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임승차자를 없애려 하지 말라   

2012. 4. 24. 10:35


인간은 누구나 몸 속에 기생충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쾌하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흔히 회충, 편충, 십이지장충 등과 같은 선형동물이나 편형동물만을 기생충이라고 생각하지만, 개그 소재로 가끔 입에 오르내리는 모낭충은 진드기류에 속하는 기생충이고 음식점의 위생을 점검할 때 기준으로 삼는 대장균 역시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의 장 속에 우글대는 기생충의 일종입니다. 이런 크고 작은 기생충들은 숙주가 흡수해야 할 영양분을 중간에서 가로챌 뿐만 아니라 심하면 숙주의 기관을 물리적으로 손상시키거나 질병을 유발하기 때문에 면역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숙주의 생명 유지와 재생산(reproduction, 번식)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그런데 왜 숙주는 어느 정도의 기생충을 몸 속에 품고 사는 걸까요? 숙주가 면역시스템을 총동원해서 기생충을 완전히 박멸하면 생명 유지와 자손 번식에 유리할 텐데 말입니다. 그 이유는 기생충 몇 마리를 제거할 때는 에너지가 별로 소모되지 않지만 가면 갈수록 기생충 한 마리를 없애기 위해 소요되는 에너지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데에 있습니다. 반면, 기생충을 한 마리 없앰으로써 숙주가 얻는 이득(생명 유지와 자손 번식 상의 유리함)은 갈수록 체감합니다. 제르지 벤케(Jerzy M. Behnke), 크리스토퍼 버나드(Christopher J. Barnard), 데렉 워켈린(Derek Wakelin)은 기생충의 감소에 따라 숙주의 비용은 체증하고 숙주가 얻는 이득은 체감하기 때문에 숙주가 어느 지점에서 균형점을 찾는다고 말합니다. 즉 최적의 기생충 보유량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이죠.



만일 숙주가 균형점 이상으로 기생충을 없애려 한다면, 기생충 한 마리가 박멸됨으로써 얻는 이득 증가분보다 한 마리를 제거하기 위해 쓰이는 비용 증가분이 더 큽니다. 그러면 기생충을 없앰으로써 생명 유지와 자손 번식의 가능성을 높이려 했던 시도가 오히려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고 번식력을 떨어뜨리게 되겠죠. 따라서 숙주는 균형점 수준에서 기생충을 몸 속에 지니는 것을 최적의 생존전략으로 채택하는 겁니다.

이 균형점이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숙주가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균형점이 낮아지기도(최적 기생충 보유량이 상승) 하고 높아지기도(최적 기생충 보유량 하락) 합니다.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큰뿔양(bighorn)의 암컷은 새끼가 없는 암컷에 비해 폐선충에 더 많이 감염되어 있습니다. 이는 젖을 먹이기 위해 에너지를 이미 많이 소요하는 까닭에 기생충 박멸에 배당할 에너지가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많은 기생충을 감내하는 것이죠. 동일하게 젖을 먹이더라도 수컷 새끼를 가진 어미양이 암컷 새끼를 키우는 어미양에 비해 더 많은 폐선충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컷 새끼를 키우는 게 암컷 새끼를 기르는 것보다 비용이 더 들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숙주의 면역시스템은 자손 번식과 기생충 보유 사이에 적절하게 에너지를 배분할 줄 압니다. 절대 기생충 박멸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을 만큼 어리석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회사에서는 제도를 설계할 때(특히 인사 관련 제도를 설계할 때) 누군가가 아무런 노력 없이 이득을 취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면밀히 따질 겁니다. 제도를 애써 만들어 실행해도 제도의 빈틈을 악용하거나 남들이 거둔 성과에 편승하는 무임승차자가 발생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임승차자의 발생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고 이것저것 제한조건을 갖다 붙입니다(이럴 때 이렇게, 저럴 때 저렇게...). 이렇게 되면 제도는 너무나 복잡해져서 제도의 본질과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이 제도를 실행하고 관리하기 위해 들여야 할 노력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맙니다. 다시 말해, 무임승차자 한 명을 줄임으로써 증가하는 이득보다 무임승차자 한 명을 줄이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이 훨씬 커지는 상황으로 악화됩니다.

예를 들어 팀원들 사이의 협력을 훼손하는 개인성과급의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개인성과급을 모두 조직성과급제로 바꾸려고 할 때 항상 무임승차자 문제가 거론되곤 합니다. 팀원들이 모두 조직성과를 달성하려고 합심할 때 나중에 성과급만 받아 챙기려고 건성으로 참여하는 무임승차자가 존재하면 팀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말 것이고 기대했던 조직성과도 달성하지 못할 거라 우려를 표합니다. 그래서 결국 개인의 기여도를 평가해야 한다는 논리가 받아들여져서 조직성과급과 개인성과급이 '짬뽕'되고 맙니다. 또한 애초에 조직성과급의 도입이 팀원 간, 부서 간 협력 증진이라는 이유를 들며 협력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개인이나 단위조직에 할당하는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개인적으로 협력을 측정하려는 KPI가 가장 우스꽝스러운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무임승차자를 줄이고 방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부칙'이 필요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숙주가 번식이라는 '대의'를 지키기 위해 어느 정도의 기생충을 몸 속에 보유하는 생존전략을 취하듯이 말입니다. 제도에 편승하고 조직에 기생하는 무임승차자가 눈엣가시처럼 보기 싫더라도 그들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것이 조직의 장기적인 건강과 발전에 도움이 됩니다. 숙주가 몸 속에 사는 기생충에 눈 감아 줌으로써 자신의 생존력과 번식력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볼 때, 오히려 무임승차자는 조직의 발전에 긍정적인 존재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조직이 무임승차자를 없애려고 지나치게 안간힘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보기 바랍니다. 조직의 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무임승차자는 그냥 놔두는 게 좋을지 모르니까요.


(*참고논문)
Understanding chronic nematode infections-evolutionary considerations
Ecological immunology: costly parasite defences and trade-offs in evolutionary ecology



  
,



펜실베니아 주립대의 심리학자 로버트 쿠르즈반(Robert Kurzban)과 다니엘 하우저(Daniel Houser)는 84명의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공공재 게임'이라 불리는 실험을 수행한 바 있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을 4명씩 그룹을 이루게 한 후 각자에게 50개씩 토큰을 나눠 줬습니다. 학생들은 받은 토큰을 자신의 개인 계좌에 둘 수도 있고 그 중 일부를 떼어 그룹의 공동 계좌에 기부할 수 있었죠. 실험자는 공동 계좌에 기부된 돈을 2배로 증액해 주었습니다. 공동 계좌에 적립된 돈은 나중에 4명이 똑같이 분배하는 것이 규칙이었습니다. 

학생들이 기부할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주어졌는데(회수는 4번에서 34번까지 무작위로 실시), 매번 기부를 결정하기 전에 공동 계좌에 얼마나 적립됐는지 알려주었습니다. 그 정보를 들으면 그룹 내 학생들이 이기적으로 결정을 내렸는지 아니면 그룹을 위해 협력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었겠죠.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학생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까요? 자신은 기부를 한푼도 하지 않고(즉 50개의 토큰을 확보해 두고) 나머지 3명이 공동 계좌에 기부한 돈을 나눠 가지면 될 겁니다. 하지만 4명이 학생이 모두 그런 생각을 하면 공동 계좌에 한푼도 적립되지 않을 테고 공동 계좌에 적립된 돈을 2배로 불려준다는 혜택을 얻지 못하겠죠.

그래서 공동의 이득을 위해 협조적으로 행동하는 학생이라면 공동 계좌에 기부하는 것이 자신이 받아갈 절대금액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또 어떤 학생은 매번 기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공동 계좌에 얼마나 기부됐는지의 정보를 듣고서 기부 여부를 결정하기로 하겠죠. 만일 다른 학생들이 직전에 기부를 별로 하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기부하지 않겠다', 반대로 공동 계좌에 쌓인 금액이 이전보다 많아졌다면(직전에 기부가 많이 이뤄졌다면) '이번에는 기부해야겠군'이라는 전략을 취할 겁니다. 하지만 그룹 내에는 남들이 협조적으로 행동할 때(매번 기부를 하거나, 상호호혜의 원칙에 따라 기부를 결정하거나) 자신은 이기적으로 행동함으로써 공동의 이익에 '무임승차'하려는 학생도 있을 겁니다.

쿠르즈반과 하우저가 여러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반복한 결과, 예상한대로 학생들의 성향이 협력자(cooperator), 보답자(reciprocator), 무임승차자(free rider)로 뚜렷하게 나뉘었습니다. 협력자는 매번 기부하려는 사람인 반면, 보답자는 조건에 따라 협조 여부를 결정하는 자로서 남들이 많이 기부할 때만 자신도 기부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무임승차자는 자신이 가진 50개의 토큰을 내어주지 않고 다른 사람의 기부로부터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이죠. 중간값(median)을 따져보니 무임승차자는 1개, 보답자는 25개, 협력자는 50개의 토큰을 기부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성향의 분포였습니다. 협력자는 13%, 보답자는 63%, 무임승차자는 20%로 나타났습니다. 합쳐서 100%가 안 되는 이유는 유형을 정하기가 애매한 3명의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아마 3명의 학생들은 전략 없이 무작위로 행동한 탓일지도 모름). 이러한 분포로 인해 공공재 게임을 충분히 반복해 보면 세 유형의 사람들이 비슷한 이익을 얻는 상태로 수렴되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무임승차한다고 해서 특별히 많은 금액을 독차지하는 것도 아니었고, 매번 기부를 행하는 협력자라고 해서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었죠. 이론적으로 보면 25에서 125의 범위로 가져가는 이익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었지만 학생들은 대략 70에서 77.5 정도의 이익을 나눠 가졌습니다.

쿠르즈반과 하우저는 이 실험을 통해 협력자, 보답자, 무임승차자로 이루어진 인구 분포가 안정적인 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다는 시사점을 얻었습니다. 그룹의 크기가 충분히 크다면, 대략 13 : 63 : 20의 분포로 협력자, 보답자, 무임승차자가 존재하리란 점도 알려주죠. 물론 이 실험으로는 개인이 어떤 종류의 게임(혹은 의사결정)이든 항상 자신의 협력 유형을 고수하는지, 아니면 종류가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협력자-보답자-무임승차자 전략을 넘나드는지의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추후에 다른 실험으로 증명해야 할 가설이지만, 개인의 협력 유형은 다른 종류의 게임(혹은 의사결정)이라고 해서 크게 바뀌지 않을 거라 짐작됩니다.

여러분의 조직을 둘러보면, 새로운 제도나 전략에 앞장서서 참여하려는 사람, 다른 직원들의 태도를 보고 결정하려는 사람, 뒷짐 지고 있다가 다른 직원들이 이뤄낸 성과에 얹혀 가려는 사람이 눈에 띌 겁니다. 쿠르즈반과 하우저의 실험을 일반화해 본다면, 충분히 큰 조직에서 10명 중 8명 정도는 협조적이고 나머지 2명은 상황에 묻어가려는 무임승차자가 존재하리라 짐작됩니다.

그렇다면 조직의 공동 이익을 위해 무임승차자를 최소화하는 조치가 필요할 겁니다. 쿠르즈반과 하우저의 분석에 따르면, 3명의 보답자가 1명의 협력자와 그룹을 이룰 때와 1명의 무임승차자와 그룹을 이룰 때, 전자가 후자보다 약 40% 많은 이익을 달성하리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과연 무임승차자를 없앨 수 있을까요? 예전의 글(무임승차자, 그들을 어떻게 할까요?)에서 언급했듯이, 무임승차자의 존재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며 그들을 모두 발본색원하겠다는 조치는 힘만 많이 들 뿐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무임승차자 제거 때문에 '부칙'을 잔뜩 달릴수록 제도가 누더기가 되고 제도의 본래 목적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무임승차자가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에 무임승차자는 과연 몇 명입니까? 소수의 무임승차자를 그대로 두면서 협력을 권장하는 조직관리가 필요합니다. 무임승차자를 '발라내겠다'는 극단과, 무임승차자를 '방치하는' 극단 사이에서 적절하게 무게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참고논문 : Experiments investigating cooperative types in humans )
 
 

  
,

무임승차자, 그들을 어떻게 할까요?   

2010. 12. 20. 09:00



연말에 개인평가와 조직평가를 하다 보면 나오는 말 중에 하나가 '무임승차'라는 단어입니다. 알다시피 이 말은 남들이 이루어 놓은 성과를 아무런 노력 없이 가져간다는 뜻입니다. 조직에는 이렇게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눈에 띕니다. "저 사람은 아무것도 안했는데 단지 우리 팀이라는 이유로 성과급을 받아가다니, 참 불합리하군"이라고 생각한 적이 아마 여러분에게 한 두 번쯤은 있으리라 짐작되네요.

무임승차는 모든 조직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까요, 아니면 조직관리(혹은 성과관리)를 잘못할 때 발생하는 경영의 실패일까요?



사회학자인 로버트 엑스텔은 이러한 질문의 답을 구하기 위해 컴퓨터를 사용해서 시뮬레이션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그는 먼저 가상의 사람들을 시뮬레이션 모델 속에 '살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상의 사람들이 이익의 크기에 따라 독립적으로 일하기도 하고 함께 일을 하기도 한다는 로직을 집어 넣었습니다. 혼자 일하냐, 모여서 일하냐의 문제는 개인에게 돌아갈 이익의 크기로 결정한다는 것이죠.

엑스텔은 모델을 현실과 가깝게 만들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개성의 차이를 부여했습니다. 그것은 열심히 일해서 높은 소득을 원하느냐(소득 중시자), 아니면 높은 소득보다는 개인적인 시간을 더 많이 원하느냐(개인생활 중시자)의 차이였습니다. 쉽게 말해 일과 생활(Work and Life) 중 어디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느냐의 차이를 개인들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이렇게 2개의 로직을 시뮬레이션 모델에 집어넣은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엑스텔은 살펴봤습니다. 예상대로 일을 열심히 하는 야심가(소득 중시자)들은 독립적으로 일할 때보다 같이 일할 때 더 많은 소득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기업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모델의 로직상 그들은 높은 소득을 따라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개인생활을 중시하는 자들 사이에선 기업이 만들어지기 어려웠겠죠.

현실에서 잘 나가는 기업들은 거의 모두 뛰어난 아이디어와 강력한 실행력을 지닌 소수의 사람들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엑스텔의 시뮬레이션 모델은 이러한 현실의 모습을 잘 반영했습니다.

야심가들이 만들어낸 기업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수록 생산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점점 사람들을 고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고용된 사람 중에는 소득 중시자와 개인생활 중시자들이 섞여 있겠죠. 여기에서 흥미로운 현상이 발견됩니다.

기업이 작을 때는 한 사람이 조직에 기여하는 성과의 비율이 큽니다. 그래서 개인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느냐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이럴 때는 무임승차를 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놀면 조직성과가 급락해서 자신에게 돌아올 몫도 눈에 띄게 줄기 때문이죠. 하지만 기업이 커질수록(즉 인력이 많아지면) 1명의 직원이 기여하는 비율이 작아집니다. 절대액은 같아도 상대적인 기여분(分)은 떨어지기 마련이죠.

바로 이때 야심 없는 자(개인생활 중시자)들은 상대적인 기여가 작기 때문에 자기가 일을 하는 척만 해도 조직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사실을 간파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속임수를 써도 받아가는 연봉은 열심히 일할 때와 거의 차이가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죠.

이렇게 되면 무임승차가 유리한 전략이 되고 열심히 일하던 야심가들도 무임승차 전략을 모방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열심히 일할 때보다 자신에게 높은 순이익(소득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뺀 값)을 보장하기 때문이죠.

엑스텔은 모델에 하나의 로직을 더 첨가했습니다. 사람들이 더 높은 소득을 벌 기회가 있다면, 독립적으로 일하거나 다른 기업으로 이직하도록 한 것이죠. 그랬더니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즉 무임승차 전략을 채용하지 않은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기업을 이탈하기 시작했고, 기존의 기업에는 무임승차자들이 우글거리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엑스텔의 모델은 비록 단순한 몇 가지 로직에 의존한 시뮬레이션이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매우 비슷하게 나타낸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기업이 처음에는 열심히 일하는 소수에서 시작하다가, 규모가 커지면 무임승차자들이 점점 증가하고, 급기야 일 잘하는 사람들이 조직을 떠나 새로운 회사를 만드는, 우리가 익히 아는 기업의 사이클을 모사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했던 질문을 다시 해보겠습니다. 무임승차는 모든 조직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까요, 아니면 조직관리를 잘못할 때 발생하는 경영의 실패일까요? 대답은 '둘 다'입니다.

엑스텔의 실험은 무임승차자의 발생이 조직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어쩔 수 없는 현상임을 보여줍니다. 무임승차는 기업에 고용되는 직원들의 개성(태도)이나 역량 차이에서 비롯되는 필연이죠. 하지만 필연이라고 해서 조직관리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무임승차자의 증가를 차단하지 못하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회사를 떠나고 조직에는 무능한 사람들만이 남는다는, 소위 '파킨슨의 법칙'이 현실로 나타나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무임승차가 이득을 최대화하는 좋은 전략이라는 인식이 퍼지지 않도록 적절하게 규제하거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정당한 이득이 돌아가도록 하거나,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는 것이 무임승차보다 좋은 전략임을 '넛지(nudge)'하는 조직관리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개인성과와 조직성과 중에 무엇이 먼저인가, 하는 중요한 질문이 떠오릅니다. 이 질문은 관리자들에게 매우 어려운 과제입니다. 무임승차자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개인의 성과를 강조하다 보면 자신의 성과지표에 집착하는 이기적인 행동이 만연하여 협력이 미약해집니다. 그렇다고 협력을 권장하기 위해 팀이나 사업부 단위의 조직성과를 강조하다 보면 무임승차자를 용인하는 꼴이 되어 버립니다. 일종의 트레이드 오프인 셈이죠.

조직의 규모가 크면 소수의 무임승차자는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합니다. 엑스텔의 실험에서 봤듯이 그들의 발생을 막을 도리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리자들은 개인성과를 우선함으로써 무임승차자를 뿌리 뽑겠다는 접근보다는, 협력을 유지하고 증진하는 단위조직(팀이나 사업부)의 성과를 높게 인정하고 동시에 협력의 요소를 개인의 성과지표에 담음으로써 무임승차가 결코 유리하지 않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입니다.

요컨대 성과관리는 개인보다는 조직이 우선이라는 말입니다. 성공한 기업들이 보이는 경쟁력의 뿌리는 개인들의 협력과 자발적인 기여로부터 나옵니다. 그 협력을 훼손하거나 무임승차자들이 조직을 오염시키게 놔두는 기업은 협력으로 똘똘 뭉친 경쟁자의 공격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겠죠.

소수의 무임승차자를 그대로 두면서 협력을 권장하는 조직관리가 필요합니다. 무임승차자를 '발라내겠다'는 극단과, 무임승차자를 '방치하는' 극단 사이에서 적절하게 무게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이것 또한 경영의 중용이겠죠?

(*참고도서 : '사회적 원자', 사이언스북스)


inFuture 아이폰 앱 다운로드       inFuture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