을 전달하고 필요한 정보를 전달 받으려는 노력을 실천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히 하려면 대면 보고, 간담회, 워크숍 등 다양한 오프라인 활동이 우선되어야 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직접 대면하고 공감하는 만남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패션을 따라가는데 급급하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 원칙에 충실하라. 그것이 잘 통하는 조직으로 가는 첩경이다.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해결하고자 반짝이는 화면과 윙윙대는 서버로 된 시스템을 새로 들여올 궁리를 하고 있다면, 그 계획서를 과감히 찢어라. 살 뺀다며 비싼 러닝머신을 사 놓고 몇 번밖에 안 뛰어 보고는 왜 살이 안 빠질까 이상하게 생각하는 식의 오류를 더 이상 범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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