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은 곧 지름길입니다.   

2009. 6. 11. 09:44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중에 우리는 과거의 경험, 문헌 자료, 논리적 근거, 다른 사람의 충고 등 여러 가지 정보와 요소를 바탕으로 해답에 접근해 갑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직관'입니다. 직관이 없다면 문제 해결 과정은 꽤 지난하게 진행되다가 끝내 흐지부지되고 맙니다.

직관이란 말을 풀어 쓰면 '곧바로 꿰뚫어 본다'라는 뜻입니다. A가 문제이고 B가 해답이라면, A의 위치에서 B에 이르는 지름길을 대번에 알아차리고 딱히 논리적이지 않지만 나름의 근거를 통해 B를 찾아내는 능력이 바로 직관입니다.

화재나 테러와 같이 긴박한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동적으로 아는 능력, 진맥만 해도 환자의 질병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능력, 무의미하게 보이는 숫자들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 등을 우리는 직관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직관이란 신비하고 천부적인 능력이라고 여깁니다.

해답은 저 너머에...


지난 글('쉽다고 과정 무시하면 큰 코 다칩니다')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반드시 과정을 중시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곧바로 결론을 내지 말고 찬찬히 과정을 밟아가야 옳은 답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군요. "그 글에서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더니, 이제 직관도 중요하다고? 서로 모순 아닌가?"라고 말입니다. 이런 의문을 가지는 이유는, 'A의 답은 B가 맞다'고 말하듯이 금방 결론을 내는 능력으로 직관의 의미를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직관은 답에 이르는 '과정'을 대번에 알아차리는 능력입니다. 답(결론)을 곧바로 제시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물론 직관이 뛰어난 사람은 곧잘 답을 말하지요. 하지만 그 사람은 어떤 과정과 경로를 거쳐 답에 이르러야 하는지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리기 때문에 답을 빠르게 말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답이 머리 속에서 불쑥 떠올랐다 해도 그것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문제 풀이 과정의 지름길을 찾아냈기 때문이지, 그냥 답이 뿅하고 나타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직관은 '이 길로 가면 답을 찾을 수 있어'라고 스스로에게 일러주는 능력입니다. 이를 뇌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싶지만 길고 어렵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지름길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지름길의 데이터베이스는 부단한 연습과 습관으로 쌓입니다. 천부적인 능력이 아닙니다. 초자연적인 힘은 더더욱 아닙니다. 충분히 연습하고 경험하면 얻어지는 후천적인 능력입니다.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만이 누리는 특권이 아닙니다.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몸의 일부처럼 체득되면 맡은 영역에서 뛰어난 직관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경험을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기록한 다음 필요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꺼내 쓰는 능력이죠.

지능이 좋은데도 문제 해결에 쩔쩔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지능은 보통 수준이지만 문제 해결에는 척척박사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경험을 통해 얼마나 직관이라는 능력을 갈고 닦았느냐에 있습니다. 베테랑이란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풍부한 경험을 기반으로 직관이 뛰어난 자를 일컫습니다. 

물론 직관이 뛰어나다고 해서 항상 올바른 답을 구한다고 보장하지 못합니다. 종종 직관은 잘못된 방향의 지름길을 알려주기 때문이죠. 직관 능력에 논리적인 추론 능력을 더할 때 문제 해결에 완벽을 기할 수 있습니다. 답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해도 더 깊이 생각하고 판단해서 논리적인 기반을 마련할 때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납득시킬 수 있기 때문이죠. '회의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논리적인 추론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기로 하지요.

정리해 봅시다. 문제 해결의 '달인'이 되려면 직관이 필수적입니다. 직관은 문제 풀이의 지름길을 대번에 알아차리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매번 옳은 지름길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풍부한 경험과 부단한 노력이 밑바탕을 이뤄야 합니다. 경험과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직관이란 그저 '감(感)'에 불과함을 기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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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이론(라프 코스터 저)'이라는 책에서 아래와 같은 사례를 발견했습니다.

x2 + 5 = 30

x는 얼마일까?

주위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제시해 보면 어떨까요? 어떻게 답을 이야기하는지 들어보면, 그가 문제해결(Problem Solving)의 기본기 중 하나인 '과정 중시'를 잘 하는 사람인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가 'x = 5'라고 금방 답한다면, 그는 답을 내는 것에 급급해서 과정을 무시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문제의 함정은 '엄청 쉽다'는 데에 있습니다. 쉽기 때문에 과정을 생략해도 된다고 유혹하죠.

직접 실험을 해봤습니다. 4~5명에게 물어봤으니 통계적으로 유의한 표본은 아니지만, 5라고만 답할 뿐 x = -5 를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5 도 분명 해답인데 말이죠.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더 무게를 둡니다. 예컨데 그들은 이 쉬운 문제를 풀 때에도 다음과 같이 과정을 전개합니다.

x2 + 5 = 30
x2 = 30 - 5 = 25
x =  ±√25
x ±5
 
쉬운 문제를 이렇게 일일이 풀이 과정을 써내려 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찮게 보이는 문제라도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면 올바른 답(±5)을 얻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풀이 과정을 꼼꼼하게 따지는 사람을 융통성 없다고 놀리기 전에 그들의 문제해결 역량의 기본기를 유심히 살펴볼 일입니다.

저는 요즘 시나리오 플래닝을 주제로 몇몇 기업을 대상으로 워크샵을 진행하는 중입니다. 방법론을 습득하기 위해 제 책('시나리오 플래닝')에 수록된 '길동이의 딜레마' 사례로 시나리오 플래닝을 연습하는 시간을 워크샵 초기에 진행합니다. 길동이의 딜레마는 다음과 같습니다.

길동이는 광화문 근처에 있는 OO호텔 커피숍에서 저녁 9시에 만나 애인에게 프러포즈를 할 계획이다. 여자친구는 성격이 불 같아서 단 1분이라도 늦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만일 길동이가 늦게 호텔에 도착한다면, 프러포즈는 엉망이 되고 여자친구는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날 게 확실하다. 길동이는 프러포즈를 성공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제시간에 호텔에 도착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사장님이 길동이에게 오후 늦게 중요한 일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 일을 하게 된다면 빨라 봤자 회사에서 8시에 출발할 수 있다. 다행히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7시에 퇴근이 가능하다.

강남에 위치한 회사에서 호텔로 가려면 승용차로 평균 1시간 걸리지만, 운이 좋아 길이 잘 뚫리면 30분, 반대로 길이 막히면 2시간이나 걸린다. 그렇다고 차를 놔두고 가기는 싫다. 프러포즈를 끝내고 여자친구와 함께 교외로 멋진 드라이브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 길동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제가 이 사례를 이야기하면 여기저기서 웅성웅성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약속 장소를 변경하면 되잖아.", "차를 렌트하면 될텐데", 혹은 "저런 여자와 왜 만나? 끝내 버려" 등등 다양한 해결책들이 즉각 제기됩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이 사례는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소소한 딜레마라 '쉽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즉흥적으로 제기된 해결책 중 몇몇은 길동이가 채택해도 될 만한 훌륭한 방안인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길동이가 처할 상황(시나리오)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최적의 해결책을 찾기 어렵습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해답을 즉각 토해내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라 '문제를 어떤 프로세스로 해결해야 하는가'의 방법론 중 하나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의미를 가집니다.

최적의 해결책을 원한다면 과거의 경험을 통한 추론과 직관으로 결과를 바로 내놓으려는 관성을 잠시 억눌러야 합니다. 그 대신,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방법론, 방식, 프로세스, 전제조건 등을 먼저 생각하려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경험과 직관도 문제해결에 필수적인 능력이자 조건이지만, 해답을 내는 데 적용하지 말고 과정을 짜는 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해결책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하려면 과정의 엄밀함이 반드시 전제돼야 합니다. 과정이 생략된 결과는 그 효과가 높다 하더라도 의심 받거나 거센 반대에 봉착하고 말죠. 현 정부의 '밀어붙이기' 식 정책에 국민들이 크게 반발하는 이유는 뭘까요? 과정(정책의 타당성 분석 등)을 몽땅 생략한 채 자신들의 이념, 신념, 이익 등에 근거한 답(결과)을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겐 과정을 건너 뛰어도 될 만큼 문제가 쉬운가 봅니다. 과정을 중시하지 않으면 이해와 지지를 얻지 못한다는 단적인 예가 아닐까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고 해서 항상 최고의 전략을 수립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직관적으로, 혹은 별 생각없이 제시한 해결책이 멋지게 성공하는 경우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예외적이어서 (언론이나 사람들의 인식에서)돋보일 뿐입니다.

소소한 고민에서 중차대한 딜레마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면 '답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 과정에 집중'해야 함을 기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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