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생태를 단순화한 모델로 구성하여 관찰하면 우리 인간이 가진 습성이 어떠한지를 짐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들의 행동과 조직의 제도나 방침 중에서 어떤 것들이 그런 습성에 반하는지 깨닫을 수 있습니다. 동물과 인간은 서로 본성의 원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부 경쟁이 심화될 때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내부 경쟁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평가를 강화하고 차등보상을 도입하며 성과급 비중을 상향 조정하는 일련의 조치를 통해 직원들 간의 경쟁과 단위조직 간의 경쟁을 권장함으로써 조직 전체의 경쟁력을 제고하려고 합니다. 이런 시도가 논리적으로 타당한 듯 보이지만, 경쟁력의 진정한 원천인 구성원 간의 협력을 깨뜨린다는 점과 그로 인해 조직의 생존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많은 경영자들은 간과하고 맙니다. 동물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살펴본다면, 내부 경쟁을 강화하여 외부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조치가 생존을 추구하는 생명의 섭리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 http://www.globeimages.net )


인드리키스 크램스(Indrikis Krams)와 동료들은 얼룩무늬 딱새들을 대상으로 한 관찰 실험을 통해 포식자의 위협이 동료와의 협력을 강화시킨다는 점을 보였습니다. 크램스는 딱새 둥지 15개를 실험군으로, 나머지 13개를 대조군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러고는 실험군 딱새들에게는 둥지로부터 150미터 떨어진 곳에 올빼미 박제 인형을 반복적으로 갖다 놓음으로써 잠재적인 위험이 존재함을 인식시켰습니다. 반면 대조군 딱새들에게는 동일한 위치에 개똥지빠귀 인형을 대신 가져다 놓았죠. 올빼미는 딱새들을 잡아먹는 포식자이지만, 개똥지빠귀는 딱새들에게 위협이 되는 대상이 아니라서 대조군 딱새들은 위험을 별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크램스는 딱새 새끼가 태어난지 열흘 되는 날에 두 개의 딱새 둥지 사이에 올빼미 인형을 가져다 놓은 다음, 둘 중 하나의 둥지를 향하도록 했습니다. 올빼미의 위협을 받는 딱새 부부와 옆에 이웃한 딱새 부부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기 위해서였죠. 보통 새들은 자기 영역을 침범한 포식자를 떼지어 공격하는 습성을 보이는데, 크램스는 그 공격의 정도를 0점(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3점(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듯 공격하는 상태)까지의 척도로 측정했습니다. 

관찰 결과, 실험군이나 대조군이나 포식자(올빼미 박제 인형)에게 떼지어 공격하는 경향이 비슷했습니다. 포식자에게 다가가는 거리도 차이가 나지 않았죠. 흥미로운 것은 직접적인 위협을 받지 않는 이웃 딱새들의 행동에서 나왔습니다. 실험군에 속한 이웃 딱새들이 대조군에 속한 이웃 딱새들보다 훨씬 높은 강도로 올빼미를 같이 공격하고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실험군일 때는 모든 딱새가 이웃 딱새가 처한 위협에 같이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대조군일 때는 38.5퍼센트의 딱새가 이웃의 곤경을 모른 체 했습니다.

크램스는 이 실험이 끝나고 1시간 후에 다시 두 둥지 사이에 올빼미 인형을 놓되 그 방향을 이전과 반대로 함으로써 올빼미의 위협을 받았던 딱새 둥지와 그 이웃 둥지의 입장을 바꿔 놓았습니다. 이전 실험에서 도움을 받았던 것에 보답하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랬더니, 실험군 딱새들은 80퍼센트가 보답했지만 대조군 딱새들은 25퍼센트만 올빼미의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관찰 실험은 동물들은 포식자의 위협이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할 때 이웃과 기꺼이 협력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한 협력이 개체가 갖게 될 리스크를 줄여서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안다는 의미입니다. 크램스의 연구 외에도 자원이 부족할 때도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협력을 추구한다는 또다른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정부 정책의 변화든 경쟁사의 직간접적 위협이든 외부 경쟁이 심화될 때 직원들 간의 내부 경쟁을 강화하는 조치는 인간의 본성에 매우 반할뿐더러 조직의 생존력을 떨어뜨리는 악성요소가 된다는 점이 딱새들의 생태가 우리에게 일러주는 교훈입니다. 굳이 동물들의 생태를 연구하지 않아도 조직에 위협이 가해져 오면 구성원들이 합심하여 공동 대응하려 한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내부 경쟁이 외부경쟁력을 높인다는 생각이 아직도 경영자들에게 먹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진정한 경쟁력을 형성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당근과 채찍이 제일이라는 믿음을 신봉하는 까닭이겠죠. 신년사에서 흔히 "외부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으니 금년에는 구성원들이 똘똘 뭉쳐 위기를 대처하자"라고 말하면서도 기존의 협력을 해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협력이 자라날 수 없는 강력한 성과주의 제도를 실시하는 것은 참으로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협력이 외부경쟁력을 반드시 제고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부 경쟁은 결코 외부경쟁력을 키우지 못합니다.


(*참고논문)
The increased risk of predation enhances coop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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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과 2등이 한 팀을 이룰 때와 101등과 102등이 한 팀을 이룰 때, 어떤 팀이 더 협력적인 모습을 보일까요? 1등과 2등으로 이루어진 팀이 후발주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리려고 더욱 협력할까요? 101등과 102등은 어차피 힘을 합쳐 봤자 최상위 그룹을 따라갈 재주가 없기에 건성으로 협력하는 척만 할까요? 

스테판 가르시아(Stephen M. Garcia)와 동료들은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몇 가지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가르시아는 162명의 학생들에게 1위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비영리 조직의 CEO가 되었다고 가정하게 하고 2위인 업체와 전략적으로 제휴하여 조인트 벤처를 설립하는 상황을 그려보도록 했습니다. 학생들이 조인트 벤처 설립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두 조직이 모두 5%씩 수입이 증가하는 전략이었고, 다른 하나는 1위 조직이 7%의 수입이 증가하고 2위 조직은 수입이 25% 증가하는 전략이었습니다. 



절대적으로 본다면 두 번째 전략이 1위 조직의 수입 증가에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중 54%만이 두 번째 전략을 택했습니다. 상황을 바꿔, 학생들에게 업계에서 중간 정도의 위치를 점하는 101위 조직의 CEO라고 가정하게 하고 102위의 조직과 함께 조인트 벤처를 설립하는 전략을 선택해보라고 하니, 79%의 학생들이 두 번째 전략(우리 7%, 상대방 25%)을 취했습니다. 비교를 위해 랭킹 정보를 일러주지 않은 대조군 학생들은 86%가 두 번째 전략을 선택했죠. 이는 상위자끼리 묶인 팀이 중간 순위자끼리 묶인 팀보다 상대적으로 비협력적일 가능성이 큼을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가르시아는 후속실험에서 학생들에게 9위 업체의 CEO라 가정하게 하고 10위 업체에 비해 얼마나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또. 비교를 위해 209위 업체의 CEO라고 생각하고 210위 업체보다 얼마나 경쟁력이 있냐고도 질문했죠. 그랬더니 두 번째 경우보다 첫 번째 경우에 자신의 조직이 상대방 조직보다 더 경쟁력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아래 순위의 업체가 자신의 조직보다 높은 랭킹을 차지하면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 같냐는 질문에도 9위 업체의 CEO를 맡은 학생이 209위 업체의 CEO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 같다고 답했죠. 상위에 랭크될수록 자신이 바로 아래 순위의 업체보다 더 경쟁력을 갖췄다고 여기며, 사회적인 비교에 의한 고통을 크게 느낀다는 의미입니다.

이번에는 학생들에게 포커 게임 토너먼트에 참가하는 선수라고 가정하게 하고 결승전을 치를 때 바로 아래 순위의 선수와 팀을 이룰지, 아니면 혼자 경기를 할지 결정하게 했습니다. 가르시아는 학생들에게 팀을 이루면 '나'의 상금은 10% 증가하고 상대방의 상금은 25% 증가할 것이고, 혼자 경기를 하면 '나'와 상대방이 똑같이 5%씩 상금이 증가할 거라고 알려줬습니다. 가르시아는 학생들에게 각각 랭킹이 3위, 6위, 12위, 24위라고 알려주고, 각각 4위, 7위, 13위, 25위인 상대방과의 팀 결성 여부를 물었습니다. 

그 결과, 학생에게 부여한 랭킹이 높아질수록 혼자 경기에 임하겠다는 대답이 많았습니다. '3위 : 4위' 조건에서 팀을 이루겠다는 대답은 20%에 불과했던 반면, '24위 : 25위' 조건에서는 70%나 팀에 참여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랭킹이 최상위에 가까워질수록 라이벌과의 경쟁을 더욱 의식하기에 혼자서 주도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나타내는 결과였습니다. 성과의 향상은 후순위로 밀려나고 말았죠.

가르시아가 수행한 일련의 실험은 최상위 랭킹에 가까이 갈수록 사회적 비교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라이벌(순위가 한 단계 아래인)과 비협조적이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최고의 실력을 보이는 직원들을 한 팀에 모아 소위 '드림팀'을 조직하면 어떤 양상이 벌어질까요? 이 팀이 산출하는 성과물의 양과 질을 떠나 팀원들 간의 협력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가르시아의 실험이 보여줍니다. 구성원 간의 협력이 집단의 성과 달성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점을 감안하면, 드림팀의 성과물은 애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리라 짐작됩니다. 

실력이 월등하게 뛰어난 직원들은 가능하면 단독으로 기획하고 실행을 주도할 수 있는 독립적인 임무를 부여하고, 팀워크가 요구되는 임무는 '중간 랭킹'의 직원들을 고루 섞은 팀에게 맡기는 것이 불필요한 내부경쟁을 줄이고 협력을 통해 집단의 성과를 높이는 길이 아닐까요? 랭킹이 최상위에 근접할수록 경쟁심이 강화되고 사회적 비교를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인간의 심리를 이해한다면 말입니다. 드림팀은 사실 드림팀이 아닐지 모릅니다. 


(*참고논문)
Ranks and Rivals: A Theory of Compet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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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기업들이 운영 중인 성과급을 살펴보면, 회사나 팀의 성과에 따라 지급하는 '그룹 성과급'과, 개인의 능력과 업적에 기초하여 지급하는 '개인 성과급'이 섞인 형태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둘 중 어느 하나만을 택하는 회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죠. 이렇게 두 가지 형태의 성과급을 섞어서 적용하는 이유를 파고 들어가면, 그룹 성과급만을 지급할 경우 그룹의 성과에 무임승차하려는 직원이 생길 것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개인 단위로 성과를 측정해서 성과급을 주어야만 직원들의 동기를 높일 수 있고 '농땡이'치는 직원들을 벌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개인 성과급의 적용이 무임승차자를 줄이는 이득이 있다고 인정해 보죠. 하지만 그 이득을 얻기 위해 드는 '비용'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경험적으로 항상 느끼고 있겠지만, 제도는 항상 트레이드-오프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렇다면 그 비용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크리스토퍼 반스(Christopher M. Barnes)와 그의 동료들은 그룹 성과급과 개인 성과급을 섞어서 적용할 때와 그룹 성과급만을 적용할 때 팀의 성과와 구성원 개인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질지 실험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경영학과 학부생 304명을 모아서 4명씩 한 팀을 이루게 했습니다. 4명의 팀원들은 한 방에 모여 자신들의 영토를 침략한 적을 인식하여 가능한 한 빨리 적들을 섬멸해야 하는 일종의 전투 시뮬레이션 게임을 함께 수행해야 했습니다. 팀원들은 자신만의 PC 앞에 앉아 게임을 진행했지만 서로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공동의 적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의논할 수 있었죠.

연구자들은 학생들 중 절반(38개팀)에게는 무작위로 선정한 라이벌 팀의 점수보다 높게 나올 경우 팀원 각자에게 10달러의 상금을 줄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룹 성과급을 적용한 셈이었죠. 반면 나머지 팀의 학생들에게는 그룹 성과급과 개인 성과급을 섞어서 지급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팀의 점수가 라이벌 팀의 것보다 높으면 각자 5달러씩 받을 수 있고, 팀원 개인이 다른 팀의 특정 팀원보다 높은 점수를 받으면 개인에게 5달러를 지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던 겁니다.

게임을 수행하도록 한 결과, 그룹 성과급과 개인 성과급을 섞어서 받기로 한 팀의 학생들이 점수 쌓기에 열을 올렸고 몰려오는 적들을 더욱 빠르게 물리치는 모습이 관찰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팀의 학생들은 자기네 편을 적으로 오인하여 공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4명의 팀원들이 한 방에서 게임을 진행했기 때문에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격 방법을 결정하고 '피아'의 구분을 명확히 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의사소통의 질이 높지 않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게임의 특성상 다른 팀원들보다 적들의 공격을 더 많이 받는 바람에 버거워하는 팀원이 있었는데, 그룹 성과급만을 약속 받은 팀들이 혼합된 성과급을 받기로 한 팀들보다 서로 도와주는 행동이 더 많이 나타났습니다. 바꿔 해석하면, 개인 성과급이 적용된 팀들이 상대적으로 비협조적이었다는 의미입니다.

개인 성과급의 존재가 개인의 이득을 최대화하려는 욕구와 팀의 성과에 기여하고자 하는 이타심 사이의 '내적 갈등'이 정보 흐름의 단절과 비협조를 유도했던 겁니다. 또한 자기 혼자 다른 팀원을 도와주는 등 이타적인 행동을 취한다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다른 팀원들로 인해 자기가 피해(개인 성과급을 못 받는)를 받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와, '다른 팀원들도 나처럼 이기적으로 할 수밖에 없을 거야'란 인식도 은연 중에 작용했겠죠.

개인 성과급이 적용되면 팀원들 간에 활발히 일어나야 할 의사소통이 저하되고 협조적인 모습이 덜 나타나는 이런 현상을 기업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팀에 투영하기는 어렵겠죠. 반스가 논문에서 언급했듯이, 이 실험의 결과는 적을 물리쳐야 하는 컴퓨터 게임으로 얻어진 것이기에 일상적인 운영 업무를 주로 하는 팀보다는 특정 주제로 프로젝트를 구성해 긴급히 해법을 마련해야 하는 '태스크 포스(Task-force)형' 팀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허나 점점 더 많은 팀들이 태스크 포스형 팀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반스의 실험을 글자 그대로의 태스크 포스팀에만 적용된다고 제쳐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룹 성과급도 주고 개인 성과급도 주면 성과가 더욱 높아지리라는 기대는 근거가 없을뿐더러 매우 순진한 생각입니다. 팀원들이 합심하여 고객의 요구에 대응하고 회사 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기업환경의 변화와 개인 성과급의 적용은 시너지를 일으키기는커녕 정보의 원활한 흐름을 막고 협조적인 분위기를 깨뜨릴지 모릅니다. 

모든 제도는 트레이드 오프가 있습니다. 제도를 도입할 때 다른 회사는 어떻게 하고 있고 베스트 프랙티스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전에 무엇보다 깊은 성찰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참고 논문)
Mixing Individual Incentives and Group Incentives: Best of Both Worlds or Social Dile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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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장도 맞들면 나은 진짜 이유   

2012. 4. 5. 10:25


여러분 앞에 커다란 물건이 하나 놓여져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걸 들어달라고 부탁할 때 여러분의 머리 속에서는 자동적으로 무게가 어느 정도나 나갈지 추측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무게가 가벼운데 무거울 거라 생각하고 과도하게 근육을 사용하면 몸짓이 우스꽝스러울 테니 말입니다. 반대로 무게가 무거운 물체를 가벼우리라 예상하고 들어올릴 때도 미처 대비하지 못한 팔근육에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미처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어떤 대상을 대할 때 그것의 무게, 촉감, 맛, 냄새 등을 미리 짐작하고 그 짐작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곤 합니다. 오랜 옛날, 거친 사바나에서 생존하기 위해 이러한 능력은 인간에게 필수적이었겠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대상 자체를 보면서 그것의 무게, 촉감, 맛, 냄새 등을 짐작할까요? 아니면 그 대상을 둘러싼 환경을 함께 고려하여 행동(먹고, 만지고, 들고...)의 방향을 결정할까요? 깨끗한 접시 위에 담겨진 빵이 모던한 찻집에 있을 때와 화장실 변기 위에 놓여져 있을 때, 여러분은 전자의 빵을 선택하고자 할 겁니다. 빵의 신선도를 빵 자체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에 의해 평가하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이 밝은 곳에서 어딘가를 응시하며 앉아 있는 경우와, 컴컴한 밤에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자세로 앉아 있는 경우는 매우 다릅니다. 대상의 성질을 판단할 때 우리는 항상 주변 환경을 함께 인식합니다.



다시 물건을 들어보라는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여러분 혼자 그것을 들어보라고 할 때와, 동료가 그것을 함께 들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물건의 무게에 대한 여러분의 추측 결과는 같을까요, 아니면 다를까요? 물건을 들기 전이니 같이 들어 줄 동료가 있든 없든 물건의 무게를 동일하게 추측하리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놀랍게도 동료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물건의 무게를 실제보다 적게 느끼도록 만듭니다.

에덤 도어펠트(Adam Doerrfeld) 등은 대학생 6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이를 증명했습니다. 연구자들은 골프공 177개가 담긴 총중량 20파운드의 바구니를 학생들에게 보여준 후에 바구니를 들기 전에 무게를 추측하도록 했습니다. 학생들은 무작위로 혼자서 들어야 하는 경우와 둘이 함께 드는 경우로 나뉘었죠. 둘이서 바구니를 함께 들어야 하는 학생들은 방의 한쪽 구석에 앉도록 하고 그를 도와줄 동료(실은 연구자 중 한 명)는 다른 쪽 구석에 앉게 했습니다. 도어펠트는 바구니의 무게가 15 파운드에서 25파운드 사이라고 일러줌으로써 과도한 추측을 방지했습니다.

실험 결과, 혼자서 바구니를 들어야 하는 학생들은 바구니의 무게를 약 21파운드 정도라고 추측함으로써 실제 무게인 20파운드에 근접한 정확도를 보였습니다. 반면, 동료와 함께 한 학생들은 바구니의 무게를 약 17.5 파운드라고 예측했습니다. 혼자 들어야 하는 학생들보다 약 3.5파운드를 적게 추측했던 겁니다. 바구니를 직접 들어보고 나서 무게를 추측하라고 하니, 혼자서 바구니를 들든 동료와 함께 들든 무게를 추측한 결과는 거의 비슷했습니다. 실험 방식을 약간 변형한 후속실험(골프공 개수도 추측해 보라는 요청이 추가)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함께 바구니를 들어줄 동료가 옆에 있다는 것으로도 자신에게 부과된 부담을 적게 느낀다는 이 실험의 결과는 조직 내에서 구성원들 간의 서로 돕고 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시사합니다. 인간이 어떤 대상의 무게, 촉감, 맛, 냄새 등을 판단할 때 주변환경을 유리시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성원들은 자신과 한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동료(상사나 부하직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목표나 일상업무의 부담을 인식합니다. 이런 측면에 볼 때, 직원들의 업무영역을 자로 잰듯 반듯하게 구분하고 개인성과목표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려고 하는 성과주의 문화는 구성원들 간에 협력하려는 동기 자체를 줄이도록 유도하고 그로 인해 동일한 난이도의 업무를 더욱 힘들게 여기게 만들 거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협력이 권장되고 협력이 문화로 정착된 조직은 그렇지 않은 조직보다 동일한 난이도의 업무를 착수하기 위해 필요한 '활성화 에너지'의 문턱값이 낮기에 목표 완료의 속도가 빠르고 목표 달성의 질도 뛰어날 것이기 때문이죠.

여러 기업에서 구현된 성과주의 제도의 방향은 개인의 업무(혹은 목표)를 주변의 조건과 얼마나 깔끔하게(?) 분리시킬 것인가를 지상과제로 여기는 듯합니다. 개인의 성과를 몇 개의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지표(KPI)로 깔끔하게 평가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습니다. 구성원 간의 업무흐름이 엄연히 존재하는 조직에서 그런 시도는 애초에 불가능할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음을 도어펠트의 실험이 시사합니다. 개인의 업무(혹은 목표)를 주변 환경의 조건 하에서 인식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헌데 동료의 존재만으로도 정말 부담이 덜 느껴질까요? 도움이 안 되는 동료라는 생각이 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도어펠트는 후속실험을 통해 그 동료가 도와줄 만한 능력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동료의 존재로 인한 경감 효과가 사라진다는 것을 규명했습니다. 목 보호대를 차고 잘 쓰는 한쪽 팔에 깁스를 한 동료(실은 연구자 중 한 명)와 함께 짝을 이루게 한 경우와, 건강한 동료와 짝지은 경우를 비교해 보니, 동료가 부상을 당해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할 거라 간주한 학생들은 건강한 동료와 함께 한 학생들에 비해 바구니의 무게를 더 무겁게 추측했습니다. 그 학생들은 오히려 혼자서 바구니를 들어보라고 요청 받은 학생들보다도 무겁게 짐작했습니다. 협력적인 문화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구성원들의 역량도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은 되어야 함을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직원들에게 성과 목표를 강하게 부과하기보다는 협력적인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일, 그리고 직원들 스스로 자신의 역량을 키움으로써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고 받으려는 자발적인 조직문화를 일구는 일이 진짜 성과주의 문화입니다.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아니, 오히려 해가 되는) KPI 도출에 열을 올리고, 직원들에게 목표 달성을 채찍질하는 문화는 봉건적인 기업문화의 전형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협력적입니까? 여러분의 회사는 직원들 간의 협력을 진정으로 원하고 바랍니까?


(*참고논문)
Expecting to lift a box together makes the load look ligh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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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주 고전적인 연구 결과를 소개할까 합니다. 피터 블로우(Peter M. Blau)가 1940년대 말에 수행한 이 연구의 주제는 경쟁적인 조직과 협력적인 조직 중 어느 조직의 생산성이 더 높은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블로우는 어느 공공 취업 센터(Public Employment Agency)에 근무하는 12명의 인터뷰어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 센터는 두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섹션 A에는 7명이, 섹션 B에는 5명의 인터뷰어들이 근무 중이었죠. 

인터뷰어들의 업무는 단순했습니다. 그들은 구직자들의 신청을 접수 받아 그들을 인터뷰한 다음 구인 기업과 연결시켜주는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인터뷰어들의 성과는 구직자들과 얼마나 많이 인터뷰를 했는지, 얼마나 많은 취업 성공 건수를 달성했는지로 평가되었고, 그 결과는 모든 인터뷰어에게 공개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기업으로부터 구인 요청이 적을 때는 인터뷰어들끼리 경쟁적으로 업무를 할 수밖에 없었고 다른 인터뷰어와 구인 정보를 공유하기보다는 혼자 독점하려는 양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블로우가 정보의 공유 정도를 가지고 섹션 A와 섹션 B의 경쟁도를 측정했더니 섹션 A가 섹션 B보다 더경쟁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섹션 B를 살펴보니 흥미로운 구인 요청이 들어오면 다른 이들과 공유하려 하고 누군가가 정보를 독점하려 들면 그를 정보 공유로부터 배제하려는 분위기였습니다. 섹션 B에서 취업 성공률이 독보적으로 높은 인터뷰어는 동료로부터 그리 환영 받지 못했죠. 반면, 섹션 A의 인터뷰어들은 취업을 성사시키려는 욕망이 커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지 않았습니다.

개인별로 생산성을 측정한 결과, 경쟁도가 높은 섹션 A의 취업 성사 건수가 훨씬 많았습니다. 섹션 A는 1인당 84건, 섹션 B는 1인당 58건 정도의 취업 성사 건수를 나타냈죠. 이 데이터만 보면 경쟁을 권장하는 것이 성과를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취업 성사 건수를 구인 요청 건수로 나누어 생산성을 계산해 봤을 때 섹션 A가 섹션 B보다 못했습니다. 섹션 A는 구인 요청 건의 59%를 성사시킨 반면, 섹션 B는 67%를 성사시켰으니 말입니다. 8% 포인트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했습니다.

블로우의 연구는 경쟁으로 인해 산출된 성과가 꽤 큰 비용을 치른 것임을 시사합니다. 경쟁으로 인해 직원들 간의 정보 공유가 단절되면 특정 개인의 성과가 높아질지는 몰라도 조직 전체로 보면 보이지 않는 비용이 상당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새로 입사한 직원들이 각자의 역량을 발휘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어지는 등 조직 내의 지적자산이 활용되기는커녕 제대로 축적되지도 못합니다.

협력적인 조직은 개인이 오로지 자신만의 성과 달성에 몰두하려는 이기심을 완화시키고 협력을 권장하기 때문에 개인과 개인 사이로 더 많은 정보가 흐르고 공유된 정보가 조직의 성과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 사실은 블로우의 연구 이외에도 상당히 많은 연구 결과들이 지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경쟁을 권장하면서 성과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성과를 창출하는 데 들어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은 생각해 봤습니까? 경쟁은 성과를 창출해내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닙니다. 경쟁은 협력보다 고(高)비용의 경영 방식임을 경계하고, 소모적인 내부 경쟁을 야기하는 제도와 문화를 걷어내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기 바랍니다.

- 유정식 씀

(*참고논문 : Co-operation and Competition in a bureauc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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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 주립대의 심리학자 로버트 쿠르즈반(Robert Kurzban)과 다니엘 하우저(Daniel Houser)는 84명의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공공재 게임'이라 불리는 실험을 수행한 바 있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을 4명씩 그룹을 이루게 한 후 각자에게 50개씩 토큰을 나눠 줬습니다. 학생들은 받은 토큰을 자신의 개인 계좌에 둘 수도 있고 그 중 일부를 떼어 그룹의 공동 계좌에 기부할 수 있었죠. 실험자는 공동 계좌에 기부된 돈을 2배로 증액해 주었습니다. 공동 계좌에 적립된 돈은 나중에 4명이 똑같이 분배하는 것이 규칙이었습니다. 

학생들이 기부할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주어졌는데(회수는 4번에서 34번까지 무작위로 실시), 매번 기부를 결정하기 전에 공동 계좌에 얼마나 적립됐는지 알려주었습니다. 그 정보를 들으면 그룹 내 학생들이 이기적으로 결정을 내렸는지 아니면 그룹을 위해 협력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었겠죠.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학생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까요? 자신은 기부를 한푼도 하지 않고(즉 50개의 토큰을 확보해 두고) 나머지 3명이 공동 계좌에 기부한 돈을 나눠 가지면 될 겁니다. 하지만 4명이 학생이 모두 그런 생각을 하면 공동 계좌에 한푼도 적립되지 않을 테고 공동 계좌에 적립된 돈을 2배로 불려준다는 혜택을 얻지 못하겠죠.

그래서 공동의 이득을 위해 협조적으로 행동하는 학생이라면 공동 계좌에 기부하는 것이 자신이 받아갈 절대금액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또 어떤 학생은 매번 기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공동 계좌에 얼마나 기부됐는지의 정보를 듣고서 기부 여부를 결정하기로 하겠죠. 만일 다른 학생들이 직전에 기부를 별로 하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기부하지 않겠다', 반대로 공동 계좌에 쌓인 금액이 이전보다 많아졌다면(직전에 기부가 많이 이뤄졌다면) '이번에는 기부해야겠군'이라는 전략을 취할 겁니다. 하지만 그룹 내에는 남들이 협조적으로 행동할 때(매번 기부를 하거나, 상호호혜의 원칙에 따라 기부를 결정하거나) 자신은 이기적으로 행동함으로써 공동의 이익에 '무임승차'하려는 학생도 있을 겁니다.

쿠르즈반과 하우저가 여러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반복한 결과, 예상한대로 학생들의 성향이 협력자(cooperator), 보답자(reciprocator), 무임승차자(free rider)로 뚜렷하게 나뉘었습니다. 협력자는 매번 기부하려는 사람인 반면, 보답자는 조건에 따라 협조 여부를 결정하는 자로서 남들이 많이 기부할 때만 자신도 기부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무임승차자는 자신이 가진 50개의 토큰을 내어주지 않고 다른 사람의 기부로부터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이죠. 중간값(median)을 따져보니 무임승차자는 1개, 보답자는 25개, 협력자는 50개의 토큰을 기부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성향의 분포였습니다. 협력자는 13%, 보답자는 63%, 무임승차자는 20%로 나타났습니다. 합쳐서 100%가 안 되는 이유는 유형을 정하기가 애매한 3명의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아마 3명의 학생들은 전략 없이 무작위로 행동한 탓일지도 모름). 이러한 분포로 인해 공공재 게임을 충분히 반복해 보면 세 유형의 사람들이 비슷한 이익을 얻는 상태로 수렴되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무임승차한다고 해서 특별히 많은 금액을 독차지하는 것도 아니었고, 매번 기부를 행하는 협력자라고 해서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었죠. 이론적으로 보면 25에서 125의 범위로 가져가는 이익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었지만 학생들은 대략 70에서 77.5 정도의 이익을 나눠 가졌습니다.

쿠르즈반과 하우저는 이 실험을 통해 협력자, 보답자, 무임승차자로 이루어진 인구 분포가 안정적인 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다는 시사점을 얻었습니다. 그룹의 크기가 충분히 크다면, 대략 13 : 63 : 20의 분포로 협력자, 보답자, 무임승차자가 존재하리란 점도 알려주죠. 물론 이 실험으로는 개인이 어떤 종류의 게임(혹은 의사결정)이든 항상 자신의 협력 유형을 고수하는지, 아니면 종류가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협력자-보답자-무임승차자 전략을 넘나드는지의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추후에 다른 실험으로 증명해야 할 가설이지만, 개인의 협력 유형은 다른 종류의 게임(혹은 의사결정)이라고 해서 크게 바뀌지 않을 거라 짐작됩니다.

여러분의 조직을 둘러보면, 새로운 제도나 전략에 앞장서서 참여하려는 사람, 다른 직원들의 태도를 보고 결정하려는 사람, 뒷짐 지고 있다가 다른 직원들이 이뤄낸 성과에 얹혀 가려는 사람이 눈에 띌 겁니다. 쿠르즈반과 하우저의 실험을 일반화해 본다면, 충분히 큰 조직에서 10명 중 8명 정도는 협조적이고 나머지 2명은 상황에 묻어가려는 무임승차자가 존재하리라 짐작됩니다.

그렇다면 조직의 공동 이익을 위해 무임승차자를 최소화하는 조치가 필요할 겁니다. 쿠르즈반과 하우저의 분석에 따르면, 3명의 보답자가 1명의 협력자와 그룹을 이룰 때와 1명의 무임승차자와 그룹을 이룰 때, 전자가 후자보다 약 40% 많은 이익을 달성하리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과연 무임승차자를 없앨 수 있을까요? 예전의 글(무임승차자, 그들을 어떻게 할까요?)에서 언급했듯이, 무임승차자의 존재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며 그들을 모두 발본색원하겠다는 조치는 힘만 많이 들 뿐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무임승차자 제거 때문에 '부칙'을 잔뜩 달릴수록 제도가 누더기가 되고 제도의 본래 목적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무임승차자가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에 무임승차자는 과연 몇 명입니까? 소수의 무임승차자를 그대로 두면서 협력을 권장하는 조직관리가 필요합니다. 무임승차자를 '발라내겠다'는 극단과, 무임승차자를 '방치하는' 극단 사이에서 적절하게 무게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참고논문 : Experiments investigating cooperative types in huma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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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럿이서 무언가를 결정할 때 합의를 거치거나 투표를 통한 다수결 방식을 사용하곤 합니다. 사적으로 점심 메뉴를 정할 때 뿐만 아니라, 조직 내의 중요한 의사결정 사안에 대해 구성원 전체의 합의를 이끌어낼 것인가, 아니면 다수결로 깔끔하게(?) 정리할 것인가를 놓고 대립하는 경우가 가끔 발생합니다. 과연 어떤 방법이 좋은 걸까요?

딘 토즈볼드(Dean Tjosvold)와 리차드 필드(Richard H.G. Field)는 사이먼 프레이저 대의 학부생 114명을 대상으로 상황이나 맥락(context)이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을 5명씩 그룹을 만들게 한 후에 '달에서 살아남기'라는 의사결정 게임을 부여했습니다. 이 게임은 예전에 이 블로그를 통해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모선(mother ship)에서 200Km 떨어진 달의 어느 곳에서 조난 당했을 경우 생존을 위해서 가지고 있던 15개 물품(성냥, 나침반, 우유 등)의 우선순위를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결정하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이 끝난 후에 토즈볼드와 필드는 하나의 이슈를 토론하고 각 그룹의 의견을 내는 두 번째 과제를 학생들에게 부여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문지를 돌려서 자기가 속했던 그룹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토즈볼드와 필드는 먼저 '협력 조건'이냐 '경쟁 조건'이냐에 따라 학생들을 편성했습니다. 협력 조건의 학생들은 과제를 협력적으로 수행해야 했습니다. 이 조건의 학생들은 상호 이득을 추구해야 하며 결코 이기려 하거나 다른 사람을 압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연구자들로부터 전달 받았습니다. 반면 경쟁 조건의 학생들에게는 동료의 의견보다 자신의 것이 낫다는 점을 주장하게 함으로써 경쟁적인 토론 분위기를 유도해 냈습니다.

토즈볼드와 필드는 이렇게 편성된 학생들을 '합의 조건'이냐 '다수결 조건'이냐에 따라 다시 나눴습니다. 합의 조건의 학생들은 그룹 구성원들 모두가 동의하는 의견을 합의를 통해 이끌어내야 했고, 다수결 조건의 학생들은 합의 과정 없이 투표로 그룹의 의견을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모두 4가지 실험조건(협력-합의, 협력-다수결, 경쟁-합의, 경쟁-다수결)을 설정한 후, 의사결정의 질, 그룹의 결정에 대한 동의(commitment), 과제에 대한 이해 수준, 소요 시간, 해당 그룹과 다시 활동하고 싶은지의 여부 등을 측정했습니다.

분석 결과, 의사결정의 질은 '협력-다수결' 조건의 학생들이 가장 뛰어났고, 의사결정에 걸리는 시간은 '협력-합의' 조건의 학생들이 가장 짧았습니다. 과제에 대한 이해 수준은 '협력-다수결' 조건의 학생들이 가장 우수했습니다. 반면, 의사결정에 대한 동의(commitment)는 '경쟁-합의' 조건일 때가 가장 높았습니다.

이 실험의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먼저 '협력이냐 경쟁이냐'라는 한 가지 차원만 생각하면, 의사결정의 질과 소요시간 측면에서 협력적인 상황이 경쟁적인 상황보다 대체적으로(엄밀하게 따지지 않는다면) 나았습니다. 특히 소요시간은 월등한 차이를 나타냈습니다. 학습의 효과도 구성원들이 경쟁적일 때보다도 협력적으로 토론할 때가 더 높음을 이 실험은 보여주었죠. 물론 '경쟁-합의' 조건에서 의사결정에 대한 동의 수준이 가장 높았기에 경쟁 상황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 생각할 수 있지만, '경쟁-다수결' 조건일 때 이 측정치가 가장 저조했다는 점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이 실험의 시사점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합의를 통해 의사결정할 때 그룹과 개인의 의견 차이를 좁혀서 동의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 협력적인 상황에서는 서로 합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해야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경쟁적인 상황 하에서는 합의보다는 다수결 원칙이 의사결정의 논란과 소요시간을 줄이는 데 있어 좋은 방법이라는 점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적이냐 경쟁적이냐에 따라 의사결정의 방식을 조절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무조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무엇이든 다수결 원칙을 들이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죠. 그리고 같은 조건이라면 구성원들끼리 서로 경쟁하고 공격하는 분위기보다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소모적인 논쟁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일 겁니다.

의사결정은 상황 또는 맥락(context)의 함수입니다. 이를 잘 살펴 운용하는 것이 조직을 운용하는 사람이 세밀히 살펴야 할 또 하나의 요소입니다.


(*참고논문 : Effects of social context on consensus and majority vote decision mak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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