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럿이서 무언가를 결정할 때 합의를 거치거나 투표를 통한 다수결 방식을 사용하곤 합니다. 사적으로 점심 메뉴를 정할 때 뿐만 아니라, 조직 내의 중요한 의사결정 사안에 대해 구성원 전체의 합의를 이끌어낼 것인가, 아니면 다수결로 깔끔하게(?) 정리할 것인가를 놓고 대립하는 경우가 가끔 발생합니다. 과연 어떤 방법이 좋은 걸까요?

딘 토즈볼드(Dean Tjosvold)와 리차드 필드(Richard H.G. Field)는 사이먼 프레이저 대의 학부생 114명을 대상으로 상황이나 맥락(context)이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을 5명씩 그룹을 만들게 한 후에 '달에서 살아남기'라는 의사결정 게임을 부여했습니다. 이 게임은 예전에 이 블로그를 통해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모선(mother ship)에서 200Km 떨어진 달의 어느 곳에서 조난 당했을 경우 생존을 위해서 가지고 있던 15개 물품(성냥, 나침반, 우유 등)의 우선순위를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결정하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이 끝난 후에 토즈볼드와 필드는 하나의 이슈를 토론하고 각 그룹의 의견을 내는 두 번째 과제를 학생들에게 부여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문지를 돌려서 자기가 속했던 그룹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토즈볼드와 필드는 먼저 '협력 조건'이냐 '경쟁 조건'이냐에 따라 학생들을 편성했습니다. 협력 조건의 학생들은 과제를 협력적으로 수행해야 했습니다. 이 조건의 학생들은 상호 이득을 추구해야 하며 결코 이기려 하거나 다른 사람을 압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연구자들로부터 전달 받았습니다. 반면 경쟁 조건의 학생들에게는 동료의 의견보다 자신의 것이 낫다는 점을 주장하게 함으로써 경쟁적인 토론 분위기를 유도해 냈습니다.

토즈볼드와 필드는 이렇게 편성된 학생들을 '합의 조건'이냐 '다수결 조건'이냐에 따라 다시 나눴습니다. 합의 조건의 학생들은 그룹 구성원들 모두가 동의하는 의견을 합의를 통해 이끌어내야 했고, 다수결 조건의 학생들은 합의 과정 없이 투표로 그룹의 의견을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모두 4가지 실험조건(협력-합의, 협력-다수결, 경쟁-합의, 경쟁-다수결)을 설정한 후, 의사결정의 질, 그룹의 결정에 대한 동의(commitment), 과제에 대한 이해 수준, 소요 시간, 해당 그룹과 다시 활동하고 싶은지의 여부 등을 측정했습니다.

분석 결과, 의사결정의 질은 '협력-다수결' 조건의 학생들이 가장 뛰어났고, 의사결정에 걸리는 시간은 '협력-합의' 조건의 학생들이 가장 짧았습니다. 과제에 대한 이해 수준은 '협력-다수결' 조건의 학생들이 가장 우수했습니다. 반면, 의사결정에 대한 동의(commitment)는 '경쟁-합의' 조건일 때가 가장 높았습니다.

이 실험의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먼저 '협력이냐 경쟁이냐'라는 한 가지 차원만 생각하면, 의사결정의 질과 소요시간 측면에서 협력적인 상황이 경쟁적인 상황보다 대체적으로(엄밀하게 따지지 않는다면) 나았습니다. 특히 소요시간은 월등한 차이를 나타냈습니다. 학습의 효과도 구성원들이 경쟁적일 때보다도 협력적으로 토론할 때가 더 높음을 이 실험은 보여주었죠. 물론 '경쟁-합의' 조건에서 의사결정에 대한 동의 수준이 가장 높았기에 경쟁 상황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 생각할 수 있지만, '경쟁-다수결' 조건일 때 이 측정치가 가장 저조했다는 점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이 실험의 시사점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합의를 통해 의사결정할 때 그룹과 개인의 의견 차이를 좁혀서 동의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 협력적인 상황에서는 서로 합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해야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경쟁적인 상황 하에서는 합의보다는 다수결 원칙이 의사결정의 논란과 소요시간을 줄이는 데 있어 좋은 방법이라는 점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적이냐 경쟁적이냐에 따라 의사결정의 방식을 조절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무조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무엇이든 다수결 원칙을 들이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죠. 그리고 같은 조건이라면 구성원들끼리 서로 경쟁하고 공격하는 분위기보다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소모적인 논쟁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일 겁니다.

의사결정은 상황 또는 맥락(context)의 함수입니다. 이를 잘 살펴 운용하는 것이 조직을 운용하는 사람이 세밀히 살펴야 할 또 하나의 요소입니다.


(*참고논문 : Effects of social context on consensus and majority vote decision mak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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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이 힘들고 불편한 이유   

2011. 1. 4. 09:00



벌써 인사평가가 끝난 회사도 있고 이제 평가를 시작하는 회사도 있을 겁니다. 평가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피평가자(부하직원)들의 불만 중 하나는 평가자(상사)가 객관적인 기준이나 근거 없이 주관적인 관점으로 평가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의를 제기할 겨를 없이 평가 결과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관행도 불만을 키우는 주범이죠.

이런 불만을 최소화하기 위해 평가자와 피평가자가 각각 자신이 생각하는 평가 결과를 한 자리에 모여 '합의'하는 절차를 운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절차를 진행하면 평가자나 피평가자가 아주 어색해 하거나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평가자는 피평가자에게 자신의 평가 결과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난감해 하고, 피평가자는 자기평가의 근거를 어떻게 제시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죠.



합의하는 자리에서 서로 생각이 달라서 얼굴을 붉히거나 고성이 오갈 수 있고, 피평가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평가가 관대해질 수 있으며, 합의라고 말은 하지만 결국 평가자가 일방적으로 통보하듯이 되어버린다는, 새로운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서로 잘 해보자는 제도가 구성원들의 불화를 야기하는 불씨라고 공격 받기도 하죠. 그래서 평가 합의 절차는 없던 것으로 하고 과거의 '밀실 평가' 방식으로 회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왜 평가 결과를 합의하고 타협하는 걸 불편해 하고 두려워하는 걸까요? 왜 우리는 합의를 어려워하는 걸까요?

에릭 와이너는 "서구 사람들, 특히 미국 사람들은 타협의 필요성을 없애 버리려고 애쓴다"고 말합니다. 요즘 나오는 자동차를 보면 탑승자 각각이 자신에 맞는 온도를 조절하는 장치가 있습니다. 자동차 실내의 적정온도도 서로 타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각자 알아서 조절하도록 만든 것이죠. 주위를 살펴보면 점차 이런 물건들이 많아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커스터마이제이션(customization)이 강조되면서 하나의 물건을 공유하는 개인들이 각자의 취향을 '개별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에릭 와이너는 개별온도조절장치를 예로 들면서 "이렇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물건을 놓고 타협할 필요가 없다면, 정말로 중요한 문제 앞에서는 어떻게 될까?"라고 진지하게 묻습니다. 그러면서 "타협은 기술이다. 모든 기술이 그렇듯이 사용하지 않으면 점점 퇴화한다"고 덧붙입니다. 개인화된 편안한 생활 뒤에 숨은 비용이 생각보다 큼을 경고합니다.

저는 이 말을 들었을 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평가 합의 절차가 불편하고 어색하다는 새로운 불만을 없애려고 '평가지표'를 객관적이고 계량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쪽으로 제도 개선의 방향을 잡는 것, 바로 이것이 타협의 필요성을 없애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성원 각자의 업무를 객관적으로 평가해내는 평가지표만 잘 구축되면 평가자나 피평가자나 평가 결과에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구성원 각자의 업무를 미시적으로 분석해서 '개인화'된 평가지표를 만들면 타협과 합의와 같이 불편한 과정 없이도 모두가 납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개인화된 물건들과 서비스가 넘쳐나면서 평가제도도 그렇게 개인화될 수 있다고, 우리는 믿게 된 건 아닐까요? 에릭 와이너의 말처럼 타협이 힘들고 불편하다고 해서 제도가 개인적으로 치달으면 우리는 타협과 합의의 기술을 잊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계속 개인화가 심화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겠죠.

타협은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의 중요한 절차로서 매우 소중한 기술입니다. 그 과정이 불편하고 어색하다고 해서 타협의 필요성을 없애는 쪽으로 제도가 설계되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승용차에 탄 서너 명의 승객이 "조금 더우니 온도를 낮추자"라는 아주 간단한 타협의 필요조차 없도록 개별온도조절장치를 설치하는 비용, 그것은 생각보다 아주 클지 모릅니다.

(*참고도서 : '행복의 지도', 에릭 와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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