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통첩게임은 심리학과 행동경제학 분야에서 널리 애용되는 재미있는 실험입니다. 이 게임에는 두 사람이 참여하는데 각각 '제안자'와 '응답자' 역할을 맡습니다. 실험을 진행하는 사람이 제안자에게 10달러를 주면, 제안자는 응답자에게 10달러 중 일부를 주겠다고 제안해야 합니다. 만일 응답자가 제안자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두 사람은 제안된 금액대로 나눠 가지고, 반대로 응답자가 거부하면 두 사람 모두 돈을 가지지 못하는 게임입니다. 그래서 제안자는 응답자에게 돈을 제안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응답자에게 돈을 적게 제안하면, 응답자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어서 돈을 한푼도 못 가질 것이기 때문이죠. 

사라 솔닉(Sara Solnick)이란 경제학자는 성별에 따라 이 최후통첩게임의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남성과 여성 간의 임금 격차가 상당하다는 것은 이미 아는 사실입니다(한국 38.8%, OECD 평균 16%, 2008년 기준). 더욱이 동일한 능력과 배경을 가진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업무를 하더라도 임금의 격차가 상당합니다. 솔닉은 최후통첩게임로부터 임금 격차가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펜실베니아 주립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최후통첩게임을 진행했습니다. 솔닉은 학생들을 임의로 제안자와 응답자로 나눈 다음, 서로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분리대 양측에 앉도록 했습니다. 실험군의 학생들은 서로 상대방의 이름을 알고 게임을 진행했고, 대조군의 학생들은 상대방의 코드번호만을 전달 받고 게임에 응했습니다. 이름은 상대방의 성별을 유추할 수 있는 거의 확실한 단서라서 성별에 따른 제안 금액의 차이를 알기에 적절하리라 솔닉은 판단했습니다. 물론 중성적인 이름이 있지만, 데이터 분석시에 그것들은 모두 제거했다고 합니다.

실험의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먼저 제안자가 남자이고 응답자가 남성이면, 제안자(남성)는 평균 4.73달러를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제안자가 남성이고 응답자가 여자이면, 제안자(남성)는 평균 4.43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즉 돈줄을 쥐고 있는 사람이 남성인 경우, 상대방이 여성일 때는 돈을 6.3% 적게 제안했죠. 남성들이 코드번호로만 알려진 상대방에게 4.85달러를 제안한 것과 비교하면 8.7% 적은 금액입니다.

여성이 제안자 역할일 때는 제안 금액의 차이가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응답자가 남자일 때는 평균 5.13달러를 제안한 반면, 응답자가 여성일 때는 고작 4.31달러만 제안했습니다. 여성들이 동성에게는 16% 박하게 제안했던 겁니다. 상대방의 성별을 모르고 오직 코드번호로 인식한 여성(제안자)들이 평균 4.50달러를 제안한 것과 대조되는 결과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요? 이 실험만 가지고 성별의 차이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응답자가 남성일 때 제안 금액을 적게 제시하면 자신에게 위협을 가해오리라 염려하는 까닭일지도 모릅니다. 또한 응답자가 여성이면 적은 금액을 제시해도 그 불이익을 감수할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어찌됐든 여성은 응답자의 역할을 수행할 때 남성보다 열위에 놓이는 것이 확실했습니다.

솔닉은 이번엔 응답자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제안을 수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금액은 얼마냐?"고 말입니다. 남성 응답자들은 제안자가 남성임을 알 때는 2.45달러, 제안자가 여성임을 알 때는 3.39달러를 최소 수용 가능 금액이라 답했습니다. 반면, 여성 응답자들은 제안자가 남성임을 알 때는 2.82달러, 제안자가 여성임을 알 때는 최소 수용 가능 금액을 4.15달러라고 말했죠. 응답자들은 제안자가 여성일 때 더욱 강하게 자신의 이익을 주장했던 셈이죠. 이는 여성이 제안자의 역할을 수행할 때도 남성보다 열위에 놓이게 됨을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솔닉의 실험은 임금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어느 입장에 놓여져 있든 간에 여성이 항상 불리하다는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동일한 능력을 갖추고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남성과 여성 간의 임금 격차가 발생하는 이유를 (근본적인 이유까지 파고 들진 못했지만) 파악할 수 있죠. 하지만 솔닉의 실험이 전달하는 가장 의미 있는 시사점은 남성과 여성에게 고용의 기회가 고루 주어진다고 해서, 즉 '기회의 평등'이 주어진다고 해서 결과의 평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남성과 여성에게 주어진 오래된 성 역할의 인습이 남아있는 한, 여성에게 주어지는 불이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문제는 성별 행동의 차이가 고정관념으로 작용하여 여성들이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하도록(또 남성들이 여성들을 그렇게 다루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임금 협상 과정에서 보다 적극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제안자 역할을 하는 고용주들 대부분이 남성인 현실 상황에서 남성 지원자들과 동등한 보상을 받으려면, 제안을 보다 비판적으로 판단하려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또한 고용주들도 지원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성 지원자들보다 은연 중 낮은 금액으로 채용하고자 하는 관성을 저지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남녀 간에 존재하던 기회의 격차는 아직 크게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과거에 비해 꽤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허나 성별에 따른 결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여정은 아직 요원합니다. 고용주와 지원자 모두에게 결과의 격차를 줄이려는 장치와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여성분들! 수용하지 말고 투쟁하십시오.

(*참고논문 : Gender Differences In The Ultimatum Ga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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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의 불만은 없앨 수 없다   

2011. 3. 17. 09:00



사라 솔닉크와 데이비드 헤멘웨이는 여러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개의 문장을 보여준 다음에 무엇을 선호하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골라 보기 바랍니다.

A : 당신의 신체적인 매력 점수는 6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평균 4점이다.

B : 당신의 신체적인 매력 점수는 8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평균 10점이다.

아마 여러분은 B보다는 A를 더 선호한다고 답했을 것 같습니다. 솔닉크와 헤멘웨이의 실험에서도 약 75%의 사람들이 A를 더 선호한다고 답했습니다. 다른 이들이 이 실험을 하버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해보니 무려 93%의 대학생들이 A를 택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합리적이라면 A보다는 B를 더 선호한다고 답해야 합니다. 자신의 매력 점수가 B에서 2점 더 높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야 어떻든 B를 택해야겠죠. 그게 훨씬 유리하니까요. 헌데 왜 사람들은 A를 선호하는 걸까요?

그것은 '불평등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 때문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과 남을 비교하는 동물입니다. '내가 남보다 무엇이 못한가'라는 능력의 비교뿐만 아니라'내가 남보다 무엇을 손해보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계산하죠. 진화적으로 우리의 친척이라고 할 수 있는 원숭이(예전 포스팅 클릭!)들도 불평등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B보다 A를 선택하는 행동은 인간의 DNA에 뿌리 깊에 박혀있는 본능적인 반응입니다.

사람들은 절대적인 지위보다 상대적인 지위에 더 신경을 씁니다. 본질적으로 질투가 심하다는 뜻이죠. 이를 간파한 경제학자 존 K. 갤브레이쓰는 "소비의 수요의 많은 부분은 필요에 의해서라기보다 사회적 압력 때문에 증가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시쳇말로 지름신은 그 물건이 꼭 필요해서 강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 물건을 소유했기 때문에, 그 물건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 우쭐대고 싶기 때문에 강림(?)한다는 말입니다.

행동경제학의 선구자인 트버스키와 위의 실험과 비슷한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A : 당신은 3만 5천 달러를 받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3만 8천 달러를 받는 회사

B : 당신은 3만 3천 달러를 받고, 다른 사람을은 모두 3만 달러를 받는 회사

이 두 개의 회사가 있을 때 어느 쪽에 입사하고 싶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B를 택했다고 합니다. A회사로 입사하면 2천 달러를 더 받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인 지위가 더 높은 B회사를 택합니다. 상대적 지위라는 행복(?)을 획득하기 위해 2천 달러의 돈을 기꺼이 쓰는 것이죠.

사람들이 절대적인 지위보다는 상대적인 지위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인지 인사제도를 운영할 때 항상 불만이 나옵니다. 불만이 없는 인사제도는 아마 전 지구를 통틀어 한군데도 없을 겁니다.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은 자신의 능력이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기에 남들보다 승진이 늦고 남들보다 적은 돈을 받는 것을 수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탓이 아니라 제도의 부조리 때문이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폄훼하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낮은 평가를 받고 적은 보상을 받을 때 자신이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죠.

인사제도 자체가 허점 투성이라서 능력과 성과가 있는데도 잘못 평가 받는 사람들이 많으면 진짜로 심각한 문제라서 시급하게 인사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하지만 불만이 많다는 이유로 인사제도를 개선한다면 원칙을 잃고 헤매기 일쑤입니다.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합심하여 불만을 강하게 제기할 때 이리저리 휘둘리는 인사제도를 종종 목격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런 회사의 인사제도는 말 그대로 여기저기에 조각천을 기운 누더기와 같았죠.

상대적인 지위의 차이를 추구함으로써 성과 창출을 자극하는 인사제도는 직원들의 불만은 영원히 없앨 수 없습니다. 그런 인사제도 하에서는 직원 전체의 임금을 상향한다고 해서 불만이 줄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지위를 올려줘 봤자 상대적인 지위가 그대로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인사제도 개선에 관해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요?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하나는 상대적인 지위의 차이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인사제도를 변화시키는 방법입니다. 보상의 차등폭을 줄이고 직급의 단계를 줄이는 등 상대적인 차별을 도모하는 모든 제도를 약화시키는 거죠.

하지만 '완전 평등'의 개념으로 인사제도를 확립한다면 그 또한 문제입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왜 자신이 일 못하는 사람과 똑같은 보상을 받아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대충 일하거나 더 많은 보상을 약속하는 곳으로 떠나버리죠. 겉으로 보기엔 평등한 인사제도라 해도 이처럼 'Give에 대한 Take의 비율'을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불평등까지 없애지는 못합니다. 게다가 무사안일, 공평무사와 같은 나쁜 문화를 타파하는 조직문화 차원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평등주의 인사제도는 조직 전체의 성과를 하향평준화할 우려도 매우 큽니다.

두 번째 방향은 단순하게 불만의 크기로 인사제도의 문제점을 판단하기보다는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불만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를 따져봄으로써 개선의 포인트를 잡는 것입니다. 어차피 발생할 불만이라면 Give에 대한 Take의 비율이 작은 사람의 목소리에 기울이자는 것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봐도 역량이 딸리고 성과가 저조한 사람들이 목소리는 훨씬 큰 경우를 심심찮게 봅니다. 인사제도는 그들의 목소리보다는 입을 닫은 사람들의 소리없는 불만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상대적인 지위에 대한 추구는 인간의 본성이라서 인간이 절대적인 지위 선호로 진화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사제도는 불만 제로의 완벽을 추구하기보다 '합리적인 불만'을 수용함으로써 '합리적이지 않는 불만'의 최소화를 지향해야 합니다. 이것이 최선의 중용입니다.

(*참고논문 : 여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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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평등이 능사는 아니다   

2008. 12. 5. 09:21

캐롤 쉬블리는 짧은꼬리원숭이의 여러 집단에서 서열이 높은 원숭이들만을 따로 모아 집단을 구성해 인위적으로 서열을 조작한 실험을 수행했다. 의례 원숭이들끼리 치열한 서열 쟁탈전이 벌어졌는데, 예전에 높은 서열을 점하던 원숭이들은 서열 추락의 수모를 당해야 했다. 새로운 권력자가 출현하면서 서열 다툼은 일단락되었는데, 쉬블리가 관찰하고자 한 것은 서열의 재편 과정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원숭이들이 생리적으로 어떻게 변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서열이 낮아진 원숭이들을 검진했는데, 그들에게서 동맥경화증, 복부비만, 고혈압 등의 이상 증세가 퍼져 있음을 발견했다. 실험 조건을 동일하게 유지하려고 모든 원숭이에게 똑같은 먹이를 주었기 때문에 이러한 질병은 사회적 지위의 하락 때문에 발생한 것이 명백했다.

서열이 낮은 원숭이는 서열이 높은 원숭이로부터 언제 공격당할지 불안에 떨기 때문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더 많이 분비한다. 코르티솔은 일시적인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작용을 하나 과다 분비 상태가 장시간 계속되면 신경이 예민해지고 우울증에 빠지며 질병인자를 활성화시키는 부작용을 발생시킨다. 따라서 서열이 낮아진 원숭이들에게서 질병이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실험이 최고의사결정자로부터 말단 사원에 이르는 위계 체계를 보유한 기업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서열이 낮은 말단 사원일수록 스트레스가 많아서 덜 건강하다는 뜻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기업의 서열 체계는 구성원들의 공식적이거나 암묵적인 합의 하에 형성되고 누구에게나 당연시되므로 말단 사원이라고 해서 특별히 스트레스를 더 받을 일은 아니다. 게다가 자신과 처지가 같은 동기들이 있으니 위안이 된다. 쉽게 말해 ‘그러려니’한다.

이 실험의 핵심 메시지는 원래부터 서열이 낮을 때가 아니라 갑작스럽게 서열이 변동될 때 문제가 야기된다는 사실이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권력을 가진 경영자가 하루아침에 임원을 말단 사원으로 내리고, 대리를 부장으로 올리는 조치를 취하면 아마 서열이 낮아진 원숭이들의 고통을 인간들도 겪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기업의 위계 체계가 이처럼 마구 뒤섞이는 일은 없다. 그래서 기업 조직은 원숭이 사회와 다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갑작스레 서열이 뒤바뀌는 현상과 동일한 효과를 발휘하면서 기업 혁신의 도구로 찬양 받는 무언가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성과주의 제도들이다. 성과주의의 핵심논리는 동일한 직급과 연차라 할지라도 역량과 업적에 따라 연봉을 차별적으로 지급해야 성과를 창출하려는 직원들의 동기를 고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 잘하면 그만큼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기회의 평등’ 논리는 기업들로 하여금 성과주의를 무조건 수용하도록 강권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저기서 자주 발견된다. 남들보다 덜 받는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괴롭고, 더 받는 사람은 보상이 보잘것없다며 투덜댄다. 업무를 소홀히 하며 목표 달성에만 매달리고, 협조 요청을 무시하는 이기주의가 만연하는 등의 문제가 성과주의의 효과를 압도해 버린다. 그 이유는 성과주의 제도가 기존 서열 체계를 흔들어대면서 동일 직급에 동일 연차면 동일한 보상을 받았던 평등한 조직을 불평등한 상태로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이치로 가와치는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구성원 간의 신뢰가 미약하며 적대감이 강화된다고 말한다. 소득의 절대적 수준이 아무리 높아도 그 상대적인 차이가 크면 사망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성과를 높이려면 신뢰와 건강이 생명인데, 성과주의가 오히려 그것들을 파괴해 성과를 저하시킬 수도 있으니 아이러니다.

기회의 평등을 외친다고 해서 많이 받는 사람과 덜 받는 사람 사이의 불평등 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 결과의 평등을 강조하는 것만큼 기회의 평등을 무조건 추구하는 것도 큰 부작용과 해악을 야기한다. 보상의 차등폭 확대를 작금의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도깨비방망이로 여기는 기업을 종종 목격한다. 이럴 때일수록 불평등을 완화하여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위기 탈출의 진정한 해법이다.

(본 칼럼은 광주일보 2008년 12월 5일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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