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찬 것이 닿은 후와 뜨거운 것이 닿은 후에 어떤 사람에 대해 평가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면 여러분은 손에 느껴진 온도와 상관없이 그 사람의 성격이나 능력을 동일하게 평가할까요?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그까짓 촉감이 무슨 영향을 미치겠냐며 무시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연구 결과는 많습니다. 로렌스 윌리엄스(Lawrence E. Williams)와 존 바그(John A. Bargh)는 솔로몬 애쉬(Solomon Asch)가 수행했던 실험을 확장하여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솔로문 애쉬는 동조 실험으로도 유명한 심리학자죠). 당초 애쉬는 사전에 느낀 차갑거나 따뜻한 촉감이 처음 본 누군가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실험으로 밝혔는데, 윌리엄스와 바그는 그러한 촉감이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측정하고자 했죠.

윌리엄스와 바그는 41명의 학부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겐 손에 차가운 느낌이 전달되도록 하고 다른 그룹에게는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도록 했습니다. 학생들은 실험장소가 있는 건물에 도착한 후 실험의 목적을 모르는 도우미의 안내를 받아 단 둘이 엘레베이터에 타야 했죠. 도우미는 양손에 아이스 커피(혹은 뜨거운 커피), 교과서, 클립보드를 들고 있었는데, 무언가를 하는 시늉을 하며 학생에게 커피를 잠깐 들어 달라고 학생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학생의 손에 차갑거나 따뜻한 촉감이 느껴지도록 했죠.




실험장소에 앉은 학생들은 'Person A'라고 불리는 가상의 사람에 대한 자료를 읽고서 그 사람이 얼마나 지적이고 단호하며 조심스러운지 등과 같은 10가지 성격 특성을 평가하도록 요청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손에 따뜻한 커피를 잡았던 학생들이 차가운 커피를 쥐었던 학생들보다 Person A를 더 따뜻한 사람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했죠. 이로써 손에 느껴지는 온기처럼 무시하기 쉬운 것조차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데에 의미 있는 차이를 유발한다는 점이 증명됐습니다.

윌리엄스와 바그는 손에 느껴지는 촉감이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후속실험으로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실험 방식을 취하지는 않았습니다. 도우미로 참가한 사람이 비록 실험의 목적을 알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도 차갑거나 뜨거운 커피를 들고 있었기에 알게 모르게 실험참가자에게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고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찬 커피를 든 도우미는 학생들을 쌀쌀맞게 대하거나 뜨거운 커피를 쥔 도우미는 학생들을 친절하게 대함으로써 그 감정이 학생들에게 전달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죠. 그래서 후속 실험에서는 오직 실험참가자인 학생들만 차갑거나 뜨거운 물체를 잡도록 했습니다.

실험장소에 도착한 53명의 학생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각각 냉찜질팩과 온찜질팩을 손에 잡아보고 제품을 평가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제품 평가는 사실 위장하기 위한 것이었고 학생들의 손에 차갑거나 뜨거운 느낌이 전달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실험진행자는 학생들에게 실험 참가에 대한 보상으로 두 가지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습니다. 학생들 중 절반은 자신이 마시기 위해 스내플(Snapple)이란 음료를 선택할지, 친구를 위해서 1달러 짜리 아이스크림 무료 쿠폰을 선택할지 결정해야 했죠. 반면 나머지 절반의 학생들은 친구에게 주기 위해 스내플 음료를 선택할지, 자신이 먹기 위해 1달러 짜리 쿠폰을 선택할지 역시 결정해야 했습니다.

손에 냉찜질팩을 잡았던 학생들 중 친구를 위한 상품을 선택한 사람은 25%에 불과했고 자신을 위한 보상을 선택한 사람은 75%나 됐습니다. 반대로, 손에 온찜질팩을 쥐었던 학생들 중 54%가 친구를 위한 상품을 택했고 46%는 자신에게 보상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손에 느껴진 온기가 어떠냐가 이타심과 이기심에 영향을 미쳤다는 결과였습니다.

비록 간단하지만 윌리엄스와 바그의 두 실험은 인간의 판단과 행동이 별것 아닌 듯 보이는 미묘한 것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평가자의 감정 뿐만 아니라 평가자가 평가 전에 어떤 촉감에 '프라이밍(priming)'되느냐도 중요한 차이를 야기한다는 결과입니다. 동절기 때 동일한 모양의 두 사무실의 온도를 다르게 하면, 동일한 사람에 대한 평가가 큰 차이를 보일 거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EBS에서 방영된 바 있는 '인간의 두 얼굴'이란 프로그램에서 발췌한 것인데, 위 실험과 비슷한 실험 결과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의 객관적 평가 능력은 미신이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혹시 지금 상사에게 평가 받거나 결재를 받아야 한다면, 혹은 누군가와 중요한 협상을 하기 전이라면 그에게 아이스 커피보다는 뜨거운 커피를 권하세요. 시원한 게 좋더라도 그렇게 하는 게 유리할지 모르니까요.


(*참고논문)
Experiencing Physical Warmth Promotes Interpersonal Warm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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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린 보(Kathleen Vohs)등의 연구자들은 사람들에게 돈이라는 이미지를 주입시키면 그들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실험하기로 했습니다. 연구자들은 모두 4가지 실험 조건을 설정했습니다. 첫번째 실험 조건에서 연구자들은 피실험자들에게 모노폴리 게임을 하도록 했는데, 게임 머니를 많이 주는(4000달러) 경우, 적게 주는 경우(200달러), 주지 않는 경우로 조건을 세분했습니다.

두번째 실험 조건에서는 피실험자들에게 돈이 풍족한 삶이나 돈이 부족한 삶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했고, 세번째 실험 조건에서는 돈과 관련된 문장이나 돈과 별 상관없는 문장을 각각 구성하도록 했죠. 마지막 네번째 실험 조건에서는 돈을 연상시키는 그림이나 중립적인 그림을 피실험자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 4가지 실험 조건에서 전자에 해당하는 조건들이 피실험자들로 하여금 돈이라는 이미지를 후자에 비해 강하게 주입시키는 조건이었습니다(심리학에서는 이렇게 무언가를 은연 중 주입시키거나 무언가에 대한 관념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것을 프라이밍(priming)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돈에 관한 여러 가지 프라이밍 조건을 설정하고서 연구자들은 피실험자들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행동의 차이를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피실험자들이 지나갈 때 공모자가 실수를 가장하여 27개의 연필을 떨어뜨려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위의 4가지 실험 조건에서 돈에 대해 강하게 프라이밍된 피실험자들이 그렇지 않은 자들에 비해 적은 수의 연필을 주워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날말 퍼즐 방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척하는 공모자가 설명을 부탁했더니 돈의 이미지를 주입 받은 자들보다 그렇지 않은 자들이 120% 정도 오랜 시간을 들여 공모자에게 설명하는 모습이 관찰되었습니다.

피실험자들에게는 수고료로 2달러를 지불했는데, 연구자들은 그들에게 그 돈을 대학의 장학 기금에 기부하면 어떻겠냐며 제안했습니다. 그랬더니 돈에 프라이밍된 피실험자들은 그 돈의 39%를 기부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돈으로 프라이밍되지 않은 대조군의 피실험자들은 67%를 기부하겠다고 말했죠. 돈에 관한 이미지가 주입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인색해짐을 드러내는 결과였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실험에서 발견된 사실을 좀더 확장하기로 하고, 피실험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고 컴퓨터 앞에 앉아 3가지 종류의 스크린 세이버(화면보호기) 중 하나를 바라보도록 지시했습니다. 각각 물고기들이 노니는 스크린 세이버, 아무것도 없이 까맣게만 보이는 스크린 세이버, 지폐가 흘러다니는 스크린 세이버였습니다. 그런 다음, 연구자들은 피실험자들에게 다른 참가자가 들어와 대화할 시간을 줄 테니 그 사람이 앉을 의자를 가져다 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실험의 목적은 피실험자가 다른 참가자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가 아니라, 피실험자가 앉은 의자와 다른 참가자를 위해 가져다 놓은 의자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지폐가 떠다니는 스크린 세이버를 본 피실험자들은 다른 스크린 세이버를 본 사람들에 비해 의자를 15인치 정도 멀리 위치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연구자들이 피실험자들에게 다음에 수행하게 될 과제를 혼자 수행할지 아니면 다른 사람과 같이 수행할지를 물었을 때, 지폐가 떠다니는 스크린 세이버를 본 피실험자들의 16~17%만 같이 일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다른 종류의 스크린 세이버를 본 피실험자들은 70~80%나 같이 과제를 수행하겠다고 말했죠. 이 밖에 여러 가지 세부 실험을 진행했는데 하나 같이 돈에 대해 강하게 프라이밍된 피실험자들이 그렇지 않은 자들에 비해 타인에게 도움을 덜 청하고 혼자 일하려고 하는 모습이 관찰되었습니다.

이 실험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돈이 사람들을 이기적으로 만든다는 것일까요? 연구자들은 돈이 이기심을 증폭시킨다는 의미로 자신들의 실험이 해석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왜냐하면 돈이 이기심을 키운다면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함으로써 이득을 극대화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하는데, 실험 결과에서는 돈에 프라이밍된 사람일수록 혼자 일하길 원하고 도움을 덜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이 실험이 돈에 대한 이미지 주입(프라이밍)은 이기심이 아니라 개인주의적이고 '자기 충족적(self-sufficient)'인 마인드를 강화한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돈이라는 이미지가 공정성을 강조하는 시장경제와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자극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자기 충족적 마인드의 강화가 조직 운영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요? 능력에 따른 연봉, 성과에 따른 성과급의 차등 지급 등 조직 구성원들이 돈이라는 이미지에 강하게 노출될수록 자기 충족적(개인주의적)이 될 가능성이 높음을 위 실험이 시사합니다. 직원들과 부서 간의 협력이 필수적인 조직에서 성과급 등 자기 충족적 마인드를 프라이밍시키는 장치가 더해지거나 지속적으로 강조될 경우, 각자 맡은 임무 범위를 뛰어넘으려고 하지 않아 협력의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직원들이 돈 때문에 이기적으로 변하기 때문이 아니라, 직원들로 하여금 돈이 상징하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상기시켜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 성과 차등을 강조하는 것이 '사회 규범(social norm)'보다는 '시장 규범(market norm)'을 자극하는 까닭이죠.

구성원들의 시장 규범이 자극 받으면 다른 이들로부터 협력이나 자발적인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칼 멜스트룀(Carl Mellström)과 마그누스 요하네손(Magnus Johannesson)이 수행한 연구 결과에서도 증명된 바입니다. 그들은 고텐부르크에 위치한 지역헌혈센터에서 혈액 기증에 의향이 있는 사람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스웨덴에서는 헌혈하려면 그 전에 먼저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고 약 한 달이 지나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통보를 받은 후에야 헌혈할 수 있습니다.

멜스트룀과 요하네손은 사람들에게 헌혈을 위해 건강검진을 받을 의향이 있는지 물었는데, 질문의 조건을 세 가지로 달리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헌혈은 자발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헌혈자가 되기 위한) 건강검진을 신청한다고 해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두 번째 그룹에게는 건강검진의 대가로 50크로노르(약 7달러)를 주겠다고 했고, 세 번째 그룹에게는 건강검진 후 50크로노르를 받고나서 그 돈을 스웨덴의 소아암 자선단체에 기부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험 대상자 중 남성(119명)들은 그룹 간에 건강검진 신청률의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나타나지 않았으나, 여성(153명)들은 그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아무런 보상이 없다는 말을 들은 여성들은 52퍼센트나 건강검진을 신청했지만, 보상을 약속 받은 여성들은 겨우 30퍼센트만 검진 의사를 표했습니다. 돈을 받은 후에 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세 번째 그룹의 여성들은 첫 번째 그룹과 비슷한 53퍼센트의 신청률을 나타냈습니다. 이 실험은 돈이 개입되면 헌혈 지원률이 더욱 늘어날 거라는 주류 경제학의 통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면서 혈액이 돈으로 거래될 때 선행을 베풀려는 내재적 동기는 밀려나고 만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어떤 회사는 부서 간의 협력 여부를 KPI로 측정해서 그에 따라 보상하거나 제재를 가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그 시도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오히려 해악적인지 이 헌혈 실험이 시사합니다.

직원들과 부서 간의 협력을 원한다면, 그리고 협력이 우리 조직의 핵심가치이고 비전 달성의 핵심 추동력이라면, 시장경제라는 공정성과 규칙을 뛰어넘어 서로 양보하고 희생하는 사회 규범을 강조해야 하며 시장 규범을 자극하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직원들이 혼자 일하려고 하고 다른 사람에게 별로 도움을 청하지 않으며 일을 분담하지 않는 조직은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고 공정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평화로움과 공정성이 목표에 도달하려는 조직의 발목을 붙잡고 있을지 모릅니다. 돈이 사람들을 덜 사회적으로 덜 협조적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돈이 더 높은 차원으로 도약하지 못하게 막는 장벽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어떻습니까?


(*참고논문)
The Psychological Consequences of Money 
- Merely Activating the Concept of Money Changes Personal and Interpersonal Behavior 
Crowding Out in Blood Donation:Was Titmuss Right? 
-관련된 YouTube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mW2SByfHpY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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