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평소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지식과 반대되는 결과를 접할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그 반하는 결과가 그냥 제시된 것이 아니라 엄정한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나온 것이라면, 여러분은 자신의 신념을 버리거나 의심하게 될까요, 아니면 여전히 믿음을 고수할까요? 우리는 보통 '나는 객관적인 사람이야'라고 스스로를 평가합니다. 그래서 철저한 조건과 방법을 통해 산출된 객관적인 결과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수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무엇이든 포용할 수 있는, 너그러운 사람이라고 자신을 평가하죠.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마이클 마호니(Michael J. Mahoney)라는 학자는 교묘한 실험을 실시함으로써 '나는 객관적인 사람이야'라고 자평하는 사람들의 믿음이 얼마나 취약한지, 자신이 평소 가지고 있는 신념이 사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마호니가 실험 대상으로 삼은 자들은 75명의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이었습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이란 간단히 말해서 어떤 외부 자극(보상과 처벌 등)을 지속적으로 가하면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고 원하는 행동 패턴을 강화하고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심리학의 분파입니다. 쥐로 하여금 지렛대를 눌러 먹이를 먹도록 훈련시킨 B. F. 스키너가 행동주의 심리학을 대표하는 학자였죠.

마호니는 75명의 행동주의 심리학자에게 학술지에 게재될 예정인 논문 하나를 읽고 그 논문의 질과 학술잡지 게재 여부를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그 논문에는 아이들에게 나무 퍼즐 놀이와 책 읽기를 할 때 보상을 하느냐에 따라 그 두 가지 활동에 아이들이 계속 흥미를 느끼는지의 여부를 실험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만약 그 논문이 보상을 통해 두 가지 활동에 대한 흥미가 계속 유지됐다는 결과를 담고 있다면,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에게는 '마음에 쏙 드는' 논문일 겁니다. 반대로 보상이 오히려 놀이에 대한 아이들의 흥미를 떨어뜨린다는 논문이라면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의 심기는 꽤 불편하겠죠? 허나 그 논문은 엄밀한 데이터를 담고 있기에 실험 대상자인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아무리 마음에 안 드는 내용이더라도 그 논문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과학자로서 지성과 양심이 있다면 말입니다.

마호니는 동일한 주제와 동일한 실험 방법을 담았지만 실험 결과가 다르게 조작된 5가지 버전의 논문을 만들었고, 심리학자들을 5개의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런 다음, 각 그룹에게 5가지 버전 중 하나를 읽고 논문의 질과 잡지 게재 여부를 평가하여 45일 안에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예를 들어, 1그룹에게는 행동주의 심리학을 뒷받침하는 논문을 보냈고, 2그룹에게는 데이터만 살짝 바꿔 상반되는 내용의 논문을 보냈던 것이죠(나머지 3개 그룹은 비교 목적으로 설정. 자세한 사항은 이 글 맨 아래의 참고논문 참조). 

수거된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의 평가 결과는 전문가들도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보통 사람들의 편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뚜렷하게 나타냈습니다. 동일한 실험 방법론을 적용한 논문이기에 객관적인 눈을 가진 학자라면 편견 없이 두 가지 논문을 거의 비슷한 점수로 평가해야 옳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자신들의 견해와 일치하는 논문은 높게 평가하고 학술지에 게재해도 무난한 수준이라 평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믿음과 상반되는 논문은 질이 낮고 실험 방법에도 문제가 있으며 학술지에 게재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나타냈습니다.

마호니의 실험으로부터 우리는 전문가들이 무언가를 평가할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관적 편향이 강하게 개입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믿는 것만 보이고 믿는 것만 믿는다는 '확증 편향'은 보통 사람들보다 한 분야의 지식과 경험의 수준이 높은 전문가들에게도 만연된 현상이라는 점을 느끼게 합니다. 객관적인 판단이라는 것이 얼마나 달성 불가능한 목표인지 실감케 합니다.

알게 모르게 확증편향에 좌우된다면 우리가 내리는 판단이나 평가가 얼마나 취약한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번 내려진 평가를 고수할 것이 아니라 '내 판단에 무슨 문제는 없는가? 나의 주관성이 개입되지 않았나?'라는 질문을 통해 수정해 가야 합니다. 또한 '나는 객관적인 사람이다'라며 자신감을 보이는 사람의 말을 한번 정도는 걸러서 들어야겠죠. 오히려 '나는 결코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의 판단을 되돌아볼 때 비로소 주관적 편향에서 벗어나 객관적 판단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죠.

상사가 부하직원의 성과와 역량을 평가할 때, 신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할 때,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을 도입할 때, 확증편향은 도처에서 우리의 객관적 판단에 검은 안대를 씌웁니다. 그 검은 안대는 벗기려 해도 절대 벗겨지지 않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현명할까요? '이쪽으로 가는 게 맞으니' 한 방향을 정해서 뚜벅뚜벅 걸어 가야할까요, 아니면 조금씩 앞을 더듬으며 나아가야 할까요? 후자의 행동이 확증 편향이라는 검은 안대의 방해로부터 우리의 판단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겁니다.

(*참고논문 : Publication Prejudices: An Experimental Study of Confirmatory Bias in the Peer Review Syste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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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사촌지간인 유인원들에게 서로 화해하는 행동은 일상적인 삶의 방식 중 하나입니다. 태어난지 얼마 안 되는 새끼를 안고 있는 어미 침팬지들은 자신의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 다른 암놈의 접근을 경계합니다. 만일 어떤 어린 암놈이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해서 새끼에게 관심을 보인다 싶으면, 어미는 그 암놈을 손으로 찰싹 때리고 쫓아내죠. 한 대 맞고 쫓겨난 암놈은 멀찌감치 물러서서 억울한 듯 빽빽 고함을 질러댑니다. "왜 때려! 난 그냥 아기가 귀여워서 그런 건데!" 라는 듯이 말입니다. 혹은 자신을 때리면서 욕구 불만을 표출하죠.

하지만 암놈은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슬렁슬렁 어미 침팬지에게 다시 다가서는데, 이때 어미 침팬지는 때려서 미안하다는 듯 암놈의 코에 입맞춤을 합니다. 그 후에 둘은 서로 친해져서 새끼 곁에 머무는 것을 허락 받습니다. 동물행동학에서는 스킨십 등을 통해 화해를 도모하는 이런 모습을 '화해 행동(Reconciliation)'이라고 부릅니다.

(어처구니가 없네!)

침팬지와 보노보 연구 전문가인 프란스 드 발이 붙인 말이죠. 그는 연구자로서 햇병아리였을 때인 1970년대 중반에 키스를 하거나 껴안는 것과 같은 침팬지의 화해 행동 패턴을 여러 개 발견했습니다. 그러다가 연구 협력을 위해서 새로운 학생을 합류시켰습니다. 드 발은 그녀에게 화해 행동에 대한 정보를 수립하라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암스테르담 대학 출신이라는 게 연구의 걸림돌로 작용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지도교수들은 죄다 행동주의 심리학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지도교수들은 동물에게서 화해 행동이 존재할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환경이 동물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서 적절한 자극을 주고 강화하면 바람직한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동물들에게는 '자기인식'의 개념이 없다라고도 주장합니다. 그리고 동물을 의인화하여 관찰하고 해석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죠. 드 발이 발견한 침팬지의 화해 행동은 동물들이 자기인식을 할 줄 안다는 것이고, 또 침팬지를 의인화한 관찰이었습니다. 그래서 암스테르담 대학의 교수들은 침팬지들에게 화해 행동이 존재한다는 드 발의 주장이 매우 불편했던 겁니다.

드 발은 자신의 지도교수이며 침팬지 연구의 대가인 얀 판 호프(Jan van Hooff) 교수를 대동하고 암스테르담 대학을 방문했지만, 그들은 판 호프 교수의 말도 듣기를 거부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교수들이 영장류나 유인원에 대해서는 별로 알지 못하는 생쥐나 다람쥐 같은 설치류 전문가였다는 겁니다. 원래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쥐나 비둘기의 행동을 다른 동물에게도 일반화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종의 특성을 무시하고 '어느 것이나 다 마찬가지'란 접근방식이죠. 그래서 침팬지의 행동도 설치류의 행동양상과 같다고 뭉뚱그린 겁니다.

드 발은 그들이 침팬지가 살고 있는 아넴(Arnhem) 동물원을 방문해서 눈으로 직접 보면 화해 행동이 진짜라는 걸 깨달으리라 생각하고(한편으로는 그들의 잘못된 믿음을 깨뜨리려는 목적으로) 그들을 동물원으로 초청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싸늘했습니다. 그들은 동물들을 관찰하는 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말하며 앞으로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드 발은 그런 그들에 태도에 굉장히 난감해 했다고 합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의 아집은 또 다른 사례에서도 발견됩니다. 고든 갤럽(Gordon Gallup)이란 심리학자는 1970년에 유인원과 그 외의 동물은 인지능력에 차이가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에게는 흥미롭기보다는 충격적인 결과였죠. 그들은 '어느 것이나 다 마찬가지다'라는 이론을 견지하기 때문입니다. 

갤럽은 원숭이들을 거울 앞에 세우면 비친 모습이 자기가 아니라 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반면에 침팬지(유인원 중 하나)들은 거울을 보면서 마치 사람이 하듯이 자신의 얼굴과 몸 구석구석을 비추면서 살펴봤습니다. 원숭이와 침팬지 사이에는 명백한 인지능력의 차이가 있는 듯 하다고 생각한 갤럽은 실험을 계획했습니다. 그는 마취 시킨 침팬지 이마 위에 점을 찍은 다음에 마취에서 깨어난 침팬지에게 거울을 보여줬습니다. 그랬더니 침팬지는 거울에 비친 점을 바라보더니 손가락을 그 점에 대고 살피는 행동을 나타냈습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라는 점을 명백하게 인식한다는 증거였습니다. 여러 원숭이들에게 이 실험을 실시했지만, 자기인식을 할 줄 아는 동물은 유인원(그리고 인간) 뿐이었습니다.

이 실험은 굉장한 후폭풍을 몰고 옵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이 대거 반발하기 시작했죠. 이 분야의 스타라 할 수 있는 B. F. 스키너는 비둘기들도 가슴 부분에 점을 찍고 거울에 비추면 그 점을 부리로 쫀다는 실험 결과를 내놓으면서 갤럽을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스키너는 '먹이'라는 채찍과 보상을 통해 비둘기들을 끈질기게 훈련시켰을 뿐입니다. 조건반사적인 행동이라 비둘기들의 자발적인 행동이라고 보기 어려웠죠. 이후에도 여러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갤럽의 연구를 뒤집으려고 노력했지만 번번이 논박됐습니다. 특히 세실리아 헤이즈(Cecilia Heyes)란 행동주의 심리학자는 실험도 해보지 않고 자신의 추론이 마치 진실인 양 떠들었습니다. 침팬지를 다룬 적이 한번도 없었으면서 말입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설치류에서 발견된 것이 침팬지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라며 관찰보다 이론을 앞세우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과학자의 책무를 무시해버렸습니다. 또한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 보려는 오류에 빠졌죠. 왜냐하면 자신들이 듣고 싶지 않은 것, 자신들의 믿고 있는 이론을 무너뜨리고 말 '어떤 것'을 보게 될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도처에 이런 일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믿는 바에 따라 컵 속의 물을 보기도 하고 컵의 빈 공간을 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오늘 내리는 판단은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까, 아니면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까? 레베카 코스타는 "믿음이 사실을 대신하기 시작하는 것이 붕괴의 조짐 중 하나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개인에 대해서도, 조직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의미심장한 충고입니다. 믿음도 중요하지만 믿음에 반대되는 사실이 관찰됐을 때 기존의 믿음을 고치거나 버릴 수 있는 마음가짐이야말로 개인과 조직을 늘 새롭게 만드는 원동력인 '중용'입니다.

관찰이 없는 믿음은 어처구니 없는 맷돌과 같습니다.

(*'어처구니'는 맷돌의 손잡이를 말함)
(*행동주의 심리학을 공격하기 위한 글은 아니니 양해 바랍니다.)
(*참고도서 :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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